미래의 농어촌 목회

▲ 최학무 목사 고성 삼산교회담임

[농어촌교회 활성화 방안]...

농어촌 교회를 염려스러운 마음으로 생각하는 많은 사람들과 교회들이 있습니다. 물론 농어촌 교회의 어려운 현실을 이해하고 걱정해주며 생각해 주는 것은 좋은 것이라 생각됩니다.

매년 한 차례나 신앙 잡지나 기독교계 신문에는 농어촌 교회에 대한 특집을 내고 농어촌 교회의 문제점과 현실을 주제로 삼고 그 대책을 마련코자 노력하고는 있지만 지금까지 그 무엇 하나 해결하지 못한 상황에서 다람쥐 쳇바퀴 돌듯이제자리로 돌아와서 항상 걱정만하고 있는 상황이 아닌가 생각이 됩니다.

우리가 언제까지 이렇게 농어촌 교회를 살리자”, “농어촌 교회의 문제점을 해결하는 방업이 없을까?”하는 구호만 외치고 있어야 하는 것일까?

도시교회의 눈에 염려스럽고 혹은 무거운 짐처럼 비치는 농어촌 교회의 부흥과 장래는 과연 없는 것인가? 정말 도시교회는 문제점이 없고 농어촌 교회만 문제점이 있는 곳인가? 저는 그렇지 않다고 생각합니다.

우리 농어촌 교회도 부흥할 수 도 자립할 수도 있으며 장래에 희망도 있다고 생각합니다.

 

농어촌 교회의 현실과 문제점

현재 농어촌 교회는 여러 가지 면에서 빈약한 처지에 놓여 있는 것은 사실이다.

(1) 약한 교세

하나같이 어느 교단 할 것 없이 교세가 약하다. 수 십년의 교회 역사를 가지고 있으면서도 몇십명의 교인들이 고작이다. 보통 20년 이상 90년 미만의 교회들 이지만 모두 상황은 비슷하다. 그 이유는 농어민의 도시이주로 말미암아 인구 감소가 주원인이다.

전가족의 이동-경제적인 빈곤과 자녀들의 교육문제를 위하여 이농한 경우가 많으며, 여기에는 신자나 불신자나 마찬가지다.

부분적인 이동-상급학교(,)진학과 취직을 위하여 주로 젊은층의 이주로 말미암아 교회의 고령화가 큰 문제점으로 지적되고 있다.

사망에 의한 감소(자연적)

도시에는 많은 사람이 유입되는 형편이므로 잘 못 느끼지만 농어촌에서는 질병과 사고로 말미암아 인구 감소의 추세가 뚜렷하게 드러난다.

산아제한에 의한 감소

시대의 흐름을 따라 농어촌에서도 자녀를 많이 낳지 않는 사고방식으로 말미암아 인구가 현저하게 줄고 있다. 본 교회 옆의 초등학교 학생수가 20년 만에 200명이나 줄었다.

(2) 재정의 빈곤

농어촌 경제의 약화로 교회의 재정도 어려워 미자립이 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재정의 빈곤으로 아무 일도 할 수가 없다. 교역자의 사례비 충당도 어려우니 어찌 지역 사회를 위한 봉사활동을 할 수가 있겠는가?

(3) 인력의 부족

젊은이들이 취직과 결혼을 위하여 모두 도시로 나가 교회안에 일할 만한 일군이 없다. 중학생들이 성가대를 하는 경우가 허다하며 심지어 주교 교사까지 하는 경우가 있다. 어느 교회는 성가대는 아예 없고 주교 교사도 4050대가 맡아서 한다. 이런 상황에서 농어촌 교회들이 어떻게 힘을 낼 수가 있겠으며, 참된 교회 교육이 이루어지겠는가? 실로 안타까울 뿐이다. 농어촌 목회자들의 입에서 나오는 탄식소리 ! 주여 일꾼들을 좀 보내 주소서.”

(4) 영적 생활의 부진

농어촌 교회들의 성도들은 평균 연령이 4050을 넘었으며 신앙경력도 꽤나 길다. 그런 반면에 신앙적(영적) 성숙도는 거기에 비례하지 못한다.(소수제외)그러므로 경건미는 있는 것 같으나 능력이 없다. 성숙한 신앙이 되지 못하므로 자연히 육적인 신앙생활로 나타난다. 모든 교회 일을 전통과 인간의 생각으로 처리하려고 하니 부작용이 생기고 문제자 발생한다. 그리하여 교회는 더욱 침체의 늪으로 빠지고, 생기도 없고 활력도 없는 냉냉한 상태가 되어 말라져 가는 나무처럼 되지 않을까 걱정스럽기만 g하다.

 

농어촌 교회의 전도가 잘 안 되는 이유

(1) 전도하지 않기 때문이다.

목회자와 성도들 중 누가 전도를 잘 안하는가? 정답은 양쪽 다 안한다는 것이다.

첫째는 목회자의 구령의 열정이 미지근한 때문이다. 목회자라면 누구나 영혼 구원에 대한 관심을 많이 가지고 있다. 그러나 우리가 관심을 가지는 정도가 아니라 사람의 영혼을 구원하고 살리고자 하는 뜨거운 열정이 있어야 하는데 뜨거운 열정이 없기 때문에 이 중요한 일을 뒤로 미루거나 아예 하지 않는 것이다.

