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건 선교사 KPM 본부장

20131018~21일까지 34일 일정으로 대만을 방문했다. 이번 대만 방문의 목적은 1957년에 파송예배를 드리고 이듬해 1958년에 교단 제 1호 선교사로 대만에 도착한 김영진. 임옥희 선교사님이 세운 신죽교회, 죽동교회가 설립 50주년을 맞이했고 그 이후 이어서 유환준. 이병길 선교사님 등 고신총회가 파송한 선교사들이 세운 12개의 대만교회들이 연합하여 고신교단의 대만선교 50 주년 축하행사를 하는 자리에 초청받아서 다녀온 것이다. 선교지에서 선교사에게 복음을 받아서 세운 교회가 그들에게 복음을 전하여 준 선교사들의 수고를 잊지 않고 기억하며 선교사 가족들에게 항공료와 숙식 일체를 책임지고 초청한 사례는 아마 대만이 유일하지 않을까 싶을 정도로 감격스러운 일이다. 현재 KPM 대만 선교사로서 혼자 남아서 사역하고 있는 황병순. 배은희 선교사님 부부의 헌신적인 섬김으로 이번 행사가 아름답게 치루어졌다. 이번 행사는 우리 총회선교위원회가 주관한 행사가 아니라 대만개혁종장로회의 여러 교회들이 주관하여 우리를 초청한 형식으로 이루어졌고 황병순 선교사님 부부는 그들과 함께 프로그램과 일정을 짜고 중간에서 연락을 담당하며 수고를 한 것이다. 나는 이번 대만 방문이 십 수 년 전에 방문한 이후로 두 번째이다.

 

20131018() 

아침 740분에 인천공항으로 출발하는 공항버스를 타기 위해서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준비했다. 시간이 그리 많지 않아서 새벽기도회는 가지 못하고 대신에 가정예배 시간을 앞당겨서 말씀을 묵상하고 기도했다. 특히 이번 여행이 아름답고 복된 여행이 되며 이번 고신총회 대만교회 설립 50주년 행사가 은혜가운데 잘 진행되도록 기도했다. 아침은 간단히 김밥 한 줄을 사서 먹으면서 공항버스에 몸을 실었다. 앞으로 3시간 후에 공항에 도착할 것이다. 오늘 우리가 이용할 항공은 China Airlines인데 대한항공과 공동운항 프로그램에 의하여 운항하는 대만항공이다. 공항에서 수속을 마치고 1235분에 타이뻬이로 출발하는 항공기에 몸을 실었다. 

인천에서 타이뻬이까지 약 2시간 10분이 소요되어 공항에 도착했다. 내가 처음 대만을 방문했을 당시에는 비자를 받아야만 했지만 지금은 3개월 무비자로 방문할 수 있게 되었다. 입국 수속을 마치고 밖으로 나오니 황병순 선교사님 부인 배은희 선교사님과 신죽교회 진정홍 목사님이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진정홍 목사님은 대만인으로서 김영진 선교사님을 통해 예수 믿고 전도사 시절에 고신 신대원으로 유학을 왔다. 나는 그 당시 신대원에서 다니고 있었는데 몇 과목의 강의를 함께 들은 적이 있고 목욕탕에도 함께 가는등 잘 지냈었는데 그가 신대원 Th.M 과정을 마치고 돌아간 후 대만개혁종 장로회의 지도자 가운데 한 분이 되었다. 지금은 신죽교회의 담임목사로서 이번 행사를 주도하는 목사가 되었다. 나와 아내는 진목사님의 차에 타고 약 40분 정도 달려서 신죽에 도착했다. 그리고 우리의 숙소인 Heart Park Business Hotel 702호에 투숙했다. 호텔에서 황병순 선교사님을 만났고 반갑게 해후를 했다. 황병순 선교사님 부부는 1998년에 KM 선교사로 대만에 파송되어 지금까지 15년 동안 한결 같이 사역하고 있는데 대만개혁종 신학교에서 구약을 가르치고 있고 영신교회를 담임하면서 대만교회를 개혁신앙으로 굳게 세우는데 수고를 많이 하고 있다. 황선교사님은 우리에게 530분에 식당으로 함께 이동한다고 말해 주었다. 벌써 주위가 시끌벅적해서 쳐다보니 몇 명의 권사님의 무리이다. 이번에 오시는 부산권사합창단이나 광주여전도회연합회 합창단이나 둘 중의 하나에 속한 분들일 것이다. 또 김한중 선교사님의 딸인 혜정이네 가족 4명도 로비에서 만났다. 할아버지인 김영진 선교사님의 후손이 3대에 걸쳐 선교사로 헌신한 귀한 가정이니 그들에게 이번 행사가 더 의미가 있을 것이다. 

좀 쉬었다가 530분에 식당으로 이동했다. 이곳은 전통적인 중국 식당인데 풀코스요리가 나왔다. 전통적으로 그렇듯이 대략 10가지 정도의 요리가 차례대로 나왔는데 너무나 맛이 있었다. 요리는 몇 가지 향료를 사용하여 만든 것인데 음식 재료에서 나는 고유의 냄새를 제거하고 맛이 서로 기가 막히게 어우러져서 새로운 맛을 내었다. 대만의 신죽교회에서 우리에게 만찬을 제공했는데 신죽교회 교인들이 와서 함께 식사하며 교제했다. 황선교사님에게 들으니 이번 34일 일정의 공식 행사를 위해 신죽교회의 한 분 장로님이 대만화로 70만원(한화 약 3,000만원)을 헌금했고 이것으로 잔치를 치른다고 했다. 열심 있는 한국교회의 성도들을 능가하는 헌신이다. 100여명이 식당에서 함께 식사를 하면서 교제하는 즐거움이 있었다. 광주여전도회 연합회에서는 50주년 행사를 위해 2백만 원을 전달했고 또 김과 인삼차를 선물했다. 제일영도교회는 고혜석 담임목사님과 8명의 성도들이 왔고 김철봉 부총회장님과 구자우 사무총장님, 전 선교본부 총무를 역임하신 이병길 목사님 부부와 아들, 김한중 선교사님 부부 그리고 진정홍 목사님과 죽동교회 원로 목사인 온조섭 목사님이 한 테이블에서 식사했다. 선교위원장 정수생 목사님 부부는 제일 늦게 도착하셨기 때문에 배은희 선교사님이 모시고 호텔 옆 식당에서 따로 식사를 하셨다. 내일 아침 630분부터 아침 식사가 시작된다고 했다.

