역사 

▲ 이성구 박사 시온성교회담임 전고려신학대학원 교수

우리 고신교단은 8천교회의 장로교 통합, 만이천교회의 합동 측 교단에 비하면 1,800여 개교회로 이루어진 비교적 작은 교단이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그 어느 대형 교단 못지않게 부산에 종합 대학 캠퍼스, 대학병원, 대전에 선교 센터 건물, 천안에 신학대학원 캠퍼스, 서울에 교단본부 건물 등 필요한 하드웨어를 모두 갖추고 있다. 이 중에서도 대학교와 신학대학원, 의과대학과 병원의 3자는 밀접한 관계를 갖고 발전해 왔다. 그러나 세월이 흐르면서 세 기관이 각기 변화를 겪게 되었고 고려신학교(현재의 신학대학원)로부터 시작된 교단이 규모가 커지게 되면서 이전과는 다른 역학관계가 보이게 되었다. 

고신교회는 본래 아무 것도 없이 시작한 교단이다. 고려파의 설립자라고 할 수 있는 한상동 목사는 장로교 총회에서 밀려나면서 초량교회 담임목사직을 내려놓고 90%의 성도들의 지지를 받으면서도 초량교회 예배당을 교권주의자들에게 고스란히 내어주고 빈손으로 개척하여 삼일교회를 세웠다. 건물이 아니라 신앙의 본질에 관심을 가지고 출발한 교회임을 여실히 보여주는 일이었다. 제일영도교회처럼 고신교회에 속한 지 수십 년이 지나 법적 소유권을 찾아온 경우도 있지만 고신 소속 많은 교회들이 1950년 이후에 세워졌다는 것은 모든 것을 내어놓고 나온 빈손들의 행렬이 이어졌음을 말해준다. 

고려파 교회의 출발 신호가 된 고려신학교 역시 설립 당시부터 가진 것이라고는 아무 것도 없었다. 1946년 호주 선교사들이 세운 일신학교의 교실 한 칸을 빌려 시작한 고려신학교는 1947년부터 만 9년간 광복동 17번지, 일제당시 일본 척식은행 사원 기숙사 건물에서 공부를 하였고, 1954년에 이르러 송도에 13천 평의 땅을 확보하였다. 그 중 신학교를 위한 교지는 8천 평이었고 나머지는 병원용으로 구입한 것이었다. 현재 이 부지 전체를 고신대 의대와 복음병원이 사용하고 있다. 이 땅을 구입하고 신학교를 위한 건물을 짓는 데는 현재 독일에서 한인교회를 섬기는 고신 35회 졸업생 박의석 목사의 부친 박봉화 장로를 비롯하여 주태화 주영문 장로와 이성태 김선애 집사 등 여러 사람의 헌신이 있었다고 역사는 기록하고 있다. 이러한 고려신학교의 물리적 역사에 관해서는 허순길 박사가 <고려신학대학원 50년사>에서 비교적 상세하게 기록으로 남겨놓고 있다. 

고려신학교는 19466월 진해에서 열린 하기신학강좌로부터 출발한다. 그 강좌에 참여한 학생들 중 여러 사람이 박윤선 목사가 교장서리가 되어 그해 920일 문을 연 고려신학교에 입학하였다. 개교할 당시 학제는 본과 3, 예과 2, 별과 3, 여교역자 양성과 3년으로 이루어졌다. 이러한 학제는 평양의 장로회 신학교의 편제를 그대로 따른 것이었다고 한다. 그러니까 신학교를 시작하면서 이미 2년 과정이기는 하지만 요즘의 대학부 과정을 설치한 셈이다. 신학교 수학을 위한 인문학적 준비과정이 필요하다는 것은 20세기 초에 평양에서 최초의 신학교육을 시작할 때부터 인식하고 있었음을 알 수 있다. 

