아프가니스탄 피랍 사태 이후 피랍자들의 안전을 위해 소속한 목사가 나서지 않는 것이 좋겠다는 충고를 받아들여 단 한번 대국민 사과에 얼굴을 보인 박은조 목사는 29일 주일 처음으로 예배를 인도하였다. 그는 "지금은 묵묵히 비판을 감내할 때"라며 "우리가 잘못한 것이 분명히 있기 때문에 비난도 욕도 먹어야 한다"고 말했다.


박 목사는 일부 네티즌들의 무차별 공격을 의식한 듯 "정부 당국의 만류에도 샘물교회측이 강행했다고 하는데 이는 허위사실"이라고 해명했다. 앞서 28일 박 목사가 한국기독교목회자협의회에 보낸 중보기도 요청이 전국 교회에 전달돼 전국 모든 교회가 대표기도와 합심기도를 통해 이국땅에서 인질이 된 22명의 하나님의 자녀들을 속히 구출해 달라고 기도했다.


분당 지구촌교회 이동원 담임목사는 주일 예배에서 시편 20장 1∼9절 말씀을 인용하며 아프가니스탄에 피랍된 해외봉사단의 안전과 무사 귀환을 간절히 호소했다. 분당우리교회(이찬수 목사), 분당할렐루야교회(김상복 목사)도 주일예배와 새벽·철야기도회 때마다 두 손을 모으고 있다.


뿐만 아니라 여의도순복음교회를 비롯한 초교파적으로 모든 교회가 주일 예배 뿐 아니라 모든 기도회에서 빼놓지 않고 합심하여 기도하는 것을 계속하고 있다.


피랍 사태 해결을 위해 해외 교계와의 공조도 구체화되고 있다. 한국기독교교회협의회(KNCC)는 미국교회협의회(ACCC)와 아시아종교인평화회의(ACRP)에 협조를 요청할 계획이라고 이날 밝혔다. 탈레반과의 협상 과정에서 직·간접적인 영향을 미칠 수 있는 미국 기독교계는 물론 무슬림계에도 도움을 공식 요청한다는 구상이다. 이를 위해 권오성 KNCC 총무는 로버트 에드가 ACCC 총무와 파키스탄 출신 미르 칸 마르와트 ACRP 의장에게 협조공문을 보내기로 했다.



중앙일보, 국내 최초로 이지영씨와 통화

29일 한국 언론으로는 처음으로 중앙일보는 탈레반에 인질로 잡혀 있는 한국인 한 명과 전화 통화에 성공했다. 현재 억류 중인 22명 중 한 명인 이지영(36.사진)씨다. 그는 지난해 말부터 아프가니스탄에 머물며 봉사활동을 하고 있는데, 이번 샘물교회 단기 봉사단의 통역 겸 가이드로 참여했다.


이날 오후 6시49분(이하 한국시간)부터 11분간 통화에서 이씨는 자신의 이름과 함께 머물고 있는 다른 인질들의 이름을 분명하게 말했다. 심성민. 김경자. 김지나씨였다. 이씨는 심려를 끼쳐 죄송하다는 말을 몇 번이나 반복했다.


이씨는 대체로 침착했다. 하지만 가족에게 전하고 싶은 말을 묻자 목이 잠기기도 했다. 처음부터 끝까지 한국말로 이루어진 통화에서 이씨는 가끔 옆 사람과 한국말로 답변을 상의하기도 했다. 다음은 일문일답.


-혼자 있습니까, 아니면 누구와 함께 있습니까.

"4명이 같이 있어요".


-누군지 이름을 말씀해 줄 수 있나요.

"모두 4명이 함께 있어요. 남자가 1명이고 여자가 셋이에요. 저 말고 심성민.김경자.김지나씨입니다. 남자 분이 심성민씨예요. 심성민."


-건강은 괜찮은가요.

"(다른 사람들은 모르지만) 우리 네 사람은 현재로는 다 괜찮아요."


-식사는 뭘 드시나요. 먹을 만한가요.

