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창세기 성경공부 모임(3차)를 정리하면서작은 자를 통해서 이루어지는 아브라함의 나라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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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는 순수한 기고자의 주장임을 알려드립니다. -코닷-

 

   
▲ 이세령 목사

지난 2 10-13일에 걸쳐서 창세기 성경공부 모임(3) 했다. 부산 고신대 기숙사 김태현 기념홀에서 모임을 가지고 기숙사 시설을 이용했다. 미래교회포럼이 주최를 하지만 SFC 훈련원과 부산지역 SFC 주관을 하였다. 이번 3 모임에서 공부한 부분은 25:12-35:29절이고 이스라마엘의 역사와 이삭의 역사라는 표제가 붙은 단락이다. 전체 주제를 작은 자에게 주어지는 하나님의 나라라고 정리할 있다.

 

이스마엘의 역사

이스마엘의 역사는 25:12-18절에 이른 짧은 단락이고, 이삭의 역사는 25:19-35:29절에 이르는 부분이다. 이스마엘의 역사가 12두령이나 되는 민족으로 번성함으로서 21:18절과 16:10절의 약속대로 민족으로 번성한다는 하나님이 주신 약속이 이루어 졌음을 알린다아브라함이 많은 민족들의 아버지가 되리라고 했는데, 이스마엘의 민족의 아버지도 됨을 말한다. 이스마엘이 약속의 족보에서 잘려나갔음을 말하기보다는 오히려 약속에 초대되고 있다. 누가 이스마엘이냐는 문제는 육체를 신뢰하는 자들이 이스마엘이라고 성경은 진술한다. 이스마엘과 하갈의 문제는 신약 4:21-31절에 정리되어 있다. 육체를 자랑하는 자는 이스마엘의 자손이고 은혜를 신뢰하는 자가 진정한 이삭이고, 하늘에 속한 자이다. 아랍과 이슬람 권을 선교의 대상으로 여길 , 이스마엘의 문제를 어떻게 이해해야 하는가를 중요한 관심사이다. 소위 구속사라는 것이 이스마엘을 제대로 취급했는가의 해석학적 반성이 필요한 시점이다.

 

이삭의 역사

이삭의 역사는 25:19 부터이다.

이삭을 통해서 세우시는 아브라함의 나라(이스라엘) 작은 자를 불러서 세우시는 나라이다. 작은 자가 자의 섬김을 받으리라는 25:23절의 신탁이 전체 단락을 견인하는 중심이다. 실제 내용에서는 모든 구성원들이 자가 되려고 노력한다. 이삭과 에서가 장자권의 당연함을 주장하고, 작은 자인 야곱과 리브가는 속임을 통해서 육체적인 약점을 가릴려고 애를 쓴다. 그러나 결국은 작은 자에게 축복이 간다. 

이것이 속임이란 수단을 통해 이루는 형식을 취하지만 그러나 작은 것의 약점을 막기 위해서 속임을 수단으로 사용하는 것이 허용될 것인가의 문제를 제기한다. 야곱은 밧단 아람으로 망명길에 오른다. 그리고 거기서 야곱은 번성을 하게 되지만 그러나 속임을 당한다. 라반이 라헬 대신에 레아를 주고, 얼룩진 것과 아롱진 가축을 자기 아들들에게 돌리는 수법으로 속이지만 그러나 전능하신 하나님을 이기지는 못한다. 라반에게 당한 일을 통해서 속임이 약속을 만들지 못한다는 사실을 뼈저리게 경험한다. 그리고 야곱은 아내들과 자녀들 그리고 재산을 이끌고 귀국한다. 라반의 추격도 전능하신 하나님이 막으신다.

 

에서를 넘는 일과 얍복강의 사건

이제 마지막 남은 관문은 에서를 넘어가는 것이다.

