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변종길 교수 고려신학대학원신약학
고신 교단이 추진하고 있는 가칭 <표준주석>은 어떤 모습을 띠어야 할 것인가? 구체적으로 어떻게 집필되어야 할 것인가? 이에 대해 필자는 몇 가지를 생각해 보고자 한다.  

1. 개혁주의적 주석이 되어야 한다. 

우리 교단에서 나오는 <표준주석>은 무엇보다도 개혁주의적 주석이 되어야 한다. 그렇지 않다면 굳이 작은 교단에서 따로 주석을 내어놓을 필요가 있으냐 하는 질문이 제기될 수 있다. 시중에는 이미 많은 주석들이 나와 있다. 한국의 주석들뿐만 아니라 외국의 주석들도 많이 번역되어 있다. 또한 통합측에서는 <표준주석>을 현재 출판하고 있으며, 복음주의신학회에서도 주석을 내어놓을 것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 교단에서 주석사업을 하는 이유는 우리에게는 우리 나름의 신학이 있기 때문이다. 성경을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믿는 신앙의 토대 위에서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고 해석하기를 원하기 때문이다. 고려신학교가 비평신학과 자유주의 신학을 반대하여 설립된 것처럼, 고신교단은 순교자들의 신앙을 이어받아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받아들이고 그 말씀대로 생활하기를 원했던 것이다. 그러기 위해서는 성경의 뜻을 바로 알아야 하며 올바른 성경해석을 가져야 한다. 특히 비평적 성경해석이 판을 치는 현 세상에서 무엇이 올바른 해석인지, 어느 견해가 개혁주의적 견해인지를 밝히 보여주는 주석이 필요하다.

이런 점에서는 박윤선 박사의 <성경주석>이 큰 역할을 했다고 본다. 오늘날 기준에서 볼 때에는 너무 간단하고 빠진 부분들이 많이 있지만, 그래도 개혁주의적 성경해석이 무엇인가를 제시해 주었으며 한국교회 설교자들을 위해 큰 도움을 준 주석이었다. 이런 주석이 있었기 때문에 한국교회는 과거에 건전한 성경해석의 토대 위에 굳게 설 수 있었다. 그러나 오늘날에는 비평적 견해들이 많이 퍼져 있으며 개혁주의가 아닌 해석들이 많이 있어서 대단히 혼란스럽다. 따라서 이런 시점에서 고신교단이 추구하는 <표준주석>은 무엇보다도 설교자들과 성도들에게 올바른 성경해석을 제시해 주는 주석이 되어야 할 것이다.  

2. 주해가 충실하고 도움이 되어야 한다.  

우리 교단에서 추진하고 있는 <표준주석>은 또한 주해 부분이 충실하고 독자들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 곧, 성경의 어려운 구절이나 단어와 표현들에 대해 간결하지만 도움이 되는 설명이 있어야 할 것이다. 이것이 주석의 본래 목적이라고 할 수 있다. 설교자나 성도들이 주석을 찾는 첫째 이유는 성경에서 모르는 부분, 어려운 부분에 대해 답을 얻기 위해서이다. 그래서 주석을 사서 찾아보는데, 만일 그 부분에 대한 설명이 없다면 독자는 실망하게 될 것이다. 그런데 오늘날 주석들에 보면 학적인 것에 대해서는 복잡하게 설명이 많지만 막상 성도들을 위한 설명이 없거나 빈약한 경우가 많다. 그래서 실질적인 도움이 되지 않아서 주석을 외면하는 목회자들과 성도들이 많다. 따라서 우리 교단이 내놓을 <표준주석>은 목회자든 평신도들이든 독자들이 궁금해 하고 알고 싶은 부분이 있어서 찾아볼 때에 그것에 대한 적절한 답이 설명되어 있어야 할 것이다.

 예를 들어 한번 생각해 보자. 통합측에서 진행하고 있는 <표준주석> 시리즈에서 제일 먼저 나온 것은 <민수기>이다. 이 책에서 ‘주석’ 부분은 전반적으로는 간결하고 짜임새 있다는 생각이 든다. 그러나 필자가 볼 때에는 너무 ‘단락 해설’ 중심이고 각 구절에서 ‘중요한 ‘단어’에 대한 해설이 적다. 편집위원장의 발간사에 보면 “또한 각 절이 아닌 단락별로 주해를 하여 전체적 파악을 도왔다.”(p.5)고 말한다. 이런 방식은 물론 장점을 가지고 있기는 하지만 또한 단점도 가지고 있다. 그래서 막상 몇 절의 어떤 단어나 어떤 부분이 궁금해서 찾아보면 없는 경우가 많다. 예를 들면 민수기 12:1의 “모세가 구스 여자를 취하였더니”는 것은 여러 가지로 의문을 자아내는 구절이다. ‘구스’는 어디이며 ‘구스 여자’는 누구인가? 모세의 아내 십보라가 살았을 때 취하였는가? 아니면 죽고 나서 취하였는가? 이에 대해 이 주석은 아무런 설명이 없다.

