철학자들이 말하는 신과 성경의 유일신은 다르다

▲ 김영수 장로 고신대前사무처장 부산부평교회
범신론 자들은 우주내의 각종 현상은 모두 하나의 보편적이며 절대적인 본질의 여러 가지 형태에 불과하다고 생각한다. 또한 이신론 자들과 합리주의 자들은 신과 피조물과의 관계에서 일련의 인과 관계의 시초가 될 뿐이라고 생각하기도 한다. 이들은 신은 피조세계의 시초에서 접촉하실 뿐이며, 만물에 영구한 독립적인 존재를 주어 자기밖에 두시고, 그들 자체의 기능을 발휘하도록 버려두고, 아무런 변경을 가하지 않는다고 주장한다.(A. A. Hodge,)

철학자들은 우주와 만물, 자연 현상들의 신비한 특이 사항들을 발견하고서는 신의 존재와 지배를 인정하면서 “추론과 가설의 신”을 설정한 것이었다. 이는 성경의 유일한 신이신 여호와 하나님과는 다른 신이다. 그럼에도 기원전 철학자들의 사상은 이후 기독교 철학자들이 플라톤주의와 아리스토텔레스주의 자들로 나뉘어 기독교를 논증(argument )하고 변증(dialectic)하는 방법으로 그 논법(論法)을 적용하기도 하고 도입했다는 사실이다. 기독교 철학자들이 저들의 논리와 이론들을 도입, 인용할 수밖에 없었던 가장 큰 이유가 있다면 모든 학문은 반드시 철학적 기초 정립과 접근이 필요하기 때문이었다. 따라서 대개의 논법 이론이나 원리 체계는 플라톤이나 아리스토텔레스가 정립해 놓은 이론에 대입시킬 수밖에 없었다는 점이라고 본다. 심지어 플라톤과 아리스토텔레스 이후의 철학 사상이나 이론들은 저들의 이론을 해석하고 설명하는 과정에 불과하다고 보는 견해가 지배적인데, 여기에는 기독교 철학자들 역시도 저들이 연구해 놓은 논법을 이용하여 기독교를 논증하고 변증했다는 점이다. 

1. 기원전 철학자들이 말하는 신 

플라톤 사상∣ 플라톤(BC 427~347)은 신(데미우르고스) 의 존재에 대한 “내재적 존재”의 필요성을 느끼지는 않았다. 오히려 “본체론적 세계”를 강조했다.

플라톤은 존재자와 생성 자를 구별함으로써 우주론을 제시한다. ⌈티마이오스-플라톤의 대화편⌋는 기원전 360년경 플라톤의 저작인데, 소크라테스와의 대화 상대자로 티마이오스, 크리티아스, 헤르모크라테스, 그리고 익명의 한 사람 사이의 이야기가 대화체로 쓰여 져 있는 우주와 인간, 혼과 몸 등에 대해 이야기하고 있다. 여기에서 플라톤은 우주의 창시자를 “데미우르고스”라고도 하였고 “구성한 이” 라고도 한다. 이런 어휘들은 장인이나 목수를 뜻하는 말이다.

