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정건 선교사 KPM 본부장

나는 이번 달에 3주간 연속으로 해외 출장을 다녀오게 되었다. 10월 둘째 주는 일본 삿포로 성서교회 설립 20주년 기념예배 및 선교대회, 셋째 주는 대만에 고신 대만교회 설립 50주년기념행사, 그리고 이번 주에는 인도네시아에서 가지는 고신인도네시아선교 30주년 기념행사에 참석하기 위해 가는 것이다. 너무나 강행군이며 피곤하고 빡빡한 일정이지만 가는 곳마다 감격스러운 일들이 많아서 피로를 느낄 틈이 없다. 나는 우리 교단 K.P.M. 선교사들이 얼마나 자랑스러운지 모른다. 이번에 인도네시아를 방문하면서도 그런 은혜를 누리기를 기대하며 출발한다. 특히 K.P.M. 인도네시아 선교 30년이라 함은 김종국. 최춘영 선교사가 1983년에 인도네시아 땅을 밟은 지 꼭 30년이 되었다는 말이다. 지금까지 김종국 선교사 부부의 헌신적인 삶과 사역을 후배 선교사들이 본받아서 앞으로의 30년도 은혜가운데 잘 이어나가기를 기대한다.

 

20131024() 

아침 5시에 일어나서 새벽기도회에 참석했다. 그리고 한 시간 운동을 한 후 집으로 돌아왔다. 나는 아침마다 아내와 가정예배를 통해서 말씀을 묵상하며 하나님의 인도하심을 구하는데 날마다 하나님은 우리를 새로운 말씀으로 인도하신다. 아침 식사를 간단히 한 뒤에 사무실에 출근했다. 늘 그렇게 하듯이 오늘도 생명나무 교재로 직원 큐티 모임과 기도회를 하였다. 긴급한 업무를 처리하고 집으로 와서 공항으로 향하는 버스를 타야하기에 서둘렀다. 그런데 아침부터 계속 왼쪽 뒷골이 뒤로 잡아당기듯 아프다. 몇 년 전부터 이런 미약한 증상이 있었는데 이제는 좀 심한 것 같다. 큐티 시간에 직원들에게 기도부탁을 했더니 모두들 걱정을 한다. 함께 합심해서 기도를 했다. 그런데 황남주 행정국 총무가 아무래도 내게 병원에 가보아야 한다고 강권하여 함께 근처에 있는 이강산의원이라는 병원으로 갔다. 혈압을 재니 15086이 나왔다. 아래 혈압은 정상이지만 위의 혈압은 제법 높다. 의사 선생께서는 당장 M.R.I. 사진을 찍어보고 정밀 검사를 받을 것을 권고한다. 그런데 지금 출국을 해야 하지 않는가? 그래서 우선 급한 대로 1주일분의 혈압약과 두통약을 처방해 준다. 돌아오는 날까지 아무 이상이 없도록 해달라고 주께 기도했다. 그리고 김상원 간사를 통해서 돌아와서 검진을 받도록 복음병원에 진료 예약을 해 달라고 부탁했다. 아침에 병원 진료는 황총무가, 대전 고속버스 복합터미널까지 김상원 간사가 수고해 주어서 감사하다. 공항버스는 3시간의 여행 끝에 무사히 인천공항에 도착했다. 그런데 머리가 계속 아파서 약을 먹었다. 출국 수속을 한 후 출국장으로 들어섰다. 오후 325분 출발 자카르타행 대한항공이다. 

자카르타까지는 6시간 50분이 소요되었다. 기내식은 한 번만 나왔는데 우리 부부는 비빔밥을 시켜 먹었다. 대한항공을 타면 좋은 점 하나는 비빔밥이 기내식으로 나온다는 것이다. 밥을 맛있게 먹고 영화 한 편을 감상한 후 깊은 잠에 빠졌다. 목적지까지 40분가량 남았다는 기내방송 멘트를 들으면서 잠에서 깨었다. 그리고 인도네시아 입국 서류를 작성하고 입국 준비를 했다. 인도네시아는 외국인은 누구든지 입국하면서 비자 발급비 25달러를 내고 들어간다. 그리고 짐 검사를 까다롭게 한다. 나는 짐을 두 개 부쳤는데 하나는 맨 먼저 나왔는데 나머지 하나가 안 나오는 것이었다. 한 참을 기다렸다. 그 가방에는 이번에 오신 선교사들에게 나누어 주려고 종합비타민을 50통이나 가져왔는데 아무래도 검색대에서 적발이 되게 아닌가 생각이 되었다, 결국 맨 나중에 나오는데 가방에 흰줄을 그어 놓았다. 흰줄을 그어 놓으면 세관 검사를 해야 하는 것 같았다. 그러나 은혜가운데 무사히 잘 통과하여 밖으로 나왔다. 

밖에는 윤상혁 선교사 부부가 기다리고 있었다. 윤선교사 부부는 2007228일에 이집트로 파송되어 한 텀을 사역하고 안식년을 마친 뒤 작년에 인도네시아로 재파송 되었다. 윤선교사는 안식년 기간 동안 본부에서 훈련원 간사로 섬기며 1년간 함께 있으면서 정이 많이 들었었다. 우리는 차를 타고 숙소인 Olive Hotel로 갔다. 인도네시아 선교현지부장인 김재룡 선교사와 김종국 선교사의 아내인 최춘영 선교사가 우리를 기다리고 있었다. 나는 배가 고파서 호텔 내 식당에서 나시꼬 랭우당이라는 인니식 볶음밥 한 그릇을 먹었다. 윤상혁 선교사도 먹고 싶은지 한 접시를 더 주문하여 함께 먹었는데 꿀맛이 따로 없었다. 오늘 우리 다음으로 도착해야하는 팀은 서울중앙교회 김진영 목사를 비롯한 4명의 교인들이다. 나는 그들이 오면 맞이하고 자려고 자지 않고 호텔 로비에서 기다렸다. 

