사회적 차별에 대한 기초신학적, 이론적 논의

본고는 한국복음주의 윤리학회 논총 11권에 실릴 예정인 저자의 전체논문을 선택적으로 요약한 것이다

 1. 문화의 기원과 희생양 메커니즘 

1.1. 초석적 배제와 문화의 기원

▲ 정일권박사 한동대

지라르의 새로운 거대담론에 의하면 문화의 기원은 희생양 메커니즘에 있다. 문화와 종교의 기원은 희생양 메커니즘이며, 희생양은 최초의 상징기호이며, 희생양의 시체를 은폐하고 있는 무덤은 인류 최초의 문화였다. 인류의 문화는 희생양의 무덤 위에 건설되었다. 희생양에 대한 초석적 살해로부터 점차적으로 발생학적으로 인류의 문화는 분화되고 파생되었다. 인간사회의 초창기 제도들은 이 메커니즘에 대한 의도적이고 계획적인 되풀이로 이루어져 있다. 지라르의 미메시스 이론은 문화의 폭력적이고 희생제의적 기원을 설명하는 근본적이고 포괄적인 문화이론이다.(1) 아무리 피로 물든 희생제의적 원시종교나 전통종교도 결국 궁극적으로는 평화를 지향했던 것이다. 지라르에 의하면 모든 종교들은 평화를 유지하기 위한 엄청난 노력이라 할 수 있다. 평화를 위한 노력들이 폭력적인 희생제의로부터 자유롭지 못했지만 모든 종교들은 궁극적으로 평화를 지향했다.(2)

오늘날 인간 갈등이 이렇게 자주 그리고 아주 강하게 일어나고 있는 것도 다 이 모방적 경쟁 관계 때문이다. 그런데 이상한 것은, 그 누구도 이 경쟁 관계에 대해서 아무런 말도 하지 않는다는 것이다. 인간 사회에 있어서 종족간의 전투는 폭력적인 죽음에 이를 수 있다. 포유류 동물에게도 모방적 경쟁관계가 존재한다. 하지만 포유류들은 치명적인 상황에 접어들기 전에 거의 항상 이 이 경쟁을 중단한다. 인간에게는 이 통제 메커니즘이 존재하지 않기에, 인류는 오래 전부터 희생양 메커니즘을 통해서 이 내부폭력을 통제해왔다. 인간 문화의 기본은 본질적으로 자연발생적인 상호성에 그대로 내맡겨두면 돌이킬 수 없는 폭력에 빠져버릴지도 모르는 개인과 공공 영역을 모든 양상을 구분하고 또 차별화함으로써 폭력이 발발하는 것을 막는데 있다. 지라르에 있어서 이 희생양 메커니즘은 “모든 종교와 문화의 숨겨져 있는 인프라 구조”로서 가장 근본적인 사회적이고 문화적 차이들이 이것으로 탄생되었고 파생되었다.(3) 희생양 메커니즘에서 메커니즘이라고 한 것은 “이 과정의 자동주의”를 강조하며, 또 이 메커니즘 안에 있는 자들이 그것을 “의식하지 못하고” 있음을 나타내기 위함이다.(4)

 

