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Christmas, Epiphany, and Advent in the East and the West)

이 글은 한국교회와 역사 (5: 2011 여름호, pp. 82-114; 6: 2012 가을호, pp. 63-75), 한국교회와 역사연구소 (소장: 이상규)에 기고된 논문임을 밝힙니다.(필자 주)

 

들어가는 말 (Introduction)

교회력의 생성 및 발전 과정은 전통과 지역, 그리고 시기에 따라서 차이점들을 가지고 있었다. 하지만 다음과 같은 형태로 정돈되어 현재 자리잡게 되었다. 교회력은 두 개의 사이클 (two worship cycles)로 형성되어 있다. 부활절 사이클과 성탄절 사이클이다. 이 두 사이클을 교회력의 쌍둥이라고 부를 수 있다. 부활절 사이클은 사순절, 부활절, 성령강림절의 세 개의 절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성탄절 사이클은 대강절, 성탄절, 주현절의 세 개의 절기들로 구성되어 있다. 각 사이클은 한 개의 준비의 절기와 두 개의 축제의 절기들로 구성된다. 여기서 준비의 절기는 축제의 절기를 준비한다는 의미를 갖는다. 부활절 사이클에서 준비의 절기는 사순절이며, 부활절 사이클에서 축제의 절기는 부활절과 성령강림절이다. 부활절 사이클에서 축제를 시작하는 절기는 부활절이며, 그 축제는 성령강림절로 끝맺는다. 그리고 성탄절 사이클에서 준비의 절기는 대강절이며, 성탄절 사이클에서 축제의 절기는 성탄절과 주현절이다. 성탄절 사이클에서는 성탄절로 축제가 시작되어 주현절로 그 축제를 마무리한다.

 

요컨데, 교회력의 두 사이클은 각각 준비의 절기 (A Preparatory Season)와 축제의 절기 (Festival Seasons)로 구성된다. 교회력은 준비하여 예배를 통해서 축제를 누리는, 준비와 축제의 연속적 체계이다. 아래 < 1>은 그리스도 중심의 예배력 (교회력)의 두 사이클을 보여준다. 이것은 성탄절 사이클과 부활절 사이클로 구성되어 있다. 각각의 사이클은 준비와 축제의 의미를 담고 있는 세 개의 절기들로 연결된다.

 

< 1> 그리스도 중심의 예배력 (교회력)의 두 사이클 


그리고 아래의 < 2>는 그리스도 중심의 6대 절기들이 연속성 (continuity)과 불연속성(discontinuity)을 이루고 있음을 함께 보여준다. 불연속성이라 함은 성탄절 사이클과 부활절 사이클이 상호 구분되어 있다는 것을 의미하며, 연속성이라 함은 이 두 사이클 안에 있는 6대 절기들이 상호 연결되어 계속적으로 이어지면서 지키는 절기들의 체계라는 것을 의미한다. 


 

그리고 아래의 < 3>은 그리스도 중심의 6대 절기들이 연속성을 이루고 있음을 도형화된 형태로 보여준다. ‘대강절에서 성령강림절까지’ 6대 절기가 마쳐지면, 대략 반년이 경과한다. 이 교회력의 체계는 한 해의 교회력의 시작이 대강절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그리고 성령강림절은 그리스도 중심의 6대 절기들 중에 마지막 절기이다. 성령강림절과 다음 해의 대강절까지 약 반년이 남게 된다. 이 기간은 성장을 위한 평상시’ (Ordinary Time of Growth)이기에 평상절혹은 성장절이라고 불려진다. 그리고 이 절기에 사용하는 교회력의 색깔이 녹색을 사용하기 때문에 녹색절’ (the Green Season) 이라고도 부른다. 그리고 하나님 나라가 확장되는 기간으로 삼는다는 의미에서 왕국절이라고도 부른다. 하지만 성장절 (혹은 평상절, 녹색절, 왕국절)은 교회력의 정식 절기명 (a formal liturgical season name)은 아니다.

< 3> 그리스도 중심의 연속적 6대 교회력 절기 (Christo-centric Worship Cycle)


 

교회는 이들 연속적 절기들을 따라서, 그리스도의 구속 사역을 기억’ (anamnesis)하며, ‘기대’ (prolepsis)하는 방식 안에서 현재적으로 예배를 통해서 누린다. 이것을 위한 기초적 절기체계가 바로 교회력 또는 예배력이다. 앞서 언급한대로, 교회력은 두 개의 사이클로 구성되어 있다. 성탄절 사이클과 부활절 사이클이다. 성탄절 사이클은 대강절-성탄절-주현절로 구성되어 있으며, 부활절 사이클은 사순절-부활절-성령강림절로 구성되어 있다.

교회력의 이 두 사이클 가운데, 본고에서 필자는 연구의 범위와 촛점을 교회력의 성탄절 사이클의 절기들에 두고자 한다. 특히 성탄절 사이클 안에 있는 절기들의 기원과 발전과정이 동방교회와 서방교회 안에서 어떻게 전개되어왔으며, 현재의 교회력에 어떤 영향을 주게 되었는지를 고찰하고자 한다.

 

1. 성탄절과 주현절의 발현 (發現)과 그 동기들

교회력이 일정한 내용과 형태를 갖추기 전의 초기교회는 주간 예배 사이클이면서, 동시에 연간 예배 사이클인 주님의 부활 (the weekly and annual Pascha)의 날인 주의 날’ (the day of Kyrios Christ)만을 그들의 예배력으로 가졌었다.[1] 주간 주의 날’ (the weekly Lord’s Day)은 주일 (Sunday)이었고 연간 주의 날’ (the annual Lord’s Day)은 부활절 (Easter)이었다. 이런 점에서, 부활절 사이클과 성탄절 사이클로 구성된 두 쌍둥이예배력 사이클 가운데서, 태생적으로 부활절 사이클이 교회력의 장자’ (長子)라고 볼 수 있다.

그리고 나서 4세기경에 와서, 주님의 임하심 (the Lord’s Coming)의 장엄함 (the solemnity)에 대한 교회적 인식이 그리스도의 도래에 대한 예배적 의식’ (liturgical rite)을 출현하도록 만들었다.[2] 즉 이 말은 성탄절 사이클의 절기들이 태동하게 되었다는 것을 의미한다. 부활절 사이클이 생긴 지, 2세기의 간격을 두고서 성탄절 사이클이 생겼다. 이런 점에서 성탄절 사이클은 교회력의 차자’ (次子)라고 할 수 있다.

이 두 예배 사이클 중에 성탄절 사이클 안에 있는 절기들을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라고 부른다. 그리스도의 도래에 대한 절기가 시작된 그 시초적인 의도와 목적은 당연히 그리스도의 도래 (The Lord’s Coming)를 예배를 통해 기념하는 것을 내포하고 있었다. 하지만 그 절기의 날짜와 이방종교문화적인 축제의 날짜와의 겹침 현상[3] 및 교회에 의한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에 대한 수용에 있어서 당시의 몇 가지 의도적인 동기 (intentional motives)들이 나타나고 있음을 알 수 있다.

첫째는 정치적 동기 (political motive)가 투여되어 있다고 할 수 있다. 왜냐하면 이것은 태양의 생일에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공적으로 제정한 콘스탄틴 황제 (Flavius Valerius Aurelius Constantinus (c. 27 February 272 – 22 May 337)의 혼합주의와 관련이 있다:

In addition, the institution of a feast celebrating Christ’s birth on the very Birthday of the Unconquered Sun fit Constantine’s great syncretistic vision. An emperor who in 321 had decreed a holiday for the first day of the week (day of the Sun and day of the Lord) could only approve of the followers of the two cults being brought together for an annual celebration of the same day.[4]

321년에 그 주간의 첫째 날 (the day of the Sun and day of the Lord)을 한 주간의 공휴일로 제정했었던 황제는, 두 그룹의 종교 추종자들에게 동일한 날 (12 25)을 그들 모두를 위한 연간 축제날로 또한 제정하는 그의 혼합주의적 행태 (行態)는 양측을 고려하는 그의 정치적 동기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는 변증적 동기 (apologetic motive)를 반영하고 있다. 로마에서 12 25일에 지켜졌고 이집트에서 1 6일에 축제로 지킨 이방인의 동지 (the winter solstice)[5] 축제일에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를 지킨 것은 그들의 축제일들 (the feasts)을 상쇄시키는 (a counterbalance) 효과를 가졌다.[6]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들로서 성탄절 (12 25)과 주현절 (16)을 지킴에 있어서 이방종교문화 안에 있는 피조 된 (그러나 그들에게 신격화된) 그 태양 (the created sun)이 창조주 그리스도의 태양 (Christ the Creator, the Sun)으로 대치되었다. 이것은 이방종교문화에 대항한, 교회에 의한 변증적인’ (apologetic) 태도라고 할 수 있다. 정치적 동기와 변증적 동기 중 어느 것이 더 주도적인 것이었는지를 확인하는 것은 난해할지라도, 로마제국의 당국자의 그 정치적 동기는 교회의 외적인 동기이며, 교회에 의한 그 변증적 동기는 교회의 내적 동기라는 사실에는 의심의 여지가 없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가 생성될 때, 이방종교문화에 대한 대안적인 (alternative) 방식 안에서 변증적인 의도와 목적이, 교회가 지닌 그 시초적 동기 안에 포함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는 점차 신학적으로 더욱 뚜렷한 의도와 명분으로 강화되게 된다. 이방종교문화 안에 있는 태양 (the sun)에 대하여 (against) 그리스도를 비유한 태양 (Christ the Sun)을 언급한 성경적 표현에 의존하여 신학화’ (theologicalization) 내지는 성경화’ (biblicalization)하는 작업이 교회/교부들에 의해 시도된다. 이런 시도 안에서,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에서 그리스도는 의의 태양’ ( 4:2)이시며, ‘세상의 빛’ ( 8:12)으로 오셨다는 것을 강조한다. 이런 신학적 노력은 교회로 하여금 그리스도 도래의 절기에 대한 날짜와 그 내용 자체를 속도감 (速度感) 있게, 자연스럽게 수용하는 분위기를 형성했을 것이다. 이로 인해 교회는 이방종교문화에 대한 변증적 우위 (優位)를 점할 수 있었을 것이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는 교회사적 동기 (ecclesiological motive) 내지는 신학적 동기 (theological motive)를 내포한다. 그리스도의 출생 및 현현 (Natale, birthday)의 메시아의 도래의 절기 자체가 교회에 의해 더 열렬하게 수용된 또 다른 이유가 있었는데, 이것이 다른 어떤 이유들보다도 더 중요하고 주된 이유였다고 볼 수 있다. 그것은 바로 당시의 교회가 처한 역사적 정황과 무관하지 않다. 어떤 교회사적 상황을 말하는가? 그것은 4세기경에 아리우스 (Arius, ca. AD 250-336)가 주창한 기독론에 대한 신학적 이슈와 관련되어있었다.

