서론

▲ 안맹준 박사 평택대학교
이 시대의 신학도들은 다원화되고 변화가 급격한 첨단 디지털 시대 속에서 살아가고 있다. 이런 변화의 소용돌이 속에서 불확실한 미래 시대를 어떻게 맞이해야 하는가에 대한 깊은 고민을 할 것이다. 그래서 필자는 그 대답의 하나로 칼빈이 사용했던 성경의 해석 원리를 소개함으로써 그 준비를 돕고자 한다.

1517년 10월 31일 루터에 의해 시작된 종교개혁은 기독교의 역사뿐만이 아니라 세속사까지 엄청난 영향을 준 신앙운동이었다. 이런 획기적인 사건을 일으킬 수 있었던 원동력이 무엇인가를 생각해 볼 때 여러 가지 요소들을 발견할 수 있겠지만 우리는 그 중에서도 가장 핵심적인 것으로 종교개혁의 주체들이었던 루터(1)나 츠빙글리(2) 그리고 부써와 칼빈과(3)같은 개혁자들이 성경을 새롭게 올바르게 해석할 수 있었던 그들의 해석 행위에서 나왔다고 보아도 과언이 아니다. 이런 맥락에서 어지럽고 혼돈된 포스트모던 시대 속에서 우리 역시 성경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보는 올바른 눈이 열려야 하고 성경을 현대의 시점에서 올바르게 해석해야 하는 사명을 가져야 한다.

여기서 우리 신학도들은 우리 자신의 존재의 의미를 재발견할 수 있는데, 그것은 바로 우리가 제2의 루터나 칼빈처럼 성경의 참된 해석자들이 되기 위해 준비하는 것이다. 앞에서 언급한 것처럼 종교개혁의 근본적인 출발점이 올바른 성경의 해석에서 시작되었다는 것에서 우리가 알 수 있는 것은 성경의 해석이란 부패한 교회를 개혁하고, 역사의 흐름을 바꾸고, 사회를 변혁시키는 하나님의 도구로 사용된다는 것이다. 그러나 해석의 권위와 힘은 해석하는 그 해석자의 행위 자체에 있지 않고 오히려 정당한 해석으로 인정해 주는 올바른 해석원리 의해서 가능하다.

이런 원리들 가운데 칼빈에게 있어서 가장 중요한 해석원리로서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 원리(Scriptura sui ipsius interpres)와 성령님의 조명에 의한 원리가 있다. 오직 성경만으로(sola scriptura)를 강조하면서 성경이 사제나 교황이나 교회에 의해서 독재적으로 해석되지 아니하고 오직 성경은 성경으로 해석되어야 한다고 주장하면서도 동시에 성령님의 역할이 성경을 해석하는 사람에게 결정적인 작용을 한다는 것은 루터와(4) 츠빙글리(5) 같은 종교개혁자들 이후로 잘 알려진 사실이다. 따라서 필자는 이 두 원리를 중심으로 칼빈의 해석학을 조명하려고 한다. 이런 맥락으로부터 신학도를 위한 바람직한 해석자 상을 제안하려고 한다.

1. 해석의 중요성

인간이 하나님의 형상으로 창조되었다는 것은 인간은 해석하는 존재라는 것이다. 인간은 자신의 주위를 둘러싼 모든 것들을 보고, 느끼고, 생각하여 언어로 표현하는 해석적 기능을 갖고 그 기능을 사용하도록 창조되었다. 창조된 아담이 인류 최초로 한 일은 바로 해석행위였다. 창세기 2장 19절에서 23절까지는 아담의 해석적인 능력을 보여주는 중요한 기록이다. “여호와 하나님이 흙으로 각종 들짐승과 공중의 각종 새를 지으시고 아담이 어떻게 이름을 짓나 보시려고 그것들을 그에게로 이끌어 이르시니 아담이 각 생물을 일컫는 바가 곧 그 이름이라. 아담이 모든 육축과 공중의 새와 들의 모든 짐승에게 이름을 주니라 아담이 돕는 배필이 없으므로. . . . 아담이 가로되 이는 내 뼈 중의 뼈요 살 중의 살이라 이것을 남자에게서 취하였은즉 여자라 칭하리라 하니라.” 여기서 아담은 언어를 사용하여 이름을 짓는 해석적 능력을 유감없이 사용하고 있다. 따라서 인간은 하나님에 의해 해석적 기능을 가지고 태어났으며 그의 삶의 현장에서 이 능력을 사용하는 것은 하나님 앞에서 의무이며 특권이라고 말할 수 있다.

따라서 크리스천들에게 있어서 자신들의 삶의 현장을 해석하는 것은 필연적인 것이며 매우 중요한 사역임을 깨닫게 된다. 미국의 저명한 철학자 월터스톨프(Nicholas Wolterstorff)는 해석이란 우리의 삶에 스며있어서 피할 수 없고 해석 없이 인간은 이 세상에서 살아갈 수 없다고 한다.(6) 따라서 우리 크리스천은 세상을 올바르게 해석할 줄 알고 더 나아가 크리스천의 공동체뿐만 아니라 인류에게 올바른 해석적 유산을 남겨야할 책임이 있다. Martin Buber는 기독교가 세상에 준 것은 해석학이라고(7) 말했는데 우리에게 해석학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인식하게 된다.

기독교의 역사를 볼 때 성경 해석은 기독교 공동체의 신학의 형성의 중요한 역할을 해왔다. 이런 관점으로부터 우리는 종교 개혁자였던 루터가 시도했던 성경 해석의 중요성을 무시할 수 없다.(8) 만일 우리가 어떻게 루터의 이신칭의 교리가 발견되었는가를 추적해 본다면 우리는 그가 로마 가톨릭교회에 대항하여 성경에 대한 그의 새로운 해석으로부터 왔다는 것을 알 수 있다.(9) 폴 알투하우스(Paul Althaus)는 루터의 성경 해석에 대해 다음과 같이 말한다. “그의 신학은 성경을 해석하는 것 이외에 아무 것도 아니다. 그것의 형태는 기본적으로 주석이다. 그는 스콜라적인 의미에서 조직 신학자가 아니요 중세 체제나 현대 신학의 의미에서 교의학자도 아니다.”(10) 그러므로 그의 신학은 기존의 로마 가톨릭교회의 방법이 아닌 새로운 관점으로부터 성경을 해석하려는 시도에 의해서 형성되었다. 1521년 보름 회의(the Diet of Worms)에서 그는 자신의 양심이 하나님의 말씀에 사로잡혔기 때문에 교황과 종교회의의 권위를 받지 않겠다고 말하였다. 그는 오직 성경만(sola Scriptura)을 강조하였다.(11) 이 표어는 성경은 자증을 하기 때문에 스스로가 해석자다 라는 사실을 포함하고 있다. 루터에 있어서 오직 성경만(sola Scriptura)의 강조는 개신교의 대표적인 성경 해석원리인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Scriptura sui ipsius interpres) 원리가 되었다.(12) 이 방법은 1519년의 작품들에 나타나고 후에 계속하여 그의 성경 해석에서 중요한 역할을 하였다.(13) 루터에 있어서 성경이 그 자체가 해석자라는 이 원리는 그가 성경의 권위와 명료성을 강조하는 것으로부터 왔다.(14) 루터는 1519년 7월에 에크(Eck)와 라이프치히 논쟁(Leipzig Disputation)에서(15) 성경의 권위를 강조하였다.

나는 거미가 물에 침투하는 것처럼 그 신학박사(에크)가 성경을 관통하는 것에 유감스럽다. 사실상 그는 마귀가 십자가로부터 도망가듯 성경으로부터 도망간다. 그러므로 교부들에 대한 존경과 함께 나는 성경의 권위를 선택하고 나를 판단할 사람들에게 그것을 권했다.(16)

1517년에 루터의 95개 조항을 지원했던 에라스무스는 7년 뒤 1524년에 그의 책 『의지의 자유에 관하여』(On the Freedom of the Will)에서 예정론과 인간자유에 관해 루터와 논쟁을 일으켰다. 루터는 1525년 그의 책 『의지의 노예』 (The Bondage of the Will)에서 에라스무스의 잘못된 성경 해석관을 지적한다. 에라스무스는 성경은 어두운 책이기에 교회에서 가르치는 직책의 사람들에 의해서 해석이 필요하다고 주장한 반면에 루터는 성경의 명료성을 주장하였다.(17) 성경의 명료성은 루터를 비롯한 다른 개혁자들에게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 원리를 제공해 주었다. 루터는 자신의 교리서들(Catechisms) 가운데서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 원리의 몇 가지의 패턴을 보여주었다.(18) 루터에 있어서 성경의 해석은 종교개혁의 출발점이요 논쟁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였다.

칼빈은 역시 올바른 성경 해석은 올바른 신학 형성과 직접적인 관계를 말한다. 칼빈은 1559년 8월 1일 제네바에서 자신의 『기독교 강요』최종판에서 책의 목적이 신학도들로 하여금 성경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돕기 위한 것임을 말한다.(19) 칼빈에게 있어서 성경을 바르게 이해하는 것은 건전한 신학을 형성하는데 직접적인 연관을 갖고 있다.(20) 에벨링(G. Ebeling)(21)과 펠리칸(J. Pelikan)(22)의 지적대로 신학사란 성경 해석의 역사라고 말한 점을 고려해 볼 때 건설적인 신학활동을 위한 해석학의 역할은 너무나도 중요하다.(23) 베스마르(C.J. Wethmar)는 제 2차 세계개혁신학회의에서 말한 것처럼 “신학은 근본적으로 해석학적 학문으로 그 주된 목적이 하나님을 믿는 기독교의 영원한 기초와 근원으로서 성경을 역사적이며, 조직적이며, 실천적으로 해석하는 것이다”(24)라고 본 점이다.

칼빈은 자신의 해석이 교회의 공적인 유익을 증진시키기(publicum Ecclesiae bonum induxisset)(25) 위한 것임을 밝힌다. 자신의 해석적인 작업을 통하여 기독교 공동체의 유익을 위하여 공헌하는 것이었다. 특히 로마서 주석에서 자신의 해석방법은 간결성과 용이성의 원리(brevitas et facilitas)(26)를 사용하기 때문에 독자들이 성경을 쉽게 성경의 본문을 이해하는 장점을 갖고 있다고 말한다.