1.2. 비교동물학과 희생양 메커니즘 

지라르의 희생양 메커니즘에 대한 이론은 비교동물학적인 기초 위에 세워져 있다. 지라르는 콘라트 로렌츠의 『공격』에서 기러기의 행동을 묘사하는 대목에 주목한다. 서로를 적대시하는 두 마리의 기러기가 접근할 때 그들의 공격은 대부분 제3의 대상에게로 향하는데, 이것이 희생양 메커니즘의 전초단계라고 할 수 있다는 것이다. 기러기의 경우 한 쌍의 부부관계는 영원하거나 거의 영원히 관계를 유지하며, 그것은 희생양 메커니즘을 미끼로 해서 이루어진다. 다시 말해 폭력은 제 3의 기러기를 향하게 된다. 특정 집단 내부의 공격성을 외부의 대상(또는 추방한 내부의 한 대상)으로 향하게 함으로써 그 집단 내부나 부부에게는 강한 응집력이 발생한다. 이것이 바로 원시사회가 공동체의 관계를 강화하기 위해서 제의적인 살해에 의지했던 이유다. 제의적 희생을 만들어낸 것은 그 전에 공동폭력과 거기에서 나오는 사태진정의 효력을 이미 관찰했던 결과라 할 수 있다고 지라르는 본다. 로렌츠는 인간의 웃음도 간접적인 공격성의 한 형태로 보고 있다. 한 무리의 사람들이 어떤 사람을 보고 웃는다면 그것은 위험하지 않게 희생양을 지명하는 하나의 형식이라는 것이다. 이 희생양을 향한 비웃음을 통해서 곧이어 그 무리의 구성원들 사이에는 강한 연대감인 감정이입의 사슬이 발생한다. 바로 이것이 인간 스스로가 잘 의식하지 못하는 비교행동학적인 기원의 메커니즘이다. (5)

지라르 이론에 따르면 인류의 웃음은 최초의 웃음인 비웃음으로부터 점차적으로 문화적으로 진화했다. 야생동물에게서 이를 드러내는 것은 집단공격의 표시였다. 인류최초의 웃음은 비웃음이었는데, 무리에서 가장 약한 존재를 향해 비웃음을 날리는 것이 그 대상을 집단 선택하는 신호로 작동했을 것이다. 희생물로 선택할 때 첫 신호가 비웃음이었다.

희생양 만들기와 왕따 만들기는 ‘타자’와 이방인를 향해서 조준된다. 그들은 우선 악마화되며 또한 이후에 신격화된다. 지라르는 인류사회를 진정으로 폭력으로 몰고 온 것은 도구와 무기의 발명이 아니며, 우리의 적을 두고 인간이 아닌 동물이라고 믿거나 심지어 괴물이라고까지 믿게 하는 인간 스스로의 능력 때문이라고 주장하는 것에 동의한다. 브라질의 문두루쿠 인디언들은 이 세상을 자신들과 파리왓(pariwat:이방인)으로 나누는데, 이들은 이방인을 그들이 먹는 동물과 같은 것으로 간주한다. 이러한 연구결과들은 ‘타인들’에 대항하여 집단을 통일시키는 근본적인 경향성을 보여주고 또한 희생양 메커니즘을 이해하는데 큰 도움을 준다고 본다. 

그리스 신화를 비롯한 세계신화들에서 신들은 대부분 불구나 장애를 가진 사람이거나 아니면 그 사회에 낯선 이방인으로 묘사된다. 선불교의 창시자인 달마대사의 모습도 초석적 희생양의 모습을 보여준다.(6) 세계 신화를 자세히 살펴보면 희생양들은 대부분 불구나 장애를 가진 사람이거나 아니면 그 사회에 낯선 이방인이다. 불구로 괴로워한다거나 타지에서 왔다는 사실이 그 사람이 희생양으로 선택될 가능성을 높여준다. 지라르는 이런 것을 희생양의 우선 징후라 표현한다. 중세의 삽화에서 마녀들이 반유대주의적인 만화에 나오는 일그러진 얼굴의 꼽추에다 절름발이인 유대인처럼 그려져 있는 것도 다 이런 이유 때문이라고 말한다. 그리스의 신들도 장애가 있거나 불구이거나 왜소하거나 추한 신들로 가득 차 있다. 고대들의 신들 중에는 아폴론이나 비너스처럼 멋진 신들도 있긴 하지만, 육체나 정신이 망가져 있는 신들이 꽤 많다는 사실을 지라르는 지적한다.(7)

 

