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홍성철 목사 대전주는교회 코닷 연구위원

고신 총회는 이번에 세상 법정의 송사 문제를 부득히 한 경우에는 할 수 있다는 결정을 보았다고 한다. 이런 결정은 주석학적 실수이며, 혹 알았다고 하더라도 주의 말씀을 그대로 실천하지 않고 못하는 타협의 정신이 작용된 결정으로 보인다. 하지만 개혁주의를 주창하는 교회는 성경대로 주님이 가르치는 말씀 그대로 준수하는 것이 개혁교회라고 볼 때, 성경을 제대로 주석하고 준수하는 교회와 제자들이 되어야 한다고 생각한다.

 

예수 공동체 윤리: “더 나은 의-세상 법정에 가지 말고 화해하라”(5:21-26).

그러나 예수님은 구약의 옛 언약 백성의 언약 준수 실패로 새 언약 공동체인 예수 공동체와 제자들에게 그의 피로서 사셔서 세우시고, 세상과 다르고 초월하는 더 나은 윤리와 도덕성, 그리고 그에 따른 새 계명에 대한 순종을 요구한다. 이것이 산상보훈이다. 산상보훈에서 예수님은 예수님의 제자들은 1) 이웃과의 관계(5:21-48), 하나님과 관계(6:1-18), 물질과의 관계(6:19-34), 사회와의 관계(7:1-12)에서 새 계명에 순종으로 인한, 세상과 다르고, 초월하고, 그리고 탁월한 윤리와 도덕을 가진 더 나은 의를 요구한다. 예수님이 제자들에게 이런 탁월한 윤리를 요구하는 요구조건은 예수님의 십자가의 은혜에 근거한 사랑이다. 곧 구속의 은혜에 반응하라는 것이다. 그래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세상을 변혁시키고 바꾸는 세상을 위한 빛과 소금이 되라는 것이다(5:16). 예수님의 제자들의 사명은 세상을 위한 빛과 소금으로서 이웃과의 관계에서 이웃 사랑을 하며, 심지어 불신자와 형제를 고소하지 말고 사랑하고, 끝까지 화해하라는 명령형 용법을 사용한다. 그리고 만일 예수님은 교회 안에 있는 형제(5:23-24)를 보고 분노하지 말고, ‘라가라고 부르지 말고, 그리고 예배드리기 전에 화해하라고 명령하면서 화해의 중요성을 거듭 요구한다(5:23-24). 또한 심지어 공동체 밖의 불신자와도 문제가 생기면, 세상 법정에 가지 말고 화해하라고 명령한다(5:25-26). 이로 보건대 형제와 화해는 물론이며, 심지어 불신자와 문제가 생기면 세상 법정에 가기 전에 화해하라고 하는데, 형제를 세상 법정에 고소하는 문제에 대해 예수님은 물론 화해하는 전제가 있는 것으로 여겨진다.

그런데 예수님은 이웃과의 사랑 문제를 새 언약 백성에게 요구하면서, 결론적으로 제자들의 선택과 결단을 요구하는데, 결론으로 두 길(7:13-14), 두 나무와 열매(7:15-23), 그리고 두 건축자(7:24-27)의 예화를 든다. 그래서 예수님은 산상보훈 본론의 구절 5:20절에서 만일 바리새인과 서기관들보다 너 나은 의와 윤리와 도덕이 초월하지 못하면 결단코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이다라고 말씀하며(5:20), 산상보훈 결론에서 주의 뜻대로 지속적으로 행하지 않은 자들은 천국에 들어가지 못할 것을 경고한다(7:21). 이 문맥에서 만일 예수님의 제자들이 형제와 세상 법정과 송사 문제로 비약할 경우에, 주님이 새롭게 해석한 계명을 지키지 못하는 경우가 되며, 이런 일들을 회개하지 않고 지속할 경우 주님이 심판하겠다고 엄히 경고하신다. 그 심판은 주님의 제자들이 이 계명을 알고 있지만 행하지 않은 대가를 주님이 계산하겠다는 말씀인 것이다. 그러면서 산상보훈의 결론에서 이렇게 이웃사랑의 계명을 지키지 끝까지 지키지 않고 주의 법을 제자들은 불법을 행하는 자들이며 내게서 떠나가라고 명령한다(7:28). 따라서 산상보훈이 주님이 직접 예수님의 제자들의 윤리강령교과서이고, 주의 피로 구속받은 제자들이며, 주님을 사랑한다면, 주님의 말씀대로 준수하고 행해야 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그러나 만일 주의 제자들이 세상 법정에 가거나, 형제와 화해하지 않거나, 지속적으로 화해하지 않으면 새 언약 백성으로서 주의 계명을 준수하지 못한 것이며, 그 결과로 그런 사람들은 주의 뜻에 따라 살지 않은 사람들은 말씀을 준수하는 자들이 아닌, 좁은 길로 가는 자들이 아니고 넓은 길로 가는 자들이며, 주의 뜻대로 행하지 않은 자들이 된다는 것이다(7:21). 결국 회개가 없다면 심판을 피할 수 없다는 것이다.

 

2. 세상에 의해 판단 받는 것이 아니라, 세상을 판단하는 교회 공동체(고전 6:1-8).

