인도차이나 선교를 꿈꾸며.....

 

   

  ▲ 김진주 장로

  김해동부교회

지난 주일(2013. 6. 22) 오후예배, 한성찬 목사님 설교를 통해 방효원 선교사 일가족의 참사를 전해 들었다. 4일 전인 2012518, 캄보디아 사역준비를 완료하고 첫 사역지 시엠립으로 가는 도중에 교통사고를 만나 방선교사를 포함 아내선교사 및 두 자녀가 숨지고, 큰아이(11)와 막내(3)는 살아났으나 중태라는 소식이다. 1866, 우리나라 선교초기 토마스 선교사가 한국 땅 대동강변에 내리자마자 순교할 때는 너무 허무한 것 같았으나, 그가 던지고 간 성경으로 이 땅에 복음의 씨앗을 뿌렸듯이, 방선교사의 순교도 지금은 우리가 알 수 없지만, 하나님의 뜻이 분명 있을 거라고 했다. 교인들은 모두 슬픔과 안타까움을 금치 못했다. 거기다 내가 받은 충격은 남달랐다.  

작년에 직장에서 보내준 국외여행을 다녀왔다. 그때, 캄보디아 외곽에서 시엠립시 숙소로 돌아오는 길에 승용차 한 대가 전복된 교통사고를 목격했다. 가이드가 이곳은 중앙선이 없어서 자주 사고가 난다고 하면서, 과거에 선교사 한 분이 사고를 당해 시엠립 한인회장을 비롯한 임원들이 현지에 달려가 이 도시(캄보디아 두 번째로 큰 도시)에서 가장 큰 병원으로 옮겼으나, 머리 수술을 맡은 의사가 보더니 여기는 안 되고 수도 프롬펜으로 가라고 하더란다. 3시간을 넘게 덜컹거리면서 가야 하기에 아예 출발도 못 하고 발을 동동 구르고 있는데, 몇 시간이 지나니 깨어나더라는 것이다. 극적으로 설명한 가이드의 말에 감격한 일행은 손뼉을 치고 야단이 났던 기억이 불현듯 떠오르면서, 방선교사의 사고 장소가 꼭 내가 본 그 시엠립 외곽 교통사고 지점과 비슷한 곳이라는 생각이 오버랩 되면서 짠한 충격으로 다가왔다.  

직장에서 국외여행 선발할 때 지원자가 많은 선진국을 피해, 동남아를 택한 것이 용케 뽑혀 베트남과 캄보디아를 가게 되었는데, 출발할 때부터 하나님의 뜻으로 여기며, 여느 선진국 여행지보다 낫다는 생각을 가지고 마음 설레며 준비했다. 관광보다는 살기 어려운 곳을 많이 돌아봐야지 하고 갔으나, 일행의 관심은 명승지이었기 내 뜻은 관철되지 못했다. 그러나 못사는 마을도 관광 코스에 들어 있어, 누구보다도 열심히 그들을 살펴보았다. 시내의 생활은 괜찮아 보였지만, 시엠립 외곽은 말이 아니었다. 검게 탄 얼굴에 파리가 덕지덕지 붙어있는 어린아이를 보면서 불쌍한 생각도 들었지만, 정작 더 불쌍한 건 나 자신이었다. 가난한 내 마음이 불쌍했던 것이다. 우리가 지향하는 교회는 사도행전적 초대교회로서 유무상통의 원리가 지배해야 되지 않는가! 나는 정말 이 원리를 실천하고 있는가? 이 질문은 오래전부터 나 자신을 향해 던져왔으며 이것은 아니다 라고 단정 지었다. 여행 중부터 이런 생각이 나를 더욱 강하게 압박하며, 불신 영혼에 대한 강력한 사랑보다는 나 자신을 향한 삶의 방향을 바꾸도록 자꾸 채찍질하며 오늘에 이르러 방선교사의 비보를 접하고 있다.

난 애당초 해외선교에 관심이 없었다. 가는 선교사도 있고, 보내는 선교사도 있다는 정도의 선교관이었다. 교회 내에서 열심히 일하는 것이 내가 할 일이라고 생각하고 여태껏 그렇게 살아왔다.  

