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최만수 교수 고신대학교교양학교수 코닷연구위원
고신대학교 신학과와 고려신학대학원은 대한예수교장로회 고신총회의 정식 신학교육기관이다. 하지만, 최근 고신대학교 신학과(이하 신학과)와 고려신학대학원(이하 신대원)이 처한 대외적, 대내적 환경과 여건들이 이들의 관계에 호의적이지만은 않다. 신학과는 교양학부소속 동료교수의 신학사상 문제로 홍역을 치렀고, 신대원은 재정적인 어려움을 극복하고 있는 과정 속에 있다. 물론 고신대학교라는 큰 틀 속에서 보면 모두 동일한 어려움을 감당하고 있는 것이다. 일반적으로 위기의 상황에서는 내부에서 서로 하나가 되어 격려하고 위로하며 이겨낸다. 하지만 이 두 기관을 바깥에서 바라보는—정확한 정보 혹은 냉철한 판단이 결여될 수 있는—사람의 입장에서는 사뭇 다르게 보일 수 있다. 마치 이들은 “가까우면서도 먼”—‘같음’을 지녔지만 또 다른—모습을 보이고 있다.

같은 신학을 가진 신학과와 신대원

먼저 신학과와 신대원의 관계의 가까움은 ‘같은’ 출발점, ‘같은’ 교육이념, 그리고 ‘같은’ 출신 교수진에서 드러난다. 그들의 출발점은 ‘고려신학교’이다. 신학과는 학교를 홍보하는 홈페이지 에 “1946.09.(20) 고려신학교는 순교자의 정신으로 신앙의 정통과 생활의 순결을 겸비한 인재를 양성하는 신학교로 1946년 설립 되었다.”라고 명기를 하고 있다. 마찬가지로, 신대원도 같은 학교에서 출발하였음을 홈페이지 ‘학교역사’에 기록하고 있다. 학교연혁에 따르면 1955년 9월 1일에 ‘4년제 대학과정’으로 칼빈학원이 설립되었고, 1964년 2월 28일에 고려신학교 대학부로 편입되었다라고 명기를 한다. 1970년 12월 30일 고려신학대학으로 인가를 받고 1980년 11월 3일 신학대학원 인가를 받았다. 그리고 1988년 8월 24일에 있었던 제 37-4회 제7차 임시 이사회에서 대학과 대학원으로 학사, 재정, 행정, 교수 등을 분리하여 오늘에 이르고 있다. 이런 역사적 과정에서 보면 분명 신학과와 신대원은 ‘고려신학교’라는 같은 뿌리에서 성장한 것임을 알 수 있다.

신학과와 신대원은 ‘같은’ 교육이념을 공유하고 있다. 신학과가 소속하고 있는 고신대학교의 교육이념—홈페이지에 올라온 교육이념—은 “신구약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이며 신앙과 생활의 전반에 대하여 정확무오한 유일한 법칙임을 믿고 하나님의 영광을 위해 충성할 인재 양성”이라고 표기하고 있다. 신대원은 그 교육이념을 3가지로 제시하는데 ‘웨스터민스터 교리표준서,’ ‘성경 하나님의 말씀,’ 그리고 ‘고신 교역자 양성’ 이라고 세 가지로 표명을 한다. 이를 보면, 두 기관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나라에 헌신할 목회자와 하나님의 이름으로 나아갈 인재를 양성하는 동일한 목적을 소유하고 있음이 분명하다.

더욱이 신학과와 신대원의 교수진은 ‘같은’ 신학적 교육배경(출신)을 공유하고 있다. 신학과의 교수진은 총 여덟 명의 교수로 구성되어 있다. 그리고 신대원의 교수진 총 열여덟 명이 함께하고 있다. 양 교수진에서 각각 한 명을 제외하고는 모두 고려신학대학원을 졸업하였다. 고려신학대학원을 졸업하지 않은 교수 두 명은 모두 고려신학대학원과 같은 정통 개혁주의 신학 노선을 분명히 하고 있는 미국에 소재한 신학교에서 공부하였다. 그렇기에 양 기관의 교수진은 실질적으로 고려신학대학원의 동문이고, 모두가 개혁주의 신학을 견고히 지키시는 분들이다.

멀리 있는 신학과와 신대원

하지만, 이와 같은 ‘같음’에도 불구하고, 신학과와 신대원은 마치 두 기관들이 위치한 장소—천안과 부산—의 거리만큼이나 멀리 느껴진다. 이는 두 기관의 대외적인 활동에서 그리고 신학적 발전을 추구하는 모습에서 분명히 나타난다.

