볼프하르트 판넨베르그의 현대신학에 남긴 공헌
머리말
지난 2014년 9월 5일 현대신학의 거장인 독일 신학자 볼프하르트 판넨베르그(Wolfhart Pannenberg)가 소천했다. 판넨베르그는 1928년 독일 발트해 연안인 스테틴(Stettin)에서 세관원의 아들로 출생하여, 동베를린의 훔볼트대와 괴팅겐대에서 철학과 신학을 공부하고, 1950년 바젤에 내려가 당시 신학계를 주도한 칼 바르트 밑에서 ‘교회교의학’을 공부했다. 그는 1951년 하이델베르그대로 옮겨가 구약학자 폰 라드와 조직신학자 페터 브룬너, 에드문드 슈링크의 지도 아래 박사과정생과 교수자격후보생으로 연구하였다. 그는 1955년에 교수자격을 얻어 1958년부터 3년간 부퍼탈교회대에서 몰트만과 함께 교수로 일했고 마인츠대에서 7년간(1961-1968) 가르쳤다. 1968년부터는 뮌헨대학으로 자리를 옮겨 1994년 퇴임할 때까지 조직신학을 가르쳤다.
그는 천주교 신학이 주도하는 뮌헨대 신학부에서 개신교 신학부를 만들어 튀빙엔의 몰트만과 같이 현대신학의 쌍벽을 이룬 신학의 거장으로서 바르트의 말씀 신학 이후의 현대신학을 주도적으로 이끌었다. 그의 선의의 라이벌이요 두 살 위인 몰트만이 아직도 건강이 좋고 한국에 10명 이상의 박사 문하생을 길러내어 작년에 이어 올해도 한국을 오가며 소망의 신학 활동을 펼치는 것에 비하여 그가 세상을 뜬 소식에 접하니 아쉬운 마음을 금할 길 없다. 그는 인간적으로 까달스런 성격 탓에 한국인 제자가 거의 없는 것으로 알려지고 있다. 한국에서는 몰트만의 인기가 높지만 본국 독일에서 그는 윙엘과 더불어 독창적인 신학자로서 해외보다는 더 인정을 받았다. 그리고 판넨베르그의 보편사 신학은 영미권에서도 큰 영향을 주었다. 2001년 11월 한국을 방문하기도 했던 그는 창조와 진화, 종교와 과학, 기독교와 이슬람 등 현대 신학의 쟁점을 정면으로 다루며 신학이 다른 학문과 통합을 이루어가야 한다는 도전을 던졌다.
그는 86세 생을 향유함으로써 장수한 것이긴 하나 필자가 생각한 것보다는 일찍 별세한 것 같아 아쉬움이 든다. 그의 신학을 한국에 소개함에 있어서 아마도 1977년 여름에 필자가 독일에서 귀국한 후에 장신대와 숭실대 현대신학 강좌에서 독일 현대신학자들 가운데 판넨베르그를 먼저 소개하고 1980년대에는 학술지에 글도 쓴 것으로 기억된다. 그 후 1990년대 오늘날 중진 학자 가운데는 김영선 교수(현재 협성대 재직)와 신현수 교수(현재 평택대 재직)가 판넨베르그 신학사상 연구로서 해외에서 박사학위를 받은 것으로 안다. 정통 개혁신학을 추구하는 필자는 판넨베르그의 신학 사상에 깊이 매료되지는 않았으나 전공 영역이라 그의 사상의 독창성에 큰 관심을 가지고 연구했다. 필자는 근 40년 전인 1970-80년대 그가 현대신학을 주도했던 불트만 중심의 실존론적 신학과 바르트의 말씀 신학의 한계성을 극복하고 역사를 기독교 신학의 지평으로 삼음으로써 현대 신학에 보인 하나의 새로운 독창성을 소개했던 것이다.
I. 희망의 신학자라기 보다는 보편성 내지 공공성의 신학자
국민일보 미션판(국민일보, 현대 신학의 거장, 판넨베르크 별세, 신상목 기자 , 입력 2014-09-11 09:51)이나 기독일보가 보도([기독일보], 독일 대표적 '희망 신학자' 판넨베르크 별세, 이동윤 기자 dylee@cdaily.co.kr, 입력 2014.09.11 11:27 | 수정 2014.09.11. 18:19)한 바 같이 판넨베르그를 몰트만의 소망 신학의 범주 안에 넣어서 그를 소망의 신학자라고 한다면 당사자인 그는 불편해 할 것이다. “소망”이란 용어는 철학자 가운데는 무신론자 블로흐, 신학자 가운데는 몰트만 사상의 주도적 개념이기 때문이다.
루터교적 보수적 성향을 가진 판넨베르그는 개혁교회의 진보적 성향을 가진 몰트만의 소망 개념이 지니고 있는 현실을 변혁시키는 급진적 내재성 성향에 대하여 거리를 두고 있으며 그는 하나님의 초월성을 강조하고 있기 때문이다. 판넨베르그에게 소망이란 그가 강조하는 다가오는 미래의 힘인 하나님의 초월성에 동반하는 개념이며, 그가 강조하는 것은 보편사의 지평 속에서 다가오시는 삼위일체 하나님 존재의 초월성과 보편성이다. 신학은 이러한 하나님 존재의 보편성을 보편적 이성의 관점에서 이 세상의 사실의 언어로 증언하는 것이다. 여기에 신학의 공공성이라는 학문적 성격이 있다고 본다. 판넨베르그는 인간의 모든 제도들은 하나님 나라를 증언하는 한시적 기능이며 교회는 세상의 희망인 하나님 나라의 전조(前兆)라는 것을 변증하고자 한다.(Pannenberg, The Apostle’s Creed in the light of Today’s Questions, trans. Margaret Kohn, 1972, 152-155).
판넨베르그는 불트만을 비롯한 내적 회심을 강조하는 실존적 경건에 신앙의 근거를 두는 실존주의 학파의 시도나 계시를 보편사가 아닌 원역사(Urgeschichte)라는 안전한 항구에 정박시키려는 바르트 학파의 시도에 반대하면서 기독교 신앙의 근거를 하나님의 역사적 계시에 근거시키고자 하였다. 그는 역사적 계시에 대한 접근이란 맹목적 결단이 아니라 지성적 통찰이며 그리하여 기독교 신앙이 오늘날 세상에서 보편성과 공공성의 성격을 갖는 것으로 본다. 신학적 주장들은 그것들의 근거가 되는 역사적 실재에 대한 엄격한 비판으로 검증되어야 한다. 그러면서도 그는 신학적 진리는 본질적으로 역사적인 것이며, 궁극적으로 종말론적인 것(Pannenberg, “What is Truth? in: Basic Question 2: 1-27)이라고 하였다. 역사의 과정에서는 기독교 신앙이란 잠정적인 것이다. 역사의 종말에 가서야 하나님의 신성이 만민에게 비로소 보편적으로 공개된다. 그러므로 미래만이 궁극적 진리의 초점이라고 본다.
II. 보편사를 신학의 지평으로 제시
1) 계시는 역사로서 주어진다.
