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성희찬 목사 마산제일교회 담임 코닷연구위원
62총회는 교회 직분과 관련하여 헌법이 규정하지 않은 명칭 (/사역장로, 치리장로) 사용의 금지와 명예직분 (/명예권사, 명예집사)을 금하는 기존 헌법을 엄격히 준수할 것을 결정하였다. 구체적인 조처도 나왔는데, 명예직을 세우는 임직 광고 및 기사를 교단 언론지 기독교보가 아예 싣지 못하도록 하였다. 위 결정의 배경과 전망에 대해 생각해보고자 한다.

 

1. 위 결정은 부산노회가 발의한 다음의 안건에서 비롯되었다

1) 적법하지 않은 직분명 사용에 대한 지도청원: 헌법 교회정치 제6장은 장로에 대하여 장로(시무), 휴무장로, 무임장로, 은퇴장로, 원로장로로 구분하여 설명하고 있으며 헌법 그 어디에도 장로에 대한 다른 명칭이 없습니다. 그러나 최근에 여러 교회들이 사역장로, 치리장로 등의 명칭을 사용함으로써 교회와 성도들에게 혼란을 주고 있습니다. 따라서 총회가 헌법에 규정되지 않은 명칭을 각 교회가 사용하지 못하도록 지도하여 주시기 바랍니다.

 

2) 명예직에 대한 규제지도 청원: 헌법 교회정치 제4장 제36조는 집사와 권사의 명예직을 세울 수 없도록 규정하고 있습니다. 그러나 여러 교회들이 임의로 명예직을 세움으로써 헌법에 대한 권위를 무시하고 타 교회에 혼란을 주고 있습니다. 아울러 기독교보가 명예직 임직 광고와 기사를 계속 게재함으로써 이런 현상을 더 부추기고 있습니다. 이에 총회가 명예직을 세우는 교회에 대하여 강력하게 지도해 주시고 기독교보에 대하여도 적절한 조치를 취해 주시기 바랍니다.

 

2. 위 안건의 배경

1) 최근 사역장로, 치리장로, 목양장로 명칭이 일부 교회를 중심으로 확산되고 있다. 이러한 명칭의 등장은 장로의 본래 기능인 목양보다는 기타 사역에 치중한 현실에서 교회와 직분의 본질, 장로의 본질적 기능을 반성하고 이를 회복하고자 한데서 비롯된 것으로 보인다. 부산의 호산나교회 담임목사를 역임한 최홍준 목사의 저서, ‘장로, 걸림돌인가 디딤돌인가? (2009)에서 목양장로의 명칭 뿐 아니라 목양장로 사역의 배경과 실제적인 지침을 볼 수 있다. 최 목사는 목양장로의 사역이 장로 본질의 회복이라고 하였다. 한국교회의 제자훈련 영역과 특히 부산 지역교회에서 최홍준 목사가 가지는 영향력을 볼 때 그 파급의 여파를 짐작할 수 있다.

 

그러나 장로는 모두 목양장로요, 치리장로인데도 이를 구분하여 사용하므로 이 명칭은 교인들과 장로들에게 다소 혼란을 주게 되었고, 부산노회의 발의로 이번 총회는 심사숙고 끝에 헌법이 규정하는 명칭 외에 사용하지 못하도록 결정하였다.

 

둘째 명예직과 관련한 이번 총회의 결정은 보다 구체적인데 즉 교단지 기독교보가 이와 관련한 광고와 기사를 싣지 않도록 결정하였다. 이는 총회가 이미 여러 차례 명예직을 세울 수 없다는 것을 결의한 바가 있고 (32회 총회 1982; 56회 총회 2006), 2011년 개정 헌법 교회정치는 조문을 만들어서 이를 엄격히 금지한데서 한 걸음 더 구체적인 실행으로 나아간 결정으로 보인다:

 

“집사와 권사에 대한 명예직은 성경과 헌법정신에 의거 세울 수 없다” (교회정치 4:36)

 

총회의 결정과 헌법의 규정에도 불구하고 일선에서 교회들이 제대로 지키지 않는 것은 교회가 아직도 직분을 감투로 여기는 유교문화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기 때문이다. 이번 부산노회의 발의와 총회의 결정은 이러한 행태에 대해 교단지 기독교보가 관련 광고와 기사를 싣지 않게 하므로 이전과 달리 보다 구체적인 조치를 취했다는 것에 의미를 둘 수 있다.

 

3. 이번 총회의 결정이 교회와 교회생활에 무슨 의미가 있는가?

1) 장로의 본래 기능을 회복해야 한다.

총회와 각 교회는 이번 결정을 왜 이런 명칭-사역장로, 치리장로, 목양장로 등의 명칭이 나오게 되었는가를 근본적으로 반성하는 계기로 삼아야 한다. 단순히 명칭 사용을 금지하는 것에서 그치지 않고 이를 둘러싼 교회의 욕구와 소리에 주목해야 할 것이다.

 

장로의 기능 중 중요한 것은 치리/목양이다. 장로의 주 기능이 목양과 치리인 것 것은 교회정치가 규정하는 그대로이다(교회정치 6:66):

1. 목사와 협력하여 행정과 권징을 관리하는 일.