 

20131019() 

아침 530분에 일어났다. 이메일을 체크하고 샤워를 한 후에 아내와 함께 선교지에서 가정예배를 드렸다. 매일 아침마다 하나님이 주시는 말씀이 너무나 귀하다. 왜 하나님의 말씀은 살아서 움직인다고 하시는지, 왜 송이 꿀보다 더 달다고 하시는지 실감이 난다. 7시가 넘어서 아침 식사를 하기 위해 선교위원장님에게 전화를 드렸더니 벌써 드셨다고 한다. 그래서 1층 식당으로 갔더니 거의 모든 분들이 식사를 마친 상황이었다. 간단한 중국 음식과 토스트가 있었다. 맛있게 먹었다. 아침 850분에 죽동으로 출발하여 10시부터 2시간가량 50주년 기념예배에 참석하게 된다. 시간이 되어서 행사장으로 출발했다. 행사장은 죽동에 있는 수기림 문화관에서 가진다. 관광버스 두 대에 나누어서 행사장으로 이동했다. 행사장에는 벌써 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그들은 그들의 전통 복장을 입고 우리를 맞이했다. 나와 아내는 앞쪽 가운데쯤 자리를 하고 앉았는데 진행 측에서 귀빈들이 앉는 자리로 우리를 안내한다. 10시 정각이 되자 예배가 시작되었다. 

한국 고신총회 재 대만 설립교회 50주년기념예배 

일 시 : 20131019() 오전 10:00

장 소 : 죽동시 수기림 문화관

사회/ 쪼우런위(추인유) 목사(대만)

설교/ 유환준 목사

통역/ 황병순 목사

반주/ 추춘화 자매(대만)

 

예배를 시작하기 전에 워십 찬양단의 찬양인도로 예배 준비를 하다. 양각나팔 찬양대의 입례 송에 맞추어 예배가 시작되었다. 12명의 단원들이 긴 양각 뿔을 가지고 나와서 시작을 알리는 나팔을 불었다. 구약시대 제사장들이 제사를 알리는 예식처럼 보였다. 모두 일어서서 대만 찬송가를 함께 합창했다. 나는 어떻게 부르는지 몰라서 입만 벙긋거리는데 사무총장 구자우 목사님은 잘도 따라 부르신다. 중국에 선교차 수없이 들락거린 결과가 아닌가 싶어서 부러웠다. 이지홍 목사(대만)가 대표 기도를 하다. 이제광 목사(대만)가 성경 마 5:3-12까지의 본문을 읽은 후 고신권사 찬양단의 찬양이 있었다. 모두 예쁜 옷을 입고 나와서 그동안 연습한 곡들을 연주했는데 연세가 드신 권사님들이 열심히 찬양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이어서 화원 신락교회 찬양단의 찬양이 있었다. 이 찬양단은 타이야족 원주민 무용 찬양단인데 복장을 보니 오래전에 한국에도 와서 공연을 한 기억이 난다. 이들은 전통 복장을 하고 자신들의 고유의 언어로 찬양을 하는데 경쾌한 찬양에 어깨가 저절로 들썩인다. 그들 가운데는 내가 보기에 80세도 더 된 듯한 할머니들도 몇 명이 있어서 보기만 해도 은혜가 된다. 그 다음으로 연신, 남항, 충효교회 연합 찬양단의 찬양이 있었다. 이렇게 3개 교회를 합치니 숫자도 많았다. 복장도 각각 전통복장으로부터 현대식 복장까지 자유롭게 입고 나와서 한 목소리로 찬양했다. 그런데 갑자기 찬양을 하는 분들이 올라서기 위해 만들어 놓은 계단식으로 만든 무대 절반이 무너지는 바람에 우리 모두는 깜짝 놀랐다. 그러나 다행히도 다친 사람은 없어 보였다. 그래서 모두 계단에서 내려와서 찬양했다. 유환준 선교사님이 설교하셨다. 유목사님은 80대의 연세도 잊으신 듯 청중을 향해 사자후를 토하셨다. 열정적인 설교에 모두 감동을 받았다. 한 가지 아쉬운 점은 이목사님은 통역사를 세우지 않고 자신이 혼자서 두 가지 언어를 섞어가면서 설교를 하셨다. 그러나 대부분은 만다린어로 설교하셨기 때문에 설교의 내용을 알아듣기 어려웠다. 그러나 목사님은 빔 프로젝트를 이용하여 한문으로 된 PPT 자료를 사용하셨기 때문에 겨우 설교 내용을 짐작할 뿐이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설교는 "예수는 그리스도라"라는 제목이다. 

