소위 “사조이사회 사건”의 전말(1)
서두에서 먼저 밝혀야 할 것이 있다. 이 글은 본인이 일차 자료를 수집한 후 쓴 것이 아니고 주로 허순길 박사가 <고려신학대학원 50년사>에서 이미 밝힌 내용들을 토대로 한 것이다. 처음 미래 포럼 준비자들로부터 본인에게 이 주제에 대한 발제 청탁이 왔을 때 본인은 이 주제에 대해서는 리서치해 본 적이 없는 반면 허순길 박사, 아니면 이상규 교수가 먼저 연구 발표해 놓은 바가 있으니 그들에게 섭외해 보라고 권고했다. 그러나 준비자의 대답이, 허박사는 처음에 수락했다가 얼마 후 긴급한 가정사가 발생하여 호주에 가야 하기 때문에 발표가 불가능하다고 알려 왔고 또 이교수도 고사하는 바람에 본인 외에는 이제 남은 다른 대안이 없다는 것이었다. 포럼의 핵심 주제 논의가 무산될 위기임을 발견한 본인은 그렇다면 이 주제에 대해 새로운 리서치를 시작할 시간은 없는 상황이니 주로 허박사가 <고려신학대학원 50년사>를 통해 발표한 내용, 그리고 남영환 목사의 <한국 교회와 교단>에 있는 단편적 자료들을 토대로 독자들이 그것들을 보다 이해하기 쉽게 종합 정리하는 수준에서 발표해도 되겠느냐고 재차 문의했다. 이에 주최측이 그것도 좋다는 반응을 보임으로 결국 본인이 이 글을 발표하게 되었다.
1955년 칼빈학원 (칼빈대학)이 설립되었다. 그것은 고려신학교 예과 2년 과정이 4년 과정으로 확장되면서 신학교에서 독립하게 된 기관이었다. “환원” 직후인 1964년 칼빈 학원은 다시 고려신학교 예과 4년 과정으로 흡수되었다. 그 해 9월 총회에서 고려신학교가 총회 직영 신학교가 되었다. 한상동 목사가 설립한 때로부터 그 때까지 고려신학교는 총회 직영 신학교가 아니라 줄곧 사설 신학교로 남아 있었다. 승동측과의 “합동” 직전까지 경남노회 등의 노회들에서 고려신학교를 총회 직영으로 전환해 달라고 1958년, 59년, 60년 무려 세 차례에 걸쳐 총회에 헌의했고 총회가 교섭위원까지 선임하여 일을 진행하려 했으나 설립자 한상동 목사가 “총회 직영보다는 사립 운영을 선호”했기 때문에 그 뜻을 이룰 수 없었다.(2)
그러나 결국 승동측과의 “합동”이 3년만에 종지부를 찍고 고려파가 “환원”한 일년 후인 1964년 9월 총회에 다시 경기노회와 경남노회로부터 고려신학교 총회 직영에 대한 청원이 올라왔다. 동시에 당시 고려학원 이사장 황철도 목사로부터도 같은 취지의 건의가 들어왔다.(3) 이에 한상동 목사는 비로소 “신학교 재산 일체를 총회에 기부한다는 각서”를 제출했다.(4) 고려신학교가 설립 18년만에 교단 직영 신학교로 출범하게 되었던 것이다. 이듬해인 1965년 9월에는 총회유지재단을 설립함으로써 법적 보호의 테두리 속에서 총회가 신학교를 경영할 수 있게 되었다.(5)
총회 직영 신학교로 변경된 후 고려신학교가 4년 예과 과정의 대학령에 의한 대학 인가 취득을 추진하던 중 당시 총회유지재단 이사장 한상동 목사는 총회유지재단을 교육 재단으로 변경하는 일을 허락해 달라고 1966년 9월 총회에 청원했다. 총회는 그 문제를 이사회에 맡겼다. 그 해 총회에서 유지재단 이사진의 대폭적인 교체가 있었다. 한상동 목사가 이사장직에서 물러나고 송상석 목사가 그 자리를 승계했다. 그런데 송이사장은 어떤 이유에서였는지 유지재단을 학교 법인으로 변경하는 일에 소극적이었다.