2. 유대-기독교의 반차별적, 포용적 평등도덕의 계보 

신화적 해석이 난해한 이유는 그 사회 자체가 자신에게 일어난 일을 이해하지 못하기 때문이다. 실제로 인류학자들도 이를 해석하지 못하고 폭력적 만장일치가 만들어낸 환상을 알지 못했는데, 그것은 무엇보다도 신화적 폭력 뒤에 있는 군중현상을 이해하지 못했기 때문이다. 지라르에 의하면 성경의 기록을 통해서만 이런 환상을 극복할 수 있다. 신화는 박해자에게는 죄가 없고 희생물한테 죄가 있다고 표현함으로써 진실을 완전히 뒤바꾸고 있다. 신화는 항상 속이고 있는데, 그 이유는 신화 자신도 속고 있기 때문이다.(8) 그러나 복음서의 입장은 강자 앞에 처한 약자의 편에 드는 편견에서 나오는 것이 아니라, 폭력의 전염에 항거하는 영웅적인 저항이며, 악마적이고 디오니소스적인 폭력의 군중심리에 감히 반대하는 소수의 선견지명이라고 지라르는 분석한다.

니체는 희생양에 대한 근심이야말로 현대 문화의 퇴폐를 촉진하고, 문화를 빨리 노화시키는 원인이라고 비난한다. 하지만 지라르는 서구사회는 지금 조기에 노화하기는 커녕 거듭되는 쇄신과 계속되는 엘리트의 확장으로 대단한 장수를 누리고 있음을 지적한다. 그래서 지라르에 의하면 광기에 휩싸여서 현대 사회의 “참된 위대성”을 비난하는 니체는 스스로 자멸할 뿐 아니라, 국가사회주의의 끔찍한 파멸을 암시하고 또 부추기기도 한다고 지적한다. 수많은 시체 더미 아래 희생양에 대한 현대인의 근심을 같이 묻어버리는 것, 그것이야말로 정녕 니체적인 국가사회주의자들의 발상이었다고 본다.(9)

니체가 기독교 도덕을 약자들의 복수와 원한의 감정에서 비롯된 노예도덕이라고 파악한 것에는 동의할 수 없지만, 그가 기독교가 약자, 타자, 소수자를 발견하고, 변호하고, 구원한 종교라고 본 것은 정확하다. 지라르는 디오니소스가 오히려 군중이며, 기독교는 소수자, 그러나 군중에 저항할 줄 알았던 소수자였다고 강조한다.

민족 간 분쟁과 종교 간 계급 간 갈등이 끊이지 않는 오늘날의 세계는 타자(the other)에 대한 배제와 차별이 자리잡고 있다. 지라르 이론의 입장에서 보면 인류의 정체성(identity)은 초석적 배제에 기초해 있으며, 그렇기에 불가피하게 희생제의적이다. 모든 폭력과 차별과 배제의 기저에 있는 정체성과 타자성(otherness)의 문제는 보다 더 복잡하고 드라마틱하게 파악해야 한다. 타자의 얼굴이 가지는 이질성과 상처받기 쉬움을 구원한 것은 유대-기독교적 스토리텔링이다. 객과 고아와 과부의 야훼 하나님과 세리와 창녀들의 친구였던 예수 그리스도에 대한 선포가 반차별적이고 포용적인 평등도덕의 질서와 타자를 포용하는 화해의 메시지였다.

