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평양대부흥회 100주년의 조명과 우리의 과제
  • 손봉호 장로 /서울영동교회 은퇴장로 동덕여대 총장
  • 승인 2007.07.18 00:0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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역사적 사실은 단순히 지식의 대상이 아닙니다. 그것은 실제적으로 우리에게 여러 가지 의미를 가지고 있습니다. 하나님은 성경을 통하여 그의 뜻을 계시하시지만, 자연도 이용하시고, 역사적 사실을 통해서도 우리를 교육하십니다. 인간의 사고와 생활방식은 시대와 지역마다 다소 다를 수 있지만 모든 시대 모든 지역에 공통되는 것들이 더 많습니다. 그러므로 과거에 일어난 사건들은 모든 다른 시대와 사회에 속한 사람들에게 교훈이 될 수 있고 거울과 길잡이의 역할도 할 수 있습니다. 영적인 문제도 예외가 아닙니다. 성경에 역사적 기록이 많은 것은 공연한 것이 아닙니다. 우리에게 중요한 교훈을 줄 수 있기 때문에 기록되고 전해지는 것입니다. 역사적 사실은 특히 같은 문화권에 속한  후세들에게는 더 큰 교육적 효과를 가져다 줄 수 있을 것입니다.


평양 대부흥회는 한국 기독교사에 아주 중요한 사건이었습니다. 선교사들이 처음으로 입국한 것 다음으로 한국 기독교 역사상 중요한 사건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것은 교회의 영적각성과 전도에 활력을 불어넣었을 뿐 아니라 서양 선교사들에 의하여 전파된 복음이 한국인의 신앙으로 뿌리내리는 중요한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 후부터 기독교는 서양인의 종교가 아니라 한국인의 신앙으로 확고하게 인식되었다 할 수 있습니다. 1903년 원산에서 시작된 선교사들의 기도모임에 참석한 캐나다 선교사 하디는 성령의 감동을 받고 한국 백성들에 대한 자신의 교만을 모든 선교사들 앞에서 통회하였다 합니다. 그의 회개를 지켜본 다른 선교사들도 동일한 죄가 자신들에게도 있음을 고백하며 회개하기 시작했다는 것입니다. 부흥운동이 회개로부터 시작했다는 사실도 중요하거니와, 선교사들이 한국인에 대한 자신들의 교만에 대해서 회개했다는 사실은 예수 그리스도의 복음이 서양인들의 것일 뿐 아니라 한국인의 것도 된다는 사실을 인식했다는 것을 뜻합니다. 물론 그 전에도 성령의 강력한 역사를 체험한 개인들이 없지 않았을 것입니다. 그러나 그것이 한국교회의 공동체적 체험이 된 것은 그 때가 처음이었을 것입니다. 그 후 3.1 운동을 비롯해서 수많은 기독교인들이 한국의 독립을 위하여 정열을 쏟을 수 있었던 것도 바로 복음과 한국이 서로 이질적이 아니라는 인식이 일반화했기 때문이라 할 수 있습니다.


그러나 오늘날 한국교회가 평양대부흥운동으로부터 배워야 할 것과 감당해야 할 과제는 역시 회개와 관계된 것입니다. 물론 모든 영적부흥에서 회개가 빠질 수 없습니다. 그러나 원산과 평양에서 일어난 부흥의 불길은 처음부터 끝까지 회개로 채워졌습니다. 원산의 부흥이 하디 선교사의 교만에 대한 회개로 시작되었다면 평양 부흥의 불길은 길선주 장로가 죽어가는 친구가 맡긴 돈을 훔친 죄를 3천 명이나 되는 회중 앞에서 고백함으로 타오르기 시작했다 합니다.


역사가들의 말에 의하면 평양대부흥회 회개의 특징은 단순히 말로만의 회개, 눈물만 많이 흘리는 통회자백이 아니라 행동이 수반되는 죄의 고백이었습니다. 성도들은 아내를 구타하고 구박한 죄, 도적질하고 간음한 죄 등 어떤 죄도 감추지 않고 고백했고, 사경회가 끝나자 그들은 훔친 물건을 들고 주인에게로 갔고 자신의 잘못으로 고통을 당했던 사람들을 찾아다니며 사과하고 변상하기 시작했다 합니다.