판넨베르그는 하이델베르그 연구시절 수년 동안 계시의 본질에 대한 그의 사상을 형성했다. 그는 바르트의 구속사 개념이 사실(史實)적 지식과 계시(啓示)적 지식 사이의 괴리를 가진 협착성에 빠진 것에 불만을 품고 계시의 본질 그리고 신앙의 역사적 근거에 대한 연구를 시도하였다. 이러한 계시 사상은 판넨베르크 서클로 알려진 연구 그룹에서 지속적인 토론을 통해 형성된 것이었다. 이러한 그룹의 연구결과는 1961년의 소책자 『역사로서의 계시』(Offenbarung als Geschichte)라는 소책자로 출간되었다. 판넨베르그는 루터신학자 엘러트(Werner Elert)와 알타우스(Paul Althaus)의 사후(死後) 독일 안에서 주도적으로 학파 형성의 인물을 가지지 못했던 신학적 보수주의의 신뢰를 받게 되었다. 그러나 판넨베르그는 폰 호프만(Johannes von Hofmann)에 의해 대표되는 엘랑겐 학파(Erlangener Schule)의 구속사 신학이나 쿨만에 의해 새롭게 제기된 구속사 신학이 시도하는 신앙과 이성의 분리, 계시개념의 성령론적 제한성에 반대해서 보편사(普遍史, Universalgeschichte)를 기독교 계시 개념의 지평으로 주제화 한다. 그는 구약성서의 계시적 역사 개념과 헤겔의 이성적 역사 개념을 그의 보편역사 기획 속에서 조화시키려 한다.
판넨베르그는 계시가 역사 과정의 자체 내에서 증시될 수 있다고 주장했다. 칼 바르트에게 영향을 받았으나 그는 바르트와는 달리 하나님의 계시 역사는 이 세계과정과 분리되는 것이 아니라 피조세계의 완성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려고 했다. 하나님의 계시는 직접 오는 것이 아니고, 역사적 사건을 통하여 간접적으로 오며, 역사의 종국에 가서야 그 완전한 계시의 의미를 알 수 있게 된다고 보았다. 또한 이 역사적 계시는 보편적이어서 보는 눈을 가진 누구에게나 알 수 있도록 열려진 것이라고 하였다. 모든 종류의 세속적 경험 안에서 신앙적 암시를 끌어내고자 한 것이다.(Pannenberg, Introduction to Systematic Theology, Grand Rapids, Mich.: Eerdmann, 1991, 18-19). 우리는 여기서 그의 신학 개념이 이성적 통찰을 중요시한다는 것을 알 수 있다. 그러면서도 그는 하나님은 이스라엘 역사와 예수 그리스도의 삶과 죽음, 부활 속에서 자신을 드러낸다는 신학의 특수성을 수용하고 있다.
2) 역사 의미는 역사 종국에서 드러난다.
판넨베르그의 보편사 개념은 구약성서의 전승사와 특히 묵시론적 역사이해에 의거한다. 묵시록의 역사 이해에는 이스라엘과 세상의 전 역사(全丁史)가 신적 행위의 전체로서 표상(表象)되어 있다. 신의 인식은 역사의 모든 사건이 완결된 후에 비로소 가능하게 된다.(W. Pannenberg, Die Offenbarung Gottes in Jesus von Nazareth, 1963, Neuland III, Bd. 157.). 역사(丁史)의 의미는 역사의 종말에서 비로소 드러나기 때문이다.
판넨베르그는 유태교 묵시록이 이 보편사를 표상했다고 주장한다. 그러면 역사 한 가운데서 아직도 도래치 아니한 역사 종말을 어떻게 인식할 수 있는가? 여기에 해답의 열쇠를 주는 것이 예수 그리스도의 부활사건이라고 판넨베르그는 말한다. 그에 의하면 예수의 복음선포는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의 예기(豫期)였고, 그의 부활은 세상종말에 있어서 죽은 자의 부활의 선취(先取)이다. 신의 계시는 예수의 역사 속에서 최종적으로 일어났으나, 이미 완결된 것으로서 앞에 놓여 있지 않다. 예수의 역사는 그의 통치가 아직도 오고 있는 역사(歷史)로서의 하나님 계시로서 항상 새롭게 이해되어야 한다.
3) 신학의 두 가지 축: 보편사와 교회
판넨베르그에 의하면 신학이란 두 가지 축을 가진다. 하나는 보편사라는 축(軸)이다. 이 축에서 신학은 인간 사상 전체 안에 그 지평을 갖는다. 역사적 이성에 상응하는 축이다. 또 하나는 교회라는 축이다. 신앙에 상응하는 축이다. 신학은 교회라는 동질적인 공동체, 말하자면, 하나님 나라의 복음에 대한 명백하고 의도적인 신앙고백을 하면서 사는 신앙공동체 안에 그 지평을 갖는다.(Richard John Neuahus, "Wolfhart Pannenberg: Profile of a Theologian", in: Pannenberg, Theology and Kingdom of God, de. Richard John Neuhaus (Philadelphia: Westmister, 1969, 이병섭 역, 『신학과 하나님의 나라』, 50.) 판넨베르그는 그의 보편사 신학의 착상에서 양자, 역사와 계시, 역사적 이성과 신앙이라는 두 축을 종합하고자 한다.
III. 역사적 예수에서 출발하는 기독론
1) 역사적 예수의 출현에서 시작, 예수 부활사건의 역사적 증명
판넨베르그는 1960년대 당시 신학계를 지배한 불트만 학파와 바르트 학파에 의하여 역사적으로는 오리무중에 있는 역사적 예수를 복권하려고 시도하였다. 불트만 학파에 의하면 기독교 신앙은 역사적 예수와는 괴리 속에 있으며, 바르트 학파에 있어서도 기독교 신앙은 사실적 역사와는 다른 차원의 초역사라는 항구 속에 도피해 있어서 역사적 예수와는 괴리가 있었다. 불트만에게 있어서 역사적 예수는 그가 이 세상에 있었다는 순수 사실(das blosse Faktum) 외에는 불가지적 인물이었고, 바르트는 역사적 예수의 처녀 탄생을 인정했으나 예수의 부활 사건은 신문기자가 사진기로 찍을 수 없는 초역사적 사건이라는 표명으로 역사 비평학의 비평을 비켜 나갔다. 그리하여 기독교 신앙은 실존주의 신학과 말씀의 신학에서 역사적 근거를 상실할 위험성 속에 있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판넨베르그는 역사적 예수의 출현에서 그의 기독론을 시작한다.
판넨베르그는 그의 저서 『예수: 하나님과 인간』(Jesus: God and Man)에서 '아래에서부터 출발하는 기독론을 전개한다. 그는 나사렛 예수의 생애에서부터 시작한다. 예수의 신성에서부터 출발하여 그의 인성에로 나아가는 바르트의 위로부터의 기독론과는 달리 역사적 예수의 출현과 초권능적 사역에서부터 출발하여 그의 신적 정체성으로 나아고자 한다. 예수의 지상적 출현은 하나님 통치의 도래에 관한 그의 메시지에 의해 규정된다. 지상적 예수는 복음을 선포하면서 신적 권위를 주장하였다.(Pannenberg, Grundzüge der Christologie, 55-57). 그리고 역사적 예수의 숙명은 그의 십자가 죽음과 부활 사건을 통하여 규정된다. 그는 부활을 그리스도의 신적 정체성을 이해하는 가장 중요한 요소로 본다.
판넨베르그는 인간학적으로 의미있게 나타나는 부활에 대한 희망의 설명을 그의 보편사적 논증과 연결시킨다. 이 역사적 논증은 기독교적 부활절 전승에 대한 역사적인 해명에 의해 부활을 철저히 “사실적(史實的) 사건”(historisches Ereignis)으로 파악하고자 한다.(Pannenberg, Grundzüge der Christologie, 95.).