신학예비과정에서는 어학 철학 중심의 인문학 교육을 실시하였는데, 신학교 설립 후 얼마 지나지 않아 2년간의 교육으로는 부족함을 절감하여 4년 대학과정으로 개편을 고려하게 되었다. 그러니까 개혁주의에 입각한 대학설립의 꿈은 고려신학교를 시작하면서부터 배태되어 있었다고 할 수 있다. 신학교 설립이 한상동 목사에 의하여 주도 되었다면 대학의 설립은 한명동 목사와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었다. 고려신학교 교수회가 대학과정의 설립 문제를 아예 한명동 목사에게 위임 하였던 것이다. 그 결과 19559월 부산 감천 해변 가까이에 있던 영국부대가 사용한 건물을 인수하여 칼빈학원이라는 이름으로 대학과정을 이수할 학교를 개교하였다. 따라서 그동안 신학교육의 예비과정으로 되어 있던 2년 예과 과정을 4년제 대학과정으로 독립하게 되었다. 물론 교육부의 인가 같은 것은 없는 민간 사설학원이었다. 그러나 신학을 공부하기 원하는 분들은 학위여부와 아무 상관없이 고려신학교에서 신학을 공부하기 위하여 기꺼이 칼빈학원에 입학하였다. 

그런데 이 칼빈학원을 세운 목적은 단순히 신학연구를 위한 준비 교육만이 목표가 아니었다. 이 학원을 세우면서 개혁주의를 기반으로 한 일반 기독교 고등교육을 실시하려했다는 것은 학과의 증설에서 나타난다. 정식으로 칼빈학원을 세우고 겨우 한 학기를 보낸 다음인 19564월 이 학원 교수회에서는 기존의 신학과 이외에 영문학과철학과를 설치하기로 결정하였다. 그 때부터 이런 일련의 과정을 통하여 허박사의 주장대로 기독교종합대학까지 세우려 했는지에 관하여서는 정확한 역사적 증거를 본 적이 없지만, 신학과 와는 별개의 학과들을 세우게 되면 이왕에 고려신학교와 분리된 칼빈학원이 대학으로 발전하게 될 것은 자명한 일이라고 할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칼빈학원은 이후 10년간 운영되다가 19642.28일부로 폐교되고 고려신학교 대학부로 흡수되는 일이 벌어졌다. 왜 이런 축소현상이 일어났는지에 대한 정확한 지식이 필자에게는 없다. 그러나 대학과정을 없애지 않고 신학교 내에 두기로 한 것을 보면, 별도의 학교를 운영하는 것이 여러 가지 이유로 쉽지 않았음을 짐작해 볼 뿐이다. 

 

변화  

이런 과정을 거친 고려신학교와 대학부는 19649월 총회에서 직영신학교로 운영하기로 가결하면서 변화의 과정을 밟는다. 설립 후 18년간 한상동 목사의 사설 신학교였던 고려신학교가 총회직영이 되자 1967학교법인 고려학원을 인가를 받게 되고, 19682대학에 준한 각종학교로 인가를 받는다. 그리고 이듬해 7월에는 군종장교 후보생 지정학교가 되고, 9월에는 다시 대학동등학력 인정학교가 되었고, 드디어 19701230일에 고려신학대학 설립인가를 받았다. 물론 이것은 합동측이 우리보다 조금씩 앞서 학교법인 인가와 대학인가를 받는 것에서 영향을 받은 것으로 보이기도 한다. 

그런데 고려신학교가 대학으로 인가를 받게 되면서 신학교의 그 위상에 변화가 일어나기 시작하였다. 고려신학교 대학부로 불리던 과정이 고려신학대학에서는 자연스럽게 주된 과정이 되었고, 기독교교육학과(76), 종교음악과(78)가 생겨나면서 신학과는 여러 과정 중의 하나로 인식되기 시작하였다. 더욱이 고려신학교의 설립 이유에 속하던 목회자 양성을 위한 신학교육과정고려신학대학의 본 과정이 아닌 연구과로 전락(!)하였다. 명칭만으로는 고려신학대학을 목사양성기관으로 보기가 어려워졌다. 1980년도에 대학명칭이 교단총회의 결정과는 달리 고신대학으로 바뀌고, 그해 의학부가 생겨나고, 80년대 중반이후 보건학과(85) 생물학과 식품영양학과(86) 아동학과 화학과 수학과 가정관리학과(87) 간호학과(88) 등이 설치되면서 고신대학은 일반대학으로 재편되었다. 1993년 고신대학이 고신대학교로 명칭변경을 하면서는 명실공히 종합대학교로서의 위상 강화를 위해 선교언어, 영어영문, 광고홍보, 산업디자인, 전산, 미술, 교육대학원 등을 신설하였고, 2002년 중국학, 2006년 인터넷 비즈니스학, 심지어 보건환경학부에 피부미용 전공을 신설하는 등 고려신학교의 전통과는 상관없는 일반대학으로 자리매김을 하게 되었다. 학습교인이상으로 입학을 제한하던 제도를 포기한 지금, 고신대학교는 개혁주의 신학원리에 입각한 기독교 고등교육을 지향하는 크리스챤 스쿨이 아니라 불신자를 받아 전도해 보려고 애쓰지만 만만치 않은 미션 스쿨이 되었다. 

