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가정교회는 교회가 아니라 하나의 운동이다.한 운동은 시대적 부족의 충족을 위한 하나님의 선물이다.

필자는 수년 전에 벨기에의 브루셀 한인교회에서 몇 번의 설교를 하면서 가정교회 현장을 간접적으로 경험하였다. 당시 J 목사님께서 목회하시면서 가정교회 사역을 도입했다. 그래서 가정교회의 목자와 목녀 그리고 장로님과 식사를 하면서 자세하게 상황을 듣고, 또한 가정교회라는 책을 읽어 보았다.

그때 필자는 근본적인 질문보다는 실제적 질문들을 했고 들었다. 기존의 구역보다 더 역동적이고 나눔과 섬김과 복음 증거에 좋은 운동이란 인상을 받았다. 매주일 식사를 하면서 나누는 모임이 섬김과 사랑의 현장이 되어 참여한 이들에게 손쉽게 복음 증거의 현장으로 자리매김을 하겠구나 하는 인상을 가졌다.

그들과 대화를 하면서 필자는 화란 개혁교회의 장로들의 역할과 섬김을 중심으로 상응하는 이야기를 나누었다. 그때 원리적인 개혁교회의 장로와 집사의 상이 가정교회에서 실제적으로 실천된다는 느낌을 받았다. 그 이후에 목회를 시작하면서 J 목사님을 모시고 말씀을 듣고 싶다는 생각을 가졌고 나누었는데 한국으로 사역지를 옮기셨다.

그리고 지금 이성구 교수의 글로부터 시작된 논의를 보면서 다시 관심을 가지게 된다. 필자는 코닷에 오른 글들을 살펴보았고(부산노회 보고서를 포함) 가정 교회 사역원의 홈을 들러 그들의 기본적 개념들이 무엇인지 한번 확인해 보았다.

한 운동이 일어나는 것은 반드시 시대가 가진 한계를 넘어서는 실천적 필요를 반영한다. 특히나 열매가 있는 운동일 때 더욱 그러하다. 교회내의 운동도 마찬가지이다. 이 운동에 적극적으로 참여하여 이해하고 오늘의 우리의 교회에 부족한 것이 무엇인지를 알고 그리고 채우고 싶은 마음에서 이 논의에 참여한다.

어차피 새로운 운동은 기존의 저항과 비판에 쉽게 노출된다. 따라서 몇가지 의심스런 눈을 피할 수 없다. 그 운동의 장점과 더불어 현재의 궁극적 대안으로 존재할 수 있느냐는 비평적 평가를 나누어 본다.

전체적 이해를 위해 몇 가지 정리를 나름대로 해본다.

첫째 가정교회 운동은 평신도와 목사의 구별을 명시화한다.
이런 구별을 하는 실질적인 이유에 대해서는 이해할 수 있지만 기본 발상이 구교적(로마 카톨릭) 교회이해이다. 이런 기본적인 이해가 운동 전체의 조직과 운영에 어떤 영향을 미칠까? 신약적 교회의 회복이라는 기본 개념과 목표에 도달할 수 있을까? 전체 교회상의 왜곡을 불러오지 않을까?

종교 개혁을 통해서 성취한 것은 평신도와 사제간의 구별을 폐지한 것이다. 단지 은사에 따른 교회적 부름의 결과 직분이 존재하게 되었다. 모두 한 지체로서 역할을 공적으로 감당하는 것이 직분이다. 그래서 직분자와 성도들간에는 구별이 존재하지 않는다. 가정교회는 목사 중심리더십에 집중된다. 회중교회적인 성격을 바탕에 깔면서도 감독교회의 실제를 구현한다.

여기서 장로교의 주된 특징인 치리회에 의한 섬김과 다스림이 상실되지 않을까?(최근 부산노회 보고서가 지적한 내용 중 장교교회의 특징을 개인이 아니라 회에 의한 다스림이라고 지적한 것은 아주 적절한 지적이다)

둘째 교회 안의 교회로서 가정교회
가정교회라는 한 교회가 구체적인 지역교회 안에 존재한다. 다시 말하면 교회 안의 교회이다. 이것은 가정교회가 신약 성경적 교회상을 회복한다고 하지만 실질적으로 교회에 대한 고백적 이해와는 거리가 있다. 말씀과 성례와 직분에 의해 정의되는 장로교적 개념의 교회는 아니다.