예수는 우리가 전해야 할 그리스도이시다. 심령이 가난한 자가 복이 있다고 했는데 누가 심령이 가난한 자인지 모른다. 팔복은 천국으로 시작해서 천국으로 마친다. 우리가 주야로 생각할 것은 예수이다. 중생 받은 자는 회개한 자요, 회개한 자는 순종하는 자요, 순종하는 자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요,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사람을 사랑하게 되며 하나님을 사랑하는 자는 자연히 하나님이 지으신 다른 사람들에게 전도하는 삶을 살게 된다. 전도 받은 자들이 모여 교회를 이루며 그들을 목회하면서 돌보게 된다. 결국 목양자는 주인 되신 주님을 위해 순교자가 되어야 한다. 대륙에는 가정교회에 수많은 사람들이 있는데 그들 가운데 목사를 통해서 믿는 사람은 적고 대부분이 평신도를 통해 믿은 자들이다. 꼭 목사만 주의 일을 하는가? 우리 모두는 다 같이 주의 일에 힘써야 한다. 우리가 교회에 오는 것도 중요하나 교회에 다니며 주님의 교회를 위해 일해야 하지 않겠는가? 12:35 주님은 추수 때 약속하신 알곡을 주신다. 예수님은 하나님의 시간에 돌아가셨다. 그는 구속 시간표에 의해 오시고 행하시고 죽으시고 부활 승천하신 예수님이시다. "예수는 그리스도" 라는 사실을 굳게 믿고 살자. 

설교를 듣고 난 후 광주 향기한소리 합창단의 찬양이 있었다. 단원 44명이 아름다운 한복을 입고 한마음으로 찬양으로 하나님께 영광을 돌렸다. 특히 그들은 중국어로 찬양을 번역하여 완벽하게 외워서 찬양을 하여 청중들을 사로잡았다. 나는 특히 시23편의 찬양을 중국어로 노래하는 광주 찬양 팀의 찬양을 듣는데 왜 그렇게 눈물이 나는지 견딜 수가 없었다. 주책없이 흐르는 눈물을 닦으면서 생각했다. 이 찬양은 우리가 복음을 전해주어 예수 믿어 이루어진 대만 개혁종 장로회 12교회 성도들 앞에서 지금까지 그들을 축복하며 목자 되신 하나님이 앞으로도 계속 인도해 주시리라는 격려의 찬양이 아닌가?  

▲ 감사패를 받고 있는 이정건 선교본부장

귀빈소개를 진정홍 목사님이 하시고 통역을 황병순 선교사님이 하셨다. 먼저 대만에서 사역했던 선교사님들을 무대 위로 모셔서 소개했다. 유환준 선교사님 가족, 이병길 선교사님 가족, 황병순 선교사님 가족, 김영진 선교사님 가족인데 나는 이 시간 내내 만약 김영진 선교사님이 이곳에 계셨더라면 얼마나 좋았을까 하는 생각을 했다. 유선교사님은 대표로 인사를 하면서 이번 행사를 진심으로 감사하며 자신의 사역을 회고 하면서 자신을 김영진 선교사님의 보조 타이어 역할을 했다고 겸손하게 말씀하셨다. 원로 목사인 온조섭 목사님이 선교사님들을 8글자의 한자로 표현하여 각 선교사님들을 추억하며 감사패를 만들어서 전달하는 시간을 가졌는데 너무나 감격스러웠다. 이어서 청중석에 앉아있는 귀빈들을 소개하였다. 김철봉 부총회장, 정수생 선교위원장, 구자우 사무총장, 이정건 본부장, 사상교회 박흥석 목사, 제일영도교회 성도와 고혜석 목사, 김해영목사 부부, 광주 향기한소리 합창단, 고신 권사찬양단, 대만 교회 목사님들과 장로님 부부, 양각나팔 찬양단을 소개할 때 우뢰와 같은 박수소리가 나왔다. 그동안 수고하셨던 대만 KPM 선교사님들의 사역을 동영상으로 만들어서 상영했다. 이 모든 것이 그동안 선교사님들이 얼마나 수고하여 이루어 놓은 사역인지 눈물이 앞을 가렸다. 하나님께서 그 수고를 기억하실 것이다. 

감사패 증정 시간이 되었다. 부총회장님을 통해 고신총회에 전달하는 감사패와 선교위위원장님을 통해 총회선교위원회에 전달하는 감사패, 그리고 전국여전도회연합회에 전달되었고, 김영진 선교사님의 모교회인 제일영도교회에게 담임 고혜석 목사님을 통해 전달하였다. 이어서 김철봉 부총회장님의 축사, 구자우 사무총장님의 축사, 정수생 선교위원장님의 축사를 이어서 하기로 했는데 시간 관계상 김철봉 부총회장님만 축사를 대표로 했다. 김철봉 목사님은 축사에서 그동안 대만 정부가 어떻게 한국을 도왔는지를 언급하며 그에 대한 감사함을 전했고 또 한국과 대만의 국교단절에 대한 한국교회의 죄송함을 전했고 김영진 선교사님이 도착한 이후 지금까지 이루어진 선교와 그 결과 이루어진 오늘날의 열매에 대한 회고를 하면서 앞으로 더욱 더 형제 교단으로 잘 성장해 나가기를 부탁했다. 선교위원장 정수생 목사님이 총회선교위원회를 대표해서 이번 행사를 위해 격려금을 전달했다. 노회장 김문빈 목사(대만)님이 이어서 축사 및 답사를 하였다. 이어서 부광교회(대만) 찬양단의 찬양이 있었는데 이들은 아미족으로 그들의 전통복장을 입고 나와서 그들의 언어로, 아름다운 화음으로 아카펠라 찬양을 했다. 사회자 추인유 목사님이 광고를 하고 송영송 "만복의 근원 하나님"을 합창한 뒤 이병길 선교사님의 축도로 모든 순서를 마쳤다. 

