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이 시대는 바람직한 부분도 많지만 일방통행의 시대요. 물량 주의 시대이며 빈익빈 부익부에 눈이 어두워져 타인을 향한 배려를 잊은 자기만의 아집의 동굴 우상이 즐비한 시대라고 외칠 수 없을까?
비좁고 허름하며 담배 연기가 쓰려 있고 삐걱 거리는 문짝의 동네 구멍가게가 소리 없이 급속도로 문을 닫고 마을의 재래시장이 사라져 가고 있지 않는가?
이유는 휘황찬란한 장식과 즐비한 현대 시설의 매장, 드넓은 주차 시설, 그 현란함에 마음과 눈이 빼앗긴 것처럼 놀란 모습으로 모여드는 인파들이 넘치는 백화점과 대형마트 때문이 아닐까?
교회는 어떠한가? 낡은 건물의 지하 계단에는 먼지와 거미줄이 남겨져 있고 건물 기둥에는 칠한 곳이 너덜 너들 하고 어둡고 컴컴한 지하실 혹은 높은 건물의 3층이나 4, 5층 에 있기에 많은 층계를 조심스럽게 헉헉 거리며 오르고 내려야 하는 주차장이 없는 소형 교회는 역시 소리 없이 문을 닫게 되고 넓은 대지위에 엄청난 건물을 짓고 고급 소재로 아름답게 장식을 하며 값비싼 파이프 오르간을 들여 놓고 널찍한 주차장이 있으며 주차 관리 요원이 무수한 대형 교회에는 어디서 모여드는지 모르게 많은 사람들이 모여들고 있는 이때가 아닐까? 대형교회 목사 중에는 대형 혹은 값비싼 외제 승용차를 몰고 으스대며 걸음걸이마저 우쭐 거리며 목에 힘을 주고 걸어가고 소형교회를 목회하는 오랜 친구인 목사들을 업신여기는 배려할 줄 모르는 삐뚤어진 목사들이 존재 하는 것이 오늘의 현실이 아닐까?
반면에 소형교회 목사는 인생의 실패자처럼 열등의식에 사로 잡혀 마음 깊숙한 곳에 남모르는 시기심과 질투심으로 부글부글 듫끌었??사울 같은 목사들이 많지 않을까?
교인들 중에는 스스로 자기 자신이 교회 크기와 같이 큰 사람이 된 것같이 으슥 대며 뽐내는 사람도 있다. 오래 전에 멀지 않는 조금 큰 교회 출석 하던 집사가 찾아왔다. 필자가 시무하는 교회 전도사 어머니 이었다. 그 어머니가 찾아와서 “내 아들이 이런 초라한 교회에 다닐 아들인줄 아느냐 라고 고래고래 고함을 지르며 화를 내던 일이 기억난다. 정말 남을 존경 할 줄 모르고 배려할 줄 모르는 추태가 아닐까?
17세기 영국의 철학자 베이컨(Bacon, F)이 인간은 4가지 우상을 지니고 산다고 하였다. 종족 우상, 동굴 우상, 시장 우상, 극장 우상이 그것이다. 그중 동굴 우상은 자기만의 동굴 속에서 보는 것은 벽뿐이기에 바깥세상을 전혀 모르고 살아가는 사람을 말한다. 그래서 배려할 줄 모른다. 많은 사람들이 역시 동굴 속에 살고 있다고 생각된다.
가난해 본적이 없고 굶어 본적도 없고 주머니에 돈이 떨어진 적이 없고 신용카드를 사용 못하게 된 적이 없으니 가난한자의 고충을 어찌 알 수 있으리오.오늘날 빈부 격차는 끝없이 넓어지고 그래서 갑, 을 관계가 벌어지고 있는 현상이 아닐까?
국민 소득 2만 4000불 시대임에도 상대적 빈곤이 찾아왔고 상대적 박탈감과 열등의식으로 마음 아파하고 있고 사회가 속으로 열병을 앓고 있으며 교계가 술렁이고 있는 것은 아닐까?
해결책은 없는가? 있다. 성경 사도행전에 분명히 밝히고 있다. 사도행전 4장 32절“믿는 무리가 한 마음과 한뜻이 되어 모든 물건을 서로 통용하고 제 물건을 조금이라도 제 것이라 하는 이가 없더라. “
초대 예루살렘 교회의 모습이다. 한 마음과 한뜻으로 자원하였고 자발적인 행동이었다. 철저히 배려하는 모습이 아닌가? 오늘 이 시대는 극도의 이기적인 시대다. 배려가 없다. 극빈층에게는 생계비라기보다 생존비이다. 이것을 아까워하지 말아야 한다.
세밀하게 파악하여 시무, 은퇴 목사에게 라도 먼저 최저 생계비를 노회 적으로 혹은 총회 차원에서 반드시 지원해야 하지 않을까? 굶주려 끼니 걱정이 태산 같은데 옆집에서는 호화로운 승용차로 으스대고 있으며 흥청망청 하는 것이 옳은가?
우리는 너무 이기적이므로 배려하지 못하고 있는 것이 아닐까? 여기서 자유로운 사람은 아무도 없다.
해방될 무렵 한 젊은 청년이 다 뽑아 버린 빈 배추 밭에서 남은 배추 이삭을 줍고 있었다. “아! 배고프다 며칠을 굶었네. 우리 집에는 며칠 동안 양식이 없어 밥을 하지 못해 부엌 연기가 피어오르지 못했는데 옆집 장로님 집에서는 밥을 짓느라 부엌 연기가 피어오르네. 아! 내가 굶는 것은 저 집 때문이야“
그 순간 아침 해가 그 청년의 얼굴에 밝게 비췄고 악하고 엉뚱한 생각이 그를 사로잡아 버린 것이다. 그 청년은 그 순간 공산주의자가 되어버렸다.
아! 사랑의 겸손한 배려가 그립도다.
89년도 인가 90년도에 동부산과 서부산이 분리 되었지요?
그때 한 노회 있을때가 생각납니다.
눈이 앞만 볼수 있게 만드셨기에 뒤와 옆을 잘 못보는가 봐요?
오늘의 강도 만난 사마리아인이 많은데 제사장 레위인들은 지나가는가 봅니다.
오늘날은 너무 급하게,확연하게 딤후 3장 1-8절의 말씀이 성취되어감에 놀라고 있답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