판넨베르그는 불트만이나 바르트와는 달리 예수의 죽음 후 현현, 그리고 빈 무덤의 사실을 이루는 제자들의 체험들이 역사적으로 명백히 설명될 수 있다고 본다. 그리고 이 설명이 예수 부활을 바로 역사적 사실로서 말할 수 있다고 주장한다. 판넨베르그는 그래서 불트만 학파가 시도하는 것처럼 부활신앙을 하나의 모험 감행으로 촉구하는 것을 거부한다.
1964년까지 판넨베르그는 예수 부활의 역사성을 확정적 사실로서 선포하려고 논증을 제시했다. 이러한 판넨베르그의 역사적 예수에 대한 복권은 1964년 튀빙엔의 그의 동료 몰트만이 역사적 예수의 부활 사건에서 기독교 신앙의 소망의 근거를 선언함으로써 1960년대 현대신학은 역사적 예수의 복권으로 이어졌다. 판넨베르그의 예수론은 영원하신 하나님의 본질에 대한 계시의 초점이다. 예수는 궁극적으로 역사의 종말에 놓여 있는 하나님의 자기 계시에 대한 예기(豫期, prolepsis)다.
2) 예수 - 포괄적 대속자
그러나 역사적 논구의 진행에 있어서 예수 부활의 역사성에 관한 증명 언급은 주목할 만하게 억제된다. 부활절 전승의 역사성에 대한 증명은 완결되는 확실성에 도달할 수 없다는 사실이 판넨베르그에게 점차 명백히 된다. 판넨베르그는 후기 조직신학의 맥락에서 그의 초기의 기독교론적 접근, 아래로부터 시작하는 기독론이 불완전하다는 사실을 인정한다.
판넨베르그는 조직신학에서 세계 통합의 원리로서 고전적인 신학개념인 로고스(Logos) 개념을 보편사 신학의 맥락에서 도입한다. 예수가 로고스라는 것은 우주적 추상적 원리로서가 아니라 역사로서의 세계질서를 반영한다. 말하자면, 예수는 인간 삶에서 이스라엘의 메시아이며 피조물과 창조주 사이의 적합한 관계를 밝혀주는 분이다.
판넨베르그는 로고스 개념을 전개함에 있어서 바르트가 하는 것처럼 성육신 신학적으로 선재적 로고스와 인류의 연합이라는 관점에서 직접적으로 전개하지 않고 보편사 신학의 관점에서 본다. 예수와 하나님과의 관계를 간접적으로 전개한다. 말하자면. 예수 자신이 역사 속에 전개되어 있는 것처럼 예수와 성부와의 관계를 보고자 한다.(Pannenberg, Jesus, God and Man, 324-349). 예수는 죽기까지 아버지에게 순종한 분으로서 영원한 아들이며, 로고스이다. 하나님이 자기에게 주신 사명에 죽기까지 복종하셨던 이로서 예수는 하나님의 화해이다. 예수가 우리의 죽음의 상황을 자기에게 짊어지심으로서 우리의 상황을 바꾸었다는 점에서 그는 우리의 대속자이다. 판넨베르그는 그의 이러한 관점을 포괄적 대속(inclusive substitution)이라고 부른다.(Pannenberg, Introduction to Systematic Theology, 61.) 우리는 믿음을 통하여 그리스도가 가져온 새 생명에 참여할 수 있다. 그리고 하나님에 대한 자발적 복종을 통하여 하나님과의 교제를 누리며, 우리의 유한성과 죽음을 넘어서 하나님의 영원한 생명에 참여하게 될 것이다.
이러한 기독론적 접근은 계시신학적 접근을 시도하는 정통주의자로부터는 기독교 교의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려 한다는 비판을 받을 수도 있다. 그러나 이러한 보편사적인 접근은 판넨베르그 신학의 특징적 정향이다. 그래서 그는 오늘날 고전적 신학의 현대적 후예로서 평가받기도 한다.(Grenz & Olson, 20th Century Theology, 신재구 역, 『20세기의 신학』, IVP, 315).
IV. 보편 학문으로서의 신학 정립 시도
바르트가 신학을 교회의 학문으로 이해한 데 반해서 판넨베르그는 신학을 보편 학문으로 이해했다. 불트만이 신학을 개인이 갖는 신앙고백에 정초하려는 데 반해서 판벤베르그는 신학을 역사적 이성에 기초한 일반 학문의 영역으로까지 확대될 수 있는 것으로 보았다. 신학의 목적은 진리를 합리적으로 설명하는 것이라고 주장했다. 이런 신학은 역사적 이성으로 파악할 수 있는 보편사의 지평에서 의미 있게 이루어진다. 그는 이렇게 '역사'를 신학의 영역으로 가져오면서 '역사로서 나타난 계시'를 강조한 신학자다. 계시 개념을 실존성이나 교회영역의 테두리에 가두지 않고 역사라는 지평으로 가져오고자 하였다.
판넨베르그는 성경의 언어들을 현재에서 예견되는 미래의 희망에 대한 진술로서 이해하고자 한다.(Richard John Neuhaus, "Wolfhart Pannenberg: Profile of a Theologian," 56). 이 소망은 미래적인 것으로 다가오나 결코 자기확증적이거나 자명한 진리가 아니다. 그는 몰트만이 소망의 낙관주의에 사로 잡히는 데 대해서 교회가 지니는 소망의 합리성을 말하고자 한다. 그는 “너희들 안에 있는 소망의 이유를 묻는 이가 있다면 그 이유를 설명하도록 준비하라”는 말씀을 중요시하고 있다. 그가 기획하는 이성의 신학이란 바로 교회가 지니는 소망의 합리성을 제시하기 위한 것이다. 소망의 주제는 하나님의 나라이다.
판넨베르그는 도래하고 있는 하나님의 나라의 소망은 삶의 경험에 의하여 지지되고 하나님의 영에 의하여 강화되고 예배의 송영 안에서 표현된다고 역설한다. 기독교 삶은 부활하신 주님과의 사귐이며 소망의 공동체 안에서의 친교이며, 하나님 나라의 성취의 축연(祝宴)의 모형인 주의 만찬을 지금 축하하는 것이다. 판넨베르그는 이성은 신앙의 적이 아니라 친구이며 교회의 전체의 삶에 참여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따라서 판넨베르그는 기독교 진리의 합리성을 위하여 이성의 비판을 강조하는 이성의 신학자라고 할 수 있다. 이런 점에서 그는 신학의 공공성(公共性)을 강조한다. 그는 신학이 일반 학문과 대화해야 하는 신학의 학문적 보편성을 강조한다. 그러나 그는 이성을 어디까지나 교회라는 공동체 안에서 역사 전체로서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진리의 보편성을 변증하기 위하여 사용한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교회의 신학자이다.
