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성호 목사 고려신학대학원교수
이번 총회에 세습을 금지 혹은 제한하자는 안건이 본인이 속한 수도노회를 비롯한 몇몇 노회에서 상정되었다. 아직까지 우리 교단에는 세습이 이루어진 경우가 거의 없지만 앞으로 우리 교단도 이 문제에 있어서 자유롭지 않을 수 있기 때문에 미리 공개적으로 충분히 논의를 하여 총회가 지혜로운 결정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그리고 이 논의 때문에 합법적으로 교회의 인정을 받아 세습을 이미 한 당사자들을 공격하여 교회를 파괴시키는 자들이 없기를 바란다.

이 글은 세습에 대한 찬반이라기 보다는 어떻게 논의할 것인가를 다루는 글이다. 우리나라 사람들은 토의하는데 익숙하지 않기 때문에 회의석상에서 의논을 하기보다는 싸움을 하는 경우가 많은 것을 자주 본다. 총회에서 토의는 자기가 가지고 있는 생각을 관철시키는 수단이 불과한 경우가 많다. 더구나 총회에서 주어진 시간을 많지 않기 때문에 충분히 토의가 되지 못하는 경우도 많다. 따라서 불필요한 논쟁이나 논증을 제거시키는 것이 효과적인 토론을 위해서 꼭 필요하다고 생각하며 이 글이 그런 역할을 할 수 있기를 기대한다. 편의상 세습을 목사의 아들에 한정시키도록 하겠다. 참고로 이 글을 쓴 필자는 원로 목사의 아들이라는 것을 밝힌다.

1. 장단점을 가지고 세습을 논하는 것은 불필요한 소모적 논쟁을 양산시킨다. 세습을 통해서 교회가 얼마든지 성장할 수도 있고, 세습을 통해서 교회가 큰 어려움에 봉착할 수도 있다. 따라서 세습을 통해 성공하거나 실패한 몇몇 교회의 예들을 가지고 세습을 옹호하거나 세습을 반대하는 것은 교회에 유익을 주지 못한다. 성공 유무에 근거해서 세습을 논의하게 되면 한도 끝도 없다. 따라서 세습에 관하여 논쟁할 때 장단점을 제시하여 자신의 주장을 펼치지 않도록 하는 것이 중요하다.

2. 세습문제는 대형교회에만 제한적으로 적용되어서는 안 된다. 적지 않은 이들이 소형교회의 세습은 괜찮다고 생각하는데, 소형교회 역시 하나님의 교회라는 사실을 기억하여야 한다. 요즘에는 세습문제가 소형교회로까지 확산되고 있는 추세이다. 대형교회가 별로 많지 않은 우리 교단의 경우에는 소형교회들이 세습할 가능성이 많은데, 엄밀히 말해서 세습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부적절한 세습이 문제이다. 그런데 소형교회일수록 능력있고 헌신된 사람보다는 자질이 부족한 자들이 갈 때가 없어서 세습을 할 가능성이 상대적으로 더 많기 때문에 교회가 작다는 이유로 세습에 관대해서는 안 된다. 따라서 아무도 가지 않으려는 개척교회에 아들이라도 파송해야 하지 않느냐는 감상적인 발언 자체는 타당하지만 그 반대의 경우가 더 많을 수 있다는 것을 동시에 생각해야 한다.

3. “아들이니까 더 잘 할 수 있다”는 주장도 별로 타당하지 않다. 심정으로는 이 주장에 필자도 동의하고 싶으나 이 주장은 고려해야 할 것이 적지 않다. 이 주장이 타당하기 위해서는 전임 원로 목사가 목회를 탁월하게 잘 했다는 것과 목사의 아들이 아버지에게서 교육을 잘 받았다는 것을 전제로 한다. 그것도 은퇴목사가 말년까지 목회를 끝까지 잘 했을 경우에 통하는 말이다. 하지만 그동안 은퇴한 목사 중에서 정말 자기 욕심을 다 버리고 모범적으로 은퇴한 경우가 얼마나 될까? 정말로 경건에 있어서 탁월하지 않는 한 오랜 세월이 지나면 성도들 중에서 은퇴 목사에 대해서 좋지 않게 생각하는 그룹들이 생길 수밖에 없다. 그들은 전임자가 은퇴하는 날만을 참고 기다린 사람들이다. 이런 경우 은퇴 목사의 아들이기 때문에 오히려 다른 이들 보다 목회에 훨씬 큰 어려움을 겪을 수밖에 없다.

