에벤에셀 되신 하나님께서 오늘까지 인도선교와 함께 해 주심을 감사드린다. 하나님께서 필자의 부부를 인도로 부르신지도 어언 10년이 넘었다. 1996년 인도에 온 후 지금까지도 한 가지 착각에서 쉽게 벗어나지 못하는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인도에서는 무엇이든지 나 자신이 가르치는 입장이어야 한다는 부담감 같은 것이다.


수십 년 발붙이고 산 대한민국이 인도보다는 선진국이고 필자의 나이도 적당히 들었으니 이 땅에서 산 연륜으로도 젊은이들에게 부지런히 가르치려는 자세가 되어버렸나 보다.


그리고 무엇보다도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민족이나 개인은 세계 어느 곳을 보아도 여성의 위치가 자기의 주장을 거침없이 표현할 수 있는 입장이며 필자 개인적으로는 무엇보다도 든든하신 성령님이 항상 나와 함께 하신다는 담대함이 눈을 치켜뜨고 상대방을 똑바로 바라보기에 주저함이 없게 만들었나 보다.


인도 칼빈신학교가 하나님의 계획하심 가운데 2001년 벵갈로르에 설립된 후 북인도와 남인도지역을 비롯하여 버어마, 네팔, 벵글라데시, 타일랜드, 한국등지에서 온 학생들에게 학기가 시작될 때면 꼭 하는 이야기가 하나 있다.


"여러분 눈을 똑바로 뜨십시오, 그리고 상대방을 똑 바로 쳐다보세요. 그다음에 우리의 구원자 되신 예수님을 당당히 전하십시오."


필자가 이렇게 말하는 이유는 이러하다. 대부분 우리 학생들은 육체적으로 그렇게 높은 카스트의 후손들이 아니므로 인생이 시작되는 어린이 때부터 좋게 말하여 섬김과 겸손이 몸에 배어있다.


여기에다 언어장애(인도에는 지역마다 언어가 다르므로 각지에서 모여 들면 당분간은 서로 의사소통이 어렵습니다)까지 있으므로 처음에 만나면 왠지 학생들이 어눌해 보인다. 그래서 필자는 할 수 있는 대로 학생들에게 하나님 백성의 자존감을 심어주고 싶다.


그래서 이렇게 격려한다. "여러분은 코가 높고 눈이 큰 예쁜 백성이며 단시일 내에 언어를 정복할 수 있는 능력을 위로부터 부여받은 특별한 민족입니다. 하나님께서 여러분들을 세계만방에 복음전파자로 보내실 것을 확신합니다."


이렇게 말하면 풀이 죽어 있던 학생들이 힘을 얻는다. 그리고 현지 목회자나 교수들도 예외가 아니어서 처음 만나서 이야기를 나누다보면 왠지 뭔가가 빠진 것 같은 나약함이 느껴지는 것이 사실이다.


이런 분들과 섞여 살다가 어느 날 눈이 반짝이고 힘이 있는 한 여인을 만났는데 그녀의 이름이 코말람이다.


   
▲ 스텐리목사(아내 코말람)의 가족과 함께....

 

4년 전 칼빈신학교 교수가 되기 위해 이력서와 간증문을 보내왔는데 남편 스텐리과 함께 쎄람뿌(윌리엄케리가 세운 신학교) 신학을 졸업한 재원이며 재미있는 것은 "Stanley Jose from San Karapuri family, When St. Thomas came to India four Brahminfamily accepted Christ first......." 이렇게 적혀 있었다는 것이다.


더 재미있는 것은 코말람 자신은 힌두제사장의 (Saraswathi-goddess of education) 딸이었고., 특히 락쉬미(Lakshmi-goddess of wealth)를 모신 템플 사제 집안이므로 어린 시절을 아주 부유하게 산 과거가 있다고 적혀있었다.


코말람은 일반대학 다닐 때 친구의 전도로 성경을 접하게 되었고 말씀을 읽는 가운데 인생의 고민을 해결했고(길 빛 진리) 예수그리스도를 구주로 영접한 복 받은 케이스로 인도 선교를 하고 있는 필자에게는 지금도 말씀 자체의 영감이 생명을 구원하는 일을 직접 하신다는 확신을 증명하는 놀라운 자료가 되고 있다는 것이다.