판넨베르그는 공공(公共)영역의 사상가이다. 그는 기독교 진리의 보편적 타당성을 합리적 설명을 통해서 증명하고자 시도한다. 신학은 사적(私的) 사유물이 아니라 공공적으로 그 타당성을 입증해야 한다. 기독교 신앙은 인간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영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요구한다. 따라서 교회는 사회가 하나님 나라 삶의 원리를 실천해 갈 수 있도록 가르치고 비판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 그는 교회의 설교단과 대학의 교단(敎壇) 사이에 어떤 간격이 있어서는 않된다고 본다. 설교단과 강단 사이에는 차이는 있다. 설교단은 제의적 회상, 축제, 공동체의 형성과 봉사를 그 주요 기능으로 하는 데 반해서, 교단은 공동체의 삶을 반성하며 이에 대한 이론을 제공한다. 그러나 두 곳의 중심적인 추진력은 하나님 나라의 진리다. 구속사의 완성 안에서 그 절정에 이르는 역사의 전 과정이 “하나님의 존재에 대한 자기 입증”이다.(Pannenberg, Introduction to Systematic Theology, 12.). 조직신학이란 이러한 역사 속에서 하나님의 자기 입증에 대한 합리적 설명이다.
V. 미래 우위의 사상가: 종말론적 존재론
판넨베르그의 신학 핵심은 종말론적 존재론과 하나님 이해였다. 하나님의 초월성은 그의 미래이자 완전성이며 미래는 모든 현재에 대해 지배하는 힘을 가졌기 때문에 현재를 규정하고 결정짓는다고 봤다. 그러나 하나님의 초월성은 현재와 상충하기보다는 완성시키며 하나님의 영을 통한 내재성은 피조세계의 풍성한 연합을 증대시킨다고 주장했다.
판넨베르그의 신학은 교회의 경건성과 동시에 사회를 향한 봉사의 필연성을 제시하고 있다. 이런 의미에서 그는 교회의 신학자이면서 동시에 공공영역의 신학자이다.(Grenz & Olson, 20th Century Theology, 신재구 역, 『20세기의 신학』, IVP, 302.). 그는 교회의 신앙만을 주장할 뿐 아니라 인류의 미래를 향하여 오는 하나님의 통치를 증언한다. 그는 하나님의 존재와 그의 통치는 불가분적이라고 보고 있다. 그는 루터가 말한 “의인이면서 죄인”(simul iustus et peccator)이라는 유명한 공식을 단순히 교회의 본질적 모습과 경험적 모습 사이의 괴리(乖離)를 설명하는 역설로서 이해하는 것에 만족하지 않는다.
판넨베르그는 이것을 교회가 직면하고 있는 오고 있는 하나님의 통치의 관점에서 이해하고자 한다. 그는 이것을 다음 두가지 관점에서 해석한다. 첫째, 교회는 지금 선취적으로 미래의 하나님 나라에 참여한다. 둘째, 존재는 항상 오는 것의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교회가 현재 경험하는 역설적 실존은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의 미래적 관점에서 이해되어야 한다. 한 개인, 교회, 그리고 역사 전체의 의미는 하나님의 통치의 도래에서만 그 온전한 의미를 발견할 수 있다. 이러한 의미에서 미래가 현재를 결정한다. 하나님은 초월성은 그의 미래성이며 완전성이다. 그리하여 이러한 종말론적 존재론에서 미래는 모든 현재에 대하여 지배하는 힘을 갖는다.
판넨베르그의 신학은 종말론적 관점에서 보는 신학이다.(Richard John Neuhaus, "Wolfhart Pannenberg: Profile of a Theologian," 55.) 사물의 진리는 그 사물의 종말에서만 보여진다. 그래서 판넨베르그는 교회의 언어란 “미래 관점”(future perspective)의 언어라고 말한다. “예수가 하나님이다”는 진술을 나사렛 예수의 전 생애에 적용시킬 수 있는 것은 그가 부활한 사건의 관점에서 비로소 가능하다고 본다.
VI. 오시는 삼위일체 하나님 증언
판넨베르그는 미래로서 다가오는 하나님을 삼위일체의 하나님으로서 고전적 철학적 유신론의 하나님과 구별한다. 철학적 유신론은 하나님을 “그 자체 안에 구별이 없는 하나의 실존하는 실체로서의 최고 존재의 정적인 통일”이며 “인간의 역사 밖에 있는 신적 사물”로서 표상한다. 그러나 삼위일체의 하나님은 “역사적 과정과 합치”하며, 미래의 힘으로 과거의 세계와 현재의 세계를 통합하여, 자기 생명 안에 영원히 참여하게 하는 구속의 하나님이다.
판넨베르그 삼위일체론의 근본적 특징은 “종말론적인 창조론”으로 표현되어진다. “미래의 존재론적 우위” 개념에서 보는 바와 같이 판넨베르그는 과거와 현재를 다가오는 신의 미래로부터의 결과로서 이해하는 창조론을 시도한다. 하나님의 존재도 “원초적 과거와 관계가 아니라, 종말과의 관계에서 수행되는 창조 행위”에서 파악된다. 하나님의 구속하시는 사랑의 행위로서의 미래의 창조적 도래는 “삼위일체적 언어에 비추어서 해명될 수 있다.”(Pannenberg, Theology and the Kingdom of God, Edited by Richard John Neuhaus, Philadelphia:Westminster, 1976, 이병섭 역,『신학과 하나님의 나라』, 98.) 하나님은 “예수를 통해 존재하셨고 또 현재도 존재하고 있으며,” “자유와 생명을 주는 성령으로서 세상에 대해서 현재하신다.”(Pannenberg, 『신학과 하나님의 나라』, 98.)
삼위일체적 구별은 하나님의 미래와 하나님의 현재의 차이에 기초되고 있다. 이 삼위일체의 세 위격은 하나님의 통일성에 포괄되어 있다. 따라서 삼위일체론은 철학적 신 관념에 덧붙여지는 부가물이 아니라, 예수가 선포한 “오고 있는 하나님 나라의 실재에 대한 궁극적 표현”(Pannenberg, 『신학과 하나님의 나라』, 99.)이다. 여기서 판넨베르그는 삼위일체론을 철학적 유신론이 아니라 성서적 증언에 기초하여 이해하고자 한다.
VII. 신학과 자연과학과의 대화
불트만의 실존론적 신학이나 바르트의 말씀신학이 계시와 역사, 계시와 자연을 분리시킨 시도에 대하여 판넨베르그는 양자를 다시 연결시키고, 자연과학을 신학과의 대화로 가져왔다. 이는 그의 공헌이다.
1) 과학의 장(場)을 신학으로 이끌어냄
그는 1960년대부터 신학과 자연 과학의 대화를 시도해 왔으며, 보다 본격적인 이 분야의 글들이 1980년대 후반 이후부터 나왔다. 그는 신학 방법론 문제를 관심 있게 연구했으며 기독교 신학과 자연과학의 상호작용에 대해서까지 논의를 확대시켰다.
판넨베르그의 신학적 경력의 가장 중심이 되는 것은 신학을 보편학문으로 볼 수 있다는 옹호다. 그는 신학이 철학, 역사, 자연과학과 교류할 수 있다고 본다. 이 분야에 있어서 그는 만유재신론(panentheism)을 수용하는 영국 옥스퍼드의 양자물리학자 존 폴킹혼(John Polkinghorne)과 하나님의 행동이론가 아더 피콕(Arthur Peacocke) 그리고 여러 학자들과 대화를 하였다.