얼마 후에 입구 쪽에서 갑자기 왁자지껄한 소리가 들렸다. 서울중앙교회 방문팀이 도착한 것이다. 김진영 담임목사와 방해주 원로 장로, 김용진 선교위원장 장로, 안윤근 부위원장 집사 그리고 5명의 권사 등 모두 9명이었다. 권사님들의 평균 연령은 80세이다. 이 분들은 30년 전에 김종국 선교사를 파송할 당시부터 물질로, 기도로 후원하던 분들이라서 더 의미가 깊다. 안윤근 집사는 나에게 개인적으로 매제가 된다. 이들을 맞이한 후 숙소 방으로 돌아오니 12시가 밤 12시가 넘었다.

 

20131025() 

아침에 일찍 일어나서 우선 아내와 함께 가정예배를 드렸다. 자카르타 하늘 아래에서 가정예배를 드리는 것도 의미가 있다. 아브라함은 장막을 옮길 때마다 하나님께 제단을 쌓았다고 하지 않았는가? 오늘 아침에는 왕하 8장의 말씀을 가지고 묵상했다. 엘리사를 사람들이 부를 때 "하나님의 사람"이라고 불렀다. 그래서 그가 올 때는 "하나님의 사람이 오는도다."라고 했다. 나를 보고 사람들이 그렇게 부를 수 있으면 좋겠다. "저기 본부장님 이정건 선교사가 오신다."보다는 "저기 하나님의 사람 이정건 선교사가 오신다." 얼마나 좋은가? 직분이나 직책은 변해도 이 호칭은 영원하다. 

740분경에 아침 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내려갔더니 여기저기에서 옹기종기 모여앉아서 선교사들이 식사를 하고 있었다. 전체 인니에서 사역하고 있는 선교사들이 다 모였다. 말랑에서 신학교 교수 사역을 하고 있는 홍영화. 지선경 선교사(1990.10. 15 파송), 발리에서 보육원 및 신학교 교수 사역을 하는 강원준. 허경애 선교사(1993.3.23 파송), 말랑에서 신학교 교수 및 현지인 교회 목회 사역을 하는 김재룡. 박은미 선교사(2004.2.18 파송), 칼리만탄에서 전도 및 문서 사역을 하는 박종덕. 신유현 선교사(2010.2.17 파송), 자카르타에서 신학교 교수 사역 및 선교센타 사역을 하는 윤상혁. 김나래 선교사(2007.2.18 파송), 먼따와이에서 학교 및 교수 사역을 하는 정필녀 선교사(2003.11.3 파송), 역시 먼따와이에서 신학교 및 교수 사역을 하는 홍수희 선교사, (2001.12.19 파송), 롬복에서 언어훈련 및 교회개척 사역을 준비하고 있는 손대영. 김원정 선교사(2012.12.12 파송), 자카르타에서 언어훈련 중인 김명훈. 송은미 선교사(2013.3.27 파송)이다. 식사를 마치고 난 후에 이번 행사의 꽃으로 30년간 인도네시아 선교를 위해 헌신한 김종국. 최춘영 선교사(1983.12.20 파송)가 왔다. 서울중앙교회 팀도 식사를 하고 있었는데 정수생 선교위원장 부부는 일찍 식사를 마치고 숙소에서 쉬고 계셨다. 식탁의 교제처럼 즐거운 교제가 있을까? 우리는 흔히 만나서 교제하자는 의미로 "우리 한 번 밥 같이 먹읍시다"라고 하지 않는가? 아침식사를 하면서 이런 저런 이야기로 꽃을 피웠다. 

아침 식사를 마치고 서울중앙교회 팀은 짐을 싸서 Perial Aryaduta Hotel로 숙소를 옮기고 우리는 오늘 행사를 준비하기 위해서 미리 떠나는 선교사님들과 함께 행사 장소인 폰독 아가페 선교센터에 갔다. 이 센터는 김종국 선교사의 설명에 따르면 이 건물이 본래는 학원으로 사용하던 건물인데 현지인들의 헌신과 도움으로 구입하여 지금 선교센터로 사용하면서 신학교의 용도로, 그리고 선교를 위해 유용하게 사용되고 있다고 했다. 선교사들이 함께 행사 때 부를 특송을 준비하는 동안에 우리 부부는 손대영 선교사의 아이 이안이와 박종덕 선교사의 아이 주하를 돌봐주었다.

