남서울 노회 교역자 수련회 열려

20141014-15(-)일 남서울 노회 교역자 수련회(회장 정현구 목사)가 속초 추양수양관에서 열렸다. 주제는 기독교와 예술(고흐와 렘브란트의 하나님)이었다.

13일 월요일에 노회를 마치고 14일 노회 장로회 연합회와 함께 설악산 단풍을 구경한 후, 장로회는 돌아가고, 15일까지 교역자 수련회는 추양수양관에서 계속 진행되었다노회내 장로들과 목사들이 하나가 되어 산행을 하고 식사를 나누고 교제하면서 서로를 더 알아가고 교회의 형편들을 나누는 모습이 보기 좋았다 교역자 수련회는 봄 노회시 세월호 참사의 애도 분위기에 맞추어 열리지 않고 가을로 연기해서 모였다수련회시에 고흐와 렘브란트의 하나님이란 주제로 온생명 교회 안재경 목사가 강의를 했다.

 

▲ 고흐와 렘브란트의 하나님이란 주제로 온생명 교회 안재경 목사가 발제하고 있다.

고흐의 하나님- 고통받으시는 하나님/ 안재경목사

네덜란드 7년간 목회하면서, 교민, 교인들이 고통을 가지고 있는데, 이것을 담아내려는 목회적 관심에서 공부를 했다. 주일 오후예배때 그림을 보여주고, 어떤 상황에서 그렸는지, 고흐의 상처를 어떻게 정리해 내었지는를 설명했다목회적 관심에 의한 표현이다.

모든 세상의 문제를 기독교적으로 이해하고 목회적으로 수용해 낼수 있다. 성도의 도움이 되는 방향으로 만들어 갈수 있다.

기독교의 하나님의 독특성은 인간의 문제에 관심을 가진다. 하나님이 이땅에 버려진 문제에 대해서 직접 찾아와 주시고 해결해주시고 이를 통해 스스로 기쁨을 가지신다. 세상의 현실과 고통에 대해서 불변의 하나님이 아니라, 이땅의 문제에 대해서 수시로 근심하시고 고통하신다.

자신의 고통의 문제를 통해서 자신에게 개입하시는 하나님을 고흐는 보았다.

고후6:10(고흐가 좋아한 구절)

"근심하는 자 같으나 항상 기뻐하고 가난한 자 같으나 많은 사람을 부요하게 하고 아무 것도 없는 자 같으나 모든 것을 가진 자로다."

십년정도 그림을 그렸고, 육백통 편지를 남겼다. 고흐가 태어나기 죽은 형의 이름을 이어간다. 어머니가 데리고 그 형의 무덤으로 자주 갔다. 어떤 사람은 이런 것들이 평생의 삶을 정신병적인 모습으로 그리도록 하기도 한다. 이것은 성도의 이중적인 모습을 표현한다.

고흐는 가난한 자와 더불어 딩글고 복음을 전하는 모습이 기존의 목사와 다른 모습이었다. 그림으로 복음을 전한 자이다. 그림으로 설교한 자다. 평생 동생에게 의지했고, 결혼도 하지 못했다. 가난한 자의 모습으로 선다.

 

▲ 고흐의 해바리기

해바라기 14송이를 그렸다. 고흐의 페르소나가 해바라기이다. 자살하고 난 후에 관후에 올려졌던 것이 꺾여진 해바라기, 1회 전시회도 해바라기였다.

종교적 의미로 충성을 상징; 하나님을 향한 일편단심의 마음이다. 충성을 종교적 개념이기보다는 일반화 시키면 해바라기는 감사이다. 충성을 일반화시키면 감사이다. 일상 생활에서 감사로 나타나지 않으면 충성인가?