그러자 교장 한상동 목사를 비롯한 고려신학교 당국은 송상석 이사장을 제쳐둔 채 대학 인가를 얻어 내기 위해 불법을 동원했다. 허위 이사회를 만들고(6) 이사회록을 날조한 후 대학 인가 청원서를 문교부 당국에 제출했던 것이다. 게다가, 학교 법인 인가를 취득하기 위해서는 형식적이나마 총회유지재단 명의로 되어 있는 교회 재산을 학교 법인으로 양도하는 법적 절차를 밟는 것이 필요했기 때문에 허위 이사회가 “해교회의 동의를 얻어” 그 작업을 필했다.(7) 허위 이사회를 만든 고려신학교 당국은 그 과정에서 다시 허위 이사회록을 작성한 후 송상석 이사장과 이사들의 인장을 몰래 사용했다. 고려신학교 당국은 이 일을 신속히 진행하기 위해 당시 학교 총무처장이었던 도군삼씨로 하여금 실무를 추진하게 했다.(8)
1967년 5월 1일 “학교법인 고려학원”이 대학 인가를 취득했다는 사실이 일간 신문에 보도되었다. 이사장인 자신이 알지 못하는 사이에 고려신학교가 대학 인가를 얻었다는 사실을 알게 된 송상석 이사장은 긴급 이사회를 소집하여 그 일의 경위를 조사했다. 이사회는 격론의 장이 되었다. 송목사는 또 이 문제에 관한 성명서를 전국의 교단 교회들에 발송했다.(9)
송상석 목사가 소집한 이사회에서는 의외로 송상석 목사가 코너에 몰리게 되었다. 그가 “학교 내부의 문제를 외부로 확대시키고 선동했다”는 것이었다.(10) 이사회는 송상석에게 이사장직 사퇴를 요구했고 송상석은 “한상동 목사가 가이사회 조직에 대한 책임을 지고 이사직을 사임하면 자신도 이사장직을 사임하겠다”고 응수했다. 이사회는 그 방안을 수락함으로써 문제를 처리했다. 1967년 7월 10일부터 11일까지 이틀간 모인 제18회 이사회에서 신학교 교장 한상동 목사를 비롯한 가짜 이사회원들은 자신들의 “잘못을 시인하는 공개 사과문”을 발표했다.(11) 새 이사장으로 윤봉기 목사가 선출되었고 정관을 학교 법인으로 수정하자는 결의가 통과되었다.(12)
교수들 음주 사건
가짜 이사회 조직 사건이 발생한 1967년 고려신학교 예과 과정인 대학부 교수들이 한 동료 교수의 유럽 여행을 앞둔 회식 자리에서 맥주를 한 컵씩 마신 일이 몇 달 후 학교 밖으로 알려지게 되었다. 이에 가짜 이사회 사건으로 인해 신학교에 대해 부정적인 감정을 가지고 있던 송상석 목사의 경남노회가 조사위원회를 구성하여 사건의 진상을 조사하기 시작했다. 교수들의 비행에 대한 조사와 징계는 일차적으로 학교의 감독 기구인 이사회의 소관 사항이다. 물론 목사직을 보유하고 있는 교수들에 대해서는 노회가 목사로서의 개인들의 비행 혐의를 조사할 수 있을 것이지만 그 경우에도 노회는 노회에 속한 교수 목사의 문제만을 다룰 수 있을 뿐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경남노회가 자기 노회에 속하지도 않은 교수들의 혐의까지 조사하겠다고 나선 것은 월권적 처사였다는 지적을 받을 수 있는 일이었다. 허순길은 경남노회의 그러한 과잉 반응이 “정치적 성격”을 띈 행동이었다고 평가한다.(13) 당시 교계 언론은 이 음주 사건으로 인해 송상석 목사를 이사장으로 하는 이사회와 한상동 목사를 교장으로 하는 교수회간의 분규가 격화되었다고 관측했다.(14)
경남노회 조사위원들이 위의 음주 자리에 동석했던 모 강사의 증언을 바탕으로 사건의 경위를 파악한 결과 이 사건의 책임자가 도군삼 처장이라는 결론을 내리고 노회에 그 사실을 보고했다.(15) 경남노회는 도군삼 처장의 해임을 이사회에 건의했는데(16) 앞서 언급한 바와 같이 도군삼은 가짜 이사회 조직의 실무 담당자로서 그 문제에 관한 한 한상동 교장으로부터 “백지 위임”을 받았던 자였다.(17) 1968년 3월 송상석 목사가 이사장으로 있던 이사회는 경남노회의 건의를 받아들여 도처장의 해임을 신학교 교장에게 지시했다. 교장이 이 문제를 교수회에 회부한 결과 해임을 해야 한다는 편과 하지 않아야 한다는 편으로 교수들의 의견이 양분되었다.(18) 교수들 뿐 아니라 학생들의 견해도 극단적으로 대립되었다. 강의를 거부하는 교수마저 나타나고 학생들도 덩달아 수강을 거부함으로 1968년 하기 방학이 한 주간 앞당겨질 정도로 교내외의 갈등이 심각했다.(19)
재점화
허위 이사회 사건이 공정하게 처리되지 못했다고 느꼈는지 송상석 목사는 일 년 전에 마무리되었던 그 문제를 다시 거론하기 시작했다. 1968년 5월 30일 제일신마산교회에서 회집한 경남노회 (노회장 송상석 목사)는 학교 법인 고려학원 인가 과정의 문제를 거론하고 6개항으로 된 보고서를 산하 노회에 발송할 것을 만장일치로 결의했다.(20) 첫항은 “문제의 사조 이사단”이 설립한 학교 법인에는 “불법과 허위가 내포되어 있다”는 사실을 지적했고 제2항은 재산에 관한 것으로, “우리 총회 유지재단 소속 재산 (동산, 부동산 및 유동 재산) 중 어느 하나도 문제의 학교 법인에 양여 대여하는 일을 절대 금한다”는 것이었다. 그러나 제5항에서 “총회가 결의한 신학대학 인가 추진은 적극 협조한다”고 하여 공인된 학력에 대한 애착을 보여 주었다.
