복음병원 사태 약사 - 정주채 목사

1. 반성

1-1. 복음병원의 설립정신과 과정

   전쟁 피난민들을 위한 무료진료소로 전영창 선생, 한상동 목사 두 분의 주선과 장기려 박사의 참여로 1951년 6월 21일 부산 영도 제3영도교회 창고에서 무료진료소 - 복음진료소로 개원하였다. 6개월 후에는 복음의원으로 허가를 받았는데, 하나님의 사랑 실천을 최우선 목표로 삼아 순수한 구제사업으로 운영하였다.
   개원 후 6년만인 1957년에 복음의원은 송도의 현 위치로 옮기고, 1961년에는 복음병원으로 허가를 받았으며, 1965년 9월에는 교단(예장 고신) 유지재단에 편입되었다.

1-2. 중요한 사건들

   1) 고려학원 수익기관으로의 편입
   1967년에 학교법인 고려학원이 문교부로부터 인가를 받았는데, 인가 조건으로 복음병원이 법인의 수익기관이 되었다. 이에 대해 장기려 박사와 병원의 직원들은 반대하였으나 “병원은 명목상 수익기관으로 해서 학교 인가를 받으려는 것일 뿐 수익금은 절대로 학교운영에 쓰지 않겠다”는 한상동 목사의 약속과 당시 병원의 이사장 박손혁 목사의 설득으로 “명목상” 학교법인의 수익기관이 되었다.

   2) 1968년 간호학교 설립, 1975년 간호전문대학으로 인가.

   3) 제1수난 - 장기려 박사 퇴진
   학교법인 이사장 송상석 목사의 주장으로 장기려 박사를 일선에서 물러나게 하고 박영훈 씨를 원장으로 추대하려는 과정에서 부산의대 출신과 경북의대 출신 의사들의 충돌로 병원은 큰 위기를 겪었다. 이 사태로 당시 의사와 직원들 중 2명은 구속되고 7명이 불구속 입건되었다. 이후 우여곡절 끝에 1976년 6월 25일에 박영훈 씨가 원장으로 취임하였다.

   4) 1978년을 전후하여 고려신학대학을 종합대학으로 하자는 주장과 신학교육만 하자는 주장이 맞서 갈등이 있었는데, 결국 전자 쪽으로 기우려져 교명이 “고신대학”으로 바뀌고 의예과 인가를 받음으로 고신대학의 방향에 큰 변화가 생겼다.

   5) 미문화원 방화사건
   1980년 고신대학이 일반대학으로 변신하는 상황에서 미문화원 방화사건이 일어나 국내외적으로 엄청난 파장을 불러 일으켰다. 주동학생들이 고신대학생이었다는 것이 엄청난 충격이었다.

   6) 제2의 수난 - 의학부 학내소요
   1980년대는 우리나라 정치, 사회의 격동기였다. 정치적인 문제로 학생소요가 그치지 않았고 이는 곧 학내문제로 연결되어 대학마다 몸살을 앓았다. 고신대학도 예외가 아니었는데, 특히 의예과 학생들의 소요로 의료원이 위기에 빠질 만큼 어려움을 겪었다.
   1988년 병원건물 신축공사에 얽힌 비리 등이 빌미가 되어 일어난 학내소요는 폭력사태로까지 치달았고, 학생들이 데모 중에 캠퍼스 안에서 노제[제사]를 지내는 등의 일로 교단 교회들을 경악케 만들었다. 그래서 당시 교단에는 의예과 폐지 및 의료원 3자인수 추진설까지 나돌았다.

