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세기에 영향을 끼친 책들(3)

개인적이 이야기이지만 나는 2000년 8월 12일 요더 박사의 집을 방문한 일이 있었다. 마침 인디에나주 엘카르트의 메노나이트신학교(AMBS)의 초빙교수로 있던 나는 나의 연구실로부터 도보로 불과 5분 거리에 요더 박사의 집이 있다는 것을 알고 그 집을 방문하게 된 것이다. 그 때는 요더 박사가 서거한지 2년 8개월이 지난 때였는데, 먼 한국에서 온 손님이라고 요더 박사의 부인 에니(Annie)는 나의 방문을 허락해 주었다.

대 학자의 서제를 구경하는 것은 큰 기쁨이었다. 요더의 집은 자하와 지상 1층으로 된 집이었는데 곳곳이 책으로 가득했고, 그가 공부했던 연구 파일들과 문서들이 그대로 있어 대 학자의 숨결을 느낄 수 있었다.

요더 박사 집에는 방마다 책상이 있었는데, 책상이 너무 높아서 그 이유를 물었더니 그는 건강했고 늘 서서 공부하기를 좋아했다고 한다. 그가 가장 큰 영향을 받은 학자는 메노나이트 학자인 벤더(Bender)와 프랑스의 평화주의자인 존 고스(John Goss)였다고 한다. 요더 박사는 특히 언어 능력이 탁월했다고 한다.

성경언어는 말할 것도 없지만 독일어, 불어, 스페이어도 능통했다고 한다. 불란서에서 살 때는 불어 발음이 정확해서 사람들은 그가 미국인임을 알지 못했다고 한다. 스페인어는 공부를 시작한지 6주 만에 강의할 수 있었다고 한다. 요더 박사는 <예수의 정치학>을 비롯하여 약 25권의 저서를 남겼다.

그는 6남매를 두었는데 그가 70회 생일을 맞아 식구들이 다 모여 축하파티를 하고 잠자리에 들었고, 이튼 날 요더 박사는 평소처럼 가족들에게 인사하고 일찍 학교 연구실로 출근했다. 그런데 그날 점심 때 즈음 연구실에서 심장마비로 세상을 떠났다. 그날이 1997년 12월 30일이었다.

20세기에 영향을 준 6번째 책은 길버트 케이 체스터튼(Gilbert Keith Chesterton, 1874-1936)의 <정통 신앙>(Orthodox)이라는 작품이었다. 작가나 작품이 우리에게는 별로 알려져 있지 않지만, 체스터튼은 영어권에서는 널리 알려진 작가이며, 그의 <정통 신앙>은 기독교 신앙의 핵심 혹은 요체에 대한 창조적인 해설로서 명문으로 알려져 있다.

1974년 5월 29일 런던에서 출생한 체스터튼는 시인이자 수필가였고, 단편작가이자 비평가로 한 시대의 문예를 주도했던 인물이었다. 명문학교에 속하는 세인트 폴 스쿨을 거쳐 슬레이드 스쿨에서 미술을, 런던의 유니버시티 칼리지에서 문학을 공부했다.

그는 <로버트 브라우닝론>(Robert Browning, 1903), <찰스 디킨스론>(Charles Dickens, 1906), <찰스 디킨스의 작품에 대한 감상과 비평>(Appreciations and Criticisms of the Works of Charles Dickens, 1911), <조지 버나드 쇼론>(George Bernard Shaw, 1909), <빅토리아 시대의 문학론>(The Victorian Age in Literature, 1913) 등과 <윌리엄 코벳론>(William Cobbett, 1925)과 <로버트 루이스 스티븐슨론>(Robert Louis Stevenson, 1927) 등과 같은 문학비평에 대한 여러 저술을 남겼지만, 신학과 종교에 대한 글을 남겼는데 그 대표적인 작품이 <정통 신앙>이라는 책이다.

이 책은 1909년에 출판했는데, 영국교회 곧 성공회 신자로서 기독교 신앙을 문학가의 수려한 필치로 간명하게 기술한 작품이다. 신학자가 아닌 작가에 의해 기술되었다는 점에서 대중성을 지니고 있었고, 따라서 많은 독자를 얻을 수 있었다. 아무리 훌륭한 저작이라도 읽혀지지 않으면 영향을 끼칠 수 없다. 한국의 박형룡의 저작이 가지는 약점이 그 일예라고 할 수 있다.