해바라기를 두번째 그림과 같이 놓고 보기를 고흐가 바란 그림은 자장가이다. 고흐는 프랑스 남부 아를 지방에서 화가 공동체를 만들기를 원했다. 그때 고갱을 불렀다. 노란집이 그곳이다. 고흐는 항상 하나님에 대한 믿음이 자신의 삶과 연관되어 생각했다. 화가가 중세 수도사와 같은 역할을 할 수 있다고 생각했다. 고갱을 기다리면서 그린 그림이 해바라기이다. 해바라기의 의미를 자장가라는 그림으로 표현이다. 

▲ 자장가[루랭의 부인]와 해바라기의 관계

고흐의 편지를 보면 양쪽에 해바라기 그림이 있고 가운데 자장가라는 그림이 트리피커(제단화)의 모습으로 설명되었다. 제단화는 일반적으로 가운데는 일반적으로 마리아가 양쪽에는 마리아를 돋보이는 것들이 그려져 있다. 천사들이 날개를 편 모습들이다.

이런 제단화의 종교적인 것을 가장 일상화 시킨 모습의 여인으로 특히 아이를 낳은 평법한 여인으로 묘사했다. 이는 중세 교회의 터무니 없는 면을 일상화 시킨 것이다.

해바라기는 종교적인 충성을 일반적으로는 감사로 표현한 것이라면 충성과 감사가 어떻게 표현되어야 할까? 일반적으로는 불행에도 감사하다. 이유는 더 큰 불행을 기억하면서.... 그런 경우가 감사는 세월호 사건을 당하지 않았다는 것도 의미있지만, 그러나 내가 다른 사람과 전혀 다르지 않음을 알면서도 그럼에도 하나님의 부름에 감사한다. 감사는 같은 것을 볼줄 알아야 한다.

우리의 감사, 성도들의 감사는 다르다. 다르지 않음을 볼줄 아는 즉 같은 것을 볼줄 아는 능력으로서의 감사이다.

▲ 별이 빛나는 밤에

고흐가 프랑스 남부 아를로 내려갔다. 그곳을 선택한 이유는 햇빛이 많이 드는 지방, 모든 것을 가장 잘 선명하게 볼 수 있는 곳이다. 당시 파리의 인상파 화가들이 동경했던 색갈 등은 일본 판화 화가들이 그렸던 것이다. 그 유사한 곳이 바로 프랑스 남쪽이다. 그곳에서 고갱과 함께 하다가 떠난다. 그때부터 고흐의 발작이 시작한다. 간질 증상이다. 이후 요양원에 들어간다.

그림에 검게 하늘에 닿은 것은 사이프러스(삼나무)이다. 정확한 본질과 형태를 표현하기가 힘들다. 그 나무는 지중해 주변에는 무덤 주변에 늘 있다. 죽음을 말한다. 그리고 고흐는 이집트의 오벨리스크로 보았다. 그 옆에 올리브 나무들을 그리면서 예수님의 겟세마네 동산의 기도 장면을 보기를 원했다. 종교적인 것을 일상화해서 표현해 내었다.

▲ 수련회가 진행되고 있다.

교회 첨탑; 프랑스 식은 아니고 네덜란드적이다. 어린 시절의 추억을 살린 것이다.

절망과 함께 풍랑이는 바다로서 하늘을 전체의 2/3나 묘사했다. 꿈과 하나님과 하나되는 소망이다. 절망과 소망의 대비이다.

자기는 많은 것을 할 수 있는데, 그러나 아무런 일이 맡겨지지 않는 상태에 있는 때가 청년들에게 있다. 그러나 이때 무작정 기다리는 것외에는 아무것도 할수 없을 때가 가장 많은 것을 할수 있는 시간이다. 수동적으로 기다려야 하는 시간이 오히려 하나님을 순수하게 맞이하고 찾는 시간이다.

목사로서 할수 있는 것이 전혀 없는 네덜란드의 목회 상황이었다. 심방도 하지 못하게 하는 상황이었다. 그가 네덜란드 한인교회를 떠날때 받았던 인사가 무엇인가를 하지 않아서 감사를 받았다. 목사로서 무엇을 할수 있는가? 아무 것도 할수 없었던 것이 제일좋은 목회였다는 것이다이때 본 것이 사이프러스이다. 내가 내 의식조차 통제할수 없었을 때 나는 누구인가?

