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정태호 장로 열방교회 협동장로

정태호 작가의 작품 세계

[사진에세이]에서 '껍데기는 가라'는 글로 소개가 된 정태호 작가는 시인이면서 수필가이다.  1987'시와 의식' 시부문 신인상을 수상하면서 시인으로 등단하였고 2013년에는 '국보문학'에 수필로 등단하였다.

시집으로는  <피아노와 꽁보리밥>(90) <나도 시베리아로 가고 싶다>(91) <겨울 장미의 꿈>(2013)을 발간하였다.

그는 현재 한국문인협회회원(1991시분과()에 소속되어 있으며 ()대한민국국보문학협회 부회장()이다사업체는 ()MAP네트웍스인데 대표이사()이며 열방교회(안병만 담임목사)의 협동장로로 수고하고 있다그의 작품을 소개한다. 그 중에 문인협회에서 추천하여 서울시 지하철 스크린도어에 게시될 작품으로 선정된 겨울 장미의 꿈은 대표적이다. 그의 작품은 사진에세이를 통해서 그리고 교육과문화방을 통해서 계속 소개될 예정이다. 

 

 

겨울 장미의 꿈    /정태호

 

간신히

첫 눈발이 프로포즈로 날리던

지난밤에

시집간다고

다섯 별 이나 모자란 신랑나라로

초대한 잔치

울며 읊는 이별사

어릿광대의 눈빛으로

가슴을 후벼 갔구나

밤새 울다가도

손목잡고 늘어놓는 변명

사랑하노라

치기는 아니었더라

 


물그림자   /정태호

 

아무리 아름다운 풍경도

물이 움직이지 않아야

물그림자가 생긴다

 

물이 맑으면 맑을수록

더 선명하다.

 

때로는

풍경이 아름다우면

더욱 빛난다.

 

그래도

그림자일 뿐

실체는 흔들리지 않고

그 자리에 그대로 있다.


미스김라일락   /정태호

 

그 해 봄날

너무도 짙은 향내로

삼각산에선

검은 등줄 뻐꾸기가 유난을 떨며 울었지

해방은 되었어도 아직

홀딱 벗은 나라

이름도 따로 없었지

한번 만난 코큰 아저씨

움도 트지 않은 너를 안고 미국으로 가면서

엄니를 못 잊어 미스 김이라 불렀지

이제는

성공한 입양아 되어

돌아 돌아서

엄니 나라로 오는구나 그려

키 작은 우리 딸 수수꽃다리

몸값이 너무 비싸다

미스김라일락


** 미스김라일락은 1947년 미군정청소속 식물채집가가 군정청 타이피스트 미스김의 안내로 북한산과 도봉산 사이(아마도 우이령 근처인 듯)에서 우리 꽃 수수꽃다리를 발견하고 그 씨를 받아서 미국에서 길러내고는 이름을 미스김라일락이라고 붙였다고 하네요.

그러니까...

라일락은 우리 꽃 수수꽃다리란 말입니다키위가 참다래이듯...

다만 우리 꽃 수수꽃다리는 키가 작으마해서 화분에 그냥 심기 좋을 만큼만 자라는데 서양수수꽃다리 즉 라일락은 키가 2미터 이상 자라고 무성해서 화분엔 심을 수가 없지요.


다음은 수필 몇 편이다.


매미와 소음   /정태호

회사 동료가 요즘 밤낮으로 울어대는 매미소리 때문에 밤잠을 설쳐서 회사에 오면 졸음이 와서 죽을 지경이라고 하소연하므로 매미에 대해서 생각해 보기로 한다. 대체로 매미는 낮에는 울어도 밤에는 울지 않는 법인데 요즘은 가로등이 낮과 같이 불을 밝히니 매미가 밤낮을 구별하지 못하여 밤낮 울어대는 가보다.

그래도 원래 매미소리는 자연의 소리인지라 인간에게 감미로운 소리로 들려야 하는데 그 소리가 소음으로 들리기 시작하면 우리들의 몸 상태가 정상이 아니라는 신호가 아닐까?

왜냐 하면 폭포소리가 아무리 커도 그 소리가 소음으로 들리지는 않는 것은 진동 폭과 진동수가 우리의 신체리듬과 화성학(和聲學)적으로 조화를 이루기 때문이라고 한다. 그런 의미에서 매미소리도 당연히 낭만적인 소리로 들려야 할 텐데 그렇지 못하고 소음으로 들린다는 것은 우리 몸의 구조에 이상이 생겼거나 아니면 생체리듬과 자연의 소리인 매미소리가 조화를 이루지 못한다는 증거라고 생각된다.

