제 66회 종교문화뉴스

 

1. 캄보디아 장로교 교회 뉴스

오랜만에 뉴스를 보내드립니다. 먼저 캄보디아 장로교 교회 뉴스로 시작합니다. 캄보디아 장로교회는 작년 7월 독노회를 구성하고 금년도 두 번째 목사와 장로 안수를 위하여 열심히 교육하고 있습니다. 금년도 캄보디아 정부는 교회 등록 시 어른교인 25명 이상과 모든 교인들의 신상을 자세하게 보고하도록 하는 등 등록 조건을 강화하였습니다. 캄보디아는 선교에 있어 겉으로는 자유로운 것 같으나 분명 제약이 있습니다.

장로교 신학교 건축건은 한국교회가 기부한 부지를 팔아서 건축을 하려고 합니다. 그 과정에서 정부가 토지등록을 새로 할 것을 요청 이를 준행하였으나 등록허가 나지 않아 부지 매매를 못하는 상황이 되었습니다. 내년 2월까지는 건축이 되어야 하는데 현 상황 상 늦어질 가능성도 있습니다. 정치가 불안정하여 공무원들의 공무집행도 제대로 안 된다고 합니다.

2. “거꾸로 가는 세계

지난 달 타임지는 21세기인데도 최근의 국제정치가 도리어 19세기로 돌아가고 있다고 비꼬는 기사를 보도하였습니다. 크리미아 사태를 비롯하여 중동, 동구, 동남아, 일본과 중국의 섬 분쟁 미얀마 종족 분쟁 등은 역사를 거슬러 올라가고 있다고 말했습니다. 인도 인도네시아 파키스탄 아프가니스탄 등지에서도 선거가 치러지지만 이것은 민주주의와는 거리가 멀다고 합니다. 인도의 차기 총리 후보로 거론되는 네루 가문의 간디(Gandhi)나 힌두교 원리주의정당(BJP)의 모디(Modi)나 모두 국민의 기대에 못 미치어 인도인들은 두 악 중 적은 악“(the lesser of two evils)을 선택할 수밖에 없다고 이코노미스트지가 꼬집고 있습니다. 유권자 814백만명의 인도는 인구의 1/4이 문맹자로써 사진을 보고 투표한다고 합니다.

캄보디아도 벌써 일부 지식인들이 야당 지도자에게 실망하여 돌아서고 있다는 이야기가 들립니다. 봉제공장 과격 근로자들을 볼모로 무책임한 임금상승을 부추겨 문을 닫게 하는 일이 속출 국가 경제가 엄청난 타격을 받고 있습니다. 일부 한국인 업주들은 야간도주라도 해야 할 판이라고 합니다. 4년 반 후의 캄보디아 또한 결국 두 악 중 적은 악 하나를 선택해야 할 나라가 될 판입니다.

중동의 상황은 여전히 과격 무슬림들이 기독교를 탄압하며 특히 북아프리카의 많은 나라에서 과격 무슬림 집단들이 교회를 방화 살인하는 일이 계속되고 있습니다. 이러한 상황에서 정치 경제가 발전할리가 없습니다. 나라 안에 종족분쟁 종교분쟁 범죄가 끊이지 않습니다. 아랍의 국가들은 3년 전 봉기했던 아랍의 봄 이후 도리어 겨울로 가고 있는 상황입니다. 특히 다시 군부 대통령 등장을 목전에 둔 이집트가 국제사회의 초점이 되고 있습니다.