체스터튼는 1922년에는 성공회에서 로마 가톨릭으로 개종했다. 그 후에는 종교문제에 대한 날카로운 비평문을 썼다. <가톨릭교회와 개종>(The Catholic Church and Conversion, 1926), <공언(公言)과 부정>(Avowals and Denials, 1934)이 그런 작품이다. 그가 개종을 계기로 쓴 작품은 천주교적 인물에 대한 글들이었는데, <아시시의 성 프란시스>(St. Francis of Assisi, 1923), <영원한 인간>(The Everlasting Man, 1925), 그리고 <성 토마스 아퀴나스>(St. Thomas Aquinas, 1933) 등이 있다. 체스터튼은 호탕한 성격과 육중한 체구의 소유자로도 유명하다.

20세기에 영향을 준 7번째 책은 토마스 멀톤(Thomas Merton, 1915-1968)의 <칠층산>(The Seven Story Mountain)이었다. 20세기 미국의 위대한 시인이자 작가였고, 천주교 신부이기도 했다. 그래서 “신부 루이스”(Father M. Louis)라고 불리기도 했다. 그는 소위 ‘정관기도’ 혹은 ‘관상기도’(contemplative prayer)라는 이름으로 우리에게 잘 알려져 있고, 그의 <칠층산>은 1992년 성바오로 출판사에서 역간되었다.

그는 일찍 어머니를 여의고 무명화가였던 아버지를 따라 영국과 프랑스를 오가면서 어린 시절을 보내면서 먼 곳으로의 여행, 낯선 곳에서의 경험을 통하여 상상력이 풍부한 외로운 소년기를 보낸다. 15세 때는 아버지를 잃었고, 케임브리지대학교에서 1년을 공부하였다. 그 후, 외할아버지의 보살핌으로 미국으로 오게 된다.

1935년에는 뉴욕 컬럼비아대학교에 입학했다. 이 대학에서 영문학 교수인 반 도렌 교수를 만나게 되고 그를 통해 커다란 영향을 받게 된다. 반 도렌은 시인으로서 영문학을 강의했는데, 환상을 쫓지 않고 사물에 본질에 도달하려는 강한 열망과 진지함을 지니고 있었다. 그로부터 멀톤은 “자신 안에 실재하고 있는 것이 무엇인지를 발견하는데 도움을 받았다”고 회고했고, 소위 관상적 명상에 관심을 갖게 되었고 영성운동에도 영향을 주게 된다. 그는 이 대학에서 문학박사학위를 받았고, 컬럼비아대학교(1938~39)와 세인트 보나벤추라대학교(1939~41)에서 영어를 강의했다. 그 뒤에는 교수직을 버리고 켄터키 주 루이스빌 부근의 게스세매니 트라피스트 수도회에 1940년 입단하고 1949년 신부가 되었다.

그는 캠브릿지 대학에서 수학하는 동안 벨 로우 교수를 통해 단테의 신곡과 접하게 되는데, 이 작품의 영향으로 후에 ‘칠층산’이라는 자서전적인 소설을 쓰게 된다. 그가 <칠층산>을 발표했을 때는 1948년 이었는데 이 작품으로 그는 세계적인 명성을 얻게 되었다.

이 작품은 토마스 멀톤이 가톨릭교회에서도 가장 엄격하게 고행생활을 하는 명상수도회인 트라피스트수도회의 수도자가 되기까지의 일들을 진솔하게 기술하고 날카롭게 분석한 감동적인 자서전이다. 이 책에서 그의 앞길을 가로막던 유혹과 장애에 대한 묘사, 좌절과 실의 속에 방황하던 어두움과 수도원의 황홀한 내적 삶을 묘사했는데, 이 자서전은 아름다운 문학 작품인 동시에, 한 인간 내부의 영혼 안에서 일어난 사건을 다루는 영성문학으로서 현대사회에 대한 충격적인 통찰과 심원한 내적 영성을 드러내 준다.

말톤은 초기에는 순전히 영혼에 관한 작품을 쓰다가 1960년대부터는 사회비평의 경향을 띠게 되는데, 후기 작품에서는 서구인으로서는 드물게 동양철학과 신비주의에 대한 통찰력을 보여주었다. 그는 1968년 방콕에서 열린 학술 대회에 참여하는 도중 감전 사고로 세상을 떠났다.

그의 작품으로 시집〈묵시록을 위한 상징들 Figures for an Apocalypse〉(1948), 트라피스트회의 역사를 다룬 〈실로의 물 The Waters of Siloe〉(1949), 〈명상의 근원 Seeds of Contemplation〉(1949), 성찬예식에 대한 명상 〈살아 있는 빵 The Living Bread〉(1956) 등이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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