 

점심식사는 서울중앙교회가 제공했는데 식당은 총독 아가페 선교센타 근처에 있는 해운대라는 한국식당이었다. 주된 음식은 아구찜과 해물탕이었다. 이곳에 와서도 이런 음식을 먹을 수 있다니 놀랍다. 그런데 듣자하니 이 지역에는 무려 8만 명의 한국 사람들이 모여 사는 밀집 지역이라서 한국 식당들이 많다는 것이다. 우리는 식사 후에 호텔로 돌아와서 잠시 쉬었다. 그리고 4시쯤 다시 행사장으로 갔다. 그리고 거기에서 선교사들이 행사준비를 하는 가운데 김종국 선교사 사무실에서 차를 마시면서 정수생 위원장, 강원준 선교사와 함께 대화를 나누었다. 한 시간 전부터 행사장에는 삼삼오오 사람들이 모여들었다. 드디어 시작인 18:00시가 되었다. 한국에서 방문한 손님들, 현지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들, 교민들 그리고 현지인 사역자들과 신학생들로 행사장을 꽉 채웠다. 어림잡아서 150명가량이 되었다. 행사는 총 2시간 30분 가까이 진행이 되었다.

 

고신인니 선교 30주년 감사예배(1983~2013) 

일 시 : 20131025() 18:00

장 소 : 폰독 아가페 선교센타

사회 : 김재룡 선교사(지역선교부장)

설교 : 정수생 목사(선교위원회 위원장)

통역 : 홍영화 선교사

 

1/ 예배 

현지선교부장 김재룡 선교사의 사회로 예배가 시작되다. 찬송가 38"예수 우리 왕이여" 함께 부르고 서울중앙교회 원로장로인 방해주 장로가 기도를 하다. 310장 찬송 "아 하나님의 은혜를" 다 함께 부르다. 홍수희 선교사가 본문 롬 14:7-11을 읽다. 이어서 인니장로교신학교 학생들이 특송을 하였다. 윤상혁 선교사의 지휘로 파랗고 아름다운 단복을 입은 신학생들이 찬송"어두움에 밝은 빛이 되시는"를 인니어로, "주께서 주신 동산에"는 한국말로 불렀다. 감동이 되었다. 윤선교사가 언제 이렇게 찬양 연습을 잘 시켰는지 놀랍다. 반주는 아내 김나래 선교사이다. 설교는 정수생 선교위원장이 하셨다. 설교요약은 다음과 같다. 

오늘 신학생들이 한국어로 찬양을 했는데 참 잘 했다. 박근혜 대통령이 얼마 전에 인도네시아를 국민 방문했는데 그때 대통령이 이 모임에서 축하하지 못했다. 그러나 대통령보다 더 높으신 우리 하나님이 이 시간에 우리를 축하하신다. 한국과 인도네시아는 올해로 수교 40주년인데 김종국 선교사는 수교된 지 10년 후에 파송되어 지금까지 30년 동안 다른 선교사들과 함께 복음을 전했다, 인니 선교 30년은 의미가 있다. 우리 예수님은 30세에 비로소 복음을 전하기 시작하셨다. 4:17에 보면 예수님의 전파내용이 기록이 되어 있다. "이 때부터 예수께서 비로소 전파하여 이르시되 회개하라 천국이 가까이 왔느니라 하시더라" 이제 인니 고신는 선교 30년인 청년기에 들어섰다. 청년처럼 활발하게 더 많이 복음을 전할 때이다. 우리 주님은 세상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 한국 사람이나 인도네시아의 모든 사람을 사랑하신다. 하나님은 그 하나님의 사랑을 전하기 위해 선교사를 보내어서 복음을 전하게 하신다. 30년 전에 서울중앙교회에서 설립 30년을 맞이하여 그 기념으로 김종국 선교사를 인도네시아에 파송했다. 그리고 세월이 흘러서 오늘 파송 받은 지 30년을 기념하여 예배를 드리는 것이다. 우리 예수님은 30세에 젊음을 불태우며 복음을 전하셨는데 김종국 선교사는 30년간 인도네시아에서 젊음을 불태우며 복음을 전했다. 요셉은 17세 때 종으로 팔려갔으나 약관 30세에 애굽의 총리가 되었다. 우리는 김선교사의 30년을 겉으로 드러난 사역만이 아니라 복음을 전하는 일에 최선을 다했던 그 열심을 기억해야 할 것이다. 요셉이 30세에 총리가 된 것 같이 김선교사가 30년간 수고하여 이렇게 오늘의 감격을 누리게 되었다. 

