성산교회의 선교축제를 다녀와서......

저희들은 은퇴를 앞두고 마지막 안식년을 서울 안식관에서 보내고 있는 중 이정건 본부장님의 권유로 서울 성산교회 선교축제에 참여하게 되었습니다. 

총회선교본부의 입장에서는 선교사를 후원하는 후원교회에 뭔가 보탬이 되는 무보수의 섬김이 없을까 고심하던 중 아동학박사이신 김삼성 선교사의 아이디어와 미술선교사 되시는 박신호 화가의 작품전시 도움을 받아 이정건 본부장님의 메시지와 참여선교사를 동원한 토크 콘서트를 통하여 선교지의 생생한 현황을 함께 나누고 질의응답을 통하여 자연스럽게 선교사의 삶을 오픈하도록 유도하고 선교헌금이 사용되어지는 투명성과 미래선교사들에게 현장의 막연한 두려움도 없애주며 모든 성도들이 선교에 기쁨으로 동참할 수 있도록 격려하는 참한 프로그램이었습니다.

사실 저희들은 서울성산교회와 개인적인 친분이 있는 것도 아니고 담임이신 장태영 목사님과도 교제가 있었던 것은 아니었지만 의도가 좋은 이 프로그램에 동참하고 싶어서 함께하겠노라고 전한 후 동참하였습니다.

111() 성산교회에 가다.

12일 주일 하루 전 토요일 오후 5시에 성산교회당에서 대전 본부팀과 합류한 저희 부부는 성산교회 담임이신 장태영 목사님을 비롯한 선교부장이신 강영식 장로님과 당회원의 따뜻한 환대를 받으며 먼저 이 장소에서 선교축제의 불길이 타오르길 주님께 기도드린 후 선교지 물품들과 사진등을 교회 입구에서 부터 성전입구까지 잘 정리를 하였습니다.

이 때 성산교회 청년들의 적극적인 도움으로 펄럭이는 만국기 등을 종탑근처로 매다는 어려운 작업도 쉽게 마칠 수 있었습니다, 아주 섬김의 훈련이 제대로 된 청년들을 바라보는 기쁨이 컷습니다. 이들은 미래의 선교사들이며 이나라의 보배들이기에 바라보는 것만으로도 가슴이 설레었습니다.

대강 정리를 한 후 맛있는 저녁을 대접받고 저희들은 원 형태로 세팅된 탁자에 모여서 자연스러운 대화의 시간을 가졌습니다. 성산교회의 재정과 선교헌금을 책임지신 분들이기에 대화는 선교헌금이 사용되어지는 모금, 과정, 등에 관심이 많았고 또 은퇴선교사들의 허입과정 등 비교적 민감한 부분들이 질문되어지고 선교사들은 돌아가면서 자신의 차례가 되면 대답하는 분위기였습니다.

이 때 저희부부는 예상 밖의 돌발질문을 받게 되었고 말문이 막혀버린 남편을 대신해서 제가 대답을 하게 되었는데 재정의 투명성에 대한 이야기를 이어가며 자연스럽게 "지금 제 남편이 입고 있는 콤비는 선교생활 18년 만에 한국에서 돈을 주고 처음 구입한 콤비입니다 그동안 제 남편은 한국목회 때 입었던 옷과 돌아가신 매일교회 이00 목사님의 옷을 물려받아 입었습니다. " 절약하면서 선교헌금을 아껴 사용했다는 것에 포커스를 맞추다보니 구체적인 생활의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습니다. 전혀 예상 밖의 이야기가 나오게 되었고 이왕 엎지러진 물이니 제가 계속했습니다. "한국에 와서 보니까 선교본부로 부터 18년 동안 후원받은 선교비보다 인도현지에서 선교부 재산으로 있는 부지나 건물 값이 더 많이 나가는 것을 알게 되었습니다." 하는 말이 술술 나와 버렸습니다.