전도하지 않는 교회가 된 것은 전적으로 목회자의 책임이라 할 수 있다. 구원받은 영혼 살리는 양육도 중요하지만 죽은 영혼 살리는 전도는 더욱 중요한 것이다.

둘째는 성도들의 전도에 대한 실종 상태이다. 성도들 또한 전도하지 않는다. 아니 전도할 줄 모른다고 표현이 맞을지 모른다. 성도들이 전도도 하지 않고 할 줄 모르는 것은 성도들이 전도에 대한 훈련이 되어 있지 않기 때문이다. 그래서 전도하는 것이 두렵고 확신도 없기 때문에 전도하지 않는 것이다. 전도하는 성도들이 되려면 먼저 훈련이 된 전도자가 되어야 한다. 예수님께서도 제자들에게 전도하는 모습을 보여주면서 훈련시킨 후에 실습장으로 전도하러 내 보내셨다. 훈련된 전도자가 되지 않고서는 전도를 한다 할지라고 실효성이 없다. 우리 농어촌 교회가 전도도 하지 않고 전도 훈련도 없으니 어떻게 전도가 되겠는가?

(2) 전도에 대한 부정적인 생각 때문이다.

목회자나 성도들 모두가 전도해도 안 된다는 부정적이 생각에 사로 잡혀있다. 오늘날 우리 농어촌 교회가 전도하지 않으므로 교인의 수가 줄어드는 것은 당연한 것이다. 어떤 이는 단순히 이농현상의 영향이라고 생각하지만 그 이유만은 아니라고 생각한다. 농어촌 인구가 줄어들지만 그래도 전도할 대상자는 수 없이 많다. 다만 우리가 안일한 가운데 전도하지 않기 때문에 교회가 침체되어 간다는 사실을 직시해야 할 것이다. 물론 전도하지 않는 이유도 있다. 전도 해봐야 잘 믿지도 않고 몇 번 나오다가 안 나오고 연례행사로 부흥 집회 때나 전도 잔치 때 강권하여 모셔오면 한 번 인사치례로 나와 주고는 끝이다. 이러한 여러 가지 상황으로 우리들의 생각에 전도해도 안 된다.”는 부정적인 관념이 쌓여 우리는 전도하는 것을 너무 쉽게 포기한다.

(3) 교회에 대한 불신자들의 거부 반응 때문이다.

농어촌 교회에 대한 불신자들의 반응은 한마디로 냉담한 반응이다.

그들은 교회에 대하여 자기들과는 전혀 상관없는 것처럼 생각하고 있다. 그래서 교회를 가까이 하려고 하지 않으니 전도가 잘 될 리가 없다.

첫째로 교회가 자기들과의 전통에 위배 된다고 생각하기 때문이다.

농어촌의 종교가 불교, 유교의 조상숭배, 미신 숭배가 대부분이다. 그들은 자신들의 섬기는 종교가 교회하고 맞지 않다는 것이다. 그래서 무조건 거부부터 함으로 전도에 걸림돌이 되고있다. 대립적인 고정 관념 때문에 복음을 받아들이지 못하고 있는 것이다.

둘째로는 교회의 불화가 전도의 문을 막고 있다.

교회 주위에 나가서 전도해 보면 불신자들이 예수믿는 너희들이나 먼저 잘하라고 오히려 믿는 자들을 충고한다. 이 말의 의미는 예수 믿는 자들이 무엇인가 잘못하는 것이 있다는 것을 나타낸다. 신자들이 나가서 전도해 보면 믿는 자들끼리의 싸움, 불신앙적인 행동, 이기주의적인 모습이 전도의 문을 가로막고 있다는 것을 알 수 있다. 예수님 당시 바리새인이나 서기관과 같은 종교 주의자들의 외식적인 행동 때문에 많은 사람들을 실족케 했던 것처럼 오늘 날에도 이런 현상이 나타나고 있는 것이다. 불신자가 전도의 문을 막는 것보다 신자들의 잘못된 행위가 많다 보니 허물이 감추어지기도 하지만 농어촌에서는 자고나서 눈뜨고 만나는 사람이 매일 그 사람이니 한 번 잘못 보인 행동이 오래도록 전도에 방해가 되고 있는 것이다.

(4) 지속적인 전도가 되지 않기 때문에 전도가 안된다.

농어촌 교회가 전도도 잘 안하는데 어떻게 지속적인 전도를 할 수가 있겠는가? 혹 부흥집회나 특별 행사를 통하여 전도를 한다 할지라도 일회성으로 끝나는 경우가 많기 때문에 전도의 맥이 끝기는 경우가 허다하다. 그러므로 결국 전도가 되지 않는다.

 

농어촌 교회 활성화 방안

농어촌 교회가 전도를 해도 잘 안 된다는 이유만으로 전도를 포기해야만 할까? 만약 전도를 포기한다면 어떻게 될까? 교회의 부흥은 절대 없을 것이다. 전도는 교회의 부흥과 직결되는 문제이기 때문에 전도를 포기 한다는 것은 곧 교회의 부흥을 포기하는 것과 같다. 그러므로 전도에 대한 전략을 세워 적극적으로 전도에 힘씀으로서 교회의 부흥과 하나님 나라의 확장을 꾀하여야 하겠습니다.

