500여 년 전의 종교개혁운동은 미완성이었다. 왜냐하면 로마가톨릭교회는 여전히 건재하게 남아있고 당시에도 개혁자들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고 반대하는 자들이 상당하였기 때문이다. 그러나 그 때의 개혁의 기치를 높인 교회개혁운동은 부분적으로 성공을 거두었다. 활발한 개신교 국가들과 성도들이 탄생되었기 때문이다.

그리고 그 운동은 여전히 현재 진행형이다. 이는 개혁가들이 남긴 구호가 증명한다: ‘개혁된 교회는 항상 개혁되어야 한다’(Ecclesia Reformata semper est reformanda)! 교황권과 교회 전통의 권위가 절대 우위를 차지하고 있던 때에 기록된 성경의 최고 권위를 주창하고 그 말씀 선포에 심혈을 기울임으로써 어둠속에 눈부신 말씀의 빛을 쏟아냈다. 그 결과 부패와 타락으로 점철된 비성경적인 중세 교회개혁의 불길은 급속히 타올랐다. 유럽 많은 국가들이 개신교로 탈바꿈한 것이다. 당시 로마교가 개혁사상을 다 수용했더라면 역사는 어떻게 진행되었을까? 역사상 참혹한 종교전쟁은 일어나지 않았을 것이며 아마도 세계 복음화에 더 많은 영향을 끼쳤을지도 모른다. 반면에 해를 거듭하면서 신학적 차이나 혹은 정치 권력적 야욕에 의한 분열의 분열을 낳아 사회와 국가에 미치는 종교적 영향력은 현대 사회에서 접하고 있는 것과 별반 다를 것이 없는 길을 갔을 것이다.

▲ 언약교회의 “2014년 언언약교회 종교개혁신앙강좌”가 진행되고 있다.

어째든 하나님의 섭리 하에서 개신교는 계속해서 개혁의 불길을 끄지 말아야 한다는 사명을 발견하게 되었다. 로마 가톨릭 교회는 자신들을 돌아보며 새로운 모색을 추구하는 계기가 되었다. 종교개혁 500주년을 앞두고 있는 현 시점에서 개신교나 로마 가톨릭 교회는 여전히 개혁의 대상으로 남아있다. 개신교의 눈으로 본 가톨릭교회는 이단이라는 소리를 들어도 변명의 여지가 없을 정도로 혼합 종교적 색채와 종교다원주의 사상에서 결코 자유롭지 못한 종교이다. 그렇다고 개신교는 다르다고 말하기 어려울 정도로 가톨릭과 직제 일치 운동을 벌이고 있고 종교다원주의 사상을 수용하며 동시에 교권정치와 세속주의에 휘둘려서 존경과 두려움의 대상에서 밀려나 버린지 오래 되었다. 이러한 상황에서 개혁교회를 지향하고 있는 자들은 개혁된 교회일지라도 여전히 개혁해 가야 하는 절대적 명제 앞에서 지난 과거를 돌아보고 미래의 우리의 모습을 그려보는 작업은 매우 필요하다 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 의미에서 111일 언약교회에서 주최하여 가진 “2014년 언언약교회 종교개혁신앙강좌는 더욱 뜻 깊은 시간이 되었다.

이번에 개최되는 신앙강좌는 두 시간으로 나누어 발표되었는데 첫날 1일에는 서창원 교수(총신대신대원 역사신학)가 발표를 했다.

서교수는 500여년이라는 긴 세월 동안 개혁교회는 무엇을 개혁해 왔는지에 대해서 그리고 앞으로 또 어떻게 개혁해 가야 하는지를 살펴보았다.

“500여 년 전의 종교개혁운동은 미완성이었다.”라고 서두를 시작한 서교수는 왜냐하면 로마가톨릭교회는 여전히 건재하게 남아있고 당시에도 개혁자들의 주장에 동조하지 않고 반대하는 자들이 상당하였기 때문이다.”라고 말하면서 당시 개혁자들의 노력으로 개혁되어진 부분을 소개하면서 500여년이 흐른 지금의 개혁교회의 모습과 개혁해야할 부분을 짚는 것으로 강의를 했다.

