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자립 교회 지원의 토대로서 균등하게 하는 복음 이해

오랜만에 연구위원회가 기획기사를 다시 게재하게 됩니다. 이번 기획 기사의 주제는 "2013 총회 주요 안건"입니다. 물론 연구위원회가 판단한 주요안건입니다. "복음의 길: 3세대의 따뜻한 동행"이란 주제로 열리는 고신 교회 총회가 복음에 기초한 바른 판단을 하기를 바라는 마음으로 글을 작성했습니다.  
이세령 목사가 목회자 최저 생계비안건에 대해서, 이성호 목사가 세습 문제를 다룹니다. 그리고 이어서 - 지명수 교수건과 상회비 관련(상회비의 적정선과 신대원 지원금, 운영 원리 관련) 그리고 고려학원관련총대의 노령화와 젊은 인재의 필요성, 금권선거 문제등을 다루려고 합니다.  관심있게 보아주시고 논의에 참여해 주시면 감사하겠습니다.
연구위원장 이세령 

 

상정 안건- 목회자 최저 생계비  

▲ 이세령 목사
충청노회가 목회자 최저 생계비를 보장하는 안을 총회에 올렸다. 국가에도 최저 생계비에 대한 보건복지부가 산정하는 기준이 있다(2013 4 가족 기준 1,564,399원, 2012 대비 3.4% 인상). 예장 통합측은 이미 2005년부터 미자립 교회 목회자들의 생활비 공평지원을 시행하고 있다(2005 시행첫해 당시 기준 사례를 100만원으로 책정함, 이는 당시 국가 최저 생계비 4 기준 1,136,332원에 12% 모자란 액수임). 이미 9년차에 접어들어서 소위 목회자 최저 생계비 문제에 대한 정책 안정기에 들어서고 있다. 예장 합동이 작년에 목회자 최저 생계비 관련 안을 상정했지만 비상 상황이 발생하여서 처리가 되지 못했다. 이런 정황에서 고신 교회가 목회자 최저 생계비문제를 다루게 된다.  

총회 주제는 "복음의 : 3세대의 따뜻한 동행"이다. 고신 교회가 60년이 넘어가면서, 세대를 30년으로 규정했을 , 벌써 삼 세대가 함께 하고 있다. 어떻게 함께 복음이 제시하는 따뜻한 동행을 하는 교회로 설수 있을까? 여기에 목회자 최저 생계비의 문제는 가장 중심적인 교회적 과제라고 있다.  

구약의 소제물과 제사장 

구약 제사 종류에 곡식으로 제사를 드리는 소제가 있고, 이에 대한 규정도 상세하게 나와있다(2). 소제를 드리는 종류로는 고운 가루를 드리는 것과 화덕에 굽거나 철판에 부치거나 냄비에 형태로 드릴 있다(2:1-10).

먼저 고운 가루 곡식을 소제의 예물로 제사장에게 가지고 오면, 제사장은 중에 웅쿰을 취하여 일반적으로 기름이나 유향을 넣어서 제단 위에 불사름으로서 향기로운 냄새가 되게 하는 제사가 소제이다(2:2). 움쿰의 소제로 드려진 외의 남은 소제물은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리도록 규정되었다(2:3).

또한 소제물로 드리는 것은 화덕에 굽거나 철판에 부치고 냄비에 방식도 가능하다(2:4-10). 경우에도 일부만 불에 태워서 향기로운 냄새로서 제사하고 나머지 소제물은 아론과 그의 자손에게 돌리도록 규정된다(2:10).  

소제물은 아주 작은 부분만 향기로운 냄새로 태워서 제사드리고 나머지는 주로 제사장들에게 돌려져서 저들의 음식이 되었다. 바로 아론과 그의 자손들인 제사장에게 주어진 것이다. 그런데 이런 제물들이 주어지는 방법이 규정되어 있지는 않을까? 있다. 바로 7:10절이다.  

"소제물은 기름 섞은 것이나 마른 것이나 모두 아론의 모든 자손이 균등하게 분배할 것이니라" 

1-7장이 구약의 다섯가지 제사(번제, 소제, 속죄제, 속건제, 화목제) 규정을 다루는 2 구조로 되어 있다. 1:1-6:7절까지는 다섯 가지 제사를 드리는 예배적 방식을 다룬다면, 후반부인 6:8-7:38 제물을 다루는 규칙과 같다. 5가지 제사를 집전하는 제사장들은 제물에 대한 권리가 있었다. 예를 들어 번제를 집전하는 제사장은 제물의 가죽을 가질 권리가 있고(7:8), 속죄제와 속건제를 집례하는 제사장은 제물의 남은 것을 가질 권리가 있다(7:7). 화목제의 경우는 잔치를 배설하는 경우이기에 제사장과 제사를 드린 자와 그가 원하는 이웃과 함께 나누어 먹도록 규정된다(7:11-34). 물론 화목제도 제사장에게 돌려지는 특정 부위가 있다(7:33-34). 소제물의 겨우도 화덕에 구운 것이나 냄비나 철판에서 만든 것은 집례한 제사장의 몫이 된다(7:9). 그런데 곡식 자체로 드린 소제물의 경우는 문제가 다르다. 아론 자손 모두가 공평히 분배하도록 규정한다(7:10). 

소제물은 곡식이다. 그리고 가공되지 않은 곡식 가루로 드려진 소제물의 경우를 공평히 분배하도록 규정한다. 제사를 드리지 않은 제사장들도 같이 나누어야 한다. 앞서 2장에서 소제물을 아론과 그의 자손들에게 돌리도록 규정하였다. 그런데 7:10절은 구체적으로 아론과 그의 자손들이 소제물을 공평하게 분배하도록 규정한다.  

