A Missiological Diagnosis of the Current Europe Trapped in the Policy of Multiculturalism

다문화주의의 덫에 걸린 유럽에 대한 선교적 진단

 

들어가면서

▲ 신성주 선교사 선교학박사

약 천여년 동안 크리스텐덤’(Christendom)을 이루며 번영하였던 유럽은 20세기에 들어와서 지난 날의 기독교적 역사와 전통 및 가치관을 버리기 시작하였다. 시민들의 발걸음이 끊어지기 시작한 교회는 서서히 박물관, 공동 아파트, 술집, 나아가 이슬람과 힌두교의 집회 장소로까지 바뀌고 있다. 오늘의 유럽이 이렇게 변화되어 버린 데에는 유럽의 다문화주의’ (Multiculturalism) 정책이 큰 몫을 차지하였다. “다양한 문화가 어울려 함께 살자는 것이 무슨 문제인가?” 라며 질문하는 사람이 있을 것이다. 맞다. 그건 좋은 것이다. 하지만, 선교적 시각으로 볼 때, 이건 그리 쉽게 답하고 넘어 갈 문제가 아니다. 왜냐하면, 오늘날 소위 유럽의 이슬람공포증’ (Islamophobia) 같은 것이 바로 이 다문화주의 정책이 가져다 준 결과이기 때문이다.

유럽에서의 다문화주의의 현재 상황을 진단해 보는 이 글의 주된 목적은 삼중적(triple)이다.

첫째는, 유럽의 다문화정책이 어떻게 실패해 왔는지 그 진면목을 드러내고,

둘째는, 유럽이 이러한 다문화정책의 실패를 어떻게 다루려고 하는지를 알아보며,

셋째는, 이러한 유럽을 선교적 시각으로 바라보면서 오늘날 다문화주의로 나아가고 있는 한국교회와 사회에 선교적 교훈을 주고자 하는 것이다.

 

I. 다문화주의에 대한 기본적 이해

A. 다문화주의란?

다문화주의란 한 나라 안에서 단 하나의 문화만 존재하는 것이 아니라, 여러 개의 다른 문화들이 조화롭게 공존하도록 하는 이념 혹은 정책”(1)이다. , “한 사회 안에서 민족적 다양성을 인정하고 사람들로 하여금 그 다양한 민족적 배경들을 가진 자들이 사회에 기여하는 것들을 배우도록 격려하는 철학적 정신”(2)인 것이다.

주(1) http://wordnetweb.princeton.edu/perl/webwn?s=multiculturalism.

주(2) http://www.citizenwarrior.com/2008/09/definition-of-multiculturalism.html.

 

B. 두 가지 개념: 묘사적 vs. 규범적

여기에는 묘사적’(descriptive) 개념과 규범적’(normative) 개념이 있다. 우선, 다문화주의의 묘사적사용이라는 것은 문화적 다양성(cultural diversity)이라는 단순한 사실(fact)을 지칭하는 말이다. , 어떤 사회나 조직이 다양한 민족으로 구성되어 있는 현상을 나타내는 말이다.

반면에, ‘규범적사용이라는 것은 그러한 현상을 단순히 지칭하는데 그치지 않고, 그 현상이 한 사회 혹은 조직 안에 뿌리내리도록 권장하고, 촉진하며, 제도화하는 이념(ideology) 혹은 정책(policy)을 말한다. 이러한 이념들이나 정책들은 나라마다 다양한 모습을 띄며 나타난다. 어떤 사회에서는 다양한 문화들에 대하여 존중심(respect)을 가지도록 권장하고, 또 어떤 사회에서는 문화적 다양성을 촉진하기 위한 정책들을 만든다.(3) 이러한 경우, 기존문화(host culture)로의 동화’(assimilation), 적응’ (accommodation), ‘통합’ (integration), 혹은 용광로’(melting pot) 개념보다는 여러 가지 다양한 야채들이 어우러진 살라드 그릇’(salad bowl)이나 문화적 모자이크’(cultural mosaic)와 같다고 보겠다.(4)

윌 킴맄카(Will Kymlicka(5))에 의하면, 묘사적 다문화주의의 키워드는 축제(celebration)에 해당하고, 규범적 다문화주의는 시민화(citizenization)에 해당한다. 왜냐하면, 전자는 문화적 배경이 다른 사람들이 서로 다른 의상들, 음식들, 음악(혹은 예술)들을 경험하고 즐기는 것이라면, 후자는 그러한 다른 문화의 사람들로 하여금 혹은 그들과 함께 나라를 세워가는 시민으로 살아가도록 하는 국가 정책에 해당하기 때문이다.(6)

주(3) http://en.wikipedia.org/wiki/Multiculturalism

주(4) Ibid.

주(5) 킹스톤의 퀸즈대 정치철학연구회 의장이며, 헝가리 부다페스트에 있는 Central European University의 민족주의학(Nationalism Studies) 방문교수로 있다.

주(6) Steven VertovecSusanne Wessendorf가 공동편집한 책 The Multiculturalism Backlash: European discourses, policies, and practices(2010, Routledge)의 제2“The rise and fall of multiculturalism?: new debates on inclusion and accomodation in diverse societies" 참조.

 

II. 유럽 다문화주의 정책의 역사적 배경 

인류 사회가 아무리 민족과 문화가 다르다 하여도 서로 영향을 주고 받으며 조금씩 변해가는 것은 부인할 수 없는 사회학적 현상이다. 하지만 유럽이 다문화주의 정책을 공적으로 표방한 역사는 그리 길지 않다. 유럽의 다문화주의 정책에는 적어도 세 가지의 역사적 배경이 있다.

 

A. 2차 세계대전 이후

다양한 비유럽 민족들이 유럽으로의 대량 이민이 시작된 것은 제2차 세계대전이후부터였다. 왜냐하면, 1950년대와 1960년대에 이르면서 유럽의 경제가 빠르게 회복하기 시작했기 때문이었다. 유럽의 경제회복과 성장은 노동자들을 필요로 하였고, 유럽인들은 그들이 스스로 하기 힘든 영역에서 대신 일해 줄 일꾼들을 모집하기 시작하였다. 이것은 결국 새로운 노동자들로서의 이민자들을 대거 받아들이는 동기가 되었다.