농어촌 교회는 특별한 전도법이 필요 없습니다. 그 이유는 전부는 아니지만 특별한 전도법이 별로 소용이 없기 때문입니다. 도시인들은 항상 새것을 추구하고 색다른 무엇을 요구하기 때문에 새로운 아이디어 전도법이 필요하지만 농어촌은 그렇지 않다. 아무리 세월이 흘러도 변하지 않는 주위 환경, 자고나서 눈만 뜨면 또 만나게 되는 변함없는 사람들, 아무리 쳐다보아도 시대감각에 뒤떨어진 변하지 않는 교회의 모습, 모든 것이 옛날 그대로인 곳이 농어촌이다. 이런 상황속에서 전도하기란 여간 쉽지가 않다.

그러나 이 어려운 환경속에서도 전도전략을 세워 전도가 안되는 것은 아니다. 농어촌 전도 전략은 단기적으로는 안되고 장기적인 안목을 보고 세워야 한다. 일회성 반짝 전도는 열매를 맺 못한다.

 

1. 이미지(Image) 전도

우리 농어촌 교회에서는 이미지 전도가 매우 중요하다고 생각한다. 이미지 전도란 글자 그대로 이미지(:)로 전도한다는 것인데 3가지 이미지가 있다.

첫번째가 교회에 대한 이미지이고,

두번째가 목회자에 대한 이미지이며,

세번째가 성도들에 대한 이미지이다.

농어촌 교회는 어떤 특별한 전도보다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이 있는데 그것은 이미지 쇄신이다. 현재 보여주고 있는 3가지 이미지를 바꾸어 주지 않으면 전도가 잘 될 수 없다. 3가지 이미지에 의해서 전도가 좌우 된다.  

(1) 교회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어야 한다.

불신자들의 농어촌 교회에 대한 이미지는 다음과 같다.

병자들만 가는 곳

가난하거나 힘없는 자들만 가는 곳

일없는 사람만 가는 곳

불신자들이 절에 가는 것처럼 하나의 종교를 가지기 위해 가는 곳

그리고 이들은 교회 가봐야 별 덕을 못 본다고 생각하며

예수 믿는 것을 하찮은 것이라고 생각하고

현재 교회를 보면서 아무 일도 안하고 못하고 무능력한 교회라고 생각하고 있다.

이와 같이 교회에 대한 잘못된 이해와 편협적이고 부정적인 사고방식을 불식 시키지 않고서는 전도가 되지 않으니 교회관에 대한 이미지 쇄신을 해야한다.

이와 같이 추락된 교회의 위상을 어떻게 회복할 것인가?

교회가 좋은 이미지를 보여주기 위해서는 먼저 그들에게 베푸는 사역이 필요하다. 오늘 우리 농어촌 교회가 지역 사회에 너무 무관심 한 것 아니가 생각된다. 교회가 지역 사회를 위한 프로그램을 계획하여 그들의 닫혀진 마음의 문들을 열게하고 복음을 가까이 접할 수 있는 계기를 만들어 주어야 한다. 그런고로 교회가 먼저 지역 주민을 위하여 봉사할 일거리를 찾아야 한다. 이 지역에서 교회가 우선적으로 해야 할 것이 무엇인지 상황파악을 해서 하나하나 실천해 나가면 좋다. 농어촌에는 경제적으로 가난한 자도 많고, 병든자도 많고, 가정의 문제로 고민하는 자도 많고, 노인들도 많다. 이들에게 교회는 가난한 자들에게는 물질로 구제하고, 병 든자를 찾아 위로하고 격려하며, 근심 걱정 있는자들을 찾아가 상담하여 복음을 통하여 치유할 수 있는 방법을 가르쳐 주며, 노인들을 위하여는 경노 잔치를 열어 그들을 기쁘게 해주며, 그리고 결혼 적령기에 있는 젊은이들을 짝 지워 결혼도 시켜주면 얼마나 좋아 하겠는가? 주님이 우리에게 무한한 사랑을 베푸신 것처럼 교회가 지역 주민들에게 사랑의 봉사와 섬김을 통하여 그들의 마음속에 교회가 참 좋은 일을 한다.’는 선입감(이미지)를 갖게 하는 것이 바람직하다.

 우리 삼산교회에서 지역사회 봉사를 위하여 실시한 프로그램 내용이 있는데 다음과 같다.

1) 봉사부분

자원봉사 : 여성들 중심으로 이루어지는 섬김(자원봉사회, 적십자회)

의료봉사 : 의료기관 교섭하여 무료진료

하기봉사 : 탁아소 운영, -한방 진료, 미용봉사(도농 협력 차원에서)

후원봉사 : 지역행사후원(-군 체육대회), 군 청소년 길거리 농구대 회, 경조사

불우 이웃 돕기 바자회 : 여전도회 주관

복지시설 방문 : 양로원, 애육원, 재활원(각 기관별)

북한 동포 돕기를 위한 사랑의 바자회(매년 12월 학신회 주회)

심장병 환자돕기를 위한 사랑의 음악회

신년 달력배부 : 성탄절 때 떡과 함께 달력 배부

농어촌 목회자 부부 초청 세미나(15)

가족 상담소 설치 운영(국고지원)

경로대학 운영(무료급식, 노인상담, 물리치료)

2) 구제부분

가난한 가정 돌아봄(명절, 성탄절 : 맥추감사와 성탄 감사헌금은 전액구제)

장학금 지원(졸업, 재학생 : - - - )

경노잔치(매년 5월 실시 - 올해 33)

결혼 주선(지금까지 10가정 결혼시켜 8가정 본교회 출석)

3) 전도부분

부흥집회 (1년에 1번 전도하는 기회로 삼음)

전도잔치 (특별 행사로서 매년 또는 격년으로 : 연예인 초청 전도잔치)

4) 선교부분

<1> 국내

미자립교회 후원 : 16교회

<2> 국외

선교사 후원(3) - 필리핀, 피지, 베트남

현지 교회당건축(1:2-3천만원,2:확장 리모델링-6500만원)

현지 유치원 후원(학생 교육비 지원)

현지 신학교 강의 및 세미나 인도(필리핀)

현지 장학생 후원(인도네시아)

위와 같이 4가지 사역을 통해 교회의 이미지를 쇄신함으로서 전도의 문이 열리게 해야한다. 

