1.

▲ 양희송 대표 "다시 프로테스탄트" 저자 청어람 아카데미 대표기획자
이 원고는 예장 고신 미래교회포럼의 세미나를 위해 준비되었다. 원고는 크게 3부분으로 이루어지며, 첫부분은 이 논의의 토대를 이루는 졸저 [다시, 프로테스탄트]의 기본 문제의식과 내용을 간략히 요약하는 것이다.[1] 두번째 부분은 이 논의에 좀더 심층적 논의가 필요한 부분을 중심으로 논의를 심화시키고, 마지막으로 구체적 적용점들을 모색해 본다. 

 

2.

한국교회가 위기국면을 맞고 있다는 것은 누구도 부인할 수 없으나, 그 실체를 규명하고, 그 위기의 구조를 해명해보려는 시도는 그다지 성공적이지 않았던 듯 하다. 위기에 대한 자의적 규정은 적절한 대안도출에 실패하고, 그 결과로 위기에 대한 불감증이나 막연한 긍정적 사고로 이어지기 일쑤이다. 나는 한국개신교의 위기상황이 단순치 않으며, 그 핵심은 지난 30년간 개신교를 이끌어온 주도적 패러다임의 시효가 만료되었기 때문이라고 본다.[2] 그리고, 지난 시기 패러다임이 더 이상 유효하게 작동하지 않는 양상을 2005종교인구 센서스자료를 통해 정량적 분석을 해보았고, 2007년 한 해에 벌어진 상징적 사건들을 통해 정성적 분석을 시도하였다. 만약에 이런 분석이 틀린 것이 아니라면, 지금 한국개신교가 대사회적으로나 대교회적으로 내보이고 있는 행태는 현재의 상황에 대한 잘못된 인식과 진단에 기반한 부적절한 것이 될 가능성이 높고, 이는 기대와는 달리 개신교의 상황을 개선하기 보다는 악화시킬 여지가 더 큰 것으로 보인다.

 

나는 기본적으로 교계중심 패러다임기독교사회중심 패러다임으로 이동해야 한다고 보는 입장인데, 이는 책의 후반부에 공룡이 되고자 하는 열망의 분출이 아니라 개신교 생태계를 창출하는 방식으로 논의가 수렴되어야 한다는 것으로 반복해서 강조했다. 이런 현재상황 인식의 바탕에는 성직주의’, ‘성장주의’, ‘승리주의란 세가지 핵심 문제가 자리잡고 있다는 생각인데, 이는 각각 목회자론, 교회론, 선교론과 대응한다. 그리고, 한국 개신교가 이 문제를 이런 방식으로 앓고 있다는 것은 종교개혁의 핵심적 가치가 전면적으로 거부되고 있거나, 종교개혁을 둘러싼 역사적 교훈에 대한 무지에 기인한다고 보아 이 모든 양상을 곧 개신교성에 대한 일탈로 규정할 수 있다고 생각한다 

 

3.

책의 내용 및 이어진 후속 토론 과정에서 부각되는 주제와 몇 가지 양상을 짚어 보는 것이 필요할 것 같다.

 

1) 한국에서 개신교 목회직은 지속가능성(sustainability)이 있는가? 책에도 언급하였듯, 문화관광체육부의 2012년 통계로 14만 목회자, 78,000 개 교회(그나마 이는 230개 교단 중 110개소의 자료만 제출 받아 나온 통계이다)는 과포화 상태이다. 2011년 말 현재 전국의 편의점이 2만개란 통계와 겹쳐보면, 그 생존에 대한 압박을 짐작하고도 남는다. 여기에 신학교 정원 조정 등 목회자 수급에 관련된 정책이 작동하고 있지 않은 현실은 목회자의 직업적 미래를 완전한 암흑 속으로 몰아넣고 있다. 누차 말하듯, 개척교회 현실은 한국사회 자영업자 위기와 궤를 같이 하고, 부교역자 신분은 비정규직 문제이고, 신학생은 청년실업 상황이다. 한국사회 전체적으로 노동과 고용의 문제를 겪는 것과 다르지 않다.