예로부터 매미는 우리 인간 생활과는 많은 연관을 가지고 있다. 특히 매미에게는 오덕(五德)이 있다고 하여 옛 선비들은 매미를 무척 사랑했다. 그래서 조선시대 관리들은 매미의 그 오덕을 숭상하여 관모인 사모(紗帽)에 매미의 오덕을 상징하는 매미 날개를 달아서 쓰고 다녔다.

매미의 오덕은 중국의 진()나라 때 육운(陸雲)이라는 대학자이자 시인이 한선부(寒蟬賦)’에서 처음 매미를 칭송한데서 유래되었다고 한다.

여기의 진나라는 진시황(秦始皇)의 진()나라도 춘추오패(春秋五覇)의 진()도 아닌 우리가 잘 아는 삼국지의 제갈공명과 용호상박하던 사마중달의 증손자 사마충의 진() 혜제(惠帝) 때를 가리킨다.

매미의 오덕을 말하자면, 첫째가 문()인데 매미의 주둥이 모양이 붓 모양이라거나 갓끈 관대가 달린 것 같다하여 그렇게 불렀다. 둘째는 매미는 수액(樹液)과 이슬을 먹고 산다고 하여 청()이라 하였으며, 셋째는 곡식을 축내지 않는다고 하여 염치가 있다고 염()이고, 넷째는 사는 집을 짓지 않는다고 하여 검소하다고 검()이라 하였고, 마지막으로 다섯째가 철에 맞춰 허물 벗을 때와 죽을 때를 알고 지킨다하여 믿을 수 있다고 신()이라 하였다.

어린 시절 여름방학이 되면 의례히 방학 숙제로 곤충채집이 있었는데 이 때 매미는 나비, 잠자리와 더불어 필수 품목이 되어서 매미채를 들고 들로 산으로 또는 신작로 버드나무 사이로 뻔질나게 돌아다닌 기억이 새롭다.

매미를 잡아서 그 우는 것을 관찰하면 매미는 울음을 우는 목청이 있는 것이 아니고 배 쪽에서 소리를 낸다. 즉 날개 밑 부분에 갈비뼈 같이 생긴 진동막이라는 얇은 막이 있어서 거기서 소리가 난다. 놀라운 것은 매미는 이 진동막의 근육을 1초에 300~400번 정도로 빠르게 움직여 진동막을 울려서 소리를 낸다. 그래서 매미를 손에 들고 있을 때 매미가 울면 그 진동이 너무 세어서 손이 울려 떨리는 바람에 자칫 매미를 놓칠 수도 있다. 매미는 이렇게 만든 소리를 뱃속의 빈 공간에서 공명하여 20배 이상의 증폭된 소리를 내는데 우리가 듣는 소리는 증폭된 소리인 것이다.

보통 매미는 한 마리가 울기 시작하면 여러 마리가 떼거지로 울어대어 가끔은 시끄러울 때도 있지만 익숙해지면 더욱 정겹게 느껴지는 것도 사실이다. 기실 여름에 매미소리가 들리지 않는다고 상상해 보라. 그 얼마나 삭막하고 무서운 여름이라는 느낌이 들지 않을 수 있으랴!

재미있는 것은 매미를 잡아서 보면 우는 매미가 있고 울지 않는 매미가 있다. 우는 매미는 수컷이고 울지 않는 매미는 암컷이다. 매미가 우는 것은 암컷에게 구애를 하는 소리라고 한다. 그래서 더 크게 울어야 암컷에게 잘 보일 수가 있기에 자신이 가지고 있는 목청껏(사실은 근육의 있는 힘껏 울림막을 움직이는 것이지만) 울어대는 것이다.

또한 매미는 그 수명이 보통 7년에서 십 수 년 인데 성충인 매미로서의 삶은 기껏해야 1주에서 2주 정도 밖에 되지 않는다고 한다. 그러하기에 그 짧은 기간 동안에 번식을 마쳐야 하므로 더욱 극성스럽게 우는 건지도(우는 건지 비비는 건지는 몰라도) 모를 일이다. 그 노력이 얼마나 갸륵한가!

그러면 그 정성을 생각해서라도 우리는 매미소리를 귀찮게 여기면 안 될 것이다.