 

강단사역의 개혁

16세기 스코트랜드의 예를 들어 강단의 설교자들은 설교 본문을 전적으로 성경에서 취하지 않았다. 신나게 웃게 만드는 재미난 이야기책인 ‘Gesta Romanorum’이라는 이상한 책을 주로 인용하였다. 감독들은 설교할 줄 몰랐으며 교구 신부들은 고해성사에 만족하였고 형식적으로 라틴어로 된 예배집전에 만족하였다.

그러나 제네바에서의 칼빈의 말씀 사역을 필두로 존 녹스의 성경에 충실한 개혁의 외침이 가세하면서 수많은 영혼들을 진리에 눈 뜨게 하였고 교회를 진리의 기둥과 터로 온전히 세워 가는데 결정적인 역할을 감당하였다. 대각성운동 역시 교회개혁운동이요 말씀회복운동이라고 말하지 않을 수 없다.

그런데, 500년이라는 세월이 흘러가면서 개신교회 상당수가 로마 가톨릭으로의 회귀현상을 보이고 있다. 16세기 종교개혁 후에 로마 가톨릭교회가 자취를 감추었던 스코틀랜드에서도 지금은 가톨릭교회가 절반가까이 차지하고 있다. 한국에서의 가톨릭교회의 신장은 개신교 성장과 방불할 정도로 강해지고 있다.

그것은 현대 교회의 설교자들이 신종 게스타 로마노룸이라 할 수 있는 심리학적이고 도덕적이고 교훈적인 메시지들을 쏟아놓기에 급급해 하고 있고, 설교 표절이 90%에 이른다는 어느 기관의 보고가 있듯이 목사는 성경진리를 풀어 증거하여 심령의 변화를 촉구하는 말씀을 선포하는 강단이 아니라 교훈적이고 시사적이며 윤리 도덕적인 훈계를 제시하는 서당선생으로 전락되었기 때문이다. 이 점은 계속 개혁되어야 할 중요한 부분이다.

 

▲ 서창원 교수

예배의 단순화 개혁!

중세 시대에는 성직자들이 성경에 무지하여 예전에만 집중하였다. 그러나 종교개혁자들은 예배의 단순화를 기하면서 신부들의 전횡을 막고 만인제사장직을 가르쳤다. 예전은 중요하지만 그것이 구원의 조건이 아니며 예배의식은 인간이 고안해 낸 무엇으로 할 것이 아니라 오직 성경에서 명하고 있는 것대로 해야 할 것으로 가르쳤다.

그런데 500여년이 지난 지금의 개신교 교회들은 새로운 의전 중심의 예배로 뒤바뀌고 있다. 예배의 단순화에서 다양한 순서들이 삽입되어 상당히 의식화되어가고 있거나 혹은 지나치게 자유분방한 것이 되어 예배의 대상과 중심이 삼위일체 하나님이 아니라 예배자들이 되었다. 이것 역시 시급하게 개혁되어야 할 과제이다.

 

말씀의 생활화를 위한 권징회복

종교개혁은 사회 변혁으로 이끌었다. 제도개선과 개혁 및 의무교육 실천 및 권력의 이동까지 이끌어낸 엄청난 힘을 드러냈다. 교황권에서 국가만능주의로 옮겨간 측면이 강하였지만 그래도 절대군정을 강조하던 왕들조차도 교회의 영적 독립성을 존중하고 그리스도의 나라에서 한 성도로서의 순종을 요구받았다. 성경이 시민들의 삶과 정부의 정치형태까지도 기초가 되어 민주정치의 꽃을 피우는 계기가 되었고 인간의 기본권의 회복과 직업의 귀천이 철폐되고 계급적 구조의 변화를 이끌었다. 이것이 오늘날 서구 유럽의 현대 민주주의 사회를 건설하는 원동력이었다. 하나님 말씀대로 순종하는 삶을 살지 아니하는 자들을 위한 교회 권징은 사랑가운데서 진리를 실현하는 방편이 되었다. 죄인들이기 때문에 죄에서 자유로운 인간은 아무도 없다. 그러나 말씀과 기도로 성결된 삶을 추구하면서 말씀에 순종하지 아니하는 자들에 대한 책망과 바르게 하는 권징은 장로회주의 정치에서 매우 구체적인 실천사항이 되었다.

