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지금 많은 기독교인들이 시내산이라고 믿고
순례하는 시나이반도에 있는 무사산은 시내산이 아닙니다. 진짜 시내산은 사우디 아리비아에 있는 라오즈 산입니다.”
김승학 원장(박애병원 행정원장)의 주장은 그동안 이집트 시나이 반도에 있는 무사산을 시내산이라고 믿고 성지순례를 하는
기독교인들에게는 충격적이고 매우 흥미로운 일이다. 로마 가톨릭이 정한 시내산을 다녀온 사람들 중에 일부는 고개를 갸웃거린다. 그것은
시내산 지경에는 애굽을 탈출한 250만 명의 이스라엘 백성이 모일 만한 장소가 없기 때문이다. 그런데 김승학 원장이 주장하는
라오즈산은 그런 고민을 사라지게 한다.
하지만 그가 말한 사우디에 있는 라오즈산이 시내산이라고 할 만한 증거가 있을까? 이런 의문은 김승학 원장을 세 번 만나면서
사라졌다. 그를 처음 만난 것은 김승학 원장이 라오즈산을 탐험하면서 기록한 탐사 이야기를 담은 <떨기나무>(두란노)라는 책
때문이었다. 첫 만남에서 그의 이야기는 매우 흥미로웠지만 탐정 소설 갈은 이야기와 그 동안 가지고 있던 고정관념으로 혼란스러웠다.
그리고 그의 책을 탐독하고 다시 김 원장을 만나야 했다. 그의 책 속에 담긴 것들은 전 세계 기독교인들은 물론 그리스도인들에게도 놀랄
만한 소식이었다. 그와의 만남을 통해 궁금했던 것을 인터뷰했다.
- 한국 사람으로서 사우디에 20년 동안 머물렀던 이유는 무엇인가?
“하나님이 분명히 내게 시내산의 비밀을
알아내라고 말씀하시는 것으로 믿었다. 시내산이 나를 부르고 있었다. 나는 비디오테이프를 정밀하고 자세하게 반복해서 보았다. 그리고
자료를 조사하기 시작했다. 알다시피 사우디는 이슬람국가의 종주국이기 때문에 기독교와 관련된 어떤 서적도 접할 수 없다. 인터넷 웹
사이트로 함부로 검색할 수 없다. 정부는 대형 안테나가 있는 전파 감시국을 통해 전화, 팩스, 무선 교신들을 도청하고, 인터넷 대형
단말기에 감시용 서버를 부착해 섹스, 인권, 타종교와 관련한 사이트 접근을 막아버린다. 그래서 출애굽과 관련한 기독교 자료를 수집하는
것은 매우 어려운 상황이었다. 그런데 그 무렵 왕자의 건강이 악화되어 나는 사우디를 벗어나 오스트리아. 프랑스, 스위스, 독일, 미국
등지를 다닐 수 있었다. 해외에서 왕자를 돌보며 시간이 나는 대로 성경을 정독하고 시내산이 미디안 땅에 있다는 관련 자료를 모았다.
또한 론 와트 외에 미 특수부대 요원이었던 로버트 코루눅 박사와 아폴로 15호에 동승했던 짐 래리라는 사람이 라오즈산(시내산)을
정탐했다는 사실과 함께 이들이 사우디에서 강제추방당하고 그 후에 라오즈산이 시내산이라는 주장이 세상에 조금씩 알려지기 시작했다는
사실도 알게 되었다.”
-라오즈 산은 언제 가보았는가? 왜 그 산은 접근하기 어려운 지역인가? “1987년이다.
왕자가 휴가를 가던 때에 나도 휴가를 얻어 첫 탐사를 시작해서 2006년 8월까지 모두 12차례 탐사를 했다. 7년 동안 하나님은
라오즈산을 탐사하도록 하셨다. 그 지역은 군사경계지역으로 왕실의 허가가 없으면 출입할 수 없다. 미사일 기지가 있고 그 정상에서는
이스라엘도 보인다. 군사적 요충지이면서 고고학 지역을 묶어 놓고 아무도 출입하지 못하게 돼있다. 첫 탐사는 아내와 두 아이들이
함께했다. 그곳은 낮의 온도가 40도에서 50도가 넘는다. 오랜 동안 준비했지만 첫 탐사부터 우리는 벽에 부딪쳐야 했다. 생전 가보지
못한 지역에 3천키로가 넘는 곳을 간다는 것 자체가 무리였다. 그곳에는 특수부대, 비밀경찰, 그리고 훈련된 유목민들이 세 겹으로
감시했다. 사막지역이라 차로 움직이면 금방 포착된다. 그런데 하나님은 그들의 눈을 감기기도 하고 또 왕자 주치의라는 신분을 요긴하게
쓰이도록 하셨다.”