2003, 아들이 해병대 입대하여 복무 1년쯤, 선배로부터 구타를 당하여 한쪽 귀 고막이 나간 상태에서 만기제대를 했다. 구타사실을 모르는 우리 부부는 제대하자마자 칼 복학을 마다하고 2005년 제주DTS에 들여보냈다. 예수 사관학교 정도로 생각하고 신앙으로 무장시키기 위해서였다. 그런데 거기서 강력한 성령의 능력으로 귀를 고치는 기적이 일어났고, 하나님의 역사 하심을 깨달으면서, 팔레스타인 단기선교 3개월을 마쳤다. 귀국하자 바로 선교지로 떠나겠다는 돈키호테 같은 경거망동을 담임목사님이 다듬어 주시고 대학을 졸업한 후, 2009년 신학대학원에 진학, 3년간 재학 중에도 선교 열의를 굽히지 않더니, 며느리도 선교훈련을 이수하여 아들 내외가 선교사의 꿈을 키우며 교역자로 지금 목회를 하고 있다. 그동안 아들의 꿈이 선하게 이루어지길 원하는 기도 외에는 특별히 내가 할 일이 없었다. 선교사로 가는 것은 그렇다 치더라도 섭섭한 것 하나는 손녀와 손자가 보고 싶어서다. 후진국에서 어떻게 살아가겠는가! 제일 걸리는 대목이었다. 하기야 당장 떠나는 것도 아니고 몇 년은 더 걸려야 하기에 그냥 생각을 접고 살아왔다.  

그런데 문제는 예기치 못하게 나한테서 불거졌다. 내가 먼저 떠나야겠다는 생각이다. 정말 아이러니칼한 하나님이다. 전혀 엉뚱한 하나님이 나를 찾아온 것이다. 언제부턴가 내 입에선 캄보디아 등 인도차아나 지역을 선교지로 지정하여 비전을 떠들며 다니고 있다. 혹시 마음이 변할까 봐 선포부터 하는 것일까. 솔직히 캄보디아, 베트남 외에는 별스레 아는 나라가 없다. 베트남, 라오스는 공산국이고, 다행히 캄보디아는 민주국이라는 짧은 지식이 전부다. 따라서 선교투자 면에서 캄보디아가 용이할 것 같아 집중기도 중이다. 당장 외손녀도 하나 더 태어나면 직장을 다니는 딸이 감당을 못할 것은 불을 보듯 뻔하다. 물론 제 친할머니가 계시지만 아무리 생각해도 역부족이다. 친손주도 경우는 똑같다. 따지고 보면 정말 대책 없는 역발상이다. 그렇다고 몇 년 후 아들이 내 뒤를 따라오는 것도 아니다. 아들은 팔레스타인 선교를 꿈꾸며 여태껏 준비하고 있다. 다행히 아내는 협조를 아끼지 않아 한편 감사하기도 하다. 현재 캄보디아 형편은 인터넷을 통해 빠짐없이 찾아보고 있고, 070 공짜전화로 현지사정을 알아보기도 한다. 또 현지에 가면 한국어를 가르칠 교원자격증 취득 공부를 시작한 지 한 학기가 넘어가고 있다. 이제 공직 정년도 딱 1년 남았다. 연금이 나오니 일단 우리 부부가 사는 데는 지장이 없을 것 같고 현지에 폐는 끼치지 않을 것 같다. 좋은 선교사 밑에서 시키는 대로 교과서적인 선교를 하고 싶다. 그러기 위해선 남은 기간 선교훈련도 열심히 받아야 할 것이다.  

역설의 하나님! 방 선교사에게 임한 도저히 이해 못 할 하나님! 토마스 선교사에게 임한 알 수 없는 하나님! 내게도 엉뚱하게 임하신 하나님! 가는 그날까지 선교지 변경 외에는 선교 마음 변치 않고, 내 주위 환경 바뀌지 않도록 지켜주소서! 아멘.

 

예쁜 화면 보기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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