 

사실상 현재 벌어지는 허다한 문제들, 세습, 청빙, 교회 매매, 원로목사, 퇴직금 문제 등등은 냉정히 보아 한 직업의 지속가능성이 무너질 때 필연적으로 등장하는 사안들이다. 이것은 구조적 문제들이고, 구조적 문제는 구조의 차원에서 대응해야지 개인의 노력으로 극복하라는 것은 무책임한 말이다. 그리고, 이 사안들은 엄밀히 보아 직업적 목회자들 세계의 문제이지 성도들의 문제가 아니다. 이렇게 문제가 빈발하고 대책이 허술하다면, 조만간 성도들은 교회정치와 교단의 존재양상에 대한 전면적 불신임을 행사할 가능성이 있다. 현재의 교단 체제는 그런 반발을 감당할 역량이 있을까? 개혁적 조치들이 선제적으로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해결할 문제들의 우선 순위에 대한 합의가 이루어지지 않는다면 제도의 위기가 눈 앞에 다가와 있는지 모른다.

 

2) 개별 교단 차원에서 그나마 대책마련이 가능한 사안이 있는 반면, 개신교 전체가 함께 해결할 문제들이 있다. 기본적으로 평판(reputation)’의 문제는 개별적 사안이 아니라, 집단 전체에 대한 신뢰의 문제이다. 이 부분은 아마도 상당기간 개선되기 보다는 악화될 가능성이 높다. 교계 연합기구에 대한 불신과 냉소는 과거 어느 때보다 높고, 이에 대한 개선은 난망한 경우가 대부분이다. 대형교회들은 여기에 각종 송사, 스캔들, 세습, 설화 등등으로 내부 단속에 급급한 상황이다. 불특정 다수의 교회를 통해 평판을 개선하기란 매우 어려워 보인다.

 

여기에는 오히려 개신교 단체나 개인들의 탁월한 기여나 활동을 통해 사회적 평판이나 신뢰도가 개선되는 방식이 훨씬 나을 것 같다. 내가 주목한 개신교 생태계의 형성이 이런 면에서는 훨씬 효율적인 방안이 될 것이다. 한두 개의 대표 교회가 아니라, 교회들간의 네트워크가 중요하게 전면에 부각되는 방식으로 교회 생태계를 구성하는 전략, 성도들이 느끼는 결핍을 해소하는 연구기관과 교육기관이 등장하고, 이를 잇는 언론과 출판의 강화로 지식 생태계를 형성할 수 있다. 또한, 한국사회와의 화해와 협력을 형성하는 데에는 시민사회의 풀뿌리에 이미 자리잡고 있는 지역교회가 시민사회와 시민운동의 모판으로 제 역할을 감당하는 시민 생태계역할을 유능하게 해줄 수 있다. 나는 이런 방식이 전략적이고 효율적이며, 이를 통해 지역교회가 세상 속의 자리매김을 해나가는데 즉각적인 도움을 줄 수 있을 것이라 생각한다.

 

3) 교회를 떠난 이들은 어디로 가나? 통계적으로 개신교인은 줄고 있지만, 현상적으로 그 감소는 고르게 나타나지 않는다. 2005년 인구센서스에서 나타나는 바, 개신교인의 존재감은 수도권에서는 전국 평균보다 높게 나타남으로써 과잉대표 되고 있고, 지방에서는 소수 종교로 위축된 양상이 나타난다. 또한, 10, 20, 30대가 감소하고, 40대를 넘어서야 증가 양상이 나타난다. 이를 이미지화 하자면, 개신교는 수도권 거주 40대 아저씨로 대변된다고 말할 수 있다. 수도권에서도 개신교 내부의 이동 양상에서 양극화 현상이 벌어진다. 교회 갈등이나 분규를 겪으며 이탈한 성도들은, 일부는 비슷하거나 더 나은 형편의 교회로 이동하고 신속하게 자리를 잡으려는 경향이 있어 앞으로도 중대형 교회 가운데에는 꾸준히 메가쳐치가 등장할 가능성이 있다. 반면에 중소형 교회는 점점 더 취약한 처지에 놓일 가능성이 크다.

 

교회 나가기를 멈추는 부류도 적잖게 증가하고 있다. 나는 이들을 일컬어 가나안 성도라고 부르자는 제안을 했다. (‘가나안은 거꾸로 하면 안나가란 뜻으로, 교회에 나가지 않는 그리스도인을 일컫는다.) 이들은 통상적으로 생각하는 교회 탈락자는 곧 신앙 탈락자란 등식이 성립하지 않는 경우이다. 역설적으로 신앙 양심을 지키기 위해 교회를 나가지 않는다는 입장이 성립하는 경우이다. 이런 사례는 영국이나 미국 등지에서도 종종 나타나며, 그들은 이를 주목할만한 사례로 여겨 신학자들이 연구하거나 실험적 사역을 시도하기도 한다. (영국의 포스트-에반젤리칼(post-evangelical)’ 운동이나, 미국의 이머징 교회(emerging churches)’, ‘신 수도원운동(new monasticism)’ ) 나는 한국 개신교가 자기변신을 위해서는 이들에 대한 이해와 접근이 절대적으로 요청된다고 본다.