2시간으로 예정되었던 예배 및 행사가 2시간 20분 만에 마쳤다. 행사를 마치고 기념사진을 찍으면서 서로 교제하는 시간을 가졌다. 그리고 대충 어림잡아서 600명 이상 되는 참석자들이 한꺼번에 식당으로 이동했다. 한국의 식당 개념으로는 이해가 안 되지만 여기서는 얼마든지 가능하다. 각 테이블에 10명씩 둘러앉고 온조섭 목사님이 기도한 후 일제히 식사가 시작되었다. 우리 테이블에는 우리 부부와 선교위원장님 부부 그리고 황병순 선교사님 부부와 이병길 목사님 가족이 앉아서 식사를 했다. 이 식당에도 거의 10가지가 넘는 요리가 계속 나와서 우리를 즐겁게 했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김영진 선교사님 부부가 묻힌 산소에 가서 추모예배를 드리기로 했다. 참석자는 거의 90여명이 되었는데 2대의 관광버스에 분승하여 갔다. 부총회장 김철봉 목사님과 사무총장 구자우 목사님은 비행기 시간이 촉박하여 점심 식사도 하지 못하고 먼저 한국으로 떠났다. 

▲ KPM 제1호 선교사 김영진 목사가 잠든 곳에서

김영진 선교사님 부부가 묻히신 묘지는 거의 산 정상에 있었다. 경치가 아름다운 곳이지만 흠이라면 좀 높은 곳에 위치해 있었고 그리고 입구가 좁아서 대형버스가 지나다니는데 큰 어려움이 있었고 실제적으로 돌아 나올 때는 왕복 차선이 좁아서 우리가 탄 버스가 그 좁은 길을 빠져 나오는데 큰 어려움을 겪었다. 그러나 그곳은 참 아름다운 묘지공원으로 조성되어 있었다. 그런데 이 넓은 공원묘지를 신죽교회와 죽동교회가 연합하여 구입했다고 한다. 그곳에는 벌써 천국가신 분들이 많은지 빼곡히 무덤들이 들어차 있었다. 김영진 선교사님 부부가 묻힌 산소에 가서 모두 둘러섰다. 김영진. 임옥희 선교사님에게 주어진 한문글자 네 글자가 비석에 반듯하게 새겨져 있었다. "충복양목" , "충성된 종, 선한 목사"라는 뜻이다. 김영진 선교사님 부부에게 너무나 어울리는 글자이다. 추모 예배는 이런 순서로 진행되었다. 

사회/ 진정홍 목사(대만)

기도/ 정수생 선교위원장

설교/ 진정홍 목사(대만)

인사/ 온조섭 목사님(대만)

통역/ 황병순 선교사

특송/ 고신권사찬양단

광주향기한소리 합창단 

진정홍 목사님이 엄숙하게 사회를 보면서 김영진 선교사님에 대한 추억을 상기하면서 예배를 시작했다. 찬송은 대만 찬송으로 부활의 내용으로 찬양을 부르는 것 같았다. 그런데 악보가 좀 특이했다. 음표로 표시한 것이 아니라 숫자로 표시되어 있었다. 예를 들어서 도, , .. 등은 1, 2, 3 등이다. 그리고 옥타브는 점으로 표시 하는 등 우리는 알아보기에 어려웠으나 대만 성도들은 잘도 부른다. 기도는 정수생 선교위원장님이 은혜롭게 하셨고 이어서 진정홍 목사님이 "성도의 죽음과 부활의 영광"에 대한 말씀을 전하셨다. 그리고 원로목사인 온조섭 목사님이 인사를 했는데 그는 1958년에 대만에 도착하신 김영진 선교사님이 전도하여 얻은 첫 열매이다. 그는 평생을 김선교사님과 동역하면서 가졌던 아름다운 추억을 되새기며 눈시울을 적셨다. 그의 말 속에는 김선교사님 부부를 지극히 사랑하며 존경하는 마음이 베여 있었다. 나는 생각했다. 내가 파라과이에서 사역을 마쳤을 때, 혹은 내가 죽고 난 후에 내가 함께 사역했던 파라과이의 동역자들이 나를 그렇게 기억해줄까? 하는 생각을 하면서 김영진 선교사님을 더욱 더 존경하게 되었다.  

이어서 고신권사 찬양단과 광주향기한소리 찬양단이 각각 은혜로운 찬양으로 주님께 영광을 돌렸다. 마지막으로 김한중 선교사가 사위의 자격으로 인사를 하면서 김영진 선교사님이 마지막 죽음을 앞두고 하신 고별사를 들려주었다. 고인은 고별사에서 대만 교인들에게 말씀하시기를, "여러분.. 제발 나 김영진을 높이지 말고 하나님의 이름을 높이세요. 그리고 개혁주의 교회의 전통을 계속 이어 나가세요"라고 간곡하게 눈물을 흘리며 부탁하셨다고 회고했다. 대만의 교회들은 모두 이 묘지를 구입 시부터 아예 김선교사님 부부의 묘를 가장 중앙 장소에 준비하고 아무도 거기에 묘를 쓰지 못하도록 해놓았다가 지난번에 김영진 선교사님이 소천하시고 이곳에 모신 후 또 몇 년 후에 소천하신 부인 임옥희 선교사님까지 함께 모셨다. 마지막으로 축도를 김영진 선교사님의 수제자인 온조섭 목사님이 하므로 모든 순서를 마쳤다.  