아리우스가 주창한 기독론이 아리안주의’ (Arianism)이다. 좀더 자세히 설명하면, 아리안주의 (Arianism)는 이집트의 알렉산드리아 출신의 장로인 아리우스가 삼위일체론적 기독론 (Trinitarian Christology)을 거부하는 그의 신학적 가르침을 의미한다. 그에 따르면, 성자는 창조되었으며, 그리고 그리스도가 창조되기 전에는 성자 그리스도는 존재하지 않았다고 본다. 즉 그리스도의 신성과 영원성을 부인한다. 결국 아리우스는 요한복음 14:28절에 아버지는 나보다 크심이라는 구절의 말씀에 근거하여 성자를 성부보다 열등한 존재로 보았다. 그래서 325년 니케아 공의회 (the First Council of Nicaea, 325)는 아리우스를 이단으로 정죄하였고 삼위일체의 교리를 확언하는 니케아 신경 (Symbolum Nicaenum; Nicene Creed of 325)으로 결실을 맺게 되었다. 후에 아리우스는 335 (the First Synod of Tyre)에 그 정죄로부터 면죄되었다가 그의 죽음 후에 다시 381년 콘스탄티노플회의 (the First Council of Constantinople, 381)에서 다시 이단으로 정죄되었다.[7]

이러한 아리안 논쟁의 역사적 정황 안에서,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가 적극적으로 환영을 받은 주된 이유들 중에 하나는 영원한 신성을 가지신 그리스도께서 현현하셨다는 것을 기념하는 절기들이 바로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들이었기 때문이다. 즉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들은, 아리안 이단 (the Arian heresy)을 반대 하기 위한 니케아 교리 (the dogma of Nicaea)를 주창하는 방식을 취하였기 때문이다.[8] 그리스도의 현현의 절기를 환영하는 당시 교회의 기독론적 이해는 삼위일체론적 기독론 이라고 할 수 있다. 하나님께서 성육신을 통해서 메시아로 오신 예수 그리스도의 도래를 창조주에 의한 피조의 과정으로 이해하며, 주장하는 아리안 이단에 대항하여, 당시 교회는 성부 하나님과 성육신 하신 성자 예수 그리스도 사이 (그리고 성령 하나님)에서 그 신성과 위격에 있어서 동일하다는 인식 안에서 그리스도의 도래를 이해했다. 우리는 이것으로부터, 이러한 삼위일체론적 기독론이 바로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를 지키고자 하는 당시 교회의 신학적 의도였다는 것을 엿볼 수 있게 된다.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는 바로 이러한 정통 기독론적 신학을 실천적으로 예배학적인 의식을 통해서 구현했을 뿐만 아니라, 그것을 결국 교회 공동체 안에 깊이 자리매김하도록 하여 예배학적 전통을 형성하게 되었다.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로서 성탄절 사이클 안에 있는 대강절 (Advent), 성탄절 (Christmas), 주현절 (Epiphany)은 위에서 언급된 세 가지 동기들과 함께 발현 (發現) 되게 되었다. 시간적으로 성탄절과 주현절이 먼저 생성되었으며, 그 후에 대강절의 절기가 생성되었다.[9] 그러나 이들 절기들의 발현의 순서와 달리, 이 세 절기들의 지킴의 순서는 대강절, 성탄절, 주현절의 순서대로 진행된다. 음식으로 따지면,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들 중에서 성탄절과 주현절이라는 주된 음식’ (main dish)이 먼저 만들어졌고 그 후에,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의 준비의 절기로서 대강절이라는 주변 음식’ (side dish)이 나중에 만들어진 셈이다.

 

(1) 소결 (小結, Sub-conclusion)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들은 그리스도의 도래의 장엄함을 인식한 교회가 그리스도의 도래를 예배학적 의식을 통해 기념하는 것이다. 그러나 그 날을 12 25 (1 6)에 정한 것은 그리스도의 탄생일 자체가 12 25/1 6일이라는 독자적 기원에 대한 논의도 필요하겠지만, 표면상 3가지 주된 동기들이 작용했다고 할 수 있다.

첫째는, 정치적 동기이다 (political motive). 이것은 태양의 생일에 그리스도의 탄생일을 공적으로 제정했는데, 이것은 콘스탄틴 황제의 혼합주의와 관련이 있다. 321년에 그 주간의 첫째 날 (the day of the Sun and day of the Lord)을 공휴일로 제정했었던 황제는 두 그룹의 종교인들 모두에게 동일한 날 (12 25)을 연간 축제날로 제공하는 그의 혼합주의적 행태는 그의 정치적 동기의 반영이라고 할 수 있다.

둘째는 변증적 동기이다 (apologetic motive)이다. 이것은 태양신을 숭배하는 당시의 태양의 생일인 12 25일에 대한 대안적 동기 (alternative motive)이다. 이것은 이방 종교문화에 대한 변증적인 방식이다. 그리고 피조물로서 태양’ (the created sun)그리스도의 태양’ (Christ the Sun)으로 대치하는 방식 안에서 신학적 명분과, 성경화 작업을 통해 이방의 동지 축제일들을 상쇄시켜서 변증적 우위를 점하는 결과를 가졌왔다고 할 수 있다.

그리고 셋째는 교회사적 동기 (ecclesiological motive) 또는 신학적 동기 (theological motive)이다. 이것은 아리안논쟁과 관련이 있다. 정통 삼위일체론적 기독론을 반대하는 아리안 이단들에 대한 정통교회의 기독론을 옹호하는 방식 안에서 그리스도의 도래의 의미를 예배학적으로, 실천적으로 구현했다고 할 수 있다. 이러한 동기는 전술 (前述)한 정치적 동기와 변증적 동기에서처럼, 절기의 날짜에 대한 것이라기 보다는, 교회에 의한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 수용과 관련된 동기라고 할 수 있다.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들은 이방종교문화적 전통 안에서 정치적 동기, 변증적 동기, 그리고 교회사적 동기 내지는 신학적 동기를 가지고 시작되었다. 이 동기들과 함께 시작된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들은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에서 각각 어떤 방식으로 발전과정을 겪게 되었는지는 다음 이어지는 섹션에서 논할 것이다.

 

2. 동지 (the Winter Solstice)에 지킨 그리스도의 도래의 두 절기: 성탄절과 주현절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는 현대 예배력 시스템 안에 있는 성탄절 사이클 안에 있는 세 절기들을 가리킨다. 즉 준비의 절기인 대강절 (Advent)과 첫 번째 축제의 절기인 성탄절 (Christmas), 그리고 성탄절 사이클을 닫는 마지막 축제의 절기인 주현절 (Epiphany)이다.

 

(1) 성탄절 (Christmas): 서방교회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인 성탄절의 절기는 서방교회에서 기원된 절기이다. 이 전통이 서방교회에서 발원되어 서방교회 안에서 어떤 발전을 겪었으며, 그리고 동방교회로 언제 어떻게 전래되어서 발전되었는지 살피고자 한다.

 

a) 기원

성탄절은 “Chronographer of 354”[10]에 최초로 언급된다.[11] 이 시민력 (the civil calendar)의 편찬자인 Furius Dinysius Filocalus12 25일이 N(atalis) Invicti” (“Birthday of the Unconquered [Sun]”)로 여기고 있으며, 이것을 순교자들의 기념일 (Depositio martyrum)의 명단 (lists)을 시작하는 부분에서 먼저 언급한다. 그리고 나서 그는 “12 25일이 그리스도가 유대 베들레헴에서 출생한 날” (VIII Kal. Ianuarii natus Christus in Bethleem Iudeae ; “8th day before the calends of January, December 25; Christ was born in Bethlehem of Judea”)이라고 언급한다.[12] ‘Chronography of 354’에 언급된 이 리스트의 연도에 대한 상호관계를 연구한 결과, Thomas J. Talley 336년부터 로마에서 그리스도의 탄생일로서, 12 25일이 교회력의 시작에 흔적을 남겼다는 결과를 도출한다: “From 336, then, we may say that at Rome the nativity of Christ on December 25 marked the beginning of the liturgical year.”[13] 336년부터 로마에서 12 25일이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들 중의 하나로서 성탄절이 교회력 안으로 들어와 지켜졌다는 것이다. 하지만 실제로는 성탄절이 336년 이전에 이미 지켜졌을 가능성은 여전히 남아있다.[14]

그런데 성탄절로 지킨 날짜 12 25일은 Natalis solis invicti (“the birthday of the sun”)로서, 그 태양의 생일은 이미 274년에 확정되어 있었다.[15] 이것은 로마에서 성탄절을 그리스도인이 지킨 첫 번째 증거[16]‘the Chronograph of 354’ 보다 62년 앞선 것이다.

12 25일 성탄절에 대한 그 후속적인 문헌적 증거 자료는 없는가? 로마에 있는 교회에서 3세기의 가장 중요한 신학자인Hippolytus of Rome (c 170 – c 236) 3 25 (Nisan 14; 46 in the Asian recension of the Julian solar calendar)을 그리스도의 수난의 실제적인 날로 취하면서, Hippolytus의 다니엘 주석 (Commentary on Daniel 4.23)에서 그리스도의 탄생이 12 25일 수요일에 일어났다고 언급한다.[17] Hyppolytus의 연구는 이교도의 태양의 생일에 성탄절을 삽입한 것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출생일 자체가 원래 12 25일이라는 주장이다. 만약 Hyppolytus의 주장이 사실이라면, 두 날짜의 겹침 현상은 우연의 일치이며, 이 날짜의 겹침이라는 사실 (fact)의 터 위에서, 앞서 언급한 그러한 정치적, 변증적, 신학적 동기가 나타났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하지만 Thomas J. Talley 12 25일이 그리스도의 탄생의 축제일의 기원을 설명하는데 있어서Hoppolytus의 다니엘 주석이 의존할 만한 근거가 약하다고 논평한다.[18]

그리고 나서 Talley는 비교적 유용한 설명을 곁들인다. 1936년에 Gottfried Brunner에 의해 인용되었으며, 그리고 Hans LietzmannHistory of the Early Church에 반복적으로 인용되어 나타난 한 사실을 Talley는 지적한다.[19] Brunner Lietzmann은 어거스틴이 주현절에 했던 한 설교 (Sermon 202)를 인용하는데, 어거스틴의 주현절의 그 설교에 의하면, 교회의 연합을 혐오하는 도나투스 이단 (the Donatists)우리와 함께” (“with us”) 주현절 (the feast of the Epiphany)의 절기를 지키지 않는다는 사실을 언급했다는 것에 Brunner Lietzmann은 주목했다:

With good reason have the heretical Donatists never wished to celebrate this day with us: they neither love unity, nor are they in communion with the Eastern Church where that star appeared. Let us, however, celebrate the Manifestation of our Lord and Savior Jesus Christ on which He harvested the first fruits of the Gentiles, in the unity of the Gentiles.[20]

 

어거스틴의 이 설교는, 주현절의 내용에 대한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의 전통이 상이한 불확실성 안에 있는, 그 주현절의 절기가 동방박사들의 방문 (the visit of the Magi)을 기념하고 축하했다 (서방교회)는 사실을 우리에게 명확하게 확인시켜 준다. 그러나 어거스틴은 이 설교에서도 그리고 다른 어느 곳에서도,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들의 핵심 내용이라고 할 수 있는 예수님의 탄생 그 자체의 중요성을 인식하는 당시의 특별한 환경에서 성탄절에 관하여는 도나투스 이단들 (the Donatists)에 반대하는, 이와 유사한 어떠한 주장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21] 로마에서처럼, 북 아프리카에서 성탄절은 주현절 전에 제정된 것이 확실한 것 같기 때문에, 도나투스 이단들 (the Donatists)은 성탄절을 지켰다는 강한 의미를 암시한다. 그러한 경우에, 성탄절 축제는 the Donantist schism (311) 보다 시기적으로 앞서야만 한다. 그래서 성탄절의 제정의 날자는 311년보다 더 이른 시기일 것이다. 사실 성탄절이300년보다 더 일찍부터 지켜졌다고 생각하는 자들도 있다.[22] 어쨌든 동방교회 기원을 가지는 주현절의 서방 전래의 시간적 싯점보다 서방교회 기원을 가지는 성탄절이 서방교회 내에서는 역사적으로 더 오래 되었고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로서 먼저 형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서방교회에서의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의 발현 순서는 결국 성탄절, 주현절, 대강절의 순서라고 할 수 있다.

 

b) 서방교회에서 성탄절의 발전

서방교회에서 시작된 성탄절이 서방교회 내에서 예배학적으로 어떤 방식으로 발전과정을 거치면서 전개 되었는지 여기서 살펴보고자 한다. 서방교회에서 성탄절을 지킴에 있어서 어떤 특징들이 있는가? 우리는 이 섹션에서 서방교회의 성탄절에 대한 세 가지 특징을 나열하고자 한다.

첫째는, 성탄절 미사 (The Christmas Masses)에 있다. 서방교회에서 성탄절의 축제는 4가지 미사 (Mass)가 행해졌다는 특징을 갖는다.[23] 그레고리 황제/교황 (Gregory the Great, c. 540 – 12 March 604)은 그리스도의 탄생에 대한 설교를 다음과 같이 시작한다: “The Lord in his generosity allows us to celebrate Mass three times on this day.”[24] 그레고리의 설교로부터 우리는 서방교회에서 성탄절에 행해진 예배는 Mass in the night, Mass at dawn, and Mass during the day, 이 세 가지 미사가 있었다는 것에 대한 정보를 얻는다. 이것은 서방교회에서 성탄절에 집례된 3가지 예배가 존재했다는 최초의 증언이다.[25] 이 세가지 미사들은 12 24일의 성탄절 전야제인the vigil Mass을 포함하여 총4가지 형태의 성탄절 미사가 있었다는 것을 보여준다. 특히 이 성탄절에 행해진 이 세 가지 성탄절 미사가 전 서방교회에 받아들여져서 서방교회의 성탄절 예배의 전통을 형성하여 오늘에까지 이르고 있다.