3. 백석대학교 개혁주의 생명신학회 세미나 소식 (2014. 4. 19. )

(“주제 강의 한국교회 선교의 현재와 미래방향중 일부 첨부)

▲ 전호진 박사

본 종교문화연구소 소장 전호진 박사는 419190시 반부터 백석대학교 개혁주의생명신학회 주최 세미나 한국교회 선교의 현재와 미래방향을 주제로 강의를 합니다(강의 내용 및 장소 안내는 첨부파일 참조). 지금 한국 교회는 평신도 선교사, 실버 선교사, 전문인 선교사가 증가하면서 그만큼 문제도 많아지고 있습니다. 한국 선교는 일단 숨을 고르고 좀 정돈이 되어야 할 것으로 봅니다. 한국 선교의 장단점을 진솔하게 다루는 시간이 될 것입니다. 주제 강의 내용의 일부를 하단에 첨부합니다. 후원교회와 선교단체 및 선교사들에게 필요한 내용이 될 것으로 생각합니다.

주최 측은 한국 선교 문제가 많다고 좀 부정적인 것을 부각시키기는 원할지 모르지만 문제가 많다고 선교가 결코 중단되어서는 안 됩니다. 그러나 현재 선교비 감축으로 인해 어려움을 겪는 선교사가 증가하고 있는 것이 현실입니다. 또 다른 한편으로 한국에서 은퇴 후 파송 교회나 기관 없이 선교지로 오면서 선교사라고 불리는 것 교인도 학생도 없는데 집부터 짓는 선교는 지양되어야 합니다. 이러한 문제들을 객관적으로 다루었습니다. 이제는 후원교회도 선교지 상황을 알고 합리적으로 후원해야할 상황입니다.

먼저 한국선교가 공헌하는 것을 다루고 문제점과 방향을 제시하였습니다.

1) 한국교회 선교의 공헌

한국교회 선교의 부정적 면에도 불구하고 선교가 기여하는 긍정적 차원을 무시할 수는 없다. 문화인류학에서는 선교사를 문화침략자로 정의하지만 동시에 변화의 요인자(change agent)로 본다. 선교사는 선교지의 문화를 보이지 않게 그리고 서서히 변화시키고 개혁하는 변화의 요인자들이다. 한국 선교사들은 교회개척 제자훈련 교육 복지 개발 의료에 종사하고 있다. 선교지 NGO를 통하여 선교를 하는 선교사들도 많다.

2014331TIME지는 구 세계질서라는 특집기사에서 21세기 국제정치는 19세기답지 않게 세기로 회귀하고 있다는 비판적 기사를 보도하였다.

크리미아 사태를 시작으로 민족주의 인종주의 종교원리주의를 바탕으로 하는 힘의 정치 독재정치가 지구촌을 휩쓸고 있다는 것이다,1)

1) Robert D. Kaplan, "Old World Order," TIME, March 31, 2014: 22-25.

선교의 정치적 의미가 크다는 사실을 인식해야 한다. 즉 기독교 종교만이 정치 사회적으로 불만이 많은 선교지 사람들의 욕구를 만족시킬 수 있다는 자부심을 가져야 할 것이다.

타임지는 아프가니스탄은 선거를 잘 치렀지만 후유증이 심하고 미군과 군대 EU가 철수하면 탈레반이 다시 돌아 올 가능성이 높다고 보도하고 있습니다.

또한 대부분 동남아 국가의 정치도 인권 민주주의 평등 사회 정의와는 거리가 멀다. 공산주의 국가의 공식명칭은 대부분 인민 민주주주의 공화국(People's Democratic Republic)이지만 실제로 인민도 민주주의도 공화정치도 없다. 기독교는 영적 어둠의 속박에 있는 사람들을 해방시킬 수 있는 종교이다. 기독교는 인권 평등 민주주의 정의라는 보편적 가치관을 제공할 수 있는 종교이다 칼빈은 기독교 강요 에서 복음을 전파하는 직분은 성령과 의와 생명을 관리하는 일이라고하였다 (강요 433).

개혁주의는 신자의 문화적 사명(cultural mandate)을 강조한다. 선교사는 현지에서 좋은 신자를 양육하여 자기 사회를 변화시키는 일을 한다. 캄보디아, 라오스, 미얀마 등 많은 선교지에서 일부 한국 선교사들은 사회에서 봉사할 수 있는 엘리트들을 양육하고 있다. 선교사들이 우수한 청년들을 선발 현지 일류대학에 보내거나 한국 대학으로 가도록 유학을 알선 귀국한 자들이 대학 교수로 봉사하는 경우가 증가하고 있다. 이들 현지 고급인력들은 문화적 사명을 수행하는 자들이다.