 '가정교회'는 교회라는 표현을 장로교적 기준은 물론 성경적 기준으로 사용하지 않는다. 소위 가정교회의 실제가 교회적 의미와 역할을 하고 있다는 것과 그것이 바로 교회라는 것은 다른 의미이다. 아주 막연한 성도들의 모임이라는 교회 정의를 사용한다.

이것은 과거 학생 선교단체들이 캠퍼스에서 운동하면서 교회를 정의했던 것과 다르지 않다. 실제로 그 운동의 과정이 어떻게 진행되고 있는지를 우리는 분명히 보고 있다. 네비게이토 운동이 교회를 위한 운동으로 궤도 수정이며, UBF의 거듭되는 분열과 비리 노출과 본 운동 자체의 교단화이다. 기존의 교회가 가지지 못한 어떤 특성을 채워주는 운동이 교회 자체로 등장하려는 시도는 언제나 있어왔다. 가정교회 운동도 그런 류가 아닐까?

실제로 과거 캠퍼스의 선교 단체 운동이 기존교회의 청년부나 교회 조직이나 내용에서 수용되는 요즈음에 선교단체의 캠퍼스 사역은 절대적으로 위축되고 있는 현실을 목격한다. 선교 단체는 교회의 정의를 너무 쉽게 정의하고 운동함으로 스스로의 무덤을 만들었다.

오늘날 캠퍼스의 선교단체들이 살아가야 할 길은 캠퍼스 속의 그리스도인들이 캠퍼스의 복음화를 위해서 다른 교회의 성도들과 연합하고 협력하는 방식을 위해서 존재한다는 개념의 변화에 있음을 알아야 한다. 대형교회 청년부가 캠퍼스 모임을 가지는 것이 한 선교단체의 모임보다 클 수 있는 오늘날의 현실에서 세상을 변혁시키는 그리스도인들로 서는 교회적 연합의 의미를 빨리 이해해야 한다.

따라서 가정 교회 운동이 기존 교회의 부족한 부분을 보충하는 현실을 높게 평가하지만 그러나 이것이 가정'교회'라는 명칭으로 교회라고 칭하는 태도의 부적절함을 지적해 본다. 특히나 독립적 교회를 지향하는 가치관은 문제가 있지 않는가? 이것이 결국 이 운동의 한계나 무덤이 되지 않기를 바란다.

셋째 가정교회 사역이 그 정의나 실제에서 침례교나 회중교회적이라고 볼 수 있음에도 불구하고(사역원의 사역 강령 제 7조에서 각 교단의 신학적 전통을 존중히 여김에도 불구하고) 한국이나 미국의 한인교회들에서 가정교회 사역에 큰 혼돈이나 어려움이 없는 이유가 무엇일까?

실제로 한국교회는 형식상 대체적으로 장로교회적이다. 장로는 심지어 침례교회와 감리교회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돌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한국교회가 전반적으로 고백에 충실한 장로교회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성도를 심방으로 돌보고 섬김으로 나오는 권위에서 치리하는 장로상의 상실과 그런 장로들로 구성된 당회가 치리회적 성격을 상실하고 운영위원회의 성격으로 변질됨으로 생긴 난맥상이 한국 장로교회의 현실이다.

여기에 가정교회 운동은 바른 장로와 집사상의 재발견을 촉구한다. 타락한 교회를 위한 바른 교회상의 한 중요한 부분을 일깨우는 운동이라고 평가할 수 있다. 이런 사실들은 가정 교회 운동이 새로운 운동이 아님을 보여준다. 단지 현재에 잃어버린 교회의 중요한 모습을 회복하자는 운동이다.

앞서 밝힌대로 캠퍼스의 선교단체 운동이 기존 교회에 양육과 제자훈련이라는 지대한 공헌을 하면서 기존 교회의 주일 예배 중심 회집에 큰 변화를 가지고 왔던 것과 같이 가정교회 운동은 성도의 교제과 전도와 섬김에 대한 큰 변화를 요청한다. 교리 공부로 만족치 못한 교회에 제자훈련의 성경공부가 필요했듯이 형식화된 구역 모임은 역동적인 교제와 재생산과 섬김의 장으로 변화되어 수용되어야 한다.