그가 밧단 아람으로 망명을 가게 만든 요인도 에서였다. 속인 사람을 영원히 속일 수는 없다. 야곱은 400인을 거느리고 오는 에서에 대한 두려움을 극복하려고 재산을 떼로 나누고, 하나님의 은혜의 약속을 기억하지만 효력이 없다. 결국 뇌물을 준비해서 차례로 바치지만 야곱은 얍복을 건너지 못한다. 얍복을 건너지 못하는 야곱에게 하나님은 나타나시고 씨름을 하였다. 야곱은 이기기를 추구한 사람이었다. 그래서 장자권을 추구했고, 축복을 속여서까지 얻었다. 에서를 극복해야만 진정한 약속과 축복의 상속자가 되는 것이다. 에서의 군대에 의해서 순간 모든 것이 날라가 버리는 위기에 놓여있다. 이것을 하나님이 씨름을 통해서 보여주었다. 야곱의 성취가 얼마나 무력한 것인지 보여준다. 속임을 기반한 장자됨, 그리고 이김을 근거로 힘이 얼마나 순간에 무너지는 것인지를 허벅지 뼈의 침을 당해서 알게 된다. 그래서 밤새 이긴 싸움을 순간에 잃어버린다. 

그리고 씨름을 하나님께 간구한다. 누가 마지막 승자인가를 보여준다. 자신의 추구한 일등, 이김, 장자됨, 경쟁, 속임등을 내려놓고, 이제 하나님의 도움을 간구한다. 그래서 진정한 승자가 된다. 이스라엘이란 이름 자체가 이긴 자라는 의미를 담고, 하나님과 사람들과 겨루어 이겼음을 말한다. 어떻게 이기는가? 기도를 통해서, 간구함을 통해서, 이긴다. 세상의 승리를 내려놓고, 하나님께 도움을 구함으로 이기는 자가 된다. 

이렇게 얻은 승리의 장소가 바로 브니엘(코람데오)이다. 육체의 이김이 아니라 육체의 낮아짐을 통해서 하나님의 은혜를 얻은 이김의 장소가 얍복이고 브니엘이다. 약속을 얻는 방식을 얍복에서 비로서 확인한다. 밧단 아람을 통해서 속임으로는 된다는 것을 배웠다면 얍복에서 낮아짐, 작은 자가 되어 겸손히 하나님께 구하는 방식으로만 축복을 상속받는다는 것을 배우게 된다.

 

작은 자와 약속의 상속

이런 태도는 야곱의 존재가 형성되는 순간부터 이미 알려진 주제이다. 이삭의 역사가 시작되는 시작에서 이삭이 야곱과 에서를 낳은 방식이 소개된다. 이삭은 그의 아내가 임신하지 못하였다. 그래서 여호와께 간구했다. 간구를 들으셔서 낳은 쌍둥이가 에서와 야곱이고, 이때 작은 자가 큰자의 섬김을 받으리라는 신탁을 주신다. 이삭이 40세에 결혼을 했으니 아이를 낳은 때가 60세이다. 이십년을 기도했다. 이것은 아브라함과 비교된다. 아브라함이 75세에 가나안 땅에 도착한다. 그리고 하갈을 통해 이스마엘을 낳은 때가 86세이고, 이삭을 낳은 때가 100세이다. 11, 25년에 이루어진 일이다. 앞선 세대의 아이 낳음의 역사를 이삭의 역사는 기록할 필요가 없다. 단지 간구로서 채운다. 기도가 아브라함의 여정을 대신한다. 그리고 새로운 요소를 아브라함의 나라에 삽입하였다. 바로 작은 자의 문제이다. 

이것은 자나 경쟁에서 이긴 있는 자의 문제가 세상 나라의 보편이다. 그러나 대안으로 나온 아브라함의 나라가 이런 가치를 상속하지 않음을 보여주고 있다. 작은 자가 하나님의 나라를 상속한다. 

