멀리 미국 캘리포니아주 오렌지카운티에서 어머니 황순미(미국 남가자주 사랑의교회집사가 귀국하여 늠름하게 돌아온 아들의 제대신고를 받았다황집사에게 아들의 한국군 만기제대는 남다른 사연을 가졌기에 감격의 눈물을 감추지 않았다.

 

▲ 조준희 군은 어머니에게 제대신고를 했다.

 

황집사가 대학을 졸업하던 해 가족은 브라질로 이민을 했다대학을 졸업했지만브라질의 이민생활은 녹록치 않았다한국 사람이 할 수 있는 것은 별로 없었다의류사업을 벌인 가계에 도움이 되고자 공순이처럼 미싱을 돌리며 젊은 세월을 보내다 결혼하여 미국으로 건너갔다.

 

아들과 딸을 두었지만결혼생활은 평탄하지 않았다남편이 일찍 세상을 떠난 것이다아빠가 절실하게 필요한 사춘기의 아들에게 아버지의 죽음은 큰 충격이었다가정을 꾸려가기 위해 엄마가 불철주야 뛰어야 할 때 아들은 방황하기 시작했다방황의 시기에 친구들과 어울려 다니며 엄마 차를 몰래 끌고나가 천 달러가 넘는 딱지가 날아오기도 했다경찰서도 드나들었다정신을 차리고 보니 고등학교 공부의 시기를 놓쳐 버렸다검정고시를 통해 겨우 고등학교 졸업장을 쥐었다그러나 할 수 있는 일이 없었다아들은 엄마에게 굳은 결심을 말했다. “한국 군대에 가서 고생하면서 사람이 되겠습니다.” 뒤늦게 철든 아들의 결심이었다. 황집사는 그런 아들이 대견했다그리고 하나님께 감사했다굳이 한국군대에 가지 않아도 되는 미국 시민인 아들이 사람이 되어 보겠다고 한국군대에 가겠다고 하니 단번에 승낙했다.

 

▲ 어머니 황집사는 아들의 손을 꼭 잡고 감사의 기도를 드렸다.

 

그렇게 한국에 온 조군이었지만 군입대는 불가능해 보였다당장 국적도 없을 뿐 아니라 한국말을 알아듣지도 말하지도 못하는 상태에서 군대에 가겠다니 어느 군대에서 받아줄 것인가? 이런 사정을 잘 알고 있는 어머니는 남가좌주 사랑의교회 교인들에게 기도를 요청했고 멀리서 오직 기도로 하나님께 매달렸다.

 

병무청에 가서 이리저리 뛰어다녔다. 하나의 희망이었던 외인부대에는 갈 수 있는 시기가 아니었다다행히 전방 포병부대에서 지원병을 모집하고 있어서 지원했다심사 후 연락을 주겠다고 했지만 어려울 것이라는 암시가 있었다그러나 드디어 1%의 구멍이 열렸다. 어머니의 눈물의 기도가 그 문을 연 것이었다. 그렇게 그는 2013년 1월에 입대를 하여 기초훈련을 마치고 전방부대에 배치를 받았다그리고 오늘 만기 제대를 한 것이다.

 

모자는 마냥 신기해하였다어떻게 말도 못하는 아들이 모든 훈련을 마치고 여느 아들들과 같이 똑같은 군대생활을 하여 제대할 수 있었을까황집사는 말한다. “모두가 하나님의 은혜입니다. 그리고 한국 군대 참 좋습니다미국에까지 전화를 해서 아들의 소식을 소상히 이야기해주고 안심시켜 주었습니다.” 조군은 아직도 떠듬거리는 말로 이야기했다. “영어를 하는 친구를 붙여 주기도 하고 휴가 때는 서울역까지 친구가 데려다 주기도 했습니다부대장님소대장님선임하사님동료와 후배들이 다 도와주었습니다.” 요즘 사고군대와는 다른 군대의 전우애를 엿볼 수 있게 했다.

 

▲ 친척들이 서울역에 함께 마중을 나갔다.

 

한국에 살기를 원하는 조군은 매 주일 교회에 나가 기도했다고 한다지난 세월을 회개하면서 새사람이 되어 엄마를 기쁘게 하는 아들로 서기를 원하는 조군은 한국이 자신을 따뜻이 보듬어 준 것을 보답할 기회를 얻기 원했다. 대학부터 가야겠다고 생각하고 기도하던 그에게 낭보가 날아들었다포항의 선린대학에서 입학허가서가 온 것이다내년 3월부터 국제경영정보학과에서 공부하기로 했다영어로 하는 수업이기는 하지만 한국어를 소홀히 할 수 없기에 10월부터 어학당에 들어가기로 하고 제대하자마자 포항으로 내려갔다일주일의 휴가를 받아온 황집사는 그런 아들의 대견스런 뒷모습을 바라보며 이제는 부모의 손을 떠나 하나님의 손 그늘에 들어간 것을 확인하면서 미국행 비행기에 올랐다조군의 이야기는 국민일보에도 소개되었다. 

(http://news.kmib.co.kr/article/view.asp?arcid=0922810147&code=23111112&sid1=chr&sid2=0003)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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