사도바울은 믿음이 약한 자로 인해 음식물을 조심하라고 했는데 이것은 믿음이 약한 자를 실족시키지 않기 위해서 주의를 기울이라는 말이다. 우리 예수 믿는 사람은 자기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이 아니다. 오직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사는 사람이다. 모든 이들이 주님의 영광을 위해 살겠다고 말하고 기도한다. 그러나 그대로 사는 이는 너무나 적다. 김선교사를 비롯하여 모든 선교사들이 인도네시아의 영혼을 위해 한국을 떠나서 이곳에 왔다. 김선교사는 인도네시아 사람들을 사랑하여 인도네시아 시민권을 얻어서 사역하고 있다. 인니에서 복음 장로교회의 세우고 현지인 목사 20명을 키워냈다. 그리고 인니 장로교신학교를 시작했다. 교단장을 역임했고 이제는 그 제자에게 교단장의 직을 위임하였다. 지금 5개국에 8명의 선교사를 파송하였다. 현재 169개국, 25,000명의 한국인 선교사 대표이다. 그러나 이 모든 것이 자신을 위한 것이라면 아무 소용이 없다. 만약 그렇다면 하나님이 기억을 안 하신다. 그러나 이 일이 주님의 일이라면 하나님이 기억하실 것이다. 우리는 살아도 주를 위하여 살고 죽어도 주를 위하여 죽어야 한다. 우리에게 주실 상을 늘 기억하며 살아야 한다. 그러나 이 말씀을 실천하려면 날마다 죽는 고백을 해야 한다. 늘 주님만 바라보라. 이런 공적을 내가 한 것으로 돌리기보다는 주님이 함께 하셨기 때문이라고 고백해야 한다. 2:20을 기억하라. "내가 그리스도와 함께 십자가에 못 박혔나니 그러나 이제는 내가 사는 것이 아니요 내 안에 그리스도께서 사신 것이라 이제 내가 육체 가운데 사는 것은 나를 위해 자신의 몸을 버리신 하나님의 아들을 믿는 믿음 안에서 사는 것이라" 예수님이 나의 왕이시며, 오직 우리는 그분만 위해 살아야 한다. 지난 과거도 중요하지만 남은 때가 더 중요하다. 오늘날 더러 좋은 열매가 있으면 말로는 하나님의 은혜라고 하지만 사실은 자기 자랑을 한다. 그래서 모든 것을 자기 업적으로 돌리기 쉽다. 이것은 하나님이 결코 기뻐하지 않으신다. 우리 모두는 주님 중심으로 일함으로 다른 이들에게 본이 되자. 주님과 인도네시아의 영혼을 위해 생명 바쳐서 일하라. 예수님이 십자가에서 죽으심으로써 우리의 구주가 되셨다, 고신 선교 30주년을 통해서 인도네시아에서 모리아산에서 드려진 그 하나님의 번제인 어린양 같은 자들이 많아지기를 바란다. 그러면 아브라함처럼 열방의 복이 될 것이다. 지난 30년을 되돌아보면서 앞으로 주님 오실 때까지 여기까지 도우신 하나님이 앞으로도 함께 하실 줄 믿는다. 

다함께 설교자를 통해서 주신 하나님의 말씀을 생각하면서 인니 찬양 "엘사다이"를 부르다. 그리고 발리에서 사역하는 강원준 선교사가 축도를 함으로 1부 예배를 마치다.

 

2부순서/ 고신 30주년 역사보고 및 특별 찬양 

고신선교 인니 30년 역시 사진을 동영상으로 보다. 김종국 선교사가 파송된 이후 지금까지 파송되어 사역하고 있는 모든 선교사들의 사역과 가정이 소개되었다. 이 자료는 칼리만탄에서 사역하는 박종덕 선교사가 수고하여 만든 감동적인 영상이다. 그리고 김종국 선교사가 인도네시아 K.P.M. 30년의 사역역사를 간략하게 소개하였다. 그리고 김선교사가 인니어로 우리 선교사들을 차례로 소개한 후에 다시 우리말로 소개를 하였다. 서울중앙교회에서 시무하는 김진영 목사가 축사를 하였다. 김목사는 일찌기 인도네시아 선교를 시작하신 장로, 권사님들을 먼저 소개하였다. 그리고 마포에 있는 양화진의 외국인 묘지를 소개하면서 루비켄드릭 선교사를 소개하다. 그 처녀 선교사의 묘비에 쓰여진 글은 "나에게 천개의 생명이 주어져도 가 모두를 한국을 위해 바치리라" 는 글을 소개하면서 김종국 선교사 부부에게 감사한다고 말을 맺었다. 

서울중앙교회 선교위원장 김용진 장로가 김종국 선교사에게 감사패를 전달하다. 그리고 특별찬양으로 신학대학원생들이 하나님께 영광을 돌리다. 그런데 갑자기 바탁족의 한 학생이 아랍사람들의 전통 복장을 입고 나타나서 우리를 긴장시켰다. 처음에 우리는 무슬림인 이 아랍사람이 웬일인가 하고 우려의 눈으로 바라보았다. 그런데 그는 아랍사람이 아니라 예멘에 파송되어 4년간 사역한 후 안식년으로 돌아온 인도네시아인 형제이다. 그는 간증을 통해 사역을 이야기 했고 안식년 기간 동안 공부를 계속 더 하겠다고 하여 석사과정에 들어와 있다고 자신을 소개했다. 참 감동적이었다. 계속하여 인니 한인 선교사 협의회 회장 김상현의 선교사의 축사가 있었다. 그리고 이정건 본부장이 격려사를 하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고신 인니 선교 30 주년을 축하합니다.

보통 축사나 격려사를 할 사람이 몇 명 되면 뒤에 하는 사람이 덕을 봅니다. 그것은 앞에서 대개 하고 싶은 이야기를 거의 다 하기 때문입니다. 내가 그런 경우입니다.

지금부터 약 25년 전입니다. 내가 남미 파라과이로 파송준비를 하고 있을 때 김종국 선교사 가족이 첫 번 째 안식년을 맞이하여 한국으로 오게 되었습니다. 김포공항에 그 당시 서울중앙교회 선교부장인 김무진 장로님과 내가 마중 나갔습니다. 사모님이 아이들 3명을 데리고 출국장을 빠져나오셨다. 유니스, 상준이, 상엽이가 어릴 때였습니다. 바깥에는 추운 겨울인데 모두들 반소매로 옷을 입고 벌벌 떨면서 나왔습니다. 나는 그때 빼빼하고 얼굴이 새카맣게 그을린 아이들을 보면서 울었습니다. 김선교사님은 신학교 강의를 마치고 며칠 후에 따로 나오신다고 했습니다. 택시를 탔습니다. 택시 운전사들이 인도네시아말로 대화하는 아이들을 보면서 사모님에게 물었습니다. "어디서 오셨어요?" ", 인도네시아요." "그래요? 그러면 애기 아빠가 인도네시아 사람이겠네요?" 저는 지금 벌써 24년이 지난 그때 일을 회고하고 있습니다. 그 후 다시 세월이 흘러서 이제 30년이 되었습니다. 

