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가나안 성도’라는 말이 심심치 않게 들린다. 지금이 출애굽 시기도 아닌데 가나안 성도라는 것이 무슨 말일까. ‘가나안’을 거꾸로 읽으면 ‘안나가’다. 이 가나안 성도는 기독교인을 자처하면서도 교회에 나가지 않거나 의도적으로 기성 교회를 거부하는 사람을 가리키는 말로 쓰인다. 또는 새로운 교회를 찾아 떠도는 사람을 가리키기도 한다. 최근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에서 조사한 결과에 따르면 한국 교회 교인 중 이 가나안 성도에 해당하는 비율이 10.5%에 달한다고 한다.

세미나가 열리고 있다.

4월 25일(목), 서울시 중구 남산동에 위치한 청어람 아카데미에서 목회사회학연구소가 주최한 “갈 길 잃은 현대인의 영성”이란 주제의 공개세미나가 열렸다. 이 날 세미나에서는 목회사회학 연구소 부소장인 정재영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종교사회학)의 “소속 없는 신앙인 조사 결과보고서”라는 제목의 연구발표가 있었다. 이 조사연구는 2011년도 한국연구재단 중견연구자지원사업의 지원을 받아 이루어진 “종교 세속화의 한 측면으로서 ‘소속 없는 신앙’에 관한 연구”의 일환으로 진행된 것이다. 리서치 전문기관인 (주)글로벌리서치를 통해 설문지를 이용한 온라인 조사로 이루어졌다. 총 표본 수는 316명이다.

장진원 목사(목회사회학연구소 기획실장)의 사회로 진행된 진행되는 가운데, 발표에 앞서 목회사회학연구소 소장인 조성돈 교수(실천신학대학원대학교 목회사회학)는 인사를 통해 “그동안 목회사회학연구소는 현대인의 종교성에 대한 연구를 계속해서 진행되어 왔으며 이번 세미나도 그 일환”이라고 운을 뗀 뒤, “이 세미나가 가나안 성도들의 영적 정착과 평안에 기여하길 바란다”고 전했다.

정재영 교수

소속 없는 신앙인 조사 결과

정재영 교수는 발표에서 “가나안 성도는 단지 신앙생활을 대충대충 했던 교인이 아니다”라고 말하며, 이 현상을 주시해야 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했다. 정재영 교수의 조사연구 결과의 주요  내용은 다음과 같다.

▲ 가나안 성도의 교회 출석기간: 10-14년이 21.9%로 가장 많았고, 다음으로 5-9년이 비슷하게 21.3%로 많았다. 25년 이상이라는 응답고 20.3%를 차지했다. 평균은 14.2년으로 나왔다.

▲ 최초 교회 출석 시기: 초등학교 이전 24.0%, 초등학교 때 22.7%, 중학교 때 11.7%, 고등학교 때 10.9% 등의 순으로 나타났다.

▲ 교회 활동 참여 정도: “어느 정도 참여했다”는 응답이 53.4%, “매우 적극적으로 참여했다”는 응답이 36.9%로 나와 90.3%의 긍정률을 보였다.

▲ 교회 이탈 전 구원의 확신 여부: “분명히 있었다”는 응답이 48.1%, “뚜렷하지 않다”는 응답이 48.3%로 나왔다. 정 교수는 “분명히 있었다”는 응답이 절반 가까이 나온 것이 가나안 성도가 단지 명목상 신자가 아닌 중요한 지표라고 지적했다.

▲ 교회를 떠난 이유: “자유로운 신앙생활을 원해서”가 30.3%, “목회자에 대한 불만”이 24.3%, “교인들에 대한 불만”이 19.1%, “신앙에 대한 회의”가 13.7%, “시간이 없어서”가 6.8%로 나왔다. 단, 고졸 이하 학력/구원의 확신이 뚜렷하지 않은 사람일수록 “자유로운 신앙생활”의 빈도가 높고, 대학원졸 이상/구원의 확신이 뚜렷한 사람일수록 “목회자에 대한 불만”의 빈도가 높았다.

▲ 교회 이탈 전 출석교회 상태: “교회에는 문제가 없었다”는 답을 제외하면, “교인들의 삶이 매우 신앙인답지 못했다”가 30.6%, “교회에서 지나치게 헌금을 강조하였다”가 30.0%, “담임 목회자가 독단적이었다”가 26.5%, “교회당 건축 문제”가 “16.2%로 나왔다. 특히 대학원졸 이상의 고학력자들은 ”교인들의 삶에 대한 불만“이 43.2%로 가장 높았다.

▲ 교회 이탈 전 고민 기간: “6개월 이상”이 32.1%, “별로 고민하지 않았다”가 29.5%, “2-3개월”이 17.5%로 나타났다.

▲ 교회 이탈 전 상담 대상: “없었다”가 46.5%, “가족”이 31.9%, “교우”가 25.8%, “교회 밖 지인”이 18.8%로 나왔다. “부교역자”나 “담임목회자”라는 응답은 각각 7.1%로 가장 적었다.

▲ 교회 이탈 전 교회 옮긴 경험: “옮긴 적이 없다”가 45.7%, “한번 옮겼다”가 25.0%, “두세 번 옮겼다”가 23.2%, “여러 교회를 옮겨다녔다”가 6.1%로 나왔다.