이렇게 고려신학교가 대학으로 바뀌자 자연히 새로운 목회자 양성을 위한 전문 신학교육 기관을 필요로 하게 되었다. 1970년 고려신학교가 고려신학대학으로 명칭과 조직이 바뀌면서 연구과로 이름을 바꾸어 달아야 했던 목회자 후보생 교육기관은 10년 후인 1980년도에 가서야 문교부로부터 신학대학원으로 인가를 받아 교육부 산하의 합법적인 교육기관으로 다시 태어날 수 있었다. 역사적으로 고신교회 안에서 독립적 신학 교육기관이 사라진 적은 없었지만 1970년 이후부터 목회자 후보생 교육이 교회 내에서 차지하는 비중이 점점 달라져 왔던 것은 부인할 수가 없다.

 

갈등 

교단 내에 대학교육 기관과 목회자 양성 교육기관을 동시에 갖게 되고, 1961년 대한기독교 경남구제회에서 비영리 법인으로 설립한 복음병원을 1965년 고신총회 유지재단에 가입시키고 그 복음병원을 기반으로 마침내 1980년 고신대학 내에 의과부를 설치하게 되면서 고신교회는 끊임없는 분쟁에 휩싸이게 되었다.

앞서 살펴본 대로 대학설립 문제 때문에 사조이사회 사건이 터졌고, 그 후 의과대학을 설립 때문에 교단의 결정을 무시하고 대학의 명칭을 무단 변경하는 일이 발생하였으며, 의과대학이 들어서자 대규모 부정입학 사건이 터져 당시 목사 이사장을 비롯한 여러 사람이 구속되는 불상사를 겪었으며, 정년이 된 병원장의 임기를 연장하고, 신학대학원 운동장을 병원용 주차장으로 만들려하다가 이사회에 내분이 발생하여 엄청난 파동을 겪었으며, 개인이 임의로 인수한 김해복음병원을 교단이 소유하게 되면서 발생하기 시작한 엄청난 규모의 부외부채로 인한 학교법인의 부도사태가 일어나는 등 교단은 대학과 병원으로 인하여 걷잡을 수 없는 소요에 휘말리게 되었다. 

복음병원의 부채로 인한 부도사태는 교단이 직영하는 고려학원 이사회의 권한이 정지되고 정부로부터 임시이사가 파송되는 수난을 겪게 하였다. 2003년 부도를 만난 교단은 불신 이사장은 대학 신대원 병원의 보직교수들을 모은 자리에서 지난 3개월 동안 회계법인을 동원하여 조사한 결과 이 교단은 불법 탈법 편법 편의주의 등 모든 종류의 불의가 행해져왔다. 병원의 부채 1,050억 가운데 700억은 그 이유를 찾을 수 있지만 350억 원은 왜 부채가 발생했는지 알 수가 없다는 소리를 할 정도였다. 

이런 불법행위에 따른 부도 사태는 교단 내에 엄청난 갈등을 불러일으켰다. 교단 내에 젊은 목회자들은 복음병원바로세우기 운동본부를 설립하고 대대적인 투쟁을 벌였고, 마침내 19999월 총회에서 부외부채의 본거지인 김해복음병원을 청산하기로 결의하였고, 2,000년 총회에서 재확인하였다. 그러나 총회의 결정과는 달리 청산작업은 진행되지 않았고 마침내 3년 뒤에는 부도사태가 발생하게 되었고 교단은 소위 보수파와 개혁파로 갈려 극심한 갈등을 겪게 되었다. 결국 부도로 인하여 김해복음병원은 정리될 수밖에 없게 되었지만, 청산하도록 위임받은 인사들이 과거에 김해복음병원에 깊이 관여했던 자들이라 곧바로 청산과정을 밟지 않고 단순히 병원을 매각하기만 하였다. 결국 10년이 지난 지금까지 이제는 사라진 병원의, 내용도 알 수 없는 부채를 갚느라 신학교 지원금으로 시작된 1% 상회부담금을 제목까지 바꾸어 부채상환에 사용하고 있다. 