작은 원시적 사회에서는 타자는 무질서를 몰고 오는 이방인이었고 항상 결국 희생양으로 살해되게 된다고 지라르는 적고 있다. 즉 타자와 약자를 희생양으로서 변호하고 구원한 것은 기독교였다. 그러나 지라르는 기독교의 묵시록적인 업적과 댓가에 대해서 동시에 지적한다. 그러므로 성서는 어린아이 시절의 희생양 메커니즘을 포기한 이후의 “인류의 성숙함”을 요청한다.(10) 지라르는 우리 주변의 정치, 민족, 종교, 사회, 인종 등에 관한 모든 ‘차별 정책’을 희생양이라는 말로 비판하는 우리의 판단을 지지한다. 인간집단이 지역, 민족, 이념, 인종, 종교 등의 주어진 정체성에 자신을 다시 가두려 하는 곳에서는 어디서나 희생양이 늘어나는 것을 우리는 쉽게 볼 수 있다. 지라르는 우리 사회를 괴롭히는 온갖 문제들의 밑바닥에 있는 종교적인 토대와 근본인류학적인 차원에서 배제나 차별 대우나 인종차별주의 등에 관한 연구를 표피적인 차원에서가 아니라, 보다 깊게 연구할 것을 제안한다.(11)

 

3. 희생양에 대한 성경적 근심과 새로운 복잡성

3.1. 모든 이념적 지평의 중심으로서의 희생양

오늘날 문화의 모든 이념적 지평의 중심에는 사실 희생양이 있다. 여기에는 홀로코스트의 희생양, 자본주의의 희생양, 사회적 불의, 전쟁과 박해, 생태계 재앙, 인종과 성과 종교적 차별의 희생양 등 이루 헤아릴 수 없을 정도의 희생양이 있다. 그런데 지라르에 의하면 처음으로 무고한 희생양을 위치시킨 것은 바로 기독교다. 현대사회는 바로 이 전통적 다르마가 붕괴되고 무차별화된 새로운 위기다.(12) 기독교는 희생양 메커니즘을 폭로함으로써 많은 전통적 희생양들을 복권시켰다. 하지만 전통적 사회의 보호메커니즘이었던 이 메커니즘의 작동원리가 폭로됨으로써 전통적 질서는 와해되고 하나의 거대한 모방위기인 현대사회가 도래하게 되었다.(13) 위계질서와 사회적 신분과 같은 모든 전통적 다르마가 사라진 뒤 사람들은 욕망과 중오를 오가는 스캔들이 넘쳐나는 모방의 물결 속에 빠지게 되었다.(14)

 

3.2. 초석적 배제와 폭력 그리고 포용

현대의 많은 상황신학들, 곧 여성신학, 흑인신학, 해방신학과 민중신학 등도 지라르가 말하는 기독교의 희생양에 대한 우선적 선택과 근심으로 요약될 수 있다. 지라르는 세계화 또는 이른바 새로운 국제질서의 옹호자가 아니다. 그는 오늘날의 상황을 무책임하게 찬양하지도 않고, 또 그렇다고 완전하게 매도하지도 않으면서 이런 상황의 복잡성을 보려고 노력할 뿐이다. 세계 각국의 인종분쟁, 특히 복수와 원한의 양상 등 이 글로벌화되고 무차별화된 현대 사회의 폭력 문제는 생각보다 골이 깊고 복잡하다. 다문화주의는 배제의 욕구를 서구의 주된 잘못이라고 비난하고 있으면서도 종종 자기 스스로 이 욕구를 따르고 있다고 지라르는 비판한다. (15)

고대의 전통사회에서는 사람들이 자신들의 문화에 더 많은 것을 의지하고 있었기 때문에 자신들의 문화를 비판할 수 있을 정도로 거리를 유지하기도 더 힘들었다. 오늘날도 마찬가지여서, 대부분의 사람들에게 자기문화에 대한 비판은 여전히 상상하기 힘든 것이다. 타문화보다 자기문화를 무조건 더 좋아하지 않고 또 종교적인 명령을 맹목적으로 따르지 않는 자기 문화 구성원들을 모든 문화는 엄격하게 취급한다. 고대 문화의 이런 명령이 내부와 외부, 받아들일 수 있는 것과 받아들일 수 없는 것 등을 최초로 구별하는 “초석적 배재”에서 나온 것이 사실이라면, 이 명령을 거부한 자들이 배제, 즉 추방의 형을 받았을 것이다. 그 문화는 이런 사람들을 향해 초석적 폭력을 행사했다. 지라르는 서구를 벗어나면 자기문화 비판은 없거나 있더라도 아직 맹아의 단계에 있다고 생각한다. 서구인들은 자문화와 타문화의 관계에 대해 세계 모든 문화들이 행하고 있는 자문화 찬양과는 전혀 상방된 새로운 사고방식을 생산했다고 지적한다.(16)