제3항은 송상석 목사의 울분이 담긴 과격한 내용이었다. “이 사건 전말을 총회에 건의하는 동시에 경우에 따라 비극을 각오하고 전국 교회에 이 진상을 호소한다.” 아마도 여차하면 경남노회 중심의 새로운 교단 창설을 불사하겠다는 의미였던 것 같다. 후일 실제로 발생할 고려파 교단 분열을 공식적으로 언급한 첫 번째 공적 문서였다. 넷째는 한상동 목사를 비롯한 신학교측 인사들이 일체의 교회 치리회 직책에서 자진 사퇴할 요구하는 공격적인 내용이었다. “사조이사회 및 협조자는 인책 혹은 자숙하는 정신에서 교회 노회 총회 (각치리회) 공직에서 일체 자진 사퇴할 것을 권고한다.” 소위 “교회 정치”에서 손을 떼라는 것이었다. 그러면서 “단 목사직과 교수직은 차한에 부재한다”고 하여 그들의 생계와 기본 사역은 보장하겠다는 뜻을 전했다.(21)
현재까지도 그러하지만 당시 한상동 목사는 출옥성도요 “산 순교자”로 추앙받는 인물로서 고신 교단의 정신적 지주였고 상징적 존재였을 것이다. 그러한 독보적 위치를 점하고 있던 인물에 대해 송상석 목사가 이와 같이 노골적인 일종의 전면전을 감행했다는 것은 후대의 눈으로 볼 때 놀라운 일이다. 송상석 목사가 자신의 교단적 영향력과 힘에 대해 그만큼 자신감이 있었던 것인지 아니면 한상동 목사에 대한 송상석의 경외심이 현저히 하락했던 것인지 혹은 둘 다였는지 필자로서 판단하기 어렵다. 허순길은 단지 사태의 이러한 발전이 “그 저변에 송목사가 배경이 된 경남노회측과 한상동 목사를 중심으로 하는 신학교측 사이에 첨예한 대립과 심한 불신감이 자리 잡고 있었음을 보여 주었다”고 지적한다. 두 사람 사이에 극심한 갈등이 있었음은 확실하다는 것이었다.(22)
고려신학교측의 반격
송상석 목사가 이사장으로 있는 이사회가 자신들을 공격하고 있다고 느낀 고려신학교측이 대대적인 반격에 돌입했다. 1968년 12월 19일 고려신학교 교수회는 학교 법인 고려학원 이사회에 이사장 퇴임 청원서를 제출했다. 핵심 사유는 학교 법인의 정관 변경에 관한 것이었다. 즉 “1967년 총회에서 채택된 (미확인) 고려학원 정관의 변경 내용을 보면, 설립 목적 2조에 고려신학대학을 유지 관리케 한다고 되어 있는데 [이사장이] 이를 고려신학교로 변경시킴으로써” 교단의 학교 법인 설립 목적인 고등 교육을 불가능하게 만들었고 “시대가 요구하는 사역자 양성과 신학 교육을 할 수 없게 만들었다”는 것이었다.(23) 이사장 불신임의 둘째 사유는 송상석 목사가 자기 교회의 “소송 문제로 학원 재단 사무에 전념할 수 없다”는 것이었고 셋째는 이사장이 학교 운영에 비협조적이라는 것이었다. 구체적으로 “정관 제12조에 의하면, 학교장은 당연직 이사임에도 불구하고 이사회가 임의로 학교장을 직무 이사로 격하시켜 학교 제반 운영을 이사회에 반영시키는데 지장을 초래”했다는 것 등이었다.(24)
다음날인 12월 20일 신학교 졸업식장에 “전국 교회에 호소합니다: 우리는 왜 송상석 목사를 불신임해야 하는가?”라는 고신 교수단 명의의 유인물이 살포되었다. 고려신학교 대학부 교수들은 송목사가 “매년 3-10관의 포도주를 마실 뿐 아니라 금년엔 독주인 매실주를 한 되나 마셨다”는 사실들을 고발했다.(25) 그 유인물에는 또 전날 대학부 교수들이 이사회에 요청했던 이사장 퇴임 청원서의 내용이 수록되어 있었다.