이제 야곱은 얍복에서 기도를 통해서 축복을 상속하는 작은 , 혹은 자의 모습을 가지게 되었다. 이때 진정한 자가 되고, 승리를 얻는 이긴 자가 되었다. 이것을 하나님에게만 아니라 형제인 에서에게도 적용하는 뛰어남이 야곱에게 있다. 얍복 사건 후에 야곱은 에서가 오는 것을 보았다. 이전에는 두려워서 나아가지 못하고 있다가 모든 식구들 앞에 서서 나아간다. 그리고 일곱 엎드려 절을 한다(33:3) . 이는 완전한 낮음을 고백하는 것이다. 앞에서 동생이 것이다. 그때 에서는 동생을 안는다. 이로서 에서를 넘어간다. 

야곱은 진정으로 에서 앞에서 작은 자가 되었다. 그러나 순간 그는 진정한 이김을 얻는 자가 되었다. 약속과 축복 그리고 가나안을 얻었다. 이미 에서는 세일로 기업을 이전한 자이다(33:14). 그리고 나아가서 하나님의 뜻을 성취한다. 바로 25:23절의 작은 자가 자의 섬김을 받을 것이라는 약속의 성취를 맛보는 것이다. 속임과 경쟁을 통해서 얻는 것이 아니라 스스로 진정으로 낮아질 얻는 성취이다. 

속임의 문제는 적지 않은 과제이다. 자신의 부족을 가리는 수단이며, 약함을 가리는 수단이다. 이것이 하나님의 축복까지 얻을 있는가라는 문제를 이삭의 역사는 제기한다. 아니다.

 

성경속에서 이삭의 역사의 적용

이삭의 역사는 이후 성경 역사에서 주는 함의가 다양하다.

첫째는 이스라엘 역사 이해에 기여한다

야곱과 에서의 사건이 말라기에서 언급된다. 에서는 야곱의 형이 아니냐 그러나 내가 야곱을 사랑하였고 에서는 미워하였으며(1:2b-3a) . 말라기의 시작은 이스라엘이 하나님의 사랑을 어떻게 받았는가를 질문함으로 시작한다. 에서를 미워하고 야곱을 사랑했다는 말은 육체적인 강함과 이김을 추구하는 나라를 미워하고 야곱의 작음과 낮음을 사랑했음을 말한다. 포로 후기에 이스라엘의 정체성을 어떻게 확립할 것인가의 문제에도 답이 되는 것이다. 에돔은 구약에서 항상 망하는 나라의 대표이다(34:5, 9, 9:12 ). 하나님의 사랑을 입은 나라의 상징으로 이스라엘은 야곱에게서 기원한다. 

둘째는 이스라엘과 기도의 관계이다.

12:3-4절은 얍복에서의 야곱을 기억한다.

"야곱은 모태에서 그의 형의 발뒤꿈치를 잡았고 힘으로는 하나님과 겨루되 천사와 겨루어 이기고 울며 그에게 간구하였으며"

북왕국의 멸망을 선고하는 호세아 선지자는 원인으로서 앗수르와 애굽을 의지하는 잘못된 모습에서 찾는다(12:1). 그래서 세상 나라를 의지하는 습관을 끊고 이스라엘의 조상 야곱처럼 하나님께 기도하는 모습이 필요하다고 강조한다. 여기서 강한 자를 의존하는 세상적인 태도에 대한 정죄와 대조되는 야곱의 태도를 말한다. 야곱은 형의 뒷굽치를 잡은 작은 자이지만 그러나 하나님께 기도함으로 이김을 얻었다고 진술한다. 울면서 이겼다고 번역하면 좋겠다. 간구하면서 이겼다. 하나님의 나라가 세상 나라와의 관계에서 이기는 방식은 작은 자가 되어서 겸비하게 하나님께 간구하고 기도함으로 이긴다는 것을 야곱은 말해준다. 

셋째는 이스라엘의 선택과 관련해서 적용이 된다.

9:12-13절에서 25:23절과 말라기 1:2-3절을 인용하여 예정의 근거를 삼는다.  예정이나 선택은 사람의 행위에 근거하기 전에 하나님의 은혜에 기반을 둔다. 그래서 이스라엘도 육적인 자랑을 근거가 없다. 하나님의 은혜에 대한 믿음만이 이스라엘을 이스라엘답게 한다는 논리의 뒷받침이다.

