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 부흥은 수적 성장과는 다르다 =
고신대학교 역사신학 교수이자 부산경남기독교역사연구회 회장인 이상규 목사는 부흥에 대한 일반적인
오해에 대한 네 가지 문제제기로 말문을 열었다. “첫째로 부흥은 수적인 성장이라고 생각하는 것은 오해다. 둘째로 부흥을 하나의 운동으로 인식하는
것으로써 movement가 사람의 의도가 반영된 것이라면 1907년 평양대부흥은 그렇지 않다는 것이다. 세 번째로 다른 나라의 사례의 경우에도
정치적 상황이 도덕적 상황에 영향을 줄 수는 있겠지만, 정치적 상황 자체가 부흥에 영향을 주지는 않는다며 부흥의 본질적 특성은 집단적 회개인데,
정치적 상황이 이를 유발할 수 없다.
네 번째로는 부흥의 성격을 논할 때, 비정치화를 언급하는데 부흥의
결과로 정치적으로 무관심하게 됐다는 것이다. 이에 대해 이 목사는 “부흥은 1906년을 기점으로 선교사들 주도에서 한국교회로 옮겨온다. 초창기
감리교 선교사들이 한국 교회를 주도할 때, 그들이 남긴 일차 사료 중 단 한편에서도 한국인의 정치적 관심을 영적으로 되돌리려는 의지가 담긴
기록은 찾아볼 수 없다”라고 말했다.
그는 “해석보다 더 중요한 것은 historical fact인데 한국교회는 이를
자주 간과해왔다. 1907년 부흥에 대해 비정치적으로 해석하는 것은 여러 가지 증거를 볼 때 타당하지 않다. 실제로 1919년 3·1운동을
보아도 부흥이 지난 지 불과 10여년이 지났지만, 만세운동 등 독립운동을 주도한 층이 기독교인이 상당한 비율에 이른다.”라고 말했다.
결론적으로 “중요한 것은 어떻게 하면 이런 부흥을 또다시 맞을 수 있겠는가?”에
대해 “부흥은 분명히 인위적으로 할 수 없는 성격이지만, 우리나라와 외국의 부흥 사례를 종합할 때, 어떤 조건들을 찾을 수는 있다”고 했다.
그가 말하는 조건은 첫째로 사경회와 밀접한 관계 즉 말씀의 신실한 선포, 둘째로
부흥을 위한 간구, 셋째로 죄의 고백, 그리고 넷째로 부흥에 관한 소식과 전언이다. 하지만 이 목사는 “그렇다면 위와 같은 조건만 갖추어지면
부흥이 임하는가? 이런 고민에 천착한 사람이 조나단 에드워즈다. 그는 10년 주기로 여러 번 부흥을 맞았다”고 말했다. 그는 결론으로 “부흥은
어떤 인간에 의해 전법적으로 일어날 수 없다고 맺었다.
▲ 한국교회, 과장된 이미지 벗고 새롭게 시작해야 = 이어 진행된 5분간 모두 발언에서
우주현
박세광 목사(BFGF총괄 부총무, 남도교회 담임)는 부흥에 대해 “1907년
부흥의 원인은 부흥에 대한 간구였다. 부흥과 성장이 동의어가 아니라는 지적은 정확했으며 부흥이라는 단어가 잘못 오용되고 있다는 것은 사실임에
동감을 표한다”고 말했다. “현재 부산의 부흥은 어떻게 되고 있는가? 우리는 무엇을 준비해야 할 것인가를 주목해야 한다고 생각한다. 이를 위해
몇 가지 살펴보겠다.
첫째로 강력한 성령운동이다. 부흥은 성경에서는 사실상 사도행전 2장에서
시작한다. 부흥을 말하면서 성령을 빼 놓을 수 없다. 그간에 부산 지역이 부흥하지 못한 것은 결국은 성령의 역사를 강력히 부인하거나 거부하는
특정 교단의 신학적 영향 때문이 아니었나 하는 생각을 해 본다.
둘째로 교회의 연합이다. 평양대부흥 당시 선교사들은 교파를 막론하고 모여서
기도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부산에서 일어나는 운동은 부흥이 일어나고 있다고 믿고 확신하고 있다. 당시의 부흥의 주요한 효시는 연합모임이었다.
그런 의미에서 현재 부산의 열기는 부흥의 그런 영향을 받았다. 이런 연합은 현재 청년들을 통해 이루어지고 있다. 이는 아주 긍정적인 면이고
주목해야 하는 부분이다. 부산 해운대 집회에서도 북한을 향해 수많은 청년과 목회자들이 눈물로 기도했다. 이런 눈물은 성령이 주신 것이라고
확신한다”라고 말했다.
이번 토론회는 지난 2006년부터 부산지역에 진행되는 기독행사들, 올해까지의 모습과 과거의 부흥과의 차이점과 개선점을 심도 있는 토론을
했다는 점에서 큰 의미를 가졌다. 또한 옳고 그름을 넘어 기독단체와 교회들의 사명을 공감하는 자리가 됐다. 아울러 한국교회의 총체적
부흥을 모색하며 지역에 기반한 기독단체들의 활동에 단초를 제공하는 자리로 지속적인 포럼이 되기를
기대해본다. (올댓뉴스제공)