새로운 방법을 사용한 성경해석의 결과는 신학의 판도를 바꾸는 계기를 마련한다. 예를 들면 세계 일차대전후 신정통주의 신학자 칼 바르트(Karl Barth)는 로마서 주석(Der Römerbrief)을 출판함으로써 당시 자유주의 신학자들의 놀이터에 폭탄을 던진 것으로 평가된다. Gadamer는 바르트의 로마서 주석(Der Römerbrief)을 자유주의 신학을 비판한 최초의 혁명적인 폭발로(the first revolutionary eruption)또 일종의 해석학적 선언서로(a kind of hermeneutical manifesto) 본다.(27)

해석 혹은 주석(exegesis)이란 말은 고대 아테네 신전에 살고 있던 신전 해석자들이 신탁, 종교적이나 의식적 법들, 그리고 하늘의 징조를 해석하면서 생긴 말이다. 오늘날도 새로운 샤만 르네상스를 추구하는 세상의 많은 종교 철학자들이 샤만을 통하여 인간문제의 해결을 정당하게 받아들이는 포스트모던시대를 맞이하고 있다.(28) 샤만의 메시지를 해석하고 대중들에게 전달하려는 신 문화적 재생의 시대에서 샤만들이 인간에게 주는 현대 인간문제에 대한 해석은 큰 권위를 갖게 될 것 같다. 이런 시점에서 참된 창조주이시며 구속주이신 하나님을 믿는 신학도들은 역사와 크리스천의 공동체 앞에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해석해야 할 큰 책임을 느껴야 할 것이다.

요셉과 다니엘의 경우에서 해석의 역할을 그 시대의 중요한 인물들과 국가의 역사를 주도했다. 요셉은 어떻게 바로왕의 꿈을 해석했는가? 다니엘은 어떻게 세계의 역사의 흐름을 정확하게 해석했는가? 그러나 오늘날 우리는 어떻게 그런 사람들이 될 수 있는 것인지? 신학생이 신학교에 들어온 목적은 하나님의 소명을 받으러 온 것도 아니요 성경을 많이 알기 위해서 온 것도 아니다. 그의 참된 목적은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는 능력을 키워서 이 시대의 사람들에게 하나님의 뜻을 바르게 알려주는 성경의 해석자로서 거듭나게 하기 위함이다. 이 시대에 하나님은 자신의 참된 해석자를 찾고 계신다.

오늘날 우리는 성경 해석의 중요성을 다시 한 번 겸허하게 되새겨 보아야 할 것이다. 이런 관점에서 칼빈을 해석적인 관점에서 조명해 보는 것도 오늘날 말씀 앞에 있는 우리에게 많은 것을 생각하게 한다. 칼빈은 자신의 나라에서 쫓겨나서 파란만장한 삶을 제네바에서 하나님의 해석자로서, 성경의 해석자로서, 제네바의 해석자로, 프로테스탄트 신학의 해석자로서 살았다. 해석자로 칼빈의 삶의 원천은 역시 그 중심에 성경이 있었다. 성경이 그 삶의 모든 표준이었다. 신학의 방법은 물론이거니와 해석 방법론까지, 삶의 해석까지 성경에서 그 원리를 찾았다. 성경 해석과 관련하여 그는 성령님의 역할을 실질적으로 보여준 신학자였다. 그의 성경 해석은 성령님의 분명한 역할 속에서 이루어졌었다.

2. 해석자로서의 칼빈의 훈련

칼빈의 아버지 제라드(Gerard Cauvin)는 칼빈을 노용에 있는 카페뜨 대학(College of the Capettes)에 보냈다. 그곳에서의 학문적인 프로그램들은 잘 알려지지 않았지만 적은 수의 교수진으로 보아 파리에 있는 대학에 비해 교육의 수준은 떨어진 것 같다. 그곳에서 교육에 만족하지 않은 제라드는 1523년 칼빈을 라 마르셰 대학(College of La Marche) 에 입학시켰다.(29) 이 대학은 인문주의적 정신을 칼빈에게 주었고, 칼빈은 유명한 라틴어 교수인 마두린 코디어(Mathurin Cordier) 아래서 라틴어를 배웠다.(30) 그는 현대 교육학의 창시자 중에 한사람으로서 칼빈에게 인문주의 철학과 기독교 경건을 소개한 최초의 인물이다.(31) 칼빈은 자신의 데살로니가전서 주석(Commentary on the First Epistle to the Thessalonians)을 코디어에게 헌정하였고, 후에 그를 자신이 세운 제네바 대학에서 라틴어 교수로 청빙하였다. 또 다시 칼빈은 그 대학에서 몽테규 대학(College of Montaigu)으로 옮겼다. 에라스무스와 로욜라를 배출한 그 대학에서 칼빈은 자신의 지적 형성의 큰 발전을 보게 된다. 당시 그 대학에는 베다(Beda), 안토니오 코로넬(Antonio Coronel) 그리고 존 메이져(John Major)와 같은 유명한 학자들이 있었다. 칼빈은 철학과 수사학, 교부들의 작품들을 배울 수 있었다. 당시 몽테규에서는 루터의 사상이 부정적인 평가를 받고 있었다.

그런데 갑작스럽게 칼빈의 아버지는 그에게 신학에서 법학으로 전공을 바꿀 것을 요구하였다. 이런 이유는 아마도 법조계의 직업이 부와 명성을 얻게 하는데 확실한 보장이 되기 때문이었다.(32) 칼빈은 아버지의 권유를 받아들였다. 칼빈은 아버지의 명에 따라 법학을 공부하기 위하여 이번에는 오르레앙 대학(University of Orleans)으로 갔다. 그는 거기에서 변호사가 되기 위하여 레스토알(Pierre de l'Estoile) 밑에서 법률과 수사학을 배운다. 그러나 1년 후에 그는 이탈리아의 법학자 안드레아 알키아티(Andrea Alciati)의 명성을 듣고 부르지 대학(University of Bourges)으로 갔다. 그는 그곳에서 열렬한 루터파 신자였던 멜케오르 볼마르(Melchor Wolmar) 교수에게서 헬라어를 배웠다. 칼빈은 헬라어 고전은 물론 신약 성경을 원문으로 읽을 수 있게 되었다. 볼마르의 루터란 영향이 칼빈의 회심에 영향을 주었는지는 확인되지 않고 있다.(33) 이런 과정을 통하여 칼빈은 인문주의자로서 원문 해석에 있어서 필요한 훈련을 받았다.

1531년 5월에 칼빈의 아버지 제라드가 세상을 떠났다. 칼빈은 이제는 아버지의 뜻에 매이지 않고 자신의 뜻을 자유롭게 결정할 수 있게 되었다. 이것은 그의 생애에 하나의 새로운 전환이었다. 그는 파리 왕립 대학(Royal College)로 옮겨 피에르 다네(Pierre Danes) 밑에서 헬라어를 배우고, 바타블(Francois Vatable)에게 히브리어를 배웠다. 또 바젤에서 세바스티안 뮌스터(Sebastian Münster)와 스트라스부르에서는 울프강 카피토(Wolfgang Capito)에게서 히브리어를 배웠다.(34) 이런 모든 그의 학문적 훈련은 후에 성경을 해석하는 위대한 학자로 쓰이게 된다.

3. 칼빈의 성경 해석 작품들

칼빈은 1532년 4월 4일 23세의 나이로 세네카의 관용론에 대한 주석(Calvin's Commentary on Seneca's De Clementia)(35)을 출판했다. 이 책으로 칼빈은 에라스무스에 버금가는 유명한 인문주의자가 된다. 여기서 칼빈은 에라스무스의 본문비평에 대한 오류를 지적하고 본문의 의미를 바르게 해석하는 방법을 보여 준다. 세네카의 <관용론>은 로마의 황제 네로가 기독교를 무참하게 박해하는 것에 대하여 스토아주의적 입장에서 네로의 마음을 돌이키려고 쓰여진 책이었다. 칼빈이 세네카의 관용에 대한 해석을 쓴 것은 프랑스 왕 프랑수아 1세가 개신교도들을 박해하는 것에 대하여 왕의 마음을 돌이키기 위해서였다.

물론 1532년 그 작품에서 칼빈의 인문주의자의 학문성을 충분하게 볼 수 있고, 고전을 역사적-문법적인 방법을 사용하는 그의 비평학적인 모습을 발견할 수 있다. 멀러에 따르면 칼빈은 이 작품에서 세네카의 산문의 자연스러운 문체(the unlabored style)를 칭찬하나, 그의 주제의 사치스러운 장황성(luxurious verbosity)을 비판하며, 질서 있는 배열, 혹은 적절한 배치(orderly arrangement or proper dispositio)가 세네카의 관용론에서 부족하다고 한다.(36) 이런 해석의 간결성과 신학 주제들의 배치에 대한 논의는 『기독교 강요』서문에서 그리고 그 작품의 구성과 신학적 해석에서 매우 중요하게 나타난다.

1536년 처음으로 출판되고 1559년 최종판인 칼빈의 『기독교 강요』는 독자들에게 주는 성경의 열쇠였다. 어떤 학자는 『기독교 강요』를 성경을 가리켜 주는 칼빈의 집게 손가락이라고 한다. 『기독교 강요』는 그 기초를 성경의 주해(exposition of Scripture)에 둔다고 신복윤 교수는 말한다.(37) 그러므로 『기독교 강요』는 성경해석 원리를 바르게 세워준다. 칼빈이 『기독교 강요』에서 고백하는 것은 자신의 글이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이해하는 목적에 이바지하는 것을 바라는 것이다. 『기독교 강요』는 교리적 신학적 중요 요점을 체계화한 교리학이라기보다는 기독교의 중요한 주제들에 대한 성경적 신학적 해석의 산물이다. 칼빈의 『기독교 강요』야 말로 로마 가톨릭 신학을 비판할 뿐만 아니라 기독교 신학의 전반적인 내용을 철저하게 하나님의 말씀으로 분석하고 해체하고 재해석한 해석학적 신학의 명작이다.

강요의 목적을 칼빈은 신학 후보생들이 하나님의 말씀에 쉽게 접근하고, 그리고 어려움이 없이 그 안에서 발전이 있도록 하기 위하여 그들이 하나님의 말씀을 읽을 수 있도록 준비시키고 가르치는 것이라고 말하면서 이어서 중요한 자신의 신학 방법론과 관련의 내용들을 설명한다. 자신의 강요를 진술하는 방식을 말하는데, 이 책의 모든 부분에서 종교의 개요를 채택하고(embraced the sum of religion in all its parts) 순서대로 배열된(arranged in such an order) 것을 말한다. 그리고 강요를 올바르게 파악을 한다면, 성경에서 특별히 어떤 것을 찾아야 하는 것을 결정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며, 성경의 내용들을 목적에 연결하는데 어려움이 없을 것이라고 한다. 이것은 이 책의 중요한 역할을 보여 주는 것이다. 독자들을 성경으로 바르게 인도하기 위해 강요는 존재하는 것이다.(38) 칼빈은 프랑스어 최종판에서도 모든 하나님의 자녀들이 성경을 건전하고 올바른 이해로 이끄는 방법을 열어주는 열쇠의 역할을 할 수 있으리라고 약속한다.(39) 칼빈은 1539년 강요 2판에서 첫 주석인 로마서 주석(1539, 10, 18)을 비롯한 모든 성경 주석을 시도할 경우 위의 언급에 따라서 구체적으로 성경을 다루는 방법으로 간결성과 용이성(brevitas et facilitas)을 말한다.(40) 자신이 실제 성경의 모든 주석 또한 자신의 말로 언급한 간결하고 용이한 방법으로 다룰 것을 말하고 그의 일생 실천하였다.

