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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 이상규 교수고신대학교

정치권 일각에서 문창극 총리후보자의 강연 내용을 물고 늘어지고 있다. 문제삼은 쪽은 야당 정치권만이 아니라 일부의 언론, 진보적 성향의 시민단체들도 가세하고 있고, 여당 인사들 중 일부도 이를 문제시하고 있다. 문제 삼은 것은 총리 후보자가 2011년 온누리교회 나라를 위한 기도회에서 행한 강연에서, 일제 식민지배와 남북 분단이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했다는 이유이다. 한마디로 한국의 슬픈 역사의 질곡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한 것을 두고 친일이니 식민사관이니 심지어는 반민족적이라고까지 말하는 모양이다.

이런 논란에서 두 가지를 생각해야 한다. 첫째, 이 강연은 다름 아닌 기독교인들이 모이는 교회에서 행한 강연이라는 점이다. 기독교인들을 대상으로 자신의 신앙적 관점에서 일제의 식민지배나 조국의 분단도 한국을 향한 하나님의 뜻이 있지 않는가 라는 취지의 강연이었다. 강연 전체를 들어보면 강연자의 의도는 비난받을 일이 아니라고 생각된다. 공공기관이 아닌 교회 공동체에서 하나님의 뜻을 말하는 것은 자연스런 일이고, 이는 충분히 이해될 수 있는 일이라고 생각한다. 그럼에도 불구하고 문맥관계를 무시하고 종교적 집단인 교회에서 행한 강연이라는 점을 고려하지 않고, 특정 표현을 고의적으로 문제 삼는 것은 정직한 태도라고 생각되지 않는다. 둘째, 인간 역사의 개별 사건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것이 부당하고, 그것이 잘못된 역사인식인가 하는 점이다. 식민지배나 남북분단만이 아니라 6.25 동란, 4.195.16 등 우리의 역사 사건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것이 부당한가 하는 점이다.

단순하게 말해서 역사를 해석하는 3가지 입장이 있다. 역사를 현상세계 밖에 있는 보이지 않는 어떤 것, 예컨대 이념 혹은 정신 등의 관계에서 현상세계를 파악하려는 관념론적 역사이해가 있는가 하면, 역사를 현상세계 안에서, 즉 시간세계 안에서 일어난 사건 그 자체에서 역사의 법칙과 질서를 찾으려는 실증주의적 역사이해도 있다. 그러나 우리 그리스도인들은 역사에서의 동인과 역사과정을 단순히 역사내적인 인과론으로 보지 않고 역사의 과정과 의미와 목적을 하나님과의 관계에서 인식한다. 이런 관점을 기독교적 역사이해라고 부른다. 기독교적 역사이해의 가장 기본적인 관점이 인간이 역사의 주인이 아니라 하나님이 역사를 운행하신다는 점이다. 이것을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지 않는가? ‘하나님의 뜻으로 인식한 문 후보자의 인식이 잘못된 것인가? 역사의 동인(動因)은 인간이나 자연법칙이 아니다. 그렇다고 해서 내재적 법칙에 의해 움직이는 인과론도 아니다. 하나님이 역사의 주인이라는 점에서 하나님의 뜻이라고 말하는 것은 지극히 당연한 것이다. 이런 믿음때문에 에굽에 팔려간 요셉은 나를 이리로(에굽) 보낸 자는 당신들이 아니요 하나님이시라.”(45:8)고 했고, 구약에서 하나님은 어떤 국가의 주권과 경영뿐만 아니라 제국의 흥망과 성쇠도 다스리는 분으로 선포되고 있다(32:8, 2:21, 9:7, 17:26).

문 후보자의 역사인식은 전통적인 기독교역사관, 곧 하나님이 직접 역사에 관여한다는 점, 역사를 일직선으로 이끌어 가신다는 점, 역사를 그가 정한 목표로 인도하신다는 점을 잘 드러내고 있다. 발생하는 모든 사건은 한정된 인간의 인식 여부와 관계없이 하나님의 주권적 의지(sovereign will)의 표현이다. 이런 인식이 어거스틴에서 시작되는 서구 기독교의 가장 일반적인 역사인식이다. 한국의 함석헌의 인식도 다른지 않다. 함석헌은 뜻으로 본 한국역사에서 이렇게 말한다. “하나님은 그 뜻의 한 줄씩을 각 민족의 요람위에 쓰셨다. ... 역사의 기조를 결정하는데 지리와 민족의 특질이 중요 조건이 된다. 그러나 그 보다도 결정적인 것은 하나님의 뜻이다. 왜냐하면 먼저 둘은(지리와 민족을 가리킴, 인용자 삽입) 저대로 서는 것이 아니요, 하나님의 뜻 안에서 존재 이유를 구하는 것이기 때문이다. 적당한 품종을 적당한 땅에 심는 것은 오로지 재배하는 사람의 뜻에 달린 것이다. 역사를 우연한 것으로 보지 않는 자에게는 우리나라 지리도 우리 민족의 기질도 우연한 것일 수 없다. 그것은 어떤 이유가 있고, 어떤 계획에서 된 것이어야 할 것이다.” 한석헌은 역사를 우연으로 보지 않고 어떤 계획자인 하나님의 뜻의 구현으로 파악하고 있다(제일출판사, 1977, 80). 함석헌은 해방은 도둑같이 뜻밖에 왔는데, 하늘에서 온 것이라고 말한다. 아무도 모른 것은 아무도 꾸민 사람이 없기 때문인데, 사람이 꾸미지 않고 온 것은 바로 하늘의 선물, 곧 섭리라고 말한다(332). 다시 말하면 한국 역사를 하나님의 뜻이라는 관점에서 파악한다. 그는 인류역사는 고난의 역사이고, 고난에는 뜻이 있다. 그것은 자연현상이 아니고 잔혹한 운명의 장난도 아니라 하나님의 섭리라고 말한다(391). 문 후보자의 역사관은 함석헌의 그것과도 다르지 않다.

수많은 군중들이 예수님을 십자가에 못 밖으라고 외칠 때 빌라도는 나는 그에게서 죄를 발견하지 못하겠노라라고 했는데, 문후보자에 대해 나도 빌라도의 말을 차용하고 싶다. “나의 판단으로는 문 후보자를 비난할 죄를 발견하지 못했다.” 나는 그의 총리론을 말하는 것이 아니라 그의 역사 인식의 문제를 말한 것이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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