기독교는 혁명의 종교가 아니라 개혁 그 자체이다. 혁명으로 사회와 정치가 발전할 수 없다는 것을 3년 전 아랍 혁명이 보여주었다. 아랍의 봄은 봄을 가져온 것이 아니라 겨울을 초래하고 말았다.

선교사는 민간외교관이다. 아프리카나 아시아 등 일부 국가에서는 선교사들이 국위를 선양하는 사례가 너무나 많아서 이곳에서 다 거론할 수도 없다. 동남아에서 중국인들은 자원 확보를 위하여 원조나 투자를 한다. 선교지의 일부 현지인들은 한국인들이 조건 없이 주는 자들이어서 좋다는 칭찬을 한다고 한다.

한국 선교사들은 사회복지 제도가 전혀 없는 국가의 병들고 가난한 자들의 친구 노릇을 한다. 범위나 액수는 적지만 가난한 서민들에게는 큰 도움이 된다. 캄보디아 훈센 수상은 선교사들과 기독교 NGO들이 가난한 자들을 도우는 것에 감사하다고 공식석상에서 언급하였다고 한다. 이 나라의 부자들과 권력자들은 가난한 자들을 도우려는 생각이 없다. 불교의 전생윤회와 업보 사상은 불교문화권의 복지제도를 발전시키지 못하게 하는 종교적 요인으로 작용한다. 선교지의 기독교 선교병원은 큰 공헌을 할 수밖에 없다. 그 외에도 선교는 지역사회 개발 농업개발 다른 기술개발 분야에서도 큰 역할을 하고 있다.

또한 많은 선교지에서 한국 선교사들은 교육가로서 역할을 하고 있다. 아직도 미개발 도상국가들은 공교육이나 사교육이 발전하지 못하여 많은 사람들이 교육의 기회를 가지지 못한다. 선교의 문은 닫혔지만 교육에 개방된 선교지가 많다 불신자인 현지인들도 선교사가 세운 학교에 자기 자녀들을 보낸다. 캄보디아의 호산나학교는 캄보디아 중고등학교 중에서 가장 모범적인 학교로 교육부 장관의 인정을 받았다. 우리나라는 OECD 회원 국가로서 개발도상국가에 원조를 해야 한다. 이런 맥락에서 수 백 억 원대의 차관 혹은 무상원조로 대학이나 학교를 세워주었다. 그러나 세워 준 건물을 채울 소프트웨어나 관리가 부족하여 선교사들이 이 일을 수행하는 경우가 많다 일부 선교사들은 전문 기술자로 선교지 정부의 자문관으로 봉사한다. 캄보디아 공과대학에서 봉사하는 한 전자공학과 교수는 이 나라 방송국을 설치해주는 책임을 맡기도 했다.

2) 한국선교에 대한 비판적 견해들

한국 선교에 대한 비판은 이미 많이 제기되었다. 물론 이 비판들 중에 잘못된 여론과 이로 이한 비판도 있다. 이미 언급한대로 아프간 사태는 한국 선교에 대한 반성의 계기가 되었지만 동시에 악의의 비판도 포함되어있다는 사실을 깨닫게 했다. 국내적으로 반기독교 이데올로기의 도전이 심각하다는 것은 한국교회와 선교의 부담이 아닐 수 없다.

건전한 비판은 수용해야 한다. 당시 영국 이코노미스트지는 탈레반이 한국 크리스천을 납치한 사건을 두 선교적 종교간 충돌로 지적하였다. 그러면서 탈레반은 납치 살인 폭력의 방법을 수정해야 하고 반면 한국 교회는 감정적이고도 공격적인 선교는 지양해야한다고 하였다. 그해 일본 산케이신문은 러브소나타(Love Sonata) 집회를 향해 한국인들은 자기 사상이나 신앙을 남에게 강요하는 버릇이 있다는 것이다 고 비난하였다.