 

B. 문화적 정체성 위기와 좌파 정치인들

유럽이 다문화주의로 가게 된 데에는 정치적 좌파들(leftists)의 영향이 지대하였다. 계급투쟁을 통한 유럽의 변화에 실패한 좌파들(leftists)은 그들의 정치생명을 거는 보험처럼 다문화주의 정책과 대량이민을 지지하고 표방하였다. 그들은 그들의 정치적 라이벌들인 보수적 우파 정치인들을 무찌르기 위하여 반인종주의"(anti-racism)를 내 걸고 다문화주의 정책과 대량이민 정책을 강하게 밀어부쳤다. 그들은 인권’(human rights)을 기초로 하여 소수 이민자들의 문화와 가치를 무기로 삼아 주류사회의 문화와 가치에 도전하여 변화시키는데 힘을 다하였다. 그로인해 유럽의 도덕적 가치들과 문화적 정체성은 허물어지기 시작하였다.(7)

주(7) Melaine Phillips의 책 Londonistan, p.77.

 

C. 미국의 영향

유럽의 다문화주의 정책은 미국의 성공적인 모델로부터도 많은 영향을 받았다. 다양한 나라들로부터 모여든 이민자로 구성된 미국은 소위 용광로”(melting-pot) 문화를 이룩하여 더 강력한 나라로 발전하였고, 유럽적 뿌리(European root)를 가진 나라라는 개념을 넘어서서 새로운 글로벌적”(global) 국가로 변모하였다. 유럽은 이러한 미국의 다문화주의 정책의 성공을 보면서 많은 영향을 받아 그 정책을 수입하였다. 하지만, 미국의 용광로 문화와는 달리 과거 식민지였던 나라들로부터 온 많은 이민자들이 기존 사회에 통합되지 못함으로 인해 새로운 어려움들에 봉착하기 시작하였다.

 

III. 유럽 다문화주의의 위기

A. 예기치 않은 현상들

1973, OPEC의 유류 파동이 일어나 유럽 경제가 둔화되었을 때 유럽 국가들은 새노동자이민자들이 고향으로 돌아갈 것이라 생각하였다. 그러나 그들은 돌아가지 않았다. 그들은 모두 임시’(temporal) 거주자들이었지만, 그 동안 유럽에 그들의 삶을 정착해 왔기 때문에 오히려 고향에 남아있던 그들의 가족들을 초청하여 함께 살려고 하였다.

새로운 현상들도 나타났다. 언어적 한계를 가진 그들은 같은 나라에서 온 사람들끼리 모여 그들만의 공동체를 만들기 시작하였다. 이로 인해 현재까지 유럽의 큰 도시들에는 이민자들끼리 모여 사는 지역들이 무수히 생겨나게 되었다. 이러한 현상은 수 많은 문제들을 일으켰다. 그들은 현지의 법들과 사사건건 마찰하기 시작하였고, 현지 사회에 동화되지 못함으로 인해 현지 주민들과도 조화를 이루지 못하였다. 그들은 상대적으로 더 가난하였고, 범죄율은 더 높고, 고용율은 더 낮았다. 더 큰 문제는 그들에게서 태어난 2, 3세들조차 그들이 태어난 유럽 나라들과 정체성을 공유하지 못하는 것이었다.

 

B. 유럽 다문화주의의 죽음

2004, 영국의 <평등과 인권위원회> 의장이었던 트레버 필립스(Trevor Phillips)타임지’(the Times)에서 강조하기를, 다문화주의 정책은 '분리'(separateness)를 조장하기 때문에 이제 버려져야 할 것이 되었다고 하였다.(8) 200677, 영국의 데일리 메일(Daily Mail) 지는 다문화주의 정책의 죽음”('Multiculturalism is dead.'(9))이라는 주제를 헤드라인으로 다루었다. 이코노미스트(The Economist)의 칼럼니스트 바기홋(Bagehot)도 말하기를,

다문화주의라는 말은 이제 사회주의자네오콘같은 단어처럼 경멸적인 용어가 되어 버렸다. ... 주요한 정당들도 이제는 다문화주의라는 것은 너무나 순진했던 때 믿었던 바보같은 이념이었다는 데 하나같이 일치하게 되었고, 다문화주의의 시대는 이제 지나갔으며 결코 다시 돌아올 수 없다고 강조 하였다.(10)

주(8) http://www.bbc.co.uk/news/magazine-12381027

주(9) Steven Vertovec & Susanne Wessendorfrk가 공동편집한 책 The Multiculturalism Backlash: European Discourses, Policies and Practices(Routledge, 2010)Introduction 참조.

주(10) Ibid. 

201010, 독일 수상 앙겔라 메르켈(Angela Merkel)은 이상적인 다문화주의 사회를 만들어 다른 문화적 배경을 가진 사람들과 사이좋게 나란히 살아가려던 독일의 시도는 완전히 실패하였다”(utterly failed)고 하였다. 20112, 영국 수상 데이빗 케머룬(David Cameron)도 다문화주의 정책은 실패하였으며, (이슬람) 과격주의로부터 영국을 보호하기 위해 더 강한 영국적 정체성’(British identity)을 필요로 한다고 하였고,(11) 전 프랑스 대통령 니콜라스 사르코지(Nicolas Sarkozy)도 같은 해 2월 강조하기를, “오늘날 프랑스는 ... 국민 통합 시스템이 갈수록 더 나빠지고 있다. 그 이유는 우리 나라에 외국 출신자들이 지나치게 많기 때문이다. 또한 우리는 더 이상 그들에게 주거와 일 그리고 학교 교육을 제공할 수 없다.”고 하였다. 프랑스는 국민적 정체성을 중시한다고 하면서 종교나 민족적 배경이 어떠하든 프랑스적임” (Frenchness)을 모든 시민들에게 요구한다고 하였다.(12) 전 스페인 수상 호세 마리아 아즈나(Jose Maria Aznar)와 전 호주 수상 존 하워드도 같은 연설을 하였다.

이러한 모든 반향들은 유럽의 다문화주의 정책이 심각한 위기에 처하였음을 나타내는 것들이다.

주(11) http://www.bbc.co.uk/news/magazine-12381027

주(12) http://edition.cnn.com/2012/03/07/world/europe/france-politics/
 

IV. 유럽 다문화주의의 결과

유럽 다문화주의 정책의 한계에 대한 보고서들이 넘쳐나고 있는 이유는 다음과 같은 몇 가지 심각한 사회 현상들로 인하여 그들의 위기감이 점증하였기 때문이다


A. 무슬림 이민자들의 급증

유럽에 정착하는 이주자들은 여러 종류인데, 그 중 정치적, 종교적 압박으로부터 피난온 자들, 재난이나 환경파괴로 인한 난민들, 유학이후 현지에서 취직하여 정착하는 사람들 등은 사회적으로 큰 문제가 되지 않는다.

