국회의원들 정신 차려서 보편적 가치를 수호하라
민주당(59명)과 통진당(6명) 국회의원들이 발의한 차별금지법은 이 법이 가져올 긍정적인 효과보다 부정적이고 파괴적인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훨씬 높은 법안이다. 법이란 악을 억제하고 선을 권장하여 국민들의 삶을 고양시키는 것이어야 한다. 그런데 차별금지법이 과연 그러한가? 오히려 악을 권장하고 선을 억제하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아주 크다.
선이 무엇이며 악이 무엇인가? 이를 명쾌하게 정리해준 사람이 미국의 정신치료사 스캇 M. 펙이다. 그는 선이란 something for life이고, 악이란 something against life라 하였다. 선악의 기준은 생명이다. 생명을 살리고, 생명을 더 건강하게, 풍성하게, 아름답게 만들어 주는 것이 선이다. 악이란 생명을 죽이고, 생명을 쇠퇴하게 하고, 생명을 추하게 만드는 어떤 것이다. 그런데 과연 차별금지법이 생명을 건강하게 이끄는 법이 될 수 있겠는가?
물론 법안을 제출한 사람들은 개인의 인권보호라는 명분과 의도를 가졌으리라 생각한다. 그러나 의도만 좋다고 되는 것이 아니다. 만사가 그렇지만 법이란 공적이고 실제적인 결과를 반드시 두루 살펴 입안해야 한다. 그렇지 않으면 쇠뿔을 깎으려다 소를 죽이는 결과를 가져올 수도 있기 때문이다. 이번 차별금지법은 공청회도 한 번 없이 발의되었다.
그 흔한 소통은 어디로 갔나? 항상 소통을 부르짖고 소통 부재를 비판하는 사람들이, 국민들의 윤리의식에 엄청난 변화를 가져올 이런 법안을 제출하면서는 비밀이라도 되는 듯 왜 슬그머니 제출했는지 모르겠다. 그것도 지난번에 한 번 제출했다가 종교계와 교육계 등의 반발로 폐기되었던 법안인데 말이다. 또 대선 때는 이런 법을 만들지 않겠다고 약속까지 해놓고서 말이다.
하여간 이 법안은 인권보호라는 명분으로 음란과 동성애와 사이비 종교나 이단들과 같은 보편적인 악을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올 가능성이 매우 크다. 동성애만 해도 그렇다. 차별을 금지하자는 법이 동성애를 보호받아야 할 정상적이고 합법적인 선한 사랑으로 인식하게 만들 수 있다. 그래서 악에 대하여 연약한 사람들 - 특히 청소년들을 타락시키는 결과를 가져올 수 있다. 이 법은 학교에서 동성애가 나쁘다고 교육할 수도 없고, 학생들이 임신과 출산을 해도 교육적인 훈계도 할 수가 없게 돼있다.
차별금지법이 오히려 악을 보호하고 조장하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은 이미 구라파나 미국과 같은 소위 선진국에서 경험하고 있는 것들이다. 동성애차별금지법이 온갖 변태적인 음란을 방조하게 되었고, 동성결혼의 합법화를 불러왔다. 그래서 인류의 보편적 가치이며 사회의 기본구조인 가정을 파괴하는 결과를 가져왔다. 그리고 이것은 혼인감소, 만혼률 증가, 이혼증가, 저출산 등에 직접적인 영향을 주었다.
그리고 이런 법안의 더 큰 문제는 법으로 사람들의 도덕성과 양심의 자유를 억압하고, 인격적인 자율성을 약화시키는 결과를 가져온다는 것이다. 우리 사회에는 동성애가 악이라고 믿는 사람들이 대부분인데, 자기의 자녀나 학생이나 혹은 신도들에게 이를 악이라고 말하고 가르치는 것을 금하고 처벌한다면 그 부모나 선생이나 종교지도자들의 양심의 자유는 누가 보장하는가? 소수의 왜곡된 양심을 위해 다수의 선한 양심이 억압을 받아야 하는 것인가?