플라톤은 추론을 통해 물질세계와 완전히 분리된 형상의 세계 즉, 이데아의 세계가 있을 것이라는 결론에 도달한다. 그는 이데아의 세계가“현실”이고 우리 주변의 세계는 그저 그 이데아의 세계를 본뜬 것이라고 주장한다. 그는 자신의 이론을 입증하기 위해 동굴의 비유(Allegory of the Gave)를 제시한다. 사람들은 태어날 때부터 어둠속 뒷벽에 묶인 채 갇혀있는 한 동굴의 현상과 같다고 주장한다. 그들은 오직 앞쪽을 향해서만 쳐다 볼 수 있는데, 동굴 속에 갇힌 죄수들의 뒤쪽에는 밝은 불이 있어서 그들이 묶여 있는 벽 쪽으로 그림자가 생기게 된다. 불과 죄수들 사이에는 이따금씩 사람들이 걸어 다니고 다양한 물체를 떠받칠 수 있는 성벽이 놓여 있어서 그 물체들의 그림자가 벽 위에 드리워진다는 것이다. 따라서 그 죄수들은 세상에 대한 개념이 전혀 없다는 것이다. (중략) 플라톤의 이런 사상은 어거스틴, 안셀무스, 데카르트에게 영향을 주었다고 보는 견해가 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논증∣ 아리스토텔레스(BC 384~322)는 플라톤과는 달리 신의 존재에 대한 모든“증명”은 “우주론적 논증”을 강조했다. 그에게 있어서 신은 제일운동자(Prime Mover)이며 목적인(目的因, Final Cause)으로서 필연적 존재(Necessary Being) 또는 최고의 존재(Highest Being)라고 보았다. 당시 우주는 하나의 시작점에서 생겨났다는 주장과 우주는 늘 존재했다는 이 두 주장으로 사람들은 나뉘어 있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은 “우주는 늘 존재하였으며 영원하다고 하였으며. 바위와 같은 무생물은 사람, 개, 말 등의 생물에 이르는 모든 것의 근원지가 되었다고 확신했다.”그리고 “우주는 계속해서 변화하고 움직이며, 또한 이는 오직 변화와 운동에 의해 일어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이런 사상을 아랍의 아리스토텔레스 주의자인 철학자 아비센나(A.D. 980~1037)와 아베로에스(A.D. 1126~1198)는 비록 이슬람의 정통에 맞지 아니하지만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을 기꺼이 받아들임으로 써 동료 이슬람교도들에게 배척을 당하기도 한다. 그럼에도 중세 유대교와 기독교 사상가들은 이 사상을 거부하면서 배격하려고 몸부림쳤다. 그 이유는 성경에서 “우주는 어떤 한 시점에서 발생했다.”고 하였기 때문이었다.  

아리스토텔레스의 무한성∣ 그에 따르면 “무한성은 한계가 없다.”고 한다. “각각의 수는 보다 높은 다른 수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수의 순서는 무한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우주도 마찬가지다.”고 하였는데, 이는 아리스토텔레스의 관점에서는“잠재적 무한”을 나타낸다.

그런데 이런 각각의 날들이 동시에 공존하지는 않는다. 따라서 무한한 수의 사물들이 동시에 존재하는 “실재적 무한”은 불가능하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시간과 날짜는 또 다른 시간과 날짜로 이어지고 있기 때문에 우주가 무한하다고 믿었다. 그는 플라톤의 주장과는 달리 인간이 죽으면 영혼도 소멸한다고 믿었다.  

2. 로마 가톨릭 철학자들의 사상 

알셀무스의 존재론적 증명 안셀무스(AD. 1033~1109, 대주교, 가톨릭철학자)는 신이 존재한다는 것을 거부하는 한 어리석은 자와 자신이 논증 을 벌이는 “상상”으로 신의 존재를 증명하고 설명하였는데, 이를 안셀무스의“존재론적 증명(Ontological Argument)”이라고 말한다. 그는 “첫째. 신은 그보다 더 위대한 존재를 상상할 수 없는 완전한 존재이고 둘째. 존재는 비존재 보다 더 월등하고 위대하다.”는 논리로서 신의 존재를 증명한다. 논쟁이 끝날 무렵, 어리석은 자가 이 두 가지 논제를 받아들이는 것에 의거하고 있다. 어리석은 자는 자신의 모순적인 태도를 인정하고 논증자의 의견을 수용(accept) 하거나 신이 존재하는 것을 인정할 수밖에 없게 된다.

이에 대해 18세기 칸트는 신의 존재를 마치 사물의 속성인 것처럼 다룬다고 비난한다. 칸트는 “정신뿐만 아니라, 실제로 존재하는 것이 정신에만 존재하는 것보다 더 좋다는 안셀무스의 말은 잘못 되었다.”고 반박하였는데, 다른 철학자들은 칸트의 주장에 대해서 또 반대했다.