서방교회의 성탄절 예배에서 절정은 무엇보다도 the daytime Mass에서 요한복음 1:14말씀이 육신이 되어 우리 가운데 거하시매 우리가 그의 영광을 보니 아버지의 독생자의 영광이요 은혜와 진리가 충만하더라는 본문을 읽는 것이다. 이것은 성탄절의 예배의 내용의 초점이다.

둘째는, ‘옥타브 데이’ (Octave day)이다. 이것은 성탄절을 얼마 동안 지켰는가에 대한 이슈이다. 서방교회의 기원을 갖는 성탄절을 얼마 동안 지켰는가? 성탄일 (Christmas Day) 12 25일 하루만을 의미하지만, 성탄절 (Christmas Season)은 일정기간의 절기를 나타내는 개념이다. 성탄절을 지키는 기간에 대한 핵심 개념이 성탄절 옥타브’ (The Octave of Christmas)[26]의 개념이다. 성탄절 옥타브가 성탄절 축제를 지키는 기간 (12 25~1 1일까지 8일간)을 보여주는데, 사실은7세기까지 부활절의 절기만 8일간 (The Octave of Easter) 계속되는 축제의 지위와 특권을 누렸었다. 부활절 옥타브는 부활주일 다음 주일을 의미하며, 부활절 절기를 지키는 기간을 의미하게 된다. 마침내 서방교회에서 성탄절의 절기의 기간으로서, 성탄절에 옥타브 데이 (an octave day)를 부여하였다.[27] 12 25일 성탄절로부터 8일째가 되는 날 (an octave day)1 1일인데, 이 날이 서방교회에서 성모 마리아를 기념하는 날로 지켜졌다가, 후에 예수님의 할례의 날을 기념하는 날이 되었다.[28] 성탄절 절기 후에 마지막 8일째가 되는 1 1일을 옥타브 데이로 설정되었다는 의미는 결국 성탄절이 8일 동안 지키는 절기가 되었다는 의미와 다르지 않다. 이 경우 옥타브 데이는 성탄절의 마지막 일 수도 있고 성탄절 절기의 기간을 의미하는 것이라고도 할 수 있다. 어쨌든 옥타브 데이의 개념은 성탄절의 절기를 지키는 절기의 기간의 범위를 보여준다고 할 수 있다. 그래서 성탄절 옥타브는 그 절기를 닫는 마지막 날이라는 개념이 더 크다.

그리고 마지막 세 번째의 특징은 ”the Crèche”이다. 이 용어는 마구간과 말구유와 같은 예수님의 탄생을 묘사하는 상징들 (“a group of figures arranged to represent the birth of Jesus Christ”) 가리키는 용어인데, 그 문자적 의미는 구유’ (manger)를 의미하는 불어 (French) 용어로서, 서방에서 성탄절 축제를 시각적으로 가장 잘 보여주는 특징이라고 할 수 있다. 최초의 Crèche는 베들레헴에 있는 것이었다. 그리스도인의 초기 세대들은 그 장소를 그들의 성탄절 축제에서 잊을 수 없었다. Origen 281년에 다음과 같이 말한다: “at Bethlehem they point out the cave in which Jesus was born and, in the cave, the manger in which he lay swaddled.”[29] 이것은 말씀이 육신되어 오신 하나님의 성육신의 공간적 배경에 대한 부분이다. 그리고 Jerome은 다음과 같이 말한다:

It (gold or silver) is far less precious to me than the one (clay) they removed; I do not condemn those who thought to pay homage in this manner, but my wonder is at the Lord, the creator of the world, who willed to be born not in silver or gold but in clay.[30]

 

이것은 제롬 당시에 진흙으로 만든 구유 대신에, 금 또는 은으로 만든 것으로 대체 한 것에 대한 제롬의 비평적 언급이다. 성탄절의 주인 되신 그리스도의 낮아지심을 보여주는 요소들 가운데 가장 핵심적인 상징으로서, the Crèche의 오리지널 형태가 인간적 생각으로 조작될 필요가 없다는 것이 제롬의 포인트라고 할 수 있다.

 

c) 성탄절의 동방교회로 전래와 발전

동방 (the East)에서 45년을 보냈고, 이 가운데 24년은 베들레헴에서 보냈던 Jerome (d. 420)은 예수님의 세례 사건이 주현절의 주된 내용이었다고 말하면서 (Comm. in Ezek. 1.1; PL 25.17), 그의 죽음 때까지 성탄절이 동방 (the East)에 소개되었다고 언급한다. 그리고 386년까지에는 안디옥 (Antioch) (Chrysostom, in diem natalem, PG 49.351) 전래되었으며, 370년까지는 갑바도기아 (Cappadocia) (Gregory of Nyssa, in diem luminum, ed. Jaeger, 9.221)에 전래되었고, 그리고 380년까지 콘스탄티노플 (Constantinople) (Gregory Naz., Orat. 38)에 소개되었다.[31] 이것은 서방교회의 성탄절이 동방으로의 전래에 대한 역사적 사실을 잘 보여준다.

서방교회의 기원을 갖는 성탄절은 서방 자체 내에서도 발전과정을 겪는 과정을 겪으면서 동방교회에 전래되어 서방과 연속성을 가지면서도 동방의 독특한 환경과 지역적 전통을 이루면서 차별적으로 발전되어갔다. 특히 이 절기를 지키는 날짜가 좋은 예가 될 것이다.

The older Julian Calendar12 25일은 더 폭넓게 사용되는 Gregorian Calendar 1 7일에 일치한다. 20세기에 와서 동방교회는 the Revised Julian Calendar를 사용하는데, 이것은 정확하게 the Gregorian Calendar와 일치한다. 동방교회는 현재 서방교회와 같은 날 (12 25)에 성탄절을 지킨다. 그러나The Armenian Apostolic Church 1 6일 주현절과 함께 지킨다. Armenian churches 관습적으로the Gregorian calendar를 사용했기 때문이다. 그러나 일부는 the Julian calendar를 여전히 사용하고 있으며, Christmas Day 1 19일에 지키는 일부 동방교회도 있다.[32]

 

(2) 주현절 (Epiphany): 동방교회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인 성탄절이 서방교회에서 발원된 것과 달리, 또 다른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인 주현절은 동방교회의 기원을 갖는다. 언제 어떻게 동방교회에서 주현절이 시작되어 전통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는지, 그리고 이 동방 기원의 주현절이 어떻게 서방으로 전래되었고 발전되었는지를 여기서 논하고자 한다.

 

a) 기원

이집트와 아라비아에서 1 6일은 동지의 축제들 (the feasts of the winter solstice)이었다. 여기서 승리의 태양’ (the triumphant Sun)에게 바쳐진 경의는 아주 오랜 고대의 신화적 행위였다.

그런데120-140년경, 영지주의자들의 한 분파는 이집트와 아라비아의 동지 축제날이었던 1 6일이 그리스도의 세례 사건이 일어난 날짜라고 주장한다. 그래서 이들은 이 날에 그리스도의 세례 사건을 기념했다. 이들에 따르면, 그리스도께서 세례 요한에게 요단강에서 세례 받던 때가 역사적으로 로마의 티베리우스 황제의 통치 제15년에 T[o]bi[33] 15일 또는 11일에 발생했다고 본다. 이 날은 현재 월력으로 1 10일 또는 6일에 해당한다. 그들은 이 날을 주현절로 지켰으며, 그 내용은 주님의 세례 사건이다. 알렉산드리아의 클레멘트 (Clement of Alexandria, d. 215)는 우리에게 다음과 같은 정보를 제공해준다:

The followers of Basilides[34] also celebrate the day of the baptism of Jesus and spend the entire preceding night in [Scripture] reading. According to them the baptism took place in the fifteenth year of the reign of Tiberius and on the fifteenth—or, according to others, the eleventh—day of the month Tubi [=January 10 or 6].[35]

 

여기서 이들은 주현절을 지키기 위해, 전야 (the vigil)를 철야하며 성경을 읽었다. 이것은 주현절을 지키기 위한 일종의 준비의 기간과 내용이 있었다는 것을 보여주는 대목이다. 일종의 대강절로서 준비의 개념이다.

그리고 우리는 또 다른 자료를 통해서 이들이 그리스도의 세례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인 주현절을 어떤 방식으로 지켰는 지에 대한 추가적 정보를 얻게 된다. 베니스 사본 (The Venice MS)에 따르면, Basilideans은 주현절 전야를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한 이교도 성전에서 노래와 플룻 연주를 통해 축하했다고 전한다: “The Venice MS. states that the Basilideans celebrated the night before the Epiphany singing and flute-playing in a heathen temple at Alexandria.”[36] 이와 같이, 이들은 알렉산드리아의 한 이교도 성전에서 찬양과 악기 연주를 통해 주현절 전야를 축하했다.

요컨데, 초기 영지주의자들로부터, 우리는 여기서 주현절 전야를 성경읽기와 찬양을 통해 다가오는 주현절을 준비하는 시간을 가졌다는 매우 중요한 결과를 도출하게 된다.

이와 같은 방식으로 주현절을 준비한 후에, 이들은 주현절에 무엇을 축하했는가? 영지주의 공동체 (the Gnostic community)로서,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서 117-138 A.D.까지 가르친 영지주의 초기 교사인 Basilides (the Basilidians)의 추종자들이 예수님의 세례 (the mystery of the baptism)를 기념했다는 것에 의심의 여지가 없다.[37] 그런데 이들이 주현절에 예수님의 세례 사건을 기념했다는 그들의 동기가 다소 생소한 것 같다. 그들은 신적인 존재 (a Divine being)가 최초로 나사렛 예수님에게 연합된 사건이 일어난 시간이 바로 예수님의 세례 시간으로 간주하기 때문이다. 뿐만 아니라, 로마의 Hyppolytus에 따르면, Basilides는 예수님의 세례를 예수께서 신적인 조명하심을 통해 복음’ (the Gospel)[38]을 받았던 사건으로 간주했다는 것이다:

Basilides regarded Jesus's Baptism as the time when a Divine being first was joined to Jesus of Nazareth, it seems clear that he attached some unusual significance to the event. St. Hippolytus of Rome implied that Basilides regarded the Baptism as the occasion when Jesus received ‘the Gospel’ by a Divine illumination.[39]

 

어쨌던 그들에게 있어서 당시에 주현절이라는 절기명으로 불리어졌는지는 불확실하지만, 현재의 주현절의 날짜인1 6일에 그리스도의 세례 사건이 기념된 그리스도의 도래의 한 절기로서 지켜진 것은 엄연한 사실이다. 예수님의 세례 사건에 대한 그들의 이해는 신학적으로 우리와 다소 다르게 생각할 여지가 있더라도, 주현절이 예수님의 세례 사건을 기념하는 절기라는 것은 중요한 의미를 전달한다. 그것은 그들에게 있어서 주현절의 의미는 세례 받으신 예수님 위에 성부와 성령의 신성이 현현하셨고 복음을 받은 사건을 의미한다. 이것으로부터 우리는 그들이 예수님의 세례사건 이전에는 그의 신성이 약화되어 있거나 덜한 상태인 인성을 가졌는데, 세례 사건으로 신성과 인성이 최초로 결합된 것으로 이해하는 것 같다. 이런 점에서 그들의 기독론 (Christology)이 다소 모호하다.[40] 그리고 세례 전에는 예수님의 복음에 대한 이해가 다소 불완전한 지식이라는 의미를 주는 것 같다. 이것은 아리안주의 (Arianism)의 기독론 논쟁에서 보았듯이, 그리스도의 신성과 영원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보여줄 가능성을 보여주는 약점을 드러내는 것이다.

