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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황창기 목사

설교표절(剽竊)을 규명하기가 쉽지 않다. 그 정의(定義)에 명확하지 못한 부분(fuzzy area)이 있기 때문이다. 그러나 설교 표절은 결코 용납할 수 없다. 그 표절 목사 자신은 물론 성도들의 신앙과 교회생태계(ecosystem)를 황폐시키고 하나님 나라를 대적하기 때문이다.  

목사는 성경을 읽고 해석하고 설교할 수 있는 기본목회훈련을 받았다. 목회현장에서도 끊임없는 연구와 수련으로 자기발전을 도모하는 길을 걸어야 한다. 주석을 참고하고, 설교 집을 읽고, 참고서로 연구하는 것이 목사의 기본 임무이다.  

인터넷도 문명의 이기(利器)로 풍부한 참고자료일 수 있다. 즉 설교본문의 근본 의도를 파악하고, 중심사상 및 설교방향 연구하는 자료이다. 하지만 인터넷이 남의 설교를 내 설교로 삼는 부정행위의 수단이 되어서는 안 된다. 

필자를 포함하여 목회자도 실수와 부족함이 많은 인간이다. 필자도 영어로 논문 쓸 때 지적을 받은 적이 있다. 논문작법을 몰랐기 때문이었다. 지금도 본인은 이 과제(또는 시험)를 하나님 앞에서 정당하게 작성 제출합니다.”라고 서약(誓約)한 후, 서명(또는 도장)한 시험지 및 과제만 접수(接受)한다. 잊으면 만점의 5% 감점한다.  

은퇴한 후에도 영어로 강의하면서 외국인 대학원생들 (M.Div)에게도 이 서약을 요구한다. 무엇보다도 수강생들이 목사 후보생 이전(以前)에 성도이기 때문이다. 주님 앞에서 올바른 목회자를 양성해야 한다는 무겁고 두려운 책임감 때문이다.  

교수로서 필자는 목회자들에게 미안한 점도 없지 않다. 목사 후보생 설교 훈련 과정이 충분하지 못한 현실적 여건도 있다. 그리고 막중한 목회사역 중에서 설교 회수는 과다하고, 편리한 인터넷의 표절 유혹은 가까이 있는 형편이 되었다.  

그래도 목회자는 이런 유혹도 이겨야한다. 목회는 성령사역 아닌가? 목회도 신비(神秘)고 설교도 신비라는 말도 있지 않는가? 하나님의 말씀의 종으로 한평생을 헌신한 분 아닌가? 그런 분이 하나님 앞에서, 자기가 정성껏 작성하지 않은 남의 설교로 강단에 설 수 있는가? 상식(常識)이하이다. ? 

첫째, 설교표절 목회자는 신학이 희미한 분으로, 교인들을 혼란케 하여 주님 제자로 양육할 수 없기 때문이다. 이 주일은 이 목사, 저 주일은 저 목사...식의 남의 설교로 강단에 선다는 것은 목회자의 신학이 없다는 증거이다. 따라서 교인들도 종잡을 수 없을 것이다.  

둘째, 설교표절 목회자는 하나님 창조의 근본목적과는 거리가 먼 교인을 키우는 셈이기 때문이다. 지금 한국교회는 번영신학과 자본주의로 심각한 위기에 처해있다. 이런 상황에서 표절설교까지 난무하면, 교인들은 주님 나라 건설의 역군이 되기보다 자기유익과 영달에 집착하게 된다. 설교표절자는 불합격 제품을 양산하는 생산자인 셈이다.  

셋째, 설교표절 목회자는 아무튼 서울만 가면 된다는 타협주의자 길을 걷기 때문이다. 물량적 교회성장 위주의 세속주의자와 궤()를 같이하기 때문이다. 큰 교회가 큰 일한다는 세속적 신화(神話)(?)에 매혹되었지 모른다. 이는 분명히 마태복음 11:11절 말씀을 거역하는 처사이다.  

넷째, 설교표절 목회자는 자기 기본 임무(설교준비)에 태만한 자로서 목회 자질에 중대한 하자(瑕疵)를 가진 자이기 때문이다. 남의 약을 자기 자녀에게 먹이는 무책임한 부모와 같다. 자기 젖으로 자기 양떼를 양육하지 않는 목자! 그는 삯군 목자가 아닌가? 

다섯째, 설교표절자의 장래(將來)를 기대할 수 없기 때문이다. 해답을 먼저 보고 문제 푸는 학생들은 수학 실력이 향상되지 않듯이 설교표절 목회자는 자기성숙(成熟)이 되지 않는다. 설교자는 본문연구에 필요한 모든 기본 실력 쌓기와 현대사회와 교인들을 이해하는 많은 독서가 있어야 한다. 

이 무책임한 목회자를 어느 교인이 환영하겠나? 목회자에게는 특정한 범죄도 용납되지 않지만, 윤리적 과오(過誤)에 더 큰 책임추궁이 따른다는 사실을 명심해야 한다. 이처럼 설교표절 죄로 자기도 죽고, 교회도 죽는다. 죄와 짝한 교회는 사망의 길을 걷기 때문이다.  

목사는 한 손에 성경을, 다른 손에 신문을 들어야 한다. 성경 해석(hermeneutic) 능력과 현대사회와 자기교인 해석(hermeneutic) 안목을 같이 구비해야 한다는 말이다. 게으르고 무능한 목회자의 교회 성도들은 정말 불행하지 않을 수 없다.  

차제에 근원적 대책도 세워야 한다. 교단은 설교표절에 대한 정확한 조사와 그에 따른 시벌(施罰)을 해야 한다. 교육기관은 전문목회자 양성 기본교육에 더욱 신실하여 설교표절을 방지해야 한다.

[이 글은 특정한 사람보다도 설교표절 행위에 초점을 맞추었습니다. 인신공격 없는 건전한 대안 및 미비 점을 말씀해주시기 바랍니다. 전화 및 카톡 등 다른 수단으로는 대화하지 않겠습니다. 설교표절이란 본질에만 한정하고, 부차적인 것으로 시비하지 않기를 바랍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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