이런 비극적 상황을 거치면서 우리 교단은 학부, 신대원, 병원을 전부 담고 있는 고신대학교의 운영에 대하여 얼마동안 논란을 벌이기도 하였다. 그러나 간간히 불평섞인 논란을 벌이거나 현재의 제도로는 가능성도 없는 신학대학원의 독립화를 이야기할 뿐 본격적인 연구나 방향을 제시하는 경우는 없었다. 그 누구도 위험하기 짝이 없는 일에 나서려 하지 않았다. 부도가 난 10년 전에 교단은 공적으로 연구팀을 구성하여 구체적인 논의에 착수했어야 했지만, 빚을 갚는 일에만 관심이 있을 뿐, 교단의 크기에 비해 각기 지나치게 비대해진 대학본부와 신학대학원, 그리고 대학병원의 장래에 대하여 이상하리만치 입을 다물고 살고 있는 것이 현재의 상황이다. 

 

방향  

그렇다면 우리의 세 기관은 앞으로 어떻게 나아가야 하며, 특히 대학과 신대원은 어떤 관계로 서야 할 것인가? 대학이나 대학원으로부터 연구비 한 푼 받지 않은 필자로서는 지금 제안하는 방안에 대하여 책임을 느낄 필요도 없고 그 기관들도 필자의 발언을 의미 있게 받아들일 의무가 없다. 그런 면에서 이런 이야기를 할 필요조차 없다는 생각이 든다. 지난 20여년 간 아무리 제안하고 주장해도 소용없는 총회의 조직적 특성을 보아왔기 때문에 더욱 그러하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대학의 환경이 매우 열악해지고 교회의 환경도 위기가 감지되는 지금, 우리는 서툰 시론(試論)이라도 세워보지 않으면 안 된다는 부담감을 가지지 않을 수 없다. 고신대학교와 신학대학원은 서로를 어떻게 보며 살아야 하는가?

1. 현실 

대학과 대학원의 운영책임에 대한 논쟁이 존재한다. 대학원 교수들은 공교회가 공적으로 맡아야 할 사명은 오직 교회를 말씀으로 양육할 책임이 있는 목회자 후보자를 교육하는 기관의 설립과 운영이라는 입장을 오랫동안 견지해 왔다. 따라서 기독교대학을 운영하기 원한다면 그 대학은 공교회가 아니라 교회의 성도들이 힘을 합하여 설립하고 운영해야 한다는 것이다. 

반면 대학의 교수들은 줄기차게 하나님의 영광을 위하여 충성할 유용한 인재를 양성해야 하는 것이 교회의 일이고 그것이 개혁주의자들의 입장이라고 말한다. 하나님의 주권이 삶의 전 영역에 미치도록 해야 하기 때문에 굳이 교회가 신학 교육만 고집할 것은 아니라는 입장이다.

이 목적을 이루기 위하여 고신대학은 교회가 운영해야 하며, 교회들이 대학의 운영비를 지원해야 한다고 호소하고 있다. 이런 주장에 대하여 교회는 대학이 존재하는 현실을 인정하지 않을 수 없으므로 교단 지원금 1%1/4을 대학에 할당하도록 해 왔다. 그러나 여전히 신학대학원 교수회와 상당수 목회자들 사이에는, 특히 부도사태이후, 대학을 교회가 직접 운영하는 일에 회의적인 의견이 사라지지 않고 있다. 물론 대학에서는 오히려 천안의 신대원 캠퍼스를 매각하고 부산 캠퍼스에 합류하여 대학과 신학대학원이 효과적으로 위기를 극복할 것을 바라고 있을 정도이다. 

커리큘럼 운영상에서도 갈등은 있다. 고신대학 신학과 출신과 일반대학 출신과의 차별을 어떻게 다루느냐 하는 것은 오랜 숙제이다. 특히 몇몇 교과목은 정면으로 충돌하기도 한다. 신대원에서 신학과반과 일반학과반으로 구분하여 과목을 선택하고 수업을 듣게 하기도 하지만 여전히 대학과의 차별성을 느끼지 못하고 반복교육을 받는다는 호소를 하는 경우가 계속 있어왔다. 실제로 신학대학의 신학과에서 4년간 나름대로 신학적 소양과 지식을 쌓은 학생들과, 심지어 인문학 공부도 하지 않은 자연계 공학계 학생들을 동일하게 취급하여 동일한 3년 과정을 밟게 하는 것은 설명이 필요한 일이다. 