고려신학교 대학부 학우회도 들썩거렸다. 1969년 1월 7일 대학부 학우회는 임시총회를 열고 이사장 앞으로 “이사장 불신임 결의문”을 전달했다. 내용은 교수들의 이사장 퇴임 청원서에 나타난 핵심과 동일한 것으로 이사장이 총회 결의를 거슬러 새 정관에서 “설립 목적인 고등 교육”이라는 문구를 “삭제함으로 교육법에 의한 교육이 전혀 불가능”하게 되었다는 것이었다.(26) 학부생들의 학우회와는 달리 신학부(본과와 별과) 학우회는 좀 더 신중하고 온건한 태도로 임했다. 1969년 1월 16일 고려신학교 신학부 학우회 이름으로 전국 교회 앞에 발표된 “호소문”에 의하면 이들은 이틀 전인 14일 임시 총회를 소집하여 대표를 선출한 후 이사장과 학교장을 방문하여 사정을 파악한 후 두 가지를 호소했다. 첫째, “교수진과 이사진의 대립”으로 인해 발생한 학교의 어려운 문제들 때문에 학교 수업에 차질이 빚어지고 있으니 기도와 재정 지원을 요청한다는 것, 둘째, “학교 정관 변경”에 관련된 문제로 “교단 내에 물의가 일어나고 있으니 관계자들은 유권적 해명으로 오해가 없게 하여 주시기를” 바란다는 것이었다.(27)
송목사의 해명과 재반격
학교로부터의 공격에 직면한 송상석 목사가 해명과 재반격에 나섰다. 1969년 1월 13일 신마산교회당에서 소집된 경남노회 제89회 4차 임시노회는 전년도 12월 20일 고려신학교 졸업식장에서 살포된 “우리는 왜 송상석 목사를 불신임해야 하는가?”라는 유인물에 대한 “배후 규명”과 함께 학교법인 고려학원 정관이 부당하게 변경되었다는 의혹의 진상을 규명하기 위해 7명으로 된 “특별조사징계위원회”를 구성하고 정회했다.(28) 10일 후인 1월 23일에 열린 경남 임시노회 속회에서 조사 결과가 보고되고 수락되었다. 보고에 의하면 “고등 교육”이란 문구의 삭제는 송상석 이사장에 의해 이루어진 일이 아니고 윤봉기 목사가 정관 변경 초안 위원장으로 있던 당시 고려신학교 관계자들인 홍반식, 오병세 교수의 임석 하에 행해졌었다. 그리고 1967년 9월의 제17회 교단 총회가 변경된 정관의 문구를 “축조 심의” 한 끝에 “원안대로 통과”했다는 것이었다.(29)
이에 자신감을 얻은 송상석 목사의 경남노회는 1969년 1월 23일 “결의 수행 전권위원” 명의로 전국 교회에 보내는 “결의 선언문”을 발표했다.(30) 선언문은 송상석 이사장에 대한 교수회의 공격이 사설 학교 설립에 대한 한상동 목사의 좌절된 꿈 때문이라 주장했다. “금번 교수회의 저질러 놓은 불상사는 지난날 사조 이사회를 만들어 사설 학교 설립을 꿈꾸다가 송목사의 주력으로 이것이 이루어지지 않고 법적으로 명실공이 총회 직할 신학교로 완전히 변경된 일”로 인한 “원한에 치우친 폭탄 사고”라는 것이었다.(31) 선언문은 이 “불상사”에 대해 “요나같은 인물의 반성을 촉구”했다.(32)
선언문은 범과자의 권징을 요구했다. 경남노회에 소속된 자는 당연히 노회에서 처리하겠지만 “타노회에 소속된 자”에 대해서는 해당 노회에 “이첩 권징을 의뢰하되, 만일에 불응, 불수리하거나, 만족한 처사로 인정되지 않을 시는 총회에 직소(直訴)키로 한다”는 강경한 입장이 천명되었다. 나아가 “상식 이하의 과오”를 범하고서도 반성할 줄 모르는 “무책임한 신학 교육자들을 배격”한다고 선포하면서 사건의 원인이 “발본색원되지 않을 때에는 비장한 각오로 임할 것을 선서”했다.(33) 여기서 비장한 각오란 아마도 교단 분열 등의 극단적 조처에 대한 위협이었을 것이다.