하지만 현대적 의미로서 진정한 주현절 (the Epiphany) 325년 니케아신경을 만들었던 정통교회의 삼위일체론적 기독론의 내용대로, 이미 완벽한 신성과 영원성을 가졌다는 것에 근거한다.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인 주현절은 예수님께서 세례를 받으심으로 하나님 나라의 공생애의 시작을 위한 대관식 (coronation)을 치르시고 자신을 공적으로 세상에 나타내셨다 (epiphaneia)는 의미가 강하다. 이런 점에서 주현절에 대한 신성 (divinity)의 현현에 대한 이해는 영지주의자들의 그것과는 신학적으로 약간의 차이가 있다고 할 수 있다.

 

b) 동방 교회에서 주현절의 발전

우리는 앞에서 주현절의 기원에 관해 설명하면서, 이집트와 아라비아에서 1 6일에 태양신숭배가 관련된 동지의 축제들이 있었다는 것을 언급했다. 여기서 더 자세히 설명하고자 한다. 이집트에서 15일부터 6일까지의 그날 밤에, 살라미스의 에피파니우스 (Epiphanius of Salamis; d. 403)의 보고에 따르면, 태양신 아이온 (the Sun-god Aion/Dionysus)이 동정녀 코레 (the virgin Kore)로부터 출생된 것이 기념되고 있었다. 그리고 동일한 증거로서, 나일강으로부터 물이 이끌어지는 의식이 16일에 있었는데, 에피파니우스는 나일강의 한 제의 (cult)에 대해 언급한다.[41]

그리고 이것은 신들이 그들 자신들을 사람들에게 알려지도록 만들었던 ‘legends of epiphanies’와 관련되어 있었다. 플리니 (Pliny the Elder) Dionysus (Dyonysos)에 대하여 말하는데, 포도주의 신 (god)Dionysus가 이 날에 물을 포도주로 바꿈으로 자신의 존재를 계시하는 것에 대해 말하였다고 전한다.[42] 하지만 플리니는 1 5일을 특정한 어떤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와 동일시하지는 않는다.[43] 이 점에서 플리니는 주현절이 고대의 동지 축제들과는 서로 다른 기원을 가진 독자적인 기원으로 보는 불연속성 (discontinuity)을 주장하는 것 같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동방의 태양신을 숭배하는 이 제의에서 1 5일 그날 밤에 어떤 샘들로부터 물 대신에 포도주가 흘러왔다는 “Dios Theodosia”[44] (“the divine gift of Zeus”)의 개념을 발견한다. 이로부터 후에, 서방교회의 주현절에서 가나혼인자치에서의 물로 포도주를 만든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과 연결하려는 시도가 발견되는 반면 (직접적 영향인지 알 수는 없더라도), 동방교회에서는 주현절에 예수님의 세례사건을 기념하지만, 가나혼인잔치에 대한 아무런 언급이 없다는 것이 특징적이다. 이 사실은 동방 기원의 주현절이 적어도 동방에서는 이방종교문화와의 불연속성을 갖는, 독자적 기원을 갖는다는 것을 암시적으로 보여주는 측면이 있는 것 같다.

포도주에 대한 일체의 언급이 없는 동방교회에서 주현절의 유일한 주제는 바로 예수님의 세례 (the Baptism) 그 자체이다. 그런데 그리스도의 세례에 관해 John Chrysostom (c. 349–407, Archbishop of Constantinople; Early Church Father)의 설교에 따르면,[45] 예수님은 그의 출생 사건을 통해서 자신을 세상에드러낸 것이 아니라, 단지 그의 세례 사건을 통해서만 자신을 세상에계시하였다. 이런 이유 때문에 Chrysostom은 그 절기를 주현절’ (the Epiphany)이라고 계속적으로 부르기를 선호한다. Chrysostom에게 주님의 세례는 세상을 향한 주님의 현현의 사건이라는 의미이다.

반면 Cappadocians은 서방의 성탄절이 동방에 전래되었을 때, ‘주현절이라는 명칭을 12 25일의 탄생사건과 분리했다. 그리고 12 25일의 축제를 채택하기 전에, 콘스탄티노플 (Constantinople)로부터 시작하여 갑바도기아 (Cappadocia)를 걸쳐서 시리아 (Syria)까지, 주현절은 예수님의 탄생 (the nativity)과 세례 (the baptism)를 함께 축하했다. 이 사실은 동방에서의 주현절이 한 때에 예수님의 세례만을 축하했던 것이 아니라, 예수님의 탄생 사건도 함께 축하되었다는 새로운 사실을 보여준다. 즉 서방의 성탄절이 동방으로 전래되기 전후에 주현절의 내용이 분화되게 되었다는 것이다. 심지어 4세기의 동방교회들 가운데, 단지 팔레스틴 (그리고 Cyprus) 1 6일의 축제에서 예수님의 요단강 세례의 주제를 생략하기까지 했다.[46] 이 사실은 동방에서 기원된 주현절이 예수님의 세례사건만 축하했다는 현대적 주현절의 주제와 상이한 것을 보여준다. 결국 이것은 동방의 주현절이 서방의 성탄절의 전래 이전과 이후에 다양한 변화를 겪는 모습을 가졌다는 것을 의미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동방교회에서 주현절의 주된 주제가 주님의 세례 사건이었다는 것은 의심할 여지가 없다. 그래서 세례의 물을 축복하는 의식이 동방교회의 각 지역의 의식에서 발견된다. Chrysostomhagiasthētōn tōn hydatōn (“the waters are sanctified”; PG 49.366)라는 표현을 사용한다.[47] 하지만 Chrysostom에게 이 개념은 물에 대한 의식적으로 거룩하게 하는 것’ (a liturgical hallowing of the water)을 의미하는 것인지, 아니면 그 물이 주님의 세례와 연합되는 것을 의미하는 지에 대해서는 애매하다. 물에 대한 실제적으로 예배학적 축복 행위 (an actual liturgical blessing of the water) 5세기의 Peter the Fuller at Antioch (471–488, Peter Fullo)에게 기인한다. Peter the Fuller는 물 위에 기원 (invocation; epiclesis)을 한다.[48] 현대의 동방교회의 주현절에 대한 의식으로서, 물에 대한 축복기도는 “Great are Thou, O Lord, and wonderful are Thy works”라고 시작한다.[49]

이디오피아 (Ethiopia)로부터 러시아까지 동방교회에 걸쳐서 주현절의 의식적 특징은 1 5일 저녁에 주님의 세례의 기억 안에서 물에 대한 축복” (the blessing of water)이다. 5세기 초에, 콘스탄티노플은 부활절 전야에 세례를 베푸는 전통이 있었는데, 세례 받는 것은 그리스도가 죽음에서 나와 부활하는 것을 상징하는 것이었다 (Rom 5). 그러나 곧 세례의 집례 (the administration of baptism)가 부활절에서 주현절로 전환되었다. 왜냐하면 예수님이 요단강으로 내려갔을 때, 그는 물을 구별하여 영생의 물로 사용했기 때문이라고 본다. 후에 성인 세례는 간혹 있었고 아이들은 집에서 세례를 받았다. 하지만 교회는 주현절에 세례를 위한 물을 계속적으로 축복했다.[50]

비잔틴의 축복을 위한 그 예배 의식에서 제사장은 꽃으로 장식된 강단 (a platform)에 십자가를 설치하기 전에 세 번 물 안으로 십자가를 담근다. 참가한 각 사람은 서로 다가가서 십자가에 키스를 하고 거룩한 물’ (the holy water)로 뿌림을 받는다. 그리고 한 모금을 마신다. 예배 후에 각 사람은 약간의 물을 떠서 그것을 집에 보관한다.[51]

그리고 Ethiopia에서 주현절은 북 이티오피아의 한 도시인 Aksum에 수 천명의 순례자들이 방문하는데, 제사장은 그 도시에 물을 공급하는 거대한 수원지에 있는 물을 축복한다. 그리고 나서 모든 사람이 그 수원지에 입수한다. 이 행위는 그리스도의 세례를 기념하는 의식이다.[52]

요컨데, 동방교회에서 주현절의 가장 두드러진 주제와 특징은 예수님의 세례 사건이며, 세례의 물을 축복하는 의식이 동방교회에서 주현절의 촛점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데, 예수님의 세례 사건을 기념하는 주현절은 동방에서 서방으로 전래와 동방에서 서방의 성탄절의 수용의 결과로 인해 동방교회는 복잡한 양상을 띠면서 주현절에 대한 진화과정을 겪었다. 모든 예배 역사가들은 이런 진화를 전적으로 동의를 한다. 하지만 그들은 주현절에 대한 동방의 축제의 오리지날 형태와 그 내용에 대해서는 불 일치한다. 예루살렘교회는 1 6일에 예수님의 탄생 사건만 (목자들과 동방박사들의 경배 사건을 포함한) 축하를 했다. 이집트의 교회는 구주 예수님의 세례 사건을 포함시켰다. St. Epiphnius of Salamis는 예수님의 탄생, 동방박사의 경배 사건, 그리고 가나 혼인잔치를 언급한다. 그렇다면 시작시점부터 주현절에 예수님의 탄생, 동방박사의 경배,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사건이 포함되었었느냐? 아니면 몇 개의 서로 다른 전통의 혼합 (a fusion)의 결과인가? B. Botte는 두 번째 가설에 더 가까운 반면, C. Mohrmann은 오리지널 주현절이 처음부터 많은 대상들을 포함한 아이디어들의 전형적인 축제’ (“typical feast of ideas”)로 간주한다. 즉 첫 번째 가설을 취한다고 할 수 있다.[53] 이에 대한 논의는 본고의 뒷부분에서 계속 언급할 것이다.

현재 동방에서 주현절은 주님의 세례 사건만 기념하며, 다른 모든 것들은 제외시킨다. 그러나 결코 서방의 성탄절을 받아들이지 않았던 the Armenian Monophysite Church만 예수님의 탄생, 동방박사의 경배, 그리고 예수님의 세례, 이 세 사건을 축하하고 있다.[54] 이 사실은 서방 전통의 성탄절의 영향 없이도 이들은 주현절에 예수님의 세례 사건 외에 예수님의 탄생, 동방박사들의 경배 사건이 함께 주현절에 축하내용이었다는 것은 그 내용에 있어서 성탄절과 주현절 사이에 모종의 연속성 (a continuity)이 있다는 것을 우리에게 중요한 단서를 제공해준다.

이 같은 사실로부터 우리는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가 비록 그 기원에 있어서는 이방종교문화적 상황에서 발생했을지라도,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인 성탄절과 주현절은 결국 하나의 같은 (unitive) 축제가 지역과 시기에 따라 분화 및 통합 등의 상호작용과 발전과정을 거치면서 서로 다른 전통을 형성하게 되었을 것이라는 추론을 갖게 된다.

 

c) 서방 교회로 주현절의 전래와 발전

동방교회에서 시작된 주현절은 동방교회 내에서 발전되었을 뿐만 아니라, 서방으로 전래되기 시작했다. 로마교회는 주님의 현현 (the Epiphany)을 기념하기 위하여4세기까지 기다려야만 했다. 더구나, 비록 주현절의 절기가 동방에서 기원되었을지라도 (이집트가 가장 가능성이 있다), 그것에 대한 서방에서의 첫 번째 증거는 361 Gaul로부터 온다 (Ammianus Marcellinus, History, 21.2). Emperor Julian의 증언에 따르면, 비록 내적으로 paganism으로 전환되었을지라도, 주현절 (“on the day in January which Christians celebrate as ‘Epiphany’”)날에 교회에 가는 것으로 기독교에 대한 외적인 공언 (profession)을 만들었기에, 주현절은 이미 361년까지 Gaul에서 이미 주된 절기였다.[55] 만약 동방의 주현절이 360년까지 Gaul에서 전통으로 자리 잡았다면, 그것은 로마의 성탄절의 기원과 거의 동시대임에 틀림없다. 만약 주현절이 성탄절보다 더 일찍인 것으로 고려한다면, 그것은 어쨌든 그리스도의 신성과 영원성을 확언하는 삼위일체론적 기독론을 확정 짓는 the Council of Nicaea (325)의 전후에 시작되었을 것이다.[56] 왜냐하면,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는 기본적으로 도래하신 그리스도는 신성과 영원성을 내재하고 계신 하나님의 아들의 현현하심으로 이해하기 때문이다.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를 통틀어서, 주현절 (2세기경)이 성탄절 (3-4세기경)보다 앞섰다는 것을 우리는 이미 보았다. 그러나 서방에서 기원된 성탄절과 동방으로부터 전래된 주현절이 서방에서 채택된 것, 이 둘 중에 어느 것이 시간적으로 먼저인지를 정확하게 말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일이다. 하지만 서방에서 이 둘 사이에 상호작용이 일어났음에는 분명한 사실이다.