대학과 신대원 교수들의 동질성 문제가 제기 되기도 한다. 서로 교류를 강화하여 동일성을 유지하라는 요구가 노골적으로 불거지기도 한다. 당연히 그래야 할 것이다. 그러나 신대원에 일반대학생, 다른 신학대학 출신들이 얼마든지 입학할 수 있고 실제로 입학한다는 것을 고려할 때, 대학과 대학원 교수들의 동질성 문제가 실제 문제가 될 가능성은 없다고 보아도 무방할 것이므로 밖에서 염려할 일은 아니라고 할 것이다. 

 

2. 해결책  

(1) 교회의 사명은 대학교육보다 목회자 양성이 우선이라는 전제확립

           교회의 최우선적인 사명이 복음전파, 교회설립이라는 것을 고려할 때, 고려신학교의 역사적 전통을 이어가는 신학대학원의 교육을 어떻게 할 것인가를 최우선적으로 고려해야 한다는 사실을 온 교회가 받아들인다면 모든 문제가 순조롭게 풀릴 수 있을 것이다. 하나님의 주권이 온 천하 만물 위에 행사되어야 한다. 세상에 충만하여 세상을 다스릴 문화적 사명 수행의 책임이 교회에 주어져 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무엇보다 우리 주 예수 그리스도 복음의 선포, 하나님의 말씀의 능력을 보여주는 것이 교회가 해야 할 가장 중요한 사명이라는 인식을 가져야 한다. 이 말은 신학대학원 교수들이 자신들을 대학원 그 자체, 혹은 자신들만을 교회의 유일한 선생으로 인식하여 대학의 교수들과의 교류를 등한시해도 좋다는 말이 아니다. 모든 영역에 그리스도의 주되심을 나타내면서 교회의 가장 본질적인 사역을 잊지 말아야 할 것이다.

 

(2) 대학교육의 목표에 따른 학과의 조정

           신학교육을 위해서는 대학에서 인문학 교육을 반드시 받아야 한다. 이것은 교회의 오래된 전통이고 기본적인 상식이다. 고신대학교도 우선적인 존재목적을 여기에 두어야 한다. 따라서 대학경영에 대한 교회의 책임론 논쟁을 미연에 방지하기 위해서라도 학부에 설치된, 신학교육과 전혀 상관없는 학과들은 조정하도록 조치하는 것이 필요하다. 통합측 장로교 신학대학의 경우를 잘 들여다 볼 필요가 있다(신학과 기독교교육학과 교회음악과 등 3개과만 존재한다). 물론 우리 대학은 의과대학과 복음병원이 있으므로 그와 관련된 학과는 더욱 강화해 가야 할 것이다. 대학 자체가 구조를 조정하기 어려우면 총회가 직접 개입할 수 있어야 한다.

 

(3) 인문학적 소양을 갖추는 대학 교육지향

           고신교회의 문제는 대학이 확장을 꾀할 때마다 불거져 나왔음을 잊지 말아야 한다. 기독교대학이 세상처럼 무분별한 확대나 자신의 최대유익만을 구하려 할 때 항상 어려움에 직면하게 되는 것을 잊지 말아야 한다. 교육과정도 마찬가지이다. 신학대학원에서 가르쳐야 할 과목을 대학교수들이 대학원에서 개설되는 과목을 자신의 영역이라 하여 먼저 더 많이 가르치려하기 보다는 인문학적인 소양을 기르고 소명을 확인하고 신앙적 사고와 인격을 기르는 데 더 많은 시간을 할애하도록 해야 할 것이다.

혹은 일찍부터 부르심을 확인하여 신학을 공부하고 주님의 교회를 섬기기로 작정한 사람들에게 억지로 동일한 과정만을 밟게 할 것이 아니라 3, 혹은 4년 만에 M.Div.Th.M 과정을 동시에 밟을 수 있도록 해 주는 것도 고려해 볼 일이 아닌가 한다. 미국의 칼빈대학에서 Th.M 과정을 공부할 때 그들을 위한 독립적 과목을 이수하는 것이 아니라 이미 개설된 M.Div 학생들을 위한 과목을 선택하여 공부하는 것을 볼 수 있다.