▲ 구원 문제에 관한 견해: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가 31.0%, “다른 종교에도 구원이 있을 수 있다”가 36.2%, “구원의 문제가 중요하다고 생각하지 않는다”가 32.9%로 나타났다. 대학원졸/안수집사 이상에서는 “기독교에만 구원이 있다”고 믿는 비율이 상대적으로 높았다.

▲ 교회 외 신앙모임 참석 여부: “그렇다”가 8.2%, “아니다”가 91.8%로 나타났다.

▲ 교회 출석에 대한 생각: “가능한대로 빨리 다시 교회에 나가고 싶다”가 13.8%, “당장은 아니지만 언젠가 다시 교회에 나가고 싶다”가 53.3%, “전혀 나가고 싶지 않고 개의치 않는다”가 21.0%로 나타났다. 여성/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일수록 다시 나가고 싶은 의향이 상대적으로 강했고, 고학력자/무직분자일수록 상대적으로 약했다.

▲ 교회 재출석시 희망하는 교회: “올바른 목회자가 있는 교회” 16.6%, “공동체성이 강조되는 교회” 15.6%, “건강한 교회” 11.1%, “부담을 주지 않는 교회” 9.4%, “편안한 교회” 8.8%, “장로교회” 8.4%, “신앙을 중시하는 교회” 6.9% 순으로 나타났다.

▲ 교회와 신앙에 대한 견해: 교회 안의 민주적인 의사결정과 교회 안의 다양한 견해에 대한 동의율이 가장 높았고, 다음으로 목회자에 대한 무조건 순종을 부적절함, 일상생활에서의 신앙의 실천에 대한 동의율이 높았다. 통성 기도에 대한 불편함이나 구원의 확신에 대한 부담감, 신앙의 강요에 대해서는 동의율이 높지 않았다. 개인주의적인 신앙의 특성은 강하게 드러내지 않았으나 교회 내 민주화에 대한 의향은 높게 나왔다.

이와 같은 조사 결과를 바탕으로 정 교수는 “가나안 성도가 신앙을 회복하고 다시 교회로 돌아올 수 있는 방안 마련이 시급하다”는 점과 “고학력, 직분자, 구원의 확신이 있는 사람들에게서 상대적으로 목회자에 대한 불만 때문에 교회를 떠났다는 것을 주목할 필요가 있다”는 점, “가나안 성도들은 인격적이고, 공동체적이고, 협의와 조정이 강조되는 공동체를 원한다”는 점 등을 지적하였다.

한국 사회에 맞는 변증론이 필요하다

조성돈 교수

조성돈 교수는 “가나안 성도를 통해 본 현대인의 영성”이라는 발표를 통해 “가나안 성도들은 대부분 어려서부터 교회를 다니고 순탄한 중고등부 시절을 보냈지만 성인이 된 후 신앙과 교회에 대한 회의를 품게 된 것”이라고 지적하며, “한국교회는 1970년대 후반부터 1980년대까지 급속하게 성장하였는데 이 시기에 대거 교회로 유입된 사람들의 자녀들이 타성에 젖은 교회문화 아래 있다가 성장하면서 갈등을 겪고 교회 밖으로 나온 것”이라고 분석했다. 아울러 조 교수는 “구원의 확신으로 대변되는 신앙현상에 대한 강요가 이들에게 부담이 되었다”면서 “앞으로는 한국 사회에 맞는 변증론을 개발해야 하며, 현실문제에 대한 답을 줄 수 있는 신학자나 연구소가 필요하다”고 주장했다. 또한 “세상 속에서 발견되는 신앙이 필요하다”는 것과 “성도들의 의식은 성장하고 성경 지식은 다양한 경로로 섭취하고 있는데 목회자들의 설교는 아직도 구태의연하다”는 것 등을 지적하며 “가나안 성도들이 오히려 더 신앙에 대한 고민을 갖고 심지어는 개인적으로 신학 공부를 하는 경우도 많다”고 덧붙였다. 앞으로 교회가 더욱 성숙한 고민을 해야 할 것이라는 과제를 부여한 것이다.

자립적 개인을 세우는 기독교 생태계가 필요하다

양희송 대표(청어람 아카데미 대표기획자)는 “가나안 성도와 새로운 신앙의 방향”이라는 발표를 통해 “가나안 성도 현상은 제도권 교회 바깥에서 신앙생활을 영위하는 현상”이라며, 단지 이들을 교회 안으로 들여보내야 할 대상으로 바라보는 것이 아니라 이 현상을 전체적으로 조망할 필요가 있다는 점을 강조하였다. 양 대표는 “가나안 성도에게서 나타나는 제도 교회에 대한 환멸에 주목해야 한다”며 권위주의, 권위적 위계질서, 피상적인 라이프 스타일, 윤리적 무능 등으로 대변되는 현대 교회의 문제를 지적하였다. 그리고 한국 교회에서는 이것이 “설교 표절, 피상적 설교, 부적절한 적용의 설교, 세습, 섹스 스캔들 등으로 나타난다”고 덧붙였다. 아울러 “그동안 교회는 공동체를 말하면서 사실은 집단주의를 조장했다”고 비판하며 “이제는 교회 내부만이 아니라 사회 전반에서 자립적 신앙인을 세우는 기독교 생태계가 필요하다”고 주장하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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