 

결국 개신교의 전략은 어떻게 이탈을 줄이고, 유입을 늘릴 수 있는가를 묻는 일이 될 터인데, 일차적으로는 약한 고리(10-30, 지방)에 대한 적극적 사역전략이 제시되어야 한다. 그런데, 상황이 이렇게 된 것은 개신교가 다른 종교에 비해 훨씬 더 한국사회의 흐름에 성공적으로 적응한 때문일 수 있다는 점에서, 취약한 지점을 강화하려면 그간 당연시해 온 흐름 전반을 거스르고, 되짚어서 반성하는 일이 필요하다. 탈서울/도시, 탈중년, 탈남성 등의 방향성이 모색되고, 그 기조 위에서 전략이 수립될 필요가 있다. 그리고, 좀더 나아가면 개별 교단의 범위를 넘어선 지식 생태계문화 생태계조성이 시급한 과제가 될 것이다. 예를 들면, 기독교 출판이나 언론이 내부적으로나 사회적으로 제기되는 질문들에 적절히 대화하는 역량을 갖고 있지 못하다. 인문학적 기반은 이제서야 선도적 기관들의 활동으로 기반이 형성되는 과정에 있는데, 이런 움직임이 교회 내부의 흐름과 원활히 연계되는 것은 또 다른 차원의 문제일 것이다.

 

4) 신학교와 신학교육의 문제를 어떻게 풀 것인가? 교단 신학교가 교단 목회자 양성이란 일차적 목표 외에 대사회적-대교회적 질문에 대한 신학적 대답을 제공하는 데에 매우 모자람이 많다. 학자들의 자기검열이 일단 강하고, 현안에 대한 접근 통로가 막혀있는 경우가 많다. ‘공적 신학자(public theologian)’ 역할을 하는 이가 보이지 않고, 현안에 대한 입장은 익명의 성명서 뒤로 다 숨는다. 교회 내의 성도들의 인문학적-신학적 요구와 기대치도 점차 높아지고 있다. 대중적 신학교육의 문제를 어떻게 해소할 것인가에 대안이 있어야 할 것으로 본다. 지난 7년간의 청어람아카데미 운영 경험에 비추어 보건대, 이 문제를 푸는 것은 다층적이고, 동시다발적으로 진행되어야 할 필요가 있는데, 이를 교단 신학교의 역량 만으로 풀기에는 제약이 많다. 한 기관에 백화점식으로 망라하기보다는 여러 아카데미나 연구기관의 클러스터(cluster)나 네트워크를 가동하는 방식으로 작고 강한 단체들의 연대란 방식이 가장 유효적절할 것으로 본다 

 

4.

현재 진행중인 구체적인 사안 몇 가지에 대한 처리 문제를 언급해 본다.

 

1) 세금 문제 어떻게 풀 것인가? 교계에는 목회자 납세 문제가 여전히 쟁점이 되고 있다. 그러나, 소득이 있는 목회자 개인이 납세를 피할 명분은 별로 없다. 다만, 최근 정부와 지자체의 동향은 이보다 더 포괄적인 세수 확보 차원에서 움직이는 인상을 준다. 앞으로 종교단체의 (비업무) 부동산 소유, 수익활동 등 전반에 과세 논란이 있을 것으로 보인다. 이 과정을 통해서 명료해져야 할 것은 사회적으로 종교단체에 부여한 면세혜택의 근거와 범주이다. 미국의 경우, 종교단체는 비영리단체 등록을 하면 501(c) 3조에 해당하는 면세 혜택을 받는데, 여기에는 정치적 중립성유지의 의무가 있다. 한국의 종교단체 세금 정책은 정교분리란 헌법적 원칙이 어떻게 적용되는 것이 적절한지에 대한 심도 깊은 토론을 필요로 한다. 이것은 수동적으로 끌려서 하기보다는 선제적으로 주도하는 것이 백번 낫다.