 

(4) 수익을 위한 병원경영 불가

           복음병원을 교회가 직영하는 문제는 정말 진지하게 고민해야 한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서는 복음병원이 수익기관인지, 아니면 순수 교육기관인지 그 성격부터 분명히 해야 한다. 현재 복음병원은 수익을 내고 있으며 수익성이 없이는 운영을 할 수가 없다. 교회가 복음병원을 수익기관으로 보지 않고 교육기관으로 간주한다면 그 증거로 해마다 상당한 지원금을 내 놓아야 한다. 그래야 그 순수성을 믿을 수 있을 것이다. 그러나 이런 주장은 고신교회 내에서 동의를 얻기 어려워 보인다. 사실 많은 지도자들은 병원이 일정액을 신대원을 위해 내 놓아야 하는 것 아니냐는 생각을 갖고 있다.

           병원은 이미 공익기관이다. 대학전체가 이미 누구의 재산도 아니다. 소유권만 가졌을 뿐 사실상 국민 모두의 것이다. 따라서 학교나 병원을 보면서 우리가 소유권을 가져야 한다는 생각은 어리석은 것이다. 병원을 소유하려면 경영 능력이 있어야 하고 수익을 내어야 살아남는다. 우리 교단은 수익을 내지 않는 복음병원을 돈 들여 경영할 생각이나 능력이 없어 보인다. 그렇다면 대답이 명백해 진다. 교회가 수익을 위하여 사업을 하는 것은 교회의 존재목적과 전혀 맞지 않지 않는다.

           철저하게 선교적인 병원, 구제하는 병원, 교육을 위한 병원으로 존재하지 않거나 못한다면, 병원이 그 구성원들의 일자리, 복지수단 정도로 머물고 만다면, 복음병원은 교단으로부터 분리되어야 한다는 주장이 끊어지지 않을 것이다.

 

(5) 고신교회의 역사적 사명을 고려한 결정 필요

           신학대학원의 캠퍼스를 정리하고 대학이 있는 부산으로 합쳐야 한다는 주장은 갈수록 힘을 얻을 가능성이 있다. 고신대학교가 무엇을 위해 존재해야 할 것인지를 제대로 정리하고, 반드시 필요하고 지속가능한 학과들로 대학을 다시 구성하고 나면 남아도는 건물 때문에라도 합병 요청은 거세질 것이다. 하나님의 나라를 위하여 전력투구해야 할 교회가 자원을 낭비하는 것은 안 되는 일이다. 그러나 천안으로 올라가 신대원간 교류가 훨씬 활발해졌고, 고신교회가 한국교회 역사의 중심부에 훨씬 가까이 다가섰다고 할 수 있는데, 지금 다시 물러서는 모습을 보이는 것은 한국교회 전체를 위해서도 좋지 않은 일이다. 개혁주의 신앙의 대한교회 건설과 세계교회 건설을 외쳐온 고신교회로서 효율성만을 생각하여 신학대학원의 이전문제를 고려한다면 끝내 존재하기에 급급한 교회답지 못한 교회가 될지 모른다. 신대원 캠퍼스를 매각해 위기에 처한 대학의 운영자금으로 사용하려 한다면, 외형에 집착하다 본질을 망각한 교회로 역사의 심판을 받게 될지 모를 일이다.

           신학대학원 역시 왜 이런 발상이 계속되는지 철저하게 숙고해 보아야 할 것이다. 지독하게 계산적이고 세속적인 유익에 예민한 기회주의자들이 아니라 오직 주의 교회를 위하여 절대헌신 할 수 있는 신실한 말씀의 일꾼들을 양성해 내고, 총회가 넘겨준 이슈만을 넘겨받아 처리하는 지독하게 수동적인 신학교가 아니라 교회가 미리 대비해야 할 과제들을 찾아내어 대안을 마련해주려는 선지자적 사역을 감당함으로써 교회의 존중함을 받는 자리에 서도록 해야 할 것이다.

 

결론

기업을 운영하는 사람들이 처음에는 하나의 작은 기업을 경영하다가 갈수록 더 많은 기업들을 합병하고 새로운 영역을 개발하면서 기업군을 형성하기에 이른다. 그러다가 기업환경이 어려워지면 이익을 내지 못하는 기업들을 과감하게 정리하여 주력기업의 경영에 전력을 투구한다. 이익을 내지 않으면 제살도 도려내어 버린다. 우리는 세상의 경영원리를 따를 수는 없다. 그러나 목적을 위하여 기업이 보여주는 과단성에서는 우리가 뒤질 수 없다. 믿음은 행동이다. 자신을 버려 세상을 살리신 주님의 삶을 본받아 철저한 자기희생으로 하나님의 교회와 그의 나라를 살리는 대학과 신대원, 개인과 공동체가 되도록 노력해가야 할 것이다. <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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