3. 세습 문제에 있어서 성경은 침묵하고 있다는 점을 인정하여야 한다. 본인이 알고 있는 한, 성경은 직분의 세습에 대해서 어떤 명시적 가르침도 주지 않고 있다. 이와 같은 이유 때문에 교회가 성경에 근거하여 세습을 절대적으로 금하는 결정을 하는 것은 적절치 못하다. 따라서 총회에서 세습에 대한 논의를 할 때 성경적 근거를 가지고 논의하는 것은 특별한 경우가 아니면 자제해야 할 것이다.

4. 세습이 가지고 있는 잠재적 위험성에 대해서 교회는 충분히 인식해야 한다. 성경이 명시적으로 규정하고 있지 않기 때문에 세습을 허용하자는 것은 그렇게 바람직한 주장은 아니다. 비록 세습을 통해서 교회가 발전할 가능성이 전혀 없는 것은 아니지만, 세습을 통해서 교회 전체가 궁극적으로 심각한 악영향을 받을 가능성이 훨씬 많다. 따라서 교회 세습 문제는 이 위험성을 충분히 반영하도록 결정되어야 할 것이다.

5. 세습이 꼭 필요한 교회가 있을 수 있다는 점도 고려하여야 한다. 교회마다 사정과 형편이 너무나 다르다. 어떤 교회는 아들이 꼭 와야만 하는 교회도 있을 수 있다. 만약 정말로 교인들이 만장일치로 아들을 원한다면 그리고 그 아들이 특별한 문제가 없고 은사가 많다면 그것을 금하는 것이 오히려 잘못이라고 할 수 있다. 세습을 절대적으로 금할 경우 그 교회는 제대로 성장할 기회 자체를 가질 수 없게 된다. 따라서 총회가 세습을 절대적으로 금하는 것은 지혜로운 결정이 아니다.

6. 세습의 위험성을 제한시키면서 동시에 필요한 경우 세습을 허용할 수 있는 가장 좋은 방법은 세습의 요건을 강화시키는 것이다. 예를 들면 세습의 경우 노회원 재적의 3분의 2이상의 찬성을 얻게 하든지 아니면 공동의회에서 4분의 3이상의 찬성을 얻도록 하는 것이다. 그 외에도 전임 목사가 교회를 완전히 은퇴한 일정 기간 이후에 세습을 허용하는 것도 하나의 방법이 될 수 있다. 어쨌든 이와 같은 강화된 방식을 통해서 후임이 결정될 경우 그 세습이 부당하다고 생각하는 사람은 없을 것이다. 무엇보다 이런 식의 정당한 세습은 후임자에게 유익하다. 후임자는 세습을 했다는 부정적인 인식에서 벗어나 당당하고 떳떳하게 목회를 수행할 수 있기 때문이다.

7. 여기에 대해서 목사의 아들에 대한 역차별이 아닌가라는 주장이 나올 수 있는데, 차별이라고 해서 무조건 나쁜 것이 아니라는 것을 기억해야 한다. 차별 자체가 문제가 아니라 정당하고 타당한 차별인가를 논의해야 한다. 모든 사회는 일정한 차별을 시행하고 있다. 교회도 담임 목사 청빙할 때 갖가지 차별 조항을 내세우고 있지 않은가? 더 나아가서 우리 교단 헌법은 부목사가 담임목사가 되는 길을 아주 엄격하게 제한하고 있다. 은퇴 목사가 정말로 목회를 제대로 했다면, 아들보다는 그 교회에서 오랫동안 제대로 훈련받은 부목사가 훨씬 목회를 더 잘 할 수 있다. 그 교회에서 성도들에게 검증만 받았다면 그 보다 더 좋은 담임목사를 어디에서 찾겠는가? 보통 “바울-디모데” 모델이라고 하는데 앞으로 이런 모델이 우리 교회에 정착될 필요가 있다고 생각한다. 이 점에서 우리 교단 헌법은 과도하게 부목사의 권한을 제한하고 있다고 생각한다.

8. 하나님께서 고신을 세우신 이유는 한국교회의 빛과 소금이 되기를 원하셨기 때문이라고 본인은 확신한다. 많은 이들, 심지어 불신자들도 세습에 대해서 관심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이번 총회의 결정은 다른 한국교회에도 적지 않은 영향을 줄 것이다. 충분히 총회에서 논의하여 “과연 고신은 다르구나!”라는 인상을 많은 이들에게 각인시켰으면 좋겠다. 총회가 어떤 결정을 하는가에 따라서 전도의 문을 열기도 하고 그 문을 닫기도 한다. 총회가 무책임하게 “1년간 연구하기로 하다”라는 식으로 이 중요한 이슈를 피해가지 않기를 바란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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