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람에 따라 사물을 대하는 태도가 다르다. 이런 태도는 다양하여서 여러 가지로 분류해 볼 수 있겠지만, 그 중 하나로 비판과 수용의 자세를 들 수 있다. 수적으로는 소수이지만 비판적이고 거부적인 경향이 강한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이들 중에는 의와 진리를 추구하는 열심을 가진 자들이 많다. 이런 사람들 때문에 인류역사가 하찮은 일상으로 끝나지 않고 변혁과 역동성을 갖는다.

그러나 이런 사람들 가운데는 폐쇄적인 사람들도 있다. 폐쇄적이기 때문에 비판과 배척이 그에게 주 경향이 되어버린 사람들이다. 이런 사람들은 자신을 위해서나 공동체를 위해서나 아무 기여를 할 수가 없고 도리어 극단적인 보수주의자가 되어버린다. 진리를 찾고 보수하는 것이 아니라 단순히 현상을 유지하려는 보수주의자가 되고 마는 것이다.

수용은 사람이 가져야 할 일반적인 좋은 자세이다. 사람은 받아드림을 통해서 성장하고, 누리고, 더 풍성케 하는 창조적인 일을 하게 된다. 성령의 아홉 가지 열매를 인격성장의 아홉 가지 단계로 생각한다면 온유는 두 번째 단계라고 할 수 있는데, 이 온유가 바로 잘 받아들이는 마음이다.

한국교회의 주류를 이루고 있는 신학은 보수주의 신학이다. 그러나 우리의 마음이 닫혀서는 안 된다. 일반사회에서 흔히 쓰는 말이지만 열린 보수가 좋다. 진리와 비진리를 분별하하려는 깨어있음은 우리의 사명이지만, 적어도 상대방이 이단이 아니라면 그들의 좋은 점들을 수용하려는 자세를 가져야 한다. 그럴 때 우리의 신앙생활이 참으로 풍성함을 누릴 수 있기 때문이다. 5-10% 정도의 차이 때문에 상대방을 배척하게 된다면 우리는 서로 빈약해 질 수밖에 없다.

교회사를 깊이 연구해 보지 않아도 21세기 교회는 얼마나 풍성한 유산을 가진 교회인지를 알 수 있다. 우리와는 여러 가지 이유로 멀어져 있지만 3-4세기부터 시작된 수도원운동과 그 유산이 얼마나 풍성한가? 그들은 신앙수련과 선교, 무소유의 자유함 등 귀한 유산들을 우리에게 넘겨주었다.

중세기 경건주의자들이 남긴 유산도 풍성하다. “렉치오 디비나” - 거룩한 독서라고 할 수 있을지 모르겠다 - 는 피상적이고 현학적인 신학으로 변질된 오늘날 보수주의를 경고하고, 말씀 가운데서 살아계신 하나님을 인격적으로 만나고 그의 음성을 듣는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을 우리에게 물려주었다.

어찌 이뿐이랴? 근대 종교개혁과 그 이후 일어난 부흥운동으로 교회가 경험한 은혜는 참으로 풍성하고 다양하였다. 장로교, 감리교, 회중교회들, 심지어 성공회나 그리스정교들까지도, 그리고 은사주의 교회들, 이 모든 교회들이 서로 다른 점들도 많지만 서로가 가진 좋은 점들이 또한 얼마나 많은가?

비판은 필요하지만 그것이 배척이 되어서는 안 된다. 폐쇄적인 보수주의가 되어서는 안 된다. 그러면 이 다양하고 풍성한 유산을 다 창고에만 넣어두고 정작 현실생활은 매우 가난하게 사는 어리석은 자가 될 수 있다. 그리고 심하면 목욕물을 버리다가 아기까지 버리는 우를 범할 수도 있다.

요즘 가정교회에 대해 논의가 분분하다. 이는 좋은 일이다. 교회사를 보면 시대마다 새롭게 일어난 운동들이 있었고, 하나님께서 새롭게 주시는 은혜도 있었다. 셀교회 운동은 우리 시대에 일어나고 있는 새로운 교회운동이다. 제3의 종교개혁이라고 불리며 일어나고 있는 운동이다.

우리가 이를 무조건 수용할 것도 아니지만 배척할 일도 아니다. 신중한 사람들은 지켜보며 기다릴 것이고, 비판적인 사람들은 이를 깊이 연구할 것이다. 그리고 마음이 동한 사람들은 이 운동에 적극 동참할 것이다.

얼마 전에 부산노회에서 가정교회에 대한 연구보고서가 나왔다. 상당히 진지하게 연구한 흔적이 보이는 연구보고서다. 또 공회가 이를 채택했기 때문에 권위도 갖는다. 따라서 우리가 이 보고서를 읽을 때는 무게를 가지고 읽을 필요가 있다. 그러나 이것이 결론적인 보고서가 아니길 바란다. 하나의 연구보고서로 받고, 계속적인 토론을 할 필요가 있다.

이론적인 토론도 필요하지만 이미 실시하고 있는 교회들을 통해 실험적인 연구도 필요하다. 이런 운동을 흑백논리로나 단칼에 무 자르듯 해서는 안 된다. 약간의 혼란이나 시끄러움이 있을 수 있다. 그러나 이런 혼란은 교회가 살아있다는 증거이지 부패했다는 증거가 아니다. 우리는 여기서 혼란스런 고린도교회에 대해 제임스 패커가 했다는 말을 깊이 생각해 볼 필요가 있다.

"고린도교회의 무질서는 통제할 수 없이 넘쳐나는 생명력 때문이었다. 오늘날 교회가 잘 정돈되어 있는 것은 교회가 잠들었기 때문이요, 일부 교회에서는 그것이 죽음의 잠이 아닌지 우려하는 사람들도 있다. 공동묘지에서 질서를 유지하는 일은 대수로운 일이 아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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