한국 선교는 선교지에서 도전에 직면하고 있다. 작년 봄 캄보디아 교회 목회자들은 한국 선교사 " Go Home!"을 노골적으로 외쳤다. 이 여파로 캄보디아장로교 신학교에서는 교수가 될 현지인이 한국 선교사 꼭두각시노릇하기 싫다 고 하면서 말없이 학교를 떠나고 말았다. 현지인들은 한국 선교사들이 돈으로 선교하면서 현지인 사역자를 종으로 취급한다고 생각한다. 한국 선교사들이 현지인 사역자들 때문에 많은 후원비를 받으면서 정작 자기들에게는 적게 준다는 것이다. 거기다 언어도 안 되면서 선교하며 한국 문화를 강요한다는 것이다.

작년 봄 캄보디아에서는 캄보디아 개신교 선교 90주년을 맞이하여 지난 20년 동안의 한국 선교를 성찰하는 세미나를 가졌다. 한 젊은 선교사는 다음과 같이 캄보디아에서의 한국선교 문제점을 지적하였다.

지난 20년간 한국교회가 캄보디아에서 진행해 온 선교 사역을 돌아볼 때 캄보디아인들의 선교적 필요를 접촉점으로 삼아 복음을 전하기보다는 한국의 프로그램을 일방적으로 전파하거나 한국교회를 캄보디아에 이식하고자하는 실수를 범한 것이 사실이다. 또한 현재 가장 두드러지게 나타나고 있는 문제는 바로 한국 선교사와 캄보디아 사역자간에 나타나고 있는 상하구조적인 관계이다.2)

2) 황종철, Dr. Sylvia' Korean Mission Missionaries from the Perspectives of the Cambodian Mission Filed"에 논찬캄보디아개신교 90주년 선교포럼(2013년 캄보디아선교포럼 자료집 177-178)

세미나에서 다른 한국선교사도 유사한 비판을 하였다. 그는 한인선교사역에 드러난 문제들을 다음과 같이 요약하였다. (1)교회개척이 물질적이고 세속적이다. (2)사역자를 고용한다. (3)선교보고에 과장이 많다. (4)많은 사역으로 어느 것에도 최선을 다하지 못한다 (5)현지인을 무시한다. (6)연합이 어렵다. (7)선교사간의 갈등이 심하다. (8)가부장적이고 권위주의이다.3)

3) 백의성 캄 한인 선교역사 20년의 특징과 드러난 문제점들과 해결방안 캄보디아개신교 90주년 선교포럼,

이상에서 나타난 문제의 핵심에는 이 있었다. 한국 선교사들은 네비우스 박사가 그토록 신랄하게 비판한 구제도인 돈 선교를 시행하고 있다. 즉 현지인 사역자를 고용하는 일이다. 이것은 부작용이 불가피하다. 많은 선교지에서 이미 10년 이상 현지인 사역자들에게 돈을 주었지만 자립의 전망은 요원하다. 많은 선교사들은 심각한 딜레마에 빠져있다.

더욱 심각한 것은 일부 선교지에서도 세습이 일어나고 있다는 것이다. 프로젝트 선교 (학교 병원 복지기관 선교센터 건립 등) 명목으로 수천만 원에서 수십억 원 혹은 수백억 원을 투자하여 건물을 지었다. 건립한지 이미 20년 이상 되었지만 신뢰할 만한 현지인 사역자나 위탁할 기관이 없다 함께하는 선교동역자들에게도 넘겨주기를 거부한다. 이런 이유들로 부득이하게 설립자 선교사가 가족 중심으로 사역을 진행하는 일들이 일어나고 있다. 현지인들은 이러한 선교사의 인격적 통전성을 노골적으로 뒤에서 비난한다.