칼빈의 성경 해석과 관련된 작품들은 주로 그의 설교와 주석들이다. 칼빈은 자신의 생애 마지막 15년 동안 설교를 했는데 순서적으로 보면 히브리서, 시편, 예레미야, 요한복음, 사도행전, 예레미아 애가, 미가, 스바냐, 호세아, 요엘, 아모스, 오바댜, 요나, 욥기, 데살로니가 전후서, 디모데 전후서, 신명기, 디도서, 고린도 전후서, 이사야,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공관복음, 창세기, 사사기, 사무엘상하, 열왕기상에 대한 설교를 했다. 칼빈의 설교들은 가치가 없다고 생각되어 사람들에게 팔았던 19세기 초반 거의 분실되었다고 한다. 재생된 것도 있지만 대부분은 찾을 수 없다고 한다.(41)

칼빈은 신약을 먼저 주석하고 요한 2서, 요한 3서, 요한계시록을 주석하지 않았고, 구약은 시편을 시작으로 여호수아에 이르는 주석을 하였다. 칼빈은 1536년 『기독교 강요』 초판 발행이후에 그의 최초의 주석인 로마서 주석을 1540년에 출판하였고, 『기독교 강요』의 개정판이 나온 후에 1546년 1551년 사이 5년 동안 많은 주석들을 출판했다. 1546년에는 고린도 전 후서를, 1548년은 갈라디아서, 에베소서, 빌립보서, 골로새서, 디모데 전 후서를, 1549년은 히브리서, 1550년에 데살로니가 전 후서, 디도서, 야고보서(라틴어), 1551년은 베드로 전 후서, 요한 일서, 빌레몬서, 야고보서(불어), 유다서에 대한 주석을 출판하였다. 1552년 사도행전 1장에서 13장까지 주석하였고, 1553년은 요한복음을, 1554년은 사도행전 14장에서 28장을 그리고 창세기를, 1555년은 공관복음서에 대한 주석을 출판하였다.(42)

칼빈의 구약 주석은 그의 강의안을 대부분 편집한 것이다. 1540년 후반에 구약에 대한 강의를 시작했으며 아직도 모든 강의안들이 남아 있다. 이사야를 1551년 출판한 후에 1554년에 창세기를, 1557년 시편과 호세아를, 1559년 소선지를, 1561년 다니엘을, 1563년 모세의 마지막 네 권의 조화(a Harmony of the Last Four Books of Moses), 예레미야와 애가를, 그리고 마지막으로 칼빈 사후 1565년 에스겔(1-20장)과 여호수아를 출판했다.(43)

4. 칼빈의 성경해석 원리들

종교 개혁 이전에 있던 중세의 4중적 의미의 성경 해석 방법은(44) 당대의 휴머니스트 에라스무스의 출현으로 해석사의 무대에서 서서히 사라지고 문법적 역사적 해석 방법이라는 성경 해석에 새로운 접근 방법을 만들어 주었다. 르네상스는 휴머니스트들에게 고전에 대한 새로운 관심을 주었고, 개혁자들은 이들로 부터 성경 해석에 대한 학문적인 방법들을 접목하게 되었다. 사실상 츠빙글리, 멜랑히톤, 부써, 심지어 칼빈까지도 모두 초기에는 인문주의자들이었다. 그들이 휴머니스트들을 통해 배운 언어학적 그리고 해석학적 방법들이 성경 해석에 일대 대 변화를 가져오게 되었다. 개혁자들은 그 방법들과 동시에 로마 가톨릭교회의 전통에 반대하여 오직 성경만으로(sola scriptura) 라는 원리를 주장하기 시작했다. 이 원리는 성경의 신학적 우위(the theological priority of scripture)를 강조하는 것뿐만 아니라 성경이 실제로 무엇인가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포함하고 있는 것이었다. 이 원리는 성경을 성경으로(scriptura sui ipsius interpres) 해석하는 원리에 결정적인 영향을 주었다. 이상규 박사에 따르면 한국의 칼빈 학자 박윤선 박사는 1979년 신구약 주석을 완간하였는데 6가지 원칙에 근거하여 시도된 주석에서 처음 세 가지 원칙은 바로 성경을 성경으로(scriptura sui ipsius interpres) 해석했다고 밝히고 있다.(45)

칼빈은 당시 어느 개혁자보다도 성령님의 역사를 많이 주장한 성령님의 신학자였다. 칼빈은 하나님의 말씀의 저자는 성령님이기 때문에 성경은 성령님의 조명에 의해서 해석되어야 한다는 것이다. 이것이 칼빈의 성경해석에 있어서 중요한 신학적 원리이다.

1).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 원리(Scriptura sui ipsius interpres)

말씀은 교회보다 권위 있다(Verbum supra ecclesiam). 교회는 하나님의 말씀으로부터 태어났다(Ecclesia nata est ex Dei verbo). 개혁자들은 이런 표어들을 가지고 유형 교회인 로마 가톨릭교회 위에 성경의 우선권을 확신하였다.(46) 개혁자들이 성경의 권위를 새롭게 강조했던 것이 그들에게 로마 가톨릭교회의 전통과 권위에 반대할 수 있는 신학적 열쇠를 제공하였고, 성경 해석의 중요한 원리들 가운데 하나를 만들어 주었다. 칼빈은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 와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Scriptura sui ipsius interpres) 원리와 같은 슬로건을 가지고 교회를 개혁하였다.(47)

개혁자들의 신학적 원리인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 원리는 - “성경이 어떻게 개인의 양심과 교회의 생활에서 권위 있게 역할을 해야 하는지에 대한 개혁자들의 전적인 견해를 대표하는”(48) -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 와 직접적으로 관련이 되어 있다.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 이라는 표어는 개혁자들의 강력한 무기였다.(49) 이 표어를 가지고 개혁자들은 로마 가톨릭교회의 권위와 전통에 대해 싸웠고, 그것들 위에다 성경의 권위를 두었다.(50)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Scriptura sui ipsius interpres) 원리는 해석이 교회가 성경을 해석하는 원리에(ecclesia Scripturae interpres) 종속되지 않게 하는 것이었다.(51) 패커(J. I. Packer)는 말하기를 “개혁자들의 기독교에 대한 이해는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 원리에 의존했다. 즉 그 견해란 성경이 이 세상에서 하나님의 유일한 말씀으로서 교회와 양심을 위한 유일한 안내서이며, 하나님과 은혜를 아는 진정한 근원이며, 과거와 현재에 있어서 교회의 증거와 가르침의 유일하게 자격을 갖춘 재판자이다” 라고 하였다.(52) 개혁자들에게 있어서 성경이란 로마 가톨릭교회가 성경 해석의 결정에 있어서 자신의 전통에 두었던 교회의 권위를 반대한 유일한 권위였다.(53)

루터가 말한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54)에서 오직(sola)이라는 말의 강한 주장은 이미 성경 해석원리를 위한 힘을- 성경은 외부적인 표준이나 전통에 매이지 않고 그 자체가 해석자이다(55)- 갖고 있었다. 로마 가톨릭교회의 견해 즉 성경은 교회에서 가르치는 직분자들에 의해서만 해석되어야 한다 라고 주장하는 것은 그 내면에 성경은 이해하기에 모호하다라는 자신들의 신학적 전제에 근거하고 있었다. 그러나 개혁자들은 이런 견해를 거절하였다. 개혁자들은 성경은 구원을 설명하는데 있어서 명료하다라는 사실에 위에 자신들의 주장을 두었다.(56) 바빙크(H. Bavinck)는 성경의 명료성(the perspicuity of Scripture)을 종교 개혁의 강력한 보루로 보았다.(57) 성경은 명료성을 갖고 있기 때문에 스스로 해석할 수 있는 능력을 가지고 있다는 것이다.(58) 개혁자들의 이러한 발견은 성경 해석의 새로운 방법을 열었다. 그들은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 원리를 그들의 신학적 성경 해석에 적용하였다.(59) 칼빈은 성경의 신학자였기 때문에 그는 자신의 신학뿐만 아니라 자신의 해석원리를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라는 종교개혁의 원리에 의해서 체계화하려고 했다.(60) 칼빈의 제네바 신앙고백서(The Genevan Confession)는 그가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 원리를 어떻게 이해했는지를 보여준다.(61) 그가 성경만을 강하게 믿는 것은 그로 하여금 성경 해석의 신학적 원리 즉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Scriptura sui ipsius interpres) 원리를 사용하도록 하였다. 이 원리는 성경관과 밀접하게 관련되어 있다. 칼빈은 모든 성경은 하나님에 의해 영감 되었다는 사실을 받아 들였다.(62) 즉 성경의 참된 저자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이시다.(63) 성경의 신적 영감에 대한 칼빈의 견해는 디모데 후서 3장 16절 "모든 성경은 하나님의 감동으로 된 것으로"의 주석에서 잘 나타난다.(64) 그에게 있어서 오직 성경이란 권위적인 것이다. 왜냐하면 성경이 성령님에 의해 구술되었기 때문이었다.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원리는 성령님의 영감에 근거한다. 그러므로 성경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그 스스로가 권위를 갖는다.(65)

칼빈은 루터의 견해인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Scriptura sui ipsius interpres) 원리를 따랐다.(66) 차츰 이 원리를 발전시켜 자신의 해석 방법에서 사용하였다.(67) 칼빈에게 있어서 이것은 가장 중요한 신학적 원리들 가운데 하나였다. 그에게 있어서 이 원리는 성경의 참된 의미란 오직 성경 안에서 발견되는 것을 의미했다.(68) 이것은 또한 중세의 4중적 의미를 거절하고 문자적 해석을 수반한다. 칼빈이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Scriptura sui ipsius interpres) 원리를 어떻게 사용했는지 보자.