"식사는 이 사람들이 먹는 것과 같이 먹고 있어요. 이 사람들이 먹는 '차이(홍차)'랑 빵이랑 과일이랑 이런 거 먹고 있어요."


-다른 피랍자들 상황은 어떤가요.

"무엇보다 심려를 끼쳐서 죄송합니다. 저희가 나눠져 있어서 다른 사람들은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고 있는데 그분들이…(음성이 끊겨 알아들을 수 없음)."


-잘 안 들립니다.

"다른 분들이 어떻게 지내는지 모르는데 그분들이 다 건강하고 했으면 (좋겠네요)."


-하루 일과는 어떤가요.

"식사하고 자고 앉아 있다가 그냥 그렇게 지내요."


-매일 다른 곳으로 이동하는가요.

"매일 매일 하는 건 아니고요. 하루에 한 번 이동할 때도 있고, 2~3일에 한 번씩 이동할 때도 있고 그래요."


-민가에 계신가요, 아니면 동굴이나 움막 같은 곳에서 지내고 계신가요.

"동굴은 아니고 민가인 것 같아요."


-견디긴 힘들지 않나요. 날씨는 괜찮나요.

"밖은 더운데 집 안에서는 괜찮아요."


-신변의 위협이 있나요.

"(납치범들이) 특별히 위협을 하거나 그러진 않아요."


-언제 분산 수용 되셨나요.

"네?"(못 알아들은 듯 반문)


-나눠진 게 언제인가요.

"아 지금 우리가….(옆 사람에게 '우리 나눠진 게 언제지'라고 물어봄) 3~4일 정도 된 것 같아요."


-탈레반과 의사 전달은 어떻게 하고 있나요.

"의사 소통이 잘 안 돼서 손짓 발짓으로 이야기하고 있어요."


-같이 있는 사람 중에서는 현지어를 하는 사람이 없는 거죠.

"네, 맞아요."


-특별히 불편한 점은요.

"잘 못 씻고 그러니깐 그런 면이 좀 불편해요."


-우리 정부에 바라는 게 있다면.

"(한숨을 지은 뒤) 생각해 보진 않았는데 일단 너무 죄송하고, 빨리 저희가 여기서 나갔으면 좋겠습니다."


-필요한 약품이나 식료품을 우리 정부를 통해 전달받기를 바랄 것 같은데, 뭐 필요한 것 없나요.

"네. 괜찮습니다."


-다른 분들 소식은 모르고 계신 거죠.

"전혀 모르고 있습니다."


-가족들에게 하고 싶은 말씀이 있으면 해주시죠.

"(목이 잠기면서) 걱정 많이 하지 말라고 전해 주셨으면 합니다."


-지금 계시는 곳이 산악지대인가요.

"잘 모르겠습니다." (말투가 단호하게 바뀜)


-좀 더 얘기할 수 있나요.

"아뇨. (경비가) 이젠 끊으라고 하네요. 끊습니다." (중앙일보제공, 최지영 기자)

 

이지영. 유정화. 임현주씨 통화 내용 비교

 

   


◆이지영씨=2006년 말부터 아프가니스탄에 체류하면서 봉사활동을 해왔다. 주로 어린이들에게 컴퓨터를 가르쳤고, 간호 보조로도 일했다. 현지에서 임현주(32).박혜영(34)씨와 함께 봉사단의 가이드. 통역 역할을 맡았다. 아프가니스탄에 가기 전에는 책을 편집하는 그래픽 디자이너로 일했다. 2남1녀 중 막내딸로 5년 전 아버지가 일 년 넘게 백혈병을 앓다 사망한 뒤 홀어머니를 모시고 있다. 1992년 동래여전(마케팅 전공)을 졸업한 뒤 직장생활을 하다 95년 인제대 사회교육원에 들어가 1년 과정의 북디자인 코스를 수료했다



최악의 경우 구출작전도 배제 못해

아프간 정부가 구출작전을 시도할 상황은 탈레반이 한국인 인질 일부를 추가 살해하거나 끝까지 석방을 거부할 때다. 군 당국은 단기간 내 22명의 인질이 전원 석방되지 않으면 사태가 장기화될 것으로 보고 있다. 인질들이 몇 명 단위로 석방돼도 일부는 마지막까지 석방되지 않을 가능성이 크다는 시각이다.