한국교회는 선교지에 많은 건물 건축을 하였다. 특히 헌신적인 사역자와 세례 받은 신자도 없는데 교회당 건물을 지어주는 일이 너무나 많았다. 캄보디아에서 교회당 건물을 가진 교회의 50% 이상이 문을 닫았다는 통계를 수년전 서양선교단체가 보고한 바 있다. 이미 세워진 교회당 선교센터 학교 복지기관은 20% 이상도 활용되지 못하고 있다고 말한다. 교회당 건물이 곧 교회라는 교회관은 잘못된 것이다. 미국의 웨슬리 감리교 선교가 세워 준 좋은 건물은 텅텅 비어있다. 신학생도 없는데 건물부터 지은 것인데 이러한 오류는 한국 선교도 동일하다.

많은 선교사들이 훈련이나 신학과 성경에 대한 준비 없이 선교지에 간다. 장훈태 교수는 잘 훈련된 전문성을 갖춘 선교사가 절실히 요구된다고 잘 지적하였었다.4)

4) Hun Tae Chang, The Overseas Missionary Works of Korean Church as a Missionary Nation,” Theological Journal of KIMCHI, Vol.2 (December 2010): 173.

전문성 없는 전문인 선교사가 너무 많은 것이 현실이다. 많은 평신도 선교사들은 선교에 대한 기본 훈련이 없거니와 불교 국가 이슬람 국가에 선교사로 가면서도 해당 종교를 전혀 모르고 간 선교사들도 너무나 많다.

3) 한국선교의 미래방향

선교지에 있는 한 사람으로써 한국 교회 선교의 미래방향을 제안한다.

1) 한국 교회 선교는 교회관과 신앙고백이 결여되고 개교회주의가 강한 선교지에서 말씀에 기초한 교회를 세워야 한다. 한국교회는 이미 성경적 교회관과 행정 및 시스템을 가지고 있다. 선교지 교회는 교회관과 신앙의 정체성 위기에 직면하고 있다 이미 언급한 바와 같이 교리도 신앙고백도 제도도 없는 개교회가 너무나 많다. 특히 초교파 선교회는 교회관이 약한 개교회주의의 교회를 설립한다. 비서구 교회 문화가 미국의 오순절적 혹은 탈교회적 탈신앙고백적 찬양문화에 너무 지배당하고 있다.  

2) (edifice complex) . 교회 건물이 곧 교회라는 건물강박관념 을 탈피해야 한다. 선교지에 교회당을 지어주면 축복을 받는다는 잘못된 신앙은 시정되어야 한다. 한국교회가 세운 교회당 건물 상당수가 텅텅 비어 창고로 전락하는 것도 있다. 헌신적인 사역자와 평신도가 없을 때 교회는 문을 닫게 된다. 한국 선교가 지은 건물들이 현지인에게 사기당하거나 빼앗기는 일이 날로 증가하고 있다. 일부 빼앗긴 건물의 액수가 수 십 억 원에 달하는 것도 있다. 선교재산이 선교사나 현지인에 의하여 사유화되고 있다. 혹은 선교지 정부에 빼앗기는 일이 이미 일어나고 있다.

3) 개인주의 선교는 지양되어야 한다. 같은 교단 선교사들 간에도 협력과 일치가 없는 일이 너무나 많다. 큰 선교 프로젝트도 같은 선교부 소속의 선교사들조차 서로 협력하지 못한다. 선교지의 중복투자나 잘못된 경쟁주의는 이미 많이 거론되었다.

4) 한국 선교는 선교신학과 선교전략에서 어느 정도의 컨센서스(Consensus)가 있어야 한다. 같은 선교부의 선교사들 간에도 신학과 전략이 너무 다른 경우가 많다. 19세기 서구 선교는 선교원리와 전략의 컨센서스가 있었다. 대부분의 서구 선교회는 자립 자치 자력 전파의 삼자 원리를 전략으로 채택하고 이것을 실천하였다. 한국교회는 이 원리로 부흥한 성공한 케이스인데 불행하게도 한국 선교는 과거 선교역사의 아름다운 전통을 망각하고 있다.