그리고 바울은 예수님의 이웃사랑의 명령을 그대로 전수받아, 형제와 문제가 생기면 서로 손해를 보는 일이 있더라도 세상 법정에 가지 말고, 그리고 성도들끼리 서로 화해하며 해결하라고 명령한다. 그러면 왜 성도들끼리 먼저 화해하고 해결해야 하는가? (1) 그것은 예수 공동체와 제자들은 세상을 변혁시키고 세상을 판단하는 위치에 있는 자들이지, 세상에 의해 판단을 받는 그런 공동체가 아니라는 것이며, (2) 예수 공동체와 제자들은 세상 종말에 심지어 타락한 천사들을 판단하고 재판하는 자들인데, 왜 세상에 의해 판단을 받고 재판을 받느냐는 것이다. 그러므로 예수님과 바울은 형제들이나 심지어 불신자에서도 세상 법정에 가지 말고 최대한 화해하라고 명령한다. 따라서 교회는 불신자이든 간에 형제이든 간에 문제가 생기면 서로 해결하고 화해하는 회개와 용서가 바로 예수 공동체 제자들이라는 것이다. 그렇지 못할 때는 세상의 판단을 받고 세상의 비난을 받기 때문에 그렇게 하지 말라는 것이다. 왜냐하면 예수 공동체와 제자들은 세상을 변혁하는 변혁자로 세웠지, 세상에게 같은 부류로 취급당하는 일이 없어야 한다는 암묵적 명령이 포함되어 있다. 그러나 세상 법정에 가는 일은 불의’(고전 6:8)라고 분명히 가르친다. 그러면서 바울은 하늘나라는 이런 불의를 행하는 자들은 하나님 나라를 유업으로 받지 못할 것이라고 경고한다(고전 6:9-11).

 

3. 부득이 한 경우에는 가도 된다?

이번 총회에서 세상 법정 송사는 부득이 한 경우는 해도 된다는 지난 결정을 확안하였다. 그 부득이한 경우란 교회법으로 해결할 수 없는 사건, 형사적인 사건, 경제적인 사건 등을 말한다고 한다.

그러나 이는 주석학적 실수라고 생각한다. 왜냐하면 예수님의 말씀이 옛날이나 지금이나 변하지 않는 진리라면, 그 세상법정에 송사문제는 법정에 가지 말라는 것이 진리이다. 만일 예수님이 제자들의 연약함을 알았더라면, 부득이 한 경우에는 가라는 예외 규정을 분명히 말씀하셨을 것이다. 그러나 예수님은 부득한 경우에는 가도 된다는 예외규정을 말씀한 적이 없다. 그리고 바울도 그렇게 말하지 않았다. 만일 세상 법정에 부득히 한 경우에 가도 된다고 결정을 내리면 인간인지라, 사람들은 문제를 교회 안에서 해결하기 보다는 세상 법정에 가서 싸울 것이다. 그러면 세상 사람들과 교회가 여러 가지 문제로 세상 법정에 호소하는 같은 부류가 될 것이며, 더욱 위험천만한 것은 예수님의 계명에 순종하지 않은 결과를 낳는 것이며 그 불순종은 이유가 어떻든 간에 회개하지 않으면 계명 불순종으로 인한 심판을 받을 것이라는 사실이다. 그러므로 성경의 절대 권위와 예수님의 계명 때문에 순교하여 그것을 자랑하는 교단이라면, 세상 법정에 송사하는 문제를 주님의 가르침대로 지켜야 주님의 칭찬을 받는 공동체가 되는 것이라고 생각한다.

 

4. 그러면 어떻게?

4.1. 회개와 화해

결론은 주님의 말씀을 좇아야 하며, 과거의 잘못을 과감히 수정하는 것이 개혁신앙의 후손이라고 여겨진다. 그래서 주님이 가르친 대로 준수하고 따르는 공동체가 되어야지, 우리의 생각대로 성경 원칙을 떠나 부득히 한 경우에는해도 된다는 식은 예수님의 가르침과 아주 멀다고 본다.

 

4.2. 크리스천 법조인 전문가 집단에게 자문과 해결

그러면 공동체 안에서 일어나는 분쟁은 어떻게 해야 하는가? 먼저 자신들의 연약함을 돌아보고 회개하고 화해하는 예수님의 가르침대로 돌아가야 하지 않을까 생각한다. 그러나 문제가 생기면 문제 해결을 크리스천 전문가 법조인들이나 그룹들에게 찾아가서 안에서해결하고 노력하는 자세를 보여야지, 세상에 폭로하고 까발리면, 결국 교회 안의 수치가 세상 속에 드러나 결국 세상과 교회는 별 차이가 없는 집단으로 보이며, 교회 이미지 관리와 쇄신을 잘못하는 것이 되며, 그 결과는 교회는 전도가 막히고 추락하는 현상이 가속될 수도 있을 것으로 추정된다.

4.3. 교회의 치리

교회는 세상에 비난을 받을 만한 일이 발생하거든 치리하여 교회가 재판국을 두어 문제에 대해 화해를 시키고, 불복종할 경우 치리하여 거룩성을 유지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따라서 예수님의 제자들은 주님의 가르침대로 살 때 더 나은 의를 행함으로 보여주는 것이며, 그로 인해 세상은 제자들의 실천적 행동으로 세상은 변화될 것으로 전망한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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