 

2) 세습 문제, 어떻게 할 것인가? 흥미롭게도, 교계의 미온적 대처에 반해 사회적 여론은 일관되게 비판적이다. 보수언론이 이 문제에 있어서는 더욱 원칙적이고 강경한 비판을 가하고 있다. 사회적 여론을 가볍게 보면 안된다. 공공연히 북한, 재벌, 교회가 세습을 일삼는 3대 집단으로 꼽히는 것은 교계와 목회자 전체가 빠져 나오기 힘든 불신감에 빠진 꼴이다. 감리교의 사례도 있듯이, 각 교단마다 이를 명문화함으로써 이 문제를 풀어갈 단초를 만들어야 한다. 숭실대 영한 교수는 12세기 중세교회가 성직자의 독신제도를 명문화 한 것이 주교좌성당(Cathedral)의 세습 문제를 벗어나기 위한 것이었음을 들어 종교개혁 전 중세교회의 부패와 타락의 대표적 징표로 세습을 꼽은 바 있다. 세습은 세대교체를 풀어가는 교회 내 역량의 전면적 실패(청빙, 은퇴)를 자인하는 것이나 다름없다. 아마 오늘의 세습 문제도 당사자들에게는 그 인식이 없겠지만, 사회적으로는 이미 종교개혁의 필요를 가장 적나라하게 보여주는 그 이유(the reason)’으로 자리잡고 있을 것이다.

 

3) 목회자 윤리강령(ethical code)과 교회 분규 해결(conflict resolution) 장전을 만들어야 한다. 나는 사실 교단 총회나 노회가 이 문제를 잘 다룰 것으로 생각지는 않는다. 원칙이 아니라, 인맥으로 운영되는 경우가 다반사이다 보니, 교회 분쟁에서 노회가 문제해결 능력을 보여주는 경우는 매우 드물고, 직접 고소고발로 이어져 사법부로 넘어가는 경향이 심해졌다. 교회가 자신들 스스로의 윤리 문제나 분쟁에 매우 취약하다는 것을 보여주는 것인데, 이를 해결하는 초교파적 기구가 필요하다 생각된다. 평상시에는 교회가 가입하면 일종의 교회 건강성 인증기구로 활동하고, 교회는 정관과 더불어 윤리강령과 분규해결 장전을 교회 내규로 수용하는 것이다. 그리고, 문제가 생겼을 시 합의한 원칙에 따라 과정을 밟아가기로 하는 것이다. 일종의 사례와 판례가 축적되는 중립적 기구가 되는 셈인데, 교단 단위에서 이미 갖고 있는 제도와 기구들이 제 기능을 하지 못하기에 중립지대에 먼저 창설하고, 장기적으로는 그 축적된 노하우를 교단이 내부로 흡수함으로써 노회와 총회의 치리 및 문제해결 역량을 강화하는 것이 가능할 것이다 

 

5.

한국 개신교의 상황은 현상유지(status quo)가 힘든 수준이다. 가능한 자원의 전략적 재배치를 통해 개선할 수 있는 부분에서 가시적 성과를 만드는 것이 중요할 것이다. 이를 위해서는 성직주의’, ‘성장주의’, ‘승리주의에 대한 비판적 입장을 분명히 천명하는 것과 더불어 이를 극복하는 대안적 노력들이 연구되고, 실천되어야 한다. ‘개신교 생태계를 만들어내기 위한 교회 생태계에 얼마나 전진이 있을 것인지, 척박한 지식 생태계를 일구는 데에 개인과 집단 단위의 신앙공동체가 직접 참여할 필요가 있고, 세상과 접속하는 시민 생태계에도 전향적인 몸짓이 나와주어야 한다 


 


[1] 양희송, [다시, 프로테스탄트](복있는사람, 2012).

[2] 시민사회에서는 오랜 독재체제를 벗어나며 도래한 민주화 시대, 그에 동반된 헌법체계와 문화적 양상을 통틀어 87년 체제라 불렀고, 현재 한국사회가 87년 체제를 넘어서는 다음 체제를 모색하는 단계에 있다고 보고 있다. 나는 이에 상응하는 개신교권의 변화가 있었다고 생각하며, 교회의 성장과 목회양상, 선교운동의 등장, 대사회적 관계 등이 그 변화의 내용을 구성하고 있다고 본다. 이에 대한 자세한 논의는 차후 필요한 연구과제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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