1. 리비아 미국대사 무슬림에 의해 피살 

미국의 작은 영화가 무슬림 세계를 분노의 폭풍으로 몰아넣고 말았습니다. 세익스피어의 템페스트를 연상합니다. 템페스트(폭풍, 소란)는 불가항력적인 자연의 태풍이 아니라 마법에 의한 인간적 작품입니다.

 

이번템페스트도 이코노미스트가 지적한 대로 단순한 mischief(장난)가 엄청난 misfortunes(불행)을 초래하였습니다. 미국 영화를 단순한 장난기의 작품으로 비유하였습니다.

 

태풍은 좀가라 앉은 것 같의나 많은 후유증을 낳고 있습니다. 이슬람 세계와 서구의 문명 충돌이 종교 충돌로 발전, 곳곳에서 충돌을 일으키고 있습니다.

 

특히 파키스탄에서 가장 격렬한 데모가 지금도 조금씩 일어나고 있습니다. 파키스탄은 이슬람이 국체이지만(파키스탄 이슬람 공화국) 마다라사라는 13-5천의 이슬람학교는 코란과 칼을 동시에 가르치며, 탈레반의 본거지이기도 합니다.

 

사랑을 가르치고 전파해야 할 종교가 도리어 증오를 부채질합니다. 리비아 미국대사는 그야말로 리비아를 사랑한자였다고 리비아 국민들도 애도한다고 합니다.

 

세계도처에서 과격주의로 인한 분쟁, 갈등, 살인, 전쟁의 위험이 도사리고 있습니다. 종교적 과격주의, 과격민족주의, 과격인종주의 등등, 존 스타트는 기독교는 중용의 종교라고 하였습니다. 그런데 미국의 한 과격목사의 자극적 행동이 너무 큰일을 저질렀습니다.  그러나 무슬림 세계의 데모는 우발적이 아니라 계획적이라는 것이 드러나고 있습니다.

 

영화는 하나의 빌미를 제공한 것에 불과합니다. 그래서 무슬림 내부에서도 폭력은 안되다는 자성의 목소리가 나올 정도입니다. 

 

이번 데모는 도리어 아랍의 봄을 후퇴시켰다고 말합니다. 특히 이집트의 모르시 대통령이 제일 비난의 대상이 되고 있습니다. 데모의 다른 원인은 아랍 국가들의 정치적 불안정, 경제불안, 형제단의 집권이 도리어 데모로 폭발하였다는 것입니다.  특히 이집트 모로시가 손해를 보았다는 것입니다.

 

그러나 격렬한 분노의 데모가운데서 합리적 무슬림들의 목소리가 나왔습니다. 폭력은 안 된다고. 이들이 바로 이슬람 세계의 희망이라고 한 서방 언론인은 격찬했습니다. 동시에 데모 가담자는 소수에 불과하다고, 하지만 서방에서도 반 이슬람 분노를 촉발, 무슬림들을 증오하는 강도가 높아졌다고 지난주 영국 BBC가 보도하였습니다. 셰익스피어 작품의 태풍은 인간의 증오가 일으킨 분노의 폭풍이듯이, 이번 템페스트도 종교적 분노와 증오의 산물입니다.

 

이번 뉴스는 소말리아에서 네덜란드로 이민 온 한 무슬림 여성이 이슬람을 버리고 정치가로 변신하고또 동료의원 반고흐와 함께 이슬람의 여성 문제를 다룬 영화를 만들었다가 폭력의 위협에 시달리다가 미국으로 피신 하였습니다. 지난 주 뉴스위크지는 그녀의 간증문을 실었습니다.  이글에 대한 무슬림들의 반박 댓글은 섬찟합니다. 히르시알리의 글을 먼저 요약합니다.