동일한 가톨릭 사제이며 철학자인 토마스 아퀴나스는 안셀무스의 존재론적 증명을 신랄히 반박하기도 한다. 안셀무스의“존재론적 증명”사상은 주로 범신론자들인 데카르트와 스피노자가 수용하기도 한다. 

토마스 아퀴나스의 사상과 이단성 논란 이후 가톨릭 철학자 토마스 아퀴나스(AD. 1225~1274)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지지한다. 그는 기독교의 아리스토텔레스주의자로 분류되는 사람인데 아리스토텔레스가“우주는 항상 존재했다.”는 주장에 대해 “성경에는 우주가 항상 존재한 것은 아니라고 기록되어 있다.”고 말하면서도 “세상이 하나의 시작점에서 생겨났지만 신은 세상을 영원히 존재한 것처럼 창조했을 것이다.”라고 함으로 아리스토텔레스의 논리와 성경의 사상을 조합, 가미한 주장을 하기도 한다. 아퀴나스는 끝까지“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이 정말일지도 모른다.”고 함으로서 그의 관점이 잘못되었으나 원칙이나 추론에서 잘못된 것이 아니라고 말하므로 써 그의 철학을 존중했다. 무엇보다 아퀴나스는 생명체와 영혼에 대한 아리스토텔레스의 가르침을 따랐으며 그의 주장을 왜곡하는 것을 거부하였고 또한 인간은 “지성”이라는 하나의 “형상”을 지닌다고 주장한다.

아퀴나스가 세상을 떠나자마자 곧 그의 사상은 “이단자”라는 비난을 모면하지를 못했다. 이후 세속 철학자들까지도 일부 아리스토텔레스의 사상을 비판하게 되었고 아퀴나스의 관점을 비난하기에 이르렀다.

오늘날 신의 존재나 영혼의 불멸성과 같은 종교적 입장을 철학적 추론으로 입증할 수 있다고 믿는 철학자는 거의 없다. 그럼에도 자유주의 신학자들이 개혁 또는 정통이라는 미명(美名) 아래 도입, 시도된 성경해석학에 추론이나 가설을 적용한다는 것은 아주 위험한 발상이라고 할 수 있다.  

아리스토텔레스는 체계적이고 논리적인 연구에 관심을 가졌다. 반면 플라톤은 수평보다는 수직을 더 지향했으며, 원인적이기 보다는 직접적이었다. 그리고 논리적이기 보다는 수사학적인 면에 관심을 가졌다. 반대로 아리스토텔레스는 체계적이고 논리적이며 연역적인 연구에 관심을 가졌다.  

3. 성경의 유일신, 여호와 하나님 

칼빈의 삼위일체 교리칼빈은 기독교강요를 저술했는데, 1536년에 6장으로 구성된 라틴어 초판을 시작으로, 1543년에는 21장으로 늘어난 증보판을 출판한 후 1550년에는 약간의 내용을 보충한 증보판을 출판하였고, 결정판은 1559년판(라틴어)과 1560년판(프랑스어)이다. 기독교강요는 개혁신학의 지침서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저서는 역대 신학자들의 사상과 신앙체계를 오랜 세월을 지나면서 초안되고 다듬어진 것을, 비판과 검정 과정을 거치면서 이룩한 체계화된 것이다. 기독교강요는 오랜 동안 역대 신학자들의 신학과 사상체계를 재정리, 집대성한 개혁신학의 지침서라고 말할 수 있다. 이 저서는 한 순간에 이룩한 것이 아니다. 이 저서는 성경의 역사성과 일관성이 함께 깃들인 것으로서 오늘날 우리 개혁주의 교회들이 받아들인 칼빈 신학의 총괄 이론들이다. 칼빈의 삼위일체 교리를 요점만 정리해 보기로 한다. 