참으로 놀라운 부부의 연이 아닌가? 한 사람은 2천 년 전 도마에게서 복음을 받은 최초의 신자 가정에서 대를 이은 성도이고 한 사람은 이제 갓 성경을 읽는 가운데서 빛을 받아 성도가 된 사람이니 하나님의 섭리는 참으로 깊고 오묘하다고 할 수 있을 것이다.


이 부부는 두 자녀가 있는데 가정생활이 참으로 어려워보였다. 친인척의 아무런 도움 없이 마덜텅인 말라얌 언어교회에서 협력 사역하며 조금 받는 사례비가 생활비의 전부였다. 강의할 자리를 얻기 위해 여러 신학교에 이력서를 넣었으나 현지신학교들로 부터 번번이 거절  당하였는데 그 이유가 상층 카스트의 교수를 하층 카스트의 운영자가 받기를 꺼리기 때문이라는 웃지 못 할 이유라는 것이다.(인도엔 눈에 보이지 않는 카스트가 아직 존재한다)


칼빈신학교로 온 후 코말람의 가정엔 웃음꽃이 피기 시작했다. 가난할 때나 그렇지 않을 때나 눈에 힘이 있는 이 여인과 필자는 믿음 안에서 즐거운 교제를 계속하는 가운데 어느 날 이런 기도요청을 받았다.


"저는 힌두 제사장의 딸로 예수님을 영접했기에 집에서 쫓겨났습니다. 저의 친정어머니는 저로 인한 수치심으로 목을 매 자살했습니다. 집에서 쫓겨난 저는 가까운 성경학교를 찾아 가 저의 사정을 이야기 하고 무료로 숙식과 공부를 할 수 있게 되었고 그곳에서 지금의 남편을 만나 결혼을 하고 계속 공부를 해서 목사의 아내가 되었습니다.


처녀 때 저는 성경책을 가지고 집으로 전도하러 갔다가 오빠와 친척들에 의하여 맞아 죽을 뻔 했습니다. 그 후 14년 동안 친정을 한 번도 갈 수 없었습니다. 결혼도 다우리 (인도의 결혼 지참금) 하나 없이 부모형제도 없이 했습니다.


친정아버지가 돌아가신 소식도 2년 전 소문을 통해서 알았습니다. 그런데 지난주 친정 오빠 측에서 연락이 왔습니다. 부모님이 다 돌아가셨으니 자녀들이 재산을 나누어야 하는 때가 되었나봅니다. 저의 친정지역인 케랄라는 아직까지 개종의 법이 적용되지 않는 지역인지라 개종한 딸에게도 상속의 자격이 주어지기에 사분의 일을 물려받을 수 있게 되었습니다."


이제 14년 만에 친정식구들을 만나게 되는 기쁨도 있지만 두려움도 있어 기도부탁을 하는 것이다. 필자는 하나님께 간절히 중보기도를 드렸다. 그리고 코말람에게 당부했다. 친정의 사분의 일 분량의 재산보다도 형제자매의 화평이 먼저임을 잊지 말라고... ...


한 주간의 친정 방문 후 돌아온 코말람의 얼굴은 더욱 빛났다. 하나님의 은혜로 크리스챤으로서의 의무도 다하고 평화로운 만남도 하고 자기분량의 유산도 받게 되었다는 것이다. 할렐루야!~


그래서 그녀는 지금 칼빈신학교 근처에 땅을 물색하며 조그마한 집을 지으려고 행복한 설계를 하고 있다. 땅덩이가 넓은 인도는 지역마다 여성에 대한 차별과 법적 지위가 조금씩 다르긴 하지만 코말람의 경우는 실로 감격 그 자체가 아닐 수 없다.


그러나 필자가 살고 있는 카르나타카 주의 이웃인 타밀나두는 크리스챤으로 개종을 하는 경우 법적 상속의 실효도 잃고 친족의 가계에서 삭제당하며 5만 루피의 벌금까지 내야하는 끔직한 법이 통과되었다.


인도 전역에 이러한 법이 확산되는 추세이나 이 가운데서도 하나님의 자기 백성을 향한 당신의 열심은 쉼 없이 인도전역을 덮어가고 있다.


우리의 소망되신 하나님을 찬양한다. 그 분의 보호하심에 맡겨져 있는 우리의 생명임을 날마다 확신해가며 인도 복음화에 쓰임 받는 시간들에 경이로움이 더하고 있다. 할렐루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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