이에 대해 “고려신학교 대학부 학우회 일동”은 더 강하게 반발하는 내용의 성명서를 전국 교회에 발송했다. 자신들이 파악한 당시의 상황은 “합법을 가장한 몇몇 불순한 인사들이 교단과 학교를 해치고” 있다는 것이었다. 대학부 학우들이 요구한 것은 첫째, “교육법에 의한 대학부 동등 자격의 교육을 할 수 있는 정관,” 둘째, 제89회 경남 “임시 노회장 내외에서 교수와 학생들이 구타당한 사실에 대해 경남노회가 전국 교회 앞에 사과”하는 것이었다. 결론적으로 학부생들은 “이사장 송상석 목사의 퇴임 결의가 관철될 때까지” “교수단과 모든 행위를 같이 한다”고 다짐했다.(34)
그러나 적어도 정관 변경을 둘러싼 진상이 의문의 여지없이 명백하게 규명되었다는 사실을 부인할 수 있는 이는 아무도 없었다. 그리하여 경남임시 노회에 이어 속회가 모이게 되었을 때 학부 교수들은 송상석 이사장에 대한 사실무근의 음해성 유인물을 경솔하게 살포함으로 그의 명예를 손상한 일에 대하여 공적 사과를 하지 않을 수 없게 되었다. 1969년 1월 22일 고려신학교 대학부 교수 일동은 전국 교회에 다음과 같은 사과문을 발표했다. “. . . 지난번 본교 제23회 졸업식에 즈음하여 저희 대학부 교수 일동의 이름으로 이사장 송상석 목사의 신상의 사실을 공개한 일에 대하여는 예의에 벗어나는 줄 알고 그 잘못을 전국 교회 앞에 충심으로 사과드림과 동시에, 신학부 교수님들께 누를 끼치게 된 점도 죄송스럽게 생각하는 바입니다.”(35) 같은 날 교장 홍반식 교수를 위시한 신학부 교수들도 “도의적 책임”을 느낀다는 이유로 전국 교회 앞에 함께 사과했다.(36)
고려신학교 교수들의 총 사퇴 사건
그러나 이러한 사과문 정도로 송상석 이사장이 만족하고 사태를 마무리하려 하는 대신 교수들에 대한 모종의 징벌적 조처를 취하려 했던 것 같다. 허순길에 의하면, “징계의 위협”을 느낀 교수들이 다시 이사장에 대한 전면 공세를 감행했다. 그들은 1969년 2월 14일 송상석 이사장의 이사장직 퇴임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문교부 장관 앞으로 발송하는 한편(37) 17일에는 부산의 일간 신문인 국제신보에 “이사장 퇴임을 요구하였으나 관철되지 않으므로” 교수직을 모두 사퇴한다는 “총사퇴 결의문”을 발표했다.(38) 교수들의 총사퇴로 신학년도 시작 직전의 학교 학사가 완전 마비되었다. 허순길은 “위기의 근본 원인”이 한상동 목사와 송상석 목사간의 “대립”이었다고 진단한다.(39)
교수 총사퇴 사태에 직면하여 1969년 3월 12일에 소집된 이사회는 사표를 선별적으로 수리했다. 홍반식 교수와 이근삼 교수의 사퇴는 반려하기로 한 반면 대학부 교수들 5명 전부의 사퇴는 받기로 했다. 홍반식 교수의 교장 사임도 수락했다. 교회 분열의 위험이 느껴지는 절체절명의 상황에서 양측의 중재자들은 이사장 송상석 목사가 한상동 목사를 교장으로 영입할 때에 문제 해결이 가능하다고 보았다. 그리하여 이사회는 고려신학교 후임 교장으로 한상동 목사를 추대하기로 결의하고 그 일을 위해 4명의 교섭위원을 선정했다.(40) 교섭위원들이 한상동 목사를 교장으로 추대하기 위한 교섭을 시도했지만 한목사는 고사했다. 1969년 3월 26일 고려신학교 동창회가 긴급 소집되고 동창회 대표들이 한상동 목사에게 교장직 수락을 강권했다.(41) 4월 8일 한상동 목사가 고려신학교 교장으로 취임했다. 신학교는 평상시보다 한 달이나 늦게 개학한 셈이었고 고려신학교는 다시 “존폐의 위기”를 넘겼다.(42)
지금까지 기술한 일련의 불미스러운 사태들의 진행을 요약해 보자. 송상석 목사가 고려신학교의 대학 인가 취득에 소극적인 모습을 보이자 한상동 목사를 중심한 고려신학교측은 불법 내지 편법을 동원해서라도 대학 인가를 얻고자 하여 허위 이사회를 조직함으로 일을 추진했다. 그 과정에서 이사장인 자신이 허수아비에 불과했었다는 것을 발견한 송이사장은 공적 응징을 시도했으나 오히려 자신이 이사장직을 잃고 마는 것으로 문제가 종결되었다. 부당하게 당했다는 느낌을 가지고 있던 송목사는 일 년 후 허위 이사회 조직 사건을 재론하면서 사건 관련자들이 일체의 교회 공직에서 물러날 것을 요구한다. 반격에 나선 고려신학교 대학부 교수들은 이사장이 정관을 마음대로 변경했다는 사유로 이사장 사퇴를 요구한다. 자신이 절대적 영향력을 행사하던 경남노회를 통해 진상을 조사한 송목사는 교수들의 공격이 사실무근의 것임을 입증하고서 결의문을 통해 한상동 목사를 그 사건의 주모자로 지목한다. 그리고 그를 비롯한 허위 이사회 관련자들의 교회적 권징을 요구하는 한편 신학 교육자들로서 그들의 자격을 부정하는 선언을 발표한다.