기독교는 희생양 메커니즘을 폭로함으로써 많은 전통적 희생양들을 복권시켰다. 하지만 전통적 사회의 보호메커니즘이었던 이 메커니즘이 작동원리가 폭로됨으로써 전통적 질서는 와해되고 하나의 거대한 모방위기인 현대사회가 도래하게 되었다.(17) 지라르는 “현대의 무차별화”와 글로벌화를 무조건적으로 지지하지 않는다. 그는 현대사회가 가져온 긍정적인 발전을 인정하는 동시에 새로운 위험에 대해서 경고한다.(18) 현대사회는 이전의 사회보다 더 나빠질 수 있다. 희생양 메커니즘이 폭로된 이후 등장하는 새로운 위험들을 경고하는 지라르는 “묵시록적인 사상가”다.(19) 전지구적으로 무차별화되는 글로벌화 시대의 종교, 폭력 그리고 평화의 문제를 현실적으로 논의하기 위해서는 “계몽된 묵시록”이 요청된다. 

 

3.3. 희생양에 대한 오늘날의 근심(20)과 새로운 전체주의 

지라르는 오늘날 현대사회가 과거 어느 때보다 희생양에 대한 많은 근심을 표하고 있음을 지적한다. 어떤 시대, 어떤 사회도 희생양에 대해 현대사회만큼 많이 이야기한 적이 없다. 중국의 관료사회, 일본의 사무라이 사회, 인도, 콜럼버스 이전의 아메리카, 그리스, 로마 등의 사회는 그들 신에게 바치는 희생양은 말할 것도 없고 조국의 명예와 크고 작은 정복자의 야망에 바쳐진 희생양에 대해 거의 근심이 없었다는 사실을 지라르는 지적한다. 지라르에 의하면 현대사회는 “희생양에 대해 강박관념에 가깝게 근심을 가지는” 사회다. 현대인이 희생양에 대해 이토록 근심을 가지는 것은 기독교 때문이다. 휴머니즘과 인도주의는 우선 기독교 문명에서 전개된다는 사실을 지라르는 지적한다. 반면, 가족, 씨족, 민족과 같이 아직도 자율적인 문화를 갖고 있는 집단은 온갖 연대의식을 가지고 있으면서도 내부의 알려지지 않은 익명의 희생양을 알아채지 못하고 있다. 지라르에 의하면, 사회변혁의 힘 중에서 가장 효력이 있는 것은 혁명적인 폭력이 아니라, 바로 희생양에 대한 현대의 근심이다. (21)

지라르에 의하면, 희생에 대한 근심이 싫든 좋든 간에 지금 전 지구적 문화를 지배하고 있다. 이 희생양에 대한 근심의 결과가 세계화지 세계화의 결과가 근심은 아니다. 경제, 과학, 예술 심지어는 종교적인 모든 활동의 본질을 지배하는 것은 과학의 진보도 아니고, 시장경제도 아니고 형이상학적인 역사도 아니다. 그것을 지배하는 것은 바로 이 희생양에 대한 근심이라고 지라르는 지적한다. 과거의 이데올로기들을 살펴보아도 그 안에 지속하는 무언가가 있는데, 철학적인 미사여구로 수식되어 있지만 그것 또한 결국은 희생양에 대한 근심이라는 것을 알 수 있다고 지라르는 말한다. 희생양에 대한 근심은 그 순수한 모습과 불순한 모습을 다 드러내고 있다. 수 세기전부터 우리 사회의 변화를 은연중에 지배하던 것도 바로 이 희생양에 대한 근심이었다. (22)

