장로교 신학회 차기 회장에 이상규 교수 피선

한국장로교 총연합회 산하 한국장로교신학회 23회 학술발표회가 2014 3 28일 토요일 오후 2-6시까지 양재 화평홀에서 도르트 회의와 한국교회라는 주제로 열렸다.

 

1부 개회 예배

한국장로교신학회 회장인 오덕교 교수[몽골 울란바토르 대학교 총장]의 사회와 김성봉 목사[신반포중앙교회]의 기도, 안명준 교수[평택대학교]가 고전2:1-2을 읽고 한장총 증경 대표회장인 이종윤 목사가 한가지 주제만 갖고자 하는 사람이란 제목으로 설교를 했다.

 

▲ 설교하는 이종윤 목사

이목사는 "한국 교회의 75%가 장로교인이다. 그런데 장로교단이 250개 이상이다. 이렇게 나누어진 모습이 부끄럽다. 1980년 한장총이 설립되고, 장로교 정체성 회복 위원회가 생겼다. 여기서 신학적인 문제가 다루어질 필요가 있어서 장로교 신학회를 만들었다. 장로교가 하나가 되는 일을 위해서 만든 신학회이다.

2009년에 장로교 설립 100주년 기념의 해에 한교단 다체제 형태를 선언했다. 작년에 각 교단 총회에 한교단 다체제 형태의 헌법을 채택하도록 요청했는데 3교단이 채택을 했다. 최소한 7교단은 되어야 구성을 하려고 하고 있다.

하나님의 소원에 촛점을 맞춘 사람이 있다. 예수 그리스도와 그의 십자가 외에는 아무것도 알지 않기로 한다. 상황 인식은 고려하지 않는다. 고린도 교회 상황에도 오직 한가지만 알기로 한다. 구원에 충분하기 때문이다. 모든 이에게 유익하기 때문이다.

왜 고린도 교회에 계파가 잇는가? 다름이 무엇인가? 믿음은 사랑과 지식이 더해가는 중에 복음으로 하나되게 만든다. 모든 장로교회들이 하나되는 복을 누리기를 바란다."고 말씀을 전하고 축도함으로 1부 개회예배를 마쳤다.

 

2부 학술 세미나

학술 세미나는 5개의 발제로 구성되었다. 도르트 회의의 역사적 배경에 이어서 도르트 회의 결과물인 5개 항을 네 부분으로 나누어서 상세하게 결정사항들을 검토하였다.

공동의 신앙고백 위에서의 교회의 일치: 도르트 회의의 역사적 배경에 대한 연구를 먼저 총신대 김요섭 교수가 발표했다.

 

▲ 도르트 회의의 역사적 배경에 대하여 총신대 김요섭 교수가 발표했다.

먼저 도르트 회의의 국제적 성격을 지적하면서 유럽의 개혁파 교회들이 공동의 신앙고백 위에서 교회를 세우고 일치를 유지하기 위해서 노력했다. 도르트 회의의 성격은 참된 교리를 견고하게 하고 거짓 교리를 부인하여... 일치와 화평과 평온을 네덜란드 교회 안에 회복되게 하려 한다고 밝혔다.

여기서 일치와 화평의 회복은 분열과 혼란의 상태를 말한다. 그리고 이런 혼란이 알미니우스주의의 교리 문제이고 여러 개혁파 교회들이 공동 노력이었다는 점이다.

먼저 도르트 회의는 네덜란드의 정치적인 상황과 연결된다. 네덜란드가 칼빈주의를 종교적 구심점으로 채택한 이유는 지도자 빌럼이 팔츠의 선체후 프리드리히 3세와 그의 아들 요한 카시미르의 지원을 받았고, 핍박을 피하는 팔츠와 프랑스의 칼빈주의자들의 유입이 많았고 마지막으로 1564년 팔츠 교회법의 의회주의적 성격이 네덜란드 상황에 적합했기 때문이다.

네덜란드가 독립하는 과정에서 빌럼이 암살당한 후에 네덜란드는 홀란드의 행정장관인 올던바르너펠트가 신흥 귀족 세력을 대표했고 빌럼의 아들 마우리츠는 군부세력들을 대표했다. 처음에는 협력했지만 1609년 휴전 이후 12년간의 기간 중에 두 세력은 온건파와 강경파로 대립하고 있었다.

이런 정치적인 갈등과 함께 알미니우스 논쟁이란 신학적 논쟁이 발생했다. 알미니우스는 16세기 말 비정통개혁파 목회자들의 반대에 뿌리를 둔다. 양심의 자유에 근거한 종교적 관용 태도, 예정론에 대한 반감, 교회의 신앙문제에 국가의 개입을 강조한 비정통 개혁파의 흐름과 알미니우스 논쟁과 궤를 같이 했다.