(2) 성도에 대한 이미지를 바꾸어야 한다.

불신자가 보는 성도들에 대한 이미지는 어떨까? 한마디로 부정적이다. 어느 농촌교회에서 전도를 나가 동네 주민들에게 복음을 전하자, 주민들이 이렇게 말했다고 한다. “당신들 교인이나 똑바로 믿고 행동이나 바르게 하라.”고 충고했다고 하니 불신자들의 성도에 대한 이미지가 어느 정도인지 짐작이 간다.

상황이 이러한데 전도한다고 전도가 되겠는가? 전도가 되게 하려면 성도들의 이미지부터 바꾸어야 한다.

성도들이 불신자들로부터 인정받지 못하는 부분은 무엇인가?

대부분 직분자들이 비판의 대상이 되고 있다. 직분자가 직분자 답지 못하다는 것이며, 본이 되지 않는다는 것이다.

교인들이 너무 이기적이라는 것이다. 양보할 줄도 모르고 이해심도 적고 자기 욕심만 채우고 자기들끼리만 모임을 갖는 것에 대한 불만이 많다.

불신자보다 못한 행동에 대하여 실망감이 커 전도에 대한 거부감을 나타낸다. 교회에 나가도 변하는 것이 없다는 것이며, 가정이 화목해야 함에도 더 다투고 불화하며, 이웃관계에서도 이기적이며 고집이 세며, 덕을 세우지 못할 때 실망한다.

이와같이 불신자들도 자기들은 바르지 못해도 신자들은 바르게살기를 바라며, 믿는 자가 자기들 보다 한 차원 높은 삶을 살기를 기대하고 있는데 기대 이하 치로 살게되면 좋은 이미지를 보여 줄 수 없게 되는 것이다.

성도들이 어떻게 하면 좋은 이미지를 보여 줄수 있을까?  

첫째는 신자들의 삶이 변화되는 것이다.

둘째는 성도들의 화목한 생활이다.

셋째는 성도들의 섬김과 봉사생황이다.

넷째는 성도들의 겸손한 자세이다.

예수를 믿은 후에 삶이 변화되지 않거나, 믿는 가정이 화목하지 않거나, 성도들 간에 불화하거나, 이웃들을 향한 섬김과 봉사가 전혀 없을 때 성도들은 불신자들에게 좋은 이미지는커녕 전도의 문을 닫게 만드는 것이다. 그러므로 우리 성도들은 적극적인 변화된 삶과 화목한 생활, 그리고 겸손한 자세로 희생적인 봉사와 섬김을 통하여 주민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심어 주어야 한다.

이런 변화와 성숙된 삶은 철저한 신앙 교육으로 되어진다.

농어촌교회 성도는 단계적으로 신앙 훈련을 제대로 받지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고정적인 집회 참석만으로는 신앙의 질을 높일 수가 없고 신앙의 년 수만 가지고도 성숙한 신앙인이 되는 것도 아니다. 농어촌 교회라 할지라도 철저한 성경공부로 신앙의 지식을 배우게하며, 제자반 훈련으로 성숙한 그리스도인이 되게하며, 기도운동을 통한 하나님의 능력을 체험하게 하며, 전도를 통하여 자신들의 신앙을 재점검하는 계기가 되게해야 한다. 또한 이런 신앙훈련을 통하여 직분자들을 세워야 하나님과 교회를 섬기는 봉사자들이 될 것이다. 만약 잘 훈련되지 못한 자가 교회의 직분자가 되면 교회에 많은 손해를 끼치게 된다.

사실 우리 농어촌 교회가 직분자를 세우는데 있어서, 교회 조금 잘 나오면 세우고, 몇 년 되었으면 세우고, 앞으로 잘하라고 세우고, 일꾼이 없어서 세우고 하다보니까 너무나 많은 문제가 발생한다. 결국은 교회의 시험거리요 모두의 고민거리가 된다. 교회가 직분자를 세우는데 있어서 오늘 우리는 성경의 원리(딤전3:113)를 고수할 필요가 있다. 특히 외인(믿지 않는 자)에게는 인정받는 자를 세워야 할 것이다.

이렇게 훈련된 자들이 세상에 나가 빛과 소금의 역할을 할 뿐아니라, 그리스도의 향기를 날림으로써 성도의 좋은 이미지를 보여 줄 때 전도의 효과가 있게되는 것이다. 농어촌 목회는 사람키우는 목회다. 사람이 키워지면 그 사람 때문에 전도가 된다.

(3) 목회자에 대한 이미지 쇄신이 있어야 한다.

지역 주민들의 목회자에 대한 인식이 부정적으로 비쳐져서는 안된다.