그동안 인도네시아에서 우리 KPM은 총 16가정이 사역했습니다. 지금은 협력 선교사 1가정을 포함하여 11가정이 남아서 열심히 사역하고 있습니다. 우리 교단 K.P.M. 선교는 1957년에 대만에 선교사 한 가정을 파송한 후 지금까지 50개국에 협력선교사를 포함하여 430명가량 파송하여 이들이 열심히 사역하고 있습니다. 그 가운데 K.P.M.I. 인도네시아 선교부는 우리교단 27개 지역 선교부 가운데 가장 모범적으로 팀 사역을 잘 하는 선교부입니다. 선교사들 모두 하나같이 탁월합니다. 한국 속담에 첫 단추를 잘 꿰어야 한다는 말이 있습니다. 김종국. 최춘영 선교사가 인니 선교의 첫 단추를 잘 꿰었기 때문에 오늘날 뒤를 이어서 사역하는 훌륭한 선교사들의 사역과 함께 어우러져서 이렇게 아름다운 결실을 맺게 되었습니다. 

지난주에 대만에 다녀왔습니다. 고신총회대만교회설립 50주년기념행사에 참가했습니다. 교단 1호 김영진 선교사에 의해 시작한 선교가 뒤를 이어서 파송 받은 선교사들의 사역과 어우러져서 아름다운 열매가 있었습니다. 이번 대만 행사의 의미는 피선교지의 교회들이 모든 행사를 주도하고 준비하여 이루었다는 것입니다. 그들이 말하기를 "우리는 오늘날까지 한국 고신교회에서 파송 받은 선교사님들을 통해서 복음을 받고 도움을 받아서 이렇게 자랐으니 이번에는 우리가 은혜를 갚고 대접을 하자는 의미에서 이번 행사를 하게 되었다"고 이번 행사를 주관하는 대만교회 목사님이 말했습니다. 나는 우리 인도네시아 선교부도 언젠가 그렇게 되기를 기대합니다. 복음의 빚을 갚는 인도네시아 교회가 되기를 바랍니다. 돈을 빌리면 돈으로 갚아야 합니다. 복음으로 빚지면 복음을 다른 사람에게 전함으로 갚을 수 있습니다. 조금 전에 바탁족의 한 형제가 예맨 선교사로 갔다가 안식년으로 와서 보고하는 것을 들으면서 감동을 받았습니다. 한국 사람도 예수 안 믿는 사람이 믿는 사람보다 더 많습니다. 나는 여러분 가운데 누군가 언젠가는 한국으로 선교사가 되어 파송할 수 있으면 하는 기대를 해 봅니다. 

이어서 복음 장로교단 교단장 카렐 툭이 축하를 하였다. 그는 자신의 스승 되는 김종국 선교사의 업적을 기리면서 특히 김선교사가 한국 국적을 포기하고 인도네시아의 복음전파를 위해 일한 것처럼 이 땅에서 사역하는 모든 한인 선교사들도 국적을 포기하면 좋겠다고 장난기어린 돌출 제안을 했다. 특별찬양으로 마야 로만티르 박사가 하다. 이 여자 분은 철학자가 학위를 가진 분으로 김종국 선교사와의 오랜 교분을 가지고 있다고 하는데 찬양을 잘 했다. 이어서 인니 KPM 선교사들의 찬양이 있었다.

 

3부 순서/ 감사패 증정 

이어서 그동안 수고한 선교사들을 위해 감사패를 만들어서 증정하는 시간을 가졌다. 대상자들은 다음과 같다. 30주년 김종국. 최춘영 선교사, 20주년 홍영화. 지선경 선교사, 강원준. 허경애 선교사, 10주년 홍수희. 정필녀 선교사, 김재룡. 박은미 선교사이다. 인도네시아 선교부는 사역의 햇수에 따라서 10년 이하, 10~20, 20~30년 등 골고루 분포가 되어 있어서 참 좋고 선후배사이의 동료애가 다른 지역보다 남다른 것을 보면서 하나님께 감사했다. 그리고 특이한 것은 인도네시아 KPM 정규 멤버인 것을 증명하는 조그만 패를 하나씩 만들어서 나누었다. 나는 이것을 눈여겨보았다. 우리 본부도 다음부터 파송되는 우리 선교사들에게 그들이 우리의 정규 멤버 선교사이며 누가 보더라도 증명될 수 있는 멤버십 패를 만들어야겠다는 아이디어를 얻게 되었다. 지금까지는 뱃지를 파송예배 시에 달아주었는데 오히려 이것이 좋을 것 같았다.