이 낭만적이고 로맨틱한 매미소리를 소음으로 느끼는 오늘날의 우리들 삶을 반성하는 것이 오히려 맞지 않을까?

매미소리가 지겹거나 짜증스럽게 느껴진다면 분명 우리 몸에 이상증세가 있다는 징조라고 할 수 있다. 그러므로 먼저 신체적 혹은 정서적으로 안정적인 방법을 찾아서 심신을 바로 잡아 가는 것이 현대를 살아가는 지혜가 되지 않을까 생각해 본다.


배설물, 똥에 대한 이중성  /정태호

똥이 무서워서 피하냐? 더러워서 피하지!”란 말은 비겁한 자들의 자기 합리화를 위한 말이다. 무서워 피하지 않는다면 더러우니까 치워야지 왜 피한단 말인가? 더러운데도 치우지 않고 피하는 행위가 얼마나 비겁하고 자기만 편하고자 하는 이기주의적인 사고방식인가 말이다.

현대를 사는 사람들 대부분은 똥이 더럽다고만 생각하지 똥이 우리 인간 생활과 얼마나 밀접한 관계인지를 잘 모른다.

본래 똥이란 인간을 비롯한 동물의 배설물을 지칭한다. 배설물이란 동물이 섭취한 음식물을 분해 소화하여 필요한 영양소를 흡수하고 남는 여분의 물질을 몸 밖으로 내보낸 부산물을 뜻한다. 그러므로 엄밀히 따지면 별로 더러울 것이 없다. 그러므로 옛날에는 배설물을 다시 섭취했던 종족도 있었음이 기록에도 나와 있을 정도이며, 지금도 배설물을 다시 섭취하며 건강을 유지하는 사람들이 전 세계적으로 약 7백만 명에 이른다고 프랑스의 마르탱 모네스티에라는 사람은 <똥오줌의 역사>에서 주장하고 있다.

사실 인간들은 똥에 대하여 인간의 이중성을 보여주고 있다. 가장 더러운 것으로 치부되는 똥을 최고의 식사 또는 숭배대상으로 삼고 있기도 한다. 미치광이를 비롯하여 식도락가나 변태성욕자들이란 인간들이 똥을 즐겨 먹기도 하였으며 똥을 신으로 숭배한 종교도 여러 문명에서 발견된다고 한다. 참으로 한심한 아이러니가 아닐 수 없다.

배설물 즉 똥을 더럽다고 기피하는 것은 주로 배설물의 냄새가 고약하기 때문이 아닌가 생각된다. 그래서 성경에서도 똥은 부정한 것으로 치부하여 장막을 치는 야영지 구역 밖에서 볼 일을 보고 흙으로 덮어서 처리하도록 율법화 하였다.

배설물의 고약한 냄새는 대부분 세균 때문인데 세균 자체의 냄새가 아니라 세균이 단백질을 분해하여 소화시킬 때 생기는 효소들 때문에 냄새가 난다고 한다. 즉 김치가 삭을 때 냄새가 나듯이 말이다. 대장에서 대장균이 음식물을 소화하여 흡수할라치면 주로 황화수소가 발생하기 때문에 냄새가 고약하다는 것이다. 기실 대변에서 구수한 음식냄새가 난다면 사람들이 그렇게 기피하지 않을 지도 모를 일이다. 비슷하게 고약한 냄새가 나는 음식들도 있지만(예를 들면 삭힌 홍어 등) 별로 기피하지 않고 오히려 즐기는 사람들도 많듯이 말이다.

기왕지사 똥 얘기를 시작했으니 인간 생활에서 똥이 얼마나 밀접한 관계인지 한 번 짚고 가자.

프랑스 대문호 빅토르 위고는 "인간의 역사는 곧 화장실의 역사이다"라고 할 정도다. 즉 똥을 어떻게 처리하느냐에 따라 문명의 질이 달라지고 도시의 형태가 달라진 것이다. 유목시대 때에는 그냥 땅에 묻어 버리면 되었는데 정착생활이 이어지자 아무렇게나 땅에 묻는 것으로는 해결되지 않아서 결국 고대 바빌론 때부터 수질보호의 수단으로 화장실이 사용되어 졌다고 한다. 현대식 수세식 화장실은 16세기 말 영국에서 해링턴이라는 사람에 의해 처음으로 발명되어 시작되었다고 한다. 그러다가 1775년 런던의 시계공인 알렉산더 커밍이라는 사람이 해링턴의 발명품에서 물이 흡입되는 관과 하단부의 뚜껑을 금속으로 여닫도록 교체한 변기를 개발하였고, 그것을 더욱 발전시킨 것이 오늘날의 수세식 화장실이라고 한다.