문제는 무슬림들(Muslims)이다. 이들은 유럽에서 가장 빨리 성장하는 이질문화 그룹이다. 미국의 퓨 리서치(Pew Research)가 행한 지구촌 무슬림의 미래”(The Future of the Global Muslim Population)라는 연구에 의하면(2010), 오늘날 지구촌 인구 유입의 68.5%가 무슬림들인데, 2010년 한 해에 프랑스는 66,000, 스페인은 70,000, 영국은 64,000명의 이주를 예상하였고, 2030년에는 유럽의 10여개 나라에서 무슬림 인구가 10%를 넘어설 것이라 하였다.(13) EU 본부가 있는 브뤼셀에서 신생아 등록 이름들 중 톱 세븐(Top 7)이 모두 무슬림 이름들인데, 1위는 모하메드’(Mohamed), 2위는 아담(Adam), 3위는 라얀(Rayan), 그 뒤에 아윱(Ayoub), 메흐디(Mehdi), 아민(Amine), 그리고 7위가 하즈마(Hamza)이다.(14)

주(13) http://www.pewforum.org/2011/01/27/the-future-of-the-global-muslim-population/

주(14) http://www.cbn.com/cbnnews/world/2011/february/europes-multiculturalism-leading-to-civil-war-/

 

B. 'No Go' Zone의 증가

유럽의 큰 도시들(런던, 버밍햄, 루톤, 말모, )에는 지역 경찰들도 가기를 꺼려하는 무슬림 집단거주지역들이 많이 있다. 소위 노 고 존’(‘No Go’ zones)인데, 프랑스에만도 751 군데가 있다. 프랑스 정부는 이러한 지역들을 예민한 지역들’("sensitive urban zones")로 분류하여 백인들과 비무슬림인들에게는 들어가기 위험한 지역이라고 홍보하고 있다.

프랑스인 작가 구이 밀리에르(Guy Milliere)는 이러한 지역들에서 근무하는 그 지역의 공권력과 정치인들 및 행정공무원들 조차도 그 지역 안에서는 살 수 없어 멀리 다른 곳에 거주한다고 하였다. 그에 의하면, 이러한 지역들은 경찰들과 소방대는 물론 의사들과 앰뷸런스조차도 들어가지 않는 지역들이다. 이러한 지역들에는 악덕 마약거래업자들과 갱들 그리고 이슬람 종교지도자들인 이맘들(imams)의 세상이며, 이러한 지역들은 해당 국가의 법보다 이슬람의 샤리아 법’ (Sharia law)이 더 우선적이다. 그래서 한 나라 안에 존재하는 비공식적인 작은 주(micro states)와 같다(15)고 하였다. 그러한 지역은 이제 군대(army)를 보내지 않으면 치안을 유지하기가 어려워지는 때가 곧 올 것이라고 내다보고 있다.

주(15) Ibid.

 

C. 무슬림 과격주의 운동

오늘날 유럽에서 가장 골치아픈 이슈들 중 하나는 점증하는 이슬람 과격주의 운동(Islam extremist movement)이다. 물론, 유럽의 무슬림들이 모두 다 과격주의 활동에 포함되어 있다는 말은 아니지만, 이슬람 공동체는 그 자체로 과격주의자들을 양산하는 곳이요, 그들의 은신처이며, 활동 자금이 나오는 곳일 뿐 아니라, 과격주의 이론가들의 활동무대요, 그들의 이데올로기가 전수되고 확산되는 곳이다.

 

테러리즘: 살인과 방화

20019/11 사건은 유럽의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에게 큰 영향을 미쳤다. 20043월 스페인 마드리드(Madrid) 폭탄테러 사건과 200577일 런던 지하철 테러 계획자(16)들이 모두 무슬림 이주자들이었다.(17) 2013522, 영국 런던 남쪽 울위치(Woolwich) 시에서 대낮에 25세의 병사 리 릭비(Lee Rigby)는 길을 가다가 두 명의 무슬림 과격주의자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하였고 목이 잘렸다. 피묻은 칼을 손에 들고 모여든 시민들과 카메라맨들 앞에서 떠들고 외치는 장면이 전세계로 보도되었다. 2013623, 덴마크의 법무장관 모르텐 보드스코브(Morten Bodskov), 무슬림들에 의한 방화 사건들이 100여 건이 넘지만 시민들에게 불안감을 증폭시킬까봐 쉬쉬하면서 비밀로 부쳐지고 있다고 폭로하였다.(18) 그들은 무슬림 집단 거주지 주변의 교회들이나 유태인 상점들, 심지어 경찰 파출소까지도 다양한 이유로 야간 방화를 서슴치 않는다.

주(16) http://www.fas.org/sgp/crs/terror/RS22211.pdf

주(17) http://en.wikipedia.org/wiki/Alleged_2007_bomb_plot_in_Copenhagen

주(18) http://islamversuseurope.blogspot.com/2013/06/george-orwell-2013.html

 

유럽에서의 지하드(Jihad) 운동

이슬람 테러리즘을 정당화하는 중요한 이념은 지하드’(Jihad)인데, 그것은 ()무슬림(Kafirs)을 향한 투쟁 혹은 전쟁’(19) 을 뜻하는 데, 소위 성전’(holy war) 이라고 부른다. 지하드는 이슬람의 샤리아 법’(Sharia law)이 가르치는 중요한 법인데, 모든 무슬림들에게 지구상의 모든 비()무슬림들이 샤리아 법에 복종하는 그 날이 올 때까지 싸우라고 가르친다(코란.2:216, 4:89).(20) 지하드를 무슬림의 의무로 가르치는 이슬람은 종교의 영역을 넘어서서 강력한 정치적 이슬람(Political Islam)의 이데올로기(ideology)가 되었다.(21)

200256, 화란의 우파 정치지도자, 사회학자, 교수였던 핌 포툰(Pim Fortuyn, 19482002)이 암살되었다. 학자였던 포툰은 스스로 우파 정당을 세워 화란의 다문화주의 정책(Multiculturalism)과 이슬람 이민을 촉진하는 정책들에 반대하는 운동을 펼쳤다. 그를 암살한 모로코 출신 26세의 모하메드 B.는 포툰의 몸에 '지하드'(Jihad)라는 단어를 남겼다.(22)

그 후 2004112, 화란의 영화제작자요 정치평론가였던 데오 반 고흐(Theo van Gogh, 1957-2004) 역시 무슬림 과격주의자들에 의해 무참히 살해당하였다. 반 고흐는 핌 포툰(Pim Fortuyn)의 지지자였는데, 소말리아 출신 작가 아이얀 히르시 알리(Ayaan Hirsi Ali)와 함께 이슬람의 여성비하를 비판하는 <복종(Submission)>(23)이라는 필름을 만들었다. 이를 본 이슬람 과격주의자들은 그를 암살하였고, 그들의 암살대상 1순위가 된 아이얀 히르시는 미국으로 망명하여 신변 보호 속에서 활동하고 있다.