하늘의 해달별은 일렁이는 모습이다. 편지에 하늘에 있는 별들 그것이 이 땅에서 하늘에 이어지는 교통수단으로 생각했다. 하늘에 어떻게 이를수 있는가? 시적으로 저별에 이르는 방법은? 치명적인 질병에 이르는 길이다. 자연사하는 것이 평범한 방식이다. 혹 은하철도 999가 고흐의 영감이 아닐까?

렘브란트의 하나님- 복음의 하나님

고흐가 복음을 가장 일상화한 작가이지만 그 시작은 종교개혁이다. 종교개혁의 대의를 잘 드러낸 사람이 렘브란트이다. 그림을 보면 종교개혁이 잘 드러난다. 종교개혁의 복음을 가장 형상화한 작가가 렘브란트이다.

10:45[렘브란트가 좋아한 본문이다]

"인자가 온 것을 섬김을 받으려 함이 아니라 도리어 섬기려 하고 자기 목숨을 많은사람의 대속물로 주려 함이니라"

서방 신학의 특징으 그리스도의 십자가이고 동방은 그리스도의 부활을 강조했다. 렘브란트는 그리스도 그분이 우리의 몸을 입고 세상에 오셨다. 몸을 변화시키는 구원자로 오셨음을 드러내었다.

 

▲ 첫번째 소개할 그림은 마19장의 장면들을 함께 그린 동판화이다.

유화뿐 아니라 에칭으로도 유명; 19장에 예루살렘 입성에서 하신 일을 집약해서. 1640년대. 아들 티투스만이 남은 둘의 상황이다. 예수님 후광 처리함. 아이를 축복을 제시하는 모습, 예수님의 말씀에 고민하는 모습(가난한 자들에게 주라는 말씀에). 여러 그림에 렘브란트 자신이 그려져 있다. 바리새인과 율법사들의 모습. 당시 실존이나 역사의 인물을 그린다. 에라스무스, 루터, 소크라테스, 호메루스 등을 함께 예수님의 말씀에 귀를 기울이거나 논의하고 있다. 이 의미는 렘브란트 자신도 목사가 되려고 레이튼 대학에 들어갔다가 그만두고 그림을 그린다. 그도 인문주의자이다. 왜 이 그림을 그렸는가? 예수님이 인문주의자의 종합이다. 사람에 대한 관심이다.

기독교는 사람을 위한 종교가 아니다라는 풍토에서 기독교가 가장 인문주의적임을 변증할 수 있을까? 진정한 사람을 위한 것은 복음이다. 

▲ 두번째 그림은 탕자의 귀환이다

헨리 나우웬은 하루종일 보고 탕자의 귀환이란 책을 썻??/span>. 좋은 해설서이고 목회서이다아들의 얼굴을 조금 보이게 했다. 당시 그림은 탕자의 얼굴을 크게 그렸다. 회개한 자의 표시를 그리려고 했다. 그러나 렘브란트는 돌아온 자는 돌아온 자의 모습에 결정되지 않고, 은혜에 근거한다고 말하고 있다. 탕자의 귀환은 탕자 자신이 얼마나 회개했는가가 아니고 오직 은혜다. 집 나간 아들은 마음의 아들이다. 옆에 사람은 형이다. 더 높은 모습이다. 은혜를 부인하는 율법 종교이다. 렘브란트는 죽기 일년전에 그린 그림이다. 육체적으로는 아버지의 나이이지만, 화가이지만 인기가 몰락한 사람으로, 네덜란드 황금기에 제자들은 활약을 하고 하지만, 렘브란트의 그림은 더 본질적인 모습을 추구하면서 어두워져 간다. 화가로서는 형의 자리이다. 사회적인 입지에서는 형과 같지만, 마지막으로 하나님께로 돌아가야 할 탕자로 그리고 있다.

 

▲ 단체사진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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