첫 번째로 칼빈은 성경의 다른 본문의 동일한 의미에 비추어서 하나의 본문을 해석했다. 이것은 그가 사용한 일반적인 방법이었다. 이사야 34장 8절에 있는 מירבא 이란 단어를 해석할 때 그는 시편 50편 13절에서 강하고 힘 있는 사람을 의미한다고 은유적으로 말한다.(69) 또 로마서 1장 13절 해석에서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Scriptura sui ipsius interpres) 원리를 사용한다. 칼빈은 요한복음 15장 16절을 가지고 로마서 1장 13절을 해석하였다. 이런 원리를 가지고 칼빈은 기독교의 교리을 포함하는 본문을 해석했다. 예를 들면 선택과 같은 교리를 말하는 본문에서 그는 본문을 왜곡시켜 교리적으로 해석하지 않고 오히려 독자들로 하여금 그 주제와 관련된 다른 본문들을 참고하라고 추천한다.(70)

두 번째로 칼빈은 애매한 본문을 분명한 본문을 가지고 해석했다. 예를 들면 이사야 17장 9절 "그 날에 그 견고한 성읍들이 옛적에 이스라엘 자손 앞에서 버린바 된 수풀 속의 처소와 작은 산꼭대기의 처소 같아서 황폐하리니"에 있는 '버린바 된'이란 말을 해석할 때 칼빈은 이 원리를 사용하였다. "이 본문은 선지자들이 따른 모세의 작품들에 의하여 더욱 분명하게 될 것이다. 왜냐하면 약속을 할 때 모세는 이런 표현 양식을 사용한다. 너희 가운데 한 사람이 천 명을 쫓을 것이요(레 26:8, 수 23:10), 반대로 경고를 할 때도 한 사람이 너희들의 천명을 쫓을 것이라고 말한다(신 32:30)."(71)

칼빈은 또 주장하기를 한 본문의 해석은 성경 전체나 혹은 전체 문맥으로부터 명료해 질 수 있다고 한다.(72) 예를 들면 이사야 56:3 에서 이방인에 대한 해석을 할 때 다음과 같이 말한다. "성경 전체로부터 너무나도 분명한 것처럼 이방인들은 전적으로 하나님의 나라로부터 닫혀 있었다."(73) 칼빈은 하나의 본문은 다른 본문을 비교함으로 그 본문을 이해하는데 도움이 된다고 믿었다. 이 방법은 어려운 해석적인 문제를 해결하는데 도움이 된다.(74)

세 번째로 칼빈은 저자의 표현과 성경의 일반적인 사용법(the expression of the author and the common usage of Scripture)을 이용하여(75)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Scriptura sui ipsius interpres) 원리를 적용한다. 이사야 37장 32절 "이는 남은 자가 예루살렘에서 나오며 피하는 자가 시온에서 나올 것임이라 만군의 여호와의 열심이 이를 이루시리이다"을 해석할 때 이사야 9장 7절에서 이미 이사야의 저자가 사용했던 표현의 도움을 가지고 본문을 설명한다. "같은 표현 방식은 유사한 경우에 그가 사용하였다."(76) 그는 우리가 저자의 일상 언어(ordinary language)을 고려할 것을 주장한다. "나는 전자의 의미가 문맥과 선지자의 일상 언어에 더욱더 잘 어울리는 것으로 생각한다. 우리는 선지자들의 문체를 잘 알기 위해서 그들에게 독특했던 표현의 형태들을 조심스럽게 관찰해야 한다."(77)

칼빈은 성경의 일반적인 사용법을 언급함으로써 하나의 본문을 해석했다. 푸켓(Puckett) 역시 주장하기를 칼빈은 단어의 통상적 사용법을 언급함으로써 본문을 해석했다고 했다. "종종 칼빈은 구약에 있는 단어의 통상적 사용법에 호소함으로써 번역을 정당화했다."(78) 호세아 9장 14절 "여호와여 저희에게 주소서 무엇을 주시려나이까 청컨대 배지 못하는 태아와 젖 없는 유방을 주시옵소서"의 주석에서 칼빈은 다른 사람들이 선지자들의 의도를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에 그들의 견해를 거절하였다. "그리스도는 말하기를 예루살렘의 마지막 파멸이 올 때 수태 못하는 자들이 복이 있다고 하였다(눅 23:29). 이것은 성경의 일반적인 용법으로부터 취한 것으로 그런 본문들은 선지자들의 글에서 많이 나타난다."(79) 다른 해석자들이 자신들의 강요된 해석으로 약점을 갖는다고 지적하면서 칼빈은 성경에 자주 사용된 표현의 형태를 언급한다. 이사야 37장 7절의 해석에서 이런 방법을 보여준다.(80)

성경의 일반적인 용법에 따라서 칼빈은 성경의 다른 저자들에 의하여 사용된 같은 단어의 도움을 갖고 하나의 본문을 해석했다.(81) 그는 또한 독자들로 하여금 성경의 통상적인 구를 주목할 것을 제안한다.(82) 칼빈은 성경에 있는 언어의 통상적인 용법이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Scriptura sui ipsius interpres) 원리를 위한 열쇠로 믿는다.(83) 칼빈은 좋은 해석이란 성경에서 통상적인 것을 사용하는 것으로 인정한다.(84) 단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정의하기 위하여 칼빈은 성경의 통상적인 용법을 언급한다. 이사야 33장 11절 "너희가 겨를 잉태하고 짚을 해산할 것이며 너희의 호흡은 불이 되어 너희를 삼킬 것이며"에 나타난 단어 잉태를 다음과 같이 해석한다. "인간의 설계와 노력을 의미하기 위하여 잉태라는 단어를 사용하는 것이 성경의 통상적인 것이다(욥 15:35, 시 7:14, 사 26:17, 59:4). 그 은유는 임산부로부터 취하여 왔다."(85) 단어의 의미를 정확하게 알지 못함으로 인해 본문에 대한 많은 해석들이 대두 될 때 칼빈은 성경에서 일반적으로 발견되는 의미에 일치하는 해석을 선택하였다.(86) 칼빈은 이사야 58장 8절 "네 빛이 아침 같이 비췰 것이며"를 해석할 때 이 원리를 사용하였다. "빛이란 단어는 번영을 의미하고, 어두움이란 단어는 비참하고 괴로운 인생을 의미한다고 하면서, 이런 표현의 용법은 성경에 자주 나타난다."(87) 칼빈은 주장하기를 어떤 해석들은 자연스럽지 못하고 저자의 스타일에 적절하지 않고, 선지서들 가운데 나타나는 통상적인 표현의 용법에 어울리지 않는다고 했다.(88) 칼빈에 따르면 에스겔과 바울은 성경의 경계선을 넘지 않았던 좋은 해석자들의 모범이다.(89) 칼빈은 성경이 가는 곳에 가고 성경이 멈추는 곳에 멈추기를 시도했다. 칼빈은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Scriptura sui ipsius interpres) 원리에 의해서 성경을 해석하는데 최선을 다했다.

2) 성령님의 조명

칼빈은 해석자가 성경을 해석하기 위하여 그를 죄로부터 보호하고 본문의 참된 의미를 이해하도록 도와주시는 성령님의 조명이 반드시 있어야 한다고 주장했다. 그러나 우리는 성령님의 조명과 인간의 해석 사이에 관계에 대해 질문을 갖게 된다. 그것은 성령님이 성경을 해석하는데 어떤 역할을 하는 것인가에 대한 물음이다. 우리는 칼빈이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성령님의 활동으로서 몇 가지의 중요한 요소들을 찾을 수 있다.(90)

첫째로, 칼빈은 성령님이 성경의 참된 저자라고 강조했다. 따라서 해석의 주도권은 인간에게 있지 않고 성령님께 있다. 결국 성경을 해석하기 위하여 해석자는 성령님의 도우심을 필요로 한다. 브로밀리 또한 성령님이 성경의 저자이며, 성경의 적절한 이해를 위해 본질적이다 라고 말한다.(91) 칼빈은 '성령님 그 자신이 해석자' 라는 말로써 그의 해석학의 신학적 전제를 설명한다. "복음의 교리의 원천인 성령님은 우리에게 그것을(복음의 교리) 열어 줄 수 있는 참된 유일한 해석자(its only true interpreter)이시다. 그러므로 그것을(복음의 교리) 판단할 때 인간의 마음은 하나님의 영에 의해 조명(enlightened by the Spirit of God)을 받지 않는다면 반드시 장님이 될 수밖에 없다."(92) 칼빈은 말하기를 "선지자를 통하여 말씀하신 성령님은 스스로가 참된 유일한 해석자다"(93) 라고 한다. "다윗을 통하여 말씀하신 성령님은 확실한 해석자"(94) 라고 말한다.

칼빈은 비록 인간이 성경을 해석하지만, 성경 해석의 참된 권위는 인간이 아니라 언어의 최고 권위자이신(95) 성령님이라는 것이다. 그에게 있어서 성령님은 내적 선생이요, 충성스런 해석자이다.(96) '성령님이 유일한 참된 해석자이다' 라는 칼빈의 견해는 결코 성경 해석에 있어서 인간적인 측면을 결코 무시하는 것은 아니다. 그는 분명하게 성경의 저자들은 성령님의 도구임을 강조하는 것이다. 칼빈은 말하기를 모세는 "자신의 장점을 자랑하지 않았고, 성령님이 우리에게 유용한 것을 구술하시고, 그의 입에 그것을 제안하셨다."(97) 라고 한다. 사도들은 성령님의 확실하고 진정한 필기자들(sure and genuine scribes) 이었다(certi et authentici Spiritus Sancti amanuenses).(98) 그러므로 칼빈은 성경의 모든 책들은 하나님의 말씀으로 간주되어야 함을 주장했다.(99) 칼빈에게는 선지자들과 사도들과 마찬가지로 성경 저자들은 성령님의 도구들이었다. 성경의 문학적 스타일에 관하여 논평하면서 칼빈은 인간 저자의 정신은 성경을 산출하는데 남아 활동하였다고 주장하였다.(100) 칼빈 또한 이 과정은 성경 저자들의 전체 인격들이 관련 되었다고 믿었다.(101) 결과적으로 우리는 성경을 해석하는데 있어서 우리 자신만을 믿지 말고 성령님을 의지해야 한다. 우리로 하여금 성경의 참된 의미를 깨닫게 하시는 분은 참된 해석자이신 바로 성령님이시다.

두번째로, 칼빈은 성령님의 의도를 성경 해석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요소들 가운데 하나로 간주했다.(102) 칼빈에게 있어서 성령님의 의도는 성경의 이해와 밀접하게 연결되어 있다.(103) 그러므로 해석자는 성경 해석에 있어서 성령님의 의도를 찾아야 한다. 우리는 성령님의 의도를 이해함이 없이는 결코 성경의 참된 의미를 이해 할 수 없다. "우리는 성령님이 말씀하신 그 목적에서 우리의 눈을 다른 곳으로 돌리지 않는다면, 참된 의미를 얻을 수 있다."(104) 칼빈 만큼 성경 해석에 있어서 성령님의 의도를 강조한 해석자는 없었다. 스가랴서 5장 1절의 주석에서 칼빈은 말하기를 "성령님의 의도를 고려하지 않는다면 해석자들은 결코 이 예언을 이해 할 수 없다고 한다.(105) 그는 성경의 구절들에서 성령님의 의도를 이해하려고 애썼다.(106) 칼빈이 성경 해석에 있어서 성령님의 저자를 강조한 사실은 그의 주석을 올바르게 이끌 수 있었다..