알미니우스는 예정의 작정을 하나님의 예지에 근거하고, 이런 예지에 근거해서 선행하는 은혜로 믿게 될 자를 아셨고 후행하는 은혜에 의해 끝까지 견인할 자를 아셨다고 주장했다. 이런 입장은 고마루스나 칼빈주의자들에 의하면 하나님의 전적 은혜를 설명하려한 취지가 퇴색한다고 판단했다. 알미니우스와 고마루스의 레이든 대학의 논쟁은 1609년 알미니우스의 사후 전국가적인 문제로 확대되었다. 1610년에 알미니우스파는 에피스코피우스를 중심으로 홀란드와 서프리슬란트 의회에 항의서를 제출한다. 이에 1611년에 칼빈주의자들이 반 항의서를 발표하면서 교회의 결렬이 드러났다. 이것은 네덜란드의 정치적이며 사회적인 분열로 발전할 가능성이 있었기에 마우리츠는 1617년에 전국회의를 소집하도록 명령했다.

따라서 도르트 회의는 17세기 초 독립 전쟁 중에 있었던 네덜란드의 독특한 정치적, 종교적 상황에서 소집되어 그 당시의 시대적 과제를 해결하기 위한 목적으로 진행되었다. 신앙고백서들의 권위에 대한 논의, 칼빈주의 예정론과 관련된 알미니우스주의의 이견에 대한 검토, 그리고 교회와 국가 간의 관계 설정 등의 문제는 새로 독립한 네덜란드 연합 공화국이 국가 교회로서 개혁주의 교회를 채택하는 과정에서 반드시 해결해야 했던 중요한 종교적인 문제들이었다.

이런 특수한 상황이 있었지만 도르트 희의의 신조는 성경적 가르침에 충실하고 하나님의 영광을 높이려 했던 신학적 기준위에서 일치된 교회를 유지하고 국가와 교회를 신앙고백에 의해서 구별하려는 노력이 평가되어야 한다. 한국의 장로교회가 성경의 가르침에 충실한 공동의 신앙고백 위에 세워지도록 해야 하겠다.

 

▲ 세미나가 진행되고 있다.

이어서 소위 튤립[TULIP]이란 부르는 도르트 회의 결정 5개 조항에 대한 상세 논의가 진행되었다.

이남규 교수가 예정인가 후정인가? 항론파 제 1항에 대한 도르트 회의 총대들의 논의와 결정이란 발제를 했다.

개혁주의는 약속을 믿는 믿음 안에 머무는 것에 만족하지 않고, 성경의 증언과 함께 선행하는 하나님의 선택까지 올라간다. 성경이 예정이란 단어를 사용한 이유는 우리의 모든 행위를 실제적으로 앞서 궁극적 원인이 되시는 하나님의 일하심을 말하는 것이며, 따라서 예정을 고백하는 자는 하나님께 영광을 올려드리는 것이다. 따라서 항론파의 예정론인 후정을 받을 수 없었다. 이들의 예정은 인간의 행동 뒤에 오는 후정이기 때문이다. 도르트 총회는 실제적인 예정을 보호하고 모든 복을 하나님께 드리는 경건이었다.

다음으로 김은수 교수는 도르트 신조의 속죄론 이해라는 주제로 다양한 속죄론을 구별하면서 진정한 개혁파 속죄론은 형벌대속적 제한속죄라고 규정했다. 속죄의 의미와 성격도 중요하지만 속죄의 범위도 중요한 의제이다. 도르트 총회의 결정은 칼빈의 입장이며 이후에 스위스 일치신조[1675] 작성의 주도자인 프란시스 튜레틴의 입장과 연결된다. 이런 속죄론은 성경 전체의 가르침에 일치하고 하나님의 주권적 예정의 확실성과 예수 그리스도의 속죄의 실제를 말하고 삼위 하나님의 사역의 통일성과 하나됨을 말한다.

 

▲ 단체사진

이어 김병훈 교수는 도르트 신경이 고백하는 성도의 견인교리라는 주제로 발표하였다. 성도의 견인 교리는 오직 은혜, 오직 믿음의 종교개혁 신학의 완결이다. 중생한 성도는 완전히 그리고 최종적으로 구원에서 이탈하는 일이 없다는 주장이다.

마지막으로 한병수 교수는 도르트신조의 유기론을 발표했다. 유기를 불편하게 생각하는 항론파는 유기의 원인을 인간 스스로의 불신앙에 두었고, 하나님을 죄의 저자라는 입장에서 자유하게 하려고 했다. 그러나 선택이 있는한 유기가 있다. 때로 인간은 판단중지를 할 필요가 있다. 하나님이 하시고자 하는 자들을 강퍅하게 하신다. 하나님의 절대주권이다. 선택이 자비를 말하면 유기는 하나님의 공의를 말한다. 성경의 바른 가르침을 교회의 공적인 고백속에 정착시킨 것이 도르트 회의라고 평가했다.

 

▲ 차기 회장으로 선출된 이상규 교수의 인사말.

이후 장로교신학회는 총회를 가지고 고신대의 이상규 교수를 다음 회기 회장으로 만장일치로 선출했다. 다음 모임은 11 22일에 모일 예정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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