정주채 목사

주 안에서 문안드리며, 먼 곳에서나마 주님의 이름으로 사랑하는 여러분들을 축복하며 기도합니다. 저는 우리나라에서는 먼 나라 과테말라에 있으면서 코닷을 통해 교단의 소식을 접합니다. 때론 감사하고 때론 가슴 아파하면서 소식들을 읽고 있습니다. 얼마 전에는 전국장로회 수련회 강사문제로 왈가왈부하는 것을 보면서 안타까운 마음이 참 많았습니다.

그러나 한편으로 기쁨이 있는 것은 아직도 우리 가운데 신앙의 순수성을 지키려는 열심을 가진 장로님들이 많다는 것입니다. 의견은 다르지만 모두 교단을 사랑하고 신앙의 전통을 지키려는 마음은 공유하고 있다는 것을 보면서 위로를 받았습니다. 그러나 또 한편으로는 신실한 분들 중에도 교파주의에 빠질 위험에 노출되어 있는 분들이 있다는 생각도 들어, 코닷을 운영하는 한 사람으로서 졸필이나마 이렇게 글을 올립니다.

교단을 사랑한다는 것은 좋은 일이나 교파주의에 빠지지 않도록 조심해야 합니다. 교파주의란 어떤 조직이나 제도로 파당을 짓는 것을 말하며, 신앙적으로는 바리새주의나 분리주의에 빠지는 것을 말합니다. 우리가 교단을 사랑한다고 말한다면 그것은 교단이 가진 아름다운 신앙의 유산과 그 신앙고백을 사랑하는 것이고, 그런 유산과 신앙고백을 공유한 성도들을 사랑하는 것이라는 사실은 장로님들도 다 아는 일입니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우리는 영적으로는 연약하면서 육적인 성향은 강하여 영적이고 본질적인 것은 잃어버리고 껍데기만 붙들고 자랑하며 교만할 때가 많습니다. 지금 우리가 속한 교단의 형편이 그러하지 않은가 싶어 너무나 안타깝고 답답한 심정입니다.

영은 없고 현란한 말만 많은 목회자들, 경건의 모양은 있으나 경건한 삶이 없는 장로들, 신학은 있으나 신앙이 없는 학자들, 정신은 어디 가고 조직만 남은 기관들, 아골 골짜기의 마른 뼈들처럼 되어 있는 교회들,.. 이런 것들이 바로 우리 자신들의 모습이라고 말한다면 지나친 자아비판일까요?

우리가 사랑하고 사모하며 추구해야 할 것은 아름다운 사도적 신앙의 유산이지요. 우리의 신앙선진들이 가졌던 순수하면서도 역동적인 신앙, 곧 살아계신 하나님과의 친밀함이고, 그분의 임재 속에서 누리는 기쁨과 영광과 은혜의 풍성함이며, 성령의 충만함에서 오는 거룩함과 능력의 나타남이 아닙니까.

그리스도의 복음이 너무나 탁월하고 위대하여 인간의 자랑꺼리는 배설물처럼 여겨지는 신앙, 그래서 모든 것을 버리고 오직 그리스도만을 붙잡았던 삶이 진정 아름다운 신앙이 아닐까요. 하나님 외에는 그 어떤 것에도 머리를 숙일 수 없고, 오직 그분께만 영광을 돌리며 그 영광을 위해 살고자했던 열망, 이런 것이 우리 신앙선배들의 유산이 아니던가요.

우리는 꼬리를 붙들 것이 아니라 머리를 붙들어야 합니다. 내가 어디에 소속했느냐를 따지기보다 내가 어떤 신앙의 소유자인가를 따져야 합니다. 지금 우리는 자신도 모르게 교파주의에 빠져들고 있습니다. 신앙의 유산은 잃어버리고 무덤에 회칠하듯 우리의 전통과 소속만을 자랑하고 있습니다.