칼빈에게 있어서 성령님의 의도란 무엇인가? 칼빈은 성령님의 의도를 새로운 내적 광명(inner light, 재 세례파)으로 보지 않는다. 그에 따르면 성령님의 의도는 성경 밖에서 오지 않고, 오히려 저자가 성령님의 말씀을 통하여 기록한 본문 안에 나타난다. 칼빈은 성령님이 선지자들이나 사도들과 같은 저자들에게 말씀하셨기 때문에 성령님의 의도를 성경 저자의 의도와 동일시한다. 칼빈은 성경의 참된 의미를 성령님의 의도로 본다. 그에게 있어서 성령님의 의도를 찾는 것은 본문의 참된 의미를 해석하는 것을 의미한다.

세번째로, 성령님의 조명에 의하여 성경을 이해하는 것은 믿음과 연결되어 있다. 칼빈은 말하기를 "믿음은 성령님의 주요한 사역이며, 오직 믿음에 의해서 성령님께서 우리를 복음의 빛으로 인도한다"(107)고 한다. 성경은 믿음이 있을 때만 이해가 될 수 있다. 칼빈에 따르면 "오직 믿음이 이해를 발생시키기 때문에 이해는 믿음과 분리될 수 없다."(108) 칼빈은 성경을 이해하기 위하여 인간 이성이 아닌 성령님을 통해 믿음을 가져야 한다고 강조했다. "하나님을 참으로 아는 것은 그의 유일한 선물이며, 또 믿음은(오직 믿음에 의하여 그는 올바르게 알려진다) 성령님의 조명으로 부터만 온다는 사실을 생각해 볼 때, 우리 인간의 정신은 그것을 이해를 할 수 없고, 우리를 단지 본성으로 인도한다."(109) 칼빈은 믿음이 이해를 앞서야(fides quaerens intellectum) 한다고 믿었다. "사실상 우리의 믿음은 하나님께 순종함과 함께 시작하며, 이해를 앞서며, 그런 방식으로 믿음은 확실한 지식에 의해서 우리의 마음을 조명한다."(110) "눈으로도 결코 보지 못하고 귀로도 결코 듣지 못하는 우리의 마음과 생각을 초월하는 모든 것들을"(111) 믿음에 의해서 우리는 이해 할 수 있다. 믿음은 우리의 마음 속에서 더욱더 많은 이해의 불빛을 불태울 것이다. 그러나 믿음의 역사는 우리의 힘으로 되지 않고, 우리를 조명하는 성령님의 힘에 의해서 된다.(112) 우리가 믿음에 따라 성경을 해석 할 때 성령님은 우리가 육신의 이성에서 보호 받고 하나님의 말씀을 이해하도록 인도하신다.

넷째로, 칼빈은 우리가 성경을 해석하기 위하여 성령님의 조명을 받기 위하여 기도해야 한다는 것을 강조했다. 예를 들면 칼빈은 다음과 같이 기도한다. "오 전능한 하나님 우리에게 올바른 판단력이 없을 때, 또 우리 마음이 대낮에 조차 소경이 될 때, 당신의 영으로 우리를 빛추사 당신의 말씀의 빛에 들어가게 하소서."(113) 칼빈은 우리가 성령님의 의도에 의해 다스려지기 위하여 기도해야 함을 보여 주었다.(114) 우리는 기도를 함으로써 "올바른 이해를 주시는 성령님에 의하여 다스림을 받을 수 있다."(115) 챠일즈도 성령님의 조명을 위하여 우리가 기도하는 일이 올바른 성경 해석을 위하여 필수적이라고 말한다.(116)

5. 바람직한 해석자를 위한 제안

지금까지 우리는 우리의 삶의 정황 속에서 해석행위의 중요성과 칼빈의 해석학적 훈련, 그의 해석 작품들, 그리고 성경 해석자에게 있어서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 원리와 성령님의 조명을 살펴보았다. 이제 바람직한 해석자를 위하여 몇 가지로 제안한다.

 

1). 바람직한 해석자는 성경과 자신이 사는 시대에 대하여 항상 열린 마음을 갖고 자신의 불완전한 사고를 시대에 맞게 말씀으로 변화시켜야 한다. 변화성(transformation)이란 개혁신학의 강력한 힘이다. 하나님의 말씀에 따라서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reformanda secundum verbum Dei.). 로마 가톨릭교회는 전통에 묶여서 정지된 신학이기에 자신들의 기존의 전통에서 변화를 허락하지 않으며, 개인의 성경 해석을 금하지만, 개혁신학은 성경에 의하여, 성경을 향하여 항상 새롭게 온전하게 역동적으로 발전하는 신학이다. 따라서 개혁신학에 변화를 추진하기 위한 원동력은 성경이라는 권위 있는 하나님의 말씀을 이 시대 삶의 현장에서 올바르게 해석하려는 해석자의 행위가 있어야 한다. 종교개혁자들이 보여준 중요한 교훈들 가운데 하나가 바로 이점이었으며, 자신들은 이것을 사역의 소명으로 보았다. 따라서 올바르게 성경을 해석하는 행위는 교회를 개혁하는 출발점이 되며 사회와 국가를 변화시키는 하나님의 참된 도구가 된다. 루터와 츠빙글리 그리고 칼빈의 경우에서 그들의 올바른 성경의 해석이 교회개혁의 불을 점화시켰고 그들이 살았던 삶의 현장을 변화시켰던 것을 우리는 다시 한 번 주목해야 한다. 이렇게 바른 성경 해석에 근거하여 세워진 개혁된 교회는 힘이 있었고 사회와 역사를 주도하는 능력을 갖게 된다.

2). 바람직한 해석자가 되기 위하여서는 철저한 해석훈련이 요구된다. 여기에는 영적 훈련과 학문적인 훈련이 있다. 이 두 가지를 동시적으로 연마하지 못할 경우에는 이단자로 전락하기 쉽다. 기독교의 모든 이단은 성경을 자의적으로 왜곡시켜 잘못 해석한 결과이다.(117) 다시 한 번 해석의 중요성을 자각하게 된다.

창세기 2장 19절에서 23절까지 보면 아담은 하나님 앞에서 철저하게 영적이며 지적으로 해석하는 훈련을 받았다. 우리의 해석훈련은 학문적인 방법을 습득할 뿐만 아니라 하나님의 임재를 느끼면서 성스러운 해석자로서의 훈련을 받아야 한다. 영적 해석훈련은 해석자의 태도를 항상 하나님의 말씀의 권위에 자신을 복종하며 자신을 말씀으로 경건하게 준비시키는 것이다.(118) 이와 더불어 우리는 이런 훈련이 지나치게 신비주의적이며 영성 만능주의로 흐르지 않도록 학문적인 훈련도 게을리 해서는 안 된다. 칼빈이 당대의 인문주의의 훈련을 통하여 철학과 수사학을 소화하여 자신의 해석적인 작품 속에서 사용했듯이 우리 또한 세상의 학문과 새로운 이론 그리고 새로운 방법을 철저하게 연구해야 한다. 따라서 해석자는 영적인 면과 학문적인 기술을 잘 겸비하여 해석에 사용할 수 있는 자가 되어야 한다.

해석을 위한 지식인으로서 최대한 준비를 갖추어야 한다. 원어에 대한 능숙한 사용은 물론 세상의 학문적인 방법들을 습득해야 한다. 정보에 익숙한 문화인으로서 그 정보를 분석하고 사용하여 자신의 해석능력을 발전시켜야 한다. 하루하루 지식과 정보가 발전하는 사회에 사는 우리는 정보와 지식을 처리하는 능력을 배워야 바람직한 해석자로서 준비를 갖추게 된다. 이런 학문적인 습득과 영적인 훈련을 지속적으로 실행하여 하나님의 말씀을 하나님의 말씀으로 해석하는 종이 되어야 할 것이다.

3). 참된 해석자는 성경에 근거하여 미래의 역사를 예리하게 미리 진단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해석자는 미래에 대한 예언자적인 역할을 수행해야 한다. 예언자적 역할은 소위 말하는 시한부종말론을 주장하는 것과 전혀 다르다.(119) 한국교회에 망령처럼 붙어 다니는 극단적 재림사상을 제거하기 위해서는 성경과 세상의 역사와 학문을 올바르게 사용할 줄 알아야 한다. 따라서 철학과 과학 그리고 문화와 역사가 질문하는 것들에 대하여 하나님의 계시를 가지고 요셉처럼 다니엘처럼 정확한 해석을 주어야 한다. 이를 위하여 세계 역사에 대한 올바른 이해를 위하여 준비해야 한다. 인류의 문명과 변천 그리고 발전과 전망에 대한 해석자의 뛰어난 감각을 소유해야 한다. 문화와 역사 그리고 과학을 이해하고 분석하고 비판하는 능력을 갖추도록 한다. 신학교의 수업은 단지 신학자체에만 국한되지 않고 이런 모든 학문들에 대한 기본적인 지식의 중요성을 그리고 어떻게 신학과 다른 학문들이 연관되어 있는지를 학생들에게 알려 주어야 한다. 말씀의 해석자는 성경신학에 근거하여 미래의 세상의 역사를 종말론적으로 이해하는 능력을 갖추어야 한다.

4). 하나님의 영이 해석자에게 요구하는 것은 거룩성이다. 해석자는 성스러운 사람이다. 해석자 자신이 본질적으로 성스러워서가 아니라 성경 해석의 주체가 되는 성령님이 거룩한 하나님의 영이시며, 하나님은 본질적으로 거룩한 분이기 때문이다. 해석자란 말씀에 대한 신성한 사역을 감당하는 하나님의 종이다. 성경을 해석하는 일이란 일시적인 황홀 속에 지껄이는 신비한 계시도 아니며 자기의 무의식 세계를 심리학적으로 조사하는 일도 아니라, 하나님과 그의 백성을 위한 자신의 거룩한 삶을 통한 신성한 봉사의 사역이다. 따라서 해석자는 자신이 거룩하고 성스런 일에 참여하고 있음을 항상 인식하여 한다. 참된 경건과 자신의 삶을 거룩하게 유지할 때 참된 해석자로서 하나님의 능력을 가지고 성경 해석을 바르게 할 수 있다. 요셉과 다니엘의 경우에서 그들의 삶은 유혹과 세상적 가치관을 이겨낸 경건한 것이었다. 그들이 해석시에 사용한 언어는 참된 해석자의 능력을 보여주었다. 이런 해석이 힘을 가지고 있었던 배후에는 그들의 거룩한 삶이 있었다. 말씀의 해석자는 거룩함을 보여야한다. 비록 세상에 살고 있지만 세상과 죄악에 물들지 않고 성결한 삶을 살아야 한다. 세속에 자신이 더렵혀질 때 하나님이 주시는 신성한 해석적인 능력에 치명적인 손상을 받게 된다.(120) 지금 시대는 강한 윤리의식을 가지고 성결한 삶을 사는 해석자가 되어야 하나님으로부터 은혜를 받고 성경을 바르게 해석할 수 있다. 에벨링(Ebeling)은 오직 성경(sola Scriptura)의 원리는 오직 경험(sola experientia)의 원리를 통해 해명되고 완성될 수 있다고 주장한다. 잘못된 경험인가 아니면 올바른 거룩한 경험인가가 성경 해석의 결과를 만들어 낸다. 루터 역시 오직 경험이 신학을 만든다(sola experientia facit theologum)라고 말한다.(121) 따라서 경험을 어떻게 하는지는 신학과 해석을 위하여 매우 중요하다. 기독교인으로 거룩한 삶의 체험은 올바른 신학의 형성과 성경 해석을 위하여 필수적임을 알 수 있다. 성화가 칼빈 신학의 중요한 요소임을 감안할 때 개혁주의 해석자의 거룩한 삶은 성경 해석의 결정적인 요인이 된다.