나는 추모 예배가 진행되는 동안 나와 김영진 선교사님과 얽힌 옛 추억을 더듬었다. 그분은 우리 부부가 19893월에 남미 파라과이로 파송될 때 교단 선교부 총무(현 본부장)를 역임하셨다. 그 당시 그분은 대만과 한국을 오가며 사역을 하셨는데 어느 날, 아프리카의 시에라레온으로 선교사를 한 가정 파송해야 하는데 적임자를 찾다가 전북 이리에서 개척목회를 하고 있던 내게 전화로 만나자고 하셨다. 나는 아직 선교사로 갈 때가 되지 않았다고 하면서 사양했고 김선교사님은 나 대신에 거기에 신대원 선교사(현재 미국에서 목회하고 있음)를 파송하셨다. 얼마 뒤에 다시 나를 만나자고 하셨다. 김선교사님은 얼마 전에 남미 브라질에 집회를 다녀오신 고 박정덕 목사님의 부탁으로 남미 파라과이로 갈 선교사를 찾고 계셨다. 그래서 다시 내게 연락을 하셨다. 나는 아직도 때가 안 되었다고 고집을 부렸다. 그랬더니 김선교사님은 내게 호통을 치면서 나무라셨다. 주님이 부르시면 가야지 무슨 핑계와 잔소리가 그렇게 많느냐고 하셨다. 정신이 번쩍 들었다. 그리고 내가 17세 때 주님께 선교사로 서원했던 사실을 떠올리고 순종하기로 하고 선교사로 가게 되었다. 

이런 회상을 하고 있는데 모두 버스에 타라고 한다. 식당으로 이동한다는 것이다. 아직 점심을 먹은 것이 소화도 안 된 상태에서 다시 저녁을 먹으면 위가 어떻게 되겠는가? 도저히 먹을 수 없을 것 같았다. 그래도 식당이 예약되어 있으니 어쩌겠는가? 우리는 모두 버스를 타고 30 ~ 40분 거리에 있는 큰 식당으로 갔다. 그 식당은 샤브샤브 식당으로서 낮에 점심 식사를 했던 그 식당과는 차원이 다른 식당이다. 따라서 꽤 비쌀 것이라고 생각되었다. 이 샤브샤브 요리는 전체적으로 함께 요리해서 떠먹는 것이 아니라 각자가 따로 만들어서 먹게 되어 있는데 각각 다른 국물을 사용하여 그 속에 야채나 고기 그리고 해물을 넣어서 끓여 먹었다. 나는 몽골리안 스타일로 먹었는데 맛이 있었고 저녁은 손도 못 댈 것 같았는데 엄청나게 먹어치우는 일이 일어났다. 내게는 이게 항상 문제이다. 다른 것은 몰라도 음식에 대한 절제는 쉽지않다. 그러나 모두들 만족하며 즐거워하는 것 같았다. 

저녁을 먹고 일어서는데 전화가 왔다. 김한중 선교사님이 전화와 문자를 동시에 주었는데 우리 부부를 신죽 야시장으로 초대하는 것이었다. 나는 선교위원장님 부부를 모실 책임을 가지고 있기 때문에 혹시 가시고 싶은지 여쭈어 보았는데 뜻밖에 가고 싶다고 하셔서 모시고 갔다. 진정홍 목사님이 자기 차를 가지고 나와서 왕복으로 수고를 많이 했다. 우리는 신죽시의 제일 중앙에 있는 시가지로 갔다. 거기에는 김 란 선교사님과 대만인 친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그 친구는 김란 선교사님이 어린 시절부터 교회 단짝이었던 친구라고 했는데 사람이 좋아보였다. 이 도시는 김영진 선교사님의 체취가 아직도 많이 남아있는 도시이고 그의 딸인 김란 선교사님의 고향이기도 하다. 우리는 김선교사님의 안내로 구석구석 야시장의 즐거움을 만끽할 수 있었다.  

도성황묘.. 신죽시의 중앙에 있는 절 이름이다. 이 절을 중심으로 이 도시가 형성되었는데 사람들이 이 지역을 지나가면서 반드시 이 절에 들러서 절을 하고 주위에 빼곡히 둘러있는 수를 셀 수없는 다양한 음식들을 사먹는 즐거움 때문에 이곳을 찾기에 관광명소가 되었다. 김선교사님은 이것저것을 가리키면서 너무나 맛있는 음식이라고 한 번 먹어 볼거냐고 묻지만 우리는 너무나 배가 불러서 하나도 맛을 보지 못했다. 그 대신에 정수생 목사님 사모님이 과일을 좋아하시기 때문에 김선교사님이 과일을 사서 드렸다. 우리는 다시 호텔로 돌아왔다. 내일이 주일이기 때문에 일찍 잠자리에 들어야 하고 내일의 강행군을 대비해야 한다. 이메일 체크를 하고 잠자리에 누우니 11시가 넘었다.

 

20131020(주일) 

아침 5시는 어딜 가나 변함없이 일어나는 나의 시간이다. 시차와는 상관이 없다. 오랫동안 이 시간에 일어나던 습관이다. 습관이라는 것이 얼마나 무서운지 모른다. 그렇다고 해서 아무렇지도 않는 것이 아니라 피곤하다. 그러나 이 시간에 하나님이 나를 깨워서 기도하게 하신다. 오늘은 주일이라. 선교지에서 맞이하는 주일은 내게 특별한 의미로 다가온다. 오늘은 죽동교회에서 예배를 드리는 날인데 하나님의 은혜를 기대한다. 아침 식사는 토스트와 커피로 해결하고 시간이 되어서 죽동교회로 이동했다. 담임목사인 추인유 목사님이 직접 우리를 픽업하러 오셨다. 나는 제일영도교회에서 오신 고혜석 목사님과 성도들과 함께 교회로 갔다. 고신권사찬양단도 이어서 도착하여 예배 준비를 하였다. 오전 930분에 예배가 시작되었다. 

