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베소서 4장 15절에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라”(우리 성경에서는 ‘사랑 안에서 참된 것을 하여’라고 번역되어 있다)라는 말씀이 있다. 우리에게 주는 교훈이 큰 말씀이다. 왜냐하면 우리는 의와 진리를 말한다는 명분을 내세우며 사랑을 쉽게 뒤로 밀쳐버리기 때문이다. 개인적으로도 그렇거니와 교회적으로는 훨씬 더 심하다.

교회사를 읽어보면 진리를 내세우며 서로 미워하고 싸우고 죽인 일들이 허다하다. 자신들이 믿는 교리에 반대하거나 그것에 맞지 않는 교리를 주장한다고 해서 분리하고, 출교하고, 죽였다. 예수님이 말씀 그대로이다. “사람들이 너희를 출회할 뿐 아니라 때가 이르면 무릇 너희를 죽이는 자가 생각하기를 이것이 하나님을 섬기는 예라 하리라.”(요16:2)

사랑은 하나님의 대표적인 성품이다. 성경의 가장 위대한 계명은 사랑이다. 예수님께서 이를 확인해 주셨고, 제자들에게 고별설교를 하시면서 거듭거듭 강조하신 말씀도 바로 이 사랑이다. 바울 사도님은 ‘사랑이 없으면 아무 것도 아니라(If have not love, I am nothing)’고 하였고, 모든 것을 다 얻었다 해도 ‘사랑이 없으면 아무 유익이 없다(If have not love, I gain nothing)'고 했다.

그런데도 우리는 그저 몇 가지의 차이들을 가지고도 분열하고 미워하고 싸운다. 가장 위대한 교훈과 진리를 뭉개버리면서 몇 가지 서로 다른 주장이나 생각들을 내세워서 뭘 하겠다는 말인가? 아니 성경의 가장 위대한 계시를 무시하면서 교리적으로 성경은 일점일획도 틀림이 없다고 믿는다는 것이 무슨 의미가 있단 말인가?

한국교회 지도자들은 토론에 약하다. 학문적인 토론이 감정적인 대립으로 쉽게 변질되고, 주장의 차이가 서로를 틀렸다고 단정하는 정죄로 치닫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래서 그런지 한국교회는 갈라질 대로 갈라지고, 교파의 수는 헤아리기도 어렵게 되었다. 예수님은 그의 마지막 대제사장으로서의 기도에서 제자들과 그리고 그들의 말을 듣고 믿게 될 사람들 곧 사도 이후의 교회들을 위해 기도하시면서 세 번 이상 “하나 되게 해 달라”고 하시고, 그래서 “세상으로 아버지께서 나를 보내신 것을 믿게 하옵소서”라고 하셨다.

그러나 한국교회는 이 예수님의 기도를 무지막지하게 짓밟아버렸다. 그래서 교회가 교회다움을 잃고 예수님은 하나님의 보내심을 받은 구세주라는 사실을 증거하는 일에 실패하고 있다. 이단은 왜 그리도 쉽게 단정되는지?

사랑 안에서의 토론은 불가능한 것인가? 위대한 것을 위해 사소한 것은 포용할 수 없는 것인가? 사랑은 생명이다. 생명의 가장 생명다움이 사랑이다. 사랑이 없는 곳엔 생명이 없다. 생명이 메마르고 질식한다. 한국 주류교회들을 보라. 영성은 메마를 대로 메마르고, 성령은 진리(?) 싸움 속에서 소멸되고 있다. 사랑이 없으면 진리는 사람을 살리는 것이 아니라 사람을 죽이는 도구로도 사용된다.

요즘 미래교회포럼을 통해 가정교회 문제가 계속 토론되고 있다. 차분하게 진행되고 있어 고무적이다. 의견들이 다르지만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고 찾는 과정은 아름답다. 우리는 미래교회포럼이 앞으로도 건전한 토론문화를 가꾸고, 교회들에 활력을 불어넣는 광장이 되기를 바란다. “사랑 안에서 진리를 말하는” 토론의 큰 마당이 되기를 바란다.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