로마서 12장 2절은 우리가 세상을 본받지 말고 마음을 새롭게 함으로 변화를 받으라고 수동태이며 명령형으로 되어 있다. 우리 스스로가 우리 자신을 능동적으로 변화시키고 거룩하게 만드는 힘을 갖고 있는 것이 아니다. 오직 성령님에 의해서 날마다 새로운 사람으로 변화되어 거룩한 삶을 살 수 있다. 바울은 이어서 우리에게 말하기를 하나님의 선하시고 기뻐하시고 온전하신 뜻을 분별하도록 하라고 한다. 하나님의 뜻 곧 하나님의 계시, 하나님의 말씀을 올바르게 해석할 것을 말한다. 바울의 말을 종합하여 말한다면 우리가 성령님의 도우심 안에서 성결한 삶을 살 때 우리는 하나님의 말씀을 바르게 해석하는 참된 해석자로 거듭나게 된다.

5). 성령님의 해석자는 해석에 있어서 성령님의 주도적인 역할을 강조한다. 현대의 급진적인 신학자들은 일반적으로 성령님의 역사를 인정하지 않는다. 그러나 성령님은 그리스도를 믿는 자에게 역사하신다. 성령님과 말씀의 관계에 대하여 루터파는 성령님이 말씀을 통하여서(per verbum)만 역사 한다고 하여 성령님이 말씀 안에 구속되는 듯한 주장을 하지만 개혁신학은 성령님이 말씀과 함께(cum verbo) 주권적으로 역동적으로 역사하신다고 주장한다.(122) 따라서 해석자는 성경 해석시에 자신 안에서 성령님이 이렇게 주도적으로 역사하시도록 준비해야 한다. 우리는 성령님에 대하여 예민하게 촉각을 세우고 그의 인도하심과 조명하심을 통하여 말씀을 해석 할 때 겸허하게 기도해야 할 것이다. 신학을 연구하는 자는 성령님이 충만해야 한다라고 강조하는 것은 반론의 여지가 없다. 인간이 자신의 지혜로 모든 학문을 통달했다고 해서 하나님의 계시를 바르게 해석할 수 있는 것은 결코 아니다. 오직 성경의 저자이신 성령님의 도움이 항상 함께 해야 한다. 칼빈은 이해의 영이 하늘로부터 임하는 자가 적절하고 충성스런 하나님의 해석자가 될 수 있다고 했다.(123) 참된 해석자가 되기 위해서 성령님의 충만함을 받기 위한 노력은 필수적이다. 김영한 교수는 개혁신학적 사고의 원리는 오로지 성령님에 입각한 사고라고 말한다.(124) 따라서 구체적으로 성령님에 의한 해석원리들이 방법론적으로 많이 연구되어야 할 것이다.

6). 교회를 위한 해석자로서 준비가 필요하다. 칼빈의 신학은 어떤 상아탑의 이론을 쌓았던 스콜라주의의 재생을 의미하지 않고 하나님의 교회를 위한 실질적인 도움을 주는 신학의 새로운 전환점을 제공해 주었다. 그의 주석이 바로 이런 실제적인 기독교 공동체를 돕기 위한 목적으로 쓰여졌기 때문에 오늘날도 그 영향은 지속되고 있다. 신학의 목적은 교회를 위한 학문이 되어야함에는 모두가 동의한다. 기독교 공동체를 위한 해석자로서 준비가 요구된다. 칼빈이 말했듯이 해석자의 최선의 노력은 교회의 공적인 유익을 위하는 것으로 삼아야 한다. 해석자의 메세지를 듣는 자들에게 유익과 도움을 주는 공헌이 요구되기 때문에 이를 위해서 준비해야 한다.

6. 결론

개혁자들의 중요한 유산이며, 동시에 신학적 원리인 오직 성경으로(sola Scriptura)는 그들을 참된 성경의 권위 뿐만이 아니라 성경 해석에까지도 올바른 방향과 열쇠를 주었다. 그들은 교회와 사제 중심적 해석을 주장했던 로마 가톨릭교회와 대항하였다. 또한 성경의 명료성에 대한 강조는 개혁자들로 하여금 성경을 성경으로 해석하는(Scriptura sui ipsius interpres) 원리를 제공해 주었다.

칼빈은 성경을 해석 할 때 여러 가지 학문적인 방법을 모두 사용했지만 그 어떤 것보다도 성령님의 조명에 의한 해석을 매우 중요하게 간주했다. 오늘날도 많은 성경 해석학 원리가 제시되고 있다. 물론 문학적, 철학적 방법론이 성경 해석에 도움이 되지만 근본적으로 우리가 명심해야 할 것은 성경은 성령님이 진정한 저자라는 사실을 인정하고, 올바른 해석을 위하여 연약한 인간은 그를 의지하여 그의 도우심 속에서 그분의 의도를 본문을 통하여 설명해 주어야 한다는 것이다. 최고의 성경 해석자란 자신의 인간적인 방법만을 사용하는 자가 아니라, 그 모든 방법들이 성령님의 지배와 조명에 의하여, 성령님의 의도 즉 성경의 참된 저자의 의도를 밝히는 자이다. 칼빈은 성령님의 의도인 성경저자의 의도를 바르게 해석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다. 그에게 있어서 저자의 의도란 본문의 참된 의미인데, 본문을 왜곡하지 않고, 건전한 성경적 해석 원리에 근거하여 단순하고 자연스런 의미를 말하는 것이었다. 그가 성경을 해석할 때 자기의 어떤 주관적인 주장이나, 어떤 교리적인 편견을 가지고 본문을 다루지 않았기 때문에 객관적인 방법을 공정하게 사용할 수가 있었다.

여기서 우리는 중요한 교훈을 얻을 수 있다. 칼빈은 자신의 대표적인 두 원리를 성경에 근거하여 찾았다는 것이다. 자신의 원리가 성경에 근거한 확증으로부터 그는 자신의 원리의 정당성을 가지고 분명하게 자신의 해석 원리로 사용하였다. 이런 사실로부터 합법적인 성경 해석 원리뿐만이 아니라 신학의 원리도 성경 자체의 고유한 속성과 원리에 그 뿌리를 두어야 할 것을 보여준다. 물론 다른 학문적 원리를 전적으로 배제하는 것은 아니다. 성경의 이해를 위하여 긍정적인 사용이 검토되어야 함에도 불구하고 신학 원리의 정당성은 그것이 성경에 올바른 기초를 두고 있어야함을 인식하게 된다.

칼빈은 당시의 잘못된 해석자들의 문제점을 정확하게 파악하여, 자신의 합법적인 해석 원리를 그 상황에 맞게 실제적으로 적용한 것을 우리에게 교훈하고 있다. 칼빈의 해석 원리의 동기는 자신의 어떤 능력을 자랑함이 아니요, 상아탑의 이론을 세우려고 힘썼던 것도 아니었다. 오직 하나님의 교회와 독자들에게 실제적인 도움이 되기 위하여 노력했다는 사실 또한 오늘날 우리에게 큰 도전을 준다. 우리는 칼빈이 고별시 제네바 목사들에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성경을 충성스럽게 해석하라는 충고를 다시 한번 되새길 필요가 있다.(125) 오늘날 많은 신학적 문제점을 가진 한국교회에 우리의 신학도들이 이런 칼빈의 원리를 통해 성경을 올바르게 해석한다면 많은 문제점들이 극복하고 부패하고 왜곡된 삶의 현장을 개혁할 수가 있을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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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1)루터는 1517 10 31 95개 조항을 발표하기 바로 전까지 교수로서 창세기 강의(1512), 시편 강의(1513-15), 로마서 강의(1515-16), 갈라디아서 강의(1516-17)를 통하여 복음에 대한 새로운 이해를 갖게 되었다.

(2)에라스무스의 인문주의적 해석방법이 츠빙글리의 성경이해에 큰 영향을 주었다. 특히 에라스무스의 헬라어 신약성경에(1516) 대한 난외주석에서 원문번역, 본문비평, 교부들의 인용방법 등에서 영향을 보여준다. Cf. Christine Christ, "Das Schriftverständnis von Zwingli und Erasmus im Jahre 1522," Zwingliana 16 (1983): 111-25; Alister McGrath, The Intellectual Origins of the European Reformation (Oxford: Blackwell: 1987), 167-174.

(3)칼빈이 쓴 초판 『기독교 강요』(1536)에서 첫 주석인 로마서 강해(1539)는 성경 해석의 중요성이 나타난다.

(4)Warren A. Quanbeck, "Biblical Interpretation in Luther's Early Studies," The Lutheran Quarterly 31 (1949), 291.

(5)Huldrych Zwingli, "Of the Clarity and Certainty of the Word of God," in Zwingli and Bullinger, ed. G. W. Bromiley (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53), 88-9. 여기서 그는 성경해석에 있어서 성령님의 조명은 필수적이라고 한다.

(6)Nicholas Woterstorff, "The Importance of Hermeneutics for a Christian Worldview," in Disciplining Hermeneutics: Interpretation in Christian Perspective, ed. Roger Lundin (Grand Rapids: Eerdmans, 1997), 27.

(7)Kevin J. Vanhoozer, "The Spirit of Understanding: Special Revelation and General Hermeneutics," in Disciplining Hermeneutics: Interpreation in Christian Perspective, 131.

(8)Gerhard Ebeling, "New Hermeneutics and the Early Luther," ThToday 21 (1964): 34-46. 여기서 그는 루터의 사상 안에서 일어났던 해석적 혁명을 강조한다. Karl Bauer, Die Wittenberger Universitätstheologie und die Anfänge der deutschen Reformation (Tübingen: Mohr, 1928), 145. 그는 강조하기를 루터가 그의 새로운 해석학을 통하여 개혁자가 되었다고 한다: "Aber zum Reformator ist er weder durch seinen Nominalismus, noch durch die Anregungen, die him vom Humanismus kamen, sondern durch seine neue Hermeneutik."