서방에서 로마 교회는 주현절을 주로 이방인들을 향한 그리스도 자신에 대한 계시의 날로 간주한다.[57] 그래서 이방의 동방박사들의 방문과 경배사건을 기념하는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서방교회는 예수님의 세례, 예수님의 첫 기적 사건을 1 6 Lauds[58] Vespers[59]의 교창 (antiphons, 交昌)에서 함께 언급하고 있다. 그러면서 예수님의 세례는 구별된 축제로서 주현절 그 다음 주일에 축하된다. 그리스도와 그의 교회와의 결혼의 주제를 사용하는 예배의식서는 주현절을 구성하는 이 세 사건들, 즉 동방박사들의 경배, 주님의 세례, 가나혼인잔치를 미묘한 방식 안에서 서로 링크시킨다:

Today the Bridegroom claims his bride, the Church, since Christ has washed her sins away in Jordans’ waters; the Magi hasten with their gifts to the royal wedding; and the wedding guests rejoice, for Christ has changed water into wine, alleluia (antiphon for the Benedictus, January 6).[60]

 

이 사실은 주현절과 주현절 다음의 이어지는 주일들 안에서 서방교회의 예배력의 내용은 이방을 향한 그리스도의 자기 계시와 관련된 동방박사들의 경배 사건과 예수님의 세례 사건, 그리고 예수님의 첫 기적 사건이라는 것을 보여준다.

서방과 달리, 동방교회는 성탄절에 예수님의 출생 (the Nativity)과 동방박사들의 경배 (the Magi)를 기념했다. 동방교회에서 성탄절에 기념되는 동방 박사들의 경배 사건 (the Magi), 서방교회의 주현절의 유일한 내용으로 기념되었다. 그리고 앞에서 언급한대로, 서방교회의 주현절 이후의 주일들에서 예수님의 세례 사건 (the Baptism)과 가나의 기적 (the Miracle)이 기념되었다. 이집트에서 나일강의 제의에서 어떤 샘들로부터 포도주가 흘러왔다는 개념이 나타나는데, 이것으로부터 (직접적인 영향인지는 알 수 없더라도), 서방교회는 주현절에 물로 포도주로 만드신 예수님의 첫 번째 기적 사건을 주현절에 적용하는 방향으로 발전시켰다고 볼 수 있다. 다시 말해, 서방교회에서 주현절 이후의 주일에 예수님의 세례와 더불어 가나의 첫 기적 사건을 포함시킨다. 이것은 동방교회로부터 서방교회에 전래된 주현절의 큰 발전이라고 볼 수 있다.

하지만, 서방교회에서 동방박사들의 경배 사건과 주님의 세례 사건, 이 두 주제가 두 개의 구별되는 축제들이다. 왜냐하면 서방에서 동방박사들의 경배사건은 주현절에 기념되었고 예수님의 세례 사건 (그리고 가나의 기적 사건)은 주현절 이후의 주일에 축하되었기 때문이다.[61]

월력상으로 주현절의 의식은 16일에 지켜졌고 그 날이 공휴일인 지역에서 축하되었다. 그렇지 않으면, 주현절은 1 1일 이후 주일에 떨어진다. 주현절은 그것 자체의 어떤 특별한 의식들을 가지고 있지 않다. 동방박사들이 베들레헴으로 오는 것을 상기시킬 때, 이방나라를 향한 하나님의 부르심이면서 그리스도의 계시 사건인 동방박사의 경배사건을 축하한다. 서방교회에서 동방박사들의 경배 (the Magi)는 주현절의 유일한 주제이었기 때문이다.

 

(3) 소결 (小結, Sub-conclusion)

성탄절은 서방의 기원을 갖는다. 독자적 기원을 갖는 측면도 있지만 이방종교문화적 상황과 연속성 안에서 그 관련성을 설명했다. 그리고 성탄절은 서방교회에서 발전을 겪는다. 동시에 동방에서 전래된 주현절과 서방에서 생성 및 발전된 성탄절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예배학적 전통을 형성하게 된다.

주현절은 동방교회의 기원을 갖는다. 동방교회에서 주현절은 독자적으로 발생한 측면도 있지만, 이방종교문화적 상황과 연속성 안에서 역시 설명했다. 그리고 주현절은 동방교회에서 발전되고 전통을 형성한다. 그리고 동시에 서방에서 전래된 성탄절과의 동방기원의 주현절과 상호작용을 하면서 예배학적 전통을 형성하게 된다.

 

3. 성탄절 사이클의 준비의 절기 (A Preparatory Season): 대강절 (Advent)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들인 성탄절과 주현절을 축하하기 위해 준비의 절기 (a preparatory season)로서 대강절 (Advent)이 서방교회에서 시작되었다.[62] 성탄절 사이클에서 준비의 절기인 대강절이 생성됨으로써 성탄절 사이클은 완벽한 그 형상을 드러내게 되었다.

 

(1) ‘도래’ (coming)에 대한 용어와 대강절의 기원

헬라어 에피파네이아’ (Epiphaneia), ‘어드벤투스’ (Adventus), ‘파루시아’ (Parousia)와 같은 용어들은 원래는 이교적 기원을 가졌던 용어들이었지만, 크리스챤 용어로 사용되어 왔다. 도래’ (coming)에 대한 용어들은 원래 이교도의 성전 안에서 연간 제의 (annual cult)가 시작될 때, 그들의 신들 (divinities: the god or goddess)이 그들을 섬기는 헌신자들 (devotees)에게 방문하기 위하여 도래의 형태를 취한다. 그들의 신들이 도래하는 방식과 그 과정은 그들의 신상들이 신전에 경의와 존경으로 세우는 과정으로 표현된다. 그래서 이 제의가 진행되는 동안 그 신들은 그들을 섬기는 자들 가운데 거주하는 것을 상징화한다.[63]

이러한 도래 (coming)의 전통은 로마 제국의 왕궁에서도 드러난다. 로마 제국 왕궁의 예법은 황제와 같은 어떤 중요한 인물이 그의 직분에 처음 취임하는 시간에 공식적인 방문 및 도래를 위해 이 용어가 사용되었다. 고린도의 동전들 (Corinthian coins)Adventus Augusti (“The coming of Augustus,” i.e., Nero)를 기념하는 글귀를 가졌다는 것은 그러한 사실과 정서를 잘 반영해주고 있다.[64]

초기 기독교 저작들과 벌게이트에서 Adventus우리 가운데 임한 그리스도의 도래를 위해 사용된 고전적 용어가 되었다. 즉 메시아 시대를 개관한 것으로서, 그리스도의 육체로 오심’ (his coming in the flesh)과 세상 끝에 구속사역을 완성할 그리스도의 영광 가운데 오심’ (his coming in glory)을 나타내는 전문용어로 발전하게 되었다. Adventus, Natale 그리고 Epiphania는 기본적으로 동일한 본질 (the same basic reality)을 의미한다. 그렇다면 Adventus라는 용어가 성탄절을 위한 예배학적 준비의 절기에 대한 전문 용어로서 어떻게 사용되어 왔는가? 역사만이 이 질문에 대한 답을 줄 뿐이다.[65]

대강절은 전적으로 서방교회 전통이다. 그 기원은 Gaul Roma의 전통들에 기인한다. 주현절을 준비하기 위한 3주간을 대강절로 지켰다는 문헌적 증거가 Gaul에서 Hilary of Poitiers (d. c. 367)에 의해, 그리고 스페인에서 380년에 the Council of Saragossa에 의해 나타난다. 5, 6세기에 이 3주간의 준비기간으로서 대강절은 40일간까지 길어지며, 성탄절로부터 역으로 계산되었다. Bede St Egbert St Cuthbert 40일간 금식 (‘ante natale Dei’)했다는 기록을 남긴다 (HE 3.27, 4.30). 로마에서 원래 성탄절 전, 단 하루 금식으로 알려졌었다 (Filastrius of Brescia, Div. Haer. 149; CSEL 38. Cf. Augustine, Ep. 65).[66]

 

(2) 서방교회에서 대강절의 발전

로마에서 대강절의 역사는 예배학적으로 6세기에 시작한다.[67] 하지만 앞에서 언급한대로, 대강절은 이미 가울 (Gaul)과 스페인 (Spain)에서 존재했었다. 4세기 말에 그리고 5세기 동안에 로마와 가울 그리고 스페인 지역의 사람들은 성탄절과 주현절의 축제를 위하여 고행적’ (ascetical) 준비에 대한 필요성을 느낀 것 같다. 3주간 계속되는 이 준비는 의심 없이 원래는 주현절에 세례를 받기 위한 준비와 함께 관련되었었다. St. Hilary가 언급한 것이라는 것에 다소 논란은 있더라도, 대강절이 준비의 절기라는 인식에 있어서 가장 오래된 증언은 대강절이 “pre-Christmas Lent”라고 불려지는 것에서 알 수 있다.[68] 380년경에 the Council of Saragossa 12 17일부터 주현절까지 성도들이 교회에 열정적으로 참여해야 한다고 규정했다.[69] 금욕생활 (asceticism), 기도, 더 잦은 모임, 이것들은 성탄절을 준비하는 시간 (절기)의 원래적 특징들이다. 이 훈련은 6세기에 가울에서 성탄절까지 한 주에 3일을 금식하는 더 특별한 형태를 취하게 되었다.[70]

대강절은 로마에서 6세기 후반에, 성례전과 성경읽기표 (the sacramentaries and lectionaries)를 통한 예전적 형태로 유지해왔다:

Advent was from the outset a liturgical institution, whereas everywhere else ascetical considerations had served as the point of departure and provided the criteria for the evolution of the season.[71]

 

로마에서 대강절의 금욕적 준비와 인식은 다른 지역에서 대강절 절기의 발전을 위한 표준을 제공했다. 로마에서 대강절의 절기가 시작되는 그 시점부터 예배학적 규정 (a liturgical institution)으로 자리를 잡았다는 사실과 다른 지역에까지 동일한 영향을 확장시켰다는 점에서 대강절에 대한 서방교회의 인식은 매우 특별한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이것은 부활절 사이클이 이미 정착된 지 오래되었고, 성탄절 사이클도 대강절을 제외하고 이미 정착된 상황이었기 때문에, 대강절에 대한 예배학적 인식이 교회 안에 상당한 수준으로 올라와 있었다는 것을 방증 (傍證)하고 있다.

세월이 많이 흘러서 20세기 중반에 들어와 만들어진, 서방교회의 예배규정의 요체라고 할 수 있는 바티칸 II의 예배규정’ (The Constitution on the Liturgy of Vatican II)[72]은 일반적으로 연중 예배력의 시작 절기로 인식되고 있는 대강절을 연간 예배 사이클의 마지막에 두는 것 같다. 왜냐하면 그것은 다음과 같이 언급하고 있기 때문이다:

[I]n the course of the year” the Church “unfolds the whole mystery of Christ from the incarnation and nativity to the ascension, to Pentecost and the expectation of the blessed hope of the coming of the Lord.[73]

 

이 경우에 1년의 교회력의 과정을 통해서 그리스도의 성육신과 탄생, 승천으로부터 시작하여 성령강림과 재림에 대한 소망까지 그리스도의 전체 신비의 구속사역을 교회가 예배를 통해 재현하기 때문이라는 언급은 결국 대강절이 교회력의 시작이 아니라, 마지막이라는 뉘앙스를 만들기에 충분하다고 P. Jounel은 평가한다.[74] 그러나 바티칸 II 예배규정에 대한 Jounel의 비평은 대강절을 재림에 대한 것으로만 이해하는 것에서 연유되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바티칸 II 예배규정을 굳이 언급하지 않더라도, 대강절의 절기는 그리스도의 초림의 현현하심 (성탄절과 주현절)기억’ (아남네시스)을 통해 준비하고 그리스도의 재림의 현현하심을 기대’ (프로렢시??span lang="EN-US">)를 통해서 소망 안에서 준비하는 절기라는 인식이 필요하다. Michael Kunzler는 대강절의 이와 같은 이중적 성격을 잘 요약적으로 설명해준다:

The season of Advent has a double character. On one hand it is a time of preparation for the great feasts of Christmas with their commemoration of the first coming of the Son of God among men. On the other hand Advent directs hearts by means of these thoughts to the expectation of the second coming of Christ at the end of the ages.[75]

그리고 서방교회에서 미사 (the Mass)와 성무일과/기도회 (聖務日課, Office)을 위한 예식서 (the Formulary)들에 대한 연구는 우리로 하여금 6, 7세기의 교황들이 대강절에 의도했던 정교한 의미를 파악할 수 있다. The Gauls[76]은 무엇보다도 그리스도의 도래에 장엄함을 준비’ (preparation)의 시간으로 여겼다: “that this divine aid…may prepare us for the coming feast.”[77] 그런데 성탄절이 The High Middle Ages (11~13세기, c. 1001-1300)에서 점점 중요하게 되자, 대강절은 또한 기대’ (expectation)의 시간이 되었다: “It fostered a joyful expectation of the feast of the Nativity but with a view to directing the thoughts of Christians above all to the glorious return of the Lord at the end of time.”[78] 이 사실은 대강절이 기억기대를 통한 현재적 준비라는 것을 잘 보여준다.