정말이지 제 스스로도 이런 말이 나오는 것이 당황스러웠습니다. 생각해보면 선교지 나라마다 형편과 처지가 다르고 입장이 다른데 이런 이야기를 하므로 다른 선교사들에게 누가되면 어쩌겠나 싶지만 이미 엎질러진 물이였고 담을 수가 없었습니다. 조용히 눈을 감고 지금부터는 입조심을 해야겠다 싶은 것이 주님 제 입에 파수꾼을 세워주시옵소서 하고 기도했습니다.

다행히 성산교회 당회원들은 참으로 다정한 분들이었습니다. 민감한 사안들도 재치 있게 아우러며 서로를 알아가는 과정으로 잘 해석되어졌고 밤 9시쯤 저희들은 편안한 침실이 있는 호텔로 안내되어져 잘 쉴 수 있었습니다.

 

12일 주일 성산교회에서 은혜에 빠지다.

주일아침 각자 방에서 큐티를 하는데 저희 부부는 고린도후서 1210절에서 " 내가 약할 그때에 강함이라"를 묵상하며 오늘하루도 그리스도를 위한 것들만 드러나기를 간절히 기도했습니다.

아침745분에 호텔을 나와 성산교회당 입구에서 장태영 목사님을 만나 함께 아침식사를 하고 다시 교회당으로 와서 어제 진열했던 선교물품들을 재정비하고 오늘 주일교회로 오는 성도님들이 선교지의 모자나 옷들을 입고 기념사진을 찍을 수 있도록 잘 배려를 하며 주님 오늘도 복된 시간으로 인도하여주시옵소서 기도했습니다.

오전 9301부 예배 때 이정건 본부장님은 "한 알의 밀이 땅에 떨어져 죽지 아니하면 한 알 그대로 있고 죽으면 많은 열매를 맺느니라" 요한복음 1224절 말씀으로 설교하시며 브라질선교사로 순직하신 배봉규 배향숙선교사와 아프가니스탄에서 순교하신 분들의 동영상을 통하여 죽어서 열매 맺는 말씀을 하셨는데 곁에 있는 남편이 눈물을 참지 못하고 동영상에 빠져들고 있었습니다. 성도님들도 숙연해지는 분위기였습니다.

저는 속으로 선교지로 떠날 18년 전에도 선교지에서 뼈를 묻으라는 말씀을 들었는데 안식년으로 나온 지금까지 "선교지에서 죽으라" 라는 말씀을 듣는구나 싶은 것이 속으로 서운했습니다. 왜냐하면 저는 은근히 은퇴 후에는 이 좋은 한국에서 살고 싶은 마음이 이번 안식년을 통하여 강하게 들기 때문입니다. 주님께서 막으시는가 곰곰이 묵상하며 인도에서 죽을 생각을 하니 마음이 답답해왔습니다.

김삼성 선교사님은 주일학교를, 박신호 선교사님은 청년부를, 남편 윤지원 선교사는 오후예배 때 설교말씀으로 섬겼습니다.

네 번의 예배가 마칠 때마다 저희 8명의 현지 옷을 입은 선교사들은 교회 앞에 소개되어졌고 각 나라의 현지어로 좋으신 하나님을 불렀으며 큰지구본 풍선을 모든 성도들이 들어 올려 움직이며 이 땅 가운데 복음이 편만히 전파되어지며 선교의 불길이 타오르길 기도하며 만졌습니다.

오후예배 후에는 토크콘서트가 있었는데 성도님들이 스마트폰으로 선교에 대하여 궁금한 것을 질문하면 8명의 선교사들이 돌아가면서 답을 하는 시간을 가졌습니다.

 

질의응답 

선교현장의 생생한 체험들이 전달되어졌고 제가 대답한 몇 가지는 아래와 같습니다.

선교란 무엇이라고 생각합니까?

: 지름길입니다 왜냐하면 하나님의 임재를 경험하고 성령님이 친히 역사하심을 체험하며 예수님사랑의 통로로 살아갈 수 있는 지름길이기 때문입니다.

 

선교 때문에 포기한 것이 무엇입니까?