-시나이반도의 시내산이 가짜이고 사우디에 있는 라오즈산이 진짜라는 이유는 무엇인가? 그리고 지금까지 교회사에서
한번도 현재의 시내산을 의심하지 않았지 않는가? “지금의 시내산은 기원 후 527년 순례객들을 충족시키기 위해
급조된 성지일 뿐이다. 로마가 기독교를 국교화하면서 기독교인들은 성지를 찾아 나섰다. 하지만 하나님이 직접 강림하시고 모세를 통해
십계명을 주신 성스러운 시내산은 찾을 수 없었다. 요세푸스는 성경을 근거로 아라비안의 미디안 땅에 시내산이 있다고 주장했다. 하지만
불행하게도 로마교황청은 시내산을 순례하고자 하는 그리스도인들의 성화에 못 이겨 기원 후 527년 유스티니아누스 황제 때 무사산의
북서쪽 언덕배기에 캐더린 성당을 세운다. 거기를 성지로 정하고 아무 근거도 없이 시내산으로 명명하여 공포해 버린 것이다. 그 후로
지금까지 역사가 왜곡되어 온 것이다. 주후 5세기 이전에는 거기를 시내산이라 부르거나 기록한 적이 없다는 사실이 이를 입증하고
있다.”
“상식적으로 이스라엘 백성이 애굽 땅에서
십계명을 받았다고 생각할 수 없다. 왜냐면 지금 시내산은 예전에 애굽 땅이었다. 하나님은 미디안 땅에 있는 호렙산에서 다시 모세를
만나겠다고 했다. 그런데 이스라엘 백성이 출애굽해서 엘림과 신 광야를 지나 시내광야에 가서 십계명을 받고 떠날 때까지 기간은 정확히
11개월 5일이다. 애굽 군사들이 뒤쫓아 오는 상황에서 11개월 동안 애굽 땅인 시나이반도를 떠돌아 다녔다는 것 자체가 말이 되지
않는다. 하나님은 분명히 애굽을 떠나게 하셨다. 그렇다면 그곳은 지금의 시내산이 아닌 다른 곳에 시내산이 있다는 결론에
이른다.”
- 홍해에 대한 성경학자들의 의견이 분분하다. 일부에서는 홍해를 건넌 것은 갈대밭을 건넌 것이라고 말하기도
한다. “기존이 출애굽 경로에 의하면 이스라엘 백성은 홍해를 건널 필요가 없다. 고센에서 시내산까지의 여정에는
결코 홍해가 없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홍해를 건넜다는 것은 거짓말이 된다. 여기서부터 기존의 출애굽 경로에 의문이 생기는 것이다.
홍해는 수심이 1천2백미터나 된다. 대륙이 이동하면서 생긴 깊숙한 절벽의 바다가 생긴 것이다. 그래서 설령 하나님이 그곳을 갈랐다고
해도 건널 수 없다. 1천2백미터나 되는 절벽을 타고 내려가 다시 그 건너편 절벽을 기어 올라간다는 것은 불가능하기 때문이다. 그래서
나도 처음 홍해 기사를 읽고 그 현장을 갔을 때 납득이 되지 않았다. 그러나 하나남께서는 홍해의 한 곳에 바닷길을 내셨다. 그
바닷길은 솔로몬이 자신의 조상이 홍해를 건넜다는 것을 기념해서 양편에 기념기둥을 세웠다. 그 곳에는 유일하게 삼각주처럼 모래해변이
12킬로미터로 펼쳐져 있다. 하나님은 이스라엘백성을 사흘 길을 걸어 이곳에 도착하도록 했다. 이곳의 바다 수심은 120미터로 경사
6도의 완만한 유일한 바닷길이다. 하나님은 이곳의 바다를 가르시고 건너가게 하셨다.”
“만약 라오즈산이 진짜 시내산이라면 성경에
기록한 대로 있어야 할 것을 적어보았다. 엘리야 동굴(열왕기 상 19:9), 그리고 이스라엘 백성이 올라오지 못하도록 쌓은 지경(출
19:12), 성막을 친 장소(출애굽기 26장), 아론의 금송아지 단(출 32장), 광야 산에 흐르는 물(신 9:21), 모세가 친
므리바 반석 등이었다. 이런 내 생각은 라오즈 산을 오르면서 너무 정확하게 들어맞았다. 누가 꾸며놓았다고 할 만큼 라오즈 주변은
이스라엘 백성들의 흔적이 여기저기 널려 있었다.”