할 일이 없어 노는 사람처럼 보여서는 안된다.

사택에 틀어 박혀 바깥일에 무관심한 사람처럼 보여서도 안된다.

저 목사는 우리들과는 전혀 관계가 없는 사람이로구나 하고 생각되어 져서도 안된다.

주민들과 사이에서도 융통성이 없는 사람으로 낙인 찍혀서도 안된다.

목회자는 교회의 대변자이기도 하지만 교회의 얼굴이라고 할 수 있다. 그런 목회자가 지역 주민들로부터 좋은 반응을 받아야 함에도 불구하고 목회자에 대한 이미지가 좋지 않다면 어떻게 되겠는가?

목회자는 좋은 이미지를 나타냄으로서 지역 주민들로부터 인정받는 자가 되어야 하고 환영받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우리지역 정신적인 지도자다.

우리지역 유지다.

우리지역을 돕는 자다.

우리지역에 꼭 필요한 분이시다.

그러나 이와 같이 인정을 받으려면 짧은 기간에는 안되고 장기목회를 할 때 가능해진다. 이렇게 인정받는 목회자가 전도를 하게 될 때 복음에 귀를 귀울이게 될 것이다.

목회자는 자신이 섬기고 있는 성도들에게는 좋은 이미지를 나타내어야 한다.

어느 농촌 교회에 있었던 일이다. 어느 주일날 얼마되지 않은 성도들이 전원 예배에 출석하지 않았다. 성도들이 목사의 설교를 듣기를 거부했던 것이다. 한편으로 생각해보면 그 성도들이 징계를 받아야 마땅하지만, 우리는 왜 그랬을까? 하고 생각해 보아야 한다. 나중에 알아보니 사실이 이러했다. 수가 얼마 모이지 않는 농촌 교회라고 해서 가볍게 생각했는지 모르지만, 목회자가 기도도 잘 안하고, 교인 몇 안되는데 심방도 안하고, 설교도 부실하니 이 목회자 밑에서 신앙생활을 못하겠다고 보이콧 했다는 것이었다. 그리고 이웃 교회로 피난 가서 예배를 드렸단다. 기가 막힐 노릇이다.

오늘날 목회자의 권위가 많이 상실되어 있다고 한다. 그 이유가 무엇인가?

몇 가지 부분에 대하여 생각해 보고자 한다.

설교부분 : [내용면] 모든 설교에는 완벽한 것은 없다고 본다. 그러나 내용이 너무 부실해서도 안된다. 설교의 핵심, 방향, 목적이 분명해야 한다. 그리고 [표현에 있어서]말에 대한 과장 표현, 설교 중에 인신공격, 언어폭력(특히 저주론)을 경계해야 한다. 이런 것들 때문에 성도들이 상처를 입고 목회자들에 대하여 실망을 하게된다.

사역부분 : 목회자의 생활은 그 생활 자체가 목회사역의 일부분이다. 본연의 의무에 충실해야 함에도 불구하고 목회사역이 부실해서는 안된다. 성경읽기, 새벽기도 생활, 심방과 상담, 전도에 열심히 힘써야 한다. 이런 목회의 기본 사역을 게을리 함으로써 목회자의 권위가 상실되어서는 안된다.

인격부분 : 목회자는 성품이 온유하고 겸손해야 한다. 너무 고집스러운 것은 금물이다. 대인관계도 원만해야 한다. 성도들과의 인간관계가 좋지 못하면 지지받지 못한다.

경제부분 : 물질에 대하여 초월 정신이 필요하다. 재정사용에 대해서는 정확해야하며, 교회 회계장부는 목회자가 취급하지 말아야 한다. 이런 문제 때문에 오해받지 않도록 주의해야 한다.

목회자가 성도들로부터 인정받고 좋은 이미지를 남기려면

첫째는 목회에 대한 비전이 확실해야 한다.

둘째는 인격 수양에 힘써야 한다.

셋째는 설교에 성실해야 한다.

넷째는 성도들과의 좋은 관계를 유지해야 한다.(잠언27:23)

교회의 침체는 목회자에게 책임이 있다. 제임스 민즈라는 목회학 교수는 많은 교회가 병든 것은, 기도하지 않고, 영적으로 건조하며 목회자가 무기력하기 때문이라고 지적 했다.

목회자는 자신이 섬기는 성도들에게 좋은 이미지를 보여주는 것은 물론 믿지 않는 지역 주민들에게도 좋은 인상을 심어 줌으로써 인정받고 존경받는 지도자가 되어야 한다.

지금까지 3가지 이미지에 대하여 생각해 보았다. 3가지 이미지가 농어촌 전도의 기초석이다. 3가지 좋은 이미지 없이는 전도 해봐야 헛일이다.

이웃과 지역 사회에 영향력을 미치고 불신자들로 하여금 교회를 찾아오게 하려면 목회자에 대한, 성도에 대한, 교회에 대한 새로운 이미지를 보여 주지 않으면 안된다.