5) 전문성과 언어가 준비된 선교사를 파송해야 한다. 지금 선교지에는 언어도 전문성도 없는 전문인 선교사가 너무도 많다. 전문인 선교의 개념이 재정립되어야 한다. 모든 평신도가 다 전문인은 아니다.

6) 선교사라는 용어보다 봉사자로 선교하는 것도 바람직하다. 은퇴한 목회자와 평신도들이 비교적 비자와 선교가 자유로운 선교지로 몰리고 있다. 이들이 전문 훈련과 교회나 선교회의 공식적 파송이 없을 때는 엄밀한 의미에서 선교사는 아니다.

단순한 봉사자로 선교지에 오는 것이 부담감이 적다. 서구 선교는 이미 선교사라는 말을 사용하지 않는다고 한다. 한국교회는 혼자 선교지로 나가는 자들을 단기간으로 훈련시키는 기관이나 제도를 마련함이 시급하다. 선교지의 신학교가 이들을 훈련시키는 것을 연구하고 있지만 단순하지 않다.

신자들이 해외로 사업차 나갈 때 교회는 그 신자에게 선교비는 거의 지원하지 않거나 소액을 지원하면서 선교사 명칭을 부여하는데 꼭 선교사라는 명칭을 주어야하는지 고려할 문제이다.

7) 한국 선교는 선교지 교회와 협력하는 것이 절대 필요하다. 우리가 직접 교회를 개척하는 것도 중요하지만 이미 세워진 교회들이 잘 성장하고 뿌리를 내리도록 협력해야 한다. 우리가 선교하는 선교지는 이미 많은 교회들이 있다. 한국 선교사들이 계속 교회설립을 고집하는 것은 문제가 있다고 본다. 최근 WEC은 교회개척을 철저히 원주민에게 일임한다고 한다.

8) 현지인 사역자 양성의 선교를 해야 한다. 선교의 궁극적 목표는 자립 자치자력 전파 가능한 원주민 교회를 설립하는 것이다. 교회에서 봉사할 사역자뿐만 아니라 모든 분야에서 헌신적으로 일할 사역자가 없이는 어느 분야에서도 효과적인 선교를 할 수 없다. 예를 들면 어느 선교지든지 저항 없이 사역이 가능한 분야가 학교설립이다. (유치원 포함) 그러나 신앙이 있는 현지인 교사와 행정가가 없이는 학교를 세울 수 없다. 학교를 시작하기 전에 신앙인 교사를 양성해야 한다 선교지에 학교나 유치원 교회를 하겠다고 큰 집을 지었는데 시작도 못한 경우가 허다하다.

9) 한국 선교는 통합적 선교(holistic missions)가 되어야 한다. 전도와 봉사의 병행이 불가피하다. 최근 통계에 의하면 전 세계에 에이즈 환자가 무려 41백만 명이나 되며 기근으로 2십억 명이 영양실조에 허덕이고 매년 22백만 명이 기아로 죽어간다 그리고 수천만의 난민이 있다. 특히 시리아 사태로 260만명의 시리아인들이 중동에 분산되어 있다. 대부분은 수니파 무슬림들이다. 이슬람 국가 선교는 앞문이 닫혔지만 뒷문이 열린 셈이다. 요르단에서 외국인들이 이들에게 전도하는 것은 법적으로는 문제가 없다고 한다.

10) 한국 선교는 신축적 전략이 요구된다. 선교의 타깃을 국가 중심에서 사람중심으로 옮겨야 한다. 즉 중국선교를 위하여 중국본토를 고집할 수 없는 상황이다. 한국에 있는 수십만 명의 중국인이 바로 선교지이다.