칼빈에 의하면, 참 하나님과 거짓 신들을 구분할 수 있는 결정적인 어떤 인위적인 방안은 별도로 없다고 보았다. 다만, 참 하나님은 오직 성경에서만 찾을 수 있고 알 수가 있다는 것이다. 성경의 유일신(the one and only God)이신 하나님은 두 가지 특징으로 우상들과는 구분된다. 첫째. 하나님은 무한한 영적 본질이시며, 세 위격으로 계신 한 분이신, 즉 삼위일체시다. 그리고 하나님은 두 가지 특징으로 인간과 구분되신다. 하나님과 인간은 모두 불멸의 영적 본질이지만, 하나님은 무한한 본질(창조주) 이시고 인간은 유한한 영적 본질(피조물) 이다.

B. B. Warfield(1851~1921)는 칼빈의 삼위일체 교리가 이전 주장들과는 다른 “독창적이며 신기원을 이루는 것”으로 보았다. 칼빈은 삼위 - 성부, 성자, 성신은 한분 하나님이시되 성부는 성자가 아니며, 성령 또한 성자가 아니며, 서로가 다른 특성에 의해 구별된다는 것이다.

칼빈은 삼위일체는 믿음에 관한 것이지, 언어로 그것을 표현하기에는 충분치 않다고 이해하였다. 성부는 창조주 하나님이시며, 성자는 구속 주 하나님이시다. 성령 하나님은 우리를 그리스도의 공동체 안으로 초대하시고, 보존하시는 내적 사역과 외적 사역을 하시는 하나님이시다. 성부께로 서 나오는 것은 독생 하신 성자의 고유성과 성령의 고유성이다. 성부께로 서 나오는 것은 신적 본질이 아니라 서로를 구분하는 독특한 개성이다.

종교개혁 시대에 가장 관심을 집중 시켰던 문제는 삼위일체의 세 위격에 관한 논의였는데, 여기에는 칼빈에 필적할 만한 신학자는 없었다. 그는 각 위격은 자존성과 충분한 신성을 가졌다는 점을 강조한다. 세 위격의 각각은 자존성에 있어서 조금도 부족함이 없는 신이시다. 성부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행위의 시작이자 만물의 원천이시며, 성자 하나님은 신적 지혜이자 만물의 통치자요 분배 자 이시고, 성령 하나님은 신적 행위의 권능 또는 효과이시다.

창세기 1:1의“태초에 하나님이 천지를 창조하시니라.”에서 태초(In the beginning)의 시점은“영원으로부터 시간이 시작되는 첫 출발점”이며 하나님의 창조 사역에 의하여 비롯된“시점(a point in time)”이다. 성부 하나님은 창조주로서 천지 만물의 유일한 "근원(origin)" 이시다.

니케아 교부들과 그 신조는 주로 본질의 통일성이 아니라 개별성을 강조하였으나, 칼빈은 성자와 성령의 자존성과 세 위격이 본질상 지니고 계신 통일성을 주로 강조한 점이 다르다. 칼빈은 우리는 성경이 없었다면 오류에 빠지게 되며, 성경의 하나님(삼위일체)이 없다면 스스로 거짓 신들을 만들게 된다고 강조한다. 그는 하나님이 자신을 우상들과 좀 더 정확하게 구분하실 때 기준으로 삼으시는 특성으로써 하나님의“무한성과 영원성”을 든다. 이는 이교도들의 거짓 신들과 성경의 참 하나님을 구분하는 명확한 증거를 제시한 중요한 대목이다.

우리 기독인이 믿는 신은 하나님 안에 있는 피조 되지 아니한 무한한 영적 불멸의 본질이다. 그러나 인간 안에 있는 피조된 불멸의 본질은 유한하고 타락함으로써 죄악 된 본질이라는 점을 강조한다. 나아가 하나님은 무한한 영적 실재이고, 인간은 유한한 영적 실재라는 교리로 귀결된다. 이는 하나님과 인간 사이의 동질성을 중시하는 것으로서 신적 존엄을 지닌“하나님의 형상(image of God)”으로서의 지음을 받은 인간임을 강조한 것이다.  