 

 

미래의 농어촌 목회

최학무 목사

(고성 삼산교회)

 

한국에서 기독교의 발전은 짧은 기간임에도 불구하고 엄청난 변화를 가져왔다. 최초의 농촌교회 의주교회, 솔내교회를 시작으로 하여 130년이 조금 지난 현재 5만 교회 성도 1,000만 명이라는 숫자는 기독교 역사상 유례없는 발전 이였다고 모두 말하고 있다. 여기에는 초기 한국 선교의 주역들이었던 선교사들의 헌신적인 노력과 순교, 그리고 초기 한국 성도들의 열심 있는 전도와 희생에서 비롯되었다고 할 수 있다. 초기 한국성도들은 신앙을 지키기 위하여 생명을 아끼지 않고 신앙을 고수했으며 마지막까지 순교하는 제물이 되기도 했다. 믿음의 선진들의 좋은 신앙의 삶이 오늘날 기독교 부흥의 밑거름이 되었다고 볼 수 있다.

현재 한국교회의 부흥이 대부분 대도시 중심으로 이루어져 가고 있다. 농어촌 인구의 도시로의 이주 때문에 도시 교회는 자연 증가의 성장이 이루어 졌고, 1970년 맥가브란(Mcgavran)의 교회 성장 이론의 소개와 함께, 경제 성장으로 인해 한층 더 가속화되었다. 반면에 읍면 단위 이하의 농어촌 교회들은 말할 수 없이 쇠퇴해져 가고 있다. 농어촌 인구의 감소로 교인의 수가 줄어들므로 교세가 약화되었고, 농어촌 경제의 둔화로 교회의 재정 자립이 더욱 빈곤한 상태에 이르게 되었으며 많은 교회가 미자립 교회로 전락하고 말았다. 또 젊은이들의 도시 이주로 교회는 고령화현상으로 인력난이 가중되고 교역자들의 잦은 이동으로 신앙생활의 부실로 영적 생활이 부진하게 되었다.

이런 상황에서 우리 농어촌 목회자들이 도시 교회를 바라보며 도시 목회만 선호할 것이 아니라 현재 우리가 목회하고 있는 이 농어촌 현장에서 새로운 변화를 시도해야 할 것이다. 목회자가 변해야 교회가 변한다.’ 고 주장한 제임스 민즈의 말처럼 목회자들도 농어촌 교회를 바라보는 시각이 달라져야 한다. 농어촌 목회는 어렵다, 힘들다, 희망이 없다, 라고 만 생각하는 부정적인 고정관념에서 벗어나야 한다.

농어촌 교회도 희망이 있다. 하면 된다는 긍정적인 믿음의 사고방식으로 바뀌어져야 한다. 목회자자의 인식이 바뀌지 않고서는 농어촌 교회는 침체의 늪에서 빠져 나올 수가 없다.

목회자의 인식이 목회 전반에 걸쳐 새롭게 갱신되지 않는다면 농어촌 교회의 부흥은 절대로 없을 것이다.

21세기 미래 농어촌 목회(교회) 활성화를 생각해 보면서 농어촌 교회(목회) 활성화 방안을 몇 가지 제시해 본다.

 

첫째, 부흥 성장 목회를 지향해야 한다.

미래 농어촌 교회 목회에 있어서 여러 과제가 있겠지만 단연 1순위는 교회 부흥과 성장이라고 생각한다. 성장 없이는 자립이 없고, 교회도 활성화 되지 못한다. 농어촌 교회의 부흥과 성장에 있어서 가장 중요한 위치를 차지하는 것은 담임 목회자이다. 목회자가 바른 목회 가치관, 바른 목회 비전, 바른 목회 철학을 가지고 있을 뿐만 아니라 목회자로서의 자질이 갖추어져 있어야만 농어촌 목회에서도 성공할 수 있다.

올바른 목회관을 가지고 있다 할지라도 자질이 부족하면 목회에 실패하기 쉽다. 농어촌 교회라고 아무 목회자가 와서는 안 된다. 농어촌 목회자도 인격(성실, 영적생명력, 상식, 목회열정)과 기량(성경에 대한 전문성, 문화적 민감성, 인간관계의 우호성, 대화술, 지도력 등)이 갖추어진 목회자라야 한다. 그리고 구령의 열정을 가지고 성도들과 함께 열심히 전도할 때에 교회에 큰 부흥의 역사를 기대할 수 있다. 교회의 부흥과 성장은 그 목회자에 의해 좌우된다. 목회자와 성도들이 교회성장이라는 초점에 맞추어 전도에 힘써야 할 것이다.

 

둘째, 자립 목회를 해야 한다.

교회의 성장 없이는 자립이 불가능한 곳이 농어촌 교회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전도를 통한 교회 부흥과 성장에 힘써야 하는 반면 자립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경제 자립이 되지 않는 한 교회가 활성화될 수가 없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농어촌 목회자는 현재의 어려운 상황 속에서도 자립을 위한 의지를 가지고 자립 목회를 지향해야 한다.

농어촌 교회의 자립 또한 쉬운 문제가 아니다. 그러므로 인간적인 방법으로 자립해 보려고 여러 가지 해보지만 실패하는 경우가 많다. 교회가 자립할 수 있는 좋은 방법은 자립을 하나님께 맡기는 것이다. 목회자는 성도들을 말씀으로 잘 가르쳐서 성도들을 성숙한 신앙인으로 만들고, 성도들의 헌금생활을 잘 지도할 뿐 아니라, 교회가 구제하고 선교하는데 힘쓰게 하며, 그리고 모든 필요한 것을 위해 하나님께 기도하는 것이다, 이 방법이 성경의 원리를 따르는 것이다.

이 방법은 필자의 교회가 개척해서 지금까지 33년 동안 목회하면서 경험한 것이다, 교회가 특별한 소득사업 없이도 자립할 수 있었던 것은 오직 하나님을 믿고 성경의 원리를 따라 목회할 때 하나님께서 저희 교회에 많은 것을 주셨기 때문이다.

