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 사진은 심군식 목사님이 화갑기념문집예화설교출판기념으로 담은 사진인데 화보에 있는 것을 스캔하다보니 화질이 좋지 않다.
▲ 사진은 김진주 장로가 심목사를 만나 담은 것인데 이 역시 스캔으로 전송하다보니 화질이 좋지 않다. 아래는 심목사가 집필하는 생전 모습이다.
 

 

! 심군식 목사님

(별세 13주기를 맞으며)                 김진주 장로(김해동부교회)

 

향년 67

당시 아직도 젊은 세월인데

새 천 년 팔월 스무여드레

목사님은 그렇게 우리 곁을 떠났습니다.

 

경남 고성에서 나시고

김해 진영에 연고가 계셔

한얼고를 나와

20대 초반 동아대 재학 시

인근 저희 성림교회 전도사로

계셨다던 목사님

 

사변 후 어려운 그때

총각 설교자로 단칸방에 모셨던

30대 집사님은

목사님 글 소재가 되어

초기 교회역사를 지고

먼저 천국 가신 것 아시나요?

 

그때 조간신문을 펼치면서

부음을 받음은

저와는 부고 한 장

전해줄 사이는 아닐지라도

목사님을 좋아했습니다.

 

책으로만 보았고

지면으로 만났던 목사님

저의 젊은 시절

문학도의 꿈이 멀어져 갈수록

늘 목사님의 동화적 필치를

사모했습니다.

 

단 한 번 만나 뵈옵기는

총회회관 건립 직후 사무실에서

농촌교회를 걱정하며 찍었던 사진은

아직도 빛바램이 없는데

어찌하여 목사님은 젊은 주검 되어

우리 곁을 비보로 다가온 지

오늘로 13년 되셨습니까?

 

시인으로 작가로

교단을 대표한 총무로

늘 자랑스러웠고

언제나 따뜻한 글은

어린아이에게 전해주듯

우리의 본향을 일깨웠으며

어린 생명의 노래였습니다.

 

일제치하 순교자, 저항인물을 발굴

알리기에 바빴던 거작이

우리 장서에 저렇게도 버티고 서있고

교단 안팎에서 불미스런 사건들이

불거져 나오는 이때

어찌하여

목사님은 말이 없으십니까

 

생전엔 남들의 추도시를

그렇게도 잘 쓰셨건만

저가 드릴 수 있는 것은

졸필 몇 자로

누가 됨을 용서하십시오.

 

! 사랑하는 우리의 목사님

고생과 수고 많이 하셨습니다.

그때 그 천국 문에서 다시 만날 때까지

평안히 계십시오.

그날 거기서는

오늘처럼 애가가 아닌

                        목사님의 찬송시를 꼭 듣고 싶습니다.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