그리고 나면 가정교회 운동은 자신의 역할을 충분히 한 것이다. 스스로 운동은 사라지기를 바라야 한다. 영속하기를 원할 때 스스로의 함정에 빠진다. 소그룹 운동의 역사는 교회 역사를 두고 계속되어 왔다. 교회는 시대의 요청을 외면하지 않아야 하기 때문에 시대의 필요에 반응하는 빠른 운동에 깊이 관심을 기울일 필요가 있다.

결론적으로 가정교회는 교회가 아닌 한 운동이다.
필자는 앞서 밝힌 세가지 논점을 가지고 가정교회 운동의 한계를 이해하였다. 가정 교회 운동이 좋은 목표와 실천 강령 그리고 이에 따른 좋은 실천적 구조와 방향을 가졌음에도 불구하고 가정교회 운동은 교회가 아닌 운동이다. 실제로 감리교회가 구역 조직 즉 속제도를 도입하였을 때 어떤 마음으로 도입했을까?

그리고 이런 구역 조직이 있음에도 불구하고 소그룹 운동이 교회 안에 일어나게 되었을 때 어떤 중심이 있었을까? 좀 더 명시적으로 셀교회 운동이나 가정 교회 운동도 마찬가지이다. 중심은 복음적 열정을 교회가 회복하는 것이다.

가정 교회 운동이 구체적인 지역 교회적 기능을 하기 위한 예배, 교제와 치유, 교육과 훈련, 섬김과 사역, 전도와 선교를 직접 하도록 한다. 그런데 모든 교회의 조직은 실질적으로 이런 필요를 가져야만 한다. 말씀의 전파와 돌봄과 다스림, 섬김과 나눔이 있어야 한다. 장로교적인 표현에 의하면 목사와 장로와 집사가 있어야 한다.

이런 직분을 언급함은 모든 교회와 교회적 조직에 필요한 것이 이런 직분에 맞는 역할을 요청한다. 이것은 교회나 교회 안의 모임들이나 혹은 성도들의 가정에서도 반드시 있어야 하는 일들이다. 교회적 성격이 이런 요소들을 필요로 한다.

글을 마치면서
가정 교회 운동이 좋은 실천적 목표와 실제를 가지고 있지만 기본 개념과 실제에 있어서 몇 가지 문제점을 지니고 있다. 그러나 한 운동의 발생은 그 시대의 보편 교회가 가진 잃어버리거나 상실된 교회적 모습에 대한 비평적 통찰에서 나온다. 따라서 이 운동과 그 열매에 대해서 교회적 관점에서 살필 필요가 있다. 제도적 교회가 어떻게 수용할 수 있을지 깊이 상고해야 한다. 치리회가 이런 자기 반성적 태도를 더 많이 가지면서 운동을 평가하기를 바란다.

감리교회가 영국 성공회의 실천없는 종교를 비판하면서 속제도를 도입하여 정착시켰고 이것이 전체 교회에 유익하다는 평가를 받아서 장로교회 속에서 구역 제도로 정착된 것을 기억해보자. 그리고 캠퍼스 선교단체들의 제자훈련이 오늘날 교회 성경공부 운동에 영향을 미치고 있는지 살펴보자. 가정교회 운동은 이제 구역이 더욱 교제와 나눔과 섬김 그리고 전도와 양육의 장이 되어야 함을 요청하는 시대적 표징이다. 상호 겸손하게 문제들을 접근해보자.

이세령  leesr62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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기사 댓글 8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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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 voice 2007-04-27 21:43:53

    주안에서 김종선 목사님께
    주신 관심에 먼저 감사 드립니다. 공론화된 논의에서 글을 쓰면서 답글을 받고 싶은 사람이 때로 그려지기도 합니다.