 

셋째, 장기 목회를 해야 한다.

농어촌의 교회가 부흥하지 못하고 침체되고 피폐해지는 이유는 목회자들이 잦은 이동 때문이다. 농어촌 교회의 퇴보는 목회자들에게도 어느 정도 책임이 있다. 농어촌 목회자들도 장기 목회를 해야 한다. 단기 목회로는 교회를 부흥시킬 수 없다. 사명을 가지고 오랜 장기 목회를 할 때에 교회의 성장을 가져온다. 도시 교회나 농어촌 교회가 성장하는데 있어서 필수적인 조건이 장기 목회라는 것이 통계에 의해서 증명되고 있다. 우리 목회자들도 철새처럼 떠돌아다닐 것이 아니라 어떤 곳이든지 한 곳에서 인내하며 희생정신으로 목회할 때 우리 농어촌 교회들도 부흥하게 될 것이다.

 

넷째, 제자훈련 목회를 해야 한다.

제자훈련 목회는 도시 교회만 하는 전유물이 아니다. 농어촌 교회도 교인들을 훈련시키고 다른 사람들을 섬길 수 있는 일꾼들을 양성해야 한다. 교회 안에 훈련받지 못한 성도들이 가끔씩 문제를 일으키는데 잘 훈련된 성도들은 문제를 일으키지 않는다. 농어촌 목회자들도 혼자서는 목회를 할 수가 없다. 일꾼을 만들어서 목회자를 돕도록 해야 한다. 제자훈련은 한 개인을 성숙한 그리스도인으로, 일꾼으로, 섬기는 자로 만들어서 적절한 위치에서 주의 몸 된 교회를 봉사하도록 하기 위함이다. 그러나 제자훈련 목회가 쉬운 것은 아니다. 목회자의 헌신적인 노력과 희생이 따라야 한다. 존 맥스웰은 당신 주변에 있는 지도자를 개발하고, 팀을 육성해야 한다.’ 라고 말했다. 일군이 없다고만 할 것이 아니라 일꾼을 키우는 제자훈련 목회를 해야 한다.

 

다섯째, 노인 목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최근 우리 사회는 현대 의학 및 문명의 발달과 생활수준의 향상으로 평균수명이 연장되어 고령후기 노인들이 늘고 있다. 특히, 농어촌 지역에서는 젊은이들이 도시로 이동함으로써 노인 인구 비율이 증가하여 60세 이상의 노령 인구가 많아졌다. 농어촌 인구 53%가 혼자 또는 노인부부가 사는 것으로 나타났으며, 그들은 노동문제, 건강문제, 경제문제로 어려움을 겪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서 교회가 노인목회에 관심을 가질 필요성이 있다. 경기도 화성군의 설문조사에 의하면 97개의 농어촌 교회 중에 70%가 노인복지 프로그램을 가지고 있지 않았고 일회성 경노잔치라도 하는 교회는 16%에 불과했다.

농어촌 교회들이 경제적 빈곤, 인력의 부족, 목회자의 무관심 때문에 노인 복지 정책에 대하여 회피만을 할 수는 없다. 어려운 여건 속에서도 부모를 공경하듯 노인들을 위한 작은 배려가 실천되어져야 할 것이다. (저희 삼산교회를 예로 들면, 교육관 큰방 하나를 개방하여 노인들이 언제나 먹고 자고 생활할 수 있도록 제공하고 있다.)

그리고 교회가 부흥되고 성장되면 노인복지관 같은 것을 건립하여 운영함으로서 많은 노인들을 체계적으로 도울 수 있는 비전을 가져 보는 것도 노인 목회의 소망이었는데, 이 꿈이 2003년도에 이루어져서 현실로 나타났습니다.(노인물리치료방, 노인대학 운영)

 

여섯째, 환경목회에 관심을 가져야 한다.

한국이 경제 성장을 위하여 경제 개발이라는 명분아래 산업화, 공업화, 도시화를 이루면서 환경문제를 심각하게 만들었다. 수질오염, 대기오염, 토양오염 등 치유할 수 없는 상황에 이르게 되었다. 이것은 한국뿐만 아니라 전 세계의 추세이기도 하다. 그리고 환경오염이 도시에만 국한 된 것이 아니라 모든 것의 기초가 되는 농어촌까지 오염되고 있음을 발견할 수가 있으니 심히 우려되지 않을 수 없다.

이런 상황에서 한국 교회가 일치단결하여 환경 보전 운동과 환경오염 방지를 위해 환경 목회에 관심을 가져야 하며 실천해야 한다. 이제 농어촌의 선교 과제는 단순히 사람을 구원 하는데만 머물지 아니하고 창조 질서의 회복에까지 미친다는 사실을 인식하고 환경목회의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추진 실시해야 할 것이다.

이 일은 농어촌 교회만 할 것이 될 일이 아니다. 도시나 농어촌이나 국가나 전 세계가 이 일에 동참을 해서 자연을 보호하고 보전하는 일에 힘써야 할 과제이다. 그러므로 우리 교회들이 작은 일부터 먼저 실천하면서 크게 확대해 가야 할 것이다.

 

일곱째, 농 협력목회가 이루어지도록 해야 한다.