이러한 관점에서, 대강절에 대한 가장 큰 심벌들 중에 하나는 Rome Ravenna[79]의 모자이크에서 종종 보여지는 “the Etimasia or empty throne of the Pantocrator [80]이다. 원래 세속적 의미를 가졌던 Adventus’Parousia라는 성경적이며 종말론적인 의미로까지 확장되게 되었다. 결국 대강절의 이러한 예배학적 정서는 그리스도의 도래와 현현에 대해 과거에 대한 현재적 기억과 미래에 대한 현재적 기대가 서로 만나는 절기라고 할 수 있다.[81]

그리스도의 도래의 2대 절기라 할 수 있는 성탄절과 주현절의 기원이 독자적 기원을 포함한다고할지라도, 이방종교문화적 배경을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들의 기원에서 역사적으로 그리고 의미론적으로 연관되어 있다. 반면, 그리스도의 도래의 양대 절기의 준비의 절기인 대강절은 대강절’ (Advent)에 대한 용어 문제를 제외하고는 비교적 순수한기원을 가진다고 할 수 있다.

 

(3) 동방교회로 대강절의 전래와 발전

동방교회에서는 로마의 메시아 도래에 대한 절기로서 대강절에 대한 어떠한 예배 형태도 발견되지 않는다.[82] 하지만 서방교회로부터 동방교회로 이미 성탄절이 전래되었기 때문에 성탄절을 준비하는, 또는 동방 기원의 주현절을 준비하기 위한 어떤 절기의 필요성을 느꼈을 것이다.

비잔틴 예배 의식 안에서 성탄절 직전 주일 (“대강절”)에 아담으로부터 예수님의 어머니 마리아의 남편 요셉까지 모든 아버지들 (the Fathers)이 하나님을 찬양하는 것을 특히 기념한다. 즉 옛 언약의 모든 성도들은 구주의 탄생을 위한 기쁨과 기대 안에서 소망해왔다는 것을 예배를 통해 표현한다: “All the saints of the old covenant are urged to ‘lead the dance for the Birth of the Savior.’”[83]

시리아의 예배 의식에서는 성탄절 전 몇 주간을 “the Weeks of Annunciations”라고 일컫는다.[84] 시리아 서부 사람들 (the Western Syrians) 가운데서는 5주간을 대강절로 지키고, 시리아 동부 사람들 (the Eastern Syrians) 4주간을 지킨다. 이들은 성소에서 분향하는 시간에 스가랴에게 주어졌던 세례 요한에 대한 수태고지 (the annunciation to Zechariah), 마리아에게 주어졌던 예수님에 대한 수태고지 (the annunciation to Mary), 마리아의 엘리사벳 방문 (the Visitation), 세례 요한의 출생, 그리고 요셉에게 주어진 수태고지 (the annunciation to Joseph)가 연속적으로 기념되고 축하된다. 즉 예수님의 출생 직전의 일련의 사건들을 기념하며 축하하는 것이다.

 

(4) 소결 (小結, Sub-conclusion)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들인 성탄절과 주현절을 준비하기 위한 절기로서, 서방교회에서 대강절이 시작되었다. 대강절은 서방교회에서 비교적 뒤늦게 생성되었으며, 그 시작과정과 내용을 볼 때, 교회가 비교적 높은 차원의 예배학적 인식과 상당한 예배신학을 소유했다는 사실을 방증하고 있다.

동방에서 갑바도기아 교부들 이래로 주현절은 세례를 위한 일상적인 절기가 되어왔으며, 서방에서는 적어도 레오 (Leo)의 시기까지 세례는 결코 주현절에 행해지지 않았다 (비록 레오가 성탄절에 그 주제에 대해 설교했을지라도). 하지만 가울에서 동방의 영향으로 성탄절/주현절이 세례를 위한 절기가 되었다. 이 사실은 가울에서 매우 중요한 것인데, 우리는 성탄절/주현절을 위한 준비의 기간으로서 비로소 40일에 관한 최초의 정보를 듣게 된다. [85] 그러므로 대강절은 서방에서 기원, 정착, 발전되었을 뿐만 아니라, 동방으로 전래되었다. 그리고 대강절은 동방과 서방을 걸쳐서, 준비의 절기로서 그 예배학적 전통을 형성했으며, 더 나아가 현대 교회력에까지 영향을 주었다.

 

4. 나오는 말 (Conclusion)

성탄절 사이클을 구성하는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일은 역사적으로 12 25일과 16일로 알려져 왔다. 그리스도의 도래에 대한 이 두 날짜들에 대한 기원이 독자적인 것인지, 아니면 이방종교문화적 영향으로 설정된 날짜인지를 엄밀하게 구별하는 것은 여전히 논쟁의 대상이 되고 있다. Epiphanius of Salamis (ca. 310–320 – 403) Ephrem the Syrian (Latin: Ephraem Syrus; ca. 306 – 373)는 예수님의 출생 사건을 1 6일로 여긴다.[86] 사실 그리스도의 출생에 대한 이 날짜는 2세기말~3세기경에 Clement of Alexandria에 의해 주장되었다. 그리고 Hippolytus of Rome에 의한 그리스도의 탄생일이 12 25일이라는 견해도 있어왔다. 이와 같이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의 기원에 대해, 특히 그 날짜에 대한 독자적 기원론들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인 성탄절과 주현절의 그 기원과 그 날짜들은 다소 세속적 영향을 받았다는 것이 일반적 인식인 것 같다. 그리고 동시에 성탄절과 주현절은, 고대의 동지 (the winter solstice)에 연결된 이방인 축제들 및 로마나 이집트의 태양신 숭배 축제들에 맞서려는, 당시 교회의 변증적 시도와 노력이 있었던 것이다. 이와 같은 성탄절과 주현절의 기원은, 이미 선재하고 있었던 이방인의 축제에 대한 로마제국 당국자의 정치적 동기와 교회의 변증적 동기와 노력이 성탄절과 주현절의 절기를 태생하도록 영향을 주었다는 것이 된다.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의 기원문제를 더 세부적으로 확장하면, 그 절기를 지키는 날짜 문제 외에, 내용 및 주제의 문제가 등장한다. 이것들은 장소와 시간과 전통에 따라서 매우 다양한 모습을 가진 다양성을 가지고 있다. 우리는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들의 내용과 주제에 대한 이러한 다양성의 문제를 어떻게 해결할 수 있는가?

성탄절과 주현절, 이 두 절기는 동일한 날에 대한 다른 월력 시스템에 의해서 두 절기의 날짜로 분화되어 발전되었다는 견해에 관심을 갖고자 한다. 그레고리력 (Gregorian calendar)과 율리우스력 (Julian calendar) 사이의 시간차 때문에 서로 다른 두 날짜가 생겼다는 것이다. 율리우스력 (“old style”) 12 25일은 그레고리력 (“new style”) 1 7일에 해당한다. 예컨데, 19세기 전반에 걸쳐서, 율리우스력 12 25일은 그레고리력 1 6일에 발생했는데, 이것은 Orthodoxy 또는 the Byzantine Church가 그들 자신의 성탄절 축제를 갖지 않은 잘못된 신앙을 고무하게 되었다. 그 결과 동방교회는 그들만의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로 주현절을 지키기 시작하였다. 이러한 예 ()가 우리로 하여금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들이 생성, 발전, 전래의 단계에서도 동방과 서방에서 상호작용이 일어나서 각각의 예배적 전통을 각각 형성했을 것이라는 추론을 가능하게 만든다.

그리스도의 도래 일 ()이 동일한 날에 대한 서로 다른 월력 시스템으로 인해 분화, 발전되었다는 논리에 대해, Thomas J. Talley Louis Duchesne는 그 설명을 정교하게 시도한다. 이들에 따르면, 율리우스력의 1225일과 그레고리력의 16일은 같은 날로써, 모두 Julian calendar에서 the Lord’s Passion (14 Nisan)에 대한 실제적 날짜를 확정하기 위한 시도들로부터 계산되었다는 것이다.[87]

동일한 날에 대한 서로 다른 기원과 다른 날짜와 다른 주제를 가지는,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인 성탄절과 주현절은 그들의 발원지가 어디에서 시작되었든지 간에 4세기경에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로 상호 널리 전래되어 상호작용과 영향 안에서 그들 각각의 강조점을 가진 체로 발전을 해왔다. 이 두 절기의 인기 (popularity)는 의심 없이 당시의 기독론 논쟁 (Christological controversies)인 아리안 (Arianism)과 논쟁하기 위한 교회사적 동기내지는 신학적인 필요성때문이었다.

그러므로, 그 기원과 전래의 싯점에 있어서 시간적인 차이가 있더라도, 원래 하나의 결합적인 성격을 갖는 축제 (an originally unitive festival)가 동방 (the East)과 서방 (the West)에서 다른 방식으로 나누어졌던 것 같다[88]: 성탄절은 동방과 서방 모두에서 예수님의 출생사건에 대한 축제이었다. 여기에다 동방은 동방박사의 경배 사건에 대한 기념을 추가했다. 주현절은 동방에서 주님의 세례 사건을 기념하는 것이며, 서방에서는 동방박사의 방문에 대해 축하하는 것이다. 주현절과 관련된 다른 2개의 주제인 예수님의 세례사건과 가나 혼인 잔치에서 첫 번째 기적사건은 서방에서는 주현절 이후에 있는 주일들 안에서 기념된다. 비잔틴 예배에서는 가나혼인잔치에 대한 아무런 언급이 없는 반면, 세례에 대해 결혼의 이미지 (nuptial imagery)가 사용된다. 이 사실을 아래의 < 4>가 잘 보여주고 있다.

 

성탄절 사이클 안에 있는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들인 성탄절과 주현절, 그리고 그 준비의 절기인 대강절이 동방교회와 서방교회에서 난해하고 복잡한 기원, 발전, 전래과정을 거치면서, 상호작용을 하면서 형성된 예배학적 전통은 다음과 같다. 성탄절에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는 기본적으로 예수 그리스도의 탄생 사건을 축하한다. 여기에 동방은 동방박사들의 경배를 추가한다. 그러나 주현절에 관하여는 동방교회와 서방교회는 그들 각자의 특징을 명백하게 드러낸다. 동방은 그리스도의 세례가 주현절의 핵심내용이며, 그리고 서방은 동방박사의 경배가 주현절의 중심주제가 된다. 그리고 대강절은 동방과 서방에서 모두 그리스도의 도래의 양대 절기를 위한 준비의 절기라는 것에는 아무런 이론 (異論)의 여지가 없다. 이로써 예배력의 쌍둥이 형제가운데 하나인 교회력의 차자’ (the second son)라고 할 수 있는 성탄절 사이클이 마침내 그 완성된 얼굴을 취하게 된 것이다.

 

 

 

     이기업 목사

     고신대학교 신학과 졸업 (B.A.)

     고신대학교 신학대학원 졸업 (M.Div.)