먼저 두 기관의 대외적인 활동을 살펴보자. 신대원의 경우는 고신신학포럼을 개최하여 그 걸음을 전국적으로 확대하여 나아가고 있다. 이런 시도는 신대원의 학문적인 발전을 드러내고 동시에 교단 교회와의 유대 강화에 있어 많은 시너지 효과를 낼 수 있는 장점을 가진다. 하지만 신학포럼을 진행하는 어느 곳에서도 같은 교단을 섬기고 있고 학문적인 노력을 기울이고 있는 신학과 소속 교수들의 이름은 보이지 않는다. 심지어 포럼이 부산․경남 지방에서 실시할 때에도 신학과 교수들의 이름은 언급되지 않는다.

비슷하게, 신학과와 신대원은 모두 매년 10월에 종교개혁을 기념하기 위하여 특강을 실시한다. 신대원은 주제 강사를 자체 교수진에서 선임하여 특강을 진행한다. 그리고 신학과 역시 대학교 부설 개혁주의 학술원에서 특강을 진행한다. 하지만 양 기관이 서로 협력을 하는 일은 아직은 그렇게 ‘눈에 띄게’ 그리고 ‘귀에 들리도록’ 나타나지 않는다. 물론 신대원은 원생들에게 종교개혁의 참 의미를, 그리고 신학과는 교회와 사회에 종교개혁의 의미를 높이는 면에서 이러한 행사들을 시행하는 것은 충분히 좋은 일이다. 하지만 서로에 대한 지원 혹은 협력하는 모습을 보기는 쉽지 않다.

설상가상으로 ‘신학적 발전’에서도 신학과와 신대원 두 기관은 평행선을 달리고 있다. 신학교의 학문적 발전은 신학논문의 질적, 양적인 성장을 통해 바라볼 수 있다. 그렇기에 두 기관 모두는 각자의 신학적인 노력을 교수논문집을 통해 드러낸다. 신학과는 “고신신학”에서, 신대원은 “개혁신학과 교회”에서 그런 노력을 보여주고 있다. 하지만 양 논문집을 보면 서로에 대해 함께하려는 마음은 찾아보기가 쉽지 않다. “고신신학”은 2000년에 창간된 후 지금까지 13호가 출간되었다. 하지만 실린 논문들 중에서 신대원 교수의 글은 2002년에 출간된 3호에서 현재 신대원 교수로 봉직하고 있는 신원하교수의 “사형제도에 대한 신학윤리적 검토”(247-271) 하나에 불과하다. 반면 “개혁신학과 교회”는 1991년에 창간된 이후 지금까지 28호를 출간을 하였다. 그 중에 신학과 교수의 글이 실린 것은 총 다섯 편—신득일 교수 2회(광야의 놋뱀[1993]; 하나님의 천지창조[1998]), 이상규 교수 2회(1960년대 승동측과 합동과 환원[2006]; 교회사에서 본 가정교회[2007]), 송영목 교수 1회 (요한계시록의 찬송과 기능[2005])의 논문들—이다. 이와 같은 수치가 양 기관의 학문적 유대와 협력에 크게 영향을 미친다고는 보지 않는다. 하지만 타(신)학교의 상호교류와 배려가 분명히 나타나는 경우들과 비교하면, 신학과와 신대원은 각기 고신신학의 함양이나 발전을 위하여 각고의 노력을 하고 있음은 분명하나 서로에 대하여 학문적인 동반자로서 신학적 위치를 인정하고 배려하고 세워주는 면은 상대적으로 부족한 것으로 보인다.

순망치한의 관계에 있는 신학과와 신대원

이런 저런 일들을 돌아보면서, 필자가 개인적으로 고신대 신학과와 고려신학대학원의 관계를 바라본 바를 기술하였다. ‘가까우면서도 먼’ 두 기관은 분명 한 교단 아래에서 그리고 한 신학을 공유하면서,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하나는 이 세상에 개혁주의 사상을 그리고 다른 하나는 주의 몸된 교회를 이끌어 나갈 예비 목회자들에게 개혁주의 신학을 분명히 가르치는 기관들이다. 이를 부정할 수 있는 사람은 아무도 없을 것이다. 하지만 이 둘은 ‘가까우면서도 너무 먼’ 거리에 있는 모습을 뇌리에서 지울 수 없다. 분명한 것은 하나가 약해지면 다른 하나 역시 흔들릴 수밖에 없다는 것이다. 순망치한의 위치에 있는 두 기관이 하나님 앞에서 하나된 것을 열심히 지켜가는 아름다운 모습을 기대해 본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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