물론 회개는 말로 이루어져야 하고 격한 감정이 동반되는 경우가 많습니다. 그러나 단순히 말로만 하는 회개, 눈물만 많이 흘리는 회개는 진정한 회개가 될 수 없습니다. 회개에 합당한 열매를 맺어야 하는 것입니다. 즉 회개한 대로 행동해야 하는 것입니다. 눈물을 흘리며 통회자복하지 않아도 행동으로 잘못을 고치는 것이 눈물 많이 흘리고 말로만 끝나는 회개보다 더 진정한 회개일 것입니다. 삭개오가 눈물 많이 흘리며 통회자백했다는 기록은 없습니다. 그러나 그는 행동으로 자신의 과거 잘못을 회개했고 그것이 주님을 기쁘게 했습니다.


삭개오의 회개와 평양대부흥회 때의 회개의 또 하나의 특징은 그들의 죄에 대해서 하나님의 용서만 구한 것이 아니라 이웃에 대한 잘못을 변상하고 그들의 용서도 구한 것입니다. 


우리가 회개해야 할 죄는 하나님에게 지은 죄와 사람에게 지은 죄로 구분할 수 있습니다. 우상숭배나 교만은 전자에 속하고, 살인, 간음. 거짓 같은 것은 후자에 속합니다. 십계명 가운데 여섯 계명은 사람에 대한 계명입니다. 어떤 신학자들은 제 4계명조차도 이웃에 대한 것이라고 해석하고, 안식일이 사람을 위해서 있다는 예수님의 말씀을 고려하면 그 해석이 옳은 것 같습니다. 그런데 하나님에게만 지은 죄는 사람에게 죄가 되지 않을 수 있습니다. 우상숭배나 하나님 이름을 망령되이 일컫는 것은 사람들에게 해를 주지 않습니다. 그러나 사람에게 지은 죄는 하나님의 계명을 어긴 것이기 때문에 동시에 하나님에게도 죄가 됩니다. 하나님을 진정 두려워하지 않고 하나님의 사랑과 능력을 의지하지 않기 때문에 사람에게 죄를 짓는 것입니다. 하나님에게 지은 죄는 하나님의 용서만 받으면 되겠지만, 사람에게 지은 죄는 하나님과 사람 모두로부터 용서를 받아야 합니다. 


최근 우리의 관심을 끌었던 영화 <밀양>에는 과부의 외아들을 유괴 살해한 죄수가 하나님의 용서를 받았기 때문에 마음에 평화를 누린다는 내용이 있다 합니다. 그 사람을 용서하러 찾아갔던 부인이 그 사실을 알고 엄청난 분노를 느끼고 혼란 빠진다 합니다. 그 살인범은 사람에게 범한 죄에 대해서 하나님 앞에서만 회개했지 사람 앞에서 하지 않았으며, 피해자의 용서를 구하지 않았고 용서받지도 못한 것입니다. 그런 회개는 진정한 회개가 될 수 없습니다. 


혹시 그 젊은 어머니가 그 살인자에게 갖게 되는 감정을 많은 한국인들이 한국 기독교인들에게 갖고 있는 것이 아닌지 모르겠습니다. 대부분의 한국 교회는 요즘 회개도 별로 강조하지 않지만 회개한대로 행동하고 사는 것은 더더욱 강조하지 않습니다. 그런 강조는 사람들에게 별로 인기가 없고, 따라서 교회성장에 도움이 되지 않기 때문일 것입니다.


평양대부흥은 바로 교회 성장으로 이어지지는 않았다 합니다. 그러나 그것은 7,80년 대 한국 교회 성장의 밑거름이 되었습니다. 그 때 시작된 새벽기도의 전통은 한국 교회의 영적 능력을 제공하는데 크게 공헌하였고, 회개운동의 결과는 일반 사회가 따라올 수 없을 정도의 경건한 삶이었습니다. 장기려 박사는 “예전에는 예수 믿는 사람들의 모습이 타인의 모범이 되었다. 믿지 않는 사람들이 믿는 자의 생활을 보고 감탄해서 그런 모습이 어디에서 나오는지에 대해 궁금해 했다”고 지적했습니다. 60년대까지만 해도 기독교인들은 도덕적으로 일반사회의 수준을 능가했고 사람들의 존경을 받았습니다. 그런 존경이 7, 80년대의 교회성장에 적지 않은 공헌을 했습니다.