 

4/ 기념 촬영 후 저녁만찬 및 교제 

모든 순서를 마친 후 기념 촬영을 했는데 너무 사람이 많아서 사진을 찍게 어려워서 나의 제안으로 모든 청중이 그 자리에 앉고 사진을 찍는 분이 강대상위에 올라가서 청중을 향해 찍도록 했는데 이렇게 하니까 모두 다 사진에 나올 수 있었다. 그리고 이 시간에 참석했던 모든 분들이 함께 식사를 하며 아름다운 교제를 나누었다. 150명 정도가 참석했는데 한국 사람과 현지인이 5:5 비율로 참석했다. 미리 준비한 출장식 뷔페로 맛있게 먹었는데 이 식사비용을 김종국 선교사의 자녀들이 준비했다고 한다. 나는 이 사실이 너무나 자랑스러웠다. 이 아이들이 이렇게 자라서 부모님의 사역을 재정적으로 후원하는 모습을 보면서 내 아이들에게도 언젠가는 이런 섬김의 때가 오리라고 믿는다.

 

20131026() 

아침에 비교적 늦게 일어났다. 아침 식사를 하면서 하루의 스케줄에 대해서 오리엔테이션을 받았다. 모두들 그동안 준비했던 행사가 은혜가운데 끝나서 기뻐했고 그래서 오늘은 좀 느긋하게 쉴 수 있겠다고 입을 모았다. 아침식사를 마치고 830분에 버스에 올라탔다. 미니 민속 박물관 겸 민속촌을 견학할 예정이라고 한다. 이 민속촌은 인도네시아의 18,000개 섬의 모양을 축소하여 보여주고 각 지역의 다양한 주거 형태와 문화를 보여준다고 한다. 우리는 그곳으로 가는 동안에 버스 안에서 재미있는 유흥의 시간을 가졌다. 주인공은 단연 서울중앙교회의 김경자 권사님이었다. 김경자 권사님은 김경래 장로님의 여동생이다. 김권사님은 끼가 넘치는 분이다. 김권사님은 자신이 80세 가까운 나이라는 사실도 잊고 거침없는 입담과 유모어로 청중을 휘어 잡았다. 모두들 차례대로 마이크를 돌려가면서 각자가 들려주는 노래와 간증을 통해 은혜를 받았다. 이렇게 시간을 보내며 두 시간 후에 목적지에 도착했다. 

도착한 민속 박물관은 한 마디로 인산인해였다. 토요일이라서 그런지 사람들로 붐볐다. 특히 어린이들이 얼마나 많은지 모른다. 정수생 위원장 사모님은 연신 아이들이 많은 것들 보고는 부러워하신다. 왜냐하면 한국에는 처녀 총각들이 시집, 장가를 안 가려고 하고 결혼한 사람들은 아이를 낳지 않으려고 하므로 지금 농촌에는 어린아이를 보기가 너무 어렵다고 탄식을 하신다. 우리는 이곳저곳을 둘러보면서 구경을 하고 그 모습을 열심히 사진기에 담았다. 그리고 파노라마 극장에서 상영하는 인도네시아를 소개하는 영화인 "Beautiful Indonesia"를 보려고 했는데 아쉽게도 프로그램이 다른 것으로 바뀌어 있고 오늘 이 영화가 상영이 되지 않는다는 공고를 보고는 발걸음을 돌릴 수밖에 없었다. 그리고 바로 점심식사를 하러 식당으로 이동했다. 

점심은 대형 쇼핑센터에 있는 간이음식점에서 먹었는데 인도네시아 현지 음식으로서 음식이 참 맛이 있었다. 모두 24명이 식사를 했는데 우리 돈으로 25만 원 쯤 나왔으니 값도 저렴하고 배도 불렀다. 점심은 선교본부에서 선교사와 손님들을 대접하였다. 식사 후에는 모두들 피곤해하므로 숙소에 가서 쉬기로 했지만 혈기왕성한 선교사들이 어디 쉬고 싶겠는가? 그래서 우선 서울중앙교회 팀을 숙소로 모셔드리고 우리 모두는 김종국 선교사 댁을 방문했다. 김종국 선교사 댁에서 맛있는 커피를 마시면서 떠들고 놀며 쉬었다. 오늘 저녁식사는 인도네시아에 이민온 지 40년이 된다는 연합교회 이장로님이 저녁식사를 대접한다고 해서 식당으로 이동했다. 이 식당은 Sea Food 전문 식당으로 유명한 Bandar Djakarta 라는 식당이다. 이 식당에는 살아있는 해물만 취급한다. 그래서 다른 해물식당보다 가격이 3배나 비싸다고 하는데 생선, 가재 등의 요리를 푸짐하고 맛있게 먹었다. 식사 인원이 35명 정도이니 비용이 얼마나 나온 지 상상이 안 된다. 너무나 감사하다. 

우리는 식사 후에 밖으로 나와서 내일 떠날 선교사들과 작별을 했다. 내일 주일 예배는 두 팀으로 나뉜다. 한인교회인 자카르타 소망교회에서는 내가 설교하고 일부 선교사들이 참석하며 아가페 현지인 교회는 정수생 선교위원장이 설교하시고 김종국 선교사가 통역한다. 이 예배에 서울중앙교회 성도들이 참석한다고 한다. 우리 부부는 선교위원장 부부와 함께 숙소로 돌아오기 전에 김종국 선교사의 안내로 과일가게를 들러서 과일의 여왕이라 불리는 두리안을 대접 받았다. 오랜만에 먹어보는 두리안이 너무나 맛이 있었다. 내일 주일을 위해 잠자리에 들었다. 피곤하지만 참 즐거운 하루였다. 

