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표준’이란 개념의 주석적이며 신학적 고려점들이 있다.

 

교단 60주년 기념으로 표준주석을 내기로 했다는 코닷의 기사를 보고 남아공의 김재수 선교사가 '표준'이란 표제가 주는 기대와 우려를 표명하는 글을 보내왔다. 사실 표준 이란 단어를 다른 교단에서 사용했기에 우리 교단은 다른 명칭을 사용할 예정이다.

그래서 가칭 표준이다. 그러나 단어를 피한다고 해서 우려가 사라지는 것이 아니다. 교단의 공식 입장이라는 관점이 유지되기에 생길 수 있는 문제를 지적한 독자의 입장을 잘 살펴서 나누기를 원한다. 코닷 연구위원장 이세령

▲ 김재수 목사 남아공선교사
교단에서 주석을 발간한다는 소식을 들었을 때 필자는 긍정적으로 생각하였다. 그 이유는 우리 교단이 한국교회를 위하여 성경번역과 주석을 해야 할 때가 되었다고 생각하고 있었기 때문이다.

 최근의 성경해석학에서 해석자의 위치가 아주 중요하게 인식되고 있다. 성경해석학자들이 일반적으로 언급하는 해석에 필요한 요소들은 원저자-본문-해석자-독자들이다. 고신 교회가 정체성을 드러낼 수 있는 주석을 발간한다는 것은 세계 교회사에서도 아마 드문 일이라 생각한다. 그런데 고신교회가 “하나의 주석”이 아니라, 가칭이란 전제조건을 붙였지만 “표준주석”을 발간하겠다고 공표하였다. 고신 목사들이 기준이 없이 형형각색으로 선포하는 설교를 지양하고, 대신에 안심하고 참조할 수 있는 가칭 “표준주석”을 발간하겠다는 것이 표준주석 발간의 동기이며 이유이다. 그러나 과연 표준주석이 가능한가라? 이에 필자는 “표준”이란 단어의 어미 (의미론적 관점) 와 그 단어가 사회 혹은 청중에게 미치는 힘 (화용론 관점, pragmatics) 의 관점에서 필자의 답을 제시하고자 한다. 

일반 사전에 의하면 표준이란 ‘기준 standard’ 혹은 ‘평균 average’ 을 의미한다. 그리고 편찬위원의 설명을 필자가 정의하면 표준이란 극우도 극좌도 아닌 ‘중도 middle' 를 의미한다. 이는 평균이란 의미와도 같다고 할 수도 있겠다. 기준이란 의미에서 표준이란 용어의 화용론적 의미는 절대성이며 모든 논란 종식이다. 평균 혹은 중도란 의미에서 표준이란 용어의 화용론적 의미는 최대의 공통분모이다. 그런데 표준이란 용어는 우리들의 일상 사회에서는 공통분모라는 개념보다는 기준이란 개념으로 더 사용이 된다. 대부분의 경우에 표준이 공통분모이다라는 개념은 수학이나 통계학이 필요로 하는 분야에서 전문용어로 사용된다. 

위에서 언급한 것을 고려하면, 교단이 발간하려고 하는 주석은 비록 가칭이지만 표준주석이다. 이 표준이란 용어 때문에, 교인들은 ‘하나의 해석’으로서가 아니라 절대적인 힘을 가진 ‘규범적인 해석’으로서 표준주석을 이해할 가능성이 많다. ‘참조할 수 있는 주석’을 발간하였다 하더라도 표준 주석은 참고서의 수준을 넘어서 교과서가 될 것이다. 그리고 표준주석이란 용어는 해석역사에 있어서 좀 처럼 찾아볼 수 없다. 이것을 고려하여 다음과 같은 두 가지 이유 때문에 필자는 표준주석이란 용어를 사용하는 것을 반대한다. 

첫째 주석이란 본질적으로 나타나는 다양성 가운데서 주석가의 관점에서 가장 합당한 것을 발견하는 것이다.

가장 합당한 것이라고 해서 절대성을 가지는 것은 아니다. 또한 가장 합당한 것은 (최대) 공통분모일 가능성은 있지만 이를 확인할 수는 없다. 그렇기 때문에 주석에서 표준주석이란 용어를 사용할 수가 없다. 표준주석을 하겠다는 것은 마치 여러 개혁주의 학자들이 쓴 주석들 가운데 단지 한 두권을 선정하여 그것을 표준주석이라고 이름 붙이는 것과 비슷하다. 다르게 표현하면 성경의 핵심 주제가 여러 가지임에도 불구하고 ‘성경의 표준이 되는 주제는 하나님 나라이다’ 라고 정하는 것과 마찬가지이다. 표준주석을 발간하겠다는 것은 마치 ‘마태복음을 왕의 복음으로 이해하는 것이 표준이다’ 라고 정하는 것과 같다. 

성경 해석자가 성경을 책임성 있게 해석하는 것은 당연한 일이기 때문에 ‘책임 있는 해석,’ 혹은 ‘문맥에 타당한 해석’이란 용어들은 자주 사용하고, 또 지금도 사용되고 있지만, 표준해석 혹은 표준주석이란 말을 학계에서 들어 본 적이 없다.  

둘째는 표준주석이 발간되었을 경우 교회에 미치는 영향을 고려해야 한다.

표준주석이 출간이 되면 그 다음에는 이 서적이 배포되어 읽혀질 것이다. 그러나 이 순간부터 ‘표준’이라는 용어 때문에, 독자들이 표준주석을 규범의 수준을 넘어서 “영감된 책”으로까지도 간주할 수도 있다. 그 결과로 설교자와 청중들 사이에 있을 신학 논쟁은 표준 주석을 무리없이 따른다면 사라지든지 줄어들 것이다. 그러나 이와는 달리 주석대로 설교하지 않았을 경우에 생길 신학논쟁을 교회는 피할 수 없을 것이다. 교회에서 일어나는 신학논쟁의 대부분은 설교로 인한 것이다. 그렇게 되면 ‘표준주석’은 개 교회에서 설교자의 신학검증의 장소가 될 것이다. 그래서 설교자들은 논쟁을 피하기 위해서 표준주석을 사용할 수 밖에 없고 그 결과로 교단은 시간과 돈을 들이고 전문가를 투입하면서까지 전 교인을 21세기의 “신 바벨론 포로”로 만드는 열매를 거둘 것이다. 

그래서 어떤 분은 “총회 표준 주석이 행여 성경해석과 적용의 다양성을 무시하고 획일적인 것을 강요하는데 이용되는 것은 아닌가?”하고 우려를 나타냈었다. 아주 강한 리더십을 요구하는 경우에 표준주석이 어용의 목적으로 사용될 수도 있겠지만, 일반적인 교단의 사업으로는 ‘표준주석’ 이라는 제목이 적합하지 않다.

 필자는 주석발간을 환영한다. 유익이 많기 때문에 이를 적극 환영한다. 그러나 표준주석을 발간하는 것은 반대한다. 의미론적으로 (이론적으로) 그리고 화용론적으로 (실천적으로) 표준주석 발간을 필자는 반대한다. 그러나 표준주석이 아닌 강추할 수 있는 주석발간을 환영한다. 명칭만 변경하면 될 것 같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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