(9)A. Skevington Wood, Luther's Principles of Biblical Interpretation (London: The Tyndale Press, 1960), 6. Cf. A. E. McGrath, "Luther," in A Dictionary of Biblical Interpretation, ed. R. J. Coggins and J. L. Houlden (London: SCM Press, 1990), 415.

(10)Paul Althaus, The Theology of Martin Luther, trans., Robert S. Schultz (Philadelphia: Fortress, 1989), 3.

(11)David W. Lotz, "Sola Scriptura: Luther on Biblical Authority," Int 35 (1981): 258-73.

(12)Martin Luther, Martin Luthers Werke, 10.3.238 (Weimarer Ausgabe, 18832009). 이후로는 WA.

(13)Ralph A. Bohlmann, Principles of Biblical Interpretation in the Lutheran Confession (St. Louis: Concordia Publishing House, 1968), 89. Cf. Paul Althaus, The Theology of Martin Luther, 76-78.

(14)Erling T. Teigen, "The Clarity of Scripture and Hermeneutical Principles in the Lutheran Confessions," ConcorThM 46 (1982): 147-166; Bernhard Rothen, Die Klarheit der Schrift, Teil 1: Martin Luther, Die wiederentdeckten Grundlagen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90).

(15)Bernhard Lohse, Martin Luther: An Introduction to His Life and Work, ed. Robet c. Schultz (Philadelphia:: fortress, 1986), 47-8. Cf. Martin Brecht, Martin Luther: His Road to Reformation 1483-1521, trans. James L. Schaaf (Minneapolis: Fortress Press, 1981), 299-348.

(16)WA 2.282, quoted in A. Skevington Wood, Captive to the Word: Martin Luther, Doctor of Sacred Scripture (Grand Rapid: Eerdmans, 1969), 70.

(17)Hermann Sasse, "Luther and Word of God," in Accent in Luther's Theology, ed Heino O. Kadai (St. Louis: Concordia Publishing House, 1967), 67. Martin Luther, The Bondage of the Will, trans. J. I. Packer and O. R. Johnston (Westwood: Fleming H. Revell, 1957), 71, 123-132. Cf. WA 18.609, 653.

(18)몇 가지를 소개하면, 첫 번째로 루터는 이해하는데 있어서 어려움이 없는 성경의 분명한 본문을 단순히 인용하고, 두 번째로 성경에 있는 사건과 사람들을 포함하는 예화를 사용하고, 세 번째로 문맥에 의해서 본문을 해석하고, 네 번째로 전체 성경의 의미로부터 본문의 의미를 해석하며, 다섯째로 그리스도 자신이 말씀하셨다는 그리스도 중심적인 해석을 한다.

(19)John Calvin, Institutes of the Christian Religion, ed. John T. McNeil, trans. Ford Lewis Battles (Grand Rapids: Eerdmans, 1960), 5. 이후로는 Inst로 표기한다. 『기독교 강요』의 저작목적을 위하여 참고로 신복윤, 『칼빈의 신학사상』 (서울: 성광문화사, 1993), 53-79.

(20)Felicity Edwards, "The Relation between Biblical Hermeneutics and the Formulation of Dogmatic Theology: An Investigation in the Methodology of John Calvin" (Ph.D. diss., Oxford University, 1968).

(21)Gerhard Ebeling, Kirchengeschichte als Geschichte der Auslegun der Heiligen Schrift (Tübingen: J.C.B. Mohr, 1947).

(22)jaroslav Pelikan, Luther the Expositor: Introduction to the Reformer's Exegetical Writings, Companion Volume to Luther's Works (St. Louis: Concordia Publishing House, 1959), 5.

(23)Thomas F. Torrance, Divine Meaning: Studies in Patristic Hermeneutics (Edinburgh: T&T Clark, 1995), 6.

(24)C.J. Wethmar, "Ecclesiology and Theological Education: A South African Reformed Perspective," 13. Unpublished Paper, Congress of the International Reformed Theological Institute, 1997.

(25)Iohnnis Calvini Commentarius in Epistolam Puli ad Romanos, ed. T. H. L. Parker (Leiden: E.J. Brill: 1981), 2.

(26)칼빈의 간결성과 단순성에 관한 연구로 Myung Jun Ahn, "Brevitas et Facilitas: A Study of A Vital Aspect in the Theological Hermeneutics of John Calvin" (Ph.D. diss., Universiteit van Pretoria, 1998), The Methodology of Brevitas and Facilitas as the Hermeneutic Principles of John Calvin" (Th.M. thesis, Westminster Theological Seminary, 1992), "The Ideal of Brevitas et Facilitas: The Theological Hermeneutics of John Calvin," Skrif en Kerk, 20/1 (1999), 안명준, “칼빈의 성경 해석학 방법론 1” 「목회와 신학」, 82 (4/1996): 273-284, “칼빈의 성경 해석학 방법론 2” 「목회와 신학」, 83 (5/1996): 263-272, 안명준, 『칼빈의 성경 해석학』 (서울: 기독교문서 선교회, 1997), 권호덕, 『종교개혁 신학의 내포적 원리』 (서울: 솔로몬, 1998), 334-8.

(27)Hans-Georg Gadamer, Truth and Method (New York: Crossroad, 1992), 509.

(28)이런 추세는 최근 한국에서도 나타난다. 1998 9 22일부터 23일 까지 유네스코 한국위원회와 한국공연 예술원이 주최한 샤만유산의 발견(Discovery of Shamanic Heritage)이란 주제로 국제심포지움이 열렸는데 히말리아, 네팔, 일본, 한국의 샤만에 대한 심도있는 논문들이 발표되었고, 샤만들의 공연도 있었다.

(29)William J. Bouwsma, John Calvin: A Sixteenth-Century Portrait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1988), 9.

(30)Alexandre Ganoczy, The Young Calvin, trans. David Foxgrover and Wade Provo (Philadelphia: Westminster Press, 1987), 57.

(31)F. Wendel, Calvin et l'hummanism (Paris: Presses Universitaires de France, 1976), 11; Alexander Ganoczy, The Young Calvin, 57.

(32)T. Beza, Life of John Calvin, 2. Selected Works of John Calvin: Tracts and Letters. Edited byHenry Beveridge and Jules Bonnet, Vol. 7, Edited by Jules Bonnet and translated by Marcus Robert Gilchrist. Grand Rapids: Baker Book House, 1983.

(33)François Wendel, Calvin: Origins and Development of His Religious Thought. Translated by Philip Mairet (Durham: The Labyrinth Press, 1963), 23.

(34)Donald K. McKim, Historical Handbook of Major Biblical Interpreters (Dower Grove: IVP, 1998), 175.

(35)John Calvin, Calvin's Commentary on Seneca's De Clementia (Leiden: E. J. Brill, 1969).

(36)Richard Muller, The Unaccommodated Calvin (Oxford: Oxford University Press, 2000), 23. 리처드 멀러, 16세기 맥락에서 본 진정한 칼뱅신학』, 이은선 역 (서울: 나눔과 섬김, 2003).

(37)신복윤, 『칼빈의 하나님 중심의 신학』(수원: 합동신학대학원대학교, 2005, 65.

(38)리처드 멀러, 16세기 맥락에서 본 진정한 칼뱅신학』, 397. 멀러는 “칼뱅이 주장했던 바와 같이, 독자들은 기독교강요를 성경 연구와 주석들의 연구를 위한 배경으로 사용해야만 한다. 여전히, 특별하게 논제의 증보의 성경의 근원과 관련하여, 칼뱅의 사상을 충분히 이해하려면 주석들 자체와 설교들을 이해해야만 한다.”고 말한다.

(39)John Calvin, "From the French Editon of 1560'," Inst., it can be a key to open a way for all children of God into a good and right understanding of Holy scripture.

(40)참고로 안명준, “칼빈의 신학적 해석학: 간결성과 용이성의 방법론,“ 「한국개혁신학」, 7 (2000). 그리고 ”존 칼빈의 신학적 해석학," 「장로교회와 신학」, 창간호 (2004). 필자의 학위 논문 전체 내용을 보기 위하여 theologia.co.kr에서 논문 게시판을 참조.

(41)로널드 K. 맥킴 편저, 『성경 해석자 사전』, 강규성과 장광수 공역 (서울: CLC, 2003), 303.

(42)Ibid. 참고로 한성진, “칼빈의 기독교강요와 주석과의 관계연구,” 「칼빈과 성경」 (부산: 고신대학교, 고신대학교 개혁주의학술원), 180.

(43)Ibid,, 304.

(44)Harry Caplan ("The Four Senses of Scriptural Interpretation and the Medieval Theory of Preaching," Speculum 4, 1929, p. 283) 4 중적 의미의 해석에 관해 다음과 같이 정의하였다. "의미들이 4 가지 방법으로 늘어난다: (1) 역사적 의미 혹은 문자적 의미 (sensus historicus or literalis)란 단어들을 있는 그대로 설명하는것; (2) 敎訓的 의미(senus tropologicus)란 교훈과 도덕적 是正(the correction of morals)을 찾는것; (3) 풍유적인 의미(sensus allegoricus)란 문자적 의미 이상의 다른 의미를 설명하는것; (4) 영적 의미(sesus anagoricus)神秘的으로 혹은 공적으로(mystically or openly) 사용되는데, 듣는자의 마음이 하늘의 것들(heavenly things)默想함으로써 感動받고 訓戒 받는것." 예를들어 이 4 중적 의미의 방법으로 예루살렘을 해석해 본다면 문자적(literal)으로는 팔레스타인의 문자적 都市이며, 풍유적(allegorical) 의미로는 敎會 의미하며, 도덕적(tropological) 의미로는 인간의 靈魂 언급하며, 영적(anagogical)인 의미로는 하늘의 都城 말한다. Cf. A. Berkeley Mickelsen, Interpreting the Bible, 35. 중세의 성경 해석학을 위한 연구로, Henri de Lubac, Exegese medievale: les quatres sens de l ecriture, 4 vols. (Paris: Aubier, 1959); Robert M. Grant, A Short History of the Interpretation of Bible (New York: Macmillan, 1948); Ceslaus Spicq, Esquisse d une histoire de l exegese Latine au moyen age (Paris: Z. J. Vrin, 1944); Katherine Walsh and Diana Wood, The Bible in the Medieval World: Essays in Memory of Berly Smalley (Oxford: Basil Blackwell,

1985); M. L. W. Laistner, "Antiochene Exegesis in Western Europe During the Middle Ages," Harvard Theological Review (1947): 19-31; Robert E. McNally, "Medieval Exegesis," Theological Studies 22 (1961): 445-454. 