2. 교회의 영적 상태를 살피는 일.

3. 교인을 심방, 위로, 교훈하는 일.

4. 교인을 권면하는 일.

5. 교인들이 설교대로 신앙생활을 하는 여부를 살피는 일.

6. 언약의 자녀들을 양육하는 일.

7. 교인을 위해 기도하고 전도하는 일.

8. 목회에 필요한 제반사항을 목사에게 상의하고 알리는 일.

 

그런데 현실적으로 장로가 심방을 하고 위로, 교훈, 권면하는 일을 보는 것은 쉽지 않다. 또 당회의 직무는 어떠한가? 교회정치 10:121에서 규정하는 몇 가지 직무 중에서 목양과 관계된 것을 보면 다음과 같다: 교인의 신앙과 행위를 총찰, 제반 예배 주관, 학습 입교 및 세례 (유아세례포함)의 문답과 시행, 성찬예식의 주관, 교인의 이명 증서를 교부 및 접수와 제적, 소속기관과 단체, 부설기관 감독 지도 등이다. 당회가 얼마나 여기에 주력하고 있는가? 장로의 직무와 당회의 직무가 본질에 충실할 때 사역장로 목양장로 치리장로의 명칭 문제는 자연스럽게 해결될 것이다.

 

뿐만 아니라 차제에 우리가 흔히 사용하는 용어를 다시 한 번 검토하는 것도 좋으리라 생각된다. 예를 들어서 선임장로, 수장로의 명칭은 어떠한가? 이러한 명칭 역시 자칫 중세교회의 교계제도의 함정이 되지는 않을까?

 

2) 직분의 본질인 섬김과 봉사를 회복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개혁주의 직분관에서 모든 직분은 봉사 (헬라어, 디아코니아)이다. 모든 봉사가 직분은 아니지만 모든 직분은 봉사이다. 봉사가 아닌 직분은 있을 수 없다. 그리스도께서 직분자로서 봉사의 길을 걸었기 때문이다. 따라서 봉사가 아닌 명예를 위해 직분을 세우는 것은 성경과 개혁주의 신조에 상치하는 것이다. 왜 명예직분이 있을 수 없는지를 다시 한번 바른 직분관을 생각하는 기회가 되었으면 좋겠다.

 

3) 치리회의 결정에 신중하게 순복하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

명예직을 세우는 것과 관련하여 총회가 여러 차례 결정을 내렸으나 잘 지켜지지 않았다. 새 헌법은 아예 명문화를 하였다. 그런데도 여전히 잘 지켜지고 있지 않다. 사실 이는 심각한 문제가 아닐 수 없다. 따라서 전국교회는 이번 결정을 발판으로 삼아 성경과 신조와 교회헌법과 상충되지 않는 치리회의 결정에 대해 신중하게 순복하는 태도를 가지도록 해야 할 것이다. 장로회 정치에서 치리회의 권위는 아주 중요하다. 노회와 총회의 권위는 아랑곳하지 않고 자기 교회만 아는 교회 이기주의, 치리회의 권위에 순복하지 않는 회중주의식의 자세를 경계해야 한다.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31장 대회와 공의회는 다음과 같이 고백하고 있다:

 

...법령과 결정사항은 하나님의 말씀에 부합되는 한, 종경과 복종의 자세로 받아야 하는데, 이것들이 말씀과 합치되기 때문만이 아니라 그것들을 결정한 권세 연고로도 하나님의 규례 곧 말씀으로 그렇게 정한 규례로 받아야 한다”

 

따라서 치리회의 권위에 순종하는 것은 사랑으로 역사하는 믿음의 문제이다.

 

4) 기독교보는 교단의 언론지로서 교단의 신학과 신앙 노선을 같이 따라야 한다.

총회의 결정에도 불구하고 이를 비웃듯 명예직분을 세우는 각 교회 뿐 아니라 기독교보 역시 명예직을 세우는 임직 광고와 기사를 아무 생각이 없이 지금까지 실어왔다.

 

가끔 일간지에서 ‘본 광고는 본지와 편집방향과 아무런 관계가 없습니다’는 문구를 적힌 광고를 보면서 그래도 일반 신문이니까 하며 그냥 쉽게 지나쳤었다. 영업국과 편집국이 별도로 운영되기 때문이려니 또 경제적 이윤을 추구하는 곳이려니 생각하고 넘어갈 수 있었다.

 

그런데 기독교보에 실린 위의 광고와 기사를 보노라면, 도대체 기독교보가 고신교회의 신문인지 그 정체성이 의심스러웠다. 기독교보의 광고와 기사는 고신교회의 신학과 신앙, 교회정치와 분리될 수 없다. 총회의 부속기관이며, 교회의 기도와 후원으로 운영되며 함께 그리스도의 교회를 세워가야 할 기독교보가 가야 할 방향을 잃었다고 판단한 적이 한 두 번이 아니다. 이번 기회에 기독교보는 총회의 기관으로서 총회의 신학적 정체성과 신앙노선을 더욱 충실히 따라주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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