- 라오즈라는 뜻은 아몬드라는 뜻이라고 했는데 그것은 시내산과 무슨 연관이 있는가? 더구나 마실 물이 없어 호렙산
반석을 치게 하셨다고 했는데 현재 시내산인 호렙산과 르비딤은 거리가 매우 멀다. “라오즈란 뜻은 바로 아몬드란
뜻이다. 실제로 그 산은 아몬드가 많이 있었다. 그런데 한글개역성경에 번역된 아론의 싹이 난 지팡이는 살구나무라고 번역되어 있지만
히브리 성경이나 영어 성경은 아몬드 나무라고 기록되어 있다. 너무 신기한 일이 아닌가? 라오즈 산을 탐사했을 때 우리는 그 곳에서
호렙산의 반석을 목격했다. 목말라서 모세와 하나님을 원망하는 가운데 하나님은 모세에게 반석을 치게 하셨다(출 17:6). 그 반석은
구릉이 있는 가운데 높게 쏟아 있었다. 높이는 8층 높이 정도로 약 22미터 정도였다. 그 반석은 둘로 갈라져 있었고 그 틈은 한
사람이 지나갈 정도였다. 물론 물이 반석에서 솟구쳤을 때 모든 이스라엘 백성이 이 장면을 목격했을 것이다. 그 만큼 바위는 구릉에서
우뚝 서 있었다. 현재 시내산은 르비딤과 호렙산 사이가 48킬로미터나 떨어져 있다. 성경과 다르다. 그런데 그곳에서는 가까운
곳이었다. 우리는 이 반석 밑으로 산 단을 발견했다. 그곳은 아말렉과 전쟁에서 승리 한 뒤에 세운 단(출 17:15)이었다. 바로
반석에서 얼마 떨어져 있지 않았다.”
- 다른 흔적에 대해 알고 싶다. 가령 지경이나 이스라엘의 주거 흔적 같은 것이
있었는가? “물론이다. 그곳은 사람의 손길이 닿지 않는 곳이다. 하나님은 사우디아라비아를 통해 이곳을 잘
보존하게 하셨다. 이곳은 바로 7년에서 10년에 한 번 정도 내릴 정도로 메말라 있다. 이곳에 사는 유목민들 스스로가 이곳으로
이스라엘 사람들이 지나간 곳이라고 말한다. 라오즈산을 배경으로 수많은 암각화들이 그려져 있다. 고대 히브리문자는 물론 이집트의 각종
신들의 형상도 있다. 또한 만나를 갈아먹거나 찧어 먹기 위해 사용된 수많은 맷돌과 돌절구들이 여기저기에 흩어져 있다. 나도 그곳에서
맷돌과 절구를 가져왔다. 홍해를 바라보는 쪽으로 지경이 넓게 쌓여 있다. 또한 천막을 친 주거 형태의 돌이 당시 그 모습대로 보존되어
있다.”
▲ 이스라엘 백성이
천막을 친 주거흔적으로 보이는 것. 김 원장이 천막 입구에 출입문을 표시한 곳에 서 있다. 이스라엘 백성들은 이 곳에서
천막을 세우고 돌들을 천막이 바람에 날리지 않도록 고정했던 것으로 보인다. 그리고 이동할 때는 그대로 천막만 거두었다.
이런 주거 흔적이 너무 많다고 한다.
- 이번 자료들과 라오즈산에 대한 이야기는 전 세계가 놀랄 만하다.
“라오즈에 대한 자료들은 한국교회는
물론 전 세계적인 뉴스가 될 것이다. 단순한 흥밋거리가 아니라 교회사적으로도 매우 의미 있는 일이다. 나는 이 자료를 처음 한국에
공개하려고 했었다. 그러나 한국의 한 교수를 만났을 때 내게 ‘아직도 출애굽을 믿고 있느냐’는 말에 생각을 바꾸었다. 일부 자료를
미국과 이스라엘에 보냈다. 그들의 반응은 정말 놀라웠다. 기존의 성지에 대한 새로운 역사를 써야 할 것이다. 또한 하나님의 역사를
믿음으로 보지 못한 많은 학자들이 그 이론들을 수정해야 할 것이다. 나는 라오즈 산에서 아론의 금송아지 재단도 보았다. 또 그곳의
지명은 우리가 만들어 낸 것이 아니라 오래전부터 조상 대대로 내려오는 지명이었으며 성경과 일치했다. 미디안 땅, 그리고 모세의 장인의
집인 이드로의 집도 가 보았다. 명백한 하나님의 역사를 우리는 경이롭게 보고 경배할 수밖에 없다.”(교회와
신앙제공)
현재까지 여섯 곳 정도가 새로운 후보지로 언급되기도 하였습니다.
1980년대 중반에도 한 번 크게 이 문제가 다루어지기도 하였습니다.
그런데 무슨 일이든 한 번 결정된 것은 좀처럼 바꾸어지지 않는 이상한 보수성이 어느 시대 누구에게나 있습니다. 우리도 늘 경험하는 일입니다. 먼저 들은 이야기에 솔깃하여 진실을 이야기하여도 잘 받아들이지 않는 경직성이 역사발전에 항상 걸림돌이 되곤 합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