일반적으로 리더십은 사람이나 사물, 혹은 환경을 컨트롤 할 수 있는 능력으로 이해되어 왔다. 현대에 이르면서 다소 변화가 없는 것은 아니나 세속사회에서는 여전히 이런 식의 리더십이 사람들의 주목을 받고 있다. 이런 리더십은 주로 두 가지 방면에서 나온다. 하나는 물리적인 힘이고, 다른 하나는 제도와 조직이 주는 권력이다.

고대에는 완력이 강한 골리앗 같은 사람들이 리더십을 가졌다. 그리고 남보다 앞서 좋은 병기나 도구를 가진 사람이 역시 리더십을 차지했다. 재력은 또한 중요한 리더십을 발휘케 했다. 심지어 교회 안에서도 돈이 많은 사람들이 행세하는 경우가 많다. 여기에다 오늘날은 기술과 정보가 큰 역할을 하고 있다. 고도화된 기술과 정보를 먼저 가진 사람이 리더십을 장악한다.

제도와 조직으로부터 나오는 리더십도 있다. 이것이 바로 세속 권력인데, 역시 막강한 힘을 발휘한다. 어느 조직에 장이 되었다는 것, 많은 사람들과 사물에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는 자리에 앉았다는 것, 이런 것이 리더십을 갖게 만든다. 그러나 이런 것에서 창출된 리더십은 대부분 공동체를 불행으로 이끈다. 어떤 능력이나 제도가 불필요하다는 것이 아니라 이런 것에 의존된 리더십은 결국 권위주의에 빠지고, 독재로 이행되기 때문에 공동체를 무너뜨리고 고통스럽게 만든다는 것이다. 곧 인격과 실력을 갖추지 못한 사람이 물리적인 힘을 갖거나 조직 속에서 힘 있는 자리에 앉게 되면 그 공동체에 속한 사람들은 “조직의 쓴 맛”을 볼 수밖에 없다.

우리가 지금 이런 고통을 당하고 있다. 범국가적으로나 범교단적으로 볼 때 합당치 못한 사람들이 권력의 자리에 앉아 잘못된 리더십을 행사하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특히 교회는 세상과는 완전히 다른 새로운 공동체(new society)이다. 그러나 리더십은 세속적인 리더십 그대로 행사되고 있는 경우가 얼마나 많은가? 섬김의 리더십은 어딜 가고 누르고 지배하려는 권력의지가 노골화되고 있다. 조직이나 제도를 이용하여 세상을 자기 마음대로 한번 주물러 보고 싶어 하는 인간의 욕망이 교회 안에까지 횡행하고 있다.

지도자들이 모두 회개해야 한다. 그리고 예수님이 가르치신 리더십, 섬기고 희생하는 리더십으로 속히 돌아와야 한다. “생명을 얻게 하고 풍성히 얻게 하는” 성경적 리더십의 목적을 회복해야 한다. 그래야 우리 모두가 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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