도시 교회나 농어촌 교회는 따로 독립해서 존재할 수는 없다. 상호 연관성을 가지고 협력하지 않으면 같이 어려움을 겪기 때문이다. 왜냐하면 교회는 한 몸이기 때문이다. 지금의 도시교회의 성장은 농어촌 교인들의 도시이주에 밑거름이 되었던 것이다. 그러므로 도시 교회가 어려운 농어촌 교회를 외면해서는 안 된다.

둘 다 주님의 몸 된 교회다. 둘 다 부흥하고 성장해야 한다. 그러나 농어촌 교회는 지금 어려운 상황에 놓여 있다. 농어촌 교회가 회생되기 위해서는 도시교회들의 집중적인 관심과 지원이 필요하다.

도시 교회는 농어촌 교회에 경제적 지원 및 지역 사회를 도울 수 있는 프로그램(경노관광, 농촌 일손 돕기, 하기 봉사, 의료봉사)을 개발 지원하고, 농 협력목회가 이루어져야 한다.

 

여덟째, 상담목회

오늘의 농어촌은 아름다운 자연만 펼쳐져 있는 곳이 아니라 사람들이 모여 사는 곳이기 때문에 농어촌 가정에도 문제가 있기 마련이다. 흔히 볼 수 있는 부부갈등, 부모와 자녀간의 갈등, 고부간의 갈등, 형제간의 갈등, 이웃간의 갈등, 심지어 교회 안에서 성도들 사이에도 갈등이 있다. 이런 문제가 생겼을 때, 상담사역이 필요하다. 갈등의 문제가 해결 안 되면 신앙 생활하는데도 막대한 지장을 가져온다. 이제 농어촌 목회자들도 상담사역을 시간만 허비한다는 부정적인 생각을 버리고, 예수님께서 상담을 통하여 제자들과 백성들을 지도하고 그들의 문제를 풀어준 것처럼 농어촌 교회에서도 성경적 입장에서의 상담 목회에 대한 중요성과 필요성을 갖고 준비해야 할 것이다. 그러므로 상담 사역을 통하여 그들의 문제를 풀어줌으로써 서로간에 화목을 이루도록 해 주어야 한다.

(현 농어촌의 실정: 조모, 조손, 한 부모, 다문화)

* 가족상담소 운영

끝으로, 농어촌 교회도 해외선교(3세계)에 참여해야 한다.

국내에도 선교할 곳이 많은데 해외 선교에 너무 치중하는 것이 아니냐? 고 해외선교에 부정적 시각을 가지고 있는 사람들이 있다. 그리고 농어촌 교회가 해외선교가 웬말이냐? 고 의아해 하는 사람도 있다.

그러나 우리 주님의 음성을 들어야 한다. ‘너희는 가서 모든 족속으로 제자로 삼으라는 주님의 지상 명령을 기억해야 한다. 선교는 도시 교회만 하는 것이 아니라 어느 누구나, 도시 교회건 농어촌 교회건 다 할 수 있다.

특히, 3세계 선교에 농어촌 교회가 앞장 설 필요성이 있다. 전 세계 80~90%가 농어촌 지역이다. 우리의 농어촌과 상황이 비슷하다. 어떻게 보면 농어촌 교회가 부흥하고 성장되어지고, 자립도 되고 활성화되어야 한다. 농어촌 교회도 부흥되어서 선교할 수 있다는 비전을 갖고 선교 목회에도 관심을 가져야 한다.

실제로 필자가 섬기는 삼산교회가 농어촌 교회이지만 제 3세계 선교의 비전을 갖고, 필리핀, 미얀마, 베트남, 피지, 몽골 등에 파견된 선교사들과 협력 선교에 동참하고 있으며, 97년도에는 필리핀 민다나오섬 딸랄각 지역에 원주민 교회(70)를 건축함으로써 현지 선교에 직접 동참하기도 하였다. 농어촌 교회가 부흥 성장되고 활성화만 된다면 제 3세계 선교는 농어촌 교회도 담당할 수 있다고 확신되어진다. 

결론적으로 21세기를 대비하여 농어촌 목회도 이제 달라져야 한다고 생각한다. 현재의 목회 방법이나 방향 가지고는 농어촌 교회가 활성화될 수 없다. 농어촌 교회가 활성화되려면 안일하고 구태 의연한 구식대적인 방법 가지고는 안 된다. 이 시대에 맞는 목회의 방법이나 방향 설정을 새롭게 해야 한다. 그러므로 다양한 목회 프로그램을 개발하여 능동적으로 대처해야 농어촌 교회의 활성화를 가져올 수 있다.

그러나 지금까지는 그렇게 하질 못했다. 목회의 비전도 없이, 사명감도 없이 목회에 임했던 것이 사실이다. 이제부터라도 분명한 농어촌 목회에 대한 철학과 목회 비전을 가지고 새롭게 시작한다면 농어촌 목회도 성공할 수 있다고 믿어 의심치 않는다. 그리고 분명한 것은 교회의 부흥과 자립은 하나님의 손에 달려 있다는 것이며, 목회의 방법이나 방향 설정은 성경적 원리를 따라야 한다는 것이다. 예수님의 갈릴리 농어촌 선교가 활성화되므로 예루살렘과 사마리아 땅 끝까지 복음이 전파된 것처럼, 농어촌 교회의 활성화가 한국 복음화는 물론 세계 선교에까지 이바지 할 수 있는 계기가 되리가 확신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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