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천헌옥 목사 코닷편집장

필자의 어릴 때와 지금은 너무나 큰 변화가 있어서 마치 우리 시대에 어떤 갭이 존재하고 있는 듯하다. 왜냐하면 손자들을 앞에 놓고 할아버지 어릴적에는... 하고 이야기를 하면 마치 할아버지는 외계에서 막 건너온 사람같이 신기해하기 때문이다.

할아버지는 초등학교 5학년 때 라디오를 처음 보고 들었단다. 할아버지는 중, 고등학교를 왕복 10킬로미터를 걸어서 다녔단다. 할아버지가 사는 동네에 전화기가 딱 한 대 밖에 없었단다. 걸어다니면서 전화한다는 것은 상상도 못했지. 그것도 얼굴을 마주보면서 말이야. 할아버지는 대학교를 다 졸업하고 그래도 괜찮다고 하는 286 컴퓨터를 마흔이 되어서야 시작했단다.”

칡뿌리에 꽁보리밥 먹고 살았다는 이야기까지 하지 않아도 손자들에게는 옛날옛날 호랑이 전설 이야기로 들릴 수밖에 없다. 진짜 그럴 때가 있었나? 사람이 어떻게 살았을까? 신기해 하는 것은 당연한 일인지도 모른다.

 

전설적 이야기.

그것은 마치 고려신학교 초창기에 매일의 채플 시간은 울음바다가 되었고 마루바닥은 눈물로 얼룩지고 때로는 그 은혜의 시간이 다음 수업시간까지 계속되어 수업이 안 되는 일도 있었다는 전설적인 이야기와 같은 것일 것이다.

공부하는 학생들은 선지생도라고 불렸으며 모두가 하나님께 드려진 제물 같은 존재였고 그들은 기숙사에서 얼마짜리까지 기도하고 먹어야 하는가를 논할 정도로 순수하기만 하였다. 모두가 서로에게 형님이었고 존경의 대상이었다.

우리는 당시 그런 은혜의 분위기가 죽 계속되리라고 생각했고 그 이상은 상상도 할 수 없었다. 목사가 좋은 차를 타고, 좋은 집에 살며, 연봉이 얼마이고, 해외여행을 간다는 그런 생각을 하는 자체가 마치 세상과 타협하는 죄악인 줄로 여겼다. 그러나 세월은 약이 아니라 오히려 악이었다. 지금은 달라도 많이 달라져 버렸다. 정말 호랑이 이야기 같은 전설이 되었다.

고려신학교가 탄생하고 이어 고신대학교가 정부로부터 인가를 받을 때만 해도 우리 학교는 영원히 존재할 것이라고 생각했다. 그때 신학생이던 우리가 은퇴를 하기도 전에 학교의 생존자체를 염려할 것이라고는 꿈에도 생각하지 못했다. 그러나 그런 일은 이제 현실이 되어 눈앞에 있다.

아버지께서는 5남매를 두셨는데 딱 알맞은 가족구성수라고들 했다. 그리고 필자는 세 자녀를 두었는데 그것이 그때는 꼭 알맞은 가족수였다. 그러다가 두 자녀도 많다. 이러다가는 한반도가 차고 넘쳐서 바다에 빠질 것이다. 하나만 낳아 잘 기르자는 구호가 등장했다. 그리고 사회의 변화는 실제로 그렇게 만들어 갔고 오히려 결혼을 하지 않고 지내는 사람이 늘면서 자녀들의 세대가 급격히 줄어들고 말았다.

 

오늘의 현실.

이제 내년부터 고등학교 졸업생 수가 줄기 시작하여 10년 후이면 절반 정도로 떨어져서 적어도 대학의 절반은 문을 닫아야만 하는 이 현실 앞에 교단은 일대 대 수술이 필요하게 되었고 새로운 전환기의 시기가 도래한 것이다.

그런데 정말 신중하게 문제를 들여다보고 전체 공동체의 의견이 집약될 수 있도록 하여야 하는 이 중요한 시점에 우리는 지금 모두가 허둥대고 있는 것이 아닌지 안타까울 뿐이다.

이 문제를 해결하기 위해 나온 특별위원회는 극약처방을 내놓았다. 천안의 신대원을 부산 고신대학교로 통합하여야 한다는 것이다. 고신대학교는 지금 구조조정을 하여야 살길이 있고 그러기 위해서는 이 방법 밖에 없다는 논리를 주장한다. 과연 방법은 그것뿐이었던가 하는 의문을 잠재울 수 없는 안건이기에 이리도 안절부절 못하는 것인지도 모른다.

 

고신정신 순교정신.

필자는 한상동 목사님의 주례로 결혼을 하였다. 그분의 음성이 아직도 귀에 쟁쟁하게 살아있는데 우리는 이제 그를 지우려 하고 있다. 신사참배반대운동으로 옥고를 치르시고 출옥하여 하나님 나라와 한국 교회를 순교정신으로 바르게 세우기 위한 일념으로 신학교를 세웠던 그 정신을 망가뜨리려 한다.

우리는 신앙인이다. 세상 앞에 변절하지 말자는 고신정신을 가진 신앙인이다. 빼앗기고 또 빼앗겨 다 잃는다 할지라도 마지막까지 교회를 지켜야하고, 교회를 지키기 위해서는 신학교를 지켜야 한다. 결국에 가서 교회마저 빼앗기면 그때는 내가 가진 신앙을 지켜야 하고, 내 육신을 빼앗기면 그때는 죽음으로 내속에 있는 신앙을 지켜야 한다. 세상 앞에 변절하지 않고 목숨 바쳐 신앙을 지키는 것이 순교정신이고, 순교정신이 곧 고신정신이다.