 

20131027(주일) 

아침에 현지인 교회인 아가페 교회로 가서 설교하실 정수생 선교위원장을 김종국 선교사와 김진영 목사가 모시러 왔다. 그리고 짐을 싣고 떠났다. 잠시 후에 자카르타 소망교회 어떤 집사가 김재룡 선교사와 함께 와서 우리 짐을 차에 실었다. 소망교회는 숙소에서 약 30분 거리에 있는 시내 중심가에 위치해 있다. 예배당은 큰 집 두 채를 연결해 놓은 듯한 건물인데 예배처소로 사용하고 있다. 예배는 10시에 시작한다고 하는데 1시간 정도 여유가 있다. 현재 교인들은 약 80여명 모인다는데 마침 오늘이 마라톤 경기가 열리는 날이기 때문에 교인들이 교회에 오는데 지장이 많다고 한다. 그러나 우리는 정시에 예배를 시작했다. 자카르타 소망교회 주일아침 예배는 이렇게 드려졌다.

 

20131027(주일) 오전 10:00 

사회/ 담임 김종성 목사

설교/ 이정건 본부장 

소망교회 찬양팀의 찬양으로 예배를 시작하다. 모두 "우리에게 향하신" 찬양으로 입례송을 부르다. 다함께 신앙을 고백하고 찬송가 496장과 경배와 찬양을 함께 부르다. 함께 통성으로 기도하다. 교독문34번을 하고난 후 류병옥 집사가 대표로 기도하다. 사회자가 오늘 설교 본문인 마 12:20-26을 읽고 찬양대에서 "내 평생 가는 길"을 합창하다. 이정건 고신선교위원회 본부장이 "한 알의 말이 떨어져 죽으면"이라는 제목으로 말씀을 전하다. 그 내용은 다음과 같다. 

브라이언이라는 영국 남자가 이집트를 여행하다가 3,000년전에 지어진 피라미드에서 한 알의 밀을 발견하여 심었더니 싹이 나서 열매를 맺었다는 소식이 온 세계를 발칵 뒤집어 놓았다. 놀라운 일지만 아쉬운 점은 만일 그 밀알이 그 당시에 땅에 떨어져 죽어?다면 얼마나 많은 열매를 맺었을까? 하는 생각이 든다. 죽어야 산다는 성경 말씀을 생각하면서 우리가 받을 교훈은 다음과 같다. 

1. 예수님이 한 알의 밀알이 되셨다.

2. 선교사가 한 알의 밀알이 되었다.

3. 여러분도 한 알의 밀알이 되어야 한다. 

이렇게 말씀을 전하여 자카르타 소망교회의 성도들 모두가 선교하는 교회, 선교사는 성도가 되도록 도전을 하였다. 

헌금을 드리는 시간이 되었다. 495장을 부른 후 박기정 집사가 기도한 후 헌금을 드리다. 헌금은 미리 들어올 때 헌금하면 드려진 것을 이 시간을 봉헌하는 것이었다. 마지막으로 설교자가 축도를 하다. 그리고 인도자가 광고를 하고 새로 오신 분들을 소개하는 시간을 가지다. 새로 오신 분들은 대부분이 이번 30주년 기념행사를 위해 오신 선교사님들이다. 마지막으로 모두 일어서서 파송을 노래인 "오직 주의 사랑에 매여"를 함께 불렀다. 

이 자카르타 소망교회는 지금 발리에서 사역하고 있는 강원준 선교사가 개척했는데 1994년에 K.P.M.이 인도네시아에 전략적으로 교포교회를 세우기 위해 강선교사 부부를 파송하여 개척한 교회이다. 한동안 150여명의 성도까지 부흥하여 인도네시아에서 중요한 한인교회로서 자리매김 하고 많은 선교사를 후원하였다. 그 후에 잠시 교회에 어려움이 있었고 강 선교사 부부는 16년간 사역하던 정든 이 소망교회를 떠나서 본격적으로 현지인 사역을 하기 위하여 발리로 떠났다. 그리고 그곳에서 지난 4년간 신학교 강의와 보육원 설립, 교회개척 등으로 오히려 더 많은 일을 하고 있다. 이 교회는 그동안 두 번 사역자가 바뀐 후 1년 반 전에 언양교회에서 부목사로 사역하던 김종성 목사가 부임하여 새롭게 성장하고 있다. 

예배를 마치고 난 후에 교인들과 함께 식사를 했다. 담임목사와 장로, 집사 그리고 우리 선교사들이 한 방에서 같이 식사를 했다. 이 식사를 마치면 우리는 모두 뿔뿔이 사역지로 흩어지게 된다. 석별의 정에 가슴이 찡하다. 나는 다시 하나님이 주신 자신들의 사역지로 발걸음을 옮기는 선교들이 사역을 잘 담당하기를 기도한다. 우리는 윤상혁 선교사 자동차에 짐을 싣고 반둥에 있는 화산을 구경하고 온천을 즐기러 떠났다. 이 지역은 활화산이 있는 지역인데 자카르타에서 자동차로 3시간 거리에 있다. 열심히 달려서 거의 도착할 즈음에 김종국 선교사에게서 전화가 왔다. 오늘 바침 화산 활동이 너무 강해서 위험하기 때문이 입산을 금지한다는 것이다. 아쉽지만 안전이 최우선이 아니겠는가? 우리는 화산 구경은 접고 일단 예약된 호텔로 들어갔다. Sari Ater 호텔이다. 