더욱이 인간은 인격을 가진 존재이다. 이 인격은 자율성이 기본이다. 그래서 인격적 함양을 위해서는 이 자율성을 길러 주어야지 법으로 자율성을 억제시켜서는 안 된다. 통치자들은 뭣이든 법으로 사람들을 묶어 강제하려는 성향을 갖고 있다. 그러나 사람의 삶에는 법으로 할 수 없는 일들이 얼마나 많은가. 법을 만들어 쉽게 무엇을 이루려고 하기보다 시간이 걸리더라도 사람의 도덕성과 양심에 호소하고 교육하는 방법으로 가야 훨씬 더 좋은 결과를 얻을 수 있다.
누구나 서로를 귀하게 여기고 인권을 존중하며 남을 배려하고 선을 행할 수 있는 사람이 되도록 권장하고 교육해야 하는 것이지 법으로 묶어 강제한다고 될 일이 아니란 말이다. 아닌 말로 자식이 동성애에 빠졌다는 것 때문에 부모가 이를 반대하고 소위 “차별”을 했을 때 이를 법으로 어떻게 다스리겠다는 것인가? 북한처럼 자식이 부모를 반동분자라고 고발해서 처벌받는 식으로 하자는 것인가? 부모나 선생은 보편적 선이라고 생각하는 것을 자녀와 제자들에게 가르치고 권장해야 할 천부적인 의무와 책임이 있지 않은가.
그리고 사람이 가진 가장 중요한 자유 중 하나는 신교의 자유이다. 종교마다 나름대로의 교리가 있고 도덕적인 기준이 있다. 쉬운 예로 성경에서 동성애는 분명히 악으로 규정하고 있다. 기독교 지도자가 성경을 가르치면서 이를 비판했을 때 처벌을 받는다면 대관절 종교의 자유는 무엇이란 말인가? 물론 어떤 종교에는 사회해악적인 것이 있을 수 있다. 우리는 이런 교리를 가진 종교를 비판도 하고 또 사이비종교, 혹은 이단이라고 규정도 한다. 따라서 이런 일은 종교인들의 자율성에 맡겨두어야 한다.
나아가 종교차별금지도 도덕과 상식으로 이루어져야 하는 것이지 법으로 규제할 일이 아니다. 종교차별을 법으로 금지하는 일에는 너무나 한계도 많고 따라서 동성애 문제보다 훨씬 더 복잡하고 어려운 일이다. 그래서 서로 평화롭게 지내라고 만든 법이 오히려 서로 갈등하게 만들고, 이를 빙자해서 종교 편향을 합법화하는 부작용도 생길 수 있다.
종교적인 대화나 토론을 할 때 서로를 비판할 수도 있는데, 어디가지 비판이고 어디까지 차별인가? 이를 누가 세밀히 구별하며 판단할 것인가? 현재도 일어나고 있는 일인데, 사이비종교나 이단을 비판한다고 그런 종파에 속한 사람들이 테러를 하거나 고소·고발하여 건전한 종교운동이나 종교개혁을 방해하고 있다. 세상에는 사회해악적인 교리를 가진 종교나 사이비 종파들이 얼마나 많은가? 그들을 비판할 수도 없다면 대관절 차별금지법을 통하여 이루고자 하는 것이 무엇인지 묻지 않을 수가 없다.
따라서 필자는 이 법안을 발의한 국회의원들의 양식을 의심하지 않을 수 없다. 그저 선진국들에 대한 도덕적 사대주의에 빠진 사람들이 아닌가 싶다. 소위 민주화된 나라들에 이런 법이 있으니 우리도 따라가자는, 그래서 자신들이 진보적이라는 것을 과시하고 싶어서 그런 것 같다. 진보라고 다 좋은 것이 아니다.
민주당이 통진당과 통합을 이루어 진보정당임을 과시하고 국민들의 환심을 사 보려했지만 결과는 무엇이었나? 종북과의 통합에서 손해만 본 민주당이 또 무슨 이익을 얻겠다고 동성애 통합인가? 정신들 차려 보편적 가치를 알고 이를 지키라고 간곡히 권면한다.
