종종 어떤 보수주의 신학자들의 글을 읽어보면 교회연합운동이 무슨 범죄행위라도 되는 것처럼 말하고 있는 것을 볼 수 있다. 그런 사람들이야말로 예수님의 간절한 기도를 반대하고 하나님의 말씀을 정면으로 거역하는 사람들이다. 이들은 성경을 거꾸로 읽는지 모르겠다. 왜 성경의 중심이 되는 교훈을 외면하고 그렇게 강하게 반대하는 것일까?

누구나 잘 아는 대로 예수님의 대제사장적인 기도(요한복음 17장)의 가장 중요한 제목은 “하나가 되게 하옵소서”라는 것이다. 그의 기도를 읽어보면 이 제목의 기도를 두 번 세 번 반복하셨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사도들이 하나가 될 뿐 아니라 사도들을 통하여 예수님을 믿게 될 사람들 - 사도시대 이후 교회들도 하나 되게 해 달라고 기도하셨다.

그리고 이들이 연합을 이룰 때 하나님 아버지께서 예수 그리스도를 세상에 보내셨다는 것을 세상이 알고 믿게 된다고 하셨다. 그러므로 제자 삼는 것만 위대한 사명이 아니라 연합을 이루는 것 또한 지상과제라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런데 우리의 현실은 어떤가? 다른 나라들의 형편은 차치하고서라도 한국교회의 모습은 어떠한가? 찢길 대로 찢기고 갈라질 대로 갈라진 한국교회가 아닌가. 아주 사소한 정치적인 이유로, 혹은 지방색으로, 인간적인 친소관계를 따라, 심지어 아이러니하게도 연합운동 때문에 서로 갈라서고 나누어진다. 그러면서도 그 이유는 모두 신령한 것들로 치장한다. 하나님께서 한국교회를 보시면서 얼마나 마음 아파하실까?


한국교회의 지도자들은 교회분열에 대해 책임을 지고 회개해야 한다. “우리는 분열에 직접적인 책임은 없다”며 회피할 수 없다. 오히려 “왜 연합을 위해 힘써 노력하지 않고 있느냐?”는 물음에 대해 책임을 느껴야 한다. 그리고 적어도 연합운동에 소극적이었다는 것만으로도 회개해야 한다. 우리 주 예수님께서 그렇게도 원하시는 일에 우리는 관심이 없었다니 이 얼마나 큰 불경이며 죄악인가? 그런데 교회연합운동을 비난하고, 폄하하고, 정죄하다니!


바울 사도 역시 교회의 연합에 대해 많은 말씀을 주셨다. 특히 에베소서에서 그는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고 하시며 그 이유와 근거를 말씀하셨다. 성령께서는 예수 그리스도의 말씀을 기억나게 하시고, 그것을 성취하시는 분이시다. 그는 아버지와 아들의 뜻을 따라 사랑의 줄로 우리를 하나 되게 하셨고, 또 그 일을 지금도 계속하신다. 우리는 성령님께 협력하여 하나 됨을 힘써 지키고, 하나 되지 못한 경우는 하나 됨을 위해 힘써 노력해야 한다.


물론 우리의 하나 됨이 무조건적인 것은 아니다. 그리스도와 벨리알이 어찌 하나 될 수 있는가? 어떻게 믿는 자와 믿지 않는 자가 하나 될 수 있는가? 그러기에 사도는 연합을 위한 마음의 준비와 신앙적 기준을 제시하고 있다.

“너희가 부르심을 입은 부름에 합당하게 행하여 모든 겸손과 온유로 하고 오래 참음으로 사랑 가운데서 서로 용납하고 평안의 매는 줄로 성령의 하나 되게 하신 것을 힘써 지키라. 몸이 하나이요 성령이 하나이니 이와 같이 너희가 부르심의 한 소망 안에서 부르심을 입었나니 주도 하나이요 믿음도 하나이요 세례도 하나이요 하나님도 하나이시니 곧 만유의 아버지시라 만유 위에 계시고 만유를 통일하시고 만유 가운데 계시도다.”


이 말씀을 종합해보면 적어도 사도신경을 고백하는 교회라면 서로 교제할 수 있고, 연합할 수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세계를 다녀보라. 그리고 예수 그리스도의 이름을 부르는 자들을 만나보라. 얼마나 반갑고, 사랑스럽고, 감사한가. 그런데 오히려 같은 도시 같은 지역에 있으면서도 교회와 그 지도자들끼리 경쟁심으로 서로를 대하고 있으니 이 무슨 괴이한 일인가.


그런데 요즘 부산과 경남지역에서 연합운동이 활발하고, 그 중심에 고신의 지도자들이 활동하고 있다는 소식을 들으며 우리는 감사하고 기뻐한다. 과거에 한국장로교 총회는 고신파 사람들을 쫒아냈고 그로 인해 한국장로교회가 최초로 분열되었다. 이런 역사를 가진 고신이 우리를 분리시킨 자들을 먼저 용서하고 풀어주어야 하며, 나아가 한국교회의 하나 됨에 앞장 서는 것은 옳고 효과적이며 하나님이 기뻐하시는 방법이다.


미국 어느 장로교 신학교 교수가 오순절교회의 초청을 받고 교제도 하고 설교도 하였다. 그리고 그는 다음과 같이 말하며 회개했다고 한다. “우리가 다른 것은 5% 정도인데, 그동안 우리는 95%나 다른 것처럼 서로를 멀리해 왔다. 내가 하고 있는 신학은 하나님이 보실 때 얼마나 정확할까? 만약 5% 정도의 차이 때문에 하나님이 나를 멀리하신다면 나는 과연 어디에 설 수 있을까? 나는 그동안 하나님을 너무나 몰랐고 그의 뜻을 거절해왔다.”


고신은 그동안 바깥사람들로부터 분리주의자란 비난을 받아왔다. 이에 대해 우리는 변명하기보다 왜 그런 오해가 있었는지 심각하게 반성해봐야 한다. 우리는 결코 그런 신학을 갖고 있지 않지만 고신이 분리주의자란 오해를 받는 것만으로도 하나님 앞에서 두려워하며 자신을 살펴야 한다. 왜냐하면 실제로 이런 오해를 받을 만한 주장과 태도들이 없지는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우리는 다음과 같은 회개를 제안한다.


“우리는 회개합니다. 주님은 연합을 위해 그렇게도 기도를 많이 하셨는데, 우리는 교회의 연합을 위해 기도하지 않았으니 회개합니다. 성령께서는 우리를 하나 되게 하시는데 우리는 이런 일에 관심도 없었거나 심지어는 다른 교회들을 비난함으로써 분열을 정당화하고 당연시해왔던 것을 회개합니다. 연합함으로써 그리스도를 증거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드러내야 하는데, 반대로 분열함으로써 그리스도의 복음과 하나님의 영광을 가린 자들이 되었으니 회개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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