이 호텔은 수영장이 온천이다. 뜨거운 물이 콸콸 나오고 유황 온천이라서 그런지 온천물이 눈에 들어가니 눈을 뜨지 못할 정도로 따갑다. 그러나 한국에서 온 분들 가운데 이곳에서 온천욕을 하다가 무좀이 나았다는 사람도 있다고 하니까 나도 은근히 기대를 해본다. 저녁식사를 맛있게 했다. 김종국 선교사는 미식가이자 대식가이다. 그런데 불가사의한 일은 아무리 많이 먹어도 전혀 살이 찌지 않는다. 현대 과학자들의 연구 대상이다. 그 미식가가 추천한 음식들이니 어찌 음식마다 맛이 없을 수 있겠는가? 식사 후에 식당 옆에 있는 온천수에 몸을 담그고 휴식을 취했다. 며칠 동안 쌓인 피로가 한꺼번에 몰려온다. 온천을 마치고 숙소로 들어오니 잠이 저절로 쏟아진다. 그래서 그대로 침대로 직행하여 잠에 깊이 빠졌다.

 

20131028() 

오늘이 인도네시아 체류 마지막 날이다. 어제 밤에 한 번밖에 온천을 즐기지 못했기 때문이 아침 식사 전에 다시 한 번 더 몸을 온천수에 담았다. 여기 온천수는 참 좋은 것 같다. 온천은 우리 일행 가운데 나 혼자만 유일하게 두 번을 한 셈이다. 마지막 아침 식사를 호텔 식당에서 하고 짐을 꾸려서 830분에 자카르타로 출발했다. 오면서 이번 34일간 행사 가운데 하나님이 베풀어 주신 은혜를 각자가 마이크를 돌아가면서 잡고 이야기 하는데 너무나 은혜가 되었다. 이번 반둥 온천 행 12일의 경비는 서울중앙교회에서 담당한다고 하니 감사한 일이다. 오늘 점심은 최춘영 선교사가 집에서 준비한다고 한다. 이것 또한 감사한 일이다. 

김종국 선교사의 집에서는 부인 최춘영 선교사가 맛있는 점심을 준비하고 우리를 맞이했다. 음식은 일본 음식인 요세나베인데 너무나 정성스럽게 준비했다. 최춘영 선교사는 연세대에서 식품영양학과를 졸업했다. 그래서 그런지 영양을 고려한 환상적인 음식으로 우리를 즐겁게 했다. 식사 중에 정수생 선교위원장님이 간단히 예배를 인도해 주시고 기도해 주셨다. 그리고 우리는 마음껏 먹으며 식탁의 교제를 나누었다. 오늘 오후 4시에는 복음 장로교단에 속한 40여 교회의 목회자와 장로들이 모여서 총회를 하며 목회자 연장교육도 겸하는 모임이 있었다. 개회예배를 드림으로 시작하게 되었다. 전체적인 진행은 신학교 현지인 담당자가 했고 찬양과 기도가 뜨거웠다. 

그런데 갑자기 비가 쏟아지기 시작하더니 그칠 줄을 모른다. 강당이 5층 제일 높은 곳에 있기 때문에 지붕에 부딪히는 빗소리 때문에 예배에 방해가 되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예배는 더 뜨겁게 진행되어 은혜로웠다. 개회예배 설교는 정수생 선교위원장이 하셨다. 성경본문은 딤후 3:14-17이며 제목은 "배우고 확신한 일에 거하라"이다. 나는 목회자들에게 권면 ??축사를 해 달라는 부탁을 김종국 선교사에게 예배 5분전에 받았다. 나는 목회자들과 신학생들이 예수그리스도의 군사로서 좋은 선생에게 잘 배워서 다른 사람들을 잘 가르치라고 했고 이번에 강사로 오신 서울중앙교회 김진영 목사를 소개했다. 개회예배를 마치고 우리는 한식당으로 이동했다. 그리고 거기서 돼지족발 보쌈요리와 쌈밥을 먹었다. 어쩌면 그렇게도 맛이 좋은지.. 그런데 우리를 대접하신 분이 알고 보니 임종만 목사님의 조카로서 이민온 지 25년이 넘은 분이다. 그 집사님의 아내는 자카르타 소망교회의 지휘자이기도 한 신실한 분들이다. 

우리는 식사를 마치고 공항으로 이동했다. 우리 부부와 정수생 선교위원장 부부는 대한항공으로 10시에 출발하고, 서울중앙교회 방해주 장로님과 안윤근 집사는 11시에 아시아나 항공으로 귀국한다. 서울중앙교회 김진영 목사님은 이번 집회의 주강사이기 때문에 남고 또 권사님 5명도 기도의 지원자로 남아서 수요일까지 사역하신다고 한다. 우리는 마지막 작별을 했다. 박종덕 선교사 부부와 윤상혁 선교사 부부와 마지막으로 작별을 했다. 공항으로 향하는 차안에서 아내는 하염없이 우는 것이었다. 마치 오지에 딸을 두고 떠나는 어머니의 심정인 것 같았다. 우리는 출국장에서 입국하던 날처럼 공항세를 15만 루피아(우리 돈으로 15천원) 내고 수속을 밟아서 밤 10시에 떠났다. 인천까지는 7시간 정도가 소요될 예정이라고 한다. 45 일간의 인도네시아 방문 일정을 지키신 하나님께 감사드린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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