(45)이상규, “한국에서의 칼빈 연구”, 『칼빈과 한국교회』, 안명준 편집 (서울: SFC, 2010), 290-291.

(46)John T. McNeill, "the Significance of the Word of God for Calvin," Church History 28 (1959): 131.

(47)J. I. Packer, "Infallible Scripture and the Role of Hermeneutics," in Scripture and Truth, ed., D. A. Carson and John D. Woodbridge (Grand Rapids: Zondervan, 1983), 350.

(48)J. I. Packer, "Sola Scriptura in History and Today," in God's Inerrant Word, ed. John Warwick Montgomery (Minneapolis: Bethany, 1974), 43.

(49)H. Bavinck, Gereformeerde Dogmatiek, Bd. 1, (Kampen: J, H, Kok, 1928), 449. "Inderdaad hebben de kerken der Hervorming tegenover Rome geen machtiger wapen dan de Schrift."

(50)Cf. C. J. Wethmar, Dogma en Verstaanshorison: 'n Histories-sistematiese ondersoek in verband met die hermeneutiese funksie van die kerklike dogma met besondere verwysing na die teologie van Gerhard Ebeling (Amsterdam: Rodopi, 1977), 177.

(51)E. P. Groenewald, Die Eksegese van die Nuwe Testament (Pretoria: Universiteit van Pretoria, 1938), 8.

(52)J. I. Packer, "Sola Scriptura in History and Today," 48-9.

(53)Klaas Runia, "The Hermeneutics of the Reformers," CTJ 19 (1984): 121-152; Alister McGrath, The Intellectual Origins of the European Reformation (Oxford: Blackwell, 1987), 152-174.

(54)WA 7.95-101.

(55)Gordon Clarke Chapman Jr., "The Hermeneutics of Hermann Diem: A Renewed Conversation between Existentialist Exegesis and Dogmatic Theology" (Ph.D. diss., Boston University: Boston, 1963), 7-8. H. W. Rossouw, "Calvin's Hermeneutics of Holy Scripture," in Calvinus Reformator, 151-2.

(56)Gottfried W. Locher, Die Zwinglische Reformation im Rahmen der europäischen Kirchengeschichte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79), 212-3. 성경의 명료성에 대한 연구로 Gregg Robert Allison, "The Protestant Doctrine of the Perspicuity of Scripture: A Reformulation on the Basis of Biblical Teaching" (Ph.D. diss., Trinity Evangelical Divinity School, 1995.

(57)H. Bavinck, Gereformeerde Dogmatiek, Bd. 1, 449.

(58)Ibid., 450. 성경의 명료성과 성경의 해석에 대한 관계를 위한 연구로, Hendrik Willem Rossouw, Klaarheid en Interpretasie. Enkele probleemhistoriese gesigspunte in verband met die leer van die duidelikheid van die Heilige Skrif (Amsterdam: Drukkerij en Uitgeverij Jacob van Campen N. V., 1963), 246-270. Cf. P. C. Potgieter, "Perspicuitas - Vir Wie?" in 'N Woord op sy tyd: 'n Teologiese Feesbundel aangebied aan Professor Johan Heyns ter herdenking van sy sestigste verjaarsdag, eds. C. J. Wethmar and C. J. A. Vos (Pretoria: NG Kerkboekhandel, 1988), 89-96.

(59)Gerhard Ebeling, "Word of God and Hermeneutic," in The New Hermeneutic, vol. 2, ed. James M. Robinson and John B. Cobb, Jr. (New York, Harper & Row, 1964), 79. G. C. Berkouwer, Holy Scripture (Grand Rapid: Eerdmans: 1975), 127.

(60)John H. Leith, "John Calvin. Theologian of the Bible," Interpretation 25 (1971): 330

(61)The Genevan Confession (1536), in Calvin: Theological Treatises, The Library of Christian Classics, trans., J. K. L. Reid (Philadelphia: The Westminster Press, 1954), 26.

(62)John Murray, "Calvin's Doctrine of Scripture," in Collected Writings of John Murray, vol. 4, Studies in Theology (Edinburgh: The Banner of Truth Trust, 1982), 156-175.

(63)Inst. I.7.1, "Hence the Scriptures obtain full authority among believers only when men regard them as having sprung from heaven, as if there the living words of God were heard." 이 말은 성경 권위의 궁극적인 증거는 성경 안에서 하나님 자신이 우리에게 말씀하신다 라는 것이다.

(64)John Calvin, Commentary on 1 Timothy 3: 16 (Grand Rapids: Baker, 1979). 이후에 나오는 칼빈은 주석은 Comm. on으로 표기한다.

(65)Von Hans Helmut Eßer, "Die Lehre vom testimonium Spiritus Sancti internum bei Calvin

innerhalb seiner Lehre von der Heiligen Schrift," In Verbindliches Zeugnis: Schriftauslegung-Lehramt-Rezeption, eds. W. Pannenberg und T. Schneider (Göttingen: Vandenhoeck & Ruprecht, 1995), 246-258 .

(66)A. Ganoczy, "Calvin als paulinischer Theologe," in Calvinus Theologus, ed. W. H. Neuser (Neukirchener: Neukirchener Verlag, 1976), 50.

(67)C. Schwöbel, "Calvin," in A Dictionary of Biblical Interpretation, eds., R. J. Coggins and J. L. Houlden (London: SCM, 1990), 99,

(68)P. C. Potgieter, "Calvin as Scriptural Theologian," in Calvinus Reformator: His Contribution to Theology, Church and Society (Potchefstroom: Potchefstroom University for Christian Higher Education, 1982), 129.

(69)Comm. on Isa. 34:8, 51.

(70)Comm. on Rom. 8:29, 316.

(71)Comm. on Isa 17:9, 28.

(72)Comm. on Isa. 5:20, 186.

(73)Comm. on Isa. 56:3, 179.

(74)Inst. IV.16.23, 1346.

(75)Comm. on Rom. 4:17, 175.

(76)Comm. on Isa. 37:32, 141.

(77)Comm. on Isa. 62:2, 323.

(78)David L. Puckett, John Calvin's Exegesis of the Old Testament (Louisville: Westminster John Knox Press, 1995), 62.

(79)Comm. on Hos. 9:14, 341.

(80)Comm. on Isa. 37:7, 113.

(81)Comm. on Rom. 5:4, 191.

(82)Comm. on Rom. 7:5, 249. Cf Comm. on Isa. 65:6, 384, Comm. on Jer. 36:8, 334.

(83)Comm. on Rom. 8:17, 302.

(84)Comm. on Isa. 44:18, 376-7.

(85)Comm. on Isa. 33:11, 22.

(86)Comm. on Isa. 52:15, 108.

(87)Comm. on Isa. 58:8, 235.

(88)Comm. on Isa. 60:21, 299.

(89)Comm. on Eze. 1:25-26, 102.

(90)P. T. Fuhrmann, "Calvin, the Expositor of Scripture," Interpretation 6 (1952): 194. 그는 성령님님의 조명을 칼빈의 성경 해석학의 하나의 원리라고 본다.

(91)Geoffrey W. Bromiley, "The Interpretation of the Bible," in The Expositor's Bible Commentary, vol. 1, ed, Frank E. Gaebelein (Grand Rapids: Zondervan, 1979), 71.

(92)Comm. on 1 Cor, 2:14, 117.

(93)Comm. on 2 Pe. 1:20, 389.

(94)Comm. on Ps. 32:1, 523.

(95)Comm. on Dan. 4:35, 298

(96)Inst. III.1.4,

(97)Comm. on Ex. 3:1, 59.

(98)Inst. IV.8.9,

(99)Ibid.

(100)David L. Puckett, John Calvin's Exegesis of the Old Testament, 27.

(101)Ibid.

(102)H. W. Rossouw, 152.

(103)Comm. on Jer. 49:3, p. 39.

(104)Inst. III. 18, 6, p. 827.

(105)Comm. on Zec. 5:1, pp. 126-7.

(106)Comm. on Dan. 11:26, p. 312.

(107)Inst. III.1.4, p. 541.

(108)L. Floor, "The Hermeneutics of Calvin," in Calvinus Reformator, p. 187.

(109)Comm. on Acts. 17:27, 167.

(110)Comm. on Isa. 41:22, 270.

(111)"Argument," in Comm. on Gen. 63.

(112)Comm. on Is. 43:10, 331.

(113)Ibid.

(114)Ibid.

(115)Comm. on Ps. 86:11, 887.

(116)Paul R. Noble, The Canonical Approach: A Critical Reconstruction of the Hermeneutics of Brevard S. Childs (Leiden: E. J. Brill), 290.

(117)1998 10 5일 영생교회 신도들이 자신을 신격화한 우종진목사와 더불어 자살을 통하여 고귀한 생명을 허망하게 버렸다. 도대체 우목사는 성경 해석을 어떻게 배웠기에 이런 사태를 만들었는지 안타깝다.

(118)박건택은 말씀 연구과 함께하는 종교개혁 영성 훈련과 청지기 영성의 중요성을 말한다. “종교개혁사 연구와 한국 교회,Revival and Unity of Reformed Churches, 국제학술대회 (서울: 총신대학교, 2013), 380-381.

(119)중앙일보기사 인터넷 기사 입력 2012.10.26 이성호 교수의 시한부 종말론 참고, http://article.joinsmsn.com/news/article/article.asp?total_id=9703901&cloc=olink|article|default

(120)2013.04.21 한국일보. 수원에 사는 최목사는 하와가 먹은 사과 씨앗이 가슴이 됐다고 설교한 것에 대하여 징계하도록 국가인권위원회가 교단 측에 권고한 것은 적법한 처분이라고 법원이 판결한 보도가 있다. 세상 사람들이 목사들을 무시하는 이유는 바로 너무나 세속적이고 또 깨끗한 모습이 없기 때문이다. 목회자가 무당보다 더 세상적이고 육신적인 삶을 산다면 비난의 대상이 될 것이다.

(121)심광섭, “실천신학으로서의 존 웨슬리의 신학방법론”, 「한국조직신학논총」, 30 (2011): 247-278

(122)김준삼, 『웨스트민스터 신앙고백서 강해』 (서울: 도서출판총신, 1996), 30. 참고로 김병훈, "은혜의 방편으로서의 성경: 말씀을 통하여(per verbum)와 말씀과 함께(cum verbo)", 26차 한국복음주의 조직신학회 정기 논문 발표회 (서울: 성결대학교, 2013), 79-93,

(123)Comm. on Gen. 41:10, 323.

(124)김영한, 『현대신학과 개혁신학』 (서울: 성광문화사, 1996), 557.

(125)Calvin's Farwell to the Ministers of Geneva, April 28, 1564," in Selected Works of John Calvin: Tract and Letters. ed., John D. Olin (New York: Harper & Row, 1988), 375.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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