그러나 불행하게도 오늘날 비 기독교인이 기독교인의 경건한 생활을 보고 감탄하는 경우는 거의 없습니다. 존경은커녕 오히려 냉소하고 비아냥거립니다. “한국의 사기꾼은 교회에 다 모여 있다”는 말이 공공연하게 들릴 정도가 되어 있고, 한국 교회는 이에 반대하거나 항의할 수 없을 정도로 비참한 상황에 빠졌습니다. 역사적으로 지금의 한국교회처럼 부패한 개신교회는 그렇게 흔하지 않았습니다. 거짓과 불공정이 예사가 되었고, 돈과 명예의 우상이 교회 안에 깊숙이 자리 잡고 있으며, 독선, 위선, 집단 이기주의가 한국 기독교의 전형적인 모습으로 한국 사회에 각인되고 있습니다. 한국 교회는 이런 상황을 인식하지도 못하고 인정하지도 않으려 하며, 따라서 고칠 수도 없게 되었습니다. 어느 정도의 잘못은 인정하면서도 그것들을 고칠 능력도 상실했습니다. 노회와 총회가 그 고유의 기능을 상실하고 파당으로 나누어 세력다툼을 하는 정치판이 되고 있습니다. 법적 권위를 요구하나 권위주의로 인식될 뿐 진정한 권위로 인정받지 못합니다. 한국 기독교계에서 진정한 영적 권위를 행사할 수 있는 지도자도 없고 단체도 없습니다.   


그 결과로 오늘날 교회 성장은 중단되었을 뿐 아니라 오히려 후퇴하고 있습니다. 평양대부흥회가 남긴 도덕적 유산을 이제 다 탕진하고 오히려 빚을 진 상태라 말할 수 있습니다.


이런 교회가 세상의 빛과 소금의 역할을 감당할 수 없는 것은 너무나 당연합니다. 한국 개신교는 한국 사회에서 명실상부하게 가장 영향력 있는 종교가 되어 있습니다. 비록 불교가 인구의 23%를 차지하여 개신교의 19%보다는 다소 높지만 교리의 특성, 구성원들이 사회에서 차지하고 있는 평균적 지위, 교육 및 의식수준, 종교적 열정 등을 고려하면 개신교가 가장 힘 있는 종교임이 분명하고 한국 사회 일반도 그렇게 인정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종교가 사회에 공헌할 수 있는 영역은 경제, 과학기술, 연예 같은 것에 있지 않고, 오히려 그 사회의 가치관, 도덕문화에 있습니다. 그리고 도덕과 관계되어 있는 정치, 질서, 교육, 복지 분야에도 종교는 상당할 정도로 영향력을 행사할 수 있고 또한 해야 합니다.


그런데 한국 개신교는 사회의 도덕적 수준을 제고하는데 별로 공헌하지 못했습니다. 도덕적 모범을 보이지 못했고 도덕문화 개선을 위하여 노력하지 않았기 때문입니다. 우리나라는 경제적으로는 세계에서 11위, 문맹률은 세계 최하, 대학 진학률은 세계 최고, 기술수준은 세계에서 7위 등 기독교와 무관한 분야에서는 선진국의 대열에 충분히 들어갈 수 있을 만큼 발달되었습니다. 그러나 도덕성은 후진국 수준입니다. 국제투명성기구에서 발표한 투명지수에는 한국이 세계 42위라 합니다. 전 국정원장 김승규 장로의 조사에 의하면 김승규 법무부 장관이 2000년 한 해 동안 우리나라에서 위증으로 기소된 사람 1,198명으로 일본의 5명에 비해 240배, 인구를 감안하면 671배나 되고, 무고로 기소된 사람 2,965명으로 일본의 2명에 비해 1,483배, 인구를 감안하면 4,151배나 된다 합니다. 전체 인구에서 기독교인의 수가 0.7%밖에 되지 않는 일본이 인구의 19%나 되는 한국보다 훨씬 더 정직하고 더 신사적임이 드러났습니다. 물론 이런 상황에 대한 책임을 모두 한국 개신교가 져야 한다는 것은 아닙니다. 우리 사회의 전반적인 도덕문화가 워낙 열등한 것이 가장 중요한 원인일 것입니다. 그런데도 불구하고 0.7%와 19% 는 엄청난 차이가 아닐 수 없고, 개신교가 한국 사회 전반에 미치는 영향력을 고려하면 한국 교회는 그런 상황에 대해서 상당부분 책임지지 않을 수 없습니다. 그리고 지금 한국 개신교회의 도덕적 상황을 고려하면 이런 현상은 전혀 놀라운 것이 아닙니다. 한국 교회는 한국 사회의 빛과 소금 역할을 감당하기 보다는 오히려 사회에 의하여 철저히 감염되고 있는 것이 사실이고, 심지어는 사회보다 더 타락한 부분까지 있습니다. 한국의 가짜 박사 중  80여% 정도가 목회자라 합니다.  