또 11:3의 ‘다베라’가 어디인지 궁금하여 찾아보았더니 언급 자체가 없다. 11:7의 ‘만나’에 대해서도 어원 설명이 없다. 그래서 막상 성경을 읽다가 궁금하여 찾아보는 사람에게는 실망이 많을 것 같다. 이것은 단지 이 주석만 그런 것이 아니라 오늘날 주석들이 대개 그러하다. 의외로 예전의 주석들에 비해 깊이가 없고 단어 설명이 부족한 경우가 많다. 이런 점에서 통합측의 <표준주석>도 너무 간단해서 독자들의 요구를 다 채워주기는 힘들 것 같다. 이런 점을 참고하여 우리 교단의 주석은 실제로 목회자들과 평신도들에게 도움이 되는, 본문 주해가 간결하지만 충실한 주석이 되어야 할 것이다. 

3. 적용이 강화되고 목회자에게 도움이 되어야 한다.  

우리 교단에서 추진하고 있는 <표준주석>은 또한 ‘적용’이 강화되어서 성경이 실생활에 적용되는 말씀이 되도록 도와주는 주석이 되어야 할 것이다. 이를 위해 각 단락별로 ‘본문 주해’가 끝나면 ‘교훈과 적용’을 싣도록 하고 있다. 이 부분은 본문 주해 작업의 결과로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를 찾아서 간단히 요약해 주고, 또한 오늘날 우리의 삶에 ‘적용’할 수 있도록 도와준다. 이것을 통해 독자는 ‘본문 주해’에서 개별적으로 알았던 지식들을 모아서 그 단락이 주는 ‘교훈’이 무엇인지를 종합적으로 이해하게 되고, 나아가서 실제 생활에 ‘적용’할 수 있다.

이 부분은 특히 설교를 준비하는 목회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래서 가능한 한 ‘교훈과 적용’을 세 개 정도로 해서 설교에 직접적인 도움이 되도록 하고 있다. 이전의 서양 주석들은 대개 ‘본문 해석’만 복잡하게 하고서 그것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았다. 서양의 주석들은 오로지 본문의 의미를 찾기 위해 지식적으로만 접근하고 끝나는 경우가 많다. 뿐만 아니라 학자들의 관심사를 따라 여러 견해들을 복잡하게 논의하는 경우가 많다. 그래서 ‘성경에 대한 주석’이라기보다도 ‘주석에 대한 주석’인 경우가 많았다. 그래서 오늘날 우리의 삶에의 ‘적용’은 아예 없거나 고려되지 않은 경우가 대부분이었다.

그러나 성경은 단지 과거의 ‘역사서’가 아니라 오늘날 우리에게 말씀하시는 ‘하나님의 말씀’이기 때문에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있다(롬 15:4, 왕하 22:13). 따라서 우리는 이 ‘교훈’을 찾아야만 성경해석을 제대로 했다고 할 수 있으며, 이 ‘교훈’(다르게는 ‘영적 의미’라고 부를 수도 있다)을 찾기 전에는 성경해석이 끝났다고 할 수 없다. 이런 점에서 우리 교단의 주석에서 ‘교훈과 적용’을 넣는 것은 대단히 의미 있다고 생각된다. 

물론 최근에 나오는 주석들은 이 ‘적용’ 부분을 보완하고 있는 경우도 많다. 통합측에서 나온 <표준주석 민수기>에 보면 ‘설교를 위한 묵상’ 부분이 제법 길게 써져 있다. 그런데 전체를 하나로 묶어서 서술하기 때문에 좀 장황하게 느껴진다. 앞에서 주석한 본문 전체에 대한 ‘묵상’이라고 하는데, 그 성격이 모호하게 느껴진다. 본문이 오늘날 우리에게 주는 ‘교훈’도 아닌 것 같고 ‘적용’도 아닌 것 같다. 그냥 주석 집필자가 다시금 본문을 요약하고, 거기에 집필자가 느낀 ‘소감’을 적은 것 같다. 그리고 무엇을 위한 묵상인지도 분명하지 않다. ‘설교를 위한 묵상’이라 한 것을 보니 ‘설교’를 돕기 위한 것으로 보이지만, 본문이 30~40절이 넘는 것도 많아서 과연 설교자에게 도움이 될지 의문이다. 그리고 그 묵상의 내용도 설교자에게 약간은 도움이 되겠지만 많은 도움이 될지는 의문이다.