죽동교회 주일 낮예배  

20131020(주일) 09:30 

사회/ 송근흥 집사(죽동교회)

설교/ 고혜석 목사(제일영도교회)

통역/ 황병순 선교사(대만 KPM 선교사)

축사 및 축도/ 이정건 선교사(선교본부장)

찬양/ 부산고신권사찬양단 

죽동교회 워십 찬양대의 찬양과 함께 온 교회 성도들이 열심히 뜨겁게 찬양을 했다. 사도신경으로 다 함께 신앙고백을 한 후 죽동교회 50주년 기념 영상물을 함께 보았다. 이어서 부산고신권사합창단이 2곡의 찬양으로 영광을 하나님께 돌려 드렸다. 어제와 달리 파란 색의 연주복으로 갈아입은 권사님들이 참 아름다웠고 찬양은 은혜스러웠다. 우리말로 된 찬양을 했지만 화면에 중국어를 띄워 찬양의 내용을 알도록 배려했다. 설교본문 말씀은 골로새서 3:15-17의 말씀이다. 설교는 제일영도교회 담임목사 고혜석 목사님이 하셨다. 제목은 "3중 감사"이다. 내용 요약은 다음과 같다. 

50주년을 축하한다. 성경에서는 50년을 희년이라고 하는데 이 해는 모든 것을 풀어주는 해이다. 50주년 행사를 통해 모든 얽매인 것들이 풀리기를 바란다. 육신의 질병에서 자유롭게 되기를 바란다. 가정의 문제들이 해결되기를 바란다. 죽동교회가 더욱 더 부흥되기를 바란다. 나는 오늘 50주년 기념 감사의 날이기 때문에 감사에 대해서 설교를 하려고 한다.  

어느 청년이 관절염에 걸려서 고생하다가 합심 기도함으로 하나님의 은혜로 나았다. 너무 기뻤다. 그래서 주일에 목사님이 그 청년에게 간증을 시키려고 찾았다. 그런데 예배가 다 마쳐도 보이지 않았다. 그래서 저녁에 그 집에 심방을 갔다. 그리고 왜 오늘 교회에 안 나왔느냐고 물었다. 그랬더니 이 청년이 대답하기를 그동안 다리가 아파서 오랫동안 좋아하던 등산을 가지 못했기 때문에 오늘 등산 다녀왔다고 대답했다. 물론 이해가 되지만 이것이 감사를 모르는 자의 현실이다. 오늘 본문 15절은 우리에게 감사하는 자가 되라고 했다. 그러면 어떻게 하면 우리가 감사하는 자가 될 수 있는가? 

공부를 잘하려면 공부를 열심히 해야 한다. 마찬가지로 감사를 열심히 해야 감사하는 자가 된다. 감사하라는 단어는 명령어이다. 감사는 해도 되고 안해도 되는 것이 아니다. 12:13에 보면 "일의 결국을 다 들었으니 하나님을 경외하고 그의 명령들을 지키라 이것이 모든 사람의 본분이라"고 했다. 이처럼 감사는 성도의 본분이다. 감사의 이유가 무엇인가? 2차 대전 때의 이야기이다. 한 농부가 낙오한 미군 병사를 구해주었다. 그런데 피를 너무 많이 흘려서 죽게 되었다. 이분이 죽으면서 미국 정부가 발행한 채권을 넘겨주었다. 영어 글자를 모르는 농부가 그것을 보관해 두었다. 수년의 세월이 흘러서 이것이 엄청난 금액의 채권임을 알았고 보상을 받았다. 그제서야 농부가 이것에 대해 감사할 수 있었다. 감사를 깨닫지 못하면 소용이 없다. 은혜를 깨달아야 감사를 할 수 있다. 우리의 모든 좋은 것은 빛들의 아버지에게서 내려온다. 오늘 우리가 가진 모든 좋은 것은 하나님이 주신 것이다. 오늘 수고하신 찬양대의 아름다운 음성도 하나님이 주셨다. 우리의 건강도 하나님이 주셨다. 모든 좋은 것이 하나님에게서 온다. 그러므로 우리는 하나님에게 감사해야 한다.

 

본분은 3중 감사로 엮어주신 것을 알 수 있다.  

1, 마음으로 감사해야 한다.

16절에 보면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께 찬양해야 한다고 했다. 마음의 감사가 중요하다. 하나님은 우리의 마음을 귀하게 보인다. 사람은 외모를 보나 여호와는 중심을 보신다. 마음이 가지않는 감사를 하나님이 기뻐하지 않으신다. 성경의 최초의 감사는 창 4장에 나온다. 가인과 아벨은 아버지에게 감사를 배웠다. 추수하면 먼저 감사의 예배를 드렸다. 그런데 하나님은 아벨의 제물은 받으셨으나 가인의 제물은 안 받으셨다. 그 이유에 대해 성경은 아벨은 감사하며 믿음의 예배를 드렸다고 했다. 그러나 가인은 형식적으로만 예물을 드렸다. 하나님은 그런 가인의 예배를 안 받으셨다. 이처럼 마음의 감사가 없는 제물을 하나님은 결코 기뻐하지 않으신다. 1:15에 보면 욕심이 잉태한즉 죄를 낳고 죄가 장성한즉 사망을 낳느니라"도 했다. 욕심 때문에 우리에게 결국 죽음이 왔다. 마음에 감사하면 감사의 사람이 된다. 심리학자들이 그렇게 말했다. 독립 운동가의 후손이 잘 안된다고 한다. 왜 그럴까? 독립 운동가의 후손들이 잘 되어서 국민들의 사랑과 존경을 받아야 하는데 실제적으로는 안 그런 이유가 무엇인가 하면 그들 속에 늘 상대방에 대하여 대적하고 증오하는 마음이 있으니까 발전이 없다는 것이다. 하나님이 우리에게 마음으로 감사를 하라고 하신다. 현대인에게 걸리기 쉬운 우울증을 앓는 사람들을 보면 모든 것을 부정적으로 본다. 이것을 부정인식도식이라고 한다. 우리에게 일어나는 모든 일은 부정적인 요소로만 되어 있는 것이 아니라 밝은 면도 있다. 항상 좋든지 항상 나쁜 것은 아니다. 좋은 면과 나쁜 면은 동전의 양면처럼 항상 함께 있다. 그런데 우울증에 걸리면 항상 부정적이고 상대방의 나쁜 면만 보게 된다. 오늘 합창단의 옷이 예쁜데 예쁘다고 하면 부정인지도식이 있는 자는 이것을 부정적으로 받아들인다. 그 말은 옷이 예쁘지 않다고 비꼬는 말일까? 라고 생각한다. 오늘 예쁘다면 그러면 전에는 예쁘지 않았다는 말인가? 라고 생각한다. 만일 누가 나를 칭찬할 때 이런 생각이 들면 내가 우울증에 걸린 것이 아닐까 하는 것을 생각해봐야 한다.