군사 전문가들은 협상 결렬 시 구출작전이 불가피하다는 주장을 내놓고 있다.


이에 대비해 탈레반 측도 인질들을 2~3명씩 나눠 탈레반을 지지하는 민가에 억류하고 있다는 외신 보도가 잇따른다. 가즈니주 카라바그 주변의 100여 개 마을의 친(親)탈레반 주민들의 주택에 인질들을 분산시켰다는 것이다.



특사 카드 유용한가?

노무현 대통령의 특사인 백종천 청와대 안보실장과 하미드 카르자이 아프가니스탄 대통령 간의 29일 면담에서 인질 석방을 위한 돌파구를 찾지 못한 것으로 전해졌다.


백 특사가 카르자이 대통령을 만난 것은 아프간 수도 카불에 도착한 지 사흘 만이었다. 외교 관례상 대통령 특사의 접견자는 상대방 국가의 정상(頂上)이다. 카르자이 대통령의 고민이 그만큼 컸다는 방증이다.


미국 정부의 영향력 아래에 있는 카르자이 대통령은 '테러와의 협상은 없다'는 미 측의 원칙과 '탈레반 죄수와 한국인 인질을 맞교환하게 해 달라'는 한국 측의 요구 사이에서 고민했을 법하다.


백 특사는 이날 면담에서 노 대통령의 메시지를 공식 전달한 것으로 알려졌다. 정부 관계자에 따르면 백 특사는 한국인 피랍 사태를 해결하기 위해 양국 공조 체제를 강화하고 아프간 정부가 석방 교섭에 적극적으로 나서 줄 것을 요청했다고 한다. 특히 탈레반 수감자의 석방에 대해 아프간 정부의 유연한 대응을 요청한 것으로 전해졌다. 아프간에 대한 경제지원 확대 카드도 제시한 것으로 보인다.


하지만 탈레반은 인질 석방의 첫 번째 조건으로 '탈레반 수감자-한국인 인질'의 맞교환을 집요하게 요구하고 있다. 한국 정부로선 카르자이 대통령에게 탈레반 수감자의 석방을 요청할 수밖에 없는 처지다.


이에 대해 카르자이 대통령은 기나긴 장고 끝에 원칙론 고수 쪽으로 결론을 내린 것 같다고 외교 소식통은 전했다.


'맞교환'을 수용할 경우 미국은 전 세계 차원의 대(對)테러전을 하는 큰 원칙이 훼손될 것으로 보고 있다. 미국의 도움으로 권좌에 오른 카르자이 대통령 역시 마찬가지다.


아프간 대통령궁은 카르자이 대통령과 백 특사의 면담 뒤 "한국인 인질 22명의 석방을 위해 아프간 정부는 노력을 아끼지 않겠다"고 발표했다. 하지만 구체적인 면담 내용을 공개하지 않았다. 이는 한국 정부도 마찬가지였다.


양측의 면담 시간과 관련, 한국 정부는 '50분'이라고 밝혔다. 이에 비해 아프간 대통령궁은 '15분'이라고 말했다. 양측이 핵심 쟁점인 '맞교환'을 보는 시각 차이를 드러내는 대목 중 하나다. 일각에선 "번역상의 잘못일 수 있다"고 말하나 이날 면담에 대한 양측의 자세가 다른 것은 확실하다.


송민순 외교통상부 장관은 28일 인질 석방의 키를 쥐고 있는 미 정부의 협조를 구하기 위해 콘돌리자 라이스 국무장관과 전화통화를 했다. 두 장관은 "이번 사태의 해결 과정에서 양국이 긴밀히 협조하자"고 의견을 모았다고 한다. 아랍 위성방송인 알자지라는 이날 "탈레반이 석방을 요구하는 수감자 중 일부는 미국이 관할하는 인물"이라고 보도했다.