물론 구약이라서 주해 본문이 길다고 생각되지만, 신약의 경우에는 본문을 더 짧게 잡아서 실제로 설교하기에 적당한 본문을 택해서 주석하고, 그 끝에 ‘교훈과 적용’을 붙이되 번호를 붙여서 1. 2. 3. 으로 간결하게 했으면 좋을 것 같다. 우리 교단에서 준비 중인 <표준주석>은 이런 점을 고려하여 목회자들에게 실제로 도움이 되는 주석을 내놓으려고 준비하고 있다. 

4. 독자의 편의를 고려하여야 한다.  

그 외에도 독자의 편의를 고려한 주석이 되어야 한다. 이를 위해 고신교단의 <표준주석>은 형식면에서 몇 가지 특징을 가지고 있다. 우선 내용을 따라 큰 단락을 나누는데, 이 단락은 성경의 장(章)으로 한 장 또는 그 이상이 될 수도 있다(경우에 따라 그보다 적을 수도 있다). 어쨌든 큰 단락으로 나누고, 그 단락의 첫 부분에 ‘본문의 개요’를 설명한다. 이어서 그 단락 전체를 한 눈에 파악할 수 있도록 ‘내용 분해’를 싣는다. 이런 ‘개요’와 ‘내용 분해’는 본격적인 본문 주해에 들어가기 전에 큰 단락의 주제와 내용을 파악하는 데 도움이 될 것이다.

그리고 나서 ‘본문 주해’로 들어가는데, ‘본문 주해’는 다시 몇 개의 ‘소단락’으로 나누어진다. 이 ‘소단락’은 목회자들이 실제로 설교 시에 채택하기 좋도록 7~15절 정도로 구성되어 있다. 물론 절 수는 내용과 형편에 따라 좀 줄어들 수도 있고 더 늘어날 수도 있다. 어쨌든 ‘소단락’을 잡을 때부터 설교자들을 고려한다는 사실이 중요하다.

그리고 ‘소단락’에서는 첫 부분에서 다시 간략하나마 그 소단락의 개요를 적고 나서 ‘주해’에 들어간다. ‘주해’는 한 절 단위로 끊어서 할 수도 있지만, 내용상 연결되는 절들은 2~3절 또는 그 이상씩 묶어서 한다. ‘주해’는 앞에서 말한 것처럼, 오늘날 한국의 목회자들과 성도들에게 의미가 없는 학적 논의나 복잡한 설명들은 가급적 삼가고 실제로 도움이 되는 설명들을 제공하고자 한다. 그러기 위해서는 어려운 단어나 중요한 단어에 대해 간결하지만 깊이 있는 설명을 하고, 또 어려운 표현이나 구절 전체에 대해 그 의미를 설명한다. 헬라어와 히브리어 사용은 가능한 한 자제하되, 주해상 필요하다고 생각되는 경우에는 한글 음역과 함께 원어를 표기하도록 하였다. 그리고 각주 사용은 가능한 한 억제하되, 꼭 필요한 경우에는 책 뒷부분에 미주(尾註)로 처리하기로 하였다.

‘본문 주해’가 끝나고 나면 앞에서 말한 것처럼 ‘교훈과 적용’이 있어서, 주해를 통해 그 본문에서 발견한 ‘교훈’을 다시 간결하게 제시하고 오늘날 우리의 삶에 ‘적용’을 하게 도와준다. 이 부분은 직접 설교를 하는 목회자들에게 큰 도움이 될 것이며, 또한 평신도들에게도 본문의 다소 어렵고 산발적일 수도 있는 주해 내용을 요약 정리해 줌으로써 본문 이해에 많은 도움이 될 것으로 기대된다.  

물론 이러한 기대가 다 충족될 수 있을지는 현재로서는 알 수 없다. 우리 교단의 역량으로서는 다소 버거운 것도 사실이다. 하지만 위에서 제시한 방향으로 나아가고 집필자들이 힘써 노력한다면, 그래도 뭔가 의미 있고 특징 있는 주석이 되리라 기대해 본다. 이를 위해서는 하나님의 도우심과 인도하심이 필요하다. 따라서 온 교단이 공적으로, 사적으로 이 주석사업을 위해 기도하는 것이 필요하다고 생각된다. 그래서 한국 교회 역사상 의미 있고 좋은 주석이 우리 교단에서 나오기를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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