고대문명에서 자비라는 개념은 극히 제한된 집단 내부에만 해당되었다. 그리고 경계는 언제나 희생양으로 표시되었다. 모든 포유류는 자기 영역을 자신의 분비물로 표시하는데, 인간도 마찬가지로 오랫동안 그들의 특별한 분비물이라 할 수 있는 희생양으로 포유류의 영역표시 같은 행위를 했다고 지라르는 말한다.(23) 그러므로 문화의 기원이 희생양 메커니즘에 있는 것과 마찬가지로 우리의 정체성도 희생양을 통해서 비로소 형성된다. 지라르에 의하면 우리의 집단소속감과 개인적 정체성을 형성하고 있는 것이 바로 초석적 배제와 폭력이다.(24)

역설적이게도 희생양에 대한 근심 자체가 모방적 경쟁관계의 목표가 되었다.희생양에 대한 오늘날의 근심은 우리로 하여금 영원히 우리 자신을 자책하게 만들고 있다고 지라르는 말한다.(25) “계속되는 가속화 현상으로 인해 희생양에 대한 근심은 전체주의적인 명령이나 엄격한 신문처럼 변하고 있다”고 지라르는 지적한다. 이런 사정을 알고 있는 언론 매체는 ‘희생학’이라고 조롱하고 있지만, 이 매체들이라고 해서 이를 이용하지 않는 것은 아니다. 현대인은 희생양에 대한 근심을 반기독교적인 방식으로 극단적으로 밀고 나감으로써 유대-기독교의 회로에서 벗어나려고 애쓰는 “희화화된 초기독교 사회”에 살고 있다고 그는 말한다. 그래서 지라르는 “희생양들의 전체주의”의 새로운 현상에 대해서도 지적한다. 희생양 근심의 승리로 인해 오늘날 이득을 보는 것은 기독교가 아니라, “‘다른 전체주의’”, 곧 희생양들의 전체주의라고 그는 분석한다. 이 전체주의는 더 약삭빠르며 지금뿐만 아니라, 미래에도 더 많이 설쳐댈 것이다. 지라르에 의하면, 가장 강력한 기독교 반대운동은 희생양 근심을 자신의 것으로 떠안고서 이를 ‘극단적으로 밀고 나감으로서 이를 타종교의 것으로 만들어버리는 운동이다. 그들은 기독교가 충분한 성의를 갖고 희생양을 보호하지 못 햇다고 비난한다. 이들은 과거의 기독교에서 오로지 박해와 억압과 심문만을 본다. (26)

 

결론: 비판적 톨레랑스와 새로운 복잡성이해를 위한 드라마틱한 해석학 

희생양에 대한 근심과 우선적 선택 그리고 반차별정신은 성경의 예언자적인 정신이요 기독교적 정신이다. 하지만 이 기독교적이고, 참으로 기독교적인 정신의 과도한 정치적 오용의 문제도 함께 논의해야 한다. 반차별, 평등, 톨레랑스의 가치는 결코 자명한 가치가 아니라, 특정한 종교와 문화, 곧 유대-기독교적 가치의 유산이다.

최근에는 비판적 톨레랑스의 필요성이 자주 지적되곤 한다. 후기기독교적 혹은 초기독교적 사회에서의 새로운 복잡성을 균형있게 논의하는 보다 드라마틱한 해석학이 요청된다.유대-기독교적 반차별적 평등도덕의 계보가 이룩한 고전적 서구 자유주의와 민주주의 한계와 불만에 대해서 지적하는 공동체주의(communitarianism)의 입장에 대해서 주목할 필요가 있다. 윤리적 유일신론과 구약 예언자들의 정의에 대한 외침의 전통에 서 있는 복음주의적 윤리학이 희생양들(약자, 타자, 소수자)을 우선적으로 선택하고 보호하고 변호하는 것은 옳다. 하지만 급진적인 희생학(radical victimology) 이라는 현대문화의 새로운 복잡성을 함께 논의해야 하는 복음주의적 입장은 극우의 전체주의 뿐 아니라, 극좌의 전체주의의 저 편에 있다고 볼 수 있다.