백 특사의 카르자이 대통령 면담, 송 장관의 라이스 장관 전화통화에서 협상의 물꼬를 트지 못함에 따라 인질 사태는 장기화될 가능성이 커졌다.


탈레반이 목표를 관철하기 위해 과격한 수단을 사용할 수 있는 데다 대통령 특사 카드까지 사용한 한국 정부의 입지가 좁아졌기 때문이다.


외교 소식통은 "한국과 아프간 정부 모두 딜레마에 빠져 있다"며 "탈레반이 '맞교환' 요구를 변경하지 않을 경우 협상이 교착 상태에 빠지고 인질 추가 살해 같은 불행한 사태가 터질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다"고 우려했다.



배 목사 시신 조기운구 결정 배경

정부가 아프가니스탄 무장단체에 납치됐다가 숨진 배형규 목사의 시신을 국내로 조기 운구키로 29일 결정한 것은 시신의 안전한 보존을 위한 조치로 풀이된다.


시신이 임시 안치된 아프가니스탄 바그람 기지의 냉동시설 등 기술적 문제를 고려할 때 현지에 장기간 두는 것보다는 일단 국내로 보내는 것이 현실적이라는 판단을 반영한 것이다.


현재 진행중인 협상이 장기화할 가능성을 완전히 배제할 수 없는 불확실한 상황도 이런 결정에 영향을 미쳤을 것이라는 관측도 있다.


또 시신을 이역만리에 둔 채 빈소나 분향소도 제대로 마련하지 못해 문상객조차 받지 못하는 유족의 비통한 심정이 고려됐을 것이라는 견해도 나온다.


정부는 배 목사 시신 운구 문제에 관해 "유족들의 의견을 가장 존중하며 어떤 조치를 취하든 유족들과 협의를 하겠다"는 뜻을 밝혀 왔으며 이에 따라 현지 상황을 유족들에게 설명한 뒤 동의를 받아 이런 결정을 내렸다.


그 동안 정부는 배 목사 시신 운구 일정에 관한 구체적인 언급을 미뤄 왔고 유가족 역시 "배 목사의 시신은 피랍자들이 석방되어 비행기를 탈 때 제일 마지막으로 운구돼야 한다"며 시신의 국내 운구를 서두르지 않겠다는 입장을 최근까지 밝혀 왔다.


모든 관심과 노력이 피랍자 석방에 집중돼야 하며 납치 문제가 해결되지 않은 상태에서 장례 절차를 진행하는 것은 바람직하지 않다는 것이었다.


유가족들은 당초 분당 서울대 병원에 빈소를 마련하는 방안을 고려했다가 이를 취소했으며 제주도에 마련됐던 분향소도 폐쇄해줄 것을 요청했다.


유족이 이런 입장을 취해 왔던 배경에는 장례 절차가 국내외 언론을 통해 부각될 경우 현재 진행중인 인질 협상에 영향을 줄 수 있다는 우려도 없지 않았으리라는 관측도 나온다.


장례 절차가 조기에 진행되면 배 목사가 `순교자'임을 부각하는 추도의 물결이 기독교계와 소속 교단을 중심으로 일어나 탈레반측의 종교적 적대감을 자극할 수도 있다는 지적이 있었기 때문이다.


하지만 남은 인질들에 대한 석방 교섭이 금명간 해결된다는 보장 없이 계속 시간이 흘러가면서 정부나 유가족이 배 목사 시신의 국내 운구를 무작정 미루기는 어려운 상황이 됐다.


이 때문에 항공편 등이 준비되는대로 가능한 한 빨리 시신을 국내로 운구하자는 데 정부와 유가족이 합의한 것으로 해석된다.


정부는 아직까지 구체적 운구 일정이나 방법 등은 확정하지 못했으며 유족들 역시 장례 일정을 잡지는 못한 것으로 알려졌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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