그래서 작은 자가 자의 섬김을 받는 것으로 세워지는 이스라엘 나라는 육체를 자랑하는 에서의 나라가 미움을 받고 작은 자로 스스로를 인정하는 믿음가운데 서는 이스라엘은 사랑을 받는다. 이것이 바울 사도에 의해서 믿음으로 구원을 받는 자들이 작은 자들인 야곱이고, 행위를 자랑하는 자들이 에서로서 귀착된다. 이스라엘이 민족적인 자긍심이나 구별 그리고 할례와 같은 외적인 표징으로 자랑한다면 야곱이 아니라 에서가 된다는 논리이다.

이런 논리를 확정해 주는 것이 4:21-31절이 뒷받침된다(하갈과 사라 그리고 이스마엘과 이삭관계에서 다루기에 야곱 에서의 논점과는 다르나 본질은 같다). 

넷째는 11:20 이삭의 축복에서 나타난 작은 자의 문제를 수용하는 태도이다.

믿음으로 이삭은 장차 있을 일에 대하여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하였으며. 야곱에게 축복을 했다는 것은 이해가 되지만 야곱과 에서에게 축복한 것으로 이삭의 믿음을 평가한다. 이것은 27:33절의 내용을 반영한다. 야곱에게 축복을 준후에 에서가 들어와서 축복' 요청하자 이삭이 하는 반응이 '이삭이 크게 심히 떨며 이르되'라고 한다. 이삭은 속았다는 사실과 함께 분노를 해야하지만 떨게 된다. ? 바로 25:23절때문이다. 작은 자에게 돌아갈 축복이 에서에게 갈뻔한 사실에 의해서이다. 이후로 에서에게 분명하게 야곱에게 축복을 확인한다(27:37). 속여서 얻었지만 작은 자인 동생에게 돌아간 내용을 확인한다. 형의 주가 된다는 사실이다. 이로 인해서 작은 자에게 복을 상속하는 일을 마무리하였기에 이삭을 믿음으로 축복한 자라고 평가한다. 

이상의 구약과 신약에서 이삭의 역사를 이해하는 방식은 창세기 본문의 흐름을 배반하지 않는다. 나아가 작은 자의 문제가 아브라함의 나라의 본질이라는 것은 예수님의 입장에서 분명하다.

작은 자로 세우는 나라가 신약에서 예수님이 가져오시는 하나님의 나라와 본질적으로 동일하다. 하나님의 나라는 어린 아이와 같이 자기를 낮추는 자가 얻는다(19:14). 이것은 은혜로만 하나님의 나라의 백성이 됨을 말한다. 

구약을 통해서 작은 자의 흐름은 야곱이 요셉의 작은 아들 에브라임에게 오른손을 올림으로 확정되고, 8명중에 막내였던 다윗이 왕권을 상속함으로 아브라함과 다윗의 길의 본질로서 작은자의 문제가 언급된다. 이런 길을 따라서 오신 예수님께서 작은 자가 복된 자임을 천국 질서와 하나님 나라의 질서로서 확고히 하신다.

   
 

나가면서

이삭의 역사 공부의 마지막은 단락 마지막에 적힌 내용이다단락의 마지막은 야곱의 12아들의 이름을 적고 이삭의 죽음과 마므레 묻히는 것이다. 이삭의 역사는 이스라엘의 12지파를 형성하는 것으로 진행되었다. 자였던 에서의 위협이 있지만, 그리고 라반의 위협이나 기득권을 가진 세겜과 같은 가나안의 위협이 있지만 이를 극복하는 힘은 하나님의 작은 자의 선택이다. 작은 자에 대한 하나님의 정하심이다. 

3 성경공부 모임은 작은 자를 향하신 하나님의 사랑을 본문을 통해서 깊이 공감하게 되었다. 

4 모임 본문은 36장에서 50장에 이르는 에서의 역사와 야곱의 역사를 공부할 예정이다. 

이세령 기자  leesr624@gmail.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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