 

2. 말로 감사해야 한다.

17절에 보면 "말에나 일에나 감사하라"고 했다. , 말을 통해서도 하나님에게 감사하라는 말이다. 말은 사람의 마음을 나타낸다. 입술의 시인이 중요하다. 10:10에 보면 "입으로 시인하여 구원에 이른다"고 했다. 우리가 아무리 상대방을 마음으로 사랑해도 입으로 고백하지 않으면 그 사랑을 나타낼 수 없다. 하나님은 우리가 우리의 감사를 입술로 나타내기를 기뻐하신다. 감사는 마음을 입으로 구체적으로 표현하는 것이다. 그런데 말마다 감사합니다, 감사합니다 라고 할수 없지 않은가? 그래서 하나님이 우리의 입술에 주신 것이 찬양이다.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하나님께 감사를 돌리자. 그래서 16절에 우리가 감사한 마음으로 하나님을 찬양하되 시와 찬미와 신령한 노래로 하라고 했다. 어느 목사님이 천국에 갔는데 너무나 좋고 감격스러워서 찬송을 불렀더니 천국 문이 활짝 열렸다고 한다. 찬송으로 하늘문을 연 셈이다. 하나님의 보좌에 모여선 천사들은 영원토록 하나님을 찬양한다. 하나님은 그 정도로 성도의 찬양을 기뻐하신다. 하나님의 백성은 하나님을 찬양하도록 지으심을 받았다.

 

3. 행동으로 감사해야 한다.

마음에 감사를 품고 입술로 고백한다면 이제는 행동으로 표현해야 한다. 17절을 보면 "말이나 일에나"라고 했다. 하나님은 우리의 모든 일에 감사의 행동이 있기를 원하신다. 부산에서 있은 일이다. 의류 회사에서 불이 났다. 크리스챤인 그 회사 사장에게 목사님이 심방하여 격려하면서 그럼에도 불구하고 범사에 감사하라고 했다. 그는 이해가 안 되었으나 믿음으로 화재를 감사했다. 그랬더니 그 의류회사가 점점 일어나더니 장사가 잘 되고 유명한 기업이 되었다. 황금 입을 가졌다는 크리스토톰은 항상 감사하는 삶을 살았다. 당시 로마 황제는 기독교 복음을 전하지 못하게 했다. 그러나 크리소스톰은 담대하게 복음을 전하다가 감옥에 갇혔다. 거기에서도 감사하며 복음을 전했다. 그는 감사하면서 기도하기를 "주님, 저를 이곳의 죄수들을 위해 파송하셨군요"라고 하면서 죄수들에게 복음을 전했다. 마침내 사형 언도를 받았다. 그는 다시 감사기도를 드렸다. "아버지 하나님, 저로 하여금 성도의 최고의 순교의 반열에 세워주셔서 감사합니다"라고 기도했다. 그런데 사형 당할 때 갑자기 사형 정지령이 내려왔다. 크리고스톰은 눈물을 흘리며 다시 이렇게 기도한다. "주여, 종이 할 일이 또 남았군요. 감사합니다"라고 했다. 범사에 감사하는 것은 쉽지 않다. 어떤 경우에도 감사할 수 있는 것은 그의 믿음을 드러내는 것이다. 감사로 제사를 드리는 자가 하나님을 영화롭게 한다. 감사의 행위가 구원의 역사를 일으킨다. 마음으로 감사하라. 입술로 감사하라. 행동으로 감사하라. 이 하나님의 은혜를 마음껏 누리시길 바란다.  

이정건 본부장이 총회선교위원회를 대표하여 죽동교회에 50주년 설립을 기념하여 축사하고 기념패를 드렸다. 이본부장은 축사를 겸한 격려사에서 설립 50주년을 맞이하는 죽동교회가 이제는 복음의 빚을 갚고 세계로 향하여 선교하는 교회가 될 것을 격려했다. 그 이후에 부산고신권사 찬양단이 두 번째 찬양으로 영광을 돌렸다. 그리고 헌금을 했다. 제일영도교회에서 죽동교회에 헌금을 전달하는 시간을 가졌고 광고를 한 뒤 내빈 소개를 했다. 마지막으로 함께 송영 찬송을 부른 뒤 이정건 본부장이 축도를 자신의 선교지인 파라과이 언어와 한국어로 하고 모든 순서를 마쳤다. 예배 후에 사진 촬영이 있었다. 그리고 함께 식당으로 이동하여 점심식사를 했다. 이 식당은 야채를 위주로 요리하는 건강식 식단으로 유명한 식당이라는데 고기 요리는 일체 찾아볼 수 없었다. 값은 좀 비싸고 건강에는 도움이 되는지 몰라도 역시 식사에는 고기요리가 나와줘야 먹은 듯 하니 이제는 우리 몸의 체질이 고기체질로 바뀌었나보다. 그래서 모두들 좀 아쉬워하는 듯 했다. 그래도 우리의 건강을 염려해서 챙겨주시는 대만교회 성도님들이 고맙다. 