최근에 화란에서는 테러 위협의 수위를 4단계중 최상위 단계인 치명적’(critical) 단계 아래인 두 번째 단계로 격상하였다. 정부에 의하면, 화란의 과격이슬람주의자들 중에는 지하드를 하기 위해 자진해서 시리아 내전에 싸우러 간 사람들(Jihadist travelers)이 많다고 한다. 그들이 다시 돌아온 뒤에는 더 호전적이 될 뿐 아니라, 지하드로 인한 트라우마를 갖게 됨으로써(traumatized) 더 폭력화되고, 유럽에서의 지하드 운동에 헌신하게 되는 데, 이로 인해 화란내의 테러 위협이 훨씬 증가하였다고 보기 때문이다.(24)

주(19) https://www.google.com/search?hl=en&q=meaning+of+jihad

주(20) *코란 2:216, “You are commanded to fight although you dislike it..."(너는 비록 네가 그것을(지하드) 싫어할 지라도 싸워야 하는 명령을 받았다.../필자의 직역.)

*코란 4:89, “...Therefore, do not take any of them as friends until they have abandoned their homes to fight for Allah's cause(‘지하드’). But if they turn back, find them and kill wherever they are."(...그러므로, 그들(비무슬림들)이 알라를 위하여 싸우기 위해 그들의 집을 버리기 전 까지는 그들을 친구로 삼지 말라 그러나 그들이 되돌아 간다면 그들이 어디에 있든지 찾아서 죽이라./필자의 직역).

주(21)  Bill Warner의 책 Sharia Law for Non-Muslims (2010, Center for the Study of Political Islam) p.21. 

주(22) http://www.wsws.org/en/articles/2004/11/gogh-n10.html

주(23) Youtube에서 시청가능.

주(24) http://www.hurriyetdailynews.com/netherlands-germany-alarmed-over-islamist-extremists-.

 

모스크와 근본주의 이맘들: 이슬람 과격주의 운동의 온상

유럽의 모스크들은 교도소들(prisons)과 함께 테러와 지하드를 가르치고 과격주의자들을 모집하는 장소라는 보고서(25)는 유럽인들에게 큰 충격을 주었다. 스웨덴 녹색당 정치인인 대니얼 아로스피데(Daniel Arrospide)는 수도 스톡홀름에서 가장 큰 모스크(the Södermalm mosque)6개월 동안 신도로 위장 잠입하여 정보를 수집하였다.(26) 그는 그 동안 스웨덴 무슬림들을 성전’(holy war)을 위하여 모집하는 것을 10여 차례나 직접 목격하였다.(27) 20131011, 유로뉴스(the EuropeNews)도 모스크들에서 지하드와 과격주위 테러를 위해 자원자들을 모집하고 있다고 보도하였다.(28)

주(25) 런던대학 킹스 칼리지(King’'s College)EC(the European Commission)를 위해 연구한 보고서 “Recruitment and Mobilisation for the Islamist Militant Movement in Europe”(2007), p.33ff 참조.

주(26) https://www.youtube.com/watch?v=HV2A5Btvovw

주(27) http://islamineurope.blogspot.com/2010/12/stockholm-extremists-recruiting-for.html

주(28) http://europenews.dk/en/node/72741

 

V. 다문화주의의 반격들

유럽의 다문화주의 정책이 가져온 이러한 현상들에 대해 이론가들은 다문화주의의 반격(the multiculturalism backlash)’이라 부르고 있다. 필자는 이에 더하여 다문화주의의 덫(trap)’이라고 말하고 싶다. 다문화주의 정책을 사용하는 국가나 사회는 처음에는 그 유익한 점들을 좋게 여기지만 시간이 갈수록 그것이 헤어나기 어려운 과 같다는 것을 경험하게 되기 때문이다. 그렇다면 다문화주의는 왜(why) 그리고 어떤(what) 부정적인 결과들을 가져오는가?

 

A. 문화적 자살(Cultural Suicide)

대부분의 유럽 나라들은 전통적으로 그들의 고유한 민족 문화들을 유지해 왔다. 다문화주의에 대해 비판적 입장을 가지는 사람들은 자기 나라가 유지해 온 고유한 민족문화와 정서들이 계속 유지될 수 있을까 하는 데 대해 심각한 우려를 하기 때문이다. 유럽인들은 문화적 다양성자체를 나쁜 개념으로 보지는 않지만, 그 다양성으로 인해 그들 자신의 고유한 문화가 사라지는 것은 누구도 원치 않는다.(29) 유럽인들은 자기들의 문화를 존중하지 않고 또 받아들이지 않는 이주자들을 언제까지 일방적으로 이해해 주고, 관용을 베풀고, 복지혜택을 주면서까지 받아들여야 하는가 하는 데 대해 회의하기 시작하였다. 그래서 지식인들은 유럽인들의 다문화적 관용을 자학적 관용(self-inflicted abuse to tolerance)이라 하였고, 또 그것이 독특한 한 종교(이슬람)에 속한 사람들에 의해 되어지고 있는 현상이기 때문에 그들을 계속 관용하는 다문화정책은 곧 문화적 자살(cultural suicide) 정책이라고까지 말하고 있다.

주(29) http://www.citizenwarrior.com/2008/11/multiculturalism-and-defense-of-liberty.html

 

B. 사회적 신뢰도에 악영향

하바드 대학 정치학 교수 로버트 풋넘(Robert D. Putnam)은 다문화주의가 사회적 신뢰도에 어떻게 영향을 미치는지를 약 10년에 걸쳐 연구 조사 하였다. 그 결과, 인종적 다양성을 더 많이 나타내는 공동체일수록 사회적 신뢰도는 더 많이 떨어지고 있음을 발견하였다. 종족적 다양성이 두드러진 공동체 안에 있는 사람들은 그 도시의 시장(Major)을 신뢰하지 않는 경향이 많으며, 지역 신문들도 신뢰하지 않고, 그 지역 내에 있는 다른 종족 사람들과 공공 기관들도 신뢰하지 않는 경향을 나타내었다.(30) 풋넘에 의하면, 그러한 종족적 다양성 안에서 사람들은 몸을 움츠리고 숨어서 거북이처럼 행동하였다. 다양성의 효과는 상상한 것보다 훨씬 좋지 않았다. 나와 같지 않은 사람들을 신뢰하지 않는 그런 것이 아니라, 나와 같은 사람들까지도 신뢰하지 않는 경향이 강했다.”(31) 는 것이다.