   7) 김해복음병원 인수
   1982년 의료법인 용지재단이 설립하여 경영에 실패하고 6-7억의 빚을 지고 있는 김해병원을 고신 의과대학 기성회 간부들이 현금 9천만원을 지불하고 부채 6-7억을 맡는 형식으로 인수하였다.
   그러나 인수과정부터 심각한 문제를 안고 있었는데, 인수주체가 분명치 않았고, 여기에 재정문제까지 얽혀 교단 지도자들의 갈등의 진원지로 등장하였다. 당시 유지재단 이사회가 있었으나 인수주체는 윤은조, 박영훈 등 개인이었다. 결국 1984년에 이사회가 정식으로 인수하고 김해복음병원으로 개원하였는데, 주인 없는 병원처럼 어정쩡하게 운영되었다. 이사회가 정식으로 인수한 한 해만에 부채는 6-7억에서 16억으로 증가해 있었다.
   그 후 부채는 계속 눈덩이처럼 불어났고, 총회는 급기야 1993년도에 처리위원회(위원장 김인규)를 구성하고 매각을 시도하였으나 하지 못했고, 다음해에 처리위원장을 곽삼찬 목사로 하여 위원회를 개편하였는데, 동 위원회는 박노정 장로를 김해 쪽의 이사장으로 정하고 오히려 송도병원이 김해병원에 지원을 강화하는 방향으로 협약을 체결했다.
   이로 인해 김해병원의 부채증가가 잠시 주춤하였으나 IMF 여파로 부채가 다시 급증하여 고신의료원과 교단에 암적인 존재가 되었다.

   8) 제3의 수난 - 부정입학사건
   1989년에 의예과 학생들의 부정입학이 문교부 감사로 드러나(86년 88년 부정입학) 학생소요는 물론 의사들까지 집단행동에 들어가 “고신의료원은 결국 좌초하고 말 것인가?”라는 말이 회자될 정도로 엄청난 수난을 겪었다. 12명에게 돈을 받고 입학시켰는데, 박영훈 원장이 구속되고, 수도권의 중앙언론에까지 보도 되는 등 사회적 여파도 엄청났다. 개혁주의 신앙에 입각하여 기독교대학의 정체성을 확립해 보겠다고 시작한 고신대학의 정신적, 도덕적 타락의 상징적인 사건이었다.

   9) 신급제한 문제로 인한 갈등
   의예과의 신급제한은 우수한 학생들을 확보하는데 어려움이 있다는 학교측의 반발과 이를 헌법재판소에 소원한 일로 또 한 차례 진통을 겪었다. 헌법재판소의 기각결정으로 일단락되었으나, 오히려 2005년 총회는 대학의 학생모집의 현실적인 어려움을 감안하여 이를 탄력적으로 적용할 수 있는 길을 열어줌으로 신급제한은 사실상 폐지되었다.  
    

1-3. 정체성 상실

   위에서 간략하게 살펴본 것으로 우리가 명백히 알 수 있는 것은 적어도 병원사역에서는 고신정신과 이념을 상실했다는 것이다. 복음병원의 설립정신이 사라진 것은 이미 오래 전의 일이고, 나아가 이는 교단 지도자들의 도덕적 타락의 진원지가 되고, 오히려 사회적 지탄의 대상으로 전락되고 말았다. 복음병원 문제는 경영미숙의 문제가 아니었다.


2. 회복을 위한 몸부림

2-1. 교단미래정책위원회의 문제제기

   1997년 총회는 교단 미래정책 개발을 위해 비교적 젊은 총대들로 미래정책위원회(위원장 정주채)를 조직하였다. 동 위원회는 복음병원 문제가 교단의 미래를 결정하는 가장 중요한 문제임에 공감하고, 이를 해결하기 위한 노력을 시작하였다.
   1998년 9월에 복음병원 경영혁신을 위한 공청회를 개최하고, 여기서 경영진단이 필요하다는 것을 확인하였고, 바로 총회에 건의하여 경영진단을 실시키로 하였다.

2-2. 송도와 김해, 양 병원의 경영진단

   우여곡절 끝에 김종복 김경화 하호영장로 세 사람이 경영진단팀으로 선정되어 경영진단을 실시하였던 바 그 결론은 다음과 같았다.(1999.3.)
   “김해복음병원은 진료실적이나 재무지표 분석에서 재무구조 상태로는 하루 속히 매각처분 해산청산 할 수밖에 없다”
   “송도복음병원은 제2의 창업정신, 설립이념으로 돌아가 다시 시작하자. 위기를 맞이했을 때는 가장 기본적인 것에서 해결방안을 찾는 것이다. 병원생존을 위한 전직원 경영혁신운동, 지금이 적기다. 기회를 놓치면 위기상황이 예고 없이 다가선다.”