대학부 교수 일동은 송목사에게 사과하는 글을 교회 앞에 발표했으나 송목사는 그것으로 만족하지 못하고 교수들의 경솔했던 행위에 대한 징계 의사를 표출한다. 신분에 위협을 느낀 교수들은 다시 공세로 전환하여 이사장직 퇴임을 요구하는 탄원서를 문교부 장관 앞으로 발송하는 한편 교수직 “총사퇴 결의문”을 발표한다. 신학년도 시작 직전의 신학교 학사가 완전 마비되자 중재자들이 나서 해결책을 제시하는데 그것은 한상동 목사를 신학교 교장으로 세우자는 것이었고 양측이 그것을 수락함으로 일촉즉발의 위기는 당분간 해소되었다.
나가면서
고려신학대학 인가와 관련된 역사를 살필 때 고신의 구성원으로 가장 충격적이고 당혹스러운 점은 고려신학대학이 최초의 출범에 결정적 오점이 있었다는 사실이다. 과연 거룩한 하나님의 학교가 그러한 방식으로 탄생한 것에 대해 후대의 고신 구성원들이 아무런 문제 의식을 갖지 않거나 아무런 조처를 취하지 않아도 될 것인가? 논의가 필요한 부분이 아닐 수 없다.
허위 이사회 사건 전체에서 가장 이해하기 힘든 부분은 어떻게 출옥성도가 실정법상 불법에 해당하는 방식으로 목적을 달성하려 할 수 있었는가 하는 점이다. 본인의 진술 자료가 없는 가운데서 우리는 몇 가지 추론만 할 수 있을 것이다. 첫째, 한목사는 고려신학교에 대해 강한 주인 의식을 가지고 있었을 수 있다. 자신이 설립했고 십 수년간 정성을 쏟아 키운 학교이기 때문에 비록 법적으로는 송상석 목사가 이사장으로 있지만 학교의 사실상의 실권자는 자신이라 여겼을 수 있다는 것이다. “환원” 직전 한상동 목사가 고려신학교를 일방적으로 “합동” 이전 상태로 복구했을 때 송상석 목사는 한상동 목사가 고려신학교를 자신의 개인 소유로 인식하고 있다고 주장했다. 한상동의 고신 복구라는 “무소불위”의 행위는 “고려신학교 시대에 행세하던 그 사고 방식” 혹은 “그 본색”을 “그대로 재발동”한 결과로서 “ ‘시집갈 때 가져갔던 신학교를 시집살이 못 할 바에야 들고 나온다’는 발상”이 한목사에게는 “얼마든지 있을 수 있는 일”이라는 것이었다.(43) 송상석은 한상동이 “합동” 전에도 신학교에 대해 전횡을 일삼곤 했다고 주장했다. “세간에 ‘고려신학교는 한목사 형제 분들의 주머니에 넣었다가 내었다가 하는 학교’라는 말이 있다”는 것이었다.(44) 그 때문에 송목사는 한상동 목사가 허위 이사회를 조직하여 대학 인가 취득을 진행했을 때 그것이 한상동 목사에 의한 학교 사유화 작업이라 비난했다. “한상동 목사를 중심한 당시 고려신학교 교직원들이 교단 소속 기관(고려신학교, 복음병원, 복음 간호학원)의 운영권 및 총회 소유 재산을 사유화하기 위하여” 행한 불순한 행동이라는 것이었다.(46)
한상동 목사가 목적 달성을 위해 국가법을 범하는 일을 불사했던 이유로 추측 가능한 또 한 가지는, 하나님의 일이라는 선한 목적을 위해서라면 법절차를 무시해도 상관없다는 사고방식이다. 그러나 기독교 윤리는, 허순길 교수가 지적했듯이, “목적이 선하면 수단도 선해야”한다는 것이다. 여기서 우리는 인간의 한계를 다시 발견한다. 십계명의 어떤 부분을 목숨 걸고 지킨 성도라 해서 나머지 하나님의 계명들도 잘 지킨다는 보장은 없다는 것이다. 그러나 우리는 순교 신앙을 가졌던 성도는 다른 모든 면에서도 그만큼 훌륭하리라 생각하는 경향이 있다. 현실은 꼭 그렇지 않다. 역시 허순길 교수가 그 점을 지적하고 있다. “제 1,2 계명만 중요하지 않다. ‘거짓 증거하지 말라’는 제9계명도 동일하게 중요하다.” 허위 이사회 조직 사건은 제9계명을 위반한 죄라는 것이다.(47) 개혁주의 전통은 한낱 인간에 불과한 교황의 무오설을 주장하는 로마교회의 전통에 도전함으로 출발되었다. 프로테스탄트 교회에 속한 신자들이 오늘날 종종 자신들의 영웅에 대한 객관적인 평가와 냉정한 분석을 불경시하는 것은 로마교회의 오류를 답습하는 일일 것이다.