주(30) http://en.wikipedia.org/wiki/Multiculturalism#Support_for_multiculturalism

주(31) Ibid.

 

C. 다문화주의는 사람들의 이타적 자비심(altruism)을 빼앗아 간다.

민속학자 프랑크 솔터(Frank Salter)는 상대적으로 동종의 사회일수록 박애의 차원이 높으며, 공적 선행에 더 많은 투자를 하는 경향이 있다고 하였다. 미국 뿐 아니라, 아프리카와 동남아시아에서의 케이스 연구에서도 발견한 것은 복합적인 종족들의 사회일수록 선행을 덜 하고 공적인 인프라를 구축하는 데에도 협력을 잘 하지 않는다는 것이었다.(32)

주(32) Ibid.

 

D. 다문화주의의 반격(multiculturalism backlash)

스티븐 버토벡(Steven Vertovec)과 수잔 웨센도르프(Susanne Wessendorf)2010년에 The Multiculturalism Backlash: European Discourses, Policies, and Practices 라는 책을 편집 출판하였다. 그들은 유럽에서의 다문화주의의 꿈이 얼마나 치명적으로 '순진한'(naive) 생각이었는지를 지적하면서 다문화주의가 가져오는 일곱 가지의 중요한 문제들에 대해 설명해 주고 있다. 그것은,

첫째로, 다문화주의만이 유일한 원칙’(a single 'doctrine')이라고 하는 사상이 팽배하여 종족이나 민족에 따라 문화가 분할하는 현상들이 강하게 나타났다. 그래서 수 많은 이주자들이 그들의 문화적 다른 점들 속에 안주하거나 갇히는 현상이 나타났고, 기존의 사회에 통합되지 못하게 되었다.

둘째로, 다문화주의는 건전한 토론 문화를 질식시킨다. 앞에서 지적한대로, 다문화주의가 유럽 현대사회가 지향하는 유일한 사회정책이라는 의식이 잘못 스며들게 됨으로써, 그에 반하는 의견을 말하는 것이 거의 금기’(taboo)시 되는 현상이 팽배하여 왔다. 그래서 종족’, ‘이민’ ‘이슬람' 같은 단어를 거론하면 인종차별주의자’(racist)라는 딱지를 붙혀 매장하는 경향이 강하였다.

셋째로, 다문화주의는 분리를 조장한다. 다문화주의는 종족적 분리주의, 사회통합에 대한 반발, 그리고 국가가 공유하는 가치의 부정으로 사회를 붕괴로 이끈다.

넷째로, 다문화주의는 공동의 가치를 받아들이기를 거절한다. 다문화주의는 공동체의 일치’ (cohesion) 보다는 다름’(difference) 혹은 다양성’(diversity)을 선호하기 때문에 어떤 형태의 공공성에 대해서도 관심을 가지지 않는다.

다섯째로, 다문화주의는 그로인한 갈등이나 사회적 문제점들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 다문화주의는 다문화-낭만주의’(multi-culti-ramanticism)에 빠져 이민자들과 소수민족들로 인해 발생하는 사회적 문제들에 대해 인정하려고 하지 않는다.

여섯째로, 좌파 인권주의자들의 비호를 받고 있는 다문화주의는 오히려 비인권적, 비민주적현상들을 조장하고 있다. 소수 문화들이 가지고 있는 여성들에 대한 사회적 권리의 불평등, 부모에 의한 강제결혼, 명예살인, 여성할례 등을 묵인하고 촉진한다.

일곱째로, 다문화주의는 테러리스트들에게 피난처(haven)를 제공한다. 멀라니 필립스(Melanie Phillips)다문화주의와 급진적 이슬람은 폭발하는 칵테일이라고 했고, 영국의 데일리 메일지(Daily Mail, 2008. 2. 15.)다문화주의는 영국을 테러리스트들이 그저 먹을 수 있는 나라로 만들고 있다고 하였다.(33)

다문화주의자들은 그것이 공동체를 위하여 많은 좋은 요소들을 가지고 있다고 강변하지만, 위에서 살펴 본 것과 같이 다문화주의는 기존의 문화에 수 많은 위험적인 요소들을 가져다주는 개념임이 명백해 보인다.

주(33) The Multiculturalism Backlash: European discourses, policies, and practices. Edited by S. Vertovec & S. Wessendorf. (N.Y.: Routledge, 2010). Introduction 참조.

 

VI. 다문화주의 유럽의 미래

A. 진퇴양난의 유럽

유럽에서의 다문화주의에 대한 전망은 그리 밝지 않다. 위기에 놓인 이 상황을 타개하는 데에는 두 가지 방법을 말하고 있다. 우선, 다문화주의 정책이 실패하였다는 것을 받아들이고, 다음으로는, 훨씬 더 엄격하게 유럽인의 정체성(European identity)을 확립하는 것이다. 하지만, 유럽이 이 갈등을 이겨내는 것은 쉽지 않다. 블라디슬라브 벨로프(Vladislav Belov)(34)는 말하기를, "유럽은 이민을 제한할 필요가 있다. 여기에는 저항도 있겠지만, 정부는 유럽 사회의 시민으로써 지켜야할 경계를 넘어가는 저항을 하는 상황에서 더 엄격한 통제를 해야 하는 충분한 자료들을 가지고 있다."(35)고 하였다.

그런데, 놀랍게도 오늘날 유럽인들 중에는 역으로 (이슬람) 이주자들의 문화로 동화하여 그들의 공동체로 들어가는 사람들이 생겨나고 있다. 그래서 전문가들은 말하기를, 만약 이러한 현상들이 계속되어지고, 또한 이민자들의 높은 출산율이 지속되어진다면, 오늘의 유럽은 적어도 30-50년 이내에 사라질 수도 있다고 경고한다.(36)

주(34) an expert at the Moscow State Institute of International Relations

주(35) http://voiceofrussia.com/2013_05_07/Policy-of-multiculturalism-in-Europe-has-failed-expert/

주(36) Ibid.