어느덧 똥은 인간의 폐기물 처리 방식의 하나로 그 가치가 전락하고 말았다. 하지만 똥은 아무 쓸모가 없는 것이 아니고 아직도 세상의 많은 곳에서 유익하게 쓰이기도 한다. 특히 인간의 똥은 비료로 쓰이기도 하고, 쇠똥은 건축재료로 쓰이기도 하며, 심지어 아프리카에서는 코끼리 똥으로 종이를 만들기도 한다고 한다.

참으로 재미있는 것은 현대인들이 가장 즐기는 식품중 하나인 커피가 똥에서 만들어지는 것이 가장 비싸고 귀한 커피라 한다. 즉 원숭이, 다람쥐, 사향고양이 등이 커피 열매를 따먹고 배설한 똥을 가공하여 만든 커피가 루왁 커피란다.

요즘은 자연 체취가 어려우니 커피를 재배하여 사육하는 사향고양이에게 먹여 그 똥으로 가공하여 수출한다고 한다.

그러면 우리나라의 똥 처리는 어떠했는가?

기억해보면 우리가 어렸을 적 만해도 도시나 농촌이나 별반 크게 다르지 않는 화장실 문화였다. 소위 푸세식 화장실이었기에 그 냄새가 아주 고약하여 가능하면 집에서 먼 쪽에 위치하였다. 여북하면 화장실과 처갓집은 멀수록 좋다는 말까지 있을라고. 푸세식 화장실을 사용하던 때는 하수처리에 별로 신경 쓸 일이 없었다. 이유는 그 시절의 똥은 전부 비료로 사용되어 졌기 때문이다. 똥에는 비료의 3대요소인 질소, 인산, 칼륨이 풍부하여 농토에 전부 뿌려졌기 때문이다. 그러던 것이 수세식으로 화장실 문화가 바뀌면서 하수종말처리장이 도시 시설의 필수 불가결한 시설이 되었다.

요즘에는 거의 대부분의 사람들이 수세식 좌변기를 사용하고 있지만 십 수 년 전만 하더라도 잘해야 수세식 양변기에 쪼그리고 앉아서 볼일을 봤다. 그런데 예전의 조선시대 왕이나 왕비들은 요즘처럼 수세식도 푸세식도 아닌 좌변기를 그 시대에 이미 사용했다는 사실을 아는 사람은 많지 않을 것이다. 소위 매화틀이라고도 하고 매회틀이라고도 하는 이동식 좌변기를 썼는데 매화(梅花)틀이란 임금의 똥을 이라 부르지 못하고 매화라고 불러서 붙여진 이름이며, 매회(梅灰)란 매화꽃을 태운 재를 변기 밑에 깔아서 썼다고 하여 붙여진 이름이라고 한다.

누구나 똥을 배설하지 않고 살 수 있는 사람은 없다. 고상한 철학자든 무서운 권력자든 사랑스러운 예쁜 신부든 인간이라면 누구나 똥을 배설해야 살아 갈 수 있다. 어릴 적 학교 선생님이나 교회의 목사님은 똥을 배설하지 않는 줄 착각한 시절도 있었지만 말이다.

이처럼 똥은 우리 생활에 엄청나게 밀접한 관계를 가지고 있고, 또 엄밀히 말하면 더럽지도 않고 잘 사용하면 유용한 물질이지만 자칫 처리를 잘못하면 그저 골머리를 썩이지 않을 수 없는 요상한 물질이다.

마찬가지로 우리 인간의 생활이나 삶의 양식도 그 처리와 처신을 어떻게 하느냐에 따라 결과는 천양지차로 변하는 것이라 하겠다.

그러하기에 서두에 살폈듯이 똥이 더러워서 피한다는 자기합리화를 하지 말고, 자신이 짊어져야 할 짐은 스스로 기꺼이 지고, 해결해야 할 일은 마땅히 충실히 해결하고 앞으로 나아가야지 나라나 개인의 온전하고 활기찬 미래가 밝아올 수 있다는 것을 명심하자.

 

저작권자 © 코람데오닷컴 무단전재 및 재배포 금지