판넨베르그는 근대에 들어와 사이가 어긋난 종교와 과학은 철학의 중재를 통해 다시 만날 수 있다고 강조했다. 그는 "공간, 시간, 질량, 힘, 장(field) 등과 같은 자연과학의 기본개념은 철학적 개념에 바탕을 둔 것인데 그 철학적 개념은 사실 기독교 신학이 오랫동안 밀접한 관련을 맺어온 것"임을 상기시켰다. 임마누엘 칸트는 자연과학이 측정하는 부분적 공간과 시간은 무한한 공간과 무한한 시간을 상정하지 않으면 안된다고 생각했으며 이 영원성과 광대함은 신학적으로 바로 신의 속성과 연결된다는 것이다.
판넨베르그는 현대 과학의 장(場) 개념을 신학적으로 끌어들이고자 하였다. 그는 모든 것을 결정짓는 실재로서의 하나님을 미래로부터 이 세계에 대하여 역사하는 신적 장(the divine field)과 동일시 한다.(Grenz & Olson, 20th Century Theology, InterVarsity Press, 1992, 신재구 역, 『20세기 신학』, IVP, 1997, 319) 기계적인 근대 과학이 하나님을 육체가 없고 따라서 작용도 할 수 없는 존재라고 해서 추방한 데 반해, 장(場, field) 개념은 전기장이나 자기장 같이 물질이 매개하지 않는 힘의 작용을 인정한다. 그는 "장 개념이 무소부재(無所不在)와 같은 신학적 개념을 이해하는 데 도움을 줄 수 있다"고 말했다. 판넨베르그의 신학적 출발점은 역시 창조주로서 하나님이다. 하나님은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실재로서 장(場, field)을 구성하며, 존재하는 모든 사물은 이 장에서 나오며, 자연과 역사의 모든 창발성 역시 그 장 안에서 나온다.
이렇게 신을 "모든 것을 결정하는 실재"로 이해하면, 인간의 모든 경험 영역이나 탐구 분야에서 신을 배제하는 것은 원천적으로 불가능하게 된다. 신학이 이런 신을 사유의 대상으로 삼는다면, 신학은 필연적으로 신을 인간의 역사뿐만 아니라 자연 과학이 대상으로 삼는 자연까지 결정하는 힘, 말하자면, “모든 실재가 의존하고 있는 힘,” 또는 “모든 것을 결정짓는 힘”(Pannenberg, Introduction to Systematic Theology, 8)으로 생각하게 된다. 그래서 판넨베르그가 보기에, 신학은 자연과학뿐만 아니라 어떤 학문 분야와도 분리될 수 없으며, 오히려 긴밀한 연관성을 갖게 된다.
장(場)이란 하나님의 피조세계에 대한 창조주의 통치권과 관련되어 있다.(Pannenberg, Theology and the Kingdom, 55-56). 이러한 장, 피조물이 그 안에서 살며, 그것으로부터 생명을 공급받아 사는 환경적 네트워크로서의 하나님은 바로 성령이다.(Pannenberg, “Theological Questions to Scientists,” Zygon 16(1981), 65-77). 무한한 공간이란 하나님의 광대하심과 무소부재하심을 가르키며, 시간을 전체로 보는 통찰은 하나님의 영원성을 가리킨다.(Pannenberg, Introduction to Systematic Theology, 48). 하나님은 창조와 역사가 존재하는 장이다, “그의 피조세계에 계시는 하나님의 영의 임재는 창조적 임재의 장, 곧 유한한 존재의 사건들을 하나씩 방출하는 힘의 포괄적인 장으로 묘사될 수 있다.”(Pannenberg, Introduction to Systematic Theology, 49).
포괄적인 장으로서 하나님은 이 세계 안에 내재하는 영으로 피조물들에 생명을 불어 넣으시며 동시에 이 생명의 과정을 초월하신 분으로 남는다. 하나님의 초월성은 세계의 미래적 정향에 기인한다, 영으로서의 하나님은 역사의 유한한 사건들에 대한 의미를 제공하는 전체로서 기능한다. 모든 역사가 향하여 가고 있는 실재인 종말은 매 순간을 초월한다. 순간에 시간과 영원은 상호 연관되어 있다 “영원은 바로 미래를 통하여 시간 속으로 들어온다.”(Pannenberg, Introduction to Systematic Theology, 49).
판넨베르그는 자연 법칙을 창발성(emergence: 복잡한 체계 안에서 의미있는 질서가 자발적으로 돌연히 출현하는 현상)을 기초로 발생하는 자연 과정 속에서 특별히 통일성을 서술하는 것으로 본다. 자연 법칙은 창발적인 사건들을 시간의 과정을 생략하고 그 사건들 사이에 공통으로 존재하는 규칙성과 통일성, 구조적 단일성을 다룬 것이라고 할 수 있다. 자연 과학은 창발적인 사건들을 공식화시킨 결과인 법칙성만을 다루기 때문이다. 비록 자연 과학의 법칙성들이 상당한 정확도로 현실을 기술하는 데 적용될 수 있다고 하더라도, 그것은 근삿값에 불과한 것이기 때문이다. 그는 자연 법칙의 이런 성격을 자연 과학이 지닌 한계라고 평가한다.
신학은 일차적으로 자연 현상이 창발적 국면을 지니고 있다는 데 관심을 갖는다. 신학적 관점에서 보면, 모든 자연 현상들은 신의 자유 행위에 따르는 일회적이고 비가역적 사건으로, 그래서 창발적 사건이다.
2) 창발적 진화론
과학적 토론을 신학에서 완전히 철수시킨 유명한 인물은 칼 바르트(Karl Barth) 이다, 그는 그의 저서 『교회교의학』의 창조론 서문에서 신학적 창조론은 과학적 이론들에 원칙적으로 관여하지 말아야 한다고 주장했다. 이런 주장은 신정통주의적 교회들, 특히 한국의 보수적 교회들에 막대한 영향을 주었다고 생각된다. 그러나 일반적으로 근대 이후에는, 과학이론들이 그 타당성을 상당히 인정받게 되어 과학이 설명하는 사실들은 타당한 것으로 인정하는 것이 상식이 되었다.
판넨베르그는 그의 저서 『자연신학』에서 "만일 신학자들이 하나님을 실재 세계의 창조주로 인식하고자 원한다면, 과학이 기술하고 있는 세계를 우회할 수는 없다"고 말하고 있다. 그는 19세기 영국 신학자 찰스 고어가 시도한 유신론적 진화론를 높이 평가하면서 창조론과 진화론 사이의 화해를 모색했다. 그에 의하면 "구약성서에 나오는 창조 증언들은 성서가 쓰여진 BC 6세기 바빌로니아 사회의 자연에 대한 제한된 지식에 의존하고 있지만 하나님의 자유로운 창조라는 핵심내용을 전달하는 데 문제될 것이 없다." "진화의 과정에서 무언가 새로운 것의 갑작스런 출현은 하나님이 역사 속에서 계속해서 전혀 새로운 것을 창조한다는 믿음과 공존할 수 있다." 생명이란 무수한 무생물분자가 집합된 조직에서 나타나는 창발적인 행동(the emergent behavior)이라고 본다.
판넨베르그는 신학의 영역을 전 우주사에로까지 확장시키고 하나님과 자연의 동반관계, 곧 계속된 창조(Creatio continua)를 기독교 창조 신앙의 본질로 이해한다. 자연과정 속에서 창발성을 인정하며 자연 실재의 비가역성(非可逆性)을 말하는 판넨베르그는 이것 모두를 하나님 개념과 관계시켜 이해해야 한다고 주장한다. "성서의 하느님이 우주 창조주인 한 그 하느님에 대한 진술 없이는 자연과정이 성립될 수 없을 것이며 반대로 자연이 성서적 하느님에 대한 진술 없이도 이해된다면 하느님은 우주 창조주가 될 수 없다"는 것이 판넨베르그의 주장이다.(이정배, 판넨베르그의 자연신학 연구, 신학사상 119권 , 150p ~ 176p 1227-4879 KCI 권호별 논문보기, 한국신학연구소 |2002년).