그런데 지금 우리는 교회나 신학교는 안중에 없다. 이미 미션학교가 되어버린 대학교와 거기 속한 구성원들만 눈에 보일 뿐이다. 그 대학교를 살리기 위해 신대원은 희생해도 좋다는 생각만 있을 뿐이다. 그들은 말한다. 신학교가 부산으로 가면 죽느냐고? 필자는 말한다. 대학교가 폐하면 신학교도 함께 폐하여 진다고. 신학교가 저 남쪽 끝 부산의 대학교 안으로 들어간다고 하자. 그래서 둘 다 살든지, 아니면 신학교 하나는 살아남는다는 보장을 확실하게 할 수 있는가?

우리는 지금 우선순위를 망각한 채 단순히 경제논리에 매여 왈가왈부하고 있다. 신학교가 대학교 안에 묶여 함께 운명을 같이해야 하는 입장이라면 당연히 신학교를 어떻게 살릴 것인가를 먼저 의논해야 한다. 다 잃을 지라도 신학교는 살려야 한다는 논의부터 해야 하는데 순서가 거꾸로 되었다. 우리는 그 논의를 생략해 버렸다. 오히려 신대원이 대학교로 통합하면 일년에 얼마가 남느냐는 컨설팅 회사의 경제적 논리를 주먹처럼 앞세워 휘두르고 있다. 주객이 전도된 것이다.

 

성경적인가?

고신정신은 거져 받았으니 거져 주는 것이다. 그것이 성경이고 성경적 정신이다. 그런데 환자를 고쳐주고 수익을 얻어 나눠먹는 일이 교회가 해야할 인인가? 그 수익으로 선교를 한다고 하더라도 환자에게서 돈을 벌어 하는 것은 성경적이지 않다. 교회는 환자를 거져 고쳐주어야 한다. 옛날 장기려 박사가 영도에서 시작한 복음진료소와 같이 말이다.

교회는 예수의 제자를 길러내야 한다. 그런데 제자와는 전혀 상관없는 학과들을 설치하고 불신학생들을 받아 그 학비로 학교를 운영하는 일을 하는 것이 교회가 할 일이 맞는가? 그리고 그 일이 잘못되면 교회가 그 비용을 하나님께 드려진 헌금으로 고스란히 물어내는 일이 과연 성경적인가? 우리는 다시 생각해야 한다.

우리는 지금 일반 학교행정을 잘 아는 사람이나 혹은 경제논리를 가지고 대학교의 생존을 주장하는 컨설팅 회사의 말을 성경같이 믿고 주장할 것이 아니라(물론 참고는 해야 하겠지만) 총회는 우리 신앙의 보루인 신학교를 어떻게 지킬 것인가를 먼저 의논해야 한다. 신학교의 문제가 해결되면 그때 가서 부차적으로 대학교의 문제를 논의해야 한다. 우리는 다 잃어도 신학교를 잃으면 안 되기 때문이다.

특별위원회는 적어도 몇 가지의 안을 함께 상정했어야 했다. (1)신학교를 먼저 독립시키는 안, (2)신학교를 부산으로 통합하는 안, (3)대학교를 큰 틀에서 구조조정하여 천안과 부산으로 나누어 생존하는 안, (4)병원과 대학교를 우리와 같은 신앙을 가진 전문경영인에게 맡기고 우리는 신학교만 하자는 등의 안건을 함께 상정하여야 한다.

그리고 이를 진지하게 의논하고 그 안 중에서 2/3의 득표를 얻은 안을 최종 안으로 추진해야 한다. 만약 2/3가 나오지 않을 경우 확대 특별위원회(적어도 15)를 다시 내어서 안건들을 조정하고 여론수렴을 통하여 다음 회기에 처리하여야 한다. 그런데 이번 특위는 단 하나의 안으로 총대들을 압박하고 있다. 이 안만이 살길이라고 외치고 있다. 그러나 그것만 살길은 아니다. 다른 안도 얼마든지 있다. 그런데 왜 모든 안은 거절하고 유독 신대원을 정리하여 대학교를 살리야 한다는 것인가? 솔직히 말하면 구성원들이 희생하기 싫다는 의견이 반영된 것이 아닌가?. 이는 받을 것을 다 받고 나가겠다는 것이다. 희생정신, 순교정신과는 너무나 먼 이야기이다. 고신정신이 아니다.

 

신학교를 지켜내는 일이 우선순위다.

우리는 이제라도 고신정신으로 돌아가 우선순위부터 먼저 논의하여야 한다. 대학을 어떻게 살릴 것인가가 아니라 신학교를 어떻게 지켜낼 것인가를 먼저 논의해야 한다. 다 잃어도 교회와 신학교를 지키겠다는 그 밑바탕에서 시작해야 한다. 그리고 하나의 안을 올릴 것이 아니라 집약된 몇 가지의 안들을 함께 총회에 상정하여야 한다. 거기서 2/3의 투표를 받은 안이 통과되어야 한다. 그래야만 모든 고신의 구성원들이 승복할 수 있을 것이다. 이번 총회는 특별위원회의 안을 충분한 숙고 없이 속전속결로 처결할 것이 아니라 충분히 논의하기 위하여 처음부터 다시 시작하도록 하여야 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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