그런데 500여년이 지난 오늘의 현대교회는 성경의 절대권위에서 이탈하면서 성경의 교훈보다 철학과 과학의 소리에 더 귀를 기울이는 자들을 만들어냈다. 그리하여 하나님 말씀 중심에서 인간 중심으로, 하늘의 것에 대한 관심에서 땅에 것에 대한 집착으로 뒤바뀌어 버린 현실을 환호하는 자들이 교회 안에서도 대접을 받고 있다. 하루 속히 말씀회복을 통하여 권징을 회복하는 개혁교회가 되어야 할 것이다.

 

교회직제에 있어서 계급의식의 타파

16세기 종교개혁운동이 낳은 열매 중 하나는 성직매매와 성직자와 평신도간의 구분이 철폐된 것이었다. 종교개혁은 이러한 병폐들을 단번에 제거하고 성경에 준하는 자격있는 지도자들을 세우며 교회의 모든 직분은 그리스도 안에서 동일한 지위를 가지는 것으로 개혁하였다. 교회 안에서는 목사와 장로 및 집사로 한정시켰다. 그리고 이 직분에는 계급적 차이가 아니라 기능적 구분만 있을 뿐임을 천명한 것이다.

그러던 종교개혁의 유산과 성경의 가르침이 한국의 교회들에서는 신종 성직 매매로 나타나고 있고 양 무리의 본이 되기보다 군림하는 모양새가 속출하고 있다. 은사에 따른 구분보다는 직제에 따른 특권층이 형성된 것이다. 서리집사에서 안수집사로 장로로 임직을 받으면서 한 단계씩 승계가 된다는 의식구조가 팽배해졌다. 개혁되어야 할 부분이다.

 

주일 회복과 절기 철폐

종교개혁자들은 중세교회가 소위 성일 혹은 축일로 간주한 모든 날들이 성경에 근거하고 있지 않다고 해서 다 폐지시켰다. 그리고 구원의 완성을 기념하는 주일을 주의 날로 간주하고 공적으로 성도들이 모이는 신약의 안식일로 규정하였다.

성탄절이나 부활절 등 오늘날의 많은 절기들은 성경에 없는 것들이 교회 안에 중요한 절기들로 자리 잡고 있다. 대신에 주일의 개념은 희박하여지고 있다. 예배를 위해서 세상의 일들을 포기하는 정신이 회복되어야 할 것이다.

 

개혁교회의 연합: 주님의 보편적 교회 세우기

제네바를 중심으로 한 유럽 대륙의 교회개혁 운동은 독자적인 행보들을 보인 것 같아도 서로 긴밀한 협력가운데서 개혁의 확산을 꾀하였다. 그리고 제네바에서 훈련받은 자들이 각기 고국으로 돌아가 개혁의 불길을 지펴나갔다. 그리하여 형태의 차이가 있을지라도 근본적으로 신학적 기조와 예배의식은 대동소이한 것이었다.

시대적 풍토가 그래서 인지 몰라도 이제는 하나된 주님의 교회를 같은 신학과 신앙을 전하는 교회만이라도 독립교회들처럼 활동할 것이 아니라 서로의 연합을 통해서 개혁교회의 목소리를 세상에 들려주는 것이 되어야 한다. 거짓된 복음을 참된 것으로 알고 종교생활에 열심을 다하고 있는 자들의 실체가 무엇인지 더욱 저돌적으로 알게 해 주어야 할 책임이 있다.

그 일을 위해서 순수한 개혁파 교회의 영적 연합을 위한 순수한 기도회와 사경회와 같은 시간들을 함께 가지는 일련의 활동들이 요망된다.

서창원 교수의 발표 논문은 논문방에서 읽을 수 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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