    먼저 말씀드릴 것은 제 스스로 평신도라는 용어 사용에 강한 거부감을 가지고 있습니다. 목회자를 포함한 '신도' 혹은 '성도'라는 용어를 왜 피하는지 모르겠습니다. 글에서 밝혔듯이 그런 용어를 사용해서 현실을 표현하는 것은 이해합니다. 그러나 한 운동은 개념화 내지는 표준화(신조나 강령)를 하게 되고, 거기서 자기를 이해하고 다른 사람들을 설득하게 됩니다. 실제로 가정교회 사역원의 원리와 구조 조직 등에서 이런 구별은 많이 묻어 나옵니다. 요약하면 "목사는 교회의 전체 리더쉽이고 평신도는 교회 사역을 분담하고". 그리고 인용하신 엡4장의 본문이 어떤 이해를 서로 돕는지요?

    두 번째 질문도 앞에 연결된 것 같습니다.
    어떤 현실을 규정하는 용어는 단순해 보여도 이미 자신이 담아야 할 내용을 담는 정도에서 규정한다고 불수 있습니다. 성도들의 공동체라고 규정하면 안된다기 보다는 가정교회 운동이 그렇게 규정하고 시작하는 운동이라는 사실을 말했을 뿐입니다.
    우리들의 논의는 가정교회 운동이 오늘의 우리 교회들을 잘 각성시키고 온전케 할 수 있다는 가능성을 두고 하는 논의입니다. 그리고 어떤 표현을 씀에 있어서 아무리 가정교회를 긍정하더라도 자기가 서있는 고백적 자리에서 규정된 교회 개념을 뒤로하고서 어떤 진보를 가지고 올 수 있겠습니까? 차이와 다름 그리고 수용 가능성 등을 결국은 자기 입장에서 규정해야 하지 않을까요?

    저는 목사님께서 말씀하시는 두 날개라는 표현이 오히려 이 문제를 어렵게 만든다고 생각합니다.
    처음부터 당회는 회중을 위한 것이고 회중을 돌보는 일을 위해서 존재했습니다. 당회는 모든 교회내의 일의 영적인 감독을 합니다. 무엇보다 회중의 구체적인 형편을 돌아보고 심방하고 교제함으로 회중을 다스립니다. 따라서 그 돌아봄과 교육의 수단으로 여러 조직들이 있게 됩니다. 그 동안도 있어 왔고 제가 보기에는 가정교회 운동도 그런 예 중에 하나로 보일뿐입니다.

    캠퍼스 선교 운동 단체와 제자훈련은 성도를 돌보고 양육하는 역할의 중요성을 분명히 교회에게 다시금 확인시켜 주었습니다. 교회가 이를 수용해 내었습니다. 그리고 이제 셀교회 혹은 가정 교회 등의 발전된 형식으로 전개된다는 인상입니다. 제가 가정교회를 우리 역사 현실에서 긍정적으로 보는 것은 대학 시절에 캠퍼스에서 선교단체의 훈련을 받은 리더쉽들이 교회라는 제도권 안에서 긍정적인 역할을 할 수 있는 제대로 된 운동을 만났다는 사실입니다. 여러 운동 가운데 제자훈련과 가정교회는 사람을 돌보는 진정한 장로의 섬기는 리더쉽을 일깨워주고 있습니다.

    그러나 제가 말씀드리는 것은 한 완전한 지역 교회 안에 교회가 바른 것이냐는 것입니다. 수의 문제가 아닙니다. 교회는 수와 관계없이 그 자체가 완전합니다. 제가 올린 서평 글에서 서평자의 비평은 바로 그것을 말합니다. 6-12명의 성도들로 규정된 소위 가정교회가 신약의 온전한 교회로 믿고 독립된 교회를 지향한다는 것을 어떻게 수용할 수 있습니까? 성경에서 교회를 그런 식으로 규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물론 많은 장로교회가 이런 정책을 그대로 수용하지 않고 나름대로 적용합니다. 그러나 실제로 교회 안의 교회를 인정하는 이런 현실을 무엇으로 보아야 할까 많이 생각해 봅니다. 오늘 대형화 하는 교회 현상을 정당화하는 한 방식으로 이해됩니다. 이것은 아주 좋게 표현해서 하는 말입니다. 오늘 교회가 어떤 모습으로 서야 할지 이런 논의를 통해서 발전되었으면 좋겠습니다.