지금 미국 정치권을 비롯한, 동시다발적이고 전세계적인 동성결혼 승인문제를 생각해본다. 사실 다 큰 성인이 동성과 연애를 하든말든, 무슨 상관인가. 남이 동성에게 연모의 마음을 품든 말든, 자유주의 국가에서 누가 제재하고, 금지할 수 있겠는가. 그저 종교적 설교나 도덕적 훈계 같은 메시지를 통해, 비폭력적인 방법으로 비판하고 성토할 수 있을 뿐이다. 그런데, 그 자유로운 비판과 혹은 종교적 꾸짖음을 근본적으로 무력화시키고, 막으려는 일군의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중요한 것은 그 다음 순간이다. 그들은 분명 차별금지의 문제로 멈추지 않을 것이다. 그들의 거센 사회 운동의 궁극적 지향점은 어디일까.
그것은 결국 결혼이다. 동성 결혼 말이다. 성인의 연애를 누가 막을 권한은 없다. 그러나 결혼은 차원이 다르다. 그것은 개인적 관계에 대한, 사회적 공증이다. 결혼은 자녀양육의 권리를 인정하는 가장 핵심적인 전제조건이다. 동성애 옹호자들은 결국 현 미국과 같이 동성결혼을 제도적으로 보장할 것을 요구할 것이며, 마침내 구라파의 많은 나라들의 경우와 같이 자녀 입양권리를 당당히 요구할 것이다.
모든 미성숙한 아동기의 인간은, 동성의 부모를 통해, 자신의 성숙하고 싶은 모델을 확인하고, 이성의 부모를 통해, 자신만의 정체감을 확인한다. 인간은 그 인간이 처음 맺은 관계의 패턴을 무한히 반복하는 경향이 있다. 그래서 생애 초기 경험이 중요하다. 교육자들과 학부모들은 그 명료한 진실을 매순간 확인한다.
동성결혼 옹호자들이, 동성의 부모에게 입양된 자녀들이 경험할 심리적 충격을, 단 한번이라도 생각한다면, 입양을 요구할 수는 없는 노릇이다. 그 미성숙한 아이들이 남자를 엄마라고 불러야 하고, 여성에게 아버지 호칭을 써야할 운명에 처한다면 어떤 일이 일어날까. 이 어린아이의 심정을 단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고민한다면, 양식있는 사회라면 절대 허용할 수가 없는게 동성부부의 자녀입양이다. 그런데, 이 땅의 소위 선진국들은 노골적으로 이 양상을 옹호하고 보장하고 있는 중이다.
이 얼마나 모순적이며 이기적인가. 동성애를 할 개인적 권리와 자유를 요청하는 이들이, 의사표현을 할 능력이 없는, 영유아들에게 의사도 묻지 않고 부모가 되겠다는 것이다. 그 어린 아이들이 남자를 엄마로, 혹은 두 명의 여성을 아버지와 어머니로 나누어 불러야 할때, 받을 영향력과 정서적 붕괴감을, 그들은 단 한번이라도 진지하게 생각한다면, 그런 결정을 할 수 있을까. 자신의 자유분방한 권리옹호를 위해 의사결정을 못하는 타자(어린아이들)를 수단으로 사용하는 행위와 다름없다.
이 얼마나 무서운 탐욕인가. 자유, 인권 같은 세상에 존재하는 몇 개의 얼기설기 엮인 단어들을 이용해, 그들은 끊임없이 자신들의 소아적인 욕망을 정당화하고, 보장받으려 발버둥이다. 누군가의 자유, 누군가의 만족추구를 위해, 발언할 수 없는 유아들을 이용한다는 것. 이 얼마나 무서운 이중성인가.
나는 금번의 차별금지법안 문제를 보며, 늘 인간들의 그 짐짓 멋스럽지만, 노골적인 욕망의 '전망'이 보여, 무섭고 두렵다. /