창발적 진화론 주장에 의하여 판넨베르그는 우주의 자연적 과정을 하나님의 지속적 창조과정과 연결시킴으로써 자연과학과 신학을 연결시킨 점에 있어서 그의 사유는 주목할만하다. 그러나 이러한 판넨베르그의 창발적 진화론이 개혁주의 신학이 말하는 성경이 말하는 무에서의 창조 사상과 갈등없이 연결될 수 있는지? 또는 하나님의 존재를 자연과정에 개입시키는 사유는 만유재신론의 사유로 떨어지지나 않는지? 라는 질문은 앞으로 논의되고 음미되어야 과제이기도 하다.
VIII 하나님 통치 윤리 제시
판넨베르그는 세계평화 실현을 위하여 하나님 통치의 윤리(Ethik der Gottesherrschaft)를 제시한다. 하나님 통치의 윤리는 정의와 평화와 자유를 특징으로 한다. “모든 것을 포괄하는 평화는 정의와 함께 세상 나라들의 지배형식을 대체하는 희망된 하나님 통치의 가장 중요한 표징을 형성한다.” 인류사가 보여주듯이 부분 자유만을 만들 수 있는 인간이 아니라 하나님의 통치만이 온전한 평화를 가져오신다.(Horst Georg Pöhlmann, Gottesdenker, Hamburg: Rowolt, 1984, 159-160).
판넨베르그는 “세계평화질서”(Weltfriedenordnung)를 요구한다. 그는 세계평화질서가 이 세상에서 궁극적 하나님의 평화왕국을 가져올 수는 없으나 세상에서의 하나님 나라의 선현(先顯)이라고 본다. 강대국을 포함하여 세상국가들을 평화로 행하도록 강제력을 가진 지고의 세계정부의 지위를 지닌 국제기구가 있다면 전쟁의 발발을 막을 수 있을 것이다. 많은 사람들은 이러한 세계정부는 원자핵 시대의 난관으로부터의 유일한 탈출구라고 여긴다. 그러나 그러한 기구를 위하여 강대국이 그들의 핵무기를 폐기한다는 것은 실현될 수 없다. 판넨베르그는 이러한 “국제적 중앙권력”(Internationale Zentralgewalt)이 힘의 남용을 막을 수 있을런지 의문을 제기한다. 유엔은 이러한 조건을 충족하지 못하며 유엔이나 WCC 등 인간이 만든 세계평화기구가 세계평화를 보장하지 못한다.
그는 그럼에도 불구하고 이러한 국제기구는 “덜한 악”(das kleinere Übel) 이라고 본다. 이러한 기구의 주요과제란 군축(Rüstungsbeschränkung)이다. 그는 중부 유럽에서 핵을 폐기한 “원자무기 없는 지대”(atomwaffenfreie Zone)를 요구했다. 전쟁이란 도발하지 아니한 적의 공격에 대한 불가피적인 방어라는 일정한 상황 속에서 정당화될 수 있다고 보나, 그는 관례적인 전쟁이나 핵전쟁을 반대한다. 판넨네르그는 전통신학이 찬성한 정당한 전쟁에 대하여 반대한다. 한 개인의 생명은 하나님 앞에서 무한한 가치를 지니고 있다. “정당한 전쟁이란 없으며 아마도 없었을 것이다.” 전쟁이란 한계상황 속에서는 불가피하나 항상 상대자를 제거하는 결과를 초래하는 악이다. “적대자의 제거가 전쟁의 내적 법칙이기 때문에, 주목할만한 동기에서... 싸우는 자들 조차도 이 내적 법칙에서 벗어날 수 없다. 그러므로 전쟁은 정당하지 못하다.”(Pannenberg, Ethik und Ekklesiologie, Göttingen, 1974). 하나님 통치의 윤리란 다가오는 하나님 통치를 소망으로 바라보면서 이 세상에서 덜한 악인 인간적인 기구를 통하여 상대적인 평화와 정의와 자유를 실현하는 것이다.
IX. 보편사적 이성의 신학자
역사적 예수로 되돌아가는 데 있어서 판넨베르그와 루터교 보수신학자 알트하우스는 서로 일치하지만, 지식을 추구하는 신앙(fides quaerens intellectum)을 축하는 판넨베르그의 입장은 신앙을 추구하는 지식(intellectus quaerens fidem)을 추구하는 알트하우스의 입장과 다르다. 판넨베르그는 예수 역사의 계시 성격은 예수의 출현과 숙명의 그 당시 일어난 역사에 대한 지식을 통해 인식된다고 주장한다. 이에 반해서, 알트하우스는 신앙이 전제하는 일어난 역사에 대한 지식은 “아직도 사건 속에서 드러나는 하나님의 계시에 대한 지식은 아니다” 라고 주장한다. 계시의 지식은 “신앙 자체와 함께 실현된다.”(P. Althaus, “Offenbarung als Geschichte und Glaube, Bemerkungen zu Wolfahrt Pannenbergs Begriff der Offenbarung”, ThLZ, 87, 1962, 321ff., 325.).
필자의 견해에 의하면 판넨베르그의 보편사 신학에 있어서 계시사와 세속사는 분리되지 않고 혼동되고 있는 인상을 주고 있다. 예수의 부활사건을 역사적 사건으로 증명하고자 하는 그의 의도는 크나큰 공헌이기는 하지마는, 몰트만이 주장하는 바 같이 예수 부활은 역사적 지성으로는 증명할 수 없는 종말론적으로 다가오는 새로운 하나님의 초자연적 계시로 받아들여야 하지 않는가?
판넨베르그의 보편사 사유는 한편으로는 예수 부활 사건이 역사적 지성으로는 천착할 수 없다는 것을 인정하면서도 다른편으로 여전히 역사적 검증이라는 지식 우위 통찰의 미련에서 벗어나지 못하고 있다. 이러한 그의 사유는 보편사와 계시사를 동일시하고, 계시를 역사종말에 대한 선취행위로 보도록 하고 있다. 또한 아래로 부터의 기독론 사고는 예수의 성육신을 하나의 완결된 사건이 아니라 역사적 예수가 신의 아들로 나아가는 과정으로 이해하고 있다. 여기서 계시보다는 역사적 지성을 우위에 두려는 그의 이성우위 사고의 한계가 있다.
역사 이성을 강조하는 판넨베르그의 신학은 성경을 신학의 전제로 보기보다는 종교적 전통의 원전으로 본다. 그는 역사 비평학이 도입한 성경의 원문 비평 때문에 영감론이 파괴되었다고 본다. 따라서 바르트까지 옹호한 성경의 영감론을 비판한 그의 입장에 한계가 있는 것은 사실이다. 이성적 통찰을 중요시하는 그의 보편사신학의 사색은 믿음의 과정에 성령의 조명의 역할, 즉 영감된 말씀이 부가될 필요성을 인정하지 않으려는 것에서 한계를 지니고 있다.