 

B. 분리된 사회

프랑스 저널리스트 알렉산드르(Alexandre del Valle)에 의하면, 유럽은 지금 무슬림(Muslim), 흑인(Blacks), 그리고 백인(Whites) 사회로 나누어지는 현상이 점점 더 심각해져 가고 있기 때문에, 종래에는 문명의 충돌로 인하여 서로 자기 문화와 공동체를 보존하기 위해 국부적인 시민전쟁(civil war)이 올 수도 있다고 하였다. 사실, 그는 국가가 이러한 사회-문화적 충돌로 인해 군대를 동원하여 진압하게 되는 날이 올 것을 매우 걱정하고 있다.(37)

주(37) http://www.cbn.com/cbnnews/world/2011/february/europes-multiculturalism-leading-to-civil-war-/

 

C. 문명의 충돌(Clash of Civilizations)

미국의 정치학자 사무엘 헌팅턴(Samuel Huntington)1992문명들간의 충돌에 대한 강연을 하였고, 이듬해 1993년에는 문명들의 충돌?”("The Clash of Civilizations?")이라는 외교 논문을 발표하였다. 그리고 1996년에는 그 이론을 더 발전시켜서 그 유명한 책 The Clash of Civilizations: and the Remaking of World Order(Simon & Schuster Paperbacks, N.Y.)를 출판하였다. 이 책은 출판하자마자 세계적 베스트 셀러가 되었고, 국제정치학의 교과서처럼 되었다. 실제로 21세기 들어서자마자 9/11 사건으로 이슬람과 미국이 테러로 충돌하여 이라크와 아프간에서 전쟁이 일어나 문명간의 충돌은 갈수록 심화되는 듯한 현상이 나타났다.

문명들의 충돌(The Clash of Civilizations)(38)이라는 이론은 냉전 이후의 세계에 있어서는 갈등의 가장 첨예한 원인은 이념이나 경제가 아니라, 사람들의 문화적-종교적(cultural- religious) 정체성이 될 것이라는 개념이다. 헌팅턴은 냉전(the Cold War)이라는 이데올로기의 시대가 끝나면서 세계는 '문화적 갈등'(cultural conflict)으로 특징지어지는 일상적인 국가간 업무로 되돌아갔다고 하였다. 그리고, “민족국가들은 세상일들에 있어서 가장 강력한 주체들이 될 것이지만, 글로벌 정치의 주요 갈등들은 민족들과 다른 문명 그룹들 사이에서 발생할 것이다. 그래서 문명들의 충돌은 글로벌 정치를 압도하게 될 것이다.”(39)라고 하였다.

주(38) 이 용어 자체는 헌팅턴이 처음 사용한 것이 아니고, 이슬람 세계와의 관계에 있어서 이미 사용되어온 것이었다. Bernard Lewis1990년 가을판 The Atlantic Monthly에서 "The Roots of Muslim Rage"라는 글에서 사용했었고, 그보다 훨씬 이전인 1926년에 출판된 Basil Mathewsdml Young Islam on Trek: A Study in the Clash of Civilizations 에서도 사용되었었다.

주(39) http://en.wikipedia.org/wiki/Clash_of_Civilizations

 

VII. 성공적인 다문화주의를 위한 노력

위에서 살펴 본 것과 같이, 유럽에서의 다문화주의 정책은 치명적인 상황으로 치닫고 있다. 이러한 상황에 놓인 유럽을 치유하기 위해서는 무엇이 필요할까? 다문화주의를 대체할만한 새로운 정책이 있을까? 강압적인 통합정책? 동화? 분리장벽을 세우는 것? 아니면 이민을 완전히 중지시키는 것? 이론가들에 의하면, 이민중단에 관한 토론은 전유럽에 걸쳐서 우파 정당들이 지금껏 줄곧 주장해 오던 것이었지만, 그것이 가능한 마지막 옵션이 될 것 같아 보이지는 않는다.(40) 그러므로, 다문화주의의 성공적인 실행을 촉진시키는 방법들에 대해서 끊임없는 연구가 필요하다.

주(40) http://blogs.reuters.com/faithworld/2010/11/01/guestview-the-slow-death-of-multiculturalism-in-europe/

 

A. 윌 킴릭카의 성공적인 다문화주의를 위한 제안

윌 킴릭카(Will Kymlicka)는 그의 책 <다문화주의: 성공, 실패 그리고 미래>(Multiculturalism: Success, Failure, and the Future, 2010)(41) 에서 성공적인 다문화주의를 위한 중요한 요소들을 소개하고 있다.

주(41) http://www.migrationpolicy.org/pubs/multiculturalism.pdf

 

1) 인간의 기본권 보장

다문화주의를 지원하는 것은 민족과 종교를 넘어서서 인간의 모든 기본권들(human rights)을 보장한다는 합의 혹은 묵계 안에서 가능하다. 다문화주의를 반대하여 공격하는 대부분의 현상들은 무슬림들(Muslims) 때문인데, 그들이 자유민주주의적(liberal- democratic) 규범들을 받아들이려 하지 않기 때문이다. 그러므로, 다문화주의의 성공은 모든 그룹들이 인종, 문화, 종교적 신념을 넘어서서 인간의 기본권들을 보장한다는 것이 전제될 때 가능해 진다.

 

2) 국경 통제 강화

다문화주의는 시민들이 그들의 국경 통제(Border control)가 안전하지 못하다고 느끼게 될 때에는 많은 논쟁을 가져오게 만든다. 예를 들면, 자기 나라들이 불법이민자들(illegal immigrants)과 여러 종류의 난민들이 많아질수록 다문화주의에 대한 논쟁은 더 거세진다. 그래서 다문화주의의 안착은 국경통제에 대한 안전의식과 깊은 관계가 있다.

 

3) 이민그룹의 다양화

한 사회에서 다문화주의 정책이 성공하려면 진정으로 다문화적’(genuinely multicultural)이 되어야 한다. , 이주자들이 어떤 한 그룹에 편중되기보다는 다양한 나라, 민족, 문화권으로부터 와서 기존문화권과 조화를 이루게 될 때 가능해진다.

 

4) 경제적 기여 (Economic contributions)

다문화주의에 대한 시민들의 지지는 이민자들이 경제적인 영역에서 기여하고자 하는 긍정적인 자세로 노력한다는 믿음이 생길 때 가능하게 된다. 그렇지 않고 오늘날 나타난 현상처럼 국가의 사회복지(welfare) 시스템에 과도한 부담을 주는 존재로만 인식이 된다면 성공적인 다문화주의 정착은 기대하기 어렵게 된다.

 

5) 상호 관용 (mutual tolerance)

다른 문화들, 다른 종교 혹은 다른 종족적 습관을 가진 사람들이 서로 참고 인정해 주는 것을 상호관용이라 한다. 성공적인 다문화주의는 자기 자신의 문화를 사랑하되 교만하지 않아야 하며, 자기와 다른 문화들에 대해 열린 마음을 가질 때 가능하게 된다. 자기 문화에 대한 맹목적 우월감은 다른 사람들로부터 반감과 불신을 갖게 한다.(42)

주(42) http://www.citizenwarrior.com/2008/11/multiculturalism-and-defense-of-liberty.html

 

6) 가치 존중 (Value respect)

2006, 영국 수상 토니 블레어(Tony Blair)는 영국인이라면 공유해야 할 의무’(duty)로써의 영국의 자산’(British heritage)을 그 근본적 가치들’(essential values)에 포함시겼다.(43) 그 근본적인 가치들이란 민주주의에 대한 믿음’(belief in democracy), ‘법의 통치’ (the rule of law), ‘관용'(tolerance), '만인평등주의(equal treatment for all), ’영국에 대한 존중' (respect for this country)과 같은 것들이라고 하였다. 이주자들로부터 자기들의 전통적인 가치가 존중되지 못한다고 생각되는 나라는 다문화주의를 지지하기 어렵다. 하지만, 이 중 어느 하나도 제대로 적용되고 있지 못한 것이 유럽 다문화주의의 현주소이다.