     보스톤 대학교 대학원 예배학 석사 졸업 (S.T.M.)

     고든-콘웰 신학대학원 구약학 석사 졸업 (Th.M.)

     시카고 트리니티 복음주의 신학대학원 구약학 박사과정 (Ph.D.) 코스웤 마침

     전, 미국 시카고 개혁교회 (CRC교단) 담임목사

     전, 대학교회 담임목사

     현, 월드미션교회 담임목사


 

[1]물론 시간적으로 선후관계를 따지면, 주간 예배사이클 (the weekly cycle)이 먼저 생성되고 후에 연간 예배사이클 (the annual cycle)이 생성된 것 같다. 즉 부활공동체의 예배와 교제의 날인 안식 후 첫 날로 일컬어진 주일 (the Lord’ Day)이 먼저이고, 그 다음에 자연스럽게 부활절’ (Easter)이라는 절기가 생겼다는 말이다. 

[2] A. G. Martimort, I. H. Dalmais, and P. Jounel, The Liturgy and Time, The Church at Prayer volume IV (Collegeville: The Liturgical Press, 1986), 78. 아직 완성된 형태의 예배사이클은 아닐지라도, 기본적인 부활절 사이클 (1세기경)과 성탄절 사이클 (3세기경)의 예배력의 두 생성들 사이의 시간적 간격은 약 200 (2세기간)의 간격이 있다고 할 수 있다. 즉 부활절 사이클이 먼저 생성되고 성탄절 사이클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들)이 약 200년 뒤에 생성되었다고 할 수 있다. 결국 그리스도 중심의 6대 절기가 두 사이클로서 4세기경에 그 기본적이 틀이 완비되었다고 보는 것이 정설 (定說)일 것이다 (그러나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들의 준비의 절기인 대강절은 축제의 절기들인 성탄절과 주현절보다 훨씬 뒤 늦게 시작되었는데, 4세기말~5세기, 심지어 6세기까지 보는 다양한 설도 있다).

[3]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의 날짜와 이방종교문화적 축제일의 겹침 현상을 위해 본고의 각주 5번을 보라.

[4] O. Cullmann, Noël dans l’Eglise ancienne (Cahiers theéologiques de l’actualité protestante; Neuchâtel: Delchaux et Niestlé, 1949), 26-28; cited from The Liturgy and Time, 78-79, n. 5 (italics mine) ; 그리고 “Constantine encouraged the adaptation by the Church of various features of sun-worship, and the promotion if not the institution of the feast may owe something to him and to his building of St Peter’s on the Vatican Hill, where the sun was already worshipped in the Mithras-cult” (italics mine). 이것은 교회를 향한 콘스탄틴의 의도와 동기를 극명하게 보여주는 표현이다: The Study of Liturgy, 466; “Flavius Valerius Aurelius Constantinus (c. 27 February 272 – 22 May 337), commonly known as Constantine I, Constantine the Great, or Saint Constantine, was Roman Emperor from 306 to 337. Well known for being the first Roman emperor to convert to Christianity, Constantine reversed the persecutions of his predecessor, Diocletian, and issued the Edict of Milan in 313, which proclaimed religious tolerance of Christians throughout the empire”; “In 321, Constantine instructed that Christians and non-Christians should be united in observing the "venerable day of the sun", referencing the esoteric eastern sun-worship which Aurelian (214-275) had helped introduce, and his coinage still carried the symbols of the sun-cult until 324”:

http://en.wikipedia.org/wiki/Constantine_the_Great#Religious_policy.

[5] 동지 (冬至, the winter solstice)북반구에서는 태양이 가장 남쪽에 이르는 남지일 (南至日)이며, 태양의 남중고도 1년 중 가장 낮아서 밤이 가장 긴 날이다. 반대로 남반구에서는 낮이 가장 길고 밤이 가장 짧은 하지가 된다. 동지는 보통 북반구에서는 12 21일 또는 22일에 발생하고 남반구에서는 6 20일 또는 21일에 발생한다. B.C. 46년에 Julius Caesar는 그의 율리우스력에서 12 25일을 유럽의 동지의 날로 설정했다. 동지를 기점으로 하여 태양이 하루하루 북으로 올라와 낮이 길어지기 때문에 동서양을 막론하고 고대에는 동지를 각종 중요한 천문학적, 농경문화적, 종교적 축제일로 삼았다. 예컨데, 일본은 7세기경에 태양신 축제 Amaterasu or Amateras celebration를 가졌고, 핀라드, 스웨덴, 그리고 노르웨이 원주민들은 다산과 건강의 태양신을 숭배하는 Beiwe Festival를 가졌으며, 파키스탄의 Kalash 사람들은 동지에 Chawmos를 가졌으며, 조로아스트교는 Maidyarem을을 가졌으며, 중국, 일본, 한국 등 동아시아 국가들은 동지를 지켰으며, Mali에서는 Goru를 지켰으며, 유대인들은 Hanukkah를 지켰으며, 스코틀랜드는 새해의 전야를 의미하는 Hognanay를 지켰으며, 잉카제국은 태양신 Inti를 섬기는 Inti Raymi 축제를 지켰으며, 바하마에서는 Junkanoo (자메이카에서는 Junkunno or Jonkanoo)를 지켰고, 고대 서부 슬라브족 (Ancient Western Slavic)은 할로윈과 비슷한 Karachun를 지켰으며, 고대 동부 슬라브족 (Ancient Eastern Slavic) Koleda를 동지에 시작하여 10일 동안 지켰는데, 러시아에서 이 축제는 후에 성탄절에 적용되었다. 그 외에도 동지에 태양신 및 기타 축제들이 동서양에서 고대에 많이 존재했었다. 자세한 내용과 그 축제일의 리스트를 위하여 http://en.wikipedia.org/wiki/Winter_solstice (retrieved 2011-01-12)를 보라. 특히 태양신을 숭배하던 페르시아의 미드라교 (Mithras-cult)에서는 12 25일을태양탄생일로 정하여 축하하였다. 이 미드라교 (Mithras-cult)의 동지제가 로마로 넘어가 크게 유행하였다. 그리고 고대 로마에서 Brumalia는 포도주의 신 (god)Bacchus를 기념하기 위한 축제가 고대 로마의 동지 축제였다. 이 축제는 음주와 향락을 포함하는 것으로 한 달간 지속되었으며, 12 25일에 끝마쳤다. ‘Brumalia’라는 이름은 bruma’라는 라틴어에서 파생되었는데, 그 의미는 가장 짧은 낮’ (‘shortest day’) 또는 겨울’ (‘winter’)이라는 의미이다. 이 이름 (bruma)은 동지의 천문학적인 현상을 잘 반영한다고 할 수 있다: http://en.wikipedia.org/wiki/Winter_solstice#cite_note-0 (retrieved 2011-01-10).

[6] The Liturgy and Time, 78을 보라.

[7] “Arianism” at http://en.wikipedia.org/wiki/Arianism (retrieved 2011-01-04).

[8] The Liturgy and Time, 78.

[9] 4세기말~5세기에 가울 (Gaul)과 스페인에서 대강절이 이미 존재했으며, 6세기에 로마에서 대강절의 역사가 시작되었다. 대강절의 생성 동기는 이 절기의 현대 예배학적 목적과 동기처럼 준비의 절기 (a preparatory season)로서, 이미 당시에 존재했었던 성탄절과 주현절을 준비하고자 하는 필요성의 목적으로 대두되어 시작되었다: The Liturgy and Time, 91을 보라.

[10]‘Chronography of 354’ ‘Calendar of 354’로도 불리어지는 이 사본 (manuscript) Valentius라는 부유한 한 로마 그리스도인을 위해 당대의 탁월한 필경사 (scribe or calligrapher)Furius Dionysius Filocalus에 의해 만들어진 것이다; 이기업, “교회력의 연속성과 불연속성,” 한국교회와 역사 (Korean Church and History), 4 (2010, 여름호): 52-89, 75, no., 36을 보라. The Chronography는 모든 로마의 달력들처럼, 한 개의 달력이면서 연감 (almanac)과 같은 것이다. 무엇보다도 중요한 문헌적 가치와 의의는 성탄절에 대한 최초의 언급을 포함한다는 점이다. ‘Chronography of 354’는 총 16 parts로 구성되어있다. 그 가운데 Part 12는 다음과 같다: “Part 12: commemoration dates of the martyrs, which begins with "VIII kal. Ian. natus Christus in Betleem Iudeae" ("Eighth day before the kalends of January [December 25], Birth of Christ in Bethlehem Judea"). 여기 Part 12에서 순교자들의 기념일들을 취급한 후에 뒤이어 그리스도의 출생일과 출생장소에 대한 정보를 제공하고 있다. 그것은 유대 땅 베들레헴에서 그리스도의 출생이 1월 초하루 전 8일째 날, 12 25일이었다는 것을 언급하고 있다: http://en.wikipedia.org/wiki/Almanac_of_Philocalus (retrieved 12-29-2010). 그리스도의 출생일과 함께 포함된 순교자들의 명단을 위해서는 The Liturgy and Time, 119-120을 보라.

[11] A. G. Martimort, I. H. Dalmais, and P. Jounel, The Liturgy and Time, 78.

[12] The Liturgy and Time, 78을 참고하라; Thomas J. Talley, The Origins of the Liturgical Year (Collegeville: The Liturgical Press, 1986), 85를 보라.

[13] Talley의 연구와 그 과정 그리고 그 결과에 대한 것을 위해 우리는 The Origins of the Liturgical Year, 85에서 그 자세한 논의를 찾아볼 수 있다.

[14] 본고의 각주 22번에 해당하는 text부분의 내용을 참고하라.

[15] 태양신 숭배절기 (The feast of the Unconquered Sun)에 관하여, ‘Invictus’ (unconquered)는 로마 제국에서 다양한 로마의 신들에 대한 총칭 (epithet)으로 사용되는 표현이었다. Sol Invictus는 후기 로마제국의 공식적인 태양신이었다. 274년에 로마 황제 (270 to 275) 아우렐리우스 (Lucius Domitius Aurelianus/Aurelian, 9 September 214 or 215 – September or October 275)가 로마의 전통적 제의들과 나란히 태양신 숭배를 제국의 공식적인 종교 (cult)로 만들었다. 물론 학자들 사이에는 이 새로운 태양신이 고대라틴의 태양신 숭배 (the ancient Latin cult of Sol)을 재건한 것 (refoundation)인지 Elagabalus (시리아 지방의 신 이름의 라틴버전) 숭배의 재현인지 혹은 완전히 새로운 것인지는 의견이 불일치 한다. 태양신 Sol 은 아우렐리우스 이후 로마 황제들에 의해 총애되었다. 그래서 콘스탄틴 황제 때까지 황제들의 동전 위에 새겨졌다. Sol Invictus를 관련시키는 최종적인 동전의 주조는 387년까지 계속된다. 그런데, 5세기에 어거스틴은 그러한 이교적인 것들에 반대하여 설교할 필요가 있다고 개혁적 발언을 했다 (Halsberghe, p.170, n., 4: "Augustine, Sermones, XII; also in Ennaratio in Psalmum XXV; Ennaratio II, 3."): http://en.wikipedia.org/wiki/Sol_Invictus (retrieved 2011-01-05).

[16] 이 말은 성탄절에 대한 문헌적 첫 번째 증거라는 것이지 (354), 성탄절을 지킨 첫 번째 연도라는 말은 아니다. Talley 336년이 로마에서 성탄절을 지킨 첫 번째 경우라고 해석한다. 또 다른 학자는 311년 이전, 심지어 300년 이전으로 보는 견해도 있다: 본고의 각주 22번에 해당하는 본고의 본문 (text)를 보라.

[17] The Origins of the Liturgical Year, 86.

[18] Ibid.

[19] G. Brunner, “Arnobius ein Zeuge gegen das Weihnachtsfest?” JLW 13 (1936), 178-181; H. Lietzmann, A History of the Early Church. III: From Constantine to Julian (Cleveland and New York, 1953), 317. K. Holl (Gesammelte Aufsätze zur Kirchengeschichte, II. 141, n., 1), cited from Thomas J. Talley, The Origins of the Liturgical Year, 156, n., 15.

