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이광수 목사 부암로교회원로

비는 내리지 않고, 밤마다 고요히 대지를 촉촉하게 적시는 이슬도 사라져 물과 수분이 없어지면 그곳은 자연스럽게 광야가 되어 수목이 바짝 마르게 되고 곡식이 자랄 수 없는 버림받은 땅이 된다.

영적으로도 마찬가지다. 수분인 눈물이 없으면 메마른 사람이 되고 영혼이 사막이 되어 열매를 맺지 못하는 사람이 된다. 옥토가 되어 곡식이 무성하게 자라려면 무엇보다 물이 풍성해야 한다.

성령의 열매를 주렁주렁 맺는 영혼이 되려면 눈물을 흘려야 한다. 물은 메마른 사막을 옥토로 만든다. 눈물은 말라서 굳어버린 영혼을 부드러운 옥토 밭 되게 한다. 단비가 단단한 대지를 새롭게 하여 식물을 무성하게 한다.

날마다 흘리는 눈물이 은혜 속에 살게 만든다. 조용히 혹은 대성통곡 하면서 주님 앞에서 울어야 살게 된다. 시편 80;5절에 주께서 저희를 눈물양식을 먹이시며 다량의 눈물을 마시게 하셨나이다.“ 라고 저자는 읊조리고 있다. 성경은 눈물을 양식으로 말하고 있다.

육신의 양식은 광야의 만나였고 영의 양식은 생명의 떡이며 만나이신 예수님이시고 육신의 양식은 음식이며 영의 양식은 눈물이다. 양식이 없으면 살길이 없다. 시편 56;8“ 나의 눈물을 주의 병에 담으소서. 이것이 주의 책에 기록 되지 아니 하였나이까? “ 라는 말씀은 눈물을 잊지 않겠다는 말씀이다.

갑자기 목이 메면서 핑그르르 맑은 이슬이 눈 속을 맴돌고 가느린 눈물 시내에 물이 흐르고 갑자기 마음이 설레게 된다. 신앙인의 눈물양식은 영혼의 민감함이 배태한 영롱한 구슬이며 사랑이 선물한 벅찬 감동의 정화수이다.

그리고 지다위를 모르는 심장을 뭉클하게 만드는 신비한 묘약이며 자신이 부끄러워 고이 숨기고 난후 들려오는 영혼의 음률이다. 하루의 문이 소리 없이 열리면서 이시대의 나그네는 아버지의 사랑이 고마워 눈물 지우며 구원의 은총은 눈물 시냇물을 경험하게 만든다.

자신의 누추한 몰골을 보고 울게 되고 절벽에 매달려 안달하는 심정을 가지고 주님의 긍휼과 도우심이 그리워서 날마다 심한 통곡과 눈물로 간구 소원을 올린 나의 겟세마네를 경험하게 된다.

그동안 허덕이며 걸어온 생활 가운데 울기도 했지만 더 울어야 하겠다. 이유는 목회를 시작하고 마무리 할 때까지 걸어온 삶이 부끄럽고 죄송해서 이며 내 주님께서 배풀어 주신 형언할 수 없는 크신 긍휼 때문에 엎드려 울어야 하겠다.

지난 날 받은 큰 은혜와 사랑을 건망증으로 깡그리 잊고 미련하게 살았구나.” 내 자신이 너무 추해 보였다. 또 죄악으로 캄캄하게 어두워진 조국과 교회들을 위해 울어야 겠다. 존경하는 조국을 위하여 통곡한 눈물의 선지자는 예레미아이다. 예레미아 애가의 제목에서 부터 그가 얼마나 울었던가를 알 수 있다.

애가의 제목은 히브리어로 예카이다. 이 예카는 1장과 2, 4장의 첫 단어다. 뜻은 아! 아으! 라는 극도의 통과 놀람의 의미다. 헬라어의 제목은 트레나인데 소리 높여 울다의미가 있다.

예레미아는 밤새도록 애곡했고” (1;2) “눈에 눈물이 물같이 흐름이여”(1;16)라고 했으며 내 눈이 눈물에 상하며” (2;11) ‘내 눈에 눈물이 시내처럼 흐르도다. 내 눈에 눈물이 그치지 아니하고 쉬지 아니함이여“ (3;48-49) 이렇게 통곡 했다.

오늘 우리는 예레미아 같이 울어야 하겠다. 오늘도 소돔고모라 같은 죄악으로 어두워진 사회와 국가, 교회의 모습들을 살펴보자. 이러한 현실 앞에서 주님은 우리에게 무엇을 요구할까? 눈물 양식을 먹이시는 시간이 아닐까? 또한 그 크신 사랑에 감격하여 울어야 한다.

안이숙 사모님에게 직접 들은 실화다. 일제의 신사참배를 거절하다가 평양 감옥에 갇혀 있을때 시력을 잃게 되어 의사의 진단으로 병보석을 받아 출옥을 할 기회가 왔었다.

왜 시력을 잃게 되었는지 아십니까? 매섭게 추운 평양의 겨울 날씨 눈물이 너무 흘러 그 눈물이 흐르는 순간 얼어버려서 시력을 잃게 되었답니다. 감옥 생활이 너무나 힘들고 고통스러워서 일까요? 돼지에게도 먹이지 않는 음식 때문일까요? 배가 고파일까요? 아니 랍니다. 아니지요. 주님의 십자가 그 크신 사랑이 고맙고 감격스러워서 랍니다. 또 나같이 죄 많은 사람이 신앙을 위하여 말씀에 순종 하느라고 감옥에 들어와서 고생 하는 것이 너무 고맙고 감사해서 쉼 없이 울었 답니다. “ 라고 간증 하셨다.

욥기 2614절에 주님의 창조의 능력은 시작점이고 세미한 소리이며 십자가의 구원의 능력은 측량 할 수 없는 능력의 우레 소리라고 말씀하고 있다. 이러한 사랑을 받았는데도 울지 않을수 있을까? 양식을 먹지 않으면 죽게 된다. ! 울어야 살게 되구나.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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