 

 

참고문헌

Girard, René. Das Ende der Gewalt. Analyse des Menschheitsverhängnisses Freiburg/Basel/Wien: Herder, 1983.

. La Route antique des hommes pervers. Paris : Grasset, 1985.

. Das Heilige und die Gewalt. Zürich: Benzinger, 1987.

. Ich sah den Satan vom Himmel fallen wie einen Blitz. Eine kritische Apologie des Christentums. Aus dem Französischen von Elisabeth MainbergerRuh. Munich and Vienna: Carl Hanser Verlag, 2002.

. Evolution and Conversion: Dialogues on the Origins of Culture. London: Continuum, 2008.

Girard, René and Chantre, Benoître. Battling to the End: Conversations with Benoît Chantre. East Lansing: Michigan State University Press, 2010.

Habermas,Jürgen. Ein Gespräch über Gott u. die Welt, in: ders., Zeit der Übergänge. Frankfurt: Suhrkamp Verlag, 2001.

. Nachmetaphysisches Denken II: Aufsätze und Repliken. Berlin: Suhrkamp, 2012.

Habermas,Jürgen/ Ratzinger, Joseph. Dialektik der Säkularisierung. Über Vernunft und Religion. Freiburg: Herder Verlag, 2005.

Mazzù, Domenica (ed), Politiques de Cain: En dialogie avec René Girard. Ouvrage punlié sous direction de Domenica Mazzù. Paris: Desclée de Brouwer, 2004.

Marquard, Odo. Abschied vom Prinzipiellen. Reclam (UB 7724), Stuttgart 1981.

.Exkulpationsarrangements. Bemerkungen im Anschluss an René Girards soziologische Theologie des Sündenbocks, in: Willi Oelmüller, Worüber man nicht schweigen kann. Neue Diskussionen zur Theodizeefrage, Fink, München 1994.

Nietzsche, Friedrich. Sämtliche Werke. Kritische Studienausgabe: Bd. 13. Hg. von G. Colli und M. Montinari. München 1980,

Palaver, Wolfgang. Die mythischen Quellen des Werkes von Carl Schmitt. Eine theologische Kritik. Habilitationsschrift. Innsbruck, 1996.

. René Girards mimetische Theorie. Im Kontext kulturtheoretischer und gesellschaftspolitischer Fragen. MünsterHamburgLondon: LIT Verlag, 2003.

르네 지라르, 『문화의 기원』.서울: 기파랑 에크리, 2006.

.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서울:문학과 지성사, 2004.

. 『그를 통하여 스캔들이 왔다』. 서울: 문학과 지성사, 2007.

프리드리히 니체, 『우상의 황혼』(해제). 서울: 서울대학교 철학사상연구소, 2006.

정일권, 『붓다와 희생양. 르네 지라르와 불교문화의 기원』. 서울: SFC, 2013.

. "슬픈 현대: 글로벌 시대의 종교와 평화 - 르네 지라르의 최근 저작 『클라우제비츠를 완성하다』를 중심으로 - ".「한국조직신학논총」 제 36(20139), 247-76.

. “새로운 희생위기로서의 현대사회 르네 지라르의 현대사회에 대한 분석”. 철학연구」 제 125(20132), 313-44.

. “사실의 망각된 목소리: 르네 지라르의 기독교 변증론. 해체주의 철학, 포스터모더니즘과 후기구조주의와의 이론논쟁 중심으로”. 「기독교 철학」 13(2011년 겨울호), 141-172.

각주

(1) Wolfgang Palaver, René Girards mimetische Theorie. Im Kontext kulturtheoretischer und gesellschaftspolitischer Fragen (MünsterHamburgLondon: LIT Verlag, 2003), 12.