2-3. 복음병원바로세우기운동본부 발족

   경영진단보고를 비공식적(경영진단보고는 이사회나 총회가 받는 것이 합법적이었다)으로 받은 총회임원회(총회장 김종삼)는 보고내용과는 반대로 양병원을 합병키로 결의하고(1999.5.) 이를 학교법인 이사회에 통보하였다. 이 통보를 받은 이사회는 양병원의 합병을 결의하고(1999.8.) 교육인적자원부에 합병승인을 요청함으로써 교단의 내분이 심화되고 갈등이 노골화되었다.
   그리고 이런 불법적인 - 이런 재산 처리는 총회 결의 없이 할 수 없다 - 처사에 반발한 다수의 인사들이 “복음병원바로세우기운동본부”를 결성하고 총회임원회와 이사회에 항의하였다.

2-4. 반전과 반전

   9월 총회는 총회의 결의 없이 합병을 시도한 일에 대해 이사장(오성환)의 사과를 받고 “김해복음병원을 조속히 매각처리하기로” 결의하였다. 그러나 이사회(이사장 오성환)는 총회결의와는 반대로 양병원의 합병을 결의하고 재차 합병승인을 요청하는 서류를 교육부에 접수시켰다(1999.12.). 이는 오성환 이사장의 총회 사과가 거짓이었음을 스스로 입증한 사건이다.
   당시는 이렇게 무법천지였다. 교단헌법도, 정부의 실정법도, 그리고 총회의 결의도 소용이 없었다. 이런 상황이 전개된 이유는 양병원의 이권에 개입하고 있었던 숨은 세력들의 농간 때문이었다. 만약 합병이 안 되고 매각이 되면 빌려준 돈을 받을 수 없었기 때문이다.
   2000년 9월 총회는 김해복음병원의 매각을 재확인하였다. 그러나 이 역시 시행되지 못했다. 새로 조직된 이사회(이사장 강규찬)도 의료원제도 폐지 등 정관수정 문제 등으로 극단적인 갈등을 했고, 2001년 총회 시에는 병원 노조원들이 총회장을 점거하여 농성하는 일까지 벌어졌다. 이후 복음병원문제는 정상적인 논의가 불가한 상태에 빠졌고, 싸움과 혼란으로 치달았다.
  
2-5. 관선이사 시대

   1) 2001년 12월 교육인적자원부는 고려학원 법인과 산하기관에 전격적인 감사를 실시하였다. 감사를 받게 된 이유에 대해 서로 책임전가를 하고 있는데, 직접적인 요인은 두 가지다.
   첫째는 이사들 간의 반목으로 네 이사(백성호 신태은 전영환 목사 손진선 장로)가 교육인적자원부에 진정서를 올린 일이다. 위 네 이사들이 제출한 진정서 내용은, 총회에서 새로 뽑은 이사들이 교육부의 취임승인 인가도 나기 전에 이사로 권리행사를 했고, 거기서 이사장을 선출했음으로 이것이 불법이라는 것이었다. 또 이런 과정에서 회록을 조작했다는 것이었다. 이 지적은 올바른 것이었으나 총회가 관례적으로 그리해 왔었는데, 새삼스럽게 진정서를 올린 것은 이사장(강규찬)과의 갈등 때문이었다.
   둘째는 의료원 쪽에서 교수협의회와 노조가 여러 가지 일을 걸어 교육부에 진정을 하고 임시이사 파송을 요청한 일이다.

   2) 교육부 감사 후 많은 지적을 받았으나 이를 제대로 이행하지 못했다. 그리고 2004년 4월에는 국세청으로부터 2001년에 김해복음병원이 지급했다고 보고한 - 사실상 형식만 취한 허위기재였다 - 의료진 급여와 검사비에 대한 소명자료를 제출하고 보정하라는 지시를 받게 되었는데, 이를 무마하기 위해 긴급 이사회에서 양 병원의 합병을 결의하는 해픈닝을 벌이기도 했다.