사랑하는 장로님 여러분, 눈을 들어 사방을 둘러보십시오. 시간과 공간의 종과 횡을 둘러보십시오. 그리고 아름다운 사도적 신앙을 가지고 누리며, 이 신앙전파를 위해 자신을 던져 희생하고 있는 사람들이 누구이며, 어디 있는지 살펴보십시오.

칼빈과 루터를 넘어 존 웨슬레, 조지 휫필드, 요나단 에드워드, 리빙스톤, 허드슨 테일러 등등,... 얼마나 많은 사람들이 있는지 다 헤아릴 수 없습니다. 오늘날에도 빌리 그래함, 마틴 로이드 존즈, 존 스토트, 로렌 커닝햄, 우리나라의 한경직, 한상동, 조용기, 옥한흠 등등 얼마나 훌륭한 신앙인들이 많습니까. 이들 중에 교파가 다르고 소속이 다르다고 해서 우리가 정죄하고 거절하고 배척해야 할 사람들이 있습니까.

저는 안식년을 가지면서 독서를 많이 하고 있습니다. 독서 중에 저가 놀라는 것은 정말 하나님의 사람들, 성령으로 충만한 사람들, 단순히 교리적인 신앙고백의 차원을 넘어 생생하게 살아있는 신앙의 소유자들이 많다는 사실입니다. 저는 이전부터 고든 맥도날드의 책과 스카트 M. 팩의 책들을 읽었습니다. 요즈음은 토미 테니, 유진 피터슨, 잭 프로스트, 짐 스파이어, 등등의 책을 읽고 있습니다.

물론 이들의 내용 가운데는 간혹 동의할 수 없는 내용들도 있습니다. 그러나 대부분의 내용들은 너무나 충격적이고 감동적입니다. 저들의 신앙이 부럽고 사모됩니다. 때로 저는 회개의 눈물을 흘리며 책을 읽습니다. 이들의 아름다운 신앙, 역동적인 신앙에 앞에서 저 자신이 너무나 메말라 있음과 낡은 껍질로 둘러싸여 있음을 발견하고 웁니다. ‘이들은 누구이며 나는 누구인가? 이들은 이렇게 살아있는데, 나는 왜 이리도 무디고, 약하고, 굳어 있을까?’

장로님 여러분, 저는 책을 고를 때 교파를 따지지 않습니다. 그 저자가 오순절교회에 속했는지, 감리교나 침례교에 속했는지, 아니면 장로교인지 따지지 않습니다. 그들의 신앙이 얼마나 성경적인지, 얼마나 거룩하고 경건한 사람들인지, 얼마나 은혜를 사모하며 성령님을 의지하는 사람들인지를 봅니다.

물론 저는 신학과 교리를 무시하는 사람이 아닙니다. 그것은 우리의 뿌리이며 근간입니다. 그리고 우리의 신앙전통과 유산을 귀히 여깁니다. 그러나 저는 우리가 가진 것이 모두라고 생각지 않습니다. 기독교 신앙의 유산은 너무나 풍성합니다. 하나님께서는 교회 안에 그의 영광의 모든 풍성함으로 충만케 하셨다고 하였습니다. 우리는 스스로 우물 안으로 들어가서는 안 됩니다. 풍성한 은혜의 바다로 나아가야 합니다.

우리의 신앙선배들은 개혁주의 대한교회와 세계교회 건설을 꿈꾸었습니다. 우리도 눈을 크게 뜨고 온 세계를 바라보며 하나님나라 건설에 참여해야 합니다. 그리고 무슨 이유만 있으면 구별하고 분리하려할 것이 아니라, 할 수만 있다면 주의 이름을 부르는 모든 자들과 연합하여 이 일을 성취해야 합니다. 그래서 저나 여러분들이나 진정한 사도적 신앙의 계승자들로 살아갈 수 있어야 하겠습니다.
감사합니다. 주 안에서 평안하시길 축원합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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