 

이슬람주의자들의 최후항거: 아랍세계 거리는 거짓분노로 불타고 있다. 그것을 어떻게 종식시킬 것인가.”아히르시알리)

 

(오른쪽하단): 갈등. 이슬람 증오의 마지막 순간. 다시금 아랍 세계의 거리가 거짓 분노로 불타고 있다. 우리는 우리들의 머리를 높이 치켜들어야 한다.  아얀히르시알리는 어떻게 무슬림의 분노에서 생존하였는지, 그리고 어떻게 그것을 종식시킬 수 있는 지를 증언한다. ,

 

최근 이슬람 지역의 데모가 일어난 것은 공교롭게도 살만 루시디의 저서 조셉 안톤의 비망록이 출시된 것과 때를 같이한다. 이번 사건은 23년 전 사건과 거의 같다. (1989년 이란의 호메이니가 살만 루시디에게 파트와를 선언한 것 의미함). 이들은 민주정부가 보는 앞에서 죽었다. 중략-

 

그러면 미국의 지도자들은 어떻게 대응하였는가? 만약 이집트 정부는 미국에게 사과를 요구하고 영화 제작자를 처벌할 것을 요구하였다. 미국이 그것을 수용하면 그것은 중대한 실수가 될 것이다. 특히 더 밝은 미래를 건설하려고 몸부림치는 무슬림들에게 중대한 잘못을 저지르는 것이다.

 

무슬림 세계에서는 코란이나 예언자가 더 중요하지 사람의 생명은 그리 중하지 않게 여긴다. 무슬림들은 개인의 정치적 활동, 성별, 종교, 직업에는 관심이 없다. (아얀히르시알리는 소말리아 출생으로 1992년 중매 결혼을 거부, 네덜란드로 이민, 2003년에서 2006년까지 네덜란드국회의원 역임, 현재 하바드 대학 케네디 외교 연구소 연구원이다. 그녀의 자서전 불신자는 2007년 뉴욕타임지 베트스셀러가 됨))

 

히르시알리가 말한 것은 거의 적중하고 있습니다. 최근 외신들은 중동은 도리어 후퇴하고 정치, 불안, 경제실패, 다만 승리한 자들은 무슬림 형제단인데, 벌써 국민들이 실망을 드러내고 있다고.

 

2. 프랑스의 잡지 Chrlie Hebdo의 만화 

▲ 문제된 프랑스 잡지 만화: 무하마드의 벌거벗은 나체를 풍자
프랑스 잡지가 또 무하마드를 비방하는 만화를 게재, 아랍 세계를 자극, 무려 20개 나라에서 대사관과 학교를 문을 닫는 사태가 일어났다.  이 잡지는 작년 11월에도 폭탄세례를 받은 적이 있다. 프랑스의 무슬림들이 데모하자 프랑스정부는 강경하게 데모를 진압하였다. 한 라디오 방송은 우리는 표현의 자유가 있다. 만화로 풍자할 자유가 있다고 강변하였다. 편집장은 더 강경하게 이 만화는 충격을 원하는 자들에게만 충격적이었다고 주장한다. 이 사건 이후 서방 언론은 표현의 자유를 놓고 뜨거운 논쟁을 벌였다.

 

문제된 프랑스잡지만화: 무하마드의 벌거벗은 나체를 풍자

 

3. 문명충돌의양상 

아랍의 분노는 반대로 서방의 분노도 촉발하였다. 서방의 많은 사람들은 아랍의 분노에 좀 신경질적인 반응을 보이기도 하였다. 서방에서는 예수님이 결혼하고 아이를 가졌다는 신학자의 주장에도 조용한데, 그 정도의 만화나 영화가지고 크게 흥분하느냐는 식이다. 오바마, 힐러리, 주 이집트 미국대사가 사과하는 성명을 발표하자 미국의 일부 네티즌들은 신랄하게 오바마, 힐러리, 대사를 비난하는 댓글을 쏟아 부었다.

 

오바마, 힐러리 대사는 영화를 더 이상 비난해서는 안 된다.  문제는 외부 세계에 있다.” 롬니는 미국의 가치관을 양보해서는 안 된다고 오바마를 공격한다. 한 댓글을 그대로 인용하면,

“Terroist Spring”that Obama and Democrats supported is going great.”

굳이 쉽게 번역한다면 오바마와 민주당이 지지한 테러리스의 봄이 크게 움직이고 있다.”

 

오바마는 취임직후 카이로대학에서 자신은 케냐 무슬림 배경이며 미국 건국 이후 미국을 제일 먼저 승인한 나라는 모로코라고 하면서 아랍과의 새로운 시작을 호소하였다. 그러나 먹혀 들지 않는다.

 

지난 921일 영국BBC는 자막에 공격 당하는 서방의 무슬림이라는 글이 뜨면서 표현의 자유에 대하여 뜨거운 논쟁을 하였다. 물론 이슬람국가의 지식인들은 무함마드를 비방하는 것은 자유가 아닌, 종교의 본질이라는 것이다.