칼빈의 이런 사상에는 플라톤의 사고 영역 전체가 그의 목적에 유용했다고 보는 견해가 있는데 그것은 참여, 조명, 중재, 성령의 감동 등의 개념에 적용되기도 했다고 본다. 이런 사상은 인문주의 르네상스, 개혁주의 언약신학은 이런 노선을 따른다. 이후 후기 개혁주의 스콜라 신학(정통신학)에서는 “아리스토텔레스적인 관점”을 보게 되는데, 이를테면 예정을 현세에 발생하는 모든 사건의 “원인”으로 본다. 아리스토텔레스의 “수평적 정신”은 작정, 예정, 섭리 등의 교리에 영향을 준다. 이런 사상은 자연주의 르네상스, 개혁주의 스콜라 신학은 이런 노선을 따르는 경향이 있다.(Philip C. Holtrop, 美 칼빈신학교) 

4. 전 세계의 종교인구 

세계의 도처, 사람이 사는 곳에는 어디나 무수한 토속 종교가 두루 산재해 있다. 칼빈은 인간의 마음에는 하나님을 아는, 실로 본능으로 타고난 지각(perception)이 있다고 한다. 인간이 본성에 의해 하나님을 지각하며 오직 인간만이 하나님 앞에 있기 때문에 종교적 존재라고 본다. 인간 안에는 신에 대한 희미한 의식을 발견하며 인간은 이런 의식을 피할 수가 없다. 이것이 모든 인간 종교들의 기초가 된다.

인간이 신에 대한 지각을 보여 주는 증거들은 심지어 나무, 돌에게 라도 경배하려는 인간의 의지, 종교에 의존하고 영향을 받고 통제를 받으려고 하는 의지와 자세, 그리고 무신론자라도 느끼는 두려움 같은 것은 인간의 종교성을 말해주는 중요한 증거들이다고 말한다.

플라톤은 인간이 신을 알 수 있는 지각은 배워서 터득하는 것이 아니라 모든 인간이 날 때부터 지니는 것으로서, 완전히 지워 없앨 수는 없는 것이라고 한다. 칼빈은 인간이 동물의 수준에서 끌어 올리는 것은 창조주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지각”이라고 한다. 그러므로 인간의 종교적 성향(性向)과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지각(知覺)은 다르다. 만물의 창조자이신 하나님은 인간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다. “하나님이 모든 것을 지으시되 때를 따라 아름답게 하셨고 또 사람에게 영원을 사모하는 마음을 주셨느니라. 그러나 하나님의 하시는 일의 시종을 사람으로 측량할 수 없게 하셨도다.” (전 3:11) 

세계의 주요 종교

(아래 종파별 숫자는 adherents.com 에 의한 것이다)  

종파별

종파별

1.기독교 21억 명

천주교: 11억 명

개신교: 3.5억 명

정교회: 2.4억 명

성공회: 8400만 명

그 밖의 기독교 분파: 3.5억 명

2.이슬람교 13억 명

수니파: 9.4억 명

시아파 1.7억 명

3.무교무신론불가지론 11억 명

4.힌두교 9억 명

5.유교도교 등의 중국 전통 종교 3.94억 명

6.불교 3.76억 명

대승불교: 1.85억 명

소승불교: 1.24억 명

7.원시 토착 신앙 3억 명

샤머니즘 등

8.아프리카 토속 신앙 1억 명

하나의 종교가 아님

9.시크교 2300만 명

10.주체사상 1900만 명

조선민주주의 인민공화국(북한)에서 가르치는 정치사상이지만 일부는 이를 종교로 분류하기도 함.

11.정령 숭배 1500만 명

12.유대교 1400만 명

13.바하이 신앙 700만 명

14.자이나교 420만 명

15.신토 400만 명

16.카오다이교 400만 명

17.조로아스터교(배화교) 260만 명

18.텐리쿄(천리교) 200만 명

19.신이교주의 100만 명

20.유니테리안 유니버셜리즘 80만 명

21.라스타파리 운동 60만 명

하나의 종교가 아니다.