최근 한국목회자협의회와 국민일보가 금년 5월 27일부터 6월 9일까지 한국교회 목회자와 성도 1500명을 대상으로 <한국교회 미래 방향성에 대한 한국교회 성도들의 의식>이란 주제로 설문조사한 결과 기독교가 타종교에 비해 호감을 덜 받는 이유“로 57.5%가 ”삶과 신앙의 불일치“라고 대답했고 41.1%가 ”일부 교회 지도자들의 타락“을 지적했다 합니다 (중복 대답 가능). 여기서 말하는 불일치는 우상숭배나 참람 같은 것을 뜻하지 않습니다. 주로 도덕적인 위선과 타락을 지적하는 것입니다.  


평양대부흥회 100주년을 맞이하면서 우리는 그 때 일어났던 부흥의 불길이 다시 일어나기를 간절히 바랍니다. 그러나 바란다고 해서 이루어지는 것도 아니고 기도만 한다고 이루어 질 것 같지 않습니다. 1907년 평양 장대현 교회에서 수천 명의 성도들이 연일연야 모여 원산에서 일어났던 부흥이 평양에서도 일어나게 해 달라고 기도했지만 분위기는 냉랭하기만 했다 합니다. 그러다가 길선주 장로가 회중 앞에 나가 자기의 그 부끄러운 죄를 자백하고 회개하자 드디어 부흥의 불길이 타올랐다 합니다. 그렇습니다. 회개 없이는 부흥이 불가능합니다.


지금 한국 기독교인들과 교회는 세상 사람들이 비방할 정도로 부패하고 많은 죄를 지었는데도 그 사실을 인식하거나 인정하지 않고 있습니다. 암이나 한센 병이 무서운 이유는 그 병이 걸렸는데도 아프지 않기 때문입니다. 영적인 병도 비슷합니다. 죄를 인식하거나 인정하지 않으면 회개할 수 없고 고칠 수 없습니다. 구약 시대 이스라엘의 선지자들이 이스라엘의 죄를 아무리 고발해도 종교 및 정치지도자들과  백성들이 전혀 인정하지 않았고, 예수님 시대의 종교 및 정치지도자들도 세례 요한과 예수님의 지적에 화를 내고 오히려 그들을 미워하고 죽였습니다.


평양대부흥운동 100주년을 맞은 한국교회의 과제는 단순합니다. 그 때처럼 간절히 기도하고 무엇보다도 우리 죄를 철저히 회개하는 것입니다. 하나님 앞에 지은 죄만 회개할 것이 아니라 다른 사람과 사회에 지은 죄를 회개하는 것입니다. 사람에게 지은 죄도 하나님에 대한 불신과 하나님 명령에 대한 불순종이기 때문에 하나님께 지은 죄가 됩니다. 구실, 핑계, 구차한 정당화, 책임전가 등의 비성경적인 전략을 버리고 정죄의 손가락을 우리 자신에게 먼저 겨누어야 하겠습니다. 그리고 눈물 많이 흘리고 감정적으로 흥분하는 것보다 더 중요한 것은 우리 자신의 잘못을 하나님 앞에서만 아니라 사람 앞에서도 솔직하게 시인하고, 무엇보다도 삭개오처럼 그 잘못을 고쳐야 하겠습니다. 이런 회개는 교회의 크기, 연보의 액수, 직위에 따르는 명예와 특권 같은 세속적인 가치를 상대화하지 않은 한 일어나지 않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런 것에 집착하는 것은 궁극적으로 하나님의 말씀에 충실하지 않기 때문입니다. 그런 것을 포기할 마음의 준비가 되어야 올바른 회개가 이루어질 수 있고, 진정한 부흥이 가능할 것입니다.



손봉호 장로 /서울영동교회 은퇴장로 동덕여대 총장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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