    침례교회의 집사회가 치리회인지는 모르겠습니다. 교회 안에 있는 기본적 역할이 있기에 이를 수행하기 위한 조직이 어떤 형식으로든지 다 있겠지요. 이름만 다르고 실질적으로는 같을 수 있겠습니다. 장로교회에서는 원칙적으로 목사가 홀로 설 자리가 없다는 사실이 중요합니다.

    김 목사님!
    지난 간사 시절 목사님의 댁을 통째로 빌려서 학생들과 밤이 새도록 며칠을 토의하면서 지냈던 세월도 기억나고 학신 운동이 왜 무엇 때문에 그 책을 읽어야 하고 그런 운동을 구체적으로 해야 하는지를 저에게 물으시던 기억도 새롭습니다.

    목사님의 사역에 평안을 빕니다.   삭제

    • 김종선 2007-04-27 00:37:46

      이세령 목사님 오랜만입니다.
      잘 지내시죠? 건강하시고...

      목사님 글 잘 읽었습니다.
      궁금한 점이 있어서 두가지 정도 질문을 드리고 싶습니다.
      먼저 목사님 글에 '가정교회 운동은 평신도와 목사의 구별을 명시화한다.' 라고 하셨습니다.
      가정교회에서 이 부분을 설명할 때 엡 4:11,12절을 인용합니다. 혹시 그 부분 설명을 듣거나 글을 읽은 적이 있으신지.... 저는 그 부분을 목사님의 주장과 정반대 의미로 이해했고 받아들였는데, 목사님은 어떤 근거에서 그렇게 구분 한다고 이해하셨는지 설명을 부탁드립니다.

      그리고 두번째로 지적하신 것 중에서 "말씀과 성례와 직분에 의해 정의되는 장로교적 개념의 교회는 아니다."라고 말씀하셨는데 가정교회에서 목장이 그런 의미의 교회라고 말하고 있지 않다는 것은 우리 모두가 다 아는 사실입니다. 가정교회에서 목장이 그런 의미의 교회라고 말하고 있지 않으니까요. 그런데 "아주 막연한 성도들의 모임이라는 교회 정의를 사용한다." 라고 지적하셨는데 그렇다면 그런 의미의, 그러니까 '부름심을 입은 사람들의 공동체" 라는 식의 일반적이고 단순한, "아주 막연한" 의미의 교회 정의는 받아들일 수 없다는 뜻인지, 다시말해서 말씀과 성례와 직분에 의해 정의되는 교회만 교회라고 생각하시는지, 그외에는 교회라고 칭하면 안 된다고 생각하시는지 궁궁금합니다.
      덧붙여서, 선교단체와 비교해서 말씀하셨는데 가정교회를 하는 교회들, 심지어 회중교회라고 경계하고 있는 휴스턴 서울 침례교회 까지도 치리회(집사회)가 있고 거기서 행정적이고 법적인 것들 세밀하게 다 다루고 있는데, 그런 조직체로서의 교회가 존재하지 않는 선교단체와 그런 조직체를 갖추고 그것을 운영하는 가정교회를 하는 교회와 그렇게 비교할 수 있는 것인지, 흔히 사용하는 대로 두날개의 의미를 조직체로서의 대그룹 교회와 유기체로서 소그룹 교회가 함께 조화를 이루어서 더 건강하고 좋은, 교회다운 하나의 교회를 세워간다. 는 생각을 받아들인다면, 조직교회의 틀을 갖추지 않은, 한쪽뿐인 학생선교단체들과 가정교회를 하는 교회를 어떻게 단순 비교할 수 있는지, 그렇게 비교해도 무리가 없다고 생각 하시는지 설명해 주시기 바랍니다.

      제가 이런 질문을 드리는 것은 가정교회의 열성적인 옹호자이거나 가정교회가 아무 약점도 없다고 생각하기
      때문이 아닙니다. 그냥 사실에 입각해서 사실대로 이해하고 그것을 근거로 분석 평가 하는 작업을 했으면하는 바람이 간절하기때문입니다.