식사 후에는 자동차로 약 1시간 거리에 있는 자호(Cihu,자비의 호수라는 뜻) 라고 부르는 아름다운 호수로 나들이를 갔다. 거기는 삼림욕을 할 수 있고 숲으로 둘러싸인 호수는 그림처럼 아름다웠다. 큰 공원이 하나 있는데 수 십 개의 장개석 총통의 동상이 있었다. 이것들은 전국에서 수거해 온 것들로 꾸민 공원이라고 했다. 그런데 호수 가에 집 한 채가 있는데 거기에 수많은 사람들이 모여 있었다. 거길 가 봤더니 공군 장병의 열병 교대식이 진행되고 있었다. 한 시간에 한 번씩 교대하는데 아주 기계적으로 각도를 맞추어 교대하는 군인의 모습에서 절도 있는 군인의 품위를 느꼈다. 그 집은 중화민국 건국의 아버지 장개석 총통의 방부 처리된 시신이 보관되어 있는 곳이다. 우리는 줄을 서서 그곳을 들어가 보았다. 한 사람이 거기에 서서 지나가는 사람들에게 시신 앞에 경의를 표하라고 주문한다. 그런데 장총통의 관 앞에는 노란 꽃으로 만든 십자가가 서 있었다. 장총통이 크리스챤이었던가? 우리는 호수를 배경으로 사진을 몇 장 기념으로 남겼다. 나오는 출구에 장총통을 기리는 사진과 유품 그리고 친필 액자들이 보관되어 있었다.  

우리는 거기에서 한국식당으로 이동했다. 아리랑이라는 식당인데 고기 종류를 마음껏 리필해서 먹을 수 있었다. 우리 테이블에서는 불고기를 먹었고 오랜만에 된장 찌개를 먹으니 너무나 기분이 좋았다. 역시 한국인은 한국음식을 먹어야 힘이 나는 법인가 보다. 우리는 식사 후에 여러 가지 주제로 이야기를 나누었다. 광주 여전도회 연합회 찬양대도 같은 식당에서 식사를 했다. 우리는 숙소로 돌아와서 마지막 밤을 보냈다. 내일이면 귀국을 한다. 이번에 정말 감동스러운 것은 쪼우런위(죽동교회) 목사님과 진정홍(신죽교회) 목사님 그리고 온조섭 목사님과 헌신적인 장로님들의 섬김이 정말 아름다웠다. 끝까지 그리고 세밀하게 이런 저런 일들을 도우며 공항 픽업부터 숙소, 식사, 진행 등의 모든 것을 책임지며 일하는 모습이 감동적이었다. 복음을 전해준 나라와 고신교회에 대해서 고맙게 생각하고 받은 은혜를 보답으로 갚는 그들을 보면서 다른 선교지에서도 그런 아름다운 일들이 많이 일어나기를 소망한다.

 

20131021() 

아침 5시에 기상했다. 그리고 욕조에 물을 받아놓고 반신욕을 하면서 깊은 생각에 잠겼다. 우선 대만 선교 50년을 회상하면서 하나님이 주신 복을 세어 보았다. 누가 첫 단추를 끼느냐 하는 것과 그 단추를 어떻게 끼웠느냐 하는데 따라서 결과가 엄청나게 달라진다는 것을 이번에 이 행사를 통해서 보았다. 김영진 선교사님이라는 분이 첫 단추를 잘 끼웠기에 50년이 지난 지금에 와서 이런 아름다운 열매를 볼 수 있었다는 사실이 너무 감사하다. 그 후손들이 그 뒤를 이어서 중국 대륙에서 부모님이 하신 사역을 이어 받아서 하고 있고 그 뒤를 이어서 3대가 선교훈련을 받으며 본격적인 사역을 준비하는 이런 모습이 다른 선교지와 선교사들에게 롤 모델이 되면 좋겠다는 생각을 해보았다. 또한 처음 선교를 시작하는 사람도 중요하나 그 뒤를 이어서 사역하는 선교사가 누군가 하는 것도 중요하다는 것을 보았다. 후배 선교사들이 선임 선교사들의 뒤를 이어서 사역을 발전적이고 잘 했기 때문에 가능한 일이었다고 생각했다. 이런 면에서 이번 대만 방문은 만족한 방문이었다. 앞으로의 대만교회 50년은 우리 고신교단과는 자매관계로서 동등한 입장에서 대만교회가 우리에게 복음을 받았으니 다른 민족에게 복음을 다시 전해주는 선교적인 교회로 자라도록 도우는 일이 우리 교단의 일이 되어야 할 것이다. 

아침 식사시간에 나는 그동안 수고한 황병순. 배은희 선교사님과 함께 식사를 하면서 그들의 노고를 위로하였고 앞으로 어떻게 선교를 더 잘할 수 있을까에 대한 여러 가지 전략들을 의논했다. 우리는 오늘 13:25분에 인천으로 떠나는 KAL 항공기를 타야하기 때문에 930분쯤 진정홍 목사님이 수고하여 공항에 도착했다. 장개석 공항으로 불리는 이 공항은 비교적 깨끗하게 리모델링 되어있었고 우리는 제 1청사에 도착했다. 다음 제 2청사로 가는 우리 일행이 있었기에 진정홍 목사님과 작별했다. 출국 수속을 하고 공항에서 기다린 후에 탑승했다. 이제 2시간 30분 후에 인천 공항에 도착할 것이다. 이 모든 과정을 인도하신 하나님께 감사하며 이 글을 마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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