   3) 2002. 5.에 교육부로부터 이사장(강규찬) 임원승인 취소가 통보되었고, 후임으로 김영동 이사장이 취임하였으나 역시 교육부의 감사지적 사항을 해결하지 못하고 갈등하다가 2003. 3.에 이사회는 전원 임원승인취소를 당하고 관선이사가 파송되었다.

   이리하여 복음병원 설립이념의 회복과 경영의 정상화를 위한 노력은 모두 허사가 되고 말았다. 김해복음병원은 경매처분 되었고, 고신의료원은 경영권을 박탈당하고 부도가 난 상태에서, 체불임금만도 400억이 넘는 엄청난 부채를 안고 표류(?)하고 있다.
    

3. 현재상황

3-1. 제1기 관선이사

   비교적 합리적이고 원만한 사람으로 평가를 받았던 제1기 임시이사회 김민남 이사장은 고의부도 혐의에다 제3자 인수를 시도했다는 의심을 받고 교단(특별위원회)의 공격을 받다가 자진 사면하였고, 후임으로 온 정순택 이사장은 과거에 있었다는 비리 문제가 여론화되자 역시 자진 사면하였다. 그리고 2년 동안 이들이 한 일은 거의 없었다.
  
3-2. 특별대책위원회와 학교법인정상화추진위원회 활동

   관선이사의 파견으로 교단은 비상이 걸리게 되었고, 그해 6월에 역사상 처음으로 비상총회가 열려 교육부가 요구하는 200억 모금운동을 결의하고 특별대책위원회를 조직하였다. 그 후 교회적으로 모금운동을 하고, 총회회관과 대전 선교회관을 담보로 기채를 하였으며, 인천의 학교 부지를 매각하여 부외부채를 상환하였으나 아직 부도사태를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2004년 총회 후에는 특별위원회가 해체되고 학교법인 정산화추진위원회가 조직되어 제2차 모금운동으로 30억 모금운동을 시작하였으나 큰 성과가 없는 상태이다. 교회들은 복음병원 사태에 대해 무관심에다 거부감마져 가지고 있다. 이런 가운데 정상화위원회가 한 일도 역시 별로 없고, 정현기 총장과 전병찬 병원장을 퇴진시키는 일에만 열심을 냈다는 비판을 받았다. 2005년 총회 이후 위원들을 상당수 교체하여 지금에 이르고 있고, 이충한 원장과 마찰을 빚으며 병원장의 퇴진을 거론하고 있는 상황이다.

3-3. 제2기 관선이사

   교육인적자원부는 2005년 4월에 임시이사들을 교단 인사들로 대폭 교체하여 파견하였다. 이사장에 이우준 장로, 그리고 박종수 목사, 임종수 목사 등이 이사로 참여하게 되어 상당한 기대를 가졌으나 현재까지는 “정상화”에 별 진전이 없는 상태다.

3-4. 정시체제로의 환원은 언제, 어떻게?

   총회임원회와 학교법인 정상화준비위원회가 정이사체제로의 조기 환원을 목표로 감사지적사항 해소방안을 위해 재정조달에 올인하고 있는 상황이다. 학교법인이 애초 지적받은 부외부채와 부당지출한 금액은 모두 200억원인데, 총회회관과 선교훈련원의 재산을 담보로 받은 40억원의 융자와 모금 등으로 일부 해결하였고, 은급재단이 빌려준 20억원은 총회임원회가 지불보장을 하며 어음을 회수하고, 마지막으로 복음병원이 김해복음병원에 부당 지불한 15억원의 해결을 위해 총회회관을 담보로 추가융자를 받았다. 그러나 교육인적자원부는 구성원들의 합의를 받아오라며 정사체제로의 환원요청을 거부하고 있는 상황이다.

   한편 총회의 기본재산문제를 다루면서, 헌법의 규정을 어기고, 총회운영위원회의 결의로 처리한 일에 대해 문제가 제기되고 있으며, 특히 이런 일이 빈발하고 있음에 대해 많은 목사 장로들이 큰 우려를 나타내고 있다.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