고려파는 독자적 교단으로 출범할 때 그 목적이 한국 교회 재건과 개혁을 위한 것이라 대내외에 천명해 왔었다. 그런데 “환원” 후 전개되는 교단의 6, 70년대 모습은 한국 장로교 주류의 개혁을 위한 의미있는 역할이 아니라 자체 투쟁과 내분이었다. 허순길의 지적처럼, 허위 이사회 조직이 발단이 된 한상동과 송상석 두 지도자들 사이의 불신은 향후 “2년간 학교 안팎에 끊임없는 분열과 상처”를 만들었고 그 결과 고려신학교는 “존폐 위기”에까지 몰렸다.(48) 허순길은 또 60년대의 합동, 환원을 거치면서 한상동 목사와 송목사 사이에 “긴장 관계”가 조성되었는데 그것은 “교권 장악”을 위한 한상동 목사와 송상석 목사 양자간의 “대결”로 볼 수 있다고 평가한다. 나아가 “1960년대 하반기로부터 70년대 중반에 이르기까지” 거의 10년간 “교단 내에 계속 일어난 사건들과 정치적인 대립상”은 과거 신사참배 거부를 위해 목숨을 걸던 ‘고신성(高神性)’의 변화를 보여주는 일들로서(49) “고신의 원색이 흐려졌다는 의혹을 일으키는 일들”이었다는 것이다.(50)
끝으로 필자가 제안하는 바는, 미래 포럼을 통해 고신 역사를 회고하고 성찰하는 작업을 필한 후 그 토의 과정에서 발견된 교단의 중요한 과오들 몇 가지에 대해 교단 차원의 공적 참회와 자복의 기회를 촉구하고 가졌으면 한다는 것이다. 그것이 성경적인 반응이요 교단에 대한 하나님의 축복을 가져올 것이라 확신하기 때문이다.
각주
(1) 이 사건에 대한 진술은, 허순길, 고려신학대학원 50년사 (고려신학대학원 출판부, 1996), 179-84; 허순길, 한국장로교회사,(대한예수교 장로회 고신 역사 편찬위원회, 2002), 477-81; 남영환, 한국교회와 교단 (서울: 소망사, 1988)에 주로 의존한다.
(2)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록 (제1회-10회), 170-71, 222, 265, 267, 281. 허순길, 고려신학대학원 50년사, 171-74. 남영환의 진술에 의하면, 한상동 목사가 “늘 하는 말”은 “총회가 [신학교를] 직영할 때, 이사 선출 문제가 언제나 정치적인 영향을 받아, 실제 신학교를 돕는 사람보다도 정치적 수작을 부리는 사람이 이사가 되거나, 총회가 부당한 간섭을 하게 됨으로, 경영은 사립으로 하되, 총회의 감독을 받음. . .으로 운영의 묘를 살릴 수 있고, 또 이사를 이사회가 선출함으로써 신학교 운영에 직접 책임을 질 수 있는 사람을 선출할 수” 있다는 것이었다. 남영환, 한국교회와 교단 (서울: 소망사, 1988), 503-4.
(3) 대한예수교장로회 총회록 (제11회-20회), 55.
(4) 남영환, 한국교회와 교단 503. 허순길, 고려신학대학원 50년사, 176.
(5) 남영환, 한국교회와 교단 503.
(6) 가짜 이사회는 이사장 한상동 목사, 이사 홍반식 교수, 도군삼 학교 총무, 주경효, 김진경, 감사 오병세 교수, 이근삼 교수 등으로 구성되었다.
(7) he Christian Press 제323호, 남영환『한국교회와 교단』, 515에서 재인용.
(8) 허순길, 고려신학대학원 50년사, 182.
(9) 허순길은 1969년 1월 23일 경남노회 전권위원들이 전국에 보낸 결의서 내용이 송상석 목사에게서 나온 것으로 추정한다. 허순길, 고려신학대학원 50년사, 182-83.