(2) René Girard, Das Ende der Gewalt. Analyse des Menschheitsverhängnisses (Freiburg/Basel/Wien: Herder, 1983), 43.

(3) Girard, Das Ende der Gewalt. Analyse des Menschheitsverhängnisses, 268, 4526.

(4) Girard, Ich sah den Satan vom Himmel fallen wie einen Blitz. Eine kritische Apologie des Christentums, 45 f.

(5) 르네 지라르, 『문화의 기원』(서울: 기파랑 에크리, 2006), 155.

(6)정일권, 『붓다와 희생양. 르네 지라르와 불교문화의 기원』(서울: SFC, 2013), 9.1. 신비의 인물 달마 대사와 초석적 희생양을 보라.

(7) 지라르, 『문화의 기원』, 84-5.

(8) 르네 지라르,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서울:문학과 지성사, 2004), 14-5.

(9) 지라르,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219.

(10) René Girard and Benoît Chantre, Battling to the End: Conversations with Benoît Chantre (East Lansing: Michigan State University Press, 2010), p. 105; 정일권, "슬픈 현대: 글로벌 시대의 종교와 평화 - 르네 지라르의 최근 저작 『클라우제비츠를 완성하다』를 중심으로 - " 「한국조직신학논총」36 (2013 9), 258-60을 보라.

(11) 지라르,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202.

(12) René Girard, Evolution and Conversion: Dialogues on the Origins of Culture (London: Continuum, 2008), 2401.

(13) René Girard, Das Heilige und die Gewalt (Zürich: Benzinger, 1987), 299; Girard, Ich sah den Satan vom Himmel fallen wie einen Blitz. Eine kritische Apologie des Christentums, p.208, p. 229; Palaver, René Girards mimetische Theorie. Im Kontext kulturtheoretischer und gesellschaftspolitischer Fragen, 3134 에서 모방적 위기로서의 현대사회를 보라.

(14) Girard, Evolution and Conversion: Dialogues on the Origins of Culture, 13; 정일권, “새로운 희생위기로서의 현대사회 르네 지라르의 현대사회에 대한 분석”, 「철학연구」 125 (2013 2), 313-44을 보라.

(15) 르네 지라르, 『그를 통하여 스캔들이 왔다』 (서울: 문학과 지성사, 2007), 53.

(16)지라르, 『그를 통하여 스캔들이 왔다』, 47-8.

(17) Girard, Das Heilige und die Gewalt, 299, 475; Girard, Ich sah den Satan vom Himmel fallen wie einen Blitz. Eine kritische Apologie des Christentums, 208, 229; Palaver, René Girards mimetische Theorie. Im Kontext kulturtheoretischer und gesellschaftspolitischer Fragen, 3134 에서 모방적 위기로서의 현대사회를 보라.

(18) Palaver, René Girards mimetische Theorie. Im Kontext kulturtheoretischer und gesellschaftspolitischer Fragen, 315.

(19) Palaver, René Girards mimetische Theorie. Im Kontext kulturtheoretischer und gesellschaftspolitischer Fragen, p. 316: ein apokalyptischer Denker.” 정치학과 묵시록의 상관성을 미메시스 이론으로 분석하는 연구들은 다음을 참고하라: HamertonKelly, Robert G. & Johnsen, William (eds), Politics & Apocalypse (Studies in Violence, Mimesis, and Culture Series) (Michigan: Michigan State University Press, 2008).

(20) 지라르,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13장 희생양에 대한 오늘날의 근심을 보라.

(21) 지라르,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203-12.

(22) 지라르,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222-3.

(23) 지라르,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213.

(24) 지라르, 『그를 통하여 스캔들이 왔다』, 59.

(25) 지라르,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206-8.

(26) 지라르, 『나는 사탄이 번개처럼 떨어지는 것을 본다』, 223-6.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