판넨베르그는 계시의 인식을 위하여 초자연적 성령의 역사가 사건 설명에 부가되어야함을 인정하지 않으려고 한다. 의미는 영감이 아닌 사실 자체에서 나온다고 보기 때문이다.(김영한, 바르트에서 몰트만까지, 2003, 396-401). 그러나 후반의 『조직신학』 3권에 와서는 계시에 대한 역사적 지식의 균열을 언급함으로써 계시 인식의 과정에서 이성의 통찰을 너머서는 신비적 측면을 열어놓고 있다. 이러한 이성적 신학을 전개하는 그의 신학의 의도는 시종일관 기독교 진리의 합리성이 입증될 수 없다면 신앙의 접근성은 어려워 질 것이라는 그의 기독교 진리의 공공성 신념에 입각한 것이다. 그리하여 그는 기독교 신앙을 개인적 사적 세계로 축소시키려는 개인적 경건주의를 극복하고 전체로서의 세계에 대한 신앙의 경험을 합리적으로 설명하고자 시도한 것이다.
X. 보수적 사상가: 전통적 교리 보존과 교회의 예전 중요시.
현대신학자로서 판넨베르그는 기독교 진리의 합리성과 공공성을 변호함에 있어서 전통과 교회의 예전을 중요시하려 했다. 그는 비판자들과는 달리 그 자신의 지성적 회심의 체험이 있으며, 전통적 교리과 규범을 중요시했으며, 특히 종말론에 있어서 악인의 심판을 인정함으로써 보편구원론의 견해를 수용하지 아니하였다.
1) 지성적 회심의 경험: 빛의 체험
판넨베르그가 청소년 시절 16살 되던 해 어느 겨울 오후 해질 무렵 숲을 지나 집으로 돌아오던 중 그가 경험한 한줄기 빛은 생애에서 가장 중요한 순간으로 회자(膾炙)된다. 당시 그는 멀리서 비치는 한 빛에 이끌리며 자신의 모습을 발견했는데 그리스도인이 아니었음에도 자신의 삶을 요구하는 예수 그리스도를 만나는 체험을 했다. 강렬한 종교적인 경험은 나중에 '빛의 경험'이라고 부르게 된다. 이 경험을 이해하기 위해 철학자와 종교 사상가들을 공부하기 시작했다.
그는 16세 때 도서관에서 니체의 책과 만나면서 기독교의 영향 때문에 세계가 비참해졌다고 확신했다. 제2차 세계대전 당시 고백교회 신자였던 고등학교 문학 선생님이 판넨베르그에게 기독교에 대해 연구하라고 권했다. 무신론자 니체와는 다른 기독교를 발견하면서 신학을 공부하면서 기독교가 최고의 철학이라는 결론을 내리기도 했다. 이를 계기로 "지적 회심"을 하게 된 판넨베르그는 기독교가 현재 최선의 종교적인 선택이라고 결론을 내린다. 이를 계기로 그는 개신교 신학자가 됐다.
칼 바르트의 저작을 통해 영향을 받은 그는 1950년부터 바젤에서 바르트에게서 직접 수학했다. 이런 과정에서 그는 바르트와는 달리 하나님의 계시 역사는 이 세계와 상반된 것이 아니라 피조 세계의 완성이라는 사실을 입증하려는 시도를 하게 된다. 모든 종류의 세속적 경험 안에서도 신앙적 암시를 주는 것들을 끌어내고자 했다.
그는 올바른 기독교 신앙은 인간이 이 땅에서 살아가는 모든 영역에 적극적으로 참여할 것을 요구하며 따라서 교회는 언제나 사회가 하나님 나라 삶의 원리를 실천해 갈 수 있도록 가르치고 비판하는 역할을 감당해야 한다고 역설했다. 이러한 그의 의도를 그의 조직신학에서 구현하고자 하였다.
2) 전통교회의 규범과 예전의 중요성 강조
판넨베르그는 몰트만처럼 직접 교회를 맡아 목회를 한 경험은 없으나 그의 신학 사상은 보수적이며 교회의 전통과 예전적 삶에 근본적으로 정위되고 있다. 오늘날 현대의 자유주의 신학자들, 영국의 존 로빈슨이 교회가 전통적으로 믿고 있는 신의 의미성을 평가절하하고, 미국의 폴 틸리히가 교회가 말하는 경건과는 다른 세속적인 범종교적 경건성을 말하고, 미국의 조셉 플레처가 전통적 교회의 규범윤리와는 다른 상황윤리를 말하는 것과는 달리, 판넨베르그는 루터교적 정통주의의 교리와 예전을 근본에 있어서 수용하는 보수성을 지니고 있다.
판넨베르그는 그만큼 교회의 예전적 삶을 중요시한다. 교회는 다가오는 하나님 나라를 대망하고 증언하는 지상의 임시적 공동체라고 보고 있기 때문이다. 교회는 도래하고 있는 하나님 나라에 합당한 경건과 생활양식을 동반하는 공동체이다. 그러므로 그는 종말론적 윤리에 입각하여 하나님 나라의 비전을 부정하고 현실에 주어진 체제를 전적으로 거부하고 뒤엎고자 시도한 해방신학에 대하여 가차없는 비판을 가하는 보수주의자였다.
3) 세계의 평화는 오시는 하나님 통치에서 실현
판넨베르그는 세계의 평화란 하나님의 통치에서만 비로소 실현된다고 보았다. 유엔이나 WCC 같은 기구는 이러한 세계 평화를 실현시킬 수 없다고 보았다. 이 지상의 교회는 다가오는 하나님 통치를 증거하는 데서만 그 존재가치가 인정된다면서, 세계교회의 기구적 일치를 추구하는 WCC운동에 대하여 부정적인 입장을 취하였다. 그러므로 그는 자유주의자들이 세계적인 기구를 통하여 세계평화를 보장하려는 시도를 인간적인 시도로 보았고, 혁명주의자들이 기존세계질서를 총체적으로 파괴함으로써 새로운 세계를 수립하려는 시도가 실현될 수 없다는 시도라고 비판하였다.
판넨베르그는 인간의 노력이란 온전한 평화와 최종의 자유를 경험적으로는 실현할 수 없는, 파편적인 부분목표들(fragmentarische Teilziele)만을 이룬다고 보았다. 그러면서 미래의 힘으로서 모든 것을 결정하는 힘으로서 다가오시는 하나님의 통치만이 이 세상에 진정하게 정의와 평화를 가져올 수 있다고 보았다. 그러므로 그는 하나님 통치를 강조한 하나님 나라의 신학자라고 말할 수 있다.
4) 종말론적 이원성 보존: 보편구원 아닌 구원과 심판 강조
더욱이 바르트나 몰트만의 신학은 한편으로는 교회정위적이나 그 신학이 지나친 낙관주의적 성향을 가지고 있고 보편화해론과 만인구원론의 성격을 가지고 있다. 그리하여 이들의 신학은 오늘날 교회가 이 시대를 향해 선포해야할 신앙적 의무를 요구하는 중요한 메시지를 상실하고 있다. 그리스도 구원의 보편화해와 만인구원의 메시지 때문에 전도와 선교의 긴급성과 필요성이 해소되는 것이다. 바르트나 몰트만의 신학에서는 심판이나 하나님의 진노 같은 기독교의 핵심 개념이 보편화해론적 구조 안에서 그 독자성을 상실해 버리고 있다. 그리하여 바르트와 몰트만의 신학은 교회강단 설교의 중요한 요소(심판에 대한 경고)를 상실해 버리고 있다.