소제물의 공평한 분배는 최저 생계비의 문제이다.

번제나 속죄제나 속건제 그리고 화목제의 경우는 짐승의 고기가 해당된다. 그러나 소제물은 곡식이다. 특히나 고운 가루 형태의 소제물은 가장 기본적인 양식이다. 고기는 고대 사회에서 특별한 음식이다. 속죄제의 경우를 보자. 소를 드리는 경우는 대제사장이나 왕이나 나라 전체의 경우가 아니면 드리는 경우가 흔하지 않은 경우이다. 그리고 염소나 양도 족장들이 드리는 제물이다. 물론 평민도 드릴 있다(4:27ff) 그러나 힘에 미치지 못하면 비둘기를 드린다(5:7). 하한선이 규정되면 대체로 거기에 기준이 맞추어 진다. 고기는 특별한 음식이고, 특별히 고기는 탐욕의 대상이기도 하다(11:4).  

이런 고기의 경우 제사를 집례한 제사장들의 몫이 되도록 규정한다. 그러나 소제물의 경우는 다르다. 모든 아론의 자손들이 공평하게 분배해야 한다. 이는 특별하게 강화된 규정이다. 이런 표현의 규정을 최소한의 규정이라고 한다. 이것이 보장되지 않으면 하나님의 의는 설수 없다. 다시 말하면 제사장들 중에 굶는 사람이 있어서는 안된다는 규정이다.  

"아론의 모든 자손이 균등하게 분배할 것이니라" 본문의 직역을 살펴보는 것이 좋겠다. 아론의 모든 자손 각자는 형제와 같이 되어야 한다. 여기서 강조점은 제사를 집행한 자나 그렇지 않은 나머지 형제들과 차별이 존재해서는 안된다. 아론과 그의 자손이라고 규정한 것은 단순히 아론의 시대만을 의도한 규정이 아님을 알수 있다.  

대제사장과 제사장의 차별, 그리고 제사를 집행한 사람과 그렇지 않은 사람과의 차별이 없어진다. 그리고 이것은 고기가 아니라 곡식이다. 이것이 구약이 말하는 최소 생계비의 규정이다.  

평균함과 복음

구약의 제사장 제도가 신약 시대를 사는 교회에게 의미가 있는가? 정당한 질문이다. 얼마나 많은 경우에 목사와 교회는 구약을 이용해서 자신들의 목적을 성취하는 도구로 사용해 왔는지 모른다. 분명 제사장과 목사는 다르다.  

그렇다면 구약의 제사장들 사이에 존재했던 최소한의 평균함의 원칙들은 복음의 등장과 함께 사라졌는가? 무한 경쟁의 자본주의 체제에 묻혔는가? 아니다.  

바울 사도는 고후8장에서 교회들간에 공평함과 평균한 혹은 균등한 분배의 문제를 다루고 있다. 예루살렘 교회가 가난했다. 바울 사도는 자신이 전도한 모든 지역의 교회들이 반드시 예루살렘 교회를 위해서 헌금을 하도록 격려했다. 마케도냐, 고린도 등의 지역이 대표적인 경우이다.  

바울은 고린도 교회가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헌금을 하도록 하기 위해서 세가지의 설득을 하고 있다.

첫째는 마케도냐 교회의 모범을 말한다. 환란의 많은 시련에도 넘치는 기쁨을 가지고 극심한 가난에도 불구하고 풍성한 연보를 하였다. 그것이 바로 은혜이다(고후8:4,7)

둘째는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 때문이다. 성육신의 복음을 가난의 문제에 적용해서 풀어낸다. 부자이신 그리스도께서 가난하게 되신 것은 가난한 우리를 부유하게 하기 위해서이다(고후8:9). 복음은 가난한 예루살렘 교회를 돕는 일의 원칙으로 적용된다.

셋째는 구약의 성취이다. 만나가 공급된 원칙의 성취를 말한다. 광야에서 만나는 질서있게 공평하게 공급되었다. 사람에 오멜씩 공급되었다. 그래서 남는 자도 모자라는 자도 없도록 공평하게 균등하게 분배되었다(고후8:15, 16:18인용). 곡식가루로서 만나와 같은 것이다. 아마도 광야 시절에 곡식가루의 소제는 만나가 아니었을까?  

이런 세가지의 과정을 거쳐서 예루살렘 교회의 가난을 균등하게 분배하도록 해결하는 일에 교회들이 나서야 함을 설득하고 있다. 순서를 거꾸로 하면 구약의 증거를 통해서, 구약의 성취이신 예수 그리스도의 성육신의 복음을 통해서, 그리고 복음에 기반을 앞선 교회들의 전통을 통해서 균등함의 복음은 성취되어야 한다고 바울은 고린도 교회를 설득한다.  

고신 교회는? 

이제 이천년이 흘러서 바울 사도는 고신 교회에게 요구한다. 얼마전에 목사가 이야기이다. 교회를 개척하는 동기 목사가 20만원을 자신에게 빌려달라고 전화를 했다고 한다.  

무엇때문에 돈이 필요했는지 모르겠다.  

우리가 가진 복음이 시대속에서 어떻게 길을 만들어 가야 하는지 생각해 보자. 복음의 - 3세대의 따뜻한 동행이 어떻게 가능할지 생각해 보자.

이미 시행하고 있는 통합측의 경우를 살펴 보면서, 고신 교회가 시대에 담지해야 복음의 길이 무엇인지 논의하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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