 

4. 우발적인가? 계획적인가?

▲ 사진-크리스 스티븐 미국 대사의 사망시 사진
그러면 리비아 대사 살해, 아랍의 분노는 우발적인가? 아니면 계획적인가? 사건 이후 서방 언론들은 일제히 아랍의 분노는 아주 조직적인 계획이라고 비난하는 기사들로 가득 찼다. 결론은 결코 우연이 아닌 계획된 시나리오라는 것이다. 많은 미스터리 중에도 대사를 살해하는 장소의 데모대는 이미 중무장을 한 것을 예로 든다. 알카에다가 아닌 다른 이슬람 과격세력이 개입되었다고 조사하고 있다. 이번 사태는 다 계획된 각본이라는 것이 언론들의 공통된 분석이다. 그래서 어제 오바마는 UN연설에서 이슬람 세계의 폭력을 규탄하였다.

 

사진-크리스 스티븐 미국대사의 사망 시 사진

 

화해는 불가능한가? .

이번 데모로 가장 고통 당하는 자들은 파키스탄의 신자들입니다. 한 신자는 익명으로 앞으로 전쟁이 일어난다면 종교 전쟁이 될 것이라고 하였습니다. 헌팅톤 책의 마지막 글에 다음과  같은 말이 나옵니다.

 

전 세계적으로 보건대, 문명은 여러 방면에서 야만성(barbarism)에 그 지위를 양보하고 있다. 그래서 유례없는 국제적 암흑기가 찾아와 인류애도 점차 약해질 것이다.

영국의 선교학자 안드류 커크는 두 문명의 화해를 제창한다.

 

무슬림 역시 자신들이 다원화된 사회의 일원임을 인식할 필요가 있다. 그들은 자신의 신앙에 대한 확신도 높고 이를 현실에 엄격히 적용하려고 하지만, 타 종교인들 역시 자신들과 같은 권리가 있음을 인정해야 한다. 만약 서로 다른 종교인들끼리 충돌한다면 논쟁은 끝이 없을뿐더러 때로는 분쟁으로까지 이어진다. 특히 무슬림들은 타 종교에 대해 호전적 자세를 취함으로써 자신들에 대한 적대감을 자초하는 경우가 많다. 신념이 강한 사람일수록 다른 사람들과 어울려 화목하게 살기 힘든 법이다. 그러나 성숙한 종교라면 자신에게는 조금 불편하더라도 타인 역시 자신들과 동일한 자유를 누릴 수 있음을 인정하여 그 생명을 지속적으로 유지할 것이다.

 

반면 기독교인들은 서구사회에서 그 사명을 다하고자 다양한 지적 욕구와 일관적인 도덕성으로 예수, 곧 메시아의 증인이 되라는 메시지를 새로운 맥락에서 전달하고자 한다. 이를 위해 그들은 이미 모두에게 익숙한 선지자의 의미를 다시 되새겨보아야 한다. 선지자의 사명은 시대의 징표를 읽어 피조물에 대한 하나님의 구원의 메시지를 무시한 대가가 얼마나 크며 그 우리 모두를 사랑하는 그의 헌신적인 사랑을 전달하는 것이다.

 

일부 기독교인들은 선지자의 임무가 사회 및 정치적 측면에만 국한된다고 해석하기도 한다. 그러므로 선지자의 사명은 사회에서 무시 받는 약자 및 외부인들을 위한 정책, 프로그램, 그들을 위한 형평성을 변호하는 것이라 한다. 물론 그 주장은 옳고 선하지만, 성경의 선지자는 여러 측면을 포괄하는 개념이다. 그 사명을 다하기 위해서 선지자는 사회를 심장부까지 깊이 이해하여 그 정서를 정확히 이해해야 한다. 이는 사람들과 함께 하면서 사람들이 믿고 행동하는 기준이 무엇이고 그들이 무엇을 가장 소중히 여기는지 깨닫는 것이다 (Andrew Kirk, The Conflicts in Civilization의 결론부분).

 

다음회 이슬람 뉴스에는 1025,26일에 서울에서 열리는 세미나 강의 내용 일부를 소개하겠습니다.

이슬람네트워크

2012926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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