이에 반해서 판넨베르그는 종말론에 있어서 불신자와 악인에 대한 심판을 명료히 말함으로써, 교회 메시지의 선포 과제(불신자와 악인에 대한 경고)를 강하게 의식하고 있다. 여기에 그의 신학의 교회공동체 지향적 성격이 있다. 그러나 동시에 그는 종말론적 심판의 기준으로 하나님의 창조론적 법질서를 제시함으로써 교회의 차원을 넘어서 공공영역의 질서(행함에 있어서 의인과 악인의 질서)를 신앙의 질서 외에 인정한다. 판넨베르그는 마태복음 25장 31-46절의 종말론적 구원과 심판에 대한 예수 비유에 대한 해석에서 임금이 사람들에게 요구한 것은 믿음이라기 보다는 지극히 작은 소자가 한 행위라고 해석한다. 갇힌 자와 병든 자를 심방하고, 주린 자에게 먹을 것은 것, 헐벗은 자를 입혀준 것이 종말론적인 구원의 근거라고 본다. 그렇지 아니한 것은 심판의 근거다. 이런 점에서 그의 종말론은 종교개혁적 의인론에서 이탈하고 있다. 여기에 창조론적 법질서를 강조하는 그의 신학의 공공성 지향적 성격이 있다.
바르트나 몰트만이 종말과 관련하여 영원은 화해라고 말하면서 심판에 대하여 침묵하는 데 비하여 판넨베르그는 심판을 피력한다: “영원은 심판이다.” “영원한 하나님은 세계의 창조자이며 역시 심판자로서 그의 창조의지에 굳게 서 있다.”(Pannenberg, Systematische Theologie Bd. 3, Göttingen: Vandenhoeck und Ruprecht, 1993, 656.) 판넨베르그는 역사 내적인 심판을 말한다. “역사 내적으로 하나님의 심판은 인간들이 자신을 그들 자신의 행위의 결과에 넘겨주고, 주어지는 것에 놓여 있다.”(Pannenberg, Systematische Theologie Bd. 3, 657.)
바르트나 몰트만이 개인적 화해의 참여 없이 보편적으로 이루어지는 화해와 구원을 주장하는 데 대하여, 판넨베르그가 돌이킴, 말하자면, 회개를 통한 개인적 복음의 수용이 필요 없는 객관적 화해는 없다고 주장하는 것은 주목할만하다: “돌이킴 없이 예수 그리스도 안에서 하나님 나라의 구원 현재의 소식에 대한 진정한 수납은 없다.”(Pannenberg, Systematische Theologie Bd. 3, 659.) 여기서 판넨베르그가 하나님의 화해사건에 대한 개인의 개별적 회개행위와 세례받음을 통한 하나님의 구원에의 참여를 강조하는 것은 성서적이고 종교개혁적 전통에 충실한 해석이다.
XI. 판넨베르그 보편사신학에 대한 극단한 보수주의자들의 오해
판넨베르그에 있어서 예수의 성육신과 부활과 재림과 종말이란 일부 극단한 보수주의자들이 비판하는 것처럼 하나의 신화적이거나 그 역사성이 의문시 되는 오리무중의 사건이 아니라 보편사의 과정에서 일어나는 하나님의 구속 사건이다. 독일 사상가들에 대한 일부 극단한 보수주의자들의 너무 좁은 해석과 정죄적인 태도는 바람직하지 않다. 이들은 판넨베르그가 사도신경을 부인하고 성경의 권위를 부인하고 계시의 직접성을 부인한다고 정죄한다. 그러나 이는 그의 신학에 대한 바른 이해에서 비롯된 것이 아니다.
판넨베르그는 삼위일체 하나님과 사도신경을 인정할 뿐 아니라 강해하여 저서로 출판했으며, 온건하게 적용한 역사비판학의 테두리 안에서 성경의 권위를 인정했으며, 계시는 역사로서 다가온다고 주장하였다. 그의 보편사 신학은 삼위일체 하나님이 보편사의 주가 되신다는 기본 명제에서 출발하고 있다. 이런 면에서 그는 성경이 계시하는 하나님, 즉 삼위일체 하나님에서 출발하고 있다. 그리고 그를 보편구원론자라고 정죄하는 것은 위에서 필자가 설명한 바 같이 올바른 지적이 아니다. 오히려 그는 현대의 보편구원론에 대하여 비판하였다. 그리고 위에서 설명한 바 같이 판넨베르그는 바르트나 몰트만과는 달리 최후심판을 인정하는 보수주의자이다. 필자가 쓴 『바르트에서 몰트만까지』(기독교서회, 증보판, 2003년, 443-455)을 읽어보면 이러한 오해는 풀릴 것이다.
그가 예수 부활 사건을 전설적으로 보아 알맹이가 없다고 하는 비난도 바른 지적이 아니다. 판넨베르그는 예수의 부활 사건을 역사적으로 증명하고자 하는 초기의 시도에서 보는 바 같이 전설로 보지 않는다. 단지 그의 의도와는 달리 후기에 이르면 예수의 부활사건이 역사적 증명 안에 들어온다는 것은 점차 쉽지 않는 것으로 밝혀진 것이다. 그는 초기에 도입한 후기유대교적 묵시록의 죽은 자들의 보편적 부활의 지평 속에서 예수부활이란 하나의 역사적 사건이라고 주장한 것이다. 후기 유대교적 묵시록적 지평이 보편사를 표상하기는 하지만 그것은 유대인들에게 적용되는 역사관이었지 다른 종교문화권의 사람들에게는 적용되기 어렵다는 문제가 제기된 것이다.
맺음말: 하나님 존재에 대한 보편사이성적 증언.
판넨베르그는 86년이란 생을 살면서 보편사 가운데 계시하시는 하나님을 증거하고자 하였다. 그는 신학이 공공의 학문이 되어야 하며, 예수의 부활과 신인(神人)으로서의 예수의 정체성은 역사적 이성의 통찰에 의하여 파악될 수 있다고 보았다. 이러한 관점이 일반 신자들에게는 지극히 당연한 것이라고 말할 수 있으나 그가 신학자로서 등장한 1960년의 유럽신학적 상황은 그렇지 않았다. 일반 신자들에게는 당연한 사실이 신학자들에게는 어려운 일이었다. 당시에는 일반 역사를 계시와 분리시키는 불트만의 실존주의 신학과 바르트의 신정통신학이 유럽신학계를 지배했던 것이다. 이러한 상황 속에서 판넨베르그는 현대신학이 상실한 역사개념을 기독교 신학의 보편적 지평으로 복권시킨 것이다. 그는 삼위일체 하나님을 보편사 가운데 미래의 힘으로 설명했다. 그는 기독교의 하나님은 미래에서 현재로 다가오고 계시는 분이라는 것을 증언하면서 역사적 이성을 강조한 신학자이다. 그는 미래의 존재론적 우위를 말하고 있다. 미래가 현재에 영향을 주고 현재를 규정한다는 점에서 그의 존재론은 종말론적 미래론으로서 전통적인 미래론을 넘어서고 있다. 이 미래의 주가 삼위일체 하나님이라는 것이다. 따라서 그는 하나님이 20세기 후반기와 21세기 초반부에 사용한 지성적 그리스도인이라고 말할 수 있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