주(43) http://en.wikipedia.org/wiki/Criticism_of_multiculturalism

 

B. ‘후기-다문화주의에는 소망이 있는가?

유럽 전문가들에 의하면, 유럽은 이제 다문화주의 노선의 위기 상황을 직시하여 새로운 후기-다문화주의’(Post-multiculturalism) 시대를 살고 있다고 한다.(44) 후기-다문화주의는 소수민족들과 이민자들의 인권을 신장시키려는 차원에서 다문화주의를 무조건 지지하던 태도를 벗어던지고, 새로운 접근을 시도하는 것을 말한다. 후기-다문화주의는 다문화주의를 버리는 것이 아니라, 그 동안 순진하게도 잘못 인도한 다문화주의의 문제점들과 한계들을 극복하려는 것이라 할 수 있다. , 다양성은 인정하되, 사회적 일치와 통합(integration), 공동의 가치(common values) 추구, 공유된 시민정신(shared citizenship) 등을 강조하는 수정된다문화주의이다.(45) 이것은 복합적인 상황들 속에 놓여있는 민족적, 문화적 다양성(diversity)에 대해서 지구상의 모든 인류가 이해하고 받아들일 수 있는 다문화주의를 만들어보려는 새로운 시도라고 할 수 있겠다.

비록 후기-다문화주의가 유럽에서 소위 '유라비아'(Eurabia)(46)가 가속화되거나 '이슬람화' (Islamization) 되는 속도를 줄여주는 간접적인 효과는 있을지 모르겠지만, 그것은 어디까지나 정치-사회-문화적인 측면에서의 노력이므로 유럽에서의 기독교적 가치의 회복이라는 선교적 희망을 가지기에는 거리가 멀다 하겠다.

주(44) Steven Vertovec & Susanne Wessendorfrk가 공동편집한 책 The Multiculturalism Backlash: European Discourses, Policies and Practices(Routledge, 2010), p.32f.

주(45) W. Bradley의 글 "Is There a Post-multiculturalism?"(Afrasian Research Centre, Ryukoku University)Steven Vortovec의 글 ”Towards Post-multiculturalism”(Max-Planck-Institute for the Study of Religious and Ethnic Diversity) 참조.

주(46) Bat Ye'or가 쓴 책 Eurabia: the Euro-Arab Axis(Fairleign Dickinson University Press, 2005) 참조.

 

VIII. 다문화주의 유럽의 위기에 대한 선교적 진단

A. 유럽 - ‘잃어버린 탕자(a Prodigal Son)

선교적 관점에서 볼 때, 오늘날 유럽의 위기는 그들이 스스로 기독교적 문화전통과 뿌리를 던져 버린 데서 온 결과이다. 에딘버러 선교사대회 100주년을 기념하는 동경선교대회(Tokyo 2010 Global Mission Consultation)에서 스테판 구스탑슨(Stefan Gustavsson)은 말하기를, 유럽인들은 생각없이 자기들의 영혼들을 팔아치웠으며, 그 풍부한 유산들을 흩어버림으로써 오늘날 탕자(the prodigal son)와 같이 되어버렸다고 한탄하였다.(47)

물론, 이것은 하루 아침에 되어진 것이 아니라, 수 백년에 걸쳐 이루어졌는데, 지난 역사를 돌아볼 때 크리스텐덤(Christendom) 유럽의 쇠퇴에는 치명적인 두 가지 실패가 있었다.

1. 첫 번째 실패: 절대자보다 인간의 이성(reason)을 더 중시하는 계몽주의(17-18세기)와 창조를 부정하는 진화론(19세기)이 유럽을 지배해 갈 때 교회와 기독교사회의 학자들과 지도자들은 그것에 대항하는 이론과 문화를 창출하는 데 실패한 것이 결정적인 이유이다.

카톨릭은 식민지를 포함하여 교권 확장에 열중하고, 개신교는 종교개혁이후 생존에 여념이 없을 때 유럽은 내부적으로 기독교의 기반이 침식되고 있었다. 사실, 헨리 모리스의 창세기의 홍수이야기(The Genesis Flood, 1961) 같은 책은 너무 늦게 나왔다. 그로 인해 20세기 후반 창조과학운동(Creation Science Movement)이 일어났지만, 이러한 운동은 17세기 혹은 18세기에 일어났어야만 했다.

2. 두 번째 실패: 교회 안에 계몽주의와 진화론 그리고 실존주의 철학의 영향을 받은 자유주의 신학(Liberal Theology)들이 등장하여 교회와 성경의 절대적 권위를 끌어내리고, 교인들을 세속주의에 빼앗기도록 만들고 있을 때 교회는 효과적으로 대처하지 못하였다는 점이다.

설상가상으로 20세기 WCC 운동은 교회의 본질에서 벗어난 정치신학으로 서구 교회를 더욱 약화시키는데 한 몫을 하였다. 그래서, 1974년 빌리 그래함 목사와 존 스토트 목사의 리더십 아래 다시 뭉친 복음주의 로잔운동(The Lausanne Movement(48))은 상당한 영향력을 끼쳐 왔으나, 그러한 운동이 19세기 선교의 위대한 세기에 결성되어 전세계적 운동으로 자리잡아 갈 수만 있었더라면 오늘의 세계는 그 모습이 많이 다를 것이라 여겨진다.

아무튼, 유럽은 이제 종교 다원주의(religious pluralism)를 넘어 기독교후기(post-Christianity)신이교적’(neo-pagan) 사회가 되었으며,(49) 사상적으로는 모든 기존의 가르침의 권위를 부정하고 해체하는 포스트모던이즘(postmodernism)이 등장한지도 벌써 한 세대가 지났다. 21세기에 이르러 유럽의 사상계에는 포스트-밀레니얼리즘(post-millennialism), 메타-모더니즘(meta-modernism), 포스트-포스트모던이즘(post-postmodernism) 등 종잡을 수 없는 개념의 사회로 치닫고 있다. 정녕 오늘의 유럽 사회는 과거의 크리스텐덤(Christendom)적 영화를 회복할 꿈을 상실한 것인가?