[20] Thomas Comerford Lawler, trans., St. Augustine: Sermons for Christmas and Epiphany. Ancient Christian Writers, no. 15 (Westminster, Md. 1952), 170, recited from The Origins of the Liturgical Year, 86 (italics mine).

[21] The Origins of the Liturgical Year, 87.

[22] Ibid. 이것은 성탄절 기원에 대한 초기 연도설이다.

[23] The Liturgy and Time, 82-86을 보라.

[24] St. Gregory the Great, Homilia 8 in Evangelia 1 (PL 76:1103), cited from The Liturgy and Time, 83, n., 16 (italics mine).

[25] The Liturgy and Time, 83.

[26] 몇몇 예배학적 전통들 안에서 성탄절 사이클과 부활절 사이클의 주된 축제절기인 성탄절과 부활절이 8일째까지 확장되어 지켜진다. “Thus the Sunday following Easter Day is called ‘The Octave of Easter’ and January 1 is ‘the Octave of Christmas.’ All eight days embraced by the feast and its octave are times of particular solemnity. While “octave” is derived from a Latin term meaning ‘eighth,’ not ‘eight,’ in casual usage ‘octave’ often refers to all eight days, not simply to the final day of the observance. Hebraic antecedents for this liturgical character of a closing eighth day are found in Lev. 23:36 and 2 Chron. 7:9.”; cited from Laurence Hull Stookey, Calendar: Christ’s Time for the Church (Nashville: Abingdon Press, 1996), 167, n., 6; Peter G. Cobb, “VI. The Calendar” in The Study of Liturgy, 469. 반면 또 다른 전통에서는 성탄절 옥타브에서 더 확장하여, “The Twelve Days of Christmas” 12 25일 성탄일부터 1 6일 주현절 전날인 1 5일까지 12일간을 성탄절을 지키고 있다.

[27] The Liturgy and Time, 84.

[28] The Liturgy and Time, 84를 보라.

[29] Origen, Contra Celsum I, 51, ed. M. Borret, vol. 1 (SC 132; Paris: Cerf, 1967), 214-215 and Note 3 on 215-218; cited form The Liturgy and Time, 85, n., 21.

[30] St. Jerome, Homilia de Nativitate Domini (PLS 2:183); see D. Baldi, Enchiridion locorum sanctorum (Jerusalem, 1955), 84; cited form The Liturgy and Time, 85, n., 22.

[31] Peter G. Cobb, “VI. The Calendar” in ed., Cheslyn Jones, Geoffrey Wainwright, Edward Yarnold SJ and Paul Bradshaw, The Study of Liturgy (New York: Oxford University Press, 1992 revised), 467.

[32] http://en.wikipedia.org/wiki/Christmas (retrieved 2011-01-21)를 보라.

[33] Tobi월은 콥틱력의 다섯 번째 월의 이름이다. 알렉산드리아력 (the Alexandrian calendar)으로 불려지는 콥틱력 (the Coptic calendar)은 콥틱 정통교회 (the Coptic Orthodox Church)에 의해 사용되고 현재까지 이집트에서 사용된다. 이 달력은 고대 이집트력 (the ancient Egyptian calendar)에 기초하고 있다. 콥틱력은 총 13개월로 구성되어 있다. 각 월 이름은 Thout, Paopi, Hathor, Koiak, Tobi, Meshir, Paremhat, Paremoude, Pashons, Paoni, Epip, Mesori, Pi Kogi Enavot (the Little Month)의 순서대로 13개월이다. Tobi월의 이름은 고대 이집트의 신 이름 Amun Ra의 한 형태인 Amso Khem으로부터 왔다. Tobi월은 그레고리안 월력 (the Gregorian calendar; the Western calendar; the Christian calendar) 1 9일과 2 7일 사이에 해당한다: http://en.wikipedia.org/wiki/Month_of_Tobi; http://en.wikipedia.org/wiki/Coptic_calendar (retrieved 2011-01-24).

[34] 알렉산드리아에서 117-138년까지 가르쳤던 초기 영지주의 교사이다.

[35] Stromata I, 21, 146, ed. M. Caster (SC 30) 150, recited from The Liturgy and Time, 79, n. 7; Michael Kunzler, The Church’s Liturgy (London: Continuum, 2001), 418 (italics mine).

[36] Venice MS. ii. 483 Dind.: iii. 632 Oehler. http://en.wikipedia.org/wiki/Basilides#Epiphany (retrieved 2011-1-14).

[37] 영지주의자들 (the Basilidians) 1 6일에 예수님의 세례를 기념했다는 사실을 Clement of Alexandria가 주장했는데, Talley에 따르면, 이것은 이 영지주의 분파의 특권으로만 머물지 말아야 된다고 주장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세례사건은 4세기에 주현절의 주된 주제였다는 사실이 the Canons of Athanasius의 열 여섯 번째 규정에서 명백하게 진술되고 있기 때문이다: Thomas J. Talley, The Origins of the Liturgical Year, 121.

[38] 물론 여기서 복음” (the Gospel)이 무엇을 가리키는 것인지는 다소 애매함이 있는 것이 사실이다. 아마 여기서 그는 복음을 예수님께서 하나님 나라를 선포하시기 위해 필요한 하나님의 모든 진리를 의미하는 것 같다.

[39] St. Hippolytus of Rome, Philosophumena Book vii (italics mine); http://en.wikipedia.org/wiki/Basilides#Epiphany (retrieved 2011-1-14)

[40] Thomas J. Talley, The Origins of the Liturgical Year, 123.

[41] Natural History 2. 106, 31.13; recited from Peter G. Cobb, The History of the Christian Year, 466.

[42] Ibid.

[43] Thomas J. Talley, The Origins of the Liturgical Year, 115: Chrysostom‘the water-drawing’을 언급하면서 주현절에 그리스도의 세례에 의해 ‘the sanctification of water’이 되었다고 주장한다. 그리고 Pliny와 달리 Epiphanius 1 6일에 가나혼인잔치의 기적 사건을 포함시킨다.

[44] The Origins of the Liturgical Year, 115.

[45] The Origins of the Liturgical Year, 125: Chrysostom세례사건을 통해 Christ세상에 드러낸 사건이라고 언급한다.

[46] Ibid.

[47] Ibid.

[48] According to Theodore the Lector, Hist. Eccles., II, fragm. 48 (PG 86.209); cited from The Origins of the Liturgical Year, 159, n., 79.

[49] The Origins of the Liturgical Year, 125.

[50] The Liturgy and Time, 88.

[51] Ibid.

[52] Ibid.

[53] Ibid.

[54] The Liturgy and Time, 81.

[55] Ibid., 79.

[56] Ibid: P. Jounel은 니케아종교회의 보다 훨씬 이전으로 보지만 필자는 니케아종교회의 (325) 전후가 가장 타당할 것으로 본다.

[57] 동방에서 Chrysostom은 세상을 향한 그리스도의 계시 사건은 그리스도의 출생사건이 아니라, 그리스도의 세례 사건이라고 언급했다. 이것이 바로 동방 기원의, 주현절의 중심주제가 그리스도의 세례가 된 이유일 것이다: 본고의 각주 45 text를 참고하라.

[58] “Lauds” 는 로마교 예전 (the Roman Catholic Liturgy of the Hours)에서 아침기도예배를 의미하며, 동방교회 전통 (the Eastern Orthodox tradition)에서는 새벽이나 밤 기도 예배 (Matins; Orthros; Oútrenya) 를 가리킨다.

[59] “Vespers”the Western Catholic, Eastern (Byzantine) Catholic, and Eastern Orthodox, Anglican, and Lutheran liturgies에서 저녁기도회를 의미하며, 이 용어는 “evening”을 의미하는 헬라어 εσπερινός 와 라틴어 vesper에서 왔다. 그리고 이 용어는 일부 프로테스탄트교 (Seventh-day Adventist Church)에서는 저녁예배를 의미하며, Anglican저녁 기도회를 의미한다.

[60] The Liturgy and Time, 82.

[61] 성탄절처럼, 주현절이 다양한 지역에서 8세기의 후반에 시작된 옥타브 (octave)를 받을 때, 주의 세례 기사는 옥타브 날 (the octave day) 동안 읽혀지는 복음서로 할당되었다. 즉 서방교회에서는 주현절 이후의 주일인 옥타브에서 주현절 옥타브로서 주님의 세례 사건이 기념되었다.

[62] 물론 동방교회의 기원을 가지는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인 주현절의 기원과정을 보면, 주현절 전야 (the Vigil)에 성경읽기와 찬송과 연주를 통해 주현절을 준비하는 개념이 동방교회의 이집트 알렉산드리아에 있는 한 영지주의 공동체 (the Basilidians)에 의해 명시적으로 드러난 것이 사실이다. 하지만 그리스도의 도래의 절기를 위한 진정한 준비의 절기의 개념은 서방교회의 기원을 갖는 대강절’ (Advent)이라는 사실에는 이론 (異論)의 여지가 없다.

[63] The Liturgy and Time, 90-93을 보라.

[64] Ibid.

[65] Ibid.

[66] The Study of Liturgy, 468, 469. 이것은 동방교회의 기원을 가지는 주현절의 전야 (the vigil)에서 성경을 읽고 찬양으로 준비하는 대강절의 개념이 서방의 기원을 갖는 로마의 성탄절 전에 단 하루를 금식으로 준비하는 것과 연속성을 보여주고 있다는 것은 매우 흥미로운 사실이다.

[67] The Liturgy and Time, 91-92.

[68] Ibid.

[69] H. Bruns, Canones apostolorum et conciliorum (Berlin: Reimer, 1839), 2:13-14, cited from The Liturgy and Time, n., 44.

[70] Gregory of Tours, Historia Francorum X, 6, ed. B. Krusch and W. Levison (Hanover: Hahn, 1951), 529 (=PL 71:566); cited from The Liturgy and Time, 92, n., 45.

Perpetuus of Tours (died December 30, 490 AD) was the sixth Bishop of Tours, from 460 to 490.

[71] J. Hild, “L’Avent,” LMD no. 59 (1959), 25, cited from The Liturgy and Time, 92, n., 46.

[72] 2차 바티칸 공의회 (The Second Vatican Council; Vatican II)Pope John XXIII on 11 October 1962에 시작하여 Pope Paul VI on 8 December 1965에 마친 로마 교회의 제21차 에큐메니칼 종교회의이다.

[73] VSC no. 102, cited from The Liturgy and Time, 92, n., 49.

[74] The Liturgy and Time, 92를 보라.

[75] Michael Kunzler, The Church’s Liturgy, 414 (italics mine).

[76] ‘Gauls’는 가울 (Gaul)에 사는 켈트족 사람을 의미한다. 이 지역은 철기시대부터 로마시대까지 대략적으로 현재의 프랑스와 벨기에 지역에 해당한다. 이들은 대부분 Gaulish라는 대륙의 켈트족 언어를 사용한다.

[77] Prayer after communion for the third Sunday of Advent in the old Roman Missal: J. Hild, “L’Avent,” LMD, 17-24; cited from The Liturgy and Time, 93, n. 50.

[78] The Liturgy and Time, 93.

[79] 라벤나 (Ravenna)는 아드리아해 (the Adriatic Sea) 인근에 있는 도시로서, 402년부터 476년까지 서로마제국의 수도였고 후에 동고트족 왕국 (the Kingdom of the Ostrogoths)의 수도였다.

[80] ‘Pantocrator’ 또는 ‘Pantokrator’ (from the Greek Παντοκράτωρ)는 하나님의 이름들 중에 하나로써, 구약성경에서 만군의 여호와엘 샤다이에 해당하는 하나님의 이름을 칠십인경에서 Pantokrator로 번역했다. 이 이름은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궁극적으로 지향한다.

[81] The Liturgy and Time, 93을 참고하라.

[82] Ibid.

[83] Ibid.

[84] Ibid.

[85] Peter G. Cobb, “VI. The Calendar” in The Study of Liturgy, 468.

[86] Thomas J. Talley, The Origins of the Liturgical Year, 117.

[87] 이것에 대하여는 Michael Kunzler, The Church’s Liturgy, 416; The Origins of the Liturgical Year, 129ff.를 보라.

[88] Peter G. Cobb, “VI. The Calendar” in The Study of Liturgy, 46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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