: 처음 인도현장에서 살아갈 때 저도 포기한 것이 있는 줄 알았습니다. 그러나 은퇴를 앞둔 지금 가만히 생각해보니 저는 포기한 것보다 얻은 것이 더 많음을 깨달았습니다. 예를 들면 아들한명 딸 한 명뿐인 제가 인도에는 저를 어머니라고 부르는 수백 명의 딸이 있고 수백 명의 아들이 지금 있으며 재정이나 노후대책을 포기한 것 같으나 본부은퇴적립금정책으로 말미암아 이런 걱정도 없게 되었으니 감사한 것뿐입니다.

그런데 남편 윤지원 선교사는 고향을 포기했습니다. 한국도 인도도 더 이상 제겐 고향이 없음을 알았습니다. 그래서 천국을 더 사모하게 됩니다 라고 대답하는데 그동안 남편이 얼마나 외로웠는가를 알 것 같아서 제 눈에 눈물이 하염없이 흘렀습니다.

 

생명의 위협을 느낀 적은 언제인가요?

: 여러 번 있었는데 뭣부터 이야기하지 생각하다가 순간적으로 중동이나 보안지역에서 사역하는 선교사를 떠올리면 아무것도 아닐 수도 있는 사건들이지만 한 가지를 대답했습니다. 현지인으로 부터 RSS에 고발당해 아동들을 개종시킨다는 죄목으로 잡혀갈 뻔했던 사건을 이야기했습니다. 주마등처럼 스쳐지나가는 많은 사건들이 있었습니다. 데모대에 포위당했던 일, 단기 팀 감옥 갔던 일, 미얀마학생들의 노비자사건을 비롯해서 경찰들이 우리 칼빈 캠퍼스 안에서 밤을 새워 경비하며 데모대로 부터 보호한일 비자국의 급습 등등 무슨 연유인지 갑자기 순식간에 많은 일들이 떠오르면서 눈물이 앞을 가리는 것이었습니다. 정말 참기가 어려웠습니다.  

아마도 언젠가는 이런 이야기가 하고 싶었나봅니다. 그러다가 이런 장이 펼쳐지니 여러 가지가 한꺼번에 떠올라 정리가 안되고 그냥 눈물만 줄줄 흘렀습니다.

은혜를 끼치고 선교의 불길을 댕겨야하는 사명으로 와서는 오히려 은혜를 받고 마음을 열므로 제 스스로가 "그래 인도 가서 죽자" 하는 쪽으로 정리가 되어졌습니다.

하나님은 이렇게 하시는 분이었습니다. 한국에서 안식년을 누리면서 마음이 느긋해지니까 이런 자리를 통하여 다시 마음깃을 여미게 하시며 인도로 되돌아갈 것을 재촉하고 계신 것입니다 주님마음 알 것 같으면서도 왠지 조금은 섭섭한 이맘을 구지 숨기고 싶지는 않습니다. 우리 모두는 이 느낌을 아는 천국백성들이니까요. 모든 예배가 파한 후 성도님들과 뜨거운 악수를 나누었습니다.

장태영 담임 목사님은 너무나 따뜻하고 정다운 분이었습니다. 저희들을 격려하며 많이 배려해주셨습니다 저녁식사후 찬바람이 쌩쌩부는 영하의 날씨에도 선교사들이 각자 다 돌아갈 때까지 사모님과 함께 찬바람 속에 서계시며 손을 흔들어주셨습니다

선교의 불길을 붙이러 같다가 저희부부는 오히려 선교의 재충전을 받았고 남편은 2월말 인도 칼빈신학교 졸업식을 준비하기 위하여 2월초에 인도로 들어갑니다. 저는 인도에서 확실히 뼈를 묻기 위하여 올해 안식년을 한국에서 마무리하고 새힘 충만히 충전 받아 안식년이 끝나는 9월에 인도로 재입국할 계획입니다.

선교축제를 통하여 선교사도 살리고 선교의 불도 일으키는 주님의 크신 계획에 할렐루야 찬양하며 고신선교축제 참가기에 대합니다. 모든 영광 우리주님 홀로 받으시며 아멘 주예수여 오시옵소서!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