주(47) 동경대회 마지막 날 금요일 오전에 행한 “Reaching the Secular Peoples of Europe"이라는 특강에서http://www.tokyo2010.org/resources/archives.htm 참조.

주(48) 그 슬로건은 “unite all evangelicals in the common task of the total evangelization of the world’'로써 세계복음화를 위해 복음주의자들이 뭉친 운동이다. 로잔대회에서 랄프 윈터 박사가 발표한 미전도족속그룹’(UPG) 선교개념은 선교계의 새 이정표가 되었다. 그 후 마닐라대회(1989), 케이프타운대회(2010)로 이어졌다.

주(49) Melanie Phillips, Londonistan(Encounter Books, NY, 2006), Introduction, p.xx 참조.

 

B. <레슬리 뉴비긴>과 교회의 대항문화적사명

지금까지 살펴본 유럽의 문제를 간파하고 그 대안을 찾아낸 사람이 있다. 오늘날 선교적 교회론의 이론적 근거를 확립한 레슬리 뉴비긴(Lesslie Newbigin, 1909-1998)이다. 그가 38년간의 인도선교사역을 마치고 귀국했을 때(1974)의 영국은 이미 세속주의에 깊이 물들어 기독교이후사회에 접어들었던 때였다. 그에게 영국은 이미 이교도 사회였으며, 이런 사회를 선교적으로 대면하는 것을 개발하는 것이 바로 영국교회가 직면한 가장 큰 지적인, 그리고 실제적인 임무라고 생각하였다. 그래서 뉴비긴은 서구 사회를 선교사의 시각을 가지고 바라다보면서 선교사적인 분석적 질문을 제기하였다. 그것은, 기독교의 토대 위에 세워졌음에도 ...(그것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이런 문화를 우리는 어떻게 다시 복음화시킬 수 있을 것인가?” 하는 것이었다. 이런 고민이 그로 하여금 그의 인생의 후반기에 서구 그리스도인들을 위한 기독교 신앙을 변증하는 책들을 쓰게 만들었고, 그것들은 곧 <선교적 교회론> (Missional Ecclesiology)을 태동시키는 사상적, 이론적, 선교학적 토대를 만들어 주었다.(50)

뉴비긴은 주어진 문화 속에서 복음을 꽃피우려면, 복음과 문화 사이에서 진정한 '선교적 조우'(missionary engagement)가 있어야 한다고 강조하였다.(51( 그래서 교회의 시대적 사명은 그가 처한 문화적 상황을 알고, 그 상황에 필요한 선교를 모색해야 한다고 하였다.(52)

크리스텐덤 이전의 초기 교회와 신자들이 이교적 로마제국을 점령할 수 있었던 것은 그들의 존재 자체가 대항문화적’ (counter-cultural) 이었기 때문이었다.(53) 그들의 존재성 자체가 선교적이었으며, 삶의 모든 현장이 선교적 조우였다. 그것이 결국 로마를 정복하게 한 것이다. 그러므로, 교회는 다시 한 번 더 초기의 그 카타콤적인 아래로부터의 교회’(church from below)라는 패러다임을 회복하고, ‘풀뿌리 사회’(grassroot society)로부터 인정받고, 그들의 희망이 되고, 그들과 함께 삶의 공동체를 이루어 낼 때 유럽교회의 회복은 시작될 것이다.

주(50) 나의 글 선교적 교회론이 살 길이다!”(kscoramdeo.com 2011.10.11에 실린 논문) 참조.

주(51) Foolishness to the Greeks(1986) 참조.

주(52) he Gospel in a Pluralist Society(1989) 참조.

주(53) 뉴비긴의 영향을 받은 죠지 헌스버거(George Hunsberger)와 크레이그 반 겔더(Craig van Gelder)의 책 The Church between Gospel and Culture: The Emerging Mission in North America(1996) 참조.

 

나가면서

다문화주의(multiculturalism)는 모든 다양한 사람들이 '샬롬'(shalom) 안에서 함께 살 수 있게 하려는 훌륭한 정책이다. 그러나, 오늘날 유럽의 다문화주의는 위기적 상황을 맞고 있다. 비관용적인 무슬림 과격주의자들은 시위와 방화, 살인과 테러를 일삼고 있다. 많은 정치가들과 이론가들, 심지어 중도-좌파(centre-leftists) 지식인들과 일반 시민들까지도 이제 유럽인들의 일상생활에 있어서 다문화주의는 실패했다고 말하고 있다. 유럽인들의 가치관과 정체성을 강화해야한다고 주장하는 보수적 우파들의 목소리들이 점점 더 커지고 있다. “문명의 충돌”(the Clash of Civilizations)이 미래의 어느날”(someday)에 관한 이야기가 아니라, “이미” (already) 진행 중인 상황으로 받아들이기 시작하였다. 이제는 그동안 유럽이 충분히 경험해 왔듯이 이 땅의 다문화주의 정책이 얼마나 불가능한 상황에 놓여있는지를 철저히 인식할 때이다. 그리고 그 동안 그들이 얼마나 순진하였는지를 깨달아 속히 교정하여 그들의 문화를 다시 꽃피우는 유럽이 되어야 할 것이다.

사도 요한(John)은 요한계시록 7장에서 천국에서 드려지는 예배에 대한 환상을 자세히 묘사해 주고 있다. 거기에는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참석하고 있는데, 그러면서도 그들은 하나되어 오직 보좌에 앉으신 하나님과 어린 양 예수만을 찬양하고 있다. 그들의 영(spirit)과 가치(values)는 통합되어(integrated) 있어서 조금의 균열도 없다. 그들은 모두 어린 양의 피에 그 옷을 씻어 희게’(.7:14)한 사람들이었기 때문이다. 오늘날 우리의 선교적 시각으로 본다면, 이 환상이 보여주는 천국의 모습은 다문화주의의 완성적 모습처럼 보인다. 이 땅에서 온 인류가 이와같이 아무런 분리나 차별없이 같은 정신, 같은 가치, 같은 마음으로 하나된 공동체로써 조화롭게 살 수 있다면 얼마나 좋을까!***

이 일 후에 내가 보니

각 나라와 족속과 백성과 방언에서

아무도 능히 셀 수 없는 큰 무리가 나와 흰 옷을 입고

손에 종려가지를 들고 보좌 앞과 어린 양 앞에 서서 큰 소리로 외쳐 이르되

구원하심이 보좌에 앉으신 우리 하나님과 어린 양에게 있도다...

(.7:9-10)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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