22.사이언톨로지교 50만 명

 

전세계 종교인구 분포

(종교인구 통계는 조사 기관과 조사 연도 등 기준에 따라 차이가 발생한다)

▲ 출처: 한국컴푸터선교회

 전세계 주요 종교의 인구를 원그래프로 나타내었다. 2011년 7월 기준으로 전세계인구는 69억 2천 8백만 명을 넘어서고 있다. 개신교와 로마가톨릭을 구분하면 이슬람이 단일종교로 가장 큰 인구(23.02%, 15억9천5백만 명)를 차지하고 있다.

주요종교의 대륙분포도

▲ 출처: 한국컴푸터선교회

 

 

 

 

 

▲ 주요종교(개신교, 천주교(로마 가톨릭), 정교, 유대교, 힌두교, 불교, 이슬람교, 토속종교, 유사기독교, 무종교)가 대륙별로 어떻게 분포하는 지를 원그래프로 나타내었다. 지역별(C.I.S.-독립국가연합, 유럽, 아프리카, 중동, 아시아, 오세아니아 및 태평양, 북아메리카, 중앙아메리카, 남아메리카) 및 전세계 종교통계가 원그래프로 제공되었다. 개신교의 대륙별 분포를 보면 북아메리카, 아시아보다도 아프리카에 개신교 인구가 가장 많다고 나타났다. 이것은 일반적으로 생각하지 못했던 결과이다. 선교 지향적 종교의 특징을 반영하듯이 중동을 제외한 전 세계에 널리 퍼져 있음을 알 수 있다. 지도 제작자 : 한국컴퓨터 선교회 (지도발행일 2012년 2월 20일, 원 자료 기준 2010년~2011년)

5. 결론 

칼빈은 자연이라는 거울이 창조주 하나님을 알 수 있게 해 주는 출발점이라는 생각을 배척(boycott)한다. 하나님이 창조 세계에 자신에 관해 나타내신 계시의 “객관적 실재”를 인정하지만, 인간이 은혜 없이 이 계시를 인식하는 “주관적 능력”을 갖고 있다는 생각을 부정한다. 타락은 인간을 부패시키고 밝은 시각을 앗아가 버렸기 때문에 인간은 우둔하고 캄캄하다는 것이다. 따라서 성경이라는 안경의 도움 없이는 혼돈에 빠질 정도로 연약하다고 보았다.

그에 의하면, 성경은 하나님을 발견하는 도구적 개념으로 참 신이신 하나님을 알 수 있게 된다. 성령의 조명과 믿음이 없이는 하나님을 알 수가 없다. 성경은 하나님께 나오도록 하는 인도자요 교사이다. 따라서 참신이신 창조주 하나님과 거짓신은 엄연히 구분된다. 참 신이신 하나님을 경배하고 구원을 받게 됨은 참으로 큰 은혜라고 할 수 있다. 따라서 종교적 인간과 하나님을 알 수 있는 지각은 엄연히 다르다. 따라서 참신이신 하나님과 거짓 신들을 구분하는 유일한 기준과 방법은 성경이라고 할 수 있다. 

모세가 범죄 한 이스라엘을 위해 기도했을 때 하나님이 주신 말씀 중에, 하나님의 선택과 사랑이 그의 절대적인 주권아래 있음을 밝히는 내용이 출애굽기 33:19 에 기록되어 있다. “나는 은혜 줄자에게 은혜를 주고, 긍휼히 여길 자에게 긍휼을 베푸느니라.”고 하셨다. 바울은 이 구절을 로마서 9:15 에서 인용한다.

전적으로 부패한 나를 무조건적으로 선택해 주시고, 제한적 구속과 불가항력적 은총으로, 궁극적 구원이라는 견인을 통해, 무익하고 부족한 나를 천국 백성으로 엄청난 특권을 누리게 해 주심을 감사드린다.

이 사실 관계를 진실 되고 정직한 유형의 심정으로 입증(confirm)하려고 노력하는 이유는 하나님만이 참 신이라는 것을 고백하고, 세상에 증거 해야 되기 때문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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