11) 한국 선교는 아시아에서 선교를 위하여 신학적으로 복음주의 종교신학 혹은 개혁주의 종교신학을 발전시켜야 한다. 현재 한국교회 선교사들은 불행하게도 신학적 배경이 약하다 아시아에서 왜 기독교냐고 묻는 이방인들에게 대답하는 신학이 되어야 한다. 즉 구스타프 바르넥이 말하는 선교변증학5)을 바빙크가 강조한 엘렝틱스(elenctics)를 발전시켜야 한다 현대는 헌팅톤이 말하는 문명충돌의 시대이다. 문명충돌은 곧 종교충돌이다.

5)Gustav Warneck, Evangelische Missionslehre (Friedrich Andreas Perthes, 1903)3권은 이 분약의 탁월한 작품이지만 영어로 번역되지 못하였다  

마지막으로 선교의 목표가 분명해야 한다 17세기 화란 개혁파 교회의 선교 목적은 하나님 영광 이방인 회심 교회 설립이었다6)

6) J. H. Bavinck, , 선교학 개론』 전호진 역 (서울 성광문화사 1981)20

선교사를 위한 선교가 아니라 하나님 나라를 위한 선교이며 동시에 현지 교회를 위한 선교가 되어야 한다 궁극적으로는 자생하는 현지인 교회 설립이 선교의 목적 혹은 목표가 되어야 한다. 그리고 현지인 교회가 선교하는 교회가 되도록 해야 한다 지금 중국 필리핀에서는 한국 선교사들이 훈련시킨 현지인들이 선교지로 나가고 있다. 한국 선교는 선교를 재생산하는 단계에 왔다. 이사야 선지자는 일찍이 선교지에서 최상의 것을 하나님께 바치는 이방인 제사장과 레위인의 등장을 예언하였다: “나 여호와가 말하노라 이스라엘 자손이 예물을 깨끗한 그릇에 담아 여호와의 집에 드림 같이 그들이 너희 모든 형제를 열방에서 나의 성산 예루살렘으로 말과 수레와 교자와 노새와 약대에 태워다가 여호와께 예물로 드릴 것이요 나는 그 중에서 택하여 제사장과 레위인을 삼으리라” (66:20-21).

 

결론

21세기 선교는 아직도 미완성의 과제이다. 한국 교회는 선교대국이라고 자부하지만 실제로 해외선교에 동참하는 교회는 20%미만으로 추산한다. 수백 개의 교단이 있으나 선교부를 조직하여 체계적으로 선교하는 교단은 아주 적다. 한국 선교사가 많아지면서 선교지에서 바람직하지 않는 문제점이 많이 발생하고 있다. 본격적으로 선교한 역사는 30년에 불과하지만 한국 선교는 성찰과 반성이 요구된다.

한국 선교에 문제가 있다면 그것은 선교사에게만 책임이 있는 것이다. 모든 파송교회가 공동의 책임이 있다. 파송교회나 후원자들은 돈이 있으면 선교가 된다는 인식을 불식시켜야 하고 눈에 보이는 결과를 너무 요구해서도 안 된다. 선교는 눈에 보이지 않은 무형의 영적사업이다. 선교사들은 순수한 동기와 참신한 청지기 정신으로 선교지에서 이방의 빛으로 거듭나는 노력이 요구된다.

반면 선교지에서 부정적 일들이 많아도 선교사들은 그것을 개혁해야 할 의무가 있다. 후원자들과 파송선교회가 노력하면 선교지의 많은 부조리를 정리할 수 있다.

선교는 성경이 명하는 지상명령이다 따라서 복음 전파는 중단되지 않고 땅 끝까지 전파되어야 한다. 땅의 모든 사람들이 복음을 들은 후에야 종말이 온다고 하였다.(24: 13). 그러나 세상이 다 하나님께로 돌아오는 것은 아니다. 복음전파는 구원과 동시에 심판을 선포하는 것이다.

2014 4 19 년 월 일

캄보디아장로교신학대학 총장

전호진 (D. Miss. Ph.D)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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