      주 안에서 늘 건강하시고 평안 하시기 바람니다.
      부산에서 김종선 드림.   삭제

      • voice 2007-04-24 00:58:02

        주안에서 전기홍 님!
        관심에 감사드립니다.
        오늘의 교회 현실앞에 얼마나 몸부림 치면서 자기 반성을 하며 일구어 가는 운동이겠습니까? 생명에 대한 열정과 관심으로 보입니다.
        장로교회됨은 무엇보다 치리회를 통한 다스림이겠지요. 그런데 그 치리회의 구성원들인 목사와 장로들이 어떻게 자기를 이해하는가가 실제로 치리회의 내용과 형식을 지배하겠지요.
        더 좋은 나눔이 계속되기를 빕니다.   삭제

        • 전기홍 2007-04-23 07:20:54

          "실제로 한국교회는 형식상 대체적으로 장로교회적이다. 장로는 심지어 침례교회와 감리교회에도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충돌을 느끼지 못하는 것은 한국교회가 전반적으로 고백에 충실한 장로교회가 아니라는 사실이다. 성도를 심방으로 돌보고 섬김으로 나오는 권위에서 치리하는 장로상의 상실과 그런 장로들로 구성된 당회가 치리회적 성격을 상실하고 운영위원회의 성격으로 변질됨으로 생긴 난맥상이 한국 장로교회의 현실이다.

          여기에 가정교회 운동은 바른 장로와 집사상의 재발견을 촉구한다."

          .............................................................

          가장 성경적인 개혁교회(장로교회)의 정체성을 무너뜨리는 요소가 있어서 위험하다는 지적이 설득력을 얻으려면 우리교단교회가 역사적개혁교회와 제도와 원리,운용등 모든 성경적 요소들이 일치하고 있어야 한다고 생각합니다.

          만에 하나 우리교단교회가 역사적개혁교회와 내용은 일치하지 않고 이름만 같은 장로교회라면 우리교단교회의 정체성부터 정확하게 정리되어야 한다고 봅니다.

          제삼자의 입장에서 가정교회에 대한 논의를 보면서 느낀 점은 사역자들의 명칭은 장로교와 다르지만 섬김의 자세로 사역하고 다스리는 사역자들의 모습은 오히려 역사적개혁교회의 장로나 집사와 가깝다고 여겨집니다.

          장로교회가 왜 중요한가? 하는 부분에 촛점을 맞추어 가정교회를 바라보고, 적용하면 좋은 대안이 나오리라고 생각합니다.

          명칭을 바꾸어 운용하신다는 안병만목사님과 얼굴로 뵙지 못했지만 늘 올리시는 좋은 글들로 마음으로 친숙해진 이세령목사님, 전라노회에서 목양하셨던 전성준목사님, 배움 얻게 됨을 감사드립니다.   삭제

          • voice 2007-04-22 05:44:52

            주안에서 전성준 목사님
            주신 관심과 격려 감사합니다.
            개척교회로의 새로운 부름에 수고가 많으시지요.
            지난 시절 베푼 후의를 잊지 않고 있습니다.

            글을 쓰고 나서 거듭 생각해 보는 것은 이것입니다. 주님의 마음에 합한 교회와 목사가 이끌고 싶은 교회 사이에 어떤 객관성을 확보할 수 있을까라는 질문입니다. 이 갈등속에 무엇이 우선되어야 할것이진 좀 더 냉정한 살핌이 필요한 것 같습니다. 그리고 더 나누고 싶은 중심은 이것입니다. 오늘 우리 교회들이 정말 낮아지고 잃어버리고 섬기는 복음의 자리를 꿈꾸면서 세워져 가는가?

            건강하시고 더 가까이서 섬기고 함께 봉사하지 못하는 안타까운 마음을 전합니다. 때를 주시리라 믿습니다.   삭제

            • 전성준 2007-04-21 18:18:05

              이목사요 감사하요
              비록 멀리 살아도 교단 교회에 관심을 가지고 있는 것만도 감사하요
              벌써 시대가 많이 변하엿소
              매일성경을 해야되는가 말아야 하는가?
              복음송을 불러야 하는가 말아야 하는가?