(10) 허순길, 고려신학대학원 50년사, 183.
(11) The Christian Press 제328호, 남영환『한국교회와 교단』, 517에서 재인용.
(12) 이사회 제18회 회의록 참조, 송상석, 법정 소송과 종교재판. 88. 이사회가 학교 법인 수속을 위해 선임한 5명의 이사는 이사장 윤봉기, 이사 송상석, 박손혁, 남영환, 김은도였고, 감사는 현호택, 김서곤이었다. 허순길, 고려신학대학원 50년사, 183.
(13) 허순길, 고려신학대학원 50년사, 185.
(14) The Christian Press 제403호. 『한국교회와 교단』, 519에서 재인용.
(15) 어떤 의미에서 음주 사건의 책임자가 도군삼 처장이라 판단했는지 현존하는 자료만으로는 판단하기 어렵다.
(16) The Christian Times 제157호, 남영환, 『한국교회와 교단』, 518에서 재인용.
(17) 남영환, 『한국교회와 교단』, 506.
(18) The Christian Times 제157호, 남영환, 『한국교회와 교단』, 518에서 재인용. 일반적으로 학교 교직원 인사에 관한 이사회의 지시는 학교 법인 내에서 유권적이고 구속력을 가진다. 그런 관점에서 볼 때 이해가 되지 않는 것은, 당시 이사회의 지휘 감독 하에 있던 고려신학교 교수회가 이사회 결정을 그대로 따르는 대신 그것의 수용 여부를 두고 왈가왈부 토론했다는 사실이다.
(19) 허순길, 고려신학대학원 50년사, 186; The Christian Times 제157호, 남영환, 『한국교회와 교단』, 518에서 재인용.
(20) The Christian Press 제323호, 남영환『한국교회와 교단』, 516에서 재인용.
(21) The Christian Press 제323호, 남영환『한국교회와 교단』, 516-17에서 재인용.
(22) 허순길, 고려신학대학원 50년사, 186.
(23) 남영환, 521.
(24) 남영환, 521.22
(25) 1969년 1월 25일자 크리스찬 신문, 허순길, 고려신학대학원 50년사, 189에서 재인용
(26) 송상석, 『법적 소송과 종교재판』, 257. 고신대학부 학우회의 결의문
(27) 남영환, 527; 송상석, 『법적 소송과 재판』, 254-257. 고신대학부 학우회의 결의문
(28) The Christian Press 1969년 1월 25일, 남영환 519에서 재인용. 허순길 188.
(29) The Christian Press 제 404호; 남영환 519-20에서 재인용. 허순길, 188.
(30) 위원들의 명단은 권성문, 김인규, 이기진, 정재영, 손명복, 이금도, 심상동 목사 및 김해룡, 조인태 장로 9인이었다. ,
(31) 남영환, 524.
(32) 남영환, 524. 요나란 물론 한상동 목사를 지칭한 말이었을 것이다.
(33) 남영환, 525; 허순길, 188.
(34) 남영환, 525-26.
(35) 송상석, 256.
(36) 송상석, 256.
(37) 송상석, Op.cit., pp. 254, 255.
(38) 국제신보 제 7362호, 남영환, 526. 사퇴에 가담한 서명자는 교장 홍반식, 이근삼, 김진경, 김성린, 김영재, 홍치모, 김만용이었다. 사퇴를 하지 않은 교수는 오병세 한 사람 뿐이었다. 허순길, 고려신학대학원 50년사, 190.
(39) 허순길, 50년사, 190.
(40) 4명의 교섭위원은 윤봉기, 전성도 목사, 지득용, 양진환 장로였다. 허순길, 50년사, 191. 당시 이사장 송상석 목사는 사퇴한 홍반식 교장 대신 한부선 선교사를 교장으로 영입할 계획을 가지고 있었는데 당시 한부선 선교사는 고려측의 환원에 정당한 이유가 없다고 보았기 때문에 “환원”하지 않고 승동측에 잔류하고 있었다. 남영환, 527; 허순길, 50년사, 191.
(41) 남영환, 527-28; 허순길, 50년사, 191.
(42) 허순길, 50년사, 191.
(43) 송상석, 법정 소송과 종교재판, 74.
(44) 송상석, 법정 소송과 종교재판, 74.
(45) 송상석, 법정 소송과 종교재판, 78.
(46) 허순길, 고려신학대학원 50년사, 183.
(47) 허순길, 고려신학대학원 50년사, 184.
(48) 허순길, 한국장로교회사, 479.
(49) 이상규, “고신대학 40년 (1946-1986) 약사,” 논문집, 제14집, 고신대학, 1986, p. 14.
(50) 허순길, 고려신학대학원 50년사, 18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