              학신운동을 주도하면서 속많이 썩은던 날이 엊그제 같은데 이젠 전면에서 걱정해야 할 나이가 된것이 못내 아쉽소

              시대정신 시대 문화를 파악하고 제압하고 대안을 제시하는게 목회자의 사명인데
              요즘 혼돈의 세월을 참으로 많이 보낸듯 합니다
              주님이 디자인하신 바로 그교회를 지향하는데 고민하는 목회자요

              좋은 글 감사하요
              교회는 운동이기전에 살아나신 그리스도 몸 자체이시요 그분의 인격 그분의 영성을 담아 내야 하는데 어느것이 더 가까운지 노력하는 것이요

              주님이 지금 한국교회에 오시면 어느교회에 반갑게 방문하실른지 조심스레 목회할뿐이요

              미국에 헤이즈택 운동이 조선반도에 선교사를 보낸근본이 된셈인데
              작은 불씨가 되었으면 합니다
              또 봅시다 건승을 기도하요   삭제

              • voice 2007-04-21 16:47:57

                주안에서 안병만 목사님!
                오랜만입니다. 저의 글에 댓글 주셔서 감사합니다.
                제가 목사님의 글에서 파악한 중심은 이번 나눔의 목적이 전통이 아닌 성경적 신학적 역사적 이해를 하려는 노력이라고 생각합니다. 여기서 전통은 개혁교회 혹은 장로교회의 교리적이고 고백적 관점을 의도하신 것 같습니다. 그러나 교리적이며 고백적 관점이 성경적이며 신학적이고 역사적 관점의 총체이지 않을까요? 그것이 틀리거나 미비하다고 판정되기 전까지 말입니다.
                가정교회 운동은 실제보다는(운영의 적절함에 균형을 가질수 있다고 봅니다) 그 운동을 개념화하는데 충돌을 가지고 올 수 있습니다. 어떤 영향력있는 새로운 운동이 자기를 설명하고 전파할 때 개념화나 일반화를 필요로 하는데, 여기서 현실의 영향력을 바탕으로(열매나 운동의 파급효과) 너무 쉽게 그 운동의 정의들을 내려감으로, 기존의 가치나 질서들에 충돌이 될 가능성은 아주 많이 있습니다. 그러나 반대로 너무 조심하면 운동력이 사라질 수도 있지요. 어려움이 있습니다. 그래서 교회적 살핌이 필요합니다. 이 포럼의 결과가 각급 치리회들에게 좋은 자료가 공급되도록 마지막 리포트 작성까지에도 신경을 써 주시기를 바라봅니다.
                좋은 나눔들이 되기를 기도하겠습니다.   삭제

                • 안병만 2007-04-21 09:14:11

                  이세령 목사님!

                  멀리서 한국교회와 미포와 코닷에 깊은 관심을 가지고 기도하시면서 좋은 글을 올려 주심에 대해 깊은 감사를 드립니다.

                  미포 세미나를 이삼일 앞두고 '가정교회'에 대한 자신의 견해는 많은 목회자들에게 공감을 주기에 충분하고 이 문제에 대한 논의와 토론에 좋은 조언이 될 줄로 생각합니다. 우리가 살펴 보고 논의 하고자 하는 관점은 전통에 입각한 접근이 아니라 성경과 신학적인 관점 그리고 역사적인 관점에서 가정교회에 대한 현재의 문제점들을 집어 보기를 원하는 것입니다. 저는 개인적으로'가정교회'라는 컨셉 보다 명칭에 대한 오해가 많다고 생각합니다. 그리고 그 명칭은 가정교회 사역에 소외된 사람들에게 빌미를 제공해 주는 하나의 단서가 되고 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습니다. 우리교회는 가정교회의 컨텐츠를 살리면서 명칭을 '사랑방'이라고 하여 '교회'라는 오해를 사지 않도록 하고 있습니다.

                  하여튼 이번 세미나를 통해서 우리교단 뿐 아니라 한국교회에 불고 있는 '가정교회'에 대한 방향이 어느정도 설정이 될 것이라고 생각하고 관심 있는 분들의 참여와 좋은 글들이 많이 쏟아 지기를 기대해 봅니다.

                  이목사님! 교회 사역에 많은 